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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버린 남자의 노예가 되었다-89화 (89/158)

제89화

그리하여 손목을 붙잡은 손아귀는 곧 목으로 올라갔다. 흰 목을 잡아챈 펠티온이 녹스의 목을 단번에 졸랐다.

“…전부 내 착각이었다는 소리지.”

“큭….”

펠티온의 손아귀에 점점 더 힘이 몰렸다. 녹스는 졸려 오는 목에 절로 입을 벌렸다. 그럼에도 들이켜지는 호흡은 없었다. 온 숨통을 그가 조이고 있었기 때문에.

녹스는 마치 저항할 의지가 없다는 듯 황제의 손목을 틀어쥐지도 않았다. 그저 가만히 그가 제 목을 조르는 대로 늘어졌다.

펠티온은 그런 녹스가 더욱 싫었다. 왜 살려고 발버둥 치지 않지? 왜 내게 그게 아니었다고 변명하지 않는 거지? 왜 내게 아무런 말도 하지 않고 지금 내가 깨달은 게 다 맞다는 듯 구냐, 이 말이다.

펠티온은 깨달았다. 아, 내가 생각한 게 전부 틀렸다고 말해 주길 바라는구나. 내가 네게 많은 기대를 하기는 했구나. 내가 생각했던 것보다 더. 펠티온은 스스로에게 조소하며 녹스의 목을 더욱 졸랐다. 녹스의 눈이 곧 반쯤 뒤집히고 몸이 가늘게 떨렸다.

“폐하!”

그리고 그 모든 걸 지켜보던 할리드가 펠티온을 불렀다. 황제는 뒤늦게 할리드의 존재를 인식하곤 웃었다.

“할리드, 보고 있나?”

“폐하…!”

할리드가 분노한 목소리로 외쳤으나 펠티온은 녹스의 목을 조르는 손을 거두지 않았다. 그가 순식간에 으르렁거렸다. 마치 자신의 것을 지키기 위한 짐승의 목울음 같기도 했다. 다만 그 짐승은 지금 이 자리에 없었다. 펠티온이 억지로 소리내어 웃었다.

“내가 네게 느낀 모든 것이 가짜였다면 내가 널 존중한다 여긴 것도 네겐 전부 가짜였겠군.”

툭, 그가 말하던 도중 녹스의 몸이 늘어졌다. 가늘게 경련하던 몸이 축 늘어지는 꼴은 마치 숨이 끊긴 것 같기도 했다. 할리드는 그 순간에 눈에 불이 튀는 것 같은 감각을 느꼈다.

“펠티온-!”

펠티온이 황제의 자리에 오른 이후 한 번도 입 밖으로 꺼내 본 적 없는 이름이 기어코 할리드의 입 안에서 터졌다. 거칠거칠한 분노를 담은 목소리에 황제는 비딱하게 웃었다.

그는 자기 노예에게 손을 대 분노했겠지만, 황제는 제 진심을 거절당한 것에 분노해 있었다. 왜냐하면 녹스는, 노예는 자신을 거절해선 안 되니까. 그게 바로 세상의 이치라는 것이고 그의 운명이다. 황제는 기절해 버린 녹스의 몸을 침대 위로 내던지고 제 손아귀에 붙잡혀 있던 숨에 대한 감각을 몇 번이고 되새겼다.

“그렇다면 이젠 그냥, 내 마음대로 하는 수밖에.”

펠티온이 비틀린 웃음을 지으며 말했다. 할리드, 미안하게 됐군. 약속은 못 지키겠어.

그 말을 끝으로 통신이 끊겼다.

할리드는 분노에 온몸을 부들부들 떨었다. 황제가 녹스에게 손을 댔다. 그것도 예상과 다른 방식으로.

목이 졸려 하얗게 질리던 녹스의 얼굴이 떠올랐다. 끝끝내 눈이 뒤집히고 이내 감겨 버린 눈꺼풀의 속눈썹까지 선명히 떠올랐다.

할리드는 분노하며 성큼성큼 막사를 걷고 밖으로 나섰다. 아직 열기가 가라앉지 않은 막사 밖에선 횃불의 열이 느껴졌지만 할리드의 머리는 그 무엇보다도 차갑게 식어 있었다.

그가 밖으로 나오자 따라나섰던 그의 부관 중 하나가 다가왔다.

“필요한 것이 있으십니까?”

“곧장 수도로 향한다.”

“예?”

“큰 건은 전부 정리가 되었겠지?”

할리드의 갑작스러운 명령에 부관이 당혹스러운 표정을 지었다.

“그렇긴 하지만 아직 자잘하게 정리할 일들이 남아 있습니다.”

