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9화
이제 막 잎이 떨어지기 시작한 계절이었다. 정원의 나무들이 슬슬 붉은색으로 물들어 가는 계절. 무더움이 가시고 새로운 계절을 위해 모든 것이 숨죽이는 시기.
그런 시기에 황제가 바뀌었다. 그리고 우뚝 서 있던 수많은 귀족의 저택이 쓰러졌다. 그리고 그중 하나가 녹스 라이네리오의 가문이었다. 그 어느 가문보다도 강건하게 이어지던, 오래된 가문이 오로지 아버지의 손 하나에 망쳐졌다.
‘아니, 그의 탓만이 아니지.’
어리석은 자신 또한 이제 황제가 된 펠티온에게 속아 넘어가 버려졌으니. 녹스는 자조적인 미소를 띠었다. 남의 방에 덩그러니 밀어 넣어져 앉지도 서지도 못하는 자신에겐 누군가를 원망할 자격 따위 없었다.
끼익.
그때 다시 한번 욕실의 문이 열렸다. 그리고 거기서 나온 건 녹스와 같은 가운을 걸친 할리드였다. 그는 테라스 창문을 바라보고 있던 녹스의 모습을 보았는지 느리게, 하지만 단호하게 말했다.
“여기서 그 꼴로 뛰어내려 봤자 다리만 부러지지.”
“도망칠 생각 따윈….”
녹스는 문득 자신의 말씨가 이래선 안 된다는 걸 깨달았다.
“…없습니다.”
그 말에 할리드의 입가에 비스듬한 미소가 지어졌다. 녹스는 고개를 숙이기보단 그를 똑바로 바라보았다. 궁금한 것이 많았다.
그 뒤로 어떻게 살았는지. 네 삶은 괜찮았는지. …날 많이 원망했는지. 원망했다면 얼마나 원망했기에 날 살려 둔 건지. 입 밖으로 꺼낼 수 없는 말들이 너무나 많았다.
녹스는 자신과 비슷한 가운을 입은 할리드를 바라보았다. 처음 봤을 때는 뭘 입고 있었더라. 그래, 피 냄새가 나는 녹슨 갑옷을 입고 있었지. 녹스는 그의 저의를 알 수 없어 눈을 얕게 떴다. 그리고 그 얇게 뜬 시선에 할리드가 성큼성큼 걸어와 그의 목을 콱 쥐었다.
“컥!”
“왜. 그렇게 보면 내 속을 들여다볼 수 있기라도 한가 보지?”
할리드는 그의 목을 한 손으로 틀어쥐고 질질 끌었다. 그리고 곧 그를 침대 위로 집어 던졌다. 숨이 막혔던 녹스는 짧게 기침을 뱉었다. 하지만 그 기침이 멈추기도 전에 할리드가 어깨를 쥐어 누르고 녹스의 위로 올라탔다. 아주 느리게, 하지만 제압하듯이 거칠게. 자신을 막을 사람 따윈 없다는 것을 잘 알고 있는 맹수처럼.
강제로 침대에 눕혀진 녹스는 침대를 짚고 몸을 일으키려 했다. 하지만 묵직한 몸이 그걸 허락하지 않았다. 움직일 수가 없었다. 예전에 제가 안아 주었던 작은 아이가 아니다. 그 사실이 새삼 선명하게 느껴졌고 …묘한 공포감이 그를 짓눌렀다.
“…할리드?”
그는 그 불안감에 내선 안 될 이름을 내었다. 할리드의 눈빛이 순식간에 바뀌었다. 그는 곧 녹스의 목을 눌러 잡아 다시 한번 침대에 처박았다.
“네가 날 불러야 할 호칭은 그게 아니며.”
목소리는 낮게 들끓는 듯했다.
“네까짓 게 부를 수 있는 이름이 아니야.”
“…….”
녹스는 입술을 꾹 눌러 물었다. 마치 예전에 한 말이 제게 고스란히 돌아온 기분이었다. 아무런 말도 하지 못하고 있는 녹스를 내려다보며 할리드가 고개를 숙였다. 그리고 코앞에서 속삭였다.
“오늘부터 네가 할 일은 이거야.”
