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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버린 남자의 노예가 되었다-44화 (44/158)

제44화

녹스는 기억 할 수가 없었다. 아무런 빛도 비치지 않는 창고 안에서 그는 손끝이 망가질 정도로 문을 긁고 또 긁어 댔다. 하지만 그는 나갈 수 없었다. 문은 단단히 잠겨 있었고 부술 수 있는 문도 아니었다. 그리고 그는 억지로 문을 부수고 나갈 수 있는 처지조차 되지 못했다.

그는 인간이 아니니까. 짐승이니까. 노예이니까. 녹스가 아무리 자신을 인간이라 생각한다 하더라도 세상은 그를 인간이 아닌 것으로 보니까. 그는 벽을 긁으며 바닥에 주저앉았다. 여전히 아무것도 보이지 않았다.

녹스는 자신의 호흡마저도 존재하지 않는다 생각되기 시작했다. 헉, 헉. 가쁜 숨소리가 바닥으로 떨어졌다. 숨 쉬기가 힘들었다. 살려 줘. 할리드. 그 목소리가 목구멍까지 올라왔다 가라앉았다.

그는 자신을 더 이상 사랑하지 않는다. 어릴 적 자신이 버릴 때 그 마음을 버렸을 아이가 문 바깥에 있다. 자신을 사랑했던 어린 날은 이미 떠났고 그는 이제….

“숨이….”

버티기가 힘들었다. 무엇이 자신을 이렇게 만들었는지도 모르겠다고 생각했다. 녹스는 몇 번이고 문을 긁고, 긁고, 긁고, 긁었다. 손톱이 망가져 버린 것도 모르고 이를 악물었다. 자신은, 잘못하지 않았다. 자신은 결코….

* * *

할리드는 황제와 술잔을 기울이다 늦은 새벽 저택으로 귀가했다. 그는 저택의 입구에 들어서며 생각했다. 일주일, 일주일이다. 녹스가 지하 창고로 들어간 지.

독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 고고한 귀족으로서의 자존심이 아직 꺾이지 않아 그럴지도 모른다는 생각도 들었다. 그래서 그는 일부러 지금까지 창고를 단 한 번도 들여다본 적이 없었다.

할리드는 엄한 주인이었다. 그리고 또 잔혹한 주인이었다. 그는 스스로도 그 사실을 느끼고 있었다. 네가 독하다면 나는 지독하구나.

할리드는 천천히 걸어 자신의 방이 아닌 지하로 향하기 시작했다. 녹스를 가두어 놓은 후 지하 창고에 한 번도 걸음 하지 않은 그는 오늘 황제와 대화하며 깨달은 것이 있었다.

일주일이란 시간은 아무것도 느껴지지 않는 어둠 속에 홀로 있기엔 너무나 긴 시간이라는 것을. 그것을 할리드는 잘 알고 있었다. 자신 또한 그래 본 적이 있으니까. 어릴 적, 그 옷장 안에서….

할리드는 불쾌함에 머릿속에서 그 생각을 지웠다. 어찌 되었든 중요한 것은 할리드가 녹스를 창고에서 꺼내 줄 의향이 생겼다는 것에 있었다.

하지만 녹스가 아직도 자신의 잘못을 인정하고 있지 않는다면? 할리드는 조금 머리가 아팠다. 술을 마신 탓일지도 몰랐다. 하지만 그럼에도 할리드의 다리는 착실히 창고의 문 앞에 섰다. 그리고 그의 이름을 불렀다.

“녹스.”

대답이 없었다. 할리드는 미간을 찌푸리고 다시 한번 그의 이름을 불렀다.

“녹스.”

이번에도 여전히 대답이 없었다. 잠이 들었는지도 모를 일이다. 할리드는 쯧, 혀를 차고 바깥에서 잠가져 있는 문을 열었다. 끼익, 낡아빠진 쇠문이 열렸다. 그리고 그 순간, 무섭게 무언가 달려들었다.

“녹스!”

“주인, 주인님. 주인님….”

녹스였다. 온몸을 날려 안기는 모양새였다. 그는 할리드를 보고 손을 들어 그의 얼굴을 멋대로 더듬었다. 녹스의 눈엔 초점이 없었다. 마치 시력을 잃은 사람처럼 상대가 할리드라는 걸 확신하기 위해 얼굴의 모양새를 더듬듯 손을 움직였다.

