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20화
“쯧.”
그는 아직 만족스럽지 않다는 듯 기절한 녹스를 보다 몇 번 손등으로 그의 뺨을 툭툭 쳤다. 기절한 녹스는 미동이 없었고 할리드는 아직 욕구가 다 풀리지 않았다.
그래서 다시 기다란 좆을 욱여넣고 허리를 움직이기 시작했다. 제가 흔드는 대로 흔들리는 단단한 몸이 좋아서 할리드는 그의 몸을 붙잡고 밤새도록 놓지 않았다.
* * *
녹스는 다음 날 아침, 할리드의 것에 꿰인 채로 눈을 떠야 했다. 눈을 가린 끈도 그대로였다. 마른 액체가 덕지덕지 붙어 빼내기가 고역이었다. 녹스가 눈을 가린 가운 끈을 풀고 안에 든 것을 빼내기 위해 움찔거리자 할리드가 졸린 눈으로 잠에서 깼다.
“음….”
“흐윽…!”
할리드는 녹스의 어깨를 억지로 눌러 아직 안에 든 것을 천천히 움직이기 시작했다. 정액이 말라붙어 쩍, 쩍, 붙었다 떨어지는 소리가 적나라했다. 녹스는 꽉 차 있다 빠져나가는 감각에 몸을 떨었고 다시금 쿡 박혀 오는 압박감에 구멍을 꾹 조였다. 할리드는 아침부터 좆대를 꽉 조여 오는 감각이 기분 좋았는지 느리게 좆대를 빼냈다가 안으로 퍽, 하고 세게 처박으며 느긋하게 경련하는 내벽을 즐겼다.
“흐, 아읏…!”
녹스가 발끝으로 시트를 밀어도 할리드는 그의 골반을 틀어쥐고 놓아주지 않았다. 그리고 점점 더 빠르게 안을 치대기 시작했다. 녹스가 허리를 휘며 발발 떨었다. 입에선 다 쉰 소리의 신음이 연달아 새어 나왔다. 그렇게 그는 녹스의 안쪽에 기어코 사정한 뒤 그를 놓아주었다.
할리드는 사정이 끝나자마자 더 이상 볼일이 없다는 듯 몸을 휙 일으켰고 사용인들을 시켜 곧장 목욕물을 준비하게 했다. 그리고 목욕물이 준비됐다는 말을 듣자마자 매정하게 홀로 욕실 안으로 향했다.
녹스는 구멍이 다물어지지 않는 것 같은 감각에 몸서리를 치며 시트를 꾹 부여잡았다. 온몸이 욱신거렸고 안쪽은 눅눅하고 축축하기 짝이 없었다. 그는 하룻밤 내내 제 눈을 가리고 있던 가운 끈을 바닥으로 내버렸다. 눈가를 만지자 손끝이 닿는 것만으로도 따끔거렸다. 붉게 짓물렀을 게 보지 않아도 뻔했다.
다리 사이에선 할리드가 싸지른 정액이 흘러내려 시트를 적셨다. 녹스는 안쪽을 간지럽히듯 흐르는 감각에 어깨를 굳혔다. 그렇게 얼마나 지났을까, 욕실에서 나온 할리드가 사용인들의 옷시중을 받으며 말했다.
“오늘 오후 5시에 마차를 보낼 테니 그걸 타고 와.”
녹스는 아직 씻지도 못한 채로 멍하게 침대 위에 앉아 있다 고개를 들었다. 그리고 어디냐고 묻지도 않은 채로 고개를 끄덕였다.
“거기가 어딘 줄 알고 곧바로 온다는 거지? 머저리처럼.”
아, 물어야 했던 걸까.
“어디… 쿨럭, 어딥니까.”
목소리가 깊게 갈라졌다. 어제 하도 울어 댄 탓이리라. 할리드는 기분이 상한 건지 아니면 더 이상 녹스에게 관심이 없는 건지 시선을 주지 않은 채 대답했다.
“황제 폐하께서 여신 연회에 갈 거다.”
그 말에 녹스가 잠시 움찔거렸다. 할리드는 그를 비웃으며 말을 이었다.
