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6화 (6/20)

민준이 내 허벅지 사이에 사정을 마치고 나서야 나는 몸에 힘을 풀었다. 허벅지 안쪽에 뿌려진 정액이 뜨거웠다. 그제야 눈물을 멈춘 나는 한숨을 쉬었다. 목구멍 안쪽이 아팠다.

내가 민준의 자존심을 상하게 했다는 건 알았다. 지금 이 순간 빌어야 한다는 것도 알았다. 그러나 나는 입술을 꾹 다문 채 그를 올려다보았다. 그의 이상적으로 아름다운 새하얀 얼굴도 땀으로 젖어 있었다. 민준이 나를 알 수 없는 눈빛으로 내려다보다 엄지 수갑을 풀어 주었다.

그가 옷을 추슬렀다. 민준은 한참 말이 없었다. 온몸에 밧줄 자국이 아로새겨진 채, 허벅지 안쪽 살이 발갛게 부풀고 매 자국이 선연한 나의 몰골. 민준은 복잡한 생각이 드는 듯했다. 그가 나를 내려다보았다. 민준의 새하얀 얼굴은 여전히 천사 같았다. 인간을 심판하는 종류의 천사 말이다.

그가 손을 뻗어 엄지 수갑을 저 멀리 던져 버렸다. 바닥에 철컹, 하고 금속성 물체가 내팽개쳐지는 소리가 났다.

“잠깐 혼자 있게 해 줄까요?”

나는 작게 고개를 저었다. 그의 다음 말을 기다리며 나는 침대 위에서 몸을 웅크렸다. 긴장된 근육은 조금씩 풀리고 있었지만, 심장은 아직 쿵쾅거린다.

“아팠어요?”

“네.”

아직도 엉덩이가 후끈거려 나는 작게 대답했다. 분위기는 한바탕 개싸움을 한 연인들처럼 비참했지만 우린 아무 사이도 아니었다. 그걸 깨달은 순간, 물밀 듯 서러움이 몰려왔다.

“미안해요, 내가 잘못했습니다. 내가 감정적으로 행동했습니다.”

나는 울음을 꾹 누르고 고개를 끄덕였다. 그가 바로 사과할 줄은 몰랐다.

“약속대로 서윤 씨가 싫어하는 건 안 하겠습니다.”

“네….”

“아무것도 강요하지 않을 테니 그냥 지금처럼만 해 주세요.”

나는 말없이 그저 고개를 끄덕일 뿐이었다. 다 큰 남자가 나처럼 꼴사납게 구는데 경멸하지 않는 그가 고마웠다. 그래서 나도 민준이 덜 원망스러워졌다. 민준이 내 얼굴을 살피며 머리에 손을 뻗어 가만히 만졌다. 나는 숨죽인 채 그 손길을 받았다.

“여전히 아픔엔 약한 것 같네요. 이제 심하게는 아프게 안 할게요.”

“네.”

민준이 내 손을 끌어당기자 나는 축 늘어진 몸을 움직여 다가갔다. 그가 내 입술에 키스하자 나는 눈을 감고 입을 열었다. 질척한 키스가 이어지며 나는 안도감을 느꼈다. 연희의 얼굴이 흐릿하게 떠올랐다가 사라져 갔다.

***

“입 벌려요.”

나는 작게 입을 벌렸다. 맞을 때 잘못 깨물어 볼 안쪽이 터졌다. 민준이 약을 묻힌 면봉으로 살살 쓸어 주었다. 나는 아래로 내려진 그의 촘촘한 속눈썹을 구경했다. 빽빽한 민준의 속눈썹은 깃털이 내려앉은 듯 우아한 모양새였다. 나도 모르게 아픈 것도 잊고 잘생겼다, 라고 생각하며 멍하니 그를 바라보았다.

약을 다 바르고도 나는 입을 앙 벌린 채 있었고, 그는 내 턱을 요리조리 돌리며 입 안을 관찰했다. 어디 더 상처가 난 곳은 없는지 확인해 보는 모양이었다. 내 얼굴을 관찰하는 그의 새하얀 얼굴을 나도 멀거니 바라보았다. 원민준이 고개를 들어 내 눈을 바라보았다. 나는 갑자기 부끄러워져 쳐다보지 않은 척 아래로 시선을 내렸다.

“다 됐어요.”