녹스는 뒤늦게 그가 할리드가 맞다는 사실을 인식하곤 덜덜 떨리는 다리로 바닥에 무릎을 꿇었다. 커다랗게 뜨여 있지만 빛 한 조각 찾아볼 수 없는 눈동자를 한 녹스는 무릎을 꿇은 채로 할리드의 바짓자락을 붙잡았다.

“제, 제가 잘못했습니다. 주이, 주인님….”

“…….”

“제발, 여기. 여기서 꺼내 주십시오. 주인님. 제가 잘, 잘못, 잘못했습니다.”

그는 빌듯 이야기하고 있었다. 일주일간 잔뜩 헝클어진 머리카락, 지저분해진 옷. 그리고 바싹 마른 뺨과 손끝. 할리드는 녹스의 손끝을 보고 대번에 미간을 찌푸렸다.

손톱의 거의 대부분이 망가져 있었다. 할리드는 그런 것에 대해 보고 받은 기억이 없었다. 녹스는 여전히 그의 앞에 무릎을 꿇고 잘못했다 빌었다. 아니, 홀로 중얼거린다는 것이 맞을 테다.

할리드는 깨달았다. 일주일이란 시간이 너무도 길었다. 할리드는 녹스의 팔을 잡아 억지로 일으켰다. 그러자 녹스가 몸을 벌벌 떨며 할리드의 품으로 파고들었다. 자신을 갈구하는 손짓, 마치 자신을 놓지 말라는 듯 애처롭게 매달리는 몸. 연신 자신을 부르는 목소리. 세상에 자신을 구원할 것은 그밖에 없다는 양.

할리드는 그것이 너무나도. 그래, 너무나도.

“됐어.”

만족스럽다는 감각을 느꼈다.

“주인, 님….”

“아니야. 불안해하지 마. 이걸로 됐다는 거야.”

할리드는 그의 몸을 안아 들었다. 원래보다 말라 버린 몸이 품 안으로 들어왔다. 녹스는 할리드의 목에 팔을 감고 필사적으로 그에게 매달렸다. 자신을 놓지 말아 달라는 듯. 저를 버리지 말라는 듯.

할리드는 그의 심정을 잘 알았다.

자신이 일주일간 옷장 안에 숨어 있었을 때가 떠올랐다. 그래. 그 죽을 것 같았던 그때가 생각났다. 그런데도 지금은 이상하게 기분이 나쁘지 않았다.

“그때, 나를 안아 주었을 때 이런 기분이었나?”

녹스는 대답하지 않았다. 정확히는 대답할 정신이 없다고 하는 것이 옳으리라. 할리드는 웃었다. 그가 이런 기분을 느꼈을 리는 없겠지. 자신이 비뚤어진 거다. 하지만 그는 아무래도 상관없다고 생각했다. 어차피 그는 자신의 것이고 자신의 품으로 파고드는 게 옳았으니까. 틀린 건 아무것도 없다.

할리드는 녹스를 데리고 직접 욕실로 들어갔다. 더럽게 비틀어진 옷을 벗기고 미리 데워 놓은 따뜻한 물에 그를 조심히 내려놓으려 했다. 하지만 녹스가 싫다는 듯 그에게 더욱 들러붙으며 고개를 저었다.

할리드가 조금만 자신에게서 손을 떼려 하면 마치 죽을 사람처럼 굴었다. 할리드는 녹스에게 스읍, 경고를 날렸다. 그러면 그 몸이 바싹 굳었다. 할리드는 그를 욕조 안에 내려놓고 곧장 자신도 옷을 벗어 그 안으로 몸을 밀어 넣었다.

“가만히 있어.”

녹스는 할리드의 명령에 순순히 따랐다. 빛에 아직도 익숙해지지 못한 듯 미간을 찌푸리기도 했다. 할리드는 손수 그의 몸을 닦고 씻기기 시작했다.

