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38화
‘당신이, 어떻게…. 끄윽.’
죽어 가던 그의 마지막 목소리가 선명했다. 할리드는 다른 방향으로 말을 모는 척하다 이내 엘러딘 바이스를 쫓았다. 엘러딘 바이스는 할리드를 보고 우연히 길이 겹쳤다고 생각했는지 꽤 반갑게 그를 맞았다.
‘당신 옆에 있으면 안전하긴 하겠군요.’
아무것도 모르는 초식 동물 같은 반응에 할리드는 무심한 눈초리로 그를 바라보았다. 어차피 특정 인물의 일이 아니라면 표정 변화가 거의 없는 할리드였으므로 엘러딘 바이스는 크게 신경 쓰지 않았다.
하지만 엘러딘 바이스를 향해 달려드는 늑대가 나타났을 때부터 상황은 바뀌었다. 엘러딘 바이스는 한순간에 낙마했다.
‘윽!’
그는 다리가 부러진 듯했다. 이미 그의 말은 달려드는 늑대에 놀라 달아났다. 할리드가 그 모습을 보고 말에서 내려와 엘러딘 바이스에게 다가갔다.
엘러딘은 할리드 비아가 자신을 보호해 줄 것이라 믿었다. 하지만 할리드는 그의 뒷덜미를 잡고 질질 끌었다.
‘할리드! 할리드 비아!’
엘러딘 바이스가 다급하게 그를 불렀다. 하지만 할리드는 반응이 없었다. 그리고 으르렁거리다 앞으로 뛰어오른 늑대의 아가리에 엘러딘의 얼굴을 집어넣었다. 배신감 어린 한쪽 눈이 보였다. 그럼에도 할리드는 그 시선을 피하지 않았다.
와드득-.
그의 머리를 깨부순 늑대가 고개를 흔들었다. 할리드는 그 자리에 가만히 서서 늑대가 머리가 으깨진 엘러딘 바이스를 저 멀리 내던지는 모습을 가만히 지켜보았다.
차라리 잡은 사냥감에 만족하면 좋았을 텐데. 늑대는 당장 자신을 공격할 인간이 눈앞에 있는 것을 견디지 못하겠는지 단박에 할리드에게 달려들었다. 일직선으로 달려드는 늑대를 피해 그 척추에 검을 꽂아 넣는 것은 어렵지 않았다.
푹, 까득.
잡고 있는 칼에 힘을 주어 옆으로 까드득 긁어 벌렸다. 푸확, 피가 솟구치며 할리드의 몸을 적셨다. 할리드는 늑대가 완전히 움직임을 멈춘 것을 보고 주변을 둘러보았다.
아무도 없었다.
할리드는 그렇게 자리를 떴고 황제와 녹스를 만났다.
할리드는 잠시간의 회상을 뒤로하고 두 마리의 늑대를 내버려 둔 채 뱃가죽이 찢기고 내장을 반쯤 먹힌 엘러딘 바이스의 시신을 안아 들었다. 커다랗게 떠진 반쪽 얼굴엔 수많은 감정이 깃들어 있었지만 아마 아무도 알아보지 못할 것이다.
죽은 자는 말이 없기에.
그렇게 그가 엘러딘 바이스의 끔찍한 시신을 들고 막사로 돌아가자 귀족들은 경악에 휩싸였다. 황제가 부른 황궁 기사단은 늑대들을 찾기 위해 갑옷을 입은 채 숲으로 들어섰고 다른 귀족들은 안전을 위해 신속히 귀가해야 했다.
“이럴, 이럴 수가. 엘러딘….”
황제가 그의 시신 앞에서 무릎 꿇었다. 그의 눈동자가 크게 흔들리고 있었다. 할리드는 조용히 입을 다문 채 그의 곁에 서 있었다. 마치 충직한 신하라도 되는 것인 양.
엘러딘 바이스 외 사망자가 줄줄이 나오기 시작했다. 이번 사냥제 때 갑작스럽게 나타난 늑대로 죽은 인원은 엘러딘 바이스를 포함해 총 6명이었다.
“원인을 찾아라.”
황제가 분노를 씹어 삼키며 명령했다. 황제의 시종이 고개를 숙이고 먼저 황궁으로 돌아갔다. 엉망이 된 엘러딘 바이스의 시신을 붙들고 황제는 몇 번이고 입술을 깨물었다.
“내가 반드시….”
널 이렇게 만든 자를 찾아 찢어 죽이리라. 그렇게 맹세했으나 그는 몰랐다. 그자가 바로 자신의 옆에 서 있는 할리드 비아. 그의 오른팔이라는 것을.
* * *
사냥제에 대한 이야기는 사냥제가 끝나고도 끊이지 않았다. 숲속에서 발견된 늑대는 총 열두 마리였다. 적지 않은 숫자였다. 그리고 누군가 늑대를 풀었다는 증거도 발견했다. 물기가 마르지 않은 흙바닥에 바퀴 자국과 늑대 여러 마리의 발자국이 찍혀 있었다.
황제는 늑대의 출처를 밝히기 위해 애썼다. 왜냐하면 그 사건 이후로 황제를 탓하는 목소리가 나오고 있었기 때문이다.
“황궁에서 직접 여는 사냥제인데 숲을 먼저 확인해 보지 않았다니요.”
“내, 내 아들이 죽었어요. 늑대에게 물려 가서….”
“남편은 자신만만하게 나섰죠. 자기가 우승해서 돌아오겠다고 그렇게 큰소리를 떵떵 쳐 놓고는….”