나는 입을 다물고 고개를 끄덕였다. 광란의 시간이 끝나고 평온한 침묵이 찾아왔다. 다소 지치고 무거운 침묵이었다. 하도 울고 시달려 지친 내 몸에는 탈력감만 남아 있었다. 그래서인지 갑자기 기분이 나른해졌다.

집 구석구석을 호기심 넘치는 시선으로 돌아다니던 고양이가 침대 위로 뛰어 올라와 내 다리 사이에 자리 잡았다. 나는 그냥 작게 웃어 버렸다. 아까는 어디가 있었는지, 내 기분이 나아지자 다가오는 걸 보면 눈치 빠른 고양이다.

민준은 침대 위에 다리를 뻗고 있는 내 옆에 앉아 있었다. 민준이 손가락을 내밀자 하얀 고양이가 동그란 머리를 비틀며 민준의 손에 머리를 비볐다. 쫑긋 섰던 귀를 뒤로 젖히고 그르렁대는 모습이 귀여웠다. 나는 희미하게 웃었다.

“이름이 뭐예요?”

“거북이요.”

“진짜요…?”

“여동생이 이름 짓는 센스가 좀 그래요.”

이렇게 귀여운데 이름이 거북이라니. 대단한 센스의 여동생이었다. 어떤 여동생일지 잘 상상이 가지 않았다. 민준의 여동생이라면 상당한 미인일 것 같은데. 듣기로는 여동생 하나인 장남이라던가.

그러고 보니 민준의 가족들은 어떤 사람들일까, 하는 호기심이 생겼다. 이런 아들을 낳고 길렀다면 보통 부모는 아닐 것이다.

아마 굉장히 부유한 사람들일 거고… 우리나라에서도 내로라하는 부자들일 테니, 고압적인 사람들일 수도 있다…. 원민준은 어떤 성장 환경을 가졌기에 이런 특이한… 성 취향을 가지게 된 건지도 궁금해진다.

“여동생은 몇 살이에요?”

“대학생이요. 신입생입니다.”

“친해요…?”

“친하긴 한데 여동생도 알파라, 에고가 강하죠. 우리 가족들은 대체로 그런 편이에요.”

의외로 여동생과 좀 터울이 있었다. 여동생이 우성인지 아닌지는 모르겠지만, 여동생도 알파라면 집안이 알파 가계인 듯했다. 알파와 오메가의 세계에서 알파 가계라는 것은 신화적인 위치를 가진다. 이런 말을 하는 것도 우습지만, 원민준은 진짜 로열 블러드였다.

알파와 오메가의 세계에는 생물학적인 우열이 있다. 민준과 같은 우성 알파가 열성 오메가인 나를 섹스 파트너로 데리고 있는 건 드문 일이다. 우성 오메가가 그에게 더 큰 성적 만족을 줄 수 있을 텐데.

나는 조심스럽게 손을 뻗어 고양이의 귀 사이를 긁었다. 보드라운 솜털의 감촉이 기분이 좋았다. 고양이가 소리를 내며 조그만 머리를 내 손가락에 붙여 오자 마음이 녹는 것 같았다.

지친 마음이 점차 안정되며 몸이 나른해진다. 원민준은 내가 고양이를 좋아한다는 이유로 여동생의 고양이를 데려와 잠깐 맡고 있다고 했었다.

“저기, 이사님.... 고양이 정말 저 때문에 데려온 거예요?”

하얀 고양이를 돌보는 그의 모습이 안 어울릴 것 같은데 묘하게 어울렸다.

“저는 동물 별로 안 좋아합니다.”

“…평소에 밥은 잘 주는 거죠?”

“저는 제 지붕 아래 들어온 것들은 다 잘 돌봅니다.”

그 말을 하며 그는 내 얼굴을 빤히 살폈다. 민준이 사람이든 동물이든 잘 돌본다는 건 익히 알고 있는 바였다. 그는 어떤 경우엔 꽤 다정한 사람이었으니까. 괜히 붉어진 귀를 쓸어내렸다.

내가 진짜 외롭긴 한가 보다. 동물이라도 키울까.

“이사님 소리는 그만하죠. 사내 성추행하는 것 같아서 기분이 좀 그래요.”

“…사내 성추행은 싫어요?”

그라면 왠지 사내 성추행 플레이 같은 걸 좋아할 줄 알았는데. 내 말에 민준이 미묘하게 짜증 난다는 표정을 지었다.

“저는 아무나 성추행하고 싶어 하는 변태가 아닙니다. 그쪽이 상대라면 몰라도.”