녹스의 육체는 본디 균형 잡혀 있었으나 일주일간 제대로 된 식사를 하지 못한 탓인지 얇은 가죽 아래로 근육의 모양새가 만져지는 듯했다. 기본 뼈대가 있어 다행히 연약해 보이진 않았지만 할리드의 손과 비교하자니 잘못 만지면 부러질 것만 같았다.

그렇게 찰박거리는 물소리가 나는 동안 녹스는 생각했다.

어떻게 해야 주인님께 용서받을 수 있을까. 어떻게 해야 저 몸에서 떨어지지 않을 수 있을까. 할리드가 물에 젖은 녹스의 머리카락을 넘겨 주고 뺨을 문지를 때, 녹스는 그 방법을 떠올려 냈다.

녹스가 천천히 입술을 벌려 제 뺨을 문지르던 할리드의 엄지손가락을 가볍게 깨물었다. 그를 그저 씻기려는 의도로만 그의 몸을 매만지던 할리드의 손이 움찔, 멈추었다.

녹스는 그 반응을 잘 알았다. 그는 할리드에게 바싹 자신의 몸을 붙이며 애처롭게 그를 불렀다.

“…주인님.”

할리드는 앞으로 조금 곤란해질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리 떨어지기 싫어해서야. 하지만 그렇게 생각하던 것도 잠시. 할리드는 녹스가 자신의 허벅지 위에 올라타는 것에 눈을 크게 떴다.

“너….”

“으응….”

할리드는 자신에게 엉겨 드는 녹스를 보며 더러운 만족감과 폭력적인 충동이 드는 것을 느꼈다. 이제 막, 창고에서 꺼내 온 자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 큰 손이 녹스의 허리를 붙잡았다. 녹스는 할리드의 허벅지에 올라탄 채로 손을 뒤로 하여 할리드의 좆대를 쥐었다. 그리고 슬금슬금 문지르며 단단해지길 기다렸다.

할리드가 미간을 찌푸렸다. 누구도 아닌 그의 손에 제 좆이 잡히면, 금세 발기 하는 것은 일도 아니었다. 수 초 만에 단단해진 것을 붙잡은 녹스가 그것을 성급하게 제 구멍에 맞추었다. 할리드는 다시 한번 스읍, 소리를 냈다. 그 소리에 녹스가 움찔거리며 할리드의 눈치를 살폈다. 할리드는 녹스의 유두를 살짝 깨물고 속삭였다.

“이게 가지고 싶어?”

“흐으, 예, 예….”

할리드는 자신의 것을 쥐고 흔들면서 녹스의 엉덩이를 몇 번 때렸다. 녹스가 바르르 떨며 할리드의 목덜미에 뺨을 비볐다. 할리드는 하아, 한숨을 내쉬며 다른 손으로 녹스의 엉덩이를 꽉 쥐었다.

“엉덩이 잡아 벌려.”

녹스는 할리드의 어깨에 기대 엉덩이를 조금 내밀고 제 둔부를 잡아 벌렸다. 그와 동시에 일주일간 쑤셔 놓지 않아 다시 꾹 다물린 구멍이 드러났다. 할리드는 그 구멍을 부드럽게 쓰다듬으며 검지로 입구를 매만졌다. 예민한 입구를 문지를 때마다 녹스의 몸이 흠칫거렸고 꽉 맞물린 몸 탓에 그 움직임이 고스란히 할리드에게 전해졌다.

“힘 빼.”

녹스는 애초에 몸에 힘이란 게 들어가지 않는 상태였다. 온몸에 힘이 없었다. 할리드를 붙잡은 팔에도 힘이 없어 덜덜 떨리고 있었다. 할리드는 그런 녹스를 달래듯 등을 쓸어내리며 천천히 손가락을 밀어 넣었다. 좁디좁은 틈새가 손가락에 밀려 억지로 열렸다. 녹스가 흐윽, 작은 침음을 뱉었다. 그 침음이 고스란히 피부를 타고 전해졌다. 할리드는 어쩐지 바짝 마르는 것 같은 입술을 혀로 축이며 천천히 가위질하듯 구멍을 늘려 갔다. 구멍은 할리드가 늘리면 늘리는 대로 점점 넓어져 갔다. 녹스의 파들거리는 몸이 마치 안달이라도 난 듯 가볍게 허리를 흔들거렸다. 할리드는 이를 악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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