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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버린 남자의 노예가 되었다-120화 (120/158)

제120화

정보를 얻을 수 있는 길은 두 가지였다. 가문과 이어져 있는 정보 길드의 일원을 통해 접촉하는 법. 그러나 이 방법은 라이네리오 가문이 몰락할 당시, 이어져 있던 정보 길드와 연이 끊기는 바람에 이용할 수 없었다. 있다고 해도 아마 황제와 공작의 귀에 들어가겠지.

두 번째. 제국 곳곳에 숨어 있는 정보상을 찾아내는 것.

기본적으로 정보상과 정보 길드에는 큰 차이점이 있었다. 정보상은 말 그대로 개인의 영역이다. 바람 난 남편의 뒤를 밟아 주고, 돈 안 갚는 놈이 사실은 뒤로 돈을 모으고 있다는 걸 알아내 주는 정도라는 것이다. 물론 사람의 뒤를 캐는 것도 가능은 하다. 다만 말 그대로 개인으로서 뒤를 캐는 것까지일 뿐, 전문적인 영역까진 아니라는 것에 있다.

그에 비해 정보 길드는 정보 캐기의 전문가들이다. 집단으로 이루어져 있으며 일반 상인으로 위장하는 건 기본이었고 귀족가의 사용인으로 사람을 넣어 놓은 경우도 많을 것이다.

여기서 론더에게 필요한 것은 후자였다. 다만 문제는 자신의 능력으로 찾아낼 수 있는 건 정보상까지가 한계라는 것에 있었다.

‘그래도 아예 방법이 없는 건 아닌데.’

개인 정보상들 중 덩치가 큰 놈들은 그들의 뒤에 길드가 있을 가능성이 컸다. 덩치가 클수록 비밀스러운 일을 알고 있을 가능성이 크기 때문이다. 제법 덩치가 있는 정보상. 그것을 찾아내는 게 오늘 에스테리온이 할 일이었다.

“흐음.”

에스테리온은 일단 저택을 나와 후미진 골목으로 향했다. 로브를 푹 눌러쓰는 것도 잊지 않았다.

평민들과 섞여 일하다 보면 듣고 싶지 않은 일도 들어야 할 때가 있었다. 누구네 집 마누라가 도망갔다던가. 돈을 빌려줬다가 떼였다던가. 아니면 그와 반대로 어제까지 멀쩡히 일 다니던 놈이 누구 돈 떼먹고 도망갔다더라 하는 경우도 적지 않았다.

그리고 그때마다 입에 오르내리던 사람이 있었다. 아니 이름이 아니라 가명이라고 해야 할 것이다. 날쥐, 그것이 그를 부르는 명칭이었다. 어디서 그런 센스가 나왔는진 모르겠지만 그렇게 좋은 어감은 아니었다.

에스테리온은 기억을 더듬어 그들의 입에 항상 오르내렸던 골목을 떠올렸다. 365-3번지 골목. 다만 문제가 있다면 항상 그런 이야기는 흘려들었던지라 골목의 정확히 어디인지는 알 수가 없다는 점이었다.

론더는 그래서 일부러 그 주위를 서성거렸다. 수상하게 보이기 위해서였다. 정보상들은 직업이 그런 만큼 자신의 영역 안에서 눈에 띄는 것을 가만히 두질 못한다고 들었다. 정확하지 않지만 아무것도 안 하는 것보단 이쪽이 나을 거라고 생각했다.

‘아무것도 못 하고 가면 공작님께 면목 없기도 하고….’

그는 그렇게 생각하며 골목 더 깊은 곳으로 들어갔다. 햇빛도 제대로 닿지 않는 어두운 골목이었다.

부랑자들이 자리를 잡고 있을 법한 곳임에도 이 골목엔 아무것도 없었다. 에스테리온은 그게 이상하다고 생각했다.

시간은 점점 흘러갔다.

에스테리온은 그 근방을 벗어나지 않았다. 골목에 있는 음식점에 들러 식사를 해결하기도 하고 쓸데없이 펍에 앉아 있기도 했다.