녹스의 목을 놓아준 할리드는 상체를 세우고 자신의 가운을 풀어 넘겼다. 녹스는 막혔던 숨을 천천히 내쉬며 자신의 위를 차지하고 있는 남자를 바라보았다.
어깨부터 드러난 할리드의 온몸엔 상처가 가득했다. 단단해 보이는 몸체와 두꺼운 팔뚝, 허리가 눈에 보였다. 그리고.
“…….”
녹스는 그의 아래 커다랗게 서 있는 좆대를 발견하곤 할 말을 잃었다. 그 어렸던 아이가 다 커서 이제 노예로 떨어진 제게 발정하고 있다는 사실이 믿기지 않았다. 그는 저도 모르게 그에게 깔린 채로 시트를 잡아당겨 도망치려고 했다. 그러자 단단한 손이 다시금 어깨를 꽉 눌러 왔다.
“여기서 반항한다면 더 지옥 같은 경험이 될 텐데?”
녹스가 더듬더듬 말했다.
“아니야, 이건, 이건 아닌 것….”
이건 아닌 것 같아. 그 말에 할리드는 쥐고 있던 어깨를 놓고 그의 머리채를 잡아 뒤로 당겼다.
“윽……!”
“뭐가 아니지?”
그의 말이 낮게 속삭여졌다.
“난 이러려고 널 데려온 거야.”
숨이 막혔다. 녹스는 한 번도 그가 자신을 욕망했으리라 생각해 본 적 없었다. 차라리 진짜 노예 취급을 받으며 온갖 노동을 떠맡고 바닥으로 떨어져 구박받는 삶은 생각해 본 적 있어도 그의 침대 위에 눕는 생각을 해 본 적은 없었다. 녹스는 덜덜 떨리는 손으로 시트를 꽉 쥐었다.
“제발, 제발 할리드. 이러지….”
이러지 마, 라고 말하려 했던 입은 곧 그의 큰 손아귀 안에 틀어막혔다. 코와 입을 막아 버릴 정도로 커다란 손이 얼굴에 꾹 눌어붙어 조금의 숨도 허락하지 않았다. 녹스는 저도 모르게 손등을 긁으며 벗어나기 위해 어깨를 뒤틀었다. 하지만 그러면 그럴수록 할리드는 그의 몸을 더 세게 눌러 올 뿐이었다.
“마지막으로 말하지.”
그 말은 짓씹듯 내뱉어지고.
“네까짓 것은 내 이름을 발음할 자격이 없어.”
마치 경고하듯 떨어졌다. 녹스는 숨이 막혀 벌게진 얼굴로 고개를 끄덕였다. 할리드는 그의 얼굴을 한참 동안 내려다보며 그가 숨이 모자라 괴로워할 때까지 손을 떼어 내지 않았다. 더, 더. 그의 눈이 반쯤 뒤집힐 것 같던 그때 할리드는 손을 떼어 내었고 그 뒤로 녹스가 급히 숨을 들이켜는 소리가 들렸다.
콜록, 콜록. 급한 숨에 사레가 들려 몇 번 기침하던 녹스는 곧 할리드가 제 가운을 푸는 것을 발견했다. 천천히 허리를 감싼 끈이 풀려 떨어지고 몸을 타고 흐르는 가운이 옆으로 벌어져 아무것도 입지 않고 있는 몸이 드러났다. 훤히 드러난 녹스의 몸을 훑으며 할리드가 물었다.
“날 부를 땐 어떻게 해야 한다고?”
“…….”
녹스는 입술을 달싹였다. 이미 다 받아들였다고 생각했지만 그렇지 않은 모양이었다. 그 망설임을 눈치챈 할리드가 멍이 든 녹스의 뺨을 바라보았다. 다른 남자에게 맞아 생긴 자국이었다. 할리드는 쯧, 혀를 차곤 손을 들어 올렸다.
짜악-!