“예전에 대귀족이었던 자가 노예로 전락한 꼴을 보고 있으면 다들 경각심을 가지겠지. 네 꼴이 되지 않기 위해서.”
“아….”
녹스는 곧바로 이해했다. 그러니까 어디에도 발을 걸치지 않았던 귀족들에 대한 경고로 자신을 내보이겠다는 소리였다. 공작가의 자제. 그 가장 높은 자리에 앉아 있던 자가 한순간에 추락해 새로운 공작의 노예가 되었다는 사실을 모두의 눈앞에 들이밀어 보여 주면서.
녹스는 꽤, 괴로운 하루가 될 거라 생각하며 느리게 눈을 깜빡였다. 절망스러웠다. 절망스러웠지만, 어쩔 수 없는 거라고 생각했다. 애초에 이 모든 일은 제가 어리석어 내친 아이의 증오로 인한 것이다. 만약 그를 버리지 않았다면, 자신이 좀 더 똑똑해 아이를 그런 방법으로 내치지 않았다면 자신은 지금쯤 편하게 죽어 있을지도 모르는 일이었다.
“잘 알아들었나.”
“…예, 알겠습니다.”
녹스의 목소리는 심하게 갈라졌지만 할리드는 미간만 설핏 찌푸릴 뿐 더 이상 덧붙이는 말 없이 그 자리를 떠났다. 그가 자리를 떠난 후 마를렌이 그 자리에 남아 욕조에 새 물을 받아 놓았으니 씻으라고 이야기했을 뿐이다.
“입던 옷이 못 쓰게 되었으니 새 옷을 가져다 놓겠습니다.”
“…감사, 합니다.”
녹스는 할리드가 벗어 놓고 간 가운을 대충 걸쳐 여민 후 욕실로 향했다. 허벅지 안쪽에서부터 할리드가 싸질러 놓은 정액이 왈칵 쏟아졌다.
“읏….”
녹스는 물이 가득 찬 욕조 안으로 서둘러 들어갔고 스스로 안쪽을 벌려 정액을 긁어냈다. 꿀럭꿀럭 쏟아지는 그의 덩어리진 액체가 희게 물과 함께 섞였다. 녹스는 그 감각에 몸을 굳히면서도 억지로 감정을 내리눌렀다. 지금 이 상황이 제 현실이었고 또….
암녹빛 눈이 체념의 빛을 띠었다.
녹스는 몸을 씻고 옷을 단정하게 갈아입은 뒤 자신의 방에 틀어박혔다. 그는 이 저택에서 구태여 할 일이 없었다. 어디를 다녀도 된다는 허락을 받지도 못했다. 노예는 물건처럼 주인이 넣어 놓은 상자 안에 얌전히 있어야 함이 옳다. 녹스는 침대에 걸터앉아 잠시 허공을 바라보며 눈을 깜빡였다. 저녁까지 할 것이 아무것도 없었다.
녹스는 어째서 할리드가 자신에게 아무것도 시키지 않았는지 알 것 같았다. 그리고 왜 본관에 방을 따로 뒀는지도. 자신은 고립된 거다. 어느 누구와도 소통할 수 없고 아무것도 할 수 없다. 그가 부를 때까지. 불려가면 그저 그의 침대 위에 눕는 것 말곤 할 수 있는 것이 없는 인간으로 만들려는 것이다.
녹스는 그게 꽤, 잔인하다고 생각했지만. 그렇다고 그에게 불만을 토로할 수는 없는 노릇이었다.
할리드의 몸에는 흉터가 많았다. 어두운 방에서 희미한 빛에 얼핏 보았음에도 불구하고. 할리드가 가문에서 그 많은 매를 맞고 쫓겨난 뒤로도 그의 몸에 상처가 날 일이 많았다는 뜻이었다. 자신이 그를 내몰았다. 그 사실만이 지금 진득하게 자신의 발목을 잡고 있을 뿐이었다.
“웃기지도 않지.”
