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3화
돌란은 어머니의 이야기가 나오자마자 낮게 씨근덕거렸다. 어머니가 무서워 그녀의 자그마한 말 하나도 거역하지 못하는 자.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는 꾸준히 할리드에게 불쾌한 관심을 표현하고 있었다.
녹스는 자신의 아버지가 얼마나 더러운 취미를 가졌는지 알았기에 할리드를 보호하기 위해 더욱 애썼다.
아버지는 결혼 전 열다섯 이하의 어린아이를 착취하는 쓰레기 같은 작자였다. 결혼 이후 황족 출신인 어머니가 그 꼴을 상스럽게 여겨 말 그대로 그를 쥐잡듯 잡았다고 했다. 덕분에 결혼 후엔 그 더러운 취미를 억누르고 있나 했는데 할리드가 들어온 후론 호시탐탐 그를 노렸다. 녹스가 딱 잘라 말했다.
“이만 가 보겠습니다.”
“네놈도 네 어미처럼 나를….”
무시하려 드는구나. 그 뒷말은 듣지도 않았다. 자기 모멸감으로 똘똘 뭉친 저 남자는 자기 자신을 바꾸려 들지도 않았다. 그저 그 자리에 서서 더러운 욕망을 풀어내기 바쁜 남자일 뿐이었다.
“도련님…….”
“쉬, 괜찮아.”
녹스가 할리드를 달래듯 말했다. 녹스는 할리드의 어깨를 가볍게 감싸 당겨 앞으로 걸었다. 아이의 걸음과 맞추는 것도 잊지 않았다.
할리드는 저도 모르게 귀를 붉혔고 녹스는 그 사실을 잘 알고 있었다. 설핏 웃음이 나왔다.
어린아이의 첫사랑이 될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하다 보면 조금 기쁘다가도 저 같은 것을 좋아하게 되어 불쌍하다는 생각이 들기도 했다.
결국엔 저도 아버지의 피를 이어받은 더러운 귀족일 뿐이니까. 녹스는 저 어린애에게 마음을 주고 싶지 않았다. 그저 아껴 주고 싶을 뿐이었다. 아버지 같은 더러운 욕망 따위는 품지 않으리라. 그는 다짐하고 또 다짐했다.
그렇게 아침 훈련을 끝내고 돌아오면 할리드는 그 작은 손으로 자신의 옷시중을 들었다.
할리드는 늘 긴장한 것 같이 떨리는 손으로 녹스의 단추를 풀곤 했다. 녹스는 그 꼴을 가만히 보다가 웃음과 함께 한숨을 내쉬곤 스스로 옷을 벗곤 했다.
“죄, 죄송합니다.”
“됐어. 가서 욕조에 물을 좀 받아 놓으렴.”
“네, 네!”
그러면 아이는 욕조에 물을 받기 위해 쪼르르 달려갔다. 녹스는 천천히 자신의 옷을 벗어 아무 곳에나 걸어 놓고 아이가 가져다 놓은 가운을 입었다. 그리고 욕실로 향했다.
욕실로 들어가면 물을 받아 놓고 온도를 확인하고 있는 아이가 보였다.
“너도 잠깐 가서 쉬어.”
“어. 하, 하지만 목욕 시중은요?”
녹스는 그 소리에 눈썹을 치켜올렸다. 녹스는 지금까지 단 한 번도 아이에게 목욕 시중을 들라고 한 적이 없었다.
“그런 건 또 어디서 들었지?”
“저, 저번에 어른들이 하는 말을 어쩌다 들었는데 그, 총애받기 위해선 목욕 시중을 드는 게 당연하다고….”
녹스는 가운을 벗는 대신 팔짱을 끼고 아이를 바라보았다. 그들이 말하는 목욕 시중이란 어감상 아마 평범한 목욕 시중이 아닐 테다.
“너 그 사람들이 말한 목욕 시중이 뭔지 제대로 알긴 하는 거야?”
“예? 목욕을 시켜 드리는 게 아닌가요?”
그 말에 녹스는 어이가 없어서 헛웃음을 쳤다.