싸구려 담배를 피우기 위해 골목 골목을 전전했다. 그런데 사람이 이상할 정도로 오가지 않았다. 싸구려 담배에 불을 붙인 론더가 연기를 뱉으며 어두운 골목 안쪽으로 몇 발자국을 옮겼다. 그리고 그때.

턱.

목 앞으로 무언가 차가운 게 슥 대어졌다. 에스테리온은 올 게 왔구나 싶어 냉큼 두 손을 들었다.

“목적은?”

상대방이 물어왔다. 에스테리온은 더 생각할 것도 없이 냉큼 대답했다.

“정보.”

“팔러?”

“사러.”

“흠.”

정체를 알 수 없는 남자는 에스테리온의 목에 칼을 댄 채 그의 주머니를 뒤졌다. 그리고 그가 주머니에 넣고 다니던 신분 패를 꺼내 들었다. 그곳엔 그가 어느 가문 출신인지 그리고 어느 가문에서 일하고 있는지 따위가 대략적으로 적혀 있었다.

“라이네리오 가문이라….”

정보상이 설핏 웃음소리를 낸 것 같았다. 그는 신분 패를 다시 에스테리온의 주머니에 넣어 놓고선 나지막이 물었다.

“정보를 팔 생각은 없나?”

“…흠.”

그는 녹스가 자신이 나가기 전, 해 주었던 언질을 떠올렸다.

‘정보 길드 쪽에서 내 정보를 사려 들 거야. 그땐 팔아.’

‘네?’

‘너와 나에 대한 헛소문을 진실인 양 퍼뜨려.’

‘그래도 됩니까?’

‘귀족들에게 못 박아 주는 것도 좋겠지.’

‘무얼 바라시는 겁니까?’

‘말하면, 네가 알까?’

‘그것도 그렇군요.’

녹스는 그렇게 말하며 설핏 웃었다.

‘너한테 알랑거리려 하는 자들도 늘 거야. 좀 즐겨 봐.’

‘…별로 즐기지는 못할 것 같지 말입니다.’

‘재미없기는.’

이런 것까지 내다보시다니. 에스테리온은 고개를 끄덕였다.

“있어.”

“그럼.”

목에 들이대졌던 칼이 거두어졌다. 천천히 뒤를 돌아보니 상대방도 깊게 로브를 눌러쓰고 있었다.

“따라와.”

그렇게 론더는 정보상인지 정보 길드인지 모를 자와 접촉하는 데 성공했다. 이걸 성공이라고 해야 할지 모르겠지만 어쨌든 끈은 잡은 셈이다. 정체 모를 남자는 생각보다 말랐고 키는 꺽다리처럼 컸다. 그를 따라가니 의외로 좁고 어두운 골목이 아닌 더 밝은 대로로 향했다. 그리고 당당히 어느 골동품 상점으로 들어갔다.

“2층.”

골동품점엔 키가 작은 노인이 앉아 있었다. 그녀는 2층이라는 소리에 쯧 혀를 차고는 왼쪽에 나 있는 작은 창고 문을 가리켰다. 정보상은 창고 문으로 들어가 천장에 달린 손잡이를 쑥 잡아당겼다.

덜컥, 끼익.

위로 올라가는 계단이 내려왔다. 오, 에스테리온은 작게 감탄하며 그 계단을 타고 2층으로 올랐다. 2층으로 올라가니 적당히 손님을 받을 만한 낡은 응접실이 나왔다.

“여기가 본거지는 아닌 모양이네.”

에스테리온이 간단히 파악하자 정보상이 웃으며 답했다.

“당연하지. 네 뭘 믿고. 앞으로 거래는 여기서 하지.”

에스테리온이 고개를 끄덕였다. 로브를 입은 남자는 여전히 로브를 벗지 않았다. 에스테리온은 로브를 벗을까 말까 고민하다 눌러쓰고 있는 걸 택했다. 물론 상대는 제 신분 패를 보고 이미 제 정체를 알아 버렸지만. 얼굴까지 보여 주고 싶은 마음은 들지 않았다.

“그래서 라이네리오 공작의 정부, 에스테리온 론더 씨?”

에라이.