늑대에게 물려 죽은 자들의 가족은 장례식을 치르며 눈물을 흘렸다. 갑작스러운 죽음이었고 예상치 못한 죽음이었다. 황제는 여론을 가라앉히기 위해 죽은 자들의 장례식에 전부 참석했다.
가족들은 눈물을 흘리다가도 황제를 보면 입술을 꼭 깨물었다. 다들 모른 척했지만 이미 알고 있었다. 누군가 늑대를 풀었다는 소문도 돌고 있었으니까. 다만 그 늑대를 누구 때문에 풀었겠는가.
황제, 분명 황제를 노린 거였을 것이다. 그런데 왜 내 아들이, 내 남편이 거기에 휩쓸려 죽어 나가야 했는가. 황제에 대한 원망은 아무런 소리 소문도 없이 조금씩 크기를 키워 나갔다.
“마지막 일정입니다. 폐하.”
시종의 말에 펠티온은 숨이 턱턱 막히는 것을 느꼈다. 자신을 따라오던 원망 어린 시선들. 황제라는 직책에 당연히 따라오는 책임들. 펠티온은 마차에 올라타며 물었다.
“…마지막은 그의 장례식이겠군.”
“예.”
시종이 깊게 고개를 숙였다.
“엘러딘 바이스 공작님의 장례식입니다.”
펠티온이 탄 마차가 앞으로 나아갔다. 그는 입을 꾹 다문 채 한 손으로 눈가를 가렸다. 누군가 늑대를 푼 것은 사실이다. 늑대를 토벌하자마자 곧바로 알아보라 한 것이 늑대들의 출처였으니.
“산데스의 늑대들이라.”
산데스는 이곳에서 꽤 떨어진 곳이었고 사나운 맹수와 갖가지 신비한 동물들이 터전을 삼는 곳이었다.
대체, 누가, 무슨 목적으로 늑대를 풀었는가. 펠티온은 수도에 열두 마리의 늑대가 들어왔다면 어떻게든 흔적이 남아 있을 것이라 여겼다.
그 출처를 찾기 위해 산데스에도 사람을 보내 확인했다. 분명 열두 마리의 늑대를 구한 기록은 남아 있었다. 하지만 어째서인지 수도 성문을 통과한 흔적은 보이지 않았다.
“흔적 없이 성문을 통과할 수 있는 자들.”
펠티온은 조용히 중얼거렸다. 당연히 수도 성문을 통과하는 모든 물품은 보고된다. 단, 고위 귀족들의 물품들은 보고만 될 뿐 직접적으로 확인하진 않았다. 성문을 자유롭게 드나드는 것. 그것이 고위 귀족의 특권이었으니까.
그만한 고위 귀족이라 함은 후작부터. 펠티온은 문득 떠오른 생각에 눈살을 찌푸렸다.
“설마, 녹스….”
넌 아니겠지. 그는 자신을 지키려다 늑대에게 물렸다. 늑대에게 물렸던 그는 치료사에게 치료를 받은 후, 이 사건에 아무런 관심도 없다는 듯 저택으로 돌아갔다.
만약 일을 저지른 사람이라면, 특히 황제 자신에게 복수를 하기 위해 저지른 일이라면 뭔가 앞뒤가 맞지 않았다. 자신을 지킨 것도 말이 되지 않았고 뒷일에 관심을 기울이지 않은 것도 마찬가지였다.
아닐 거라 부정하고 부정해도 그의 머릿속에는 녹스라는 이름이 쿡 박혔다.
그리고 그때, 마차가 멈추고 문이 열렸다. 황제는 마차에서 내려 엘러딘 바이스의 저택을 올려다보았다. 하늘이 우중충했다.
그의 장례식엔 조문객이 많았다. 하지만 황제가 나타나자 모두가 길을 비키며 그가 지나갈 수 있도록 길을 만들었다. 관 옆에는 엘러딘 바이스의 어머니가 서 있었다. 황제는 걸음을 멈추는 일 없이 관 앞으로 다가섰다.
“황제 폐하를 뵙습니다.”
“…오랜만이군.”
황제는 그 말을 한 뒤 입을 다물고 아직 닫히지 않은 관을 내려다보았다. 시신이 너무나 많이 상한 상태였기 때문에 그의 몸은 천과 꽃으로 가려져 있었다.
엘러딘 바이스를 이런 일로 잃을 거라 생각해 본 적 없었다. 황제가 그 모습을 가만히 내려다보고 있을 적에 엘러딘 바이스의 어머니가 입을 열었다. 그리고 황제와 다를 바 없는 생각을 전했다.
“이런 일로 제 아들을 잃을 줄 몰랐습니다.”
“…….”
“폐하를 지지하겠다는 이야기를 들었을 때는 단단히 각오를 하고 있었습니다. 언제든 내 아들을 잃을 수도 있다는 걸.”
그녀의 목소리가 잠겨 들었다.
“그런데 모든 게 끝난 지금에야 와서 이렇게 허무하게….”
엘러딘의 어머니는 소리 없이 눈물을 흘렸다. 펠티온의 마음이 무거워졌다. 황제는 이 자리에서 도망가고 싶다고 느꼈다. 하지만 그는 제가 짊어져야 할 책임을 알았기에 그녀의 손을 잡고 주름진 손등에 입 맞추며 맹세했다.
“범인을 찾아 꼭 사지를 찢겠노라 약속하겠다.”
“……꼭 그리하십시오.”
황