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원민준의 손에 이끌려 집 근처의 낡은 모텔에 갔다. 오래된 카운터에서 졸고 있던 아주머니가 눈을 동그랗게 뜨고 민준의 카드를 받아 계산했다. 계산하는 내내 그녀는 민준의 얼굴을 훔쳐보고 있었다. 아마 이 모텔 포스기에 블랙카드가 긁힌 적은 처음일 것이다.
체크인해서 들어간 방 안은 상상한 것보다 훨씬 낡았다. 도무지 민준과는 어울리지 않는 공간이었다. 보통 이런 여관은 싸구려 단란 주점의 여종업원과 2차를 나가는 곳이라고 어디서 주워들은 기억이 있었다.
방 안에 있는 낡은 콘돔 자판기와 붉은 조명은 리모델링이란 단어를 모르는 장소 같았다. 거기다 말끔히 청소되어 있는데도, 낡은 가구들 때문에 룸은 지저분해 보였다. 그 상태만으로 이곳의 역사를 짐작하게 했다.
우리가 수준 높은 대화를 할 것은 아니니 딱히 더 좋은 장소가 필요한 건 아니긴 했다. 나는 민준이 앉으라고 할 때까지 서서 물끄러미 민준을 보았다. 그는 방을 보고도 당황하지 않고 침대에 걸터앉아 나를 불렀다. 나는 그가 부르는 대로 그의 옆에 앉았다.
“서연희가 문제라고요.”
그게 아니라 문제는 우리 둘의 관계인데. 나는 차마 그에게 말하지 못했다. 민준은 눈치를 보는 나를 아랑곳하지 않고 담배를 꺼내서 입에 물었다. 그는 내가 여태 본 것 중에 가장 많은 양의 담배를 피우고 있었다.
“서연희를 정리하겠습니다.”
“네…?”
민준이 담배 한 대를 끝내고 가볍게 내뱉었을 때 나는 내가 들은 말 내용을 의심했다.
“서연희가 문제라서 못 만나겠다면서요. 어차피 평생 숨기는 건 불가능한 일이니, 이참에 모두 털어놓고 정리하죠. 서연희와는 헤어지겠습니다. 그럼 문제가 해결되겠지요.”
이 사람은 어떻게 이렇게 쉽게 말을 내뱉을 수 있지? 결혼까지 하기로 한 거 아니었나?
“하, 하지만 연희랑 결혼하겠다고….”
“그런 이야기가 나오긴 했었습니다만, 서로 열렬하게 사랑해서 결혼할 사이도 아니지 않습니까. 그리고 당신 논리대로라면 우리 관계는 연희에게 상처를 주는 관계니 연희를 위해서라도 정리하는 편이 낫지 않습니까. 서연희만 한 여자는 또 찾으면 됩니다.”
“어떻게 그렇게 말을 쉽게 해요.”
“어려울 게 있습니까.”
내가 지옥이라고 생각할 정도로 괴로워하는 일들이 이 사람에게는 어쩌면 이렇게 쉽지. 민준에게는 서연희를 갈아 치우면 되겠네, 이 정도의 일인 것이다.
그리고 비슷한 수준의 다른 여자를 찾아서, 또다시 결혼을 준비하고. 나는 그가 질릴 때까지 붙잡혀 있고, 그런 그림을 원하는 건가?
“연희를 좋아하셨잖아요….”
“네, 나쁘지 않은 여자니까요.”
가슴이 지끈 아팠다. 이렇게 사람을 쉽게 끊어 낼 수 있는 사람이면 언젠간 나를 끊어 낼 땐 어떨까. 그땐 잔인한 정도가 아니리라. 한편으론 이런 생각이 들어 가슴이 서늘해졌다.
“이해가 안 돼요”
“저도 그쪽이 이해가 쉽지 않습니다, 서윤 씨는 상황을 복잡하게 만드는 재주가 있어요.”
왜 아까부터 내가 비난당해야 하는 건지, 손발이 차가워지도록 억울했다. 나만 참으면 될 상황인데 그러지 못한다는 힐난 같았다.