나는 귀가 더 붉어지는 것을 느꼈다. 귀를 문지르는 척하며 귀를 가렸다.

“그럼 뭐라고 부를까요.”

“그걸 질문이라고 합니까?”

“…매일 주인님이라고 부를 수 없잖아요.”

“이름은 뒀다 뭐 해요.”

“민준 씨라고요?”

“네, 서윤 씨.”

그냥 이름을 부르는 일일 뿐인데 민망했다. 계속 심장이 두근거린다.

“제가 이름 부르는 거 싫어하시는 줄 알았어요.”

“싫지 않아요. 반대라면 모를까. 그렇지만 밝은 척하면서 친한 척 이름 부르는 건 거슬립니다. 가식적인 사람 싫어해요.”

이제야 원민준이 왜 그렇게 굴었는지 조금 알 것 같았다. 연희와 셋이 있을 때 원민준은 내가 친구인 양 친한 척할 때 불쾌한 기색을 보인 적도 있다. 그가 나를 거슬려한 것도 조금은 이해가 갔다. 가식을 잘 꿰뚫어 보는 예민한 성격의 원민준과 좋은 사람인 척 병적으로 자신을 가장하는 나는 상극의 궁합일 터였다.

그래서 거슬려서 건드리고 싶었다… 라는 거면 이해 못 할 감정은 아니다. 그렇지만 몇 번 건드렸으면 되었지, 왜 나 같은 상대를 계속 만나고 싶어 하는지 모르겠다. 왜 굳이 관계를 정의하여 옆에 두고 싶어 하는 걸까.

“주인님… 이 공부한다고 하셨잖아요. 저 묶고, 때리는 거요. SM… 이라고 하는 거 맞죠?”

“맞습니다.”

민준의 대답이 너무 평온하고 우아해서 나는 내가 한 질문이 고상한 질문이라고 스스로 착각할 뻔했다. 나는 그의 눈치를 살폈다.

“그럼 더… 잘하는 사람도 있지 않아요? 저한테 하시는 이런 일들이요.”

그는 머리가 나쁜 사람을 보는 눈으로 나를 보았다. 실제로도 그렇게 생각하는 것 같았다.

“서윤 씨가 엄살도 심하고 가르친 것도 금방 잊고, 교육시킬 것들이 정말 많긴 합니다만, 그렇다고 해도 저도 기호가 있습니다. 제 취향인 게 잘하고 못하는 것보다 더 중요한 건 당연하죠. 아니면 서윤 씨는 그쪽을 묶고 자 주는 알파라면 아무나 다 좋아할 겁니까?”

“아니요! 그건 아니에요.”

마치 그건 ‘당신이 상대라서 좋아요’라는 것 같아 귀가 더 타오를 것만 같았다. 처음에 시작한 것도 그에게 약점을 잡혀 시작한 관계니까. 나에게는 선택지가 없었다.

“서연희에게 이 관계를 들키면 모두 제 탓으로 돌리고 도망치고 싶어 하는 건 알겠습니다. 그리고 그쪽이 정말 고통만 느꼈다면 저도 계속하자는 말은 안 했을 겁니다. 서윤 씨는 특출 난 장점이나 성 기술이 있는 것도 아니니까요. 항상 아파만 하면 금방 질렸겠지요.”

“연희에게 들키고 싶지 않아요.”

그건 생각만 해도 머릿속이 새하얘졌다. 소꿉친구인 탓에 우리는 대부분의 인간관계가 교집합으로 묶여 있다. 그들은 감히 내가 서연희같이 아름다운 여자의 것을 탐낸 걸 용서하지 않을 것이었다. 주변 사람들에게 비난받는 건 생각만 해도 무서웠다. 나는 정말 기댈 곳도, 감싸 줄 누군가도 없기 때문이다. 그렇기에 주제를 아는 게 내가 무탈하게 살아가는 방법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의 이 지속적인 관계에는 어느 정도 합의가 있었다. 내가 원한 부분이 없었다는 말은 거짓말이다.

“우리 관계를 들킨다면… 물론 생각도 하고 싶지 않지만, 그러면 저도 좋아서 한 거라고… 말할 거예요. 그렇게 비겁한 사람은 아닙니다. 강간당하고 있었다고 떠들고 다닐 생각은 없어요.”

물론 처음에 민준에게 당할 때는 싫고 무서웠다…. 그러나 민준의 말대로 나는 점차 이 관계에 몰입하게 되었다. 나도 책임이 생겼다고 할 수밖에 없다.

