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71화
“그래서 녹스가 싸웠다는 그 왈패들은?”
그러자 푸른 마법석 안에서 음성이 들려왔다.
“멀리서 지켜보느라 정확히는 알 수 없지만 골목으로 들어가 한참 나오지 않기는 했습니다. 어린 하녀는 바깥에서 기다리고 있었고요.”
“그래서.”
“제 생각에는 아마 안쪽에서 누군가를 도와주다 싸움에 휘말린 게 아닐까 싶긴 합니다.”
“그렇단 말이지.”
할리드는 녹스의 행적을 보고받으며 무언가 뻑적지근함을 느꼈다. 신분 패. 그 별것 아닌 것을 대체 어디에 쓰겠다고 가져갔을까. 대귀족의 하인이라는 신분 패가 있으면 웬만한 곤란한 상황은 해결이 되는 게 맞기는 했지만.
“앞으로 더 자세히 살펴.”
“알겠습니다.”
할리드는 기묘한 불안감이 들어 그렇게 명령했다. 녹스를 미행하던 자는 응답과 함께 통신을 끊었다.
“녹스, 무얼 하려는 건 아니겠지?”
설마, 아닐 거야. 이렇게 평화로운 때에 무얼 하려고. 할리드는 자신의 집무실에서 느리게 눈을 감았다. 부디 이 평화가 깨어지지 않기를 바랐다.
* * *
녹스는 그 뒤로 에나와 외출하는 척 필요한 물건들을 하나둘 사 모으기 시작했다. 그마저도 약간의 건량과 뒤집어쓸 수 있는 싸구려 로브 하나가 전부였지만.
녹스는 자신에게 아마 미행이 있을 거라고 짐작했다. 제 감각에 걸릴 만큼 가까이 있는 것 같지는 않지만 할리드가 자신을 그냥 풀어놓을 리는 없다고 생각했다. 그는 천치가 아니었다. 그나마 제가 알아챌 수 없을 정도의 거리에서 지켜본다는 게 다행인 건가. 너무 가까이 오지만 않으면 모든 상황을 파악하기는 힘들 테다.
“오늘 살 건 다 산 건가요?”
에나가 봉투 안에 들어 있는 로브와 건량 따위를 바라보며 말했다.
“대충은.”
“그걸 그 방에 있는 애한테 가져다주면 되는 거죠?”
“그리고, 내일 12시까지 성문 앞으로 나오라고 전해 주십시오.”
이렇게 중간 다리 역할은 에나가 하면 문제없었다. 에나는 어쨌든 저택 밖에 집이 있는 하녀라 밖을 오고 가는 게 이상하지 않은 상황이었다. 미행은 자신만을 따라다닐 테니 에나가 어딜 다니는지 크게 신경 쓰지 않을 것이다.
‘대충 속아 넘어갔으면 좋겠는데.’
가장 이상적인 것은 에나가 제메일을 데리고 성문으로 가는 것이지만 에나에게 그런 부담을 주고 싶지는 않았다. 만에 하나 들키기라도 한다면 에나의 목숨은 장담할 수 없을 것이고.
녹스는 제 아랫입술을 문지르며 생각에 잠겼다. 그는 일반 하인으로 위장하고 사촌 동생인 제메일을 심부름꾼인 척 성문을 통과시킬 작정이었다. 일반 하인들 중 성 밖의 물건을 구하기 위해 부랑자들에게 돈을 조금 나누어주고 심부름을 시키는 경우가 종종 있어서 크게 의심을 살 만한 일은 아니었다. 다만.
‘만약 정말 미행이 있다면 내가 성문 근처로 갔다는 사실 하나로 문제가 될 거야.’
다만 미행하는 자가 자신이 성문 근처에 있는 것을 보더라도 보고하는 데까지 시간이 걸릴 것이다. 특히 할리드가 황궁에 들어가 있을 때는 더더욱. 황궁은 아무나 들어갈 수 있는 장소가 아니니까.
마침 할리드는 내일 황궁에 들어갈 일이 있었다. 그러니 낮에 제메일을 빠르게 내보내고 다시 저택으로 돌아와 있으면 아무런 문제가 되지 않을 것이다. 아무런 문제가….
‘그런데 왜 이렇게 불안할까.’