“연희에게 다 말할 거예요, 정말…?”
“네. 미리 말했지만, 그때 발뺌할 생각은 그만두세요. 우리 관계에 대한 증거도 많잖아요?”
순간 내 머릿속에 주고받은 문자 메시지나 통화 내역, 그가 찍은 내 나체 사진들이 떠올랐다. 이 사람이라면 통화 내용도 녹음했을지도 모른다.
“연희에게 말하는 것만은 그만두세요… 제발요….”
“말하지 않고 헤어져도 우리 둘이 관계를 지속하면 언젠가는 들킬 겁니다. 눈 가리고 아웅이에요, 아니면. 계속 연희에게 거짓말할 겁니까? 아니면 연극이라도 해 줄까요? 일단 연희와 헤어지고 우연히 그쪽이랑 길에서 마주쳐서 관계가 시작되었다, 뭐 이런 시나리오라도 짜 줄까요. 그쪽이 그런 거짓말을 할 주변머리는 됩니까?”
“자신 없어요. 그리고 거짓말하고 싶지 않아요.”
나는 금방 수세에 몰렸다. 그에게 또다시 협박 비슷한 것을 당하고 있다고 깨닫는다. 내가 연희에게 들키는 것을 가장 무서워한다는 것을 그는 정확히 안다. 숨이 턱 막힌다.
“그렇지만 들키면 연희와는….”
생각만 해도 눈물이 핑 돌았다. 나는 또 세상에 혼자 남겨지게 되는 것이다. 내가 알파나 뛰어난 재능의 베타라면 주변 사람들은 한두 번의 실수는 용납할 것이다. 그러나 나는 오메가였다. 오메가인 내가 남자 문제를 일으키면 ‘남들과는 다르게 멀쩡한 오메가’에서 ‘역시 그런 오메가’가 되는 것은 순식간이다. 민준이 혀를 찼다. 나를 매우 한심하다는 듯 쳐다본다.
“울지 말아요.”
“…….”
“그렇게 서연희가 좋아요?”
“…아마 이해 못 하시겠지만… 저는 어렸을 때부터 계속 혼자라서 절 챙겨 주는 사람이 몇 명 없었습니다. 저는… 제게 호의를 베풀어 주고, 제가 좋아하는 사람들 인연 하나하나가 정말 중요해요.”
태어날 때부터 모든 걸 가지고 태어나 7, 8살 때부터 주식 증여를 받고, 좋은 공간에서 훌륭한 영양 상태와 운동으로 다져진 그였다. 나와는 차원이 다른 배경과 몸과, 분위기를 가진 민준이다. 그런 그로서는 주변 사람에 대한 내 애착을 이해하기 힘들 것이다.
나는 민준의 옷깃을 쥐었다.
“비밀 지켜 주세요. 제발요…. 연희와도, 이런 식으로는 헤어지지는 말아 주세요. 연희가 아직 이사님을 좋아하잖아요. 결혼하자는 말까지 들어 놓고 하루아침에 차이면 상처받을 거예요.”
내 말 때문에, 나 때문에 연희가 남자 친구에게 차이게 만들 순 없었다.
민준이 어이가 없다는 듯 코웃음을 치더니 내 턱을 들어 올렸다. 연희가 나 때문에 민준에게 상처받으면 나는 견딜 수 없을 것이었다. 생각만 해도 심장이 아팠다. 거기다 나와의 관계까지 밝혀지면 어떨까. 믿는 도끼에 발등 찍히는 격일 테니 크게 상처받을 것이 더욱 자명했다.
“장난해요, 나랑? 지금 나한테 뭘 요구하고 있는 줄은 알아요? 내가 그쪽의 알량한 감정 때문에 계속 이렇게 지내야 합니까?”
“부탁드립니다.”
어느새 상황은 돌변해서 내가 그에게 매달리는 상황이 되어 있었다. 민준이 나를 순순히 놔주지 않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은 했었다. 우성 알파들은 탐욕스러우니까.