“아니야. 가서 쉬어. 알아서 씻을 테니까.”
“그, 그치만.”
“씁.”
녹스는 그를 혼내듯 했고 할리드는 풀이 죽은 채 자리에서 일어섰다. 녹스는 아이가 풀이 죽은 것을 보기가 힘들어 결국엔 그의 머리를 부드럽게 쓰다듬어 주었다.
“식사 시간에 다시 부를 테니 걱정 말고.”
그러면 아이의 표정이 대번에 밝아졌다.
“예, 예!”
“그래.”
두 사람 사이는 평화로웠다. 아이는 작은 손으로도 제법 일을 잘했고 녹스는 할리드에게 무리한 일을 요구하지 않았다. 중심이 제대로 잡힌 것처럼 두 사람 사이엔 아무런 문제가 없었다.
그 평화로움에 녹스는 잠시 방심했던 것 같다. 어느 날 외가의 행사로 가문을 비우게 되었을 적에 예상치 못한 일이 생겼다.
외가는 깐깐하기로 유명했기에 아직 어리고 서투른 감이 있는 할리드를 데리고 가기가 어려웠다.
“네가 할 일은 잡일밖에 없어.”
“예.”
“아버지 방 근처로는 가지도 마.”
“예에.”
“마에타에게 부탁해 놨으니 넌 별관에 배치되어 청소밖에 할 일이 없을 거야.”
“알았어요, 도련님.”
할리드도 도련님의 불안을 잘 알았다. 그래서 그 어느 때보다도 활짝 웃으며 그를 안심시키기 위해 애썼다.
“하신 말씀 다 지킬게요. 그러니 걱정 마세요.”
녹스는 애써 미소를 짓기 위해 입술 끝을 끌어 올렸다. 할리드는 고개를 끄덕였고 그는 그렇게 어머니와 함께 외가로 떠났다.
누군가에게는 고작 일주일이었으나, 그들에게는 일주일씩이나 되는 시간이었다. 녹스는 그때 그 아이를 데려갔어야 했다.
녹스는 외가의 파티에 참석할 때조차도 아이를 생각하고 있었다. 별관에 배치해 두었으니 아버지와 만날 일 따위는 없을 것이다. 그리고 아버지도 어머니의 말로 인해 몸을 수그리고 있으니 별다른 문제가 없을 거로 생각했다.
하지만 어째서인지 자꾸만 불안한 마음을 지울 수 없었다. 묘한 불안이 자꾸만 자신의 마음을 쿡쿡 찔러 댔다.
“왜 자꾸 그리 산만하게 굴어.”
“아, 죄송합니다.”
어머니는 그런 그가 못마땅하다는 듯 굴었고 녹스는 정신을 잡기 위해 허리를 바로 세웠다. 그래, 그 멍청하고 비굴한 치가 어머니의 명령을 어기고 무슨 짓을 벌일 확률은 낮을 것이다. 녹스는 소란스러운 마음을 잠재우기 위해 괜찮다며 자신에게 속삭이고 또 속삭였다.
그렇게 길었던 일주일. 외가의 행사를 마치고 집에 돌아온 녹스는 이상한 점을 발견했다.
“할리드는 어디 갔지?”
그러자 시녀장 마에타가 정말 면목이 없다는 얼굴로 허리를 숙였다.
“그게, 할리드가 사라졌습니다.”
그녀는 허리를 들지도 못한 채 흘끔, 녹스의 눈치를 보았다. 녹스는 대번에 미간을 찌푸렸다. 마에타는 알고 있었다. 녹스가 할리드를 얼마나 아끼는지를.
“내가 분명 그 애에게서 눈을 떼지 말라고 했을 텐데.”
“그것이…… 제가 마지막으로 확인했을 때는 분명 별관에 있었습니다.”
마에타가 변명했다. 녹스는 미간을 찌푸린 채로 생각했다. 별관에 있었던 아이가 감쪽같이 사라졌다고? 그는 싸늘한 태도로 마에타를 가만히 바라보았다. 분명, 제게 숨기는 것이 있을 거라는 생각이 들었다. 마에타는 우물쭈물하다가 그의 시선을 이기지 못하고 결국에 털어놓았다.
