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98화
한 남자가 황궁 복도를 달리고 있었다. 할리드는 자신이 마정석으로 본 영상을 믿고 싶지 않았다. 녹스 라이네리오가 추락했다. 스스로 몸을 던졌다. 그는 무슨 정신인지 모를 정도로 궁 안을 달려 마구간으로 향했다. 그는 자신의 말을 구분할 정신이 없었다. 그는 아무 말이나 내오라고 소리쳤고 마구간지기는 그의 노호에 바들바들 떨며 할리드의 말을 찾아 나왔다. 그리고 그가 말에 올라탔을 때, 황제 역시 헐떡이며 그를 쫓아와 있었다.
“가야 합니다.”
“치료사, 치료사가 필요할 걸세.”
황제가 다급한 목소리로 말했다.
“…치료사.”
할리드는 입술을 달싹이다가 이내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고 곧장 말을 박차고 앞으로 나아갔다. 황제는 자신의 치료사를 불러내 뒤늦게 말에 올랐다. 그 무엇보다도 빠르게 도착해야 하기에 치료사는 황제의 뒤에 앉혀졌다.
황궁과 라이네리오 저택은 그다지 멀지 않았다. 그것이 다행이라면 다행이었다. 그가 뛰어내린 순간 모든 게 끝나 버린 것과 다름없었지만 그들은 빌고 또 빌었다.
제발 숨만 붙어 있어 달라고. 그들은 녹스에게 저주를 퍼부었다. 살아 달라는 그 저주를. 가슴이 찢어지는 것 같았다. 자신이 그에게 직접 채찍을 휘두른 것부터 그를 강제로 겁탈하고 차갑고 어두운 방에 가뒀던 것까지 모든 일들이 제 머릿속을 헤집는다.
내가, 내가 왜 그런 짓을 했지? 스스로에게 물어보면 답은 하나였다. 그는 그를 가지고 싶었다. 온전히 자신의 것으로. 하지만 녹스 라이네리오라는 사람은 그것을 거부하고 결국 벗어났다. 그는 자신을 버리듯 그대로 추락하였고 할리드는 그 추락이 이 세상에서 벗어나는 가장 다정한 방법이라는 걸 인정 할 수밖에 없었다.
이 세계는 녹스에게 너무나 잔인했기에 추락하여 온몸이 부서지는 일이라 할지라도 녹스에게는 자신이 자신에게 선물할 수 있는 가장 다정한 죽음이었을 것이라고.
할리드는 눈가가 뜨거워지는 것을 느꼈다. 숨이 헐떡여졌다. 목구멍이 말라 바짝바짝 타들어 갔다. 그리고 그는 곧, 라이네리오 저택에 닿았다.
“아….”
저 화단 위로 붉은 것이 보인다. 피투성이가 된 몸뚱어리가 보였다. 자신과 가장 잘 어울리는 검은 옷을 입었지만 흰 와이셔츠는 피투성이가 된 채로 아직 굳지 못한 피를 뚝뚝 흘리고 있었다.
“허억, 헉….”
할리드는 말에서 곧장 뛰어내려 손질이 되지 않은 풀들을 헤치고 그의 가까이로 다가갔다. 꽃과 꽃을 나누기 위해 작게 설치된 창살이 그의 가슴을 관통하고 있었다. 할리드는 입술을 꽉 깨물었다. 두 눈은 부릅뜬 상태였고 파리하게 질린 녹스의 손은 힘없이 바닥에 떨구어져 있었다.
“……녹스.”
그를 불렀다. 하지만 답은 없었다. 뚝, 뚝. 떨어지는 핏물만이 그에게 화답해 주었다. 할리드는 떨리는 손을 뻗었다. 그는 감히 그를 만질 수 없었다. 차라리 이곳에 박제해 놓아야 한다고 생각했다.
그에게 잔인했던 세계의 일원이었던 자신은 감히 그에게 손대지 못하리라. 그럼에도 할리드는 죄악을 저지르는 기분으로 그의 몸에 손을 대었다. 아직….
아직 따뜻했다.
