“알파와 오메가가 이 정도 만났으면 보통 관계의 정의가 필요하다고 생각합니다.”
민준은 갑자기 우리 관계에 관한 이야기를 꺼냈다.
우리가 무슨 관계가 있긴 한가. 굳이 따지자면 처음에 나는 그에게 몸을 상납하는 처지였다. 그 대신 그는, 내가 연희에게 한 일을 숨겨 주기로 했다. 그 뒤엔 회사 생활에 해가 될까 봐 참고… 사진도 찍히고, 물론 사진이야 동의하에 찍은 것이고 그가 남에게 보여 줄 거란 생각이 들진 않지만….
그러나 나와 원민준의 관계는 정의되면 안 되는 것이었다. 그렇게 하면 나는 정말 연희 몰래 일종의 간통을 한 것이 된다…. 나는 우리 사이를 떠밀린 것으로 해 두고 싶었다. 가족도 친척도 없이 살아온 나에게 나를 늘 챙겨 준 소꿉친구들은 소중한 존재였다. 연희에게 미움받으면 나는 어떻게 해야 할까. 생각하고 싶지 않다.
“그냥 그런 거 안 했으면 좋겠어요. 앞으로도 시키는 대로 잘할게요.”
나는 위선적이게도 그것이 싫어 민준에게 애원했다. 나는 어떤 욕심도 부리며 살아온 적 없다. 여자와 아이조차 만들 수 없는 열성 오메가 남자로 태어났다는 것만으로 나는 많은 것을 포기해야 했다. 주제 파악을 잘하는 게 내가 가진 장점 중 하나였다. 아무것도 욕심내지 않았으니 내 삶이 더 틀어지지만 않았으면 좋겠다고, 나는 그렇게 바랄 뿐이었다.
“저는 서윤 씨에게 여러 가지 조건을 제시할 수 있습니다.”
민준이 차분히 말을 이었다.
“집이라든가, 생활비 같은 거요. 일반적으로, 알파와 오메가가 만날 때 지원해 주는 것들은 다 줄 수 있습니다, 가능하면 서윤 씨 마음에 찰 만큼 좋은 것들로요.”
그는 나에게 불편한 지원을 제시하고 있었다. 나는 얼어붙어 고개를 저었다. 그런 걸 받으면 나는 끝장이다.
“싫어요. 그럼 연희는요?”
“서연희도 저와 결혼까지 생각할 사이라면 오메가의 존재는 인정할 수밖에 없죠. 그래서 많은 알파들이 베타 와이프를 들일 때 혼전 계약서를 작성하고요.”
부자들의 세계란 아예 사고방식이 다른 걸까. 민준은 결국, 연희와 결혼까지 생각하면서도 나를 세컨드로 두고 싶은 것일 거다. 부유한 알파들이 보통 그런다는 말은 들었다. 알파들은 베타 여자들과도 아이를 가질 수 있었다. 그러나 성적인 쾌감은 오메가들에게 찾는 경우가 많았다. 오메가 세컨드를 두는 알파들은 많다.
연희도 그걸 감안하고 만날 만큼 그가 매력적인 조건의 남자일까? 그러나 그녀도 내가 그의 세컨드가 될 거라고는 예상하지 못하고 있겠지, 만일 알게 된다면 어찌할지 모골이 송연해졌다.
한편으론 민준이 원망스러웠다. 연희에게 그 정도까지 해야 할까? 가장 좋은 보석을 가지고도 모자라 나까지 갖고 싶어 하는 그의 탐욕이 미웠다. 무엇 하나라도 제 눈에 띄는 건 다 움켜쥐는 삶을 살아온 존재이기에 할 수 있는 생각이겠지.
“이런 이야기는 그만했으면 좋겠습니다.”
민준은 언짢다는 듯 표정을 바꾸었다. 모처럼 나 같은 존재에게 베풀어 준 호의가 거절당하자 마음이 상했다는 표정이었다. 그는 꽤 이기적인 남자였다.
그의 기색이 차갑게 바뀌자 나는 또 금세 움츠러들었다. 언제든 원민준이 화내는 것엔 익숙해질 수 없을 것 같다.
“그럼 이렇게 하죠.”
원민준이 차분히 말했다.
“오늘 자정까지 서윤 씨가 마음을 바꾸지 않으면 나도 이 건은 더 이상 이야기 꺼내지 않겠습니다. 그렇지만 서윤 씨가 마음을 돌린다면 저의 제의를 다 받아들이세요. 뭐든지요.”
