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37화
“따라와.”
황제가 그들을 부르며 앞장섰다. 황제의 시종들이 우르르 그들의 뒤를 따랐다. 눈이 부시도록 휘황찬란한 복도를 따라 걷다 보니 창밖으로 거대한 유리 온실이 보였다.
12대 왕이 황후를 위해 만들었다고 전해지는 거대한 유리 온실. 그 뜻을 이어 그 유리 온실은 황후의 것으로 약속되어 있었다. 하지만 현재 황제에겐 황후가 없었고 덕분에 황제 마음껏 음탕한 일에 사용할 수 있었다.
온실로 향하는 녹스의 얼굴은 조금 딱딱하게 굳어 있었다. 그 안에서 자신이 당할 일을 이미 예견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황제의 팔이 조금 떨어져 걷고 있던 녹스의 허리를 감아 당겼다. 그리고 귓가에 속삭였다.
“왜, 슬슬 기대되는 모양이지?”
“…폐하.”
녹스의 목소리가 떨렸다. 그 광경을 지켜보던 할리드가 그의 팔 안에서 녹스를 빼앗아 안았다.
“제 것입니다.”
내리깐 녹스의 시선이 흔들렸다. 오늘은 어쩌면 이 상황을 피해 갈 수 있을지도 모른다. 제 주인인 할리드가 거부한다면. 녹스는 할리드를 올려다보았다. 할리드는 그와 눈을 맞추며 잠시 고민하는 듯했다. 그리고 그 모습에 황제가 짧게 웃음을 터뜨렸다. 그리고 물었다.
“왜.”
속삭이는 목소리는 마치 뱀의 것 같았다.
“또 그가 사랑스럽나?”
녹스의 허리를 감은 팔에 힘이 들어가더니 있는 힘껏 미간이 찡그려졌다. 할리드는 잠시 침묵하다가 이내 단단한 목소리로 답했다.
“…아닙니다.”
“그럼 수업을 이어 갈까?”
황제는 그렇게 말하며 이제 다 도착한 유리 온실의 문을 손수 열어 주었다. 시종 중 몇몇이 온실로 들어갔다. 무언가를 준비하는 듯했다.
환하게 빛이 내리쬐는 온실은 마치 천계의 입구 같았지만, 녹스에겐 지옥과 같이 느껴졌다. 높고 푸르른 나무, 색별로 모여 있는 꽃과 풀들. 덩굴이 자라나 덮고 있는 유리 벽은 햇빛을 받아 사이사이가 반짝였다.
특히 이 유리 온실은 안쪽에선 바깥이 보이지만 밖에선 안쪽이 보이지 않아 황후의 초대를 받아 방문하고 싶어 하는 이가 많은 곳 중 하나였다. 녹스가 온실을 앞에 두고 주춤거리자 황제가 웃었다.
“익숙해져야 할 텐데.”
황제가 말하는 사이 온실로 들어갔던 시종들이 서둘러 나오는 게 보였다. 황제는 안쪽을 한 번 들여다보고 준비가 다 됐다고 생각했는지 마치 초대라도 하듯 한 팔을 문 쪽으로 내밀었다.
“들어가게.”
녹스가 다급히 할리드를 바라보았다. 할리드는 온실 안쪽을 고요히 노려보다 이내 녹스의 허리를 둘러 안은 채 안쪽으로 향했다. 머뭇거리던 녹스는 천천히 할리드를 따라 걸음을 옮겼다. 황제는 그 모습을 보며 서늘한 눈초리로 미소 짓다 시종들에게 명령했다.
“부를 때까지 근처에 아무도 얼씬 못 하게 해.”
“예.”
그렇게 황제가 온실 안으로 들어가며 다시 손수 문을 닫았다. 시종들은 입구를 지킬 최소한만을 남겨 두고 전부 물러갔다.
오로지 셋만이 존재하는 유리 온실 안쪽에서 무슨 일이 벌어질지는… 단 세 사람만이 알 것이다.
할리드는 녹스를 유리 온실 안으로 끌고 들어와 잠시 가만히 섰다. 햇빛이 따사로이 비치는 이곳은 음탕한 일을 하기엔 적합하지 않아 보였지만.
“이런 곳에서 하면 또 느낌이 달라.”