녹스는 아랫입술을 한 번 깨물었다. 아니다. 이런 불안감에 흔들릴 때가 아니었다. 자신이 조금만 틈을 보이면 이 일은 모조리 망가질 수도 있었다.
저녁 즈음, 에나와 헤어져 저택으로 돌아오니 어쩐지 불만스러운 얼굴의 할리드가 녹스를 기다리고 있었다.
녹스는 잠시 또 무엇이 불만인가 싶어 그에게 다가가 허리를 끌어안았다. 녹스가 허리를 끌어안아 오자 삐딱하게 서 있던 눈썹이 차츰 가라앉는다.
“요즘 그 어린 하녀와 나다니는 곳이 많군.”
“어린 하녀에게 그만한 일을 시킨다는 걸 처음 알았습니다.”
“어린 하녀에게 그만한 일을 시키는 주인이라고 항의하는 건가?”
“그런 걸 수도 있습니다.”
녹스는 할리드를 방심시켜 놓을 이유가 있었다. 부디 이 수작이 그에게 들키지 않고 끝나기를.
이제 하나 남은 어린 소년 하나가 무사히 수도 밖으로 나가기를 녹스는 바라고 또 바랐다.
녹스가 잠시 먼 곳을 보고 있자 할리드가 허리를 숙여 입을 맞춰 왔다. 녹스는 눈을 깜빡이곤 입술을 벌렸다. 입술이 벌어지자마자 할리드의 혀가 침범해 왔다. 혀끼리 엉킨 소리가 노골적으로 들려왔다.
삼키지 않은 할리드의 타액이 녹스의 혀를 타고 내려와 녹스의 입 안으로 흘러들었다. 그럼 녹스는 혀를 비비다 이내 꼴깍, 하고 흘러넘친 타액을 삼켜 냈다.
그러면 할리드는 만족스러운 눈으로 입술을 떼어 냈다. 할리드는 녹스가 고분고분하게 굴기 시작하면서 꽤 부드러워진 면이 있었다. 황제와 셋이 할 때는 그렇지 않았지만. 이렇게 둘이서 분위기를 타 버리면.
“주인, 님…. 방으로.”
“난 복도도 괜찮아.”
할리드의 큰 손이 녹스의 작은 둔부를 강하게 쥐고 제 쪽으로 당겨 댔다. 녹스는 할리드의 어깨를 미는 대신 더 가까이 기대며 고개를 저었다. 할리드는 마음에 들지 않는다는 듯 쯧, 혀를 차면서도 그의 말대로 방을 향해 걸음을 옮겼다. 허리에 감은 팔은 여전히 풀지 않아 녹스 역시 급히 그의 걸음을 따라 걸었다.
“오늘 일정은 끝이던가요.”
“오후 약속은 없다.”
“아.”
그렇다는 건 한 번 뒹굴고 나서 집무실에 처박혀 일을 보겠다는 의미였다. 종종 너무 심취한 나머지 시간을 잊을 때도 있지만 그의 부관들이 세 번쯤 노크를 하면 신경질을 내듯 자리에서 몸을 일으키긴 했다. 녹스는 그의 방으로 따라 들어가며 주변을 둘러보았다.
할리드는 대귀족이 된 지 얼마 되지 않아 방에 아무도 대기시켜 놓지 않는 쪽을 좋아했다. 그, 자신의 무위가 가장 강력하기도 하고.
녹스는 그것이 참 다행이라고 생각했다. 아무에게도 그런 모습을 보이지 않아도 되니까.
“주인님.”
녹스는 익숙하다는 듯 볼로 타이를 가장 먼저 벗어 놓곤 조끼와 셔츠의 단추를 풀었다. 그러면 할리드는 기다렸다는 듯 달려들었다. 녹스의 허리를 붙잡아 당장에 안아 들어 침대로 자리를 옮겼다. 푹신한 침대가 크게 한 번 흔들렸다.
‘성격도 급해서….’
그는 맨피부가 드러나자마자 입술부터 붙이는 할리드를 내려다보며 그의 머리카락을 쓰다듬어 주었다. 뒷목이 살짝 덮일 정도로 긴 회금빛 머리카락이 손가락에 엉겨 왔다.
“아…!”
“집중해.”
