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48화
혀끼리 얽혀 젖은 소리가 날 때 하인들은 자연스레 눈을 바닥으로 깔았다.
이 둘이 허구한 날 붙어먹는 모습에야 익숙했지만 이리 입을 맞출 때면 마치 사랑하는 사람들의 입맞춤 같아 보여서 사람의 낯을 간지럽게 하는 게 있었다. 그저 주인과 노예일 뿐임에도.
할리드는 퍽 다정하게 입을 맞출 줄 알았다. 하지만 조급했다. 녹스는 조금 버거워하면서도 그를 따라가기 위해 그의 옷깃을 잡아 가며 입술을 벌렸다.
입맞춤이 길어지자 하인들은 조용히 할리드의 옷가지 따위를 챙겨 방 밖으로 나갔다.
할리드는 한참 동안 녹스의 혀를 맛보다 놓아주었다. 녹스의 아랫입술이 발갛게 부었다. 할리드는 그 입술을 내려다보며 입맛을 다셨다. 저 입 안에 제 것을 처넣고 싶은 욕구가 머리를 디밀었다.
“흐….”
입맞춤이 끝난 뒤, 녹스가 가볍게 숨을 헐떡이자 할리드는 그의 둔부를 쥐어 제 쪽으로 바싹 붙였다. 그리고 곧이어 그를 안아 들었다. 녹스가 자연스럽게 할리드의 목에 팔을 감았다. 할리드는 기분이 좋은지 목 안으로 가르랑거리며 그를 침대 위에 눕혔다. 그리고 제 바지춤을 풀며 단단하게 세운 제 좆대를 꺼내 들고 선단을 녹스의 부은 입술에 비볐다. 녹스는 자연스럽게 그것을 손으로 쥐고 말랑한 귀두 끝에 입술을 비볐다. 요도 부근을 꾹꾹 눌러 비비면 느른한 숨이 머리 위에서 떨어졌다.
“하아…. 폐하께서, 이번 연회에, 널 데리고 오라던데.”
그 말에 녹스가 미간을 조금 찡그렸다.
“아…. 황제 폐하께서 말입니까?”
녹스가 입술을 자그맣게 벌려 선단을 입 안에 넣었다. 할리드가 으르렁거렸다.
할리드로서는 마음에 들지 않는 상황이었다. 이제 완전히 제 손에 떨어진 녹스를 누군가와 공유하고 싶지 않았다.
하지만 황제는 할리드와 개인적인 대화를 할 때면 늘 녹스에 대한 이야기를 꺼내 들었다. 이에 부정적인 반응을 보여도 재미있다는 듯 계속해서 그를 놀려 댔다. 할리드로선 미간을 찡그린 채 그의 말을 무참히 씹어 버리는 것 외에는 도리가 없었다.
녹스가 귀두를 쭙쭙 소리 나게 빨자 할리드의 허리가 가볍게 떨렸다. 녹스는 입을 벌리고 할리드가 더 안으로 좆대를 밀어 넣어 주길 기다렸다. 할리드는 누워 있는 녹스의 머리 쪽으로 허리를 천천히 붙였다. 점점 안쪽으로 기어들어 오는 감각에 녹스는 목구멍을 한껏 열었다.
“꽤, 보고 싶은 모양이야.”
할리드가 불만스럽게 말해도 이제 녹스는 대답할 수가 없었다. 그의 좆을 입에 물고 웅얼거리는 게 다였다. 할리드는 그 모습을 보고 설핏 웃었다.
“너는 어떤가, 응?”
좆 하나로는 부족하지 않아? 하고 음란한 의도를 담은 물음이 던져졌다. 녹스는 할리드의 것을 목구멍으로 한껏 조이며 빨다가 곧 그것을 빼앗겼다. 할리드가 녹스의 대답을 듣고 싶다는 듯 허리를 물려 입 안에 있던 것을 쑥 빼냈기 때문이다. 녹스는 젖은 제 입술을 핥고 정해져 있는 대답을 뱉었다. 어차피 자신이 여기서 할 수 있는 말은 하나밖에 없었다.
“주인님만 있다면 상관 없…!”
