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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버린 남자의 노예가 되었다-54화 (54/158)

제54화

“지금 내 말이 안 들리나.”

“아. 죄송합니다.”

“네가 왜 이따위 것을 하고 있냐고 지금 묻잖아!”

“그게….”

“누가 시켰나? 누가 네게 이딴 걸 시켰지?”

“아니, 그게 아니라….”

“당장 이름을 대.”

“주인님, 잠시만 진정해 보십시오.”

녹스는 걸레를 쥐고 있던 손이라 차마 할리드에게 손대지 못하고 어정쩡하게 허공에 손을 들고 있었다. 할리드는 녹스의 손에 쥐어진 걸레를 빼앗아 바닥에 내던지고 양동이를 바라보았다. 양동이의 물은 많이 더러워져 있었다. 이 짓거리를 시작한 지 꽤 되었다는 소리였다. 그는 목으로 당장에 으르렁거렸다. 그리고 하녀장인 마를렌을 찾기 시작했다.

“마를렌!”

그의 노호가 들리자 사용인들이 빠르게 이 사태를 마를렌에게 알렸다. 어디선가 일을 보고 있던 마를렌이 헐레벌떡 뛰어왔다. 얼마나 빠른지 저기서부터 여기까지 이십 초도 걸리지 않은 것 같았다. 마를렌은 할리드의 앞에 서서 머리를 숙이고 대답했다.

“찾으셨습니까.”

“누가 녹스에게 걸레질 따위를 시켰지?”

“예?”

마를렌은 눈을 크게 뜨고 녹스를 바라보았다. 그리고 저 멀리 던져진 걸레와 양동이를 보고 잠시 혼란스러운 눈을 했다.

“그건 녹스가 아니라….”

“주인님, 주인님.”

녹스는 일단 할리드를 진정시키기 위해 그의 옷깃을 살짝 잡았다. 걸레를 쥐어 더러워진 손으로 그를 붙잡을 수는 없으니까. 녹스가 옷깃을 당겨 오자 할리드가 고개를 돌렸다. 그의 얼굴에선 지울 수 없는 노기가 느껴졌다.

“제 말을 좀 들어 주십시오.”

“무슨 말.”

그의 목소리가 들끓었다. 녹스는 할리드의 속을 참 알 수 없다고 생각하면서도 천천히 설명을 이어 갔다.

어린 하녀의 이야기부터 자기가 직접 나갈 수 없으니 하녀를 보내고 자신이 일을 대신해 주고 있었다는 것.

거기에 강요는 없었으며 자신이 스스로 나선 게 맞다는 점을 강조했다.

“다른 하인에게 시키면 되잖아.”

할리드는 화가 조금이나마 가라앉은 건지 아니면 여전히 상황이 마음에 들지 않는 건지 모를 음성으로 말했다.

“다른 하인들도 각자 맡은 바가 있지 않습니까.”

“그래도 네가 이따위 걸 할 정도는 아니야.”

“다음부터는 그렇게 하겠습니다.”

할리드는 녹스의 얼굴을 한참 동안 노려보다가 한숨을 내쉬었다. 그리고 마를렌에게 턱짓했다. 마를렌은 눈치가 빠른 하녀장답게 걸레와 양동이를 쥐고 얼른 다른 곳으로 사라졌다. 할리드는 녹스의 허리를 감아 안고 말했다.

“…다음부터는.”

“예. 하지 않겠습니다.”

“그래.”

할리드는 녹스의 허리를 받친 채로 걸음을 옮겼다. 녹스는 그를 따라 걸었다. 녹스의 머리카락은 약간의 땀으로 젖어 있었다. 아무래도 계단을 닦는 일이 체력적으로 쉬운 일은 아니었던 터였다.

할리드는 혀를 한 번 차고 그를 데리고 자신의 방으로 향했다. 그리고 목욕을 준비하라 명령했고 그의 흐트러진 머리를 넘겨 주었다.

“미련하게 거기서 왜 그걸 대신해 주고 있어.”

“다시 한번 말하지만 제가 스스로….”

“알았어.”

“그 하녀에게 뭐라 하시면 안 됩니다.”

“알았다고 했잖아.”