나직한 그의 말을 듣는 내 등에는 소름이 오소소 돋아 있었다. 민준의 말을 듣고 나는 바로 알아차렸다. 고문당할지도 모른다고. 나는 침을 삼켰다. 이 사람은, 나를 다그쳐 원하는 대답을 얻을 생각인 것이다.
“먼저 한숨 자요. 아까 피곤했을 테니.”
민준이 나를 침대에 남겨 두고 일어나며 말했다.
“참, 서윤 씨.”
“네….”
“결박 다음에는 뭐였는지 기억하죠?”
온몸의 솜털까지 곤두섰다. 보통 그에게 하루 종일 교육을 받는 날은 결박으로 시작하면 체벌, 체벌로 시작하면 다음에 결박이었다. 그리고 마지막은 항상 성교로 끝났다.
나는 딱딱하게 굳은 채 입을 열었다.
“…체벌 교육이요.”
“기대되네요.”
“네….”
“몸에 무리를 주면 안 되니 한 시간 정도 쉬어요. 준비하고 있을 테니까.”
“네….”
나는 침대 시트 안에 파고들며 공포로 몸을 떨었다. 가시방석 같은 한 시간이 지나가고 이불을 뒤집어쓴 내 머리 위로 그의 노크 소리가 들렸다.
“서윤 씨, 일어났습니까?”
나는 못 들은 척하고 싶은 마음을 누르고 몸을 일으켰다.
결박할 때는 한없이 다정한 그였지만 그게 끝나고 체벌 교육이 시작되면 야차처럼 무서워졌다. 민준이 방 안에 들어와 내 모습을 위아래로 보더니 천천히 아름다운 입술을 열었다.
“누가 몸 가리고 있으래?”
나는 얼른 시트를 내려 아직 밧줄 자국이 남은 알몸을 드러냈다.
평소에 그는 체벌 강도가 높지 않은 편이다. 한두 번 심하게 맞아 본 적은 있지만 민준은 내 몸 상태를 항상 체크하며 무리한 체벌은 한 적이 없다. 그러나 오늘은 나를 봐주지 않을 거란 예감이 들었다. 그는 오늘 내가 항복하기 전까지 나를 고통 줄 것이다.
“죄송해요.”
“복도로 따라 나와.”
나는 서둘러 복도로 가 그의 앞에 섰다. 눈을 쳐다볼 수 없어 피했다가 뺨을 가볍게 한 대 맞았다.
“내가 뭐라고 가르쳤는지 기억은 합니까?”
“눈 피하지 말고, 몸 가리지 말라고요….”
“그 간단한 것 하나를 못해서 지금까지 몇 대를 맞는 겁니까.”
“용서해 주세요.”
민준이 조금만 화를 내도 겁을 집어먹는 나는 금세 꼬리를 내리고 빌었다. 그러나 그가 정말로 원하는 대답은 하지 않을 것이다. 죽을 정도로 맞더라도….
그는 나를 데리고 복도 한가운데의 테이블로 향했다. 나는 사이드 테이블 위에 놓인 평소보다 큰 패들을 보았는데, 새까만 가죽 재질에 구멍이 일정하게 펀칭 된 디자인이었다.
그것만 보고도 나는 여기서 맞는구나, 하는 걸 깨닫고 사이드 테이블을 짚고 섰다. 그가 내 어깨를 누르자 나는 자동으로 테이블을 잡고 상체를 숙였다.
그 순간 나는 헉, 하는 숨을 쉬었다. 원민준은 모든 알파 페로몬을 한꺼번에 개방했다. 나 같은 열성 오메가에게 그의 페로몬은 질식할 정도로 무거운 것이었다. 나는 금세 아래가 젖어 개처럼 헉헉대며 겨우 테이블을 잡고 있었다.
그간 그는 항상 나를 생각하여 섹스할 때도 가능한 한 페로몬을 눌러 주었다. 우성 오메가라면 괜찮았겠지만 나는 그보다 낮은 열성 오메가다. 생물학적인 공포와 지배가 나를 엄습한다. 나는 벌써 눈가에 눈물이 맺혔다. 민준에게는 나의 페로몬이 삼류 포르노 정도로 흥분될까 말까 하는 것이지만 나는 그의 냄새를 맡는 것만으로 몸을 비틀며 발정에 허덕인다.