으르릉, 한껏 흥분한 할리드의 것이 다시 입 안에 처박혔다. 순식간에 목구멍 끝까지 들어온 감각에 녹스의 눈가로 열이 몰렸다. 녹스는 최대한 목구멍을 활짝 열고 주인님의 것을 받아먹기에 급급했다.
할리드는 그 젖은 목구멍 안으로 제 것을 처박은 채 한참을 가만히 있었다. 녹스는 젖어 가는 눈을 느끼며 고개를 살짝 틀고 더 깊게 그의 것을 받아들였다. 그리고 볼이 홀쭉하게 패도록 쭙쭙 그의 겉을 빨고 그의 울퉁불퉁한 핏줄을 혀로 따라 그리듯 핥았다.
만족스러운 한숨이 머리 위에서 들린다. 녹스는 오늘도 그를 만족시키기 위해 제 몸을 열었다.
* * *
수도는 타국의 사신들이 방문한다는 사실에 한껏 들떠 있었다. 새 황제가 황태자의 목을 베며 황위에 올랐으나 타국의 인정을 받는다는 뜻이었으니까. 그를 축하할 외국의 사신들이 줄을 잇는다는 소문이 파다하게 퍼졌다. 좋은 징조였다.
황실은 사신들을 받기 위해 황궁을 단장하기 바빴다. 아직 황제가 미혼이니 수많은 왕국의 왕들이 딸을 황후로 만들기 위해 애를 쓸 테다.
물론, 물밑에서는 이미 황제의 은밀한 소문을 들은 이들이 어여쁜 남 노예들을 데리고 황실을 방문하기 위해 준비를 하고 있었다.
어쩌면 자신의 아름다운 아들을 내세울 자마저 있을지 몰랐다.
황제는 오늘 할리드를 불러 점심 식사를 함께하기로 했다. 하지만 할리드는 알았다. 저 능글거리는 작자가 사실은 자신이 아닌 녹스를 보기 위해 저를 불러들인다는 사실을 말이다. 할리드는 녹스를 꼭 ‘지참’하여 오라는 황제의 상냥한 편지에 콧잔등을 찡그렸다.
녹스는 그 편지를 들여다보며 정말 그냥 물건 취급이구나 싶었다. 딱히 틀린 말도 아니기에 별다른 신경은 쓰지 않았는데 아무래도 할리드, 제 주인의 심보가 단단히 틀어진 듯싶었다.
“새로 내온 옷으로 갈아입어.”
“예.”
녹스는 할리드가 따로 준비한 듯 보이는 옷을 집어 들며 속으로 혀를 찼다. 하의부터 상의까지 끈과 단추로 단단히 잠겨 있는 옷은 마치 부인을 단속하기 위한 남편의 애처로운 노력의 산물 같았다.
이렇게 입기도 벗기도 힘든 옷은 도대체 어디서 난 걸까. 일부러 벗기려면 찢어 내는 방법도 있는데 괜한 곳에 신경을 쓴다 싶었다.
그래도 그의 면전에 대놓고 그리 말할 수는 없기에 녹스는 얌전히 그리고 천천히 그 옷을 입었다. 황제가 뜬금없이 손장난을 쳐 옷을 풀어 대는 것은 확실히 곤란했기 때문이다.
녹스는 능숙하게 그 복잡한 옷을 걸쳤다. 할리드는 우아하게 움직이는 녹스의 손가락을 바라보다가 천천히 녹스의 뒤로 다가왔다. 숨결이 목 뒤에 닿았다. 녹스는 잠시 미간을 찌푸리고 그를 불렀다.
“주인님.”
“왜.”
“바로 가셔야 한다는 사실을 아시지 않습니까.”
“알아.”
녹스는 이 복잡한 옷을 다시 벗었다 입고 싶지 않았다. 아니 애초에 그가 지금 제게 달려든다면 옷이 남아나지 않을 게 뻔했다.
녹스는 옷의 마지막 단추를 잠그고 나서 할리드 쪽으로 뒤돌았다. 그리고 그에게 가까이 다가갔다. 할리드는 손을 뻗어 단번에 그의 허리를 감아 당겼다. 녹스는 그의 몸에 붙어 속삭였다.