에스테리온은 로브를 벗었다. 하지만 정보상은 코까지 가린 로브를 입은 채 싱긋 미소를 보일 뿐이었다. 그나마 비쩍 마른 뺨이 그의 움직임에 슬쩍 드러났다.

“아무것도 모르는 것치곤 괜찮은 곳을 찾아왔어.”

“자기가 자길 칭찬하는 겁니까?”

“아니, 진짜로 나쁘지 않거든.”

남자가 여유롭게 응접실에 마련된 소파에 앉아 다리를 꼬며 말했다. 에스테리온 론더는 상대방이 아니꼽든 말든 일단 입을 다물었다. 정보상은 개의치 않고 자신을 소개했다.

“날쥐라고 불러.”

“아.”

에스테리온은 자신과 여태껏 대화를 나눈 사람이 그 유명한 날쥐라는 사실을 비로소 깨달았다.

“그러니까 도망간 마누라 잡아 주고 떼인 돈 받아 주는 사람이….”

“쓰읍, 그건 부수입이고.”

날쥐가 변명하듯 말했다. 에스테리온은 일단 이 ‘날쥐’라는 남자가 어느 정도의 능력을 갖추고 있는지가 궁금했다. 뭐, 어쩌다 보니 자신의 정체가 먼저 다 까발려지긴 했지만 그래도 이렇게 된 거 시험은 해 봐야 할 것 아닌가.

“비아 공작저의 정보가 필요해.”

“비아 공작저라. 좀 어려운데.”

“어려워?”

에스테리온 론더가 정색하자 날쥐가 서둘러 덧붙였다.

“어렵다는 거지 안 된다는 건 아냐.”

“며칠이 필요하지? 대금은 얼마든 괜찮아.”

“대금은 내가 제대로 정보를 물어 오면 받는 걸로 하지.”

“좋아.”

에스테리온이 용건이 끝났다는 듯 자리에서 일어서자 날쥐가 다시 앉으라는 듯 가볍게 손짓했다. 에스테리온은 쓰읍, 소리를 내며 자리에 앉았다. 라이네리오의 정보를 내놓지 않고 자리를 뜨려 했는데 이런 건 또 귀신같이 챙기는군.

“궁금한 게 있나?”

에스테리온이 뾰족하게 물었다. 그러자 날쥐가 손을 젓더니 말했다.

“혹시, 적당한 하인 필요하지 않아?”

“…….”

갑작스런 말에 에스테리온이 미간을 좁혔다. 날쥐는 실실 웃으면서 손가락으로 동그라미를 만들었다.

“돈만 더 얹어 주면 괜찮은 놈 붙여 줄 수 있는데. 라이네리오 공작님께서 지금 저택에 손발이 없어 곤란하지?”

능글맞은 그의 질문에 론더는 확신했다. 이 새끼 능력 있다. 능력이 없다면 거기까지 알 턱이 없었다. 론더는 일단 고개를 바로 끄덕이는 대신 들어나 보겠다는 태도로 팔짱을 꼈다.

“왜 그렇게 생각하지? 그보다 자신만만한 이유가 있나?”

그러자 날쥐가 말했다.

“라이네리오 가문에 심어 둔 새가 하나 있거든.”

“뭐?”

론더가 눈을 커다랗게 떴다.

* * *

에스테리온은 다음 주 이 시간에 보자는 날쥐의 말을 끝으로 골동품점을 나왔다. 앞으로 이곳으로 찾아오면 된다는 말을 잘 기억해 뒀다. 그는 저택으로 돌아가며 날쥐가 해 주었던 말을 떠올렸다.

‘비아 가문에서 라이네리오 가문에 사람을 채워 넣을 때 혹시 몰라 슬쩍 넣어 둔 하녀가 있어.’

이걸 어떻게 전달해야 하지. 에스테리온은 착잡한 얼굴로 저택에 돌아와 곧장 녹스에게 향했다. 사용인들의 시선이 노골적으로 따라붙었다. 그가 어딜 다녀왔을까. 그런 날것의 호기심이 덕지덕지 눌어붙어 왔다.

‘아까 전 광장에서 내리길 잘했군.’

마부가 자신에게 따라붙지 않았다는 것은 실로 다행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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