황제는 사람 좋아 보이는 웃음으로 그런 소리를 했다.
“온몸, 구석구석이 다 보이거든.”
온실의 북쪽 가장자리에는 나무들이 존재하지 않았다. 다만 바깥 정원과 이어지듯 풍경을 비추고 있었다. 그 앞엔 흰 테이블과 의자가 있었고 그 테이블 위엔 피크닉 바구니가 놓여 있었다.
그 바구니의 존재에 할리드가 의아함을 표시하자 펠티온이 다가가 그 바구니의 윗면을 열었다. 그리고 안에 든 것을 보며 만족스럽게 말했다.
“필요한 건 다 들어 있군.”
녹스는 그 말에 불안감이 들었다. 할리드가 감싸 안고 있던 녹스의 허리에서 손을 떼어 냈다. 그리고 잠시 입술을 달싹였다.
“……폐하.”
그리고 펠티온을 한 번 불렀다. 피크닉 바구니를 들어 바닥에 내려놓던 황제가 허리를 펴고 할리드를 바라보았다. 그리고 그의 얼굴을 보고 웃음을 터뜨렸다.
“자네, 고민하고 있군.”
“…….”
“왜, 그 이후로 꽤 좋았나 보지?”
황제는 마치 할리드의 속을 꿰뚫어 보듯 말했다. 펠티온은 마치 용납하지 못하겠다는 듯한 태도를 취했다. 펠티온이 천천히 다가가 녹스를 품 안에 끌어안았다. 녹스의 몸이 굳었다. 하지만 그러건 말건 펠티온은 녹스의 깃을 헤집고 목덜미에 코를 묻어 숨을 들이켰다. 그러고는 오소소 소름이 돋는 피부 위를 핥았다.
“하지만 할리드, 착각하지 마. 그 교육 이후 고분고분해진 노예가 마음에 든 모양이지만….”
황제가 녹스의 목덜미를 강하게 물었다.
“읏…!”
“노예는 그저 누구든 좆만 쑤셔 주면 발정하는 짐승 같은 것들이라고.”
황제가 비꼬듯 말했다. 녹스는 물린 자국이 화끈거려 이를 악물었다. 할리드는 황제의 품 안에서 파들거리며 떨리는 녹스의 모습을 눈에 담았다.
“네 것이라 한들 다른 놈이 와서 좆을 내밀면 좋다고 다리를 벌리고 쾌감에 떨 것을 사랑스럽다 여기면 어떡하나. 자네만 다치지.”
“…그럴 리가.”
“없다고 생각하나?”
황제가 잔인한 미소를 지었다.
“그러면 내기할까?”
“내기 말입니까.”
“그래. 이 노예가.”
황제의 손끝이 목뼈부터 척추를 지나 꼬리뼈에 닿는 듯하더니 그대로 그 부분을 꾹 눌러 비볐다. 녹스는 원치 않는 그 손짓에 몸을 경직시켰다.
“얼마만큼 그대와의 의리를 지킬 수 있는지에 대해.”
펠티온은 그렇게 말하며 끌어안고 있던 녹스를 흰 테이블로 이끌었다. 반항할 수 없는 녹스는 느릿한 걸음으로 그를 따랐다. 황제는 그를 가뿐하게 안아 올려 테이블 위에 앉혔다.
“이 노예가 진정 주인만을 위한다면.”
펠티온이 테이블 위에 앉은 그의 무릎을 잡아 다리를 벌리게 만들었다.
“다른 사내의 좆엔 가지 않는 게 맞겠지.”
그 말에 녹스의 얼굴이 희게 질렸다. 황제가 억지로 안을 쑤셔 대던 기억이 스멀스멀 타고 올랐다. 견딜 수 있을 리가 없다. 그 폭력적인 움직임을. 그 배려 없이 쑤셔대던 묵직한 존재감을.
“폐, 폐하….”
“쉿.”
녹스가 입을 열자 황제가 그 입을 단번에 다물게 만들었다.
“넌 여기서 무언가 말할 권한이 없어.”
그러고선 할리드를 뒤돌아보았다.
“어때, 할리드. 시험해 보고 싶지 않나?”