녹스는 비명조차 지르지 못하고 돌아간 고개에 눈을 커다랗게 떴다. 아이가, 아니. 남자가 제 뺨을 때렸다. 상처가 다시 한번 터졌는지 입 안에서 피 맛이 감돌았다. 녹스는 살아서 한 번도, 이런 상황을 상상해 본 적 없었다. 자연히 숨이 헐떡거리며 거칠어졌다. 할리드는 그런 녹스를 차갑게 내려다보며 말했다. 손이 한 번 더 들어 올려진다. 마치 다시 내려칠 수 있다는 듯이.
“다시.”
“…주인, 님.”
“그래.”
할리드는 자신이 내려쳐 새빨개진 뺨을 손톱 끝으로 슬 긁어냈다. 그리고 움찔거리는 녹스의 반응을 하나하나 눈 안에 새겼다.
이런 순간을 얼마나 바라 왔던가. 그는 마른침을 삼키고 저를 올려다보는 녹스의 몸을 천천히 쓰다듬었다. 가운이 풀려 드러난 탄탄한 몸에 할리드가 가볍게 이를 악물었다.
단단하고 넓은 어깨와 삼각형으로 좁아지는 골반, 단단하게 근육이 선 허벅다리. 무엇 하나 자신을 자극하지 않는 게 없었다. 할리드는 목 안으로 으르렁거리는 소리를 내며 그의 다리를 벌려 잡았다.
“아, 잠깐…!”
다리 사이를 고스란히 내보이게 된 녹스가 입술을 꾹 깨물었다. 그리고 두 손으로 제 눈을 가렸다. 이런 취급을 당하게 될 줄 몰랐지만 이제 주인이 된 할리드가 바란다면 기꺼이 해야 한다는 것을 안다. 그래도 발끝이 덜덜 떨리는 것만은 어쩔 수 없었다. 할리드는 떨리는 녹스의 발목을 꽉 쥐고 들어 올렸다.
몸이 기우뚱 기울고 녹스의 구멍이 드러났다. 녹스는 얼굴로 열이 확 뻗치는 것을 느꼈다. 그도 나이가 있었고 남성끼리 어떻게 성교하는지 정도는 알고 있었다. 녹스는 저도 모르게 잡힌 발목을 빼려 버둥거렸다. 하지만 할리드의 손에 꾹 잡힌 다리는 그의 손아귀에서 벗어날 수 없었다.
“쯧.”
할리드는 혀를 찼다. 자신의 것을 받아들이기에는 너무나 작은 구멍이었다. 하지만 그것은 반대로 남자를 받아 본 적 없다는 의미이기도 했다. 할리드는 마른 구멍을 엄지 끝으로 가볍게 쓰다듬었다. 움찔, 긴장 때문에 근육이 단단히 선 몸이 흔들리는 게 느껴졌다. 할리드는 그 위를 지분거리다 이내 아무것도 바르지 않은 구멍 안으로 검지를 밀어 넣었다.
“아…!”
녹스가 급하게 숨을 들이켜며 이를 악물었다. 손가락을 빡빡하게 물고 있는 구멍엔 물기라곤 조금도 없었다. 여성처럼 알아서 젖어 주면 좋을 텐데. 말 그대로 너무나 손이 많이 가는 노예였다.
할리드는 혀를 차고 옆 협탁의 서랍에서 미리 준비한 향유를 꺼내 들었다. 뚜껑을 열자 달콤한 냄새가 녹스의 코끝에까지 스쳤다. 하지만 그 다디단 향기는 녹스에겐 옅은 공포만을 불러올 뿐이었다. 그의 말대로 처음부터 자신을 이러기 위해 데려왔다는 사실이 현실로 와 닿았다.
할리드는 향유를 아끼지 않고 녹스의 다리 사이로 쏟아부었다. 향유는 미끄러웠고 약간 덩어리져 있었다. 회음부 위로 흘러내려 구멍까지 타고 내려온 액체는 느리게 피부를 간지럽혔다. 녹스의 다리가 조금 좁아 들었다. 할리드는 그의 다리를 더 꽉 쥐고 벌리며 씁, 소리를 냈다.
“가만히 있어.”
빡빡하게 할리드의 손가락을 물고 있는 구멍이 듬뿍 적셔졌다. 하지만 그건 그저 겉일 뿐, 내벽 안쪽까지 젖어 들게 하진 못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