할리드가 유두 끝을 이로 물곤 속삭였다. 녹스는 고개를 끄덕이곤 셔츠와 조끼 따위는 팔을 빼내 벗어 버리고 곧 자신을 내려다보는 할리드의 뺨을 쓰다듬었다. 할리드는 그의 손안에 제 뺨을 비비다 곧 손바닥 안쪽 깊숙이 입을 맞췄다.
“나도 너한테 거칠게 굴고 싶진 않아.”
“거짓말.”
“…….”
할리드는 할 말을 찾지 못한 듯 입을 다물었다. 그리고 그대로 자신이 물었던 유두에 다시 입술을 가져갔다. 이미 두 남자에게 유린당할 대로 당한 유두는 원래보다 조금 더 커져 있었다. 딱, 빨기 좋게.
할리드는 부드러운 살덩이를 입 안에 넣고 쭙쭙 소리가 나도록 빨았다. 이럴 때마다 녹스는 그가 아직도 어린아이 같단 생각을 했다. 이런 되먹지도 않은 음란한 상황 속에서.
“읏…!”
할리드가 유두를 빨다 슬쩍슬쩍 이를 세워 긁으면 녹스가 움찔거리며 어깨를 뒤틀었다. 할리드는 살살 뜬 허리를 쓰다듬으며 녹스의 하의를 풀어 내렸다. 맨 허벅지가 드러나고 그 단단한 허벅다리가 손안에 잡히면 할리드는 허리를 세우고 거추장스럽다는 듯 그의 바지를 저 멀리로 던져 놓았다. 녹스의 속옷은 하의에 딸려 내려가 반만 걸쳐져 있었다. 할리드가 그 속옷마저 거칠게 벗겨 내려 하면 녹스는 그가 속옷을 벗겨 내기 편하도록 다리를 움직였다. 그리고 곧 완벽한 나신이 되었다. 온몸엔 사내들이 치열하게 자리싸움이라도 하듯 얼룩덜룩한 잇자국과 멍에 가까운 울혈들이 남아 있었다.
할리드는 미간을 찡그리며 녹스의 다리를 벌리고 그 사이에 제 몸을 끼워 넣었다.
“바르라고 주는 약들은 다 어디다 가져다 버리는 거야.”
“…약을 받은 적이 없습니다만.”
“없다고?”
“예.”
“왜? 따로 치료사를 찾아가지 않았나?”
“……예.”
이 몸을 보여 주고 싶지 않다는 생각이 가장 컸으리라 생각된다. 할리드는 그게 이해가 가는 건지, 가지 않는 건지 모를 얼굴로 그의 목덜미에 입술을 묻으며 한숨을 내쉬듯 말했다.
“내가 발라 줄 테니 받아 와.”
“알겠습니다.”
그냥, 이런 심한 자국들을 남기지 않으면 되는 거 아닐까요. 라는 말은 입 밖으로 나오지 않았다. 그들은 그게 불가능한 사람들처럼 구니까. 무조건 입에 닿고 보면 피가 날 때까지 물고 빨아 댔다.
할리드는 침대 옆 협탁에서 향유를 꺼내 들었다. 그리고 한 손으로 뚜껑을 열어 왈칵 쏟아지는 것을 녹스의 성기 위로 아무렇게 흘려 냈다. 차가운 기름의 감각에 녹스가 몸을 설핏 떨었다. 할리드는 비스듬하게 웃으며 녹스의 허벅지 하나를 들고 굳게 다물린 입구를 찾아 비볐다.
“저번엔 여기에 무얼 박지 못해 안달이었지.”
“그땐, 읏…. 약을….”
“그렇지. 미약을 먹었을 때지.”
할리드는 이미 향유로 잔뜩 젖은 회음부와 입구를 내려다보면서도 손가락을 밀어 넣지 않고 미끌거리는 입구만을 살살 문지르고 있었다. 그럴 때마다 구멍이 빠끔거리며 손가락 끝을 살짝 물었고 이내 조이며 미끄러뜨렸다. 손가락이 살짝 빠져나오자 녹스는 그 감각이 지나치게 선명하게 느껴져 귀 끝을 살짝 붉혔다. 할리드는 그런 그의 얼굴을 보며 웃었다. 찔꺽찔꺽, 옅게 구멍을 문지르는 젖은 소리가 들렸다.
“저번엔 먹여 주지 않아도 잘만 찾아 먹더니.”
“그것도…. 흐읏, 약에 취해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