연희와 나를 선택지에 올리고 바로 연희를 쳐내 버리리라 생각해 본 적은 없었다. 이건 마치 내가 민준과 연희를 헤어지도록… 그렇게 몰고 간 것 같지 않은가. 나는 정말 그의 세컨드 자리 따위 원한 적 없었다. 그가 성욕이나 계속 채우자고 연희를 쳐낼 거라곤 예상도 해 본 적 없다.
“아까는 연희 때문에 못 만나겠다고 하다가 지금은 연희가 우리 관계를 알까 봐 헤어지지 말아 달라니, 혹시 성격 이상해요? 지금 나 가지고 장난칩니까, 이서윤 씨.”
“그게 아니라….”
나는 민준이 몰아붙이자 금세 머리가 새하얗게 변했다. 하지만 나는 그의 입을 막기 위해선 뭐든지 할 수 있었다. 연희에게 내 치부를 들키고 싶지 않았다.
“제대로 앉아 봐요.”
나는 창백하게 질린 채 그의 앞에 내려가 무릎을 꿇었다. 상황은 다시 원점으로 돌아왔다. 내가 그의 앞에 무릎 꿇고 앉은 자세. 내가 그에게 약점이 잡힌 채 수그린 상황. 그가 나를 내려다보며 추궁을 시작했다.
“내가 우스워요?”
“아니요.”
“내가 부끄러워요?”
“아니요.”
“내가 그쪽 정부입니까? 그쪽이 뭔데 숨기라 마라 하며 나보고 정부 노릇까지 하라는 거예요. 돌겠네, 서윤 씨 사람 화나게 하는 재주가 있습니다.”
“죄, 죄송해요.”
이번에야말로 나는 잘못한 것이 없다는 생각이 무색하게 나는 바로 방어적인 자세를 취했다. 나도 모르게 그에게 사과했다. 내 사과를 듣고, 민준은 관자놀이를 꾹꾹 눌렀다. 그의 발치에서 나는 눈치를 보고 있었다.
“시키는 대로 뭐든지 할게요. 연희에게는 비밀로 해 주세요.”
“…뭐든지 한다고요?”
“네, 뭐든지….”
나는 원민준이 즐겨하는 섹스 플레이를 생각하며 고개를 끄덕였다. 묶이거나 맞는 게 무섭지 않은 것은 아니지만, 이미 익숙했다. 나는 이런 플레이가 꽤 체질인 것 같았다. 어느 정도는 즐기는 부분도 있었다.
계속 그런 밤놀이 상대가 되어 달라는 요구를 받는다고 해도 어쩔 수 없었다. 나는 연희에게 모든 사실을 알리겠다는 말을 듣자마자 이성을 잃었다.
민준이 다시 담배를 입에 물었다. 그가 담배를 반도 피우지 않은 채 비벼 끄더니 냉정하게 나를 내려다보며 입을 열었다. 뱃속이 차가워질 만큼 무기물을 보는 시선이었다.
“서면으로 남길 수 있어요?”
“…네? 네….”
갑자기 서면이라니? 각서라도 쓰게 할 생각인가…? 그러나 사진까지 찍힌 마당에 뭐든지 하겠다는 약속 따위 못 할 건 없었다. 나는 멍하니 고개를 끄덕였다.
“알겠습니다, 변호사를 통해 적절한 내용을 보내죠.”
“변호사가 작성해야 할 내용인가요?
법적인 효력이 있는 서류라도 작성할 생각인가? 나도 법적인 서류를 함부로 만들면 안 된다는 것 정도는 알았다.
“그럼 뭐 손가락 도장 찍고 손바닥 복사라도 할 줄 알았어요? 싫다면 그만두세요.”
“아, 아니에요. 할게요.”
나는 황급히 고개를 저으며, 이번에도 내게 불리한 선택지에 발을 들이고 말았다. 그리고 그것이 초래할 결과는 상상도 하지 못한 채.
“연희와는 어떻게 할지 잠깐 지켜보도록 하죠.”