할리드의 눈이 커다랗게 뜨였다.
“치, 치료사…!”
저 멀리서 황제가 말을 타고 달려오는 것이 보였다. 그리고 그 뒤에 타고 있는 것은 분명 그가 말한 치료사이리라. 할리드는 녹스의 몸을 끌어안고 미친 듯이 외쳤다.
“치료사! 치료사가 필요합니다! 전하, 제발!”
황제는 달리는 말에서 거의 뛰어내리다시피 내렸고 그와 동시에 그 뒤에 타고 있던 치료사의 뒷덜미도 잡아 내렸다. 치료사는 거의 질질 끌려오다시피 해 녹스의 앞에 무릎 꿇었다.
그의 온몸은 만신창이었다. 팔다리는 뒤틀려 있었고 쏟아져 나온 피는 도저히 사람이 살아 있을 수 있는 양이 아니었다. 가장 중요한 건 가슴에 꽂힌 커다란 쇠창살이었다. 다행히 긴 것은 아닌지라 그대로 일으켜 세우면 되겠지만, 이걸 살릴 수 있을 거라고 생각되진 않았다.
“시, 시신을, 아니. 이분을 똑바로 눕혀 주십시오.”
할리드는 벌벌 떨리는 손으로 녹스의 어깨를 잡았다. 그 손은 무척이나 조심스러웠고 또한 느렸다. 그걸 보다 못한 황제가 그를 밀쳤다.
“지금 뭐하나! 한시가 급한 상황에서!”
황제가 할리드를 제치고 녹스를 안아 들었다. 쇠창살이 뽑혀 나온 가슴에서 피가 울컥 쏟아졌다. 후드득, 화단을 흠뻑 적시는 핏물에 황제가 이를 악물었다. 그는 어떻게든 이성을 찾으려 애쓰며 그를 치료사 앞에 눕혔다.
치료사는 일단 무작정 마력을 녹스의 몸에 흘려 넣기 시작했다. 너무나 기괴하게 다친 시신, 아니 환자이다. 아무리 보아도 본인이 직접 뛰어내린 것 같은데….
치료사는 슬쩍 두 남자의 얼굴을 살펴보았다. 두 사람 다 얼굴이 무섭게 굳어 있었다. 그리고 이내 녹스의 얼굴을 내려다보았다.
치료를 하며 그의 얼굴을 들여다보니 그가 누구인지 알 수 있었다. 그는 비아 공작의 노예이자 황제의 침실을 들락거린다던 자였다. 과거엔 너무나 고귀한 핏줄이었으나 반역죄로 끌어내려진 그런, 가치가 있는 노예.
치유사가 마력을 불어 넣을수록 녹스의 몸이 점점 돌아왔다. 돌아갔던 다리가 원래대로 돌아오고 꺾였던 손목과 팔도 제자리를 찾았다. 문제는 가슴을 꿰뚫었던 상처였다.
다행히 심장은 비껴간 듯했으나, 그 상처가 관통상이라 치유하는 데 너무나 오랜 시간과 마력이 필요했다.
“일단, 응급처치는 모두 되었습니다만, 가슴의 상처가 너무 깊은 터라 꾸준한 치료를….”
“그건 걱정하지 말아.”
황제가 그렇게 말하며 녹스를 안아 들려 했다. 하지만 그것보다 한발 먼저 손을 뻗은 자가 있었다. 할리드였다. 그는 마치 조금만 힘을 줘도 부서질 것을 쥐는 사람처럼 조심스럽게 피에 젖은 녹스의 몸뚱이를 안아 들었다.
“…내가 가서 마차를 가지고 오지.”
할리드는 입을 다문 채 녹스만을 가만히 바라보고 있었다. 그의 눈빛은 밝은 푸른색에서 바다와 같은 짙은 파랑으로 가라앉아 있었다. 그는 손을 뻗어 여전히 창백한 녹스의 뺨을 쓰다듬으려다 이내 덜덜 떨리는 손을 천천히 거둬들였다.
“녹스….”