할리드는 쯧, 혀를 차고 그를 데리고 욕실로 향했다. 녹스는 얌전히 그를 따라 들어갔다. 따뜻한 물이 차오르고 있는 욕조 안에선 김이 뿌옇게 오르고 있었다. 녹스는 손을 뻗어 할리드의 옷을 벗기기 시작했다. 마치, 오래전에 할리드가 자신의 시중을 들었던 것처럼.

할리드는 자신의 옷을 벗기는 녹스를 가만히 내려다보았다. 그는 노예치곤 손끝이 지나치게 우아했다. 단추를 열고 끈을 푸는 손길이 그러했다. 할리드는 며칠 전 밤을 떠올렸다. 그러니까 녹스가 목마에 잔뜩 엉망으로 범해진 후 기절한 날 밤 말이다.

“그때 말이야.”

“예.”

“황제 폐하의 옷을 잡았었지.”

그 말에 녹스가 움찔거렸다. 그에 대한 벌은 이미 받았다고 생각했다. 그도 그럴 것이 녹스가 깨어난 다음 날 밤. 녹스는 할리드에게 말 그대로 혼이 났다.

‘열 대.’

‘흐으, 네에….’

침대 위에서 할리드의 무릎 위에 엎드려 구멍을 양껏 쑤셔진 다음, 말 그대로 엉덩이를 맞았다. 할리드의 손바닥은 크고 두껍고 또한 단단했다.

짜악-!

엉덩이를 손바닥이 내려칠 때마다 숫자가 아닌 비명과 비슷한 신음이 흘러나와 계속해서 숫자를 처음부터 세어야 했다. 그렇게 몇 대를 맞았는지 모르겠다.

녹스는 멈칫했던 손을 움직여 할리드의 하의를 풀기 시작했다. 그리고 한쪽 무릎을 꿇고 그를 올려다보았다.

“한 번 더 벌을 받을까요. 주인님?”

녹스가 할리드의 앞섶을 풀고 드러난 속옷 위로 뺨을 비볐다. 그러면 할리드의 것이 부드러운 뺨에 비벼져 조금씩 힘을 받아 부풀어 오르는 것이 선명하게 느껴졌다. 할리드는 손을 뻗어 녹스의 머리카락을 쓸어 넘겼다.

“어떻게 해야 네가 네 주인을 언제든 알아볼까….”

녹스가 적당히 부푼 속옷 위를 입술로 문지르며 웅얼거렸다.

“죄송, 합니다. 주인님. 용서해 주세요….”

할리드는 이제 제법 애교를 피울 줄 아는 녹스의 머리를 쓰다듬었다. 녹스는 할리드의 기분이 이것 하나로 조금 풀렸다는 걸 눈치챘다. 그렇게 녹스는 할리드의 옷을 마저 벗겼다.

할리드는 느른히 욕조 안에 들어가 앉았으며 이어 옷을 벗는 녹스의 모습을 구경하였다. 단정하게 입혀진 시종복이 하나씩 바닥으로 떨어지고 맨몸이 드러나자 그는 녹스의 몸을 천천히 훑어 내렸다.

녹스는 가리는 것 없이 제 몸을 할리드에게 고스란히 내보였으며 이내 욕조로 들어와 그의 허벅지 위에 올라 마주 보고 앉았다. 할리드는 녹스가 이렇게 하는 것을 좋아했다. 녹스는 제 엉덩이 아래 단단하게 선 것을 느끼며 가볍게 허리를 흔들었다. 회음부 사이에 할리드의 것이 끼워져 비벼지는 감각이 꼬리뼈부터 간질간질하게 타고 올랐다. 할리드 또한 만족스러운 그르렁거림을 흘리며 녹스의 허리를 만지작댔다. 녹스는 허리를 바싹 세워 곧 할리드의 입술에 제 유두를 가져다 대고 비볐다. 할리드는 입술로 유륜과 유두를 꾹 누르다 이내 입을 벌려 베어 물듯 삼켰다.

“아…!”

가벼운 신음 소리가 흘렀다. 으응, 흐. 쭙쭙 소리가 나도록 젖꼭지를 빠는 소리가 이어졌다. 이를 세워 말랑한 유륜을 핥다가 이내 끝을 깨문다. 녹스는 어깨를 떨며 할리드의 머리를 감싸 안았다.