“사실, 도련님과 마님께서 저택을 떠나자마자 공작님께서 할리드를 부르셨습니다.”
“뭐라…?”
심장이 쿵, 떨어졌다. 아버지가 설마 그렇게까지 노골적으로 나올 줄 몰랐던 탓이다. 아니 정말 몰랐나? 녹스는 그 말을 듣자마자 아버지 방으로 뛰기 시작했다.
“도련님, 도련님!”
뒤에서 마에타가 부르는 소리가 들렸지만 아랑곳하지 않았다. 그는 귀족답지 못하게 다급히 복도를 뛰어 아버지의 방에 도착했다. 옷과 머리는 급하게 뛴 만큼 흐트러져 있었다. 그는 숨을 가볍게 몰아쉰 뒤 노크도 하지 않고 아버지의 방문을 열어젖혔다. 확, 하고 술 냄새가 풍겼다.
“이젠 아주 아비를 물로 보는구나! 허락도 없이 문을 열어?”
“아이는 어디 있습니까.”
“아이? 어떤 아이를 말하는 게냐.”
“할리드가 어딜 갔느냐 물었습니다.”
“할리드?”
그는 술에 취해 흐리멍덩해진 눈으로 잠시 생각에 잠겼다. 그러곤 손바닥을 짝 쳤다.
“그 어여쁘고 건방진 아이를 말하는 거로구나!”
“그 애에게 무슨 짓을 하셨습니까.”
그러자 돌린이 곧 하하하, 크게 웃었다. 그러고는 곧장 손에 들고 있던 술병을 바닥으로 내던졌다. 와장창! 큰 소리가 방 안에 울려 퍼졌지만 녹스는 눈 하나 깜빡하지 않고 돌란을 노려보았다. 돌란은 숨을 씨근덕거리며 자신을 노려보는 아들과 시선을 맞췄다.
제 아들은 자신의 부인을 너무 많이 닮았다. 녹색 빛이 도는 검은 머리도 저 암녹색 눈동자도. 그리고 자신을 경멸하듯 보는 눈빛까지. 돌란 라이네리오는 그것을 참을 수가 없었다. 그래서 그를 향해 삿대질을 해 대며 소리 지르기 시작했다.
“제 아비보다 고작 평민인 하인을 더 존중하는구나!”
“그런 적 없습니다.”
녹스는 담담하게 거짓말했다. 그리고 그 거짓말에 아버지는 더욱 날뛰었다. 스스로 깨트린 유리 조각을 밟는지도 모르고 다가와 녹스의 앞에 섰다. 녹스가 아직 어린 만큼 아버지의 눈높이는 제법 높았다. 하지만 그것뿐이었다. 그를 올려다보는 녹스의 눈엔 차가운 감정만이 고드름처럼 차갑게 얼어붙어 있을 뿐이었다.
“그 애에게 무슨 짓을 했냐 물었습니다.”
“아무것도 못 했다. 아무것도! 도저히 얌전히 있질 않더구나!”
그는 한 팔을 들어 올리고는 마치 한탄하듯 말했다. 그의 팔뚝엔 아이의 잇자국이 선명히 나 있었다.
“감히 귀족의 몸에 상처를 내었다. 당장 잡아다 벌을 내려야 하는데 어찌나 빠르게 도망가던지. 나는 그 애가 어디로 숨었는지 모른다!”
“…….”
녹스의 눈빛엔 더욱 경멸의 빛이 어렸다. 아버지는 그것을 감당하기 버거워했다.
“나가! 나가거라! 그따위 눈깔을 내 앞에서 치우란 말이야!”
그는 침대로 비틀비틀 다가가 쓰러지듯 누웠다. 녹스는 그 한심한 모습을 잠시간 바라보다 이내 문을 쿵 닫고 별관으로 향하기 시작했다. 다행히 아이는 아버지의 손길을 피해 도망간 모양이다. 다만 어디로 도망갔는지는 알 수가 없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