그 모든 게 부메랑처럼 전부 돌아왔다는 게. 아버지는 언젠가 그 죗값을 목숨으로써 치를 거라고 생각했었다. 하지만 거기에 자신은 없었다. 오만한 녹스 라이네리오는 자신에게 내려질 벌을 한 번도 생각해 본 적 없었다. 그것이 자신의 원죄였다. 그 아이가 겪었을 불행의 죄. 그것을 잠시나마 잊은 것. 녹스는 눕지도 않고 그저 침대에 앉아 시간을 보냈다.
이따금씩 이어지는 호흡 소리. 느리게 깜빡이는 눈. 그는 아무것도 할 수 없었다. 오래전부터 자신을 괴롭혀 온 무기력감이 다시금 날뛰었다.
아버지를 포함한 다른 귀족들을 대할 때 뾰족해지던 자신은 더 이상 필요가 없었다. 자신은 그의 노예임으로. 억지로 표정을 억누를 필요가 없어지면 그는 그대로 가라앉았다. 침잠했다. 보이지 않는 저 밑바닥으로. 아가미가 없어 심해에서 숨 한 톨 내쉬지 못한 채 그저 살아 있는 것만으로도 기꺼워해야 하는 운명.
녹스는 그렇게 한 시간, 두 시간. 그가 불렀던 다섯 시가 될 때까지 아무것도 하지 않고 가라앉아 있었다. 그것은 그를 오랫동안 지독하게 괴롭혀 온 우울이었다.
똑똑똑-
그렇게 약속한 시각이 되자 맞춘 것처럼 마를렌이 그를 데리러 왔다. 녹스는 미리 준비했던 것에서 한 톨도 바뀐 것이 없었기 때문에 그대로 자리에서 일어나 문을 열었다. 그 앞엔 차가운 표정에 밝은 갈색 머리를 한 여자가 배 앞에 두 손을 대고 있었다.
“이쪽으로.”
그녀는 그가 탈 마차 앞으로 그를 이끌었다. 녹스는 그녀와 걸음을 맞추어 걸었고 곧 마차에 도착했다.
노예가 탈 법한 마차는 아니었지만 그렇다고 귀족이 탈 법한 물건도 아니었다. 말 그대로 귀족이 아끼는 애첩 정도가 타기에 알맞게 적당히 화려한 마차였다.
녹스는 자신이 입고 있는 시종의 옷과 목을 가볍게 조인 볼로 타이를 만지작거리다 이내 손을 내렸다. 어차피 익숙해져야 할 거다. 거슬려 해 봤자 의미가 없었다. 앞으론 제 몸과 한 몸 같아질 것이므로.
녹스가 마차에 들어서 앉자 곧 마차는 덜컹거리며 앞으로 나아갔다. 녹스는 마차 안에서 바른 자세로 앉은 채 바닥을 내려다보았다. 그는 여전히 혼자였고 그의 머릿속은 생각으로 가득 찼다.
할리드는 지금까지 어떻게 살았던 걸까. 차마 묻지 못했던 말은 홀로 있을 때 밀물처럼 밀려들었다. 어차피 묻지 못해 그 밀물에 잠겨 죽을 것이 뻔함에도 멈출 수 없었다. 그는 그렇게 잠시 잠겨 들었다.
* * *
아주 오래전, 녹스는 할리드를 찾으려 한 적이 있었다. 그 애가 쫓겨난 지 딱 일 년째 되던 해였다. 어머니는 병들어 아예 드러누웠고 아버지는 정치판에 뛰어들어 바쁠 때. 아무도 자신에게 관심을 주지 않을 적에 그 애가 그리워 집사에게 부탁해 알아봐 달라 한 적이 있었다.
할리드가 쫓겨난 후 새로 들어온 하인은 할리드와 같은 또래였다. 머리카락 색도 눈 색도 닮은 구석이라곤 조금도 없었지만 녹스는 그 아이에게서 할리드를 보았다. 그래서 그 아이에게 하듯 하인을 대했다. 하지만 그러면 그럴수록 마음 안의 공허는 커졌다. 그 공허를, 허함을 달랠 수가 없어서 녹스는 기어코 할리드를 찾으려던 것이다.
집사는 녹스의 부탁에 아주 간단한 일이라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알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