“오늘은 맞을 때마다 하나씩 잘못한 걸 말하도록 하죠.”
“네… 흑….”
“그리고 잘못한 걸 전부 털어놓으면 끝나는 겁니다.”
“네….”
“벌써 울면 어떻게 해요. 오늘 잘 버티겠다고 약속했잖아.”
원민준이 내 머리채를 잡고 속삭였다. 나는 고장 난 목각 인형처럼 고개를 끄덕였다. 잘할게요, 잘할게요 하고 최면에 걸린 듯 그에게 약속의 말을 뱉었다. 그가 손을 놓고 내 엉덩이를 내려쳤다. 처음부터 손속을 두지 않은 강도였다. 힉, 하고 나는 소리를 질렀다.
“힉… 선물, 주신 것 안 받고. …반항해서 죄송해요.”
철썩.
“회사에서… 도망쳐서 죄송해요.”
철썩.
“열심히, 안 해서 죄송해요.”
철썩.
“한 시간 반도 못 참고… 풀어 달라고… 부탁드려서, 죄송해요.”
원민준이 엉덩이를 더 세게 내려쳤다. 히엑, 하고 얻어맞는 개 같은 소리를 내며 나는 목을 꺾었다. 그가 내 머리를 다시 잡아 콱 눌렀다. 엉덩이가 불타는 것 같았다. 혹시 터져서 피가 나는지도 몰랐다. 나는 히끅거리며 더 이상 참지 못하고 엉덩이를 맞을 때마다 윽, 윽, 하고 비명을 질렀다. 열 대쯤에 잘못을 비는 것도 잊고 박자를 놓치자 그는 더 거칠게 내 엉덩이를 내려쳤다. 그에게 이런 취급을 받은 건 처음이라, 나는 훌쩍이며 겨우 몸을 버티고 서 있었다.
“죄송해요, 죄송해요, 거절해서 죄송해요.”
철썩.
“주제를 몰라서 죄송해요.”
철썩.
“욕심을… 내서 죄송해요, 다 제 잘못이에요, 제 잘못이에요.”
스무 대쯤 맞았을까, 숫자를 세는 것도 잊었을 때 나는 탁자에 몸을 옹송그린 채 내가 뭐라고 하는지도 모르고 빌고 있었다. 조금만 더 그가 나를 몰아세웠다면 아마 태어나서 죄송해요, 라고까지 빌었을지도 모르겠다. 나는 패닉에 빠져 울고 있었다. 그가 잠시 매를 멈추고 새빨갛게 부푼 내 엉덩이를 쓰다듬었다. 그는 내가 정신병자라고 생각했을지도 몰랐다. 나는 훌쩍이며 그 차가운 손에 몸을 떨었다.
“어떻게 할까요, 우리 사이.”
원민준이 감미롭게 물었다. 네, 라고 대답하면 더 이상 괴롭히지 않을 것이다. 어쩌면 다시 다정하게 대해 주고, 무릎에 올려 안아 주고, 그렇게 또다시 애인처럼… 잘 대해 줄지도 몰랐다. 그러나 그가 내리친 매로 인해 되살아난 죄책감은 오히려 내 결심을 굳게 만들었다. 굴복할 수 없다는 뜻으로 나는 겨우 고개를 저었다.
원민준이 다시 매를 치켜들자 나는 맞기도 전에 힉, 하는 소리를 내며 더 울었다. 그에게 굴복하고 싶지는 않았지만 더 이상 맞을 기력은 없었다.
원민준이 한숨을 쉬며 매를 내려놓았다. 내 고집에 두 손 들었다는 듯. 그가 내 목을 테이블에 누르자 나는 뺨을 차가운 대리석 테이블에 비비며 눈물을 삼키려 노력했다. 내가 조금씩 진정하자 민준이 나를 일으켜 세웠다. 다리가 풀린 나는 휘청 넘어질 뻔했다. 허리를 감는 그의 손에 나는 멍하니 인형처럼 몸을 맡겼다. 그가 나를 안아 올려 다시 침실로 향했다.
“죄송해요….”
나는 그때까지 그의 가슴에 고개를 묻고 계속 사과하고 있었다. 죄송해요, 죄송해요, 하고. 최초의 패닉이었다.