천하의 서연희가 나 때문에 W가 입성을 제지당할 줄이야. 연희는 크게 될 것이라고 어른들이 늘 말했었다. 나는 그녀의 발목을 잡기를 원하지 않는다.
그렇지만 연희의 행복을 위해서라면 민준과 연희는 헤어지는 쪽이 나은가? 연희나 민준이나 결혼이나 연애에 대한 가치관이 나와는 너무 달라서 나는 어떻게 해야 할지 몰랐다.
점점 이 이상한 상황을 알 수 없게 되어 나는 복잡한 심경을 느끼며 입술만 깨물었다. 내 CPU가 굴러가는 소리를 들은 것처럼, 민준이 한심하다는 듯 내 쪽으로 고개를 기울였다.
“서윤 씨.”
“네, 네.”
나는 이름을 불린 것뿐인데 놀라 고개를 들었다.
“요새 많이 건방져졌네요. 나한테 서연희랑 헤어지라 마라 요구도 할 줄 알고.”
“저….”
“지금 이서윤 씨가 서연희 걱정하고 있을 군번인가요.”
“…….”
“지금 뭐가 제일 중요해요?”
나는 민준의 언짢아 보이는 얼굴을 바라보았다. 정육점 진열창 같은 싸구려 모텔방 조명 아래서도 그의 모습은 빛났다. 여전히 비현실적일 정도로 잘생긴 얼굴이었다.
“제가 잘못한 것들이요….”
“잘못한 게 많지요. 매주 갱신되네요. 잘못했으면 뭘 해야 해요?”
내게 있어 잘못이라는 건 뚜렷한 죄목이 있는 게 아니다. 그냥 원민준의 기분을 상하게 하면 그게 잘못인 것이다. 언제부터 그렇게 되었는지 모르겠다. 잘못을 하면, 잘못을 고백하고, 벌을 받고, 사과하고, 그다음에 칭찬을 받고.
외울 정도로 익숙해진 루틴이었다. 그리고 이제는 흥분할 만큼 몸에 익은 루틴이기도 했다.
“벌을 받거나… 사과를 해야 해요.”
나는 그의 눈치를 보며 대답했다. 혼란스러운 상황에 대해 생각을 하느라, 그의 기분을 살피는 걸 잊었다. 그는 매우 불쾌한 표정을 짓고 있었다. 벌써 새벽 한중간인데, 지금부터 체벌이라도 시작하는 걸까. 갑자기 내일 출근이라는 매우 현실적인 걱정이 떠올랐다. 상황과는 어울리지 않는 걱정이었다.
그가 가만히 손짓으로 나를 불렀다. 나는 여전히 주눅이 들어 무릎걸음으로 그에게 다가갔다. 나는 민준의 다리 사이에서 그를 올려다보았다.
민준의 손이 내 머리를 살짝 눌렀다. 민준이 부드럽게 말했다.
“사과해야죠.”
“네, 사과할게요….”
“그럼 말해 봐요.”
그가 내게 작게 뭐라고 속삭인다. 나는 우물쭈물하다가 그가 시킨 대로 대답했다. 귀가 발갛게 달아올랐다.
“죄송합니다, 사과의 뜻으로 기분 좋게 해 드릴게요.”
민준이 내 말을 듣더니 숨을 들이켠다. 그는 내게 이런 말을 시키는 일이 좋은 모양이다. 그가 내 고개를 바지 앞섶에 처박았다. 그의 기분은 알 수가 없다. 어떻게 이 상황이 성적인 흐름으로 연결되지…? 어쨌든 이제 와 부끄러울 것도 없었다.
입으로 그를 즐겁게 해 주는 것 정도는 어려운 일이 아니었다. 물론, 내 혀가 아직 능숙한 건 아니지만….
“못해도 열심히 하세요. 재능이 없으니 열심히 해야죠.”
나는 빨개진 귀를 하고 끄덕였다.
“두 손을 뒤로 돌려 맞잡아요. 끝날 때까지 떼면 안 됩니다.”