민준이 내 말에 희미하게 웃으며 내 눈을 바라봤다. 숨만 쉬어도 잘생긴 그는 미소를 지으면 황홀할 정도였다.

“오늘 서윤 씨가 한 말 중 유일하게 마음에 드는군요.”

“하나라도 마음에 들어서 다행이네요.”

나는 약간 쓰게 대답했다. 그 대답이 재미있었는지 민준은 계속 미소 지었다.

“저녁 먹어요. 뭐 먹고 싶습니까.”

“…라면이요.”

나는 꾸벅꾸벅 졸기 시작한 고양이를 어루만지며 조심스럽게 대답했다. 갑자기 굉장히 허기가 졌다. 방금 만든 음식이 먹고 싶었지만 어려운 걸 부탁하기도 뭐했다. 여차하면 라면은 내가 끓여 먹으면 되는 거니까. 설마 부엌 정도는 빌려주겠지.

“끓여 줄게요. 아마 어디 있을 겁니다. 가정부가 사 둔 거요.”

“직접이요?”

일개 하찮은 평사원이 원민준 이사가 끓여 준 라면을… 진짜 해 주겠다고 하자 나는 소스라치게 놀랐다.

“라면 정도는 끓일 줄 압니다.”

그리고 민준이 입혀 준 가운을 입은 채, 나는 식탁 의자에 앉아 그가 요리하는 뒷모습을 구경했다. 그가 나에게 잘해 주는 건 여러모로 위험했다. 아주 여러모로… 그는 따뜻한 라면 두 그릇을 끓여 냈다. 파와 달걀이 든 라면은 허기질 때 먹는 것인 만큼 맛있었다.

나란히 원 이사와 앉아 라면을 먹는 날이라니, 다시 태어나도 두 번은 없을 것 같은 날이었다. 원민준은 주로 내가 먹는 모습을 구경하며 조금씩 젓가락질을 했다. 민준이 속으로 ‘태어나 처음 본 서민의 라면 먹기 실사 체험’ 등을 생각하고 있는 건 아니길 바랐다.

“빼빼 말라서 먹을 땐 의외로 잘 먹네요.”

“맛있어요.”

그는 의외로 자상하다. 원민준은 어쩌면 좋은 아빠가 되지 않을까. 연희와 민준을 닮은 천사 같은 아이들을 상상하니 나도 모르게 나사가 빠지는 것 같았다. 정말 예쁜 서러브레드(Thoroughbred) 키드들일 것이다. 그와 연희를 닮았다면 어떤 쪽 유전자라도 지뢰나 꽝은 없는 루트라는 느낌이다.

가족,

나는 결코 가질 수 없는 것.

태어나서 처음으로 속이 아플 정도로 연희가 부러웠다. 나는 뭐라고 더 말하는 대신 그릇에 코를 박고 계속 열심히 식사하는 척했다.

원민준과 보내는 일요일 저녁은 거품 목욕으로 이어졌다. 민준은 밥을 다 먹고 나서 욕조에 물을 받아 내 몸을 직접 씻겨 주었다. 거북이라는 이름의 새하얀 고양이는 물에 빠진 나를 보고 큰일이라도 난 양 문간에 서서 웅냥 울어 댔다. 그걸 구경하며 그만 웃어 버렸다.

결국 목욕하다가 한 번 했다. 그거로도 부족해서 침대에서 또….

녹초가 되어 새벽에 집으로 돌아와 본 거울 속의 내 몸에는 밧줄 자국이 선연했다. 아직도 엉덩이가 욱신댄다. 그것이 지난밤의 기억을 더 또렷이 살려 주었다. 무얼 입을까 하다 지난주 토요일 민준이 사 준 옷을 떠올렸다. 쇼핑백의 옷을 꺼내 대충 껴입고 출근했다. 슬슬 더워지는 계절인데 이래서야 계속 긴팔에 긴바지만 입어야 할지도 모르겠다. 벌써부터 눈꺼풀이 무거운 월요일이었다.

“으….”

책상에 앉는데 원민준에게 얻어맞아 아직 부기가 빠지지 않은 엉덩이가 찌르르 아프다. 몇 번 자리를 고쳐 앉았다. 얼얼한 아픔에 익숙해지는 덴 시간이 걸렸다.

-서윤 씨, 시간 되면 옥상에서 담배 한 대 피울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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