나는 항상 내 존재가 짐이라고 생각했다. 부모님 없이 자란 남자 오메가의 성장기란 우울하기 그지없는 것이다. 차라리 베타 여자아이나 남자아이라면 자식처럼 키울 수라도 있지, 나는 대부분의 사람들에게 어떻게 다루어야 할지 모르는 불편한 짐이었다. 그래서 나는 항상 남의 눈치를 보며 자랐다. 누구에게도 미움받지 않는 것이 내가 할 수 있는 최선이라고 생각했다.
나는 한 번도 나를 좋아한 적이 없었고 누군가에게 유일한 사랑의 대상인 적도 없었다…. 내가 어떤 결핍이 있다는 건 알지만, 그래서 나는 아무것도 욕심내지 않으려 했다. 내가 무언가를 욕심내고 원하면 항상 나쁜 일이 생겼다.
나는 어른들에게 크게 혼나 본 적도 없었다. 착한 아이를 연기하며 그들의 눈치를 보는 어린아이는 혼내 봐야 저만 나쁜 사람이 되는 불편한 존재였으니 나는 훈육을 받아 본 적도 사랑을 받아 본 적도 없이 컸다. 나는 다 큰 어른이 되고 나서야 원민준이라는 존재에게 혼이 나거나 칭찬을 받고 있다. 나는 아직도 어린 시절에 갇혀 있는지도 모른다.
잠깐 멍해진 정신이 돌아왔을 때, 난 화끈하게 달아오른 엉덩이의 통증을 느꼈다. 내가 침대 위에 엎드려 있다는 것도…. 이어 엉덩이에 차가운 감촉이 얹어졌다. 축축한 젤 같은 것이 발라지고 있었다. 젤에서는 꽃향기 같은 좋은 냄새가 났다. 이어 민준의 큰 손이 내 엉덩이를 쓰다듬고 주무르는 것이 느껴졌다.
“흐으….”
부풀어 오른 엉덩이가 민준의 손에 마사지를 받고 있었다. 나는 허리를 떨었다. 원민준의 손이 움직일 때마다 아픔이 후련한 쾌감으로 바뀌고 있었다. 온몸의 근육이 한 번 수축되었다 풀렸다. 기분이, 이상한데 너무 좋아. 고통에 이어 온몸이 해방감 같은 것에 둘러싸인다. 이런 감정이 무엇인지 나도 몰라 약간 혼란스러웠지만 좋았다….
이어 민준의 손가락이 엉덩이 전체를 꾹꾹 누르다 민준의 페로몬을 맡으며 축축해진 구멍에 닿았다. 그의 몸 전체에서는 아직도 은은한 페로몬 냄새가 그득했고, 내 안에 고인 발정은 끈적한 것이 되어 망울져 흘렀다.
“질질 쌌네. 아픈 척해서 봐줬더니 너무 발정해서 그런 거였어?”
민준이 내 귓가에 대고 속삭이듯 말했다. 아픔은 아픔이었고 쾌감은 쾌감이었다. 나는 수치심에 바르르 떨면서도 구멍을 조였다 풀며 배 속이 오싹한 쾌감을 느꼈다.
“개년이, 고집은 세서.”
그가 내 귓가에 악마처럼 속삭였다. 나는 그 말에 어깨를 떨었다. 가슴이 아팠지만, 또 동시에 그의 냉대에 흥분했다. 정말로 내가 정말 변태가 된 것처럼 느껴졌다.
민준의 손가락이 구멍을 돌리듯 만지다 천천히 내 비부 속에 들어왔다. 그 굵은 손가락의 감촉에 나는 몸을 떨었다. 축축하고 뜨거워진 내 내부는 염치도 없이 그의 것을 빨아들였다. 살짝 뾰족한 손톱의 감촉마저 기분 좋게 느껴져서 나는 엉덩이를 조인다.
민준이 천천히 좀 더 냄새를 짙게 풀어내며 나를 일으켰다. 손가락의 감촉에 도취하여 허덕이던 나는 눈가를 가늘게 떨었다. 원민준이 내 상체를 힘주어 일으켜 무릎을 세운 채 앉게 하고 허리를 안았다.
그대로 다시 엉덩이에 삽입되는 손가락을 느꼈다. 민준이 허리에 두르고 있던 손을 내려 아직 홧홧한 엉덩이 살을 나머지 한 손으로 잡아 벌리자 달아오른 구멍 사이로 시원한 바람이 느껴졌다. 민준이 다시 손을 움직여 엉덩이 바로 위쪽을 잡는다.