“네 선에서 정리하지 못할 일인가?”

“그건 아닙니다만….”

“그렇다면 나 홀로 수도로 돌아가겠다.”

그의 선언에 부관이 그의 앞을 막아섰다.

“공작님, 이번에 무려 반역자들을 참수한 공을 세우지 않으셨습니까? 공작님을 홀로 올라가시게 할 수는 없습니다!”

“공?”

할리드가 으르렁거렸다.

“그딴 건 나한테 필요 없어.”

할리드는 자신의 검을 바로 메곤 곧장 말들이 있는 곳에 닿았다. 그러고는 가장 튼튼한 말 한 마리를 골라 말 위로 훌쩍 뛰어올라 앉았다.

“하아….”

그를 말릴 수 없다는 것을 깨달은 부관은 그를 위해 서둘러 건량과 일정의 돈을 챙긴 주머니를 만들어 넘겼다. 할리드는 그것을 낚아채듯 쥐었다.

“뒷일은 제가 맡아서 하겠습니다. 모쪼록 조심히 도착하십시오.”

할리드는 그의 인사에 말없이 말의 엉덩이를 걷어찼다. 말이 순식간에 앞으로 튀어 나갔고 그 자리엔 희뿌연 모래바람과 모래를 뒤집어쓴 부관만이 남았다.

“녹스…!”

얼굴을 스치는 바람을 맞으며, 할리드가 목이 마른 자처럼 그의 이름을 한 번 불렀다.

* * *

황제는 녹스의 목을 조른 날 이후부터 녹스의 몸에 거리낌 없이 손을 대기 시작했다. 그건 가벼운 손장난이기도 했고 진득한 조롱과 농락이기도 했다. 지독한 서열 확인이었다.

“읏, 하….”

“쉬이, 착하지. 참지 말고.”

황제는 볕이 잘 드는 집무실 책상에서 녹스를 무릎에 앉혀 놓고 발갛게 부어오른 유두를 희롱하고 있었다. 다 풀어헤쳐진 흰 셔츠에 붉게 달아오른 피부가 대비되었다. 녹스는 쓰라리고 아파 미간을 꾹 찌푸린 채 어떻게든 입을 다물기 위해 노력했다. 하지만 황제는 그것이 마음에 들지 않는다는 듯 유두를 죽 잡아당기며 녹스의 입술을 억지로 열었다.

“하으…!”

“참지 말라고 몇 번을 이야기해야 알아들을까.”

“폐, 하, 아….”

“그래, 나 여기 있네. 녹스.”

“이, 제, 그마….”

황제는 싱긋 웃으며 도톰하게 잡히는 유두를 더 세게 잡아 비틀었다.

“흐아…!”

“녹스, 언제나 말하지만 주제넘은 발언은 하지 말게.”

네가 내게 이래라저래라할 수 있나?

그의 말이 은밀하게 속삭여졌다. 황제의 집무실엔 녹스와 그, 단둘뿐이었다. 원래대로라면 황제의 시종과 부관들이 대기하고 있어야 하겠지만 황제는 이런 모습의 녹스를 저만 보길 원했다.

‘이젠 할리드에게도 보이기 싫으니 큰일 났군.’

황제는 이제 잔뜩 부은 여린 살을 살살 손끝으로 쓰다듬으며 물었다.

“너를 다시 내 소유로 옮겨 올까? 할리드는 거친 구석이 있으니 말이야. 어때?”

“…….”

녹스가 조용히 고개를 떨구었다. 황제는 미간을 찌푸리며 웃었다.

“널 그리 대하는 자가 뭐가 좋다고.”

황제는 가볍게 온도가 올라간 녹스의 몸을 쓰다듬었다.

“아직도 할리드가 좋아?”

“……아.”

녹스가 짧은 침음을 냈다. 어쩌면 감탄일지도 모른다. 녹스는 한 번도 생각해 본 적 없는 것을 들은 양, 잠시 바르작대던 걸 멈추었다.

황제는 그가 느긋하게 생각할 수 있도록 잠시 손장난을 멈추고 그의 목덜미에 코를 박아 숨을 한껏 들이켰다.

녹스는 황제와 할리드가 크게 다르지 않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할리드가 좋다고 생각해 본 적이 없었다. 그저, 자신이 할리드에게 큰 잘못을 했으니 갚아야 한다고 생각했을 뿐이다.

그를 버린 것, 그가 매를 맞게 한 것. 그리고 그를 쫓아내 거친 삶을 살게 만든 것. 어쩌면 그가 그렇게 변해 버린 것은 자신의 탓일지도 모른다고 생각했다.