“마차에서 빨아 드릴 테니 조금만 참으십시오.”
“…….”
“황제 폐하와의 약속에 늦어서야 되겠습니까.”
불만족스러운 목 울림이 울리기에 녹스는 그의 목울대에 입을 맞췄다. 그러면 으르렁거림이 귀신같이 가라앉았다. 녹스는 속으로 한숨을 내쉬었다. 그냥 다 내려놓으면 이렇게 편한 것을.
하지만 그는 종종 생각하곤 했다. 내가 누군지, 여기에 왜 있는지 모르겠다거나, 내일 아침 해가 떠오르지 않았으면 좋겠다거나. 하지만 그는 그 어느 때보다도 평온해 보였다. 그 아이러니한 상태의 녹스는 겉보기엔 아주 훌륭해 보였다. 그러니까 훌륭하고 아주 사랑받는 노예 같아 보였다는 뜻이다.
“어쩔 수 없군.”
할리드는 결국 참아 내는 데 성공했다. 녹스는 그를 따라 1층으로 내려간 뒤 마차에 올랐다.
마차엔 단둘이 탔으며 마차의 문이 닫히자마자 녹스가 할리드의 다리 사이로 기어들어 간 것은 모두에게 비밀이었다.
누구나 다 아는 사실을 비밀이라고 부를 수 있다면 말이다.
마차는 덜컹거리며 달렸고 얼마간의 시간을 소비하여 황궁 정문을 지나 황제의 궁 앞에 닿았다.
녹스는 입 안이 조금 텁텁한 것을 참으며 침을 한 번 삼켰다. 마차 안이 열기로 후끈거렸다.
머리를 겨우 정돈한 녹스가 먼저 마차에서 내렸다. 할리드도 그 뒤를 따라 내리려는데 녹스가 마치 에스코트라도 하듯 손을 내밀어 왔다.
할리드가 진심이냐는 눈으로 바라보았고 녹스는 뭐가 문제냐는 듯 바라보았다. 할리드는 고개를 저으며 한숨을 내쉬곤 훌쩍 마차에서 뛰어내렸다.
그 모든 장면을 마중 나온 시종들이 보고 있었다. 시종들은 묘한 눈빛으로 녹스를 바라보다가 이내 아무것도 못 본 사람처럼 두 사람을 안내하기 시작했다.
언제 보아도 황금색으로 번쩍거리는 복도는 눈을 어지럽게 만들었다. 그 현란한 복도를 지나 황제의 식당에 닿으면 백금으로 칠한 문이 보였다.
“할리드 비아 공작님께서 오셨습니다.”
시종은 그의 도착을 알리고 백금으로 칠한 문을 열었다. 그러면 주름 하나 없는 흰 식탁보의 테이블과 흰 테에 붉은 벨벳을 씌운 의자들이 보였다.
할리드는 곧장 들어가 자신이 늘 앉던 자리에 앉았다. 미리 앉아 있던 황제가 그런 그를 환영했다.
“이젠 허락도 없이 앉는군.”
“어차피 앉을 거 생략하면 편하지 않습니까.”
“이젠 말로 지지도 않고.”
황제는 그런 말을 하다 곧 할리드의 뒤에 서는 녹스를 바라보았다. 그리고 능글맞게 몸을 기울이며 물었다.
“마차에서 무얼 했기에 이리 늦었나.”
“몇 분 안 늦었습니다.”
“마차가 도착하고 한참이 지나서야 나왔다는데. 홀로 재미를 보니 좋았나?”
“시끄럽습니다. 폐하.”
“저런, 내게 시끄럽다니. 그럼 다른 쪽을 찔러 봐야지.”
그렇게 말한 황제는 할리드의 뒤에 얌전히 선 녹스를 바라보았다. 녹스는 그런 황제를 철저하게 외면했다. 황제는 입맛을 쩝, 한 번 다시더니 곧 손을 들어 음식들을 내오라 명령했다.
그의 손짓 한 번에 입구의 반대쪽 문이 열리며 요리들이 날라지기 시작했다. 그런데 이상한 것이 있었다. 준비된 식기가 총 세 사람의 것이었다. 할리드가 눈썹을 치켜올리자 황제가 웃으며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