“뒤돌아봐.”
나는 그의 말에 삐걱대며 뒤를 돌아보았다. 그가 가져다 놓은 전신 거울이 거기 있었다. 구멍이 송송 뚫린 패들로 얻어맞은 엉덩이는 예상대로 새빨갛게 부풀어 올라 있음은 물론, 거기다 패들의 구멍 자국들을 따라 부풀어 오르지 않은 곳들은 허옇게 떠 있었다. 희고 붉은 그 자국은 미묘하게 시선이 빨려들도록 그로테스크했고, 부푼 살이 기묘하게 선정적으로 느껴졌다.
“앗….”
그리고 내 비부 속을 출납 중인 민준의 손가락까지, 내 몸이라고 생각할 수 없을 정도로 야했다. 나는 억눌린 신음을 냈다. 믿을 수 없을 만큼 동물 같은 소리였다. 민준이 내게 속삭이듯 계속 말했다.
“야하네.”
나는 작게 고개를 끄덕였다. 한 번도 알파에게 진한 성적의 대상이 되어 본 경험이 없는 나였다. 내가 몇 개월 만에 ‘주인님’에 의해 이런 모습이 될 것이라곤 상상해 본 적도 없다. 이런 내 모습이 생소했다. 나는 거울 속에 비치는 부푼 내 둔부에서 눈을 떼지 못했다. 발갛게 부풀어 오른 내 엉덩이는 민준이 만든 작품이었다.
그가 내 어깨에 입술을 내렸다. 부드럽게 내 살을 더듬는 입술을 느끼며 나는 민준의 목에 팔을 감았다. 그가 동시에 손가락을 더욱 꾸욱 밀어 넣으며, 살짝 돌기처럼 튀어나온 그 부분을 건드리자 나는 큰 신음을 질렀다. 비록 제 몫을 못하는 오메가라고 해도 쾌락의 부위는 동등하다. 이렇게 그가 나를 만져 주면 온몸의 세포가 가벼운 전기 자극을 받듯이 진동한다.
“흐윽….”
나는 그의 어깨에 얼굴을 묻었다. 비집어 그쪽을 비비던 손가락이 하나 더 늘어나자 나는 그에게 온몸을 내맡기며 엉덩이를 떨었다. 뒤로 자꾸만 빠지려는 골반을 그가 큰 손바닥으로 꽉 잡고 당긴다. 축축한 소리가 방 안에 울렸다. 원민준의 손가락이 내 안을 드나들며 찌걱대는 소리를 냈다.
그 축축하고 음탕한 소리마저 내 귓바퀴를 괴롭혔다. 내 구멍 주변으로 오메가의 음탕한 애액이 흘러넘쳐 회음부까지 흐르는 것이 느껴졌다.
“어떻게 됐어요. 여기.”
“젖었… 어요….”
“왜 젖었어요?”
민준이 내 머리카락을 넘기며 사근사근하게 묻는다. 나는 도취되어 중얼거렸다.
“하고 싶어서요.”
“뭐를?”
몸 안이 쑤셔지고 싶어 골반까지 뻐근했다. 그러나 말하기 부끄러워 나는 잠시 망설이며 눈을 감았다. 그사이 그가 재촉하듯 민감한 부위 위에 얹힌 손가락을 긁듯이 쑤셨다.
“으응…!”
나는 민준의 어깨에 얼굴을 묻다가 천천히 그의 귀에 속삭였다.
“섹스요. 섹스하고 싶어요.”
그가 내 몸을 놓았다. 나는 침대에 누워 민준의 일어선 앞섶을 바라보았다. 커다란 그것이 바지를 밀어내며 팽창해 있었다. 입 안에 진득한 침이 돌았다. 달아오른 엉덩이의 알싸한 아픔조차 성욕으로 느껴졌다.
메마른 몸 안에 불이 놓인 듯 뜨거웠다. 오래도록 말라비틀어져 채워지지 못했던 내 욕망은 마른 장작에 붙은 불처럼 타올랐다. 그에게 당장 안기고 싶었다.
그때 그가 주머니를 뒤져 무언가를 꺼냈다. 톱날 모양의 구멍이 두 개 뚫린 그것은, 뫼비우스의 띠처럼 두 개의 원이 이어져 있었다. 민준이 내게 손짓한다. 두 손을 내밀라는 뜻이었다. 알아듣고도 나는 고개를 저었다.