어릴 때의 그를 생각하면 가슴 한편이 아직도 시큰거렸다. 하지만 지금의 할리드를 생각할 때엔, 글쎄. 약간의 두려움, 약간의 어려움 그리고 죄책감. 그것이 다였다. 녹스는 황제의 질문에 고개를 젓지도 끄덕이지도 못한 채 입을 다물었다.

황제는 그 반응을 무어라 해석했는지 약간은 사나운 미소를 유지한 채 그의 가슴을 주물렀다.

“잘 생각해 봐. 나 정도면 자네를 빼앗아 올 수 있으니까. 할리드가 아직도 좋은 게 아니라면 내 쪽이 좀 더 나을 수 있어.”

그리고 아쉽다는 듯 입맛을 다셨다.

“뭐, 그와 나의 관계는 틀어져 버리겠지만.”

“그러지, 마십, 시오.”

“왜?”

“저, 같은 걸로 틀어질 사이는. 아…!”

황제가 다시금 녹스의 유두를 꼬집어 올렸다. 녹스가 파드득 떨며 황제의 가슴에 제 등을 붙여 비벼 댔다. 펠티온은 품 안이 가득 차는 듯한 감각이 좋아서 녹스의 목선에 코를 대고 말했다.

“그건 자네가 판단할 게 아니야. 물건이 그런 생각을 하다니. 지나쳐.”

“죄, 죄송 합…. 흐윽, 니다….”

“뭐, 어여쁘니 한 번 봐주지.”

황제는 그렇게 말하면서도 꾹 쥔 유두를 놓아주지 않았다. 녹스의 눈가가 벌게지기 시작했다. 물기 어린 눈으로 히끅 대며 테이블을 꽉 붙잡았다. 그럼에도 황제는 아직 녹스를 품 안에서 놓아줄 생각이 없어 보였다.

하지만 곧, 바깥에서 소란이 일었다. 마치 누군가를 저지하듯 말리는 목소리가 여기저기서 튀어나왔다.

“폐하께서 아무도 들이지 말라 하셨습니다!”

“당장 들어가서 내가 왔음을 알려라.”

“공작 각하…!”

“그게 힘들다면 내가 직접 가지.”

할리드의 목소리가 들렸다. 황제는 낮게 목이 울리도록 웃었다.

“내 형제가 돌아왔나 보군.”

벌컥.

그리고 그 말이 끝나자마자 집무실의 문이 열렸다. 할리드, 그의 모습이 곧장 보였다. 녹스는 아주 오래간만에 보는 그의 얼굴에.

“어서 오게, 할리드 비아 공작.”

아무런 생각도 들지 않았다. 아, 돌아왔구나. 그것뿐. 그저 제가 장난감처럼 놀아나게 될 손아귀가 바뀌었을 뿐. 하지만 그런 녹스와 다르게 할리드는 당장에 으르렁거리며 문을 닫았다.

셔츠를 거의 벗다시피 한 녹스가 황제의 무릎에 앉아 농락당하고 있는 모습은 그를 여러모로 자극하기에 충분했다. 할리드가 집무 책상 앞으로 성큼성큼 다가왔다.

“할리드 비아, 명령하신 것을 마치고 돌아왔습니다.”

“그런 것치곤 너무 무례하게 들이닥치지 않았나. 비아 공작.”

“보다 빠르게 결과를 내길 원하신 일이라 제가 마음이 급했나 봅니다.”

황제가 비웃었다.

“다른 일이 급했던 게 아니라?”

할리드의 시선은 황제의 무릎 위에 올라앉은 녹스에게로 닿아 있었다. 녹스의 몸은 발갛게 붉어져 있었다. 한참을 가지고 논 듯한 유두도 붉게 부어 볼록하게 톡 튀어나와 있었다. 할리드는 인상을 쓰며 녹스를 바라보았고 녹스는 저도 모르게 시선을 내리깔았다. 할리드는 그것마저도 마음에 들지 않는지 쯧, 혀를 찼다.

“맡긴 것을 돌려받으러 왔을 뿐입니다.”

“마침 그것에 대해 묻고 있었네.”

“무엇을 말입니까.”

“자네의 노예에게도 가끔은 선택권을 줘도 좋지 않겠나.”

“그게 무슨 소립니까.”

“자, 녹스.”

황제가 꽤 다정한 손짓으로 녹스의 셔츠를 바로 걸쳐 준 뒤 단추를 하나하나 잠그기 시작했다.

“여기 남을 것인지 아니면 자네 주인의 손으로 돌아갈 것인지. 자네가 정할 수 있게 해 주지. 어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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