할리드는 생각했다. 녹스는 그런 짓을 당하고서도 저를 위해 움직인다. 그 사실이 너무나도 사랑스러워 미칠 것만 같았다. 하지만 그럴 때마다 과거의 기억이 날카로운 창처럼 그를 찔렀다가 찢는다. 하지만 만약 여기서 녹스가 제가 아닌 사내에게서 쾌락을 얻지 못한다면, 내가 아니면 안 된다는 사실을 보여 준다면 아주 조금이지만, 사랑스러워해도 괜찮지 않을까?
그런 말도 안 되는 생각이 머리를 지배했다. 할리드는 느리게 마른 타액을 꿀꺽 삼켰다. 그리고 천천히 녹스를 바라보았다. 하얗게 질린 얼굴, 억지로 벌어진 다리. 그 사이에 자리 잡고 있는 펠티온.
“그럼.”
할리드가 고집을 부리듯 말했다.
“한번 해 보죠.”
주인님, 그런 속삭임이 녹스의 입술에서 새어 나온 듯도 싶었다. 하지만 그 소리는 펠티온의 웃음소리에 묻혔다.
할리드의 허락이 떨어지자마자 황제는 느릿하게 녹스의 단추를 풀어내기 시작했다. 손끝이 피부 위를 스칠 때마다 어깨가 흠칫하며 떨렸다. 황제는 비웃음을 걸치며 그의 조끼와 셔츠를 벗겨 냈다.
아직 아물지 않은 잇자국과 손자국 그리고 물고 빨아 생긴 울혈이 그대로 남아 있는 몸이 보였다. 펠티온은 그 몸을 보며 입맛을 다셨다.
“그래, 좋았을 만하군.”
커다란 손바닥이 어깨를 쓰다듬듯 녹스의 상의를 떨구었다. 그리고 그의 허벅지를 잡아 자연스럽게 당겨 테이블 위에 눕혔다.
할리드는 그 꼴을 보다 녹스의 머리맡에 있는 테이블 의자를 빼내 자리에 앉았다. 그리고 아직 윤기를 잃지 않은 그의 암녹색 머리카락을 부드럽게 쓰다듬었다. 녹스가 이를 악물었다.
“단 한 번도 지켜 본 적 없는 일이지만.”
할리드의 눈동자가 푸르게 빛나며 그를 내려다보고 있었다.
“여기서까지 그런다면 정말 실망스러울 거야 녹스.”
녹스는 테이블에 누운 채 거꾸로 할리드의 얼굴을 올려다보고 있었다. 그의 얼굴은 단단했고 또 묘한 기대감을 표하고 있었다. 큰 손이 녹스의 앞머리를 쓰다듬었다. 그리고 그 어떤 때보다도 단호하게 명령했다.
“참아.”
녹스는 입술을 꾹 깨물었다. 펠티온은 그 모습을 보며 무엇이 그리 재미있는지 입술 꼬리를 올리며 녹스의 하의를 찬찬히 풀어냈다. 스치는 손끝마다 소름이 돋았다. 여기서 자신이 원하는 것은 아무것도 없었다. 하지만 자신이 해내야 하는 일이었다. 녹스는 이제 아무것도 걸치지 않은 자신의 나신을 일부러 내려다보지 않았다.
하지만 펠티온은 햇볕 아래 드러난 단단하고 허연 나신을 핥기라도 하듯 샅샅이 구경하고 있었다. 긴장해 조여든 근육의 모양과 움츠러든 몸을 귀엽다는 듯 손끝으로 툭툭 쓰다듬었다.
“이제 제법 입맛을 돋우는 몸이 됐어.”
어젯밤만 하더라도 할리드의 손에 양껏 괴롭혀졌던 유두는 확실히 피부색보다 짙어져 있었고 처음 봤을 때보다 손톱만큼 커져 있었다. 펠티온은 손톱 끝으로 유두의 끝을 톡톡 건드리며 빙글빙글 돌려 댔다.
“……!”
녹스가 입을 꾹 물었다. 저도 모르게 어깨가 움찔 튀었다. 할리드가 그 맨 어깨를 쓰다듬어 주었다. 마치 그를 진정시켜 주려는 듯한 움직임이었지만 이것이 무언의 압박이라는 것을 녹스는 잘 알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