“그건 싫어요.”
“손 내밀어요.”
나는 그의 고문이 끝나지 않았다는 것을 깨달았다. 나는 히익, 하고 몸을 떨었다. 나는 저 물건을 기억한다. 엄지 수갑이라고 불리는 그것은, 첫 정사 날 민준이 내게 채워 사용한 물건이었다. 첫 섹스의 트라우마가 몸을 덮쳤다.
그날 뺨을 얻어맞았던 감각, 나를 향으로 누르던 원민준의 위압감. 나는 첫 섹스에서도 느끼긴 했었다. 그러나 공포와 압박감이 더 컸던 날이었다. 가능하면 떠올리고 싶지 않았다.
내가 말을 듣지 않자 민준이 알파 냄새로 나를 강하게 눌렀다. 나는 꼴사납게 히끅대며, 그에게 양손을 내밀었다. 그는 내 양 엄지에 그것을 채웠다.
아주 작은 도구인데 나는 양손이 모인 채 꼼짝할 수 없어졌다. 섹스에 대해 나른한 기대감에 젖어 있던 몸이 딱딱하게 경직된 건 순간이었다. 민준이 내 배를 누르며 침대에 눕혔다. 민준이 내 구멍에 이미 빳빳하게 일어선 커다란 성기를 가져다 댔다.
평소라면 기뻐하며 허리를 떨었을 나는 축 늘어져 그의 다음 동작을 기다릴 뿐이었다. 나는 축축하게 젖은 눈으로 그를 올려다보았다. 나는 가능한 한 얌전하게 행동했다. 그를 더 자극하지 않기 위해서였다. 그러나 젖은 내 눈에는 어쩔 수 없는 원망이 서렸다.
그의 성기가 단번에 나를 꿰뚫고 들어왔다. 고통과 충족감에 나는 입 안을 깨물었다. 아까 맞다가 볼 안쪽을 깨물었는지 쇠 맛이 느껴졌다.
“흐윽….”
눈을 깜빡이자 무거운 물방울이 눈꼬리를 타고 흘렀다. 이어 움직이기 시작한 민준의 거친 동작에 나는 쾌감보다 큰 고통을 느끼며 훌쩍대는 소리를 낼 뿐이었다. 그는 평소처럼 다정하지 않았다. 또 과한 스팽킹으로 부풀어 오른 엉덩이에서는 민준의 치골에 부딪힐 때마다 쓰라린 고통이 느껴졌다.
엄지 수갑에 구속당했다는 심적인 부담감에 나는 섹스에 집중하지 못했다. 눈을 감고 눈물만 뚝뚝 흘리는 나를 상대로 할 맛이 떨어진 건지, 그가 움직이면서 욕지거리를 뱉었다. 민준은 각도를 바꾸어 좀 더 부드럽게 추삽질을 했다. 나는 이마에 식은땀이 밴 채 민준을 올려다보았다. 거부감에 계속 오므라드는 내 허벅지를 그가 강제로 벌려 내자 내가 헐떡이며 입을 열었다.
“싫어요.”
원민준이 으득, 하고 이를 가는 게 느껴졌다. 그를 화나게 하고 있다는 걸 알고 있었지만, 눈물이 멈추지 않았다.
“흐윽… 내가, 싫어하는 일은, 안 한다고…. 아파요….”
나의 할딱이는 소리에 민준이 진정하려 노력하며 성기를 빼냈다. 아직 우뚝 선 그것은 나의 애액으로 젖어 번들거리고 있었다. 민준은 나를 엎드리게 했다. 그리고 미간을 찌푸린 채 내 허벅지를 한데 모았다. 엉덩이 아래, 오므린 허벅지 안쪽, 그는 그 사이에 성기를 밀어 넣었다.
그리고 섹스를 하듯 마찰시키며 성기를 문질렀다. 살이 얇은 내 허벅지에 축축한 마찰음이 울렸다. 쓰라렸지만 삽입보다는 나았다.
“하아….”
그가 불만족스러운 사정을 마치며 그르렁거리는 소리를 냈다. 뜨거운 정액이 내 꼭 조여진 허벅지 사이에 흩뿌려졌다. 나는 그제야 눈물을 멈췄다. 눈을 꽉 감았다 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