그는 나를 묶지는 않았지만 그런 명령을 내렸다. 나는 시키는 대로 두 손을 뒤로 돌려 깍지 껴 맞잡았다. 민준이 바지 지퍼를 내렸다. 나는 그대로 고개를 숙여 성기를 서투르게 입에 물었다.
원민준을 만나기 전에는 성 경험이 없던 나였다. 갑자기 우성 알파와 몇 번 성관계를 하게 되었다고 해도 없던 스킬이 생길 리도 만무하다. 물론 입으로 하는 것도 아직 많이 서툴렀다…. 입 안에 살의 짠맛이 느껴졌다. 아직 말랑한 살덩이를 입을 벌려 한 번 머금었다가 빨고 살짝 놓는다.
나는 아직 발기하지 않은 그의 메마른 성기를 혀를 내밀어 삭삭 핥았다. 조금 성기에 힘이 들어갔다. 언제 봐도 버거운 사이즈다. 저런 게 내 몸 안에 몇 번이나 들어간다는 것이 믿어지지 않는다.
성기가 조금 반응하자 나는 입 안에 귀두를 넣고 입술로 쪽쪽 빨았다. 그리고 이어 귀두의 주름진 부분을 혀로 날름날름 핥았다. 민준이 기분 좋아하는지 눈치를 보며 눈을 맞춘다. 그러자 그의 차가운 눈동자가 약간 흐려진 것처럼 느껴졌다. 그가 내 고개를 힘주어 박았다. 커다란 성기가 입 안을 한 번에 점령한다.
“켁….”
나는 목구멍이 타고나게 얇아서 비위가 약했다. 목젖 근처에 성기가 다가오는 것만으로도 캑캑대는 소리가 절로 나왔다. 나는 민준에게 혼이 날까 두려워 얼굴을 떼어 내지는 못하고 눈만 꽉 감았다.
민준이 한숨을 쉬며 내 머리를 손으로 잡아 뒤로 떼 냈다. 나는 정말 재능이 없다. 더 잘하는 상대도 많을 텐데 내게 굳이 왜 이러는지는 아직도 이해할 수 없다. 나는 코로 뜨거운 숨을 쉬었다.
그리고 그의 성기를 반만 문 채 눈치를 보았다. 그대로 음경을 사탕처럼 쪽쪽 빨며 고개를 양옆으로 움직였다. 성기가 딱딱하게 입 안을 압박해 오자, 목구멍을 피해 큰 성기를 볼 안쪽으로 밀어 넣어 물었다.
“으응….”
내 오른쪽 볼이 아주 큰 사탕을 문 것처럼 불룩해졌다. 이를 세우지 않도록 노력하며 고개를 움직였다. 한참을 그렇게 움직이자 민준의 성기가 쿠퍼액으로 축축해지는 것이 느껴진다. 나는 그래도 어떻게 해냈다는 생각으로 몸에 긴장감을 풀었다. 턱이 얼얼했다. 이어서 입 끝으로 성기를 물고 귀두 근처를 혀를 돌리며 핥았다.
“그래도 많이 늘었네.”
“응… 읍… 춥….”
내 입에서 나는 것이라고 믿을 수 없을 정도로 음탕한 소리가 났다. 남자들은 목구멍 깊이 물어 주는 쪽을 선호하겠지만 내게는 무리였다. 나는 아까처럼 그의 성기를 반만 물고 핥았다. 그가 내 머리를 잡고 부드럽게 움직여 행동을 유도했다. 아까처럼 억지로 깊게 밀어 넣지는 않았다.
입과 손목이 얼얼하다고 느껴졌을 때, 민준의 입에서 신음이 터져 나왔다. 항상 나를 울고 흐느끼게 하는 그가 내 앞에서 신음을 토한다는 것이 신기했다.
“입술을 오므려요, 그대로.”