할리드는 제 양껏 녹스의 유두를 입 안에서 굴리다 곧 다른 쪽 유두를 입 안에 넣었다. 발그레 올라온 색이 어여뻤다.

할리드는 이내 가슴 사이에 진하게 울혈을 남긴 후 녹스의 턱 밑에 입 맞췄다. 간지러운 감각. 녹스는 뜨거운 물에 온몸이 노곤해지면서도 할리드의 입술과 손가락이 닿을 때마다 찌릿하게 전율이 이는 감각에 크게 숨을 내쉬었다.

할리드는 그런 녹스의 반응을 하나하나 살피며 곧 아래로 손을 가져갔다. 그리고 검지를 부드럽게 밀부로 밀어 넣으며 말했다.

“폐하께서 널 또 부르시더군….”

“후으, 아…. 그렇, 습-, 니까?”

“그래. 그때 널 안지 못한 게 영 걸리시는 건지.”

쯧. 할리드가 혀를 찼다. 할리드의 기분이 더 나빠지기 전에 무엇이라도 해야 한다고 생각한 녹스는 할리드의 손가락을 삼킨 채 허리를 스스로 가볍게 흔들었다. 제 노예의 치태에 할리드는 설핏 웃고는 손가락을 깊숙이 꾹 밀어 넣어 내벽을 쓰다듬었다.

“왜, 가서 또 옷깃이라도 붙잡고 싶나?”

“아, 아닙, 흐읏, 니다…. 저는, 주인, 님. 윽, 밖에 없….”

“당연히 그래야지.”

할리드의 낮은 목소리에 녹스는 그의 심기가 더 어그러지지 않게끔 고개를 끄덕이며 더 해 달라는 듯 엉덩이를 꾹 눌러 손가락을 품은 채 좆대를 비볐다.

“욕심만 많아져선….”

“하아, 흐….”

녹스는 신음을 흘리며 할리드를 가맣게 가라앉은 눈으로 보고 있을 뿐이었다. 그 검은 눈이, 할리드는 그저 그림자가 진 줄 알았다. 그래, 정말 그 정도인 줄로만 알았다.

그렇게 욕조 안에서의 신음은 더욱 커졌고 모든 게 끝난 후, 반쯤 늘어진 녹스를 안고 나오는 할리드의 모습은 사용인들에게 매우 익숙했다.

* * *

점심이 지난 오후. 그날도 할리드는 일정이 있어 아침 일찍 녹스를 두고 저택을 나섰다. 할리드가 없는 저택은 녹스에게 텅 빈 상자나 마찬가지였다. 평화로운 것을 떠나 아무것도 없는 공간과 마찬가지라는 말이다. 느껴지는 것도 생각할 것도 없는 곳.

만약 예정에 없던 손님이 방문하지 않았다면 아마 그날도 평소와 똑같은 날이 되지 않았을까.

그 불청객은 당당히 비아 저택의 정문에 섰다. 제국에서 유행하지 않는 양식의 마차는 채도가 낮은 파란 빛이었으며 백금으로 꾸며져 있었다.

저택의 경비병들이 그 마차를 막아섰고 마차는 순순히 입구에 섰다. 푸른 마차 바깥에는 커다란 새의 문양이 새겨져 있었다. 마차의 마부석에 앉아 있던 남자가 바닥으로 내려와 경비병들에게 알렸다.

“이분은 발레리안 왕국의 세인더스 발레리안 왕태자이시다. 황궁으로 가는 길에 비아 공작 각하를 뵙고자 이리 친히 발걸음하셨으니 문을 열라.”

검은 머리를 말끔하게 넘긴 왕태자의 시종은 마치 자신이 왕이라도 되는 것처럼 말했다. 어깨가 부푼 옷과 딱 달라붙는 하의. 제국과는 전혀 다른 복장의 남자가 나타나 그들에게 명령하듯 말하자 경비병들은 크게 당황했다. 경비병 중 한 명이 다급히 저택 쪽으로 향했고 남은 한 명이 공손히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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