그가 마른 목소리로 그의 이름을 발음할 때 황제는 말을 타고 황궁으로 돌아가기 시작했다. 일단 녹스를 옮길 마차가 필요했다. 황제가 떠나가는 동안에도 할리드는 녹스에게 눈을 떼지 못했다. 내가 널 가지려 했던 게 내 욕심이었다.
내가 너를 내 손 안에 완전히 가두려 했음이 죄였다.
할리드는 속으로 몇 번이고 되뇌었다. 넌 내가 손에 넣어선 안 되는 존재였다. 네가 망가져 갈 동안 난 오로지 네 살갗에 코를 묻고 만족하고 있었다.
할리드는 어린 과거를 떠올렸다. 내가 널 사랑하게 된 게 언제였더라. 그는 떨리는 손으로 녹스의 머리를 받쳐 안았다. 희미하게 남아 있는 온기가 그가 아직 이 세상에 있다는 의미 같아서 속에서 무언가 북받쳤다.
할리드는 어렸을 적 녹스가 설핏, 자신에게만 지어 주었던 미소를 떠올렸다.
그래, 그것 때문이었다. 내가 널 사랑하게 된 게. 하지만 널 내 손에 넣은 이후로 나는 네가 웃는 걸 본 적이 없었다. 그저 내가 가지고 있던 분노를 네게 쏟아 내는 것이 내가 한 일의 전부였다.
“이럴 수는 없어….”
그는 녹스의 얼굴을 내려다보며 어떻게든 눈물을 참기 위해 이를 악물었다. 내가 너를 나와 같은 구렁텅이로 집어넣고 말겠다고 결심했을 때부터 전부 잘못된 거였을까. 어디서부터, 어디까지 잘못된 걸까. 막상 그걸 깨닫는 것은 어렵지 않았다.
내가 널 다시 만난 그 순간부터 잘못되었다.
내가 널 내게 달라 청한 그 순간부터 잘못되었다.
할리드는 숨을 헐떡였다. 녹스를 꽉 안은 팔이 바들바들 떨렸다. 할리드는 그렇게 피투성이로 젖은 셔츠에 이마를 묻고 아무것도 하지 못한 채 있었다. 황제가 가지고 온 마차가 도착할 때까지. 아무것도. 그를 끌어안고 있는 것 외에는 아무것도.
* * *
“외상은 전부 치료됐습니다만….”
“되었지만?”
“깨어나질 않으십니다.”
“깨어나질 않는다라….”
황제와 할리드는 침상 위에 누워 있는 녹스를 내려다보았다. 황궁의 온 치료사를 불러다 치료한 녹스는 이제 그저 잠든 것처럼 보였다. 흉터는 어쩔 수 없지만 흉터 따위는 그들에게 중요하지 않았다. 그가 살아남았다는 사실만이 그들에게 중요할 뿐이었다. 황제는 그를 내려다보며 조용히 이를 악물었다. 그리고 주먹을 꽉 쥐었다. 할리드를 탓할 수는 없었다.
그의 삶에 고난을 얹어 준 것이 그뿐만은 아니었으니. 그랬기에 녹스는 결국 그 무엇과도 타협하지 않고 누군가에게 마음을 주고 안주하기보단 자기 자신을 찾아 떠나기로 결심한 것일 테다.
황제는 잠시 숨을 느리게 쉬다 손으로 제 입을 가렸다. 눈을 감고 고개를 숙였다. 눈꺼풀 아래, 눈동자로 감히 녹스를 바라볼 수 없었기에 가만히 아래를 향하고 있었다.
할리드는 가만히 곁에 서 있다가 곧 걸음을 바깥으로 옮겼다. 그의 움직임을 느낀 황제가 그에게 물었다.
“어딜 가나.”
“녹스를 깨울 방법을 찾아오겠습니다.”
“그를 깨워?”
“그럼, 저대로 둡니까?”
할리드가 날카롭게 대답했다. 아마 녹스는 일어나고 싶지 않아 눈을 뜨지 않는 것일 거다. 그러니 자신이 바깥으로 끌고 나오는 수밖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