그가 내 머리를 누르며 속삭였고 나는 입술만으로 민준의 성기를 물었다. 동그랗게 오므라진 내 입술 안쪽에는 그의 귀두가 물려 있었다. 입술에 힘을 주어 귀두를 물자 따뜻한 콧숨이 그의 단단히 일어나 발기한 핏줄 선 성기 끝에 닿았다.
나는 눈을 내리깔고 다가올 발산을 기다렸다. 다음 순간, 그가 진한 그것을 토해 내자 입 안에 더운 것이 끼얹히는 느낌에 나는 켁, 하는 숨을 쉬며 입을 떼어 냈다. 토하면 혼난다는 생각에 어쩔 줄 모르고 입술을 더욱 오므린다.
그때 내 입 안은 온통 따뜻한 그의 것으로 가득했다. 민준의 정은 한 방울도 입 밖으로 새지 않았다. 그는 한숨을 쉬며 손을 내밀었고 나는 나도 모르게 그의 맨손바닥에 퉤하고 정액을 토했다. 민준은 고운 미간을 찌푸리며 탁자 위에 놓인 휴지를 뽑아 손을 닦았다.
“나는 깊게 무는 걸 좋아하는데, 목구멍이 약해서 안 되겠네요.”
“죄송해요….”
“됐습니다. 사람이 다 가지고 살 순 없지요.”
다 가진 남자가 그런 말을 하니 참 이상했다. 더 능숙한 애인을 만드는 편이 나을 텐데.
“삼키는 것도 무리일 것 같고요.”
“노력해 볼게요, 다음번엔.”
내가 그리 대답하자 민준의 기분은 풀린 것 같았다. 그런 그의 눈치를 보며, 그래도 원민준이 최악으로 까다로운 사람은 아니라는 생각을 했다. 패배주의가 섞인 안도가 들었다. 그가 손을 내밀어 내 머리를 쓰다듬었다.
“무리는 하지 말고.”
“네….
“그래도 착하게 행동해야 합니다. 서연희 생각하느라 집중을 못하면 안 되지. 뭐가 제일 중요한지 알잖아요.”
그가 말하는 ‘중요한 것’이란, 원민준에게 교육받은 예의범절대로 행동하는 것을 뜻할 것이다. 잘못한 것이 있으면 사과하고 고분고분하게 구는 것.
“예의 바르게 행동하는 거요? 사과하고… 기분 풀어 드리고.”
“네, 그런 거요…. 나한테만요. 다른 사람한텐 말고요.”
딱히 이런 일을 다른 사람과 할 일은 없을 것 같다. 그래서 나는 순순히 고개를 끄덕였다. 갑자기 남은 술기운으로 피로가 몰려왔다. 목 뒤가 달아올라 있었지만 성욕보다는 졸음이 더 컸다. 내 얼굴을 보고 그가 내 팔을 잡아 침대 위로 올렸다. 그때도 내 손은 뒤로 돌려 얌전히 잡혀 있었다. 별로 청결해 보이지 않는 시트 위에 나는 멍하니 드러누웠다.
나는 뒤로 맞잡은 손이 불편해 낑낑거렸다.
“손 풀어.”
원민준이 명령하자 나는 그제야 맞잡은 두 손을 풀었다. 민준이 내 바지에 손을 대자 나는 몸을 웅크렸다.
“저, 내일 출근까지 몇 시간 안 남았는데….”
“내일은 쉬어요.”
“갑자기 휴가 못 내요.”
민준이 짜증스럽게 미간을 찌푸렸다. 방금 한 번 도달하고서도 성욕이 동하는 듯했다. 나는 그와 내가 제주도 여행 이후로 처음 만났다는 사실을 떠올렸다. 연희와 제주도 여행에서는 아무 일도 없어서, 성욕이 쌓인 건가. 나는 그런 생각을 떠올릴 수밖에 없었다.
“금방 끝낼게요.”
“정말 힘들어요… 다음에….”
나는 그의 눈을 피했다. 정말 지금 하고 나면 완전히 뻗을 것 같았다. 거기다 감정적으로 지쳐서인지 정말 기운이 없었다. 나는 민준의 눈치를 보았다. 펠라티오 이후 기분이 좋아진 원민준이었기 때문에 강압적으로 행동하진 않을 것 같았다.
“…알겠어요. 대신 이번 주에 잘해야 합니다.”
“그럴게요.”
결국, 민준은 내게 약속을 받아 내고 수긍했다. 미간은 아직 찌푸려진 채였지만. 그가 나를 끌어당겨 팔베개를 해 주었을 때 놀랐지만, 순순히 고개를 기댔다. 그의 이태리제 슈트가 구겨졌다. 그는 그런 걸로는 화를 내는 타입은 아닌 것 같다. 여관의 낡은 침대에 원민준 이사와 나란히 드러누울 날이 올 줄이야.
“서윤 씨가 웬일로 마다하나 싶네요. 밝히는 편이면서.”
“그러지 마세요.”
그 말에 나는 뺨이 다시 달아올랐다. 지금은 너무 피로했다. 하지만 평소라면… 원민준과 하는 건 늘 좋았다. 좀 무섭긴 했지만. 나는 졸음으로 눈을 비비면서도 그에게 조심스레 물었다.
“아까 왜 그런 이야기… 하신 거예요? 연희와 헤어지겠다고….”
“그쪽이 헤어지라는 식으로 말했잖아요.”
나는 그에게 그만 만나고 싶다고 부탁한 것뿐이었다. 그러나 민준의 말에 토를 달았다간 다시 그의 기분이 상할 것 같았다. 나는 그냥 입을 다물었다.
“연희 좋은 여자예요. 특별한 데다 똑똑하고 착한 사람이라는 거, 일생에 몇 번 만나기 힘들어요.”
원민준이 연희를 바로 버릴 생각을 했다는 것에 마음이 아팠다. 내 처지에 이런 말을 하긴 그렇지만, 그녀는 더 좋은 대접을 받을 자격이 있다.
“그건 그쪽이 연희를 그렇게 보고 있어서 그런 거예요, 그녀와 저는 공통점이 별로 없습니다. 오히려 우리 공통점은 이서윤 씨뿐인데요.”
“…그렇게 생각하면 결혼 이야기는 꺼내면 안 되잖아요.”
“결혼 상대로는 서로 괜찮다고 판단했거든요. 사이도 나쁘지 않고, 같이 있으면 즐거울 때도 있고요. 그 여자라면 파트너 노릇도 괜찮게 할 겁니다. 몸 궁합은 뭐…. 내 성욕은 이서윤 씨가 풀어 주고 있잖습니까.”
“…저랑도 공통점은 없으시잖아요.”
“우리는 강력한 공통점이 있잖아요.”
그가 대답하자 나는 굉장히 부끄러워졌다. 우리의 공통점이라고 하면 우리 둘의… SM 플레이, 그 정도였다.
한편으로는 입맛이 썼다. 내가 남자라도, 오메가라면 법적으로 알파와 결혼할 수 있었다. 연희가 괜찮은 결혼 상대라는 말을 뒤집어 보면, 나는 아니란 말을 함축하고 있었다…. 꼭 검증 마크가 찍힌 돼지고기가 된 기분이라 별로다.
언감생심 그의 애인 자리조차 노릴 생각은 없다. 그러나 눈앞에서 ‘넌 결혼용이 아니라 성욕용’이라는 판정을 받은 셈이다. 그러나 인정할 건 해야지.
민준의 특수한 성벽이 아니라면 나는 그에게 관심 대상조차 될 수 없었을 것이다. 그게 현실이다. 사는 게 그런 거지 뭐.
“지금 무슨 생각을 하는지 모르겠지만, 내게는 연희보다 서윤 씨가 훨씬 가치 있어요.”
“제가요?”
“네, 당연하죠.”
당연하긴 뭐가 당연하단 말인가. 이어지는 그의 말에 나는 어벙해졌다. 연희는 재벌가 며느리가 돼도 손색이 없는 여자였다. 아름답고 똑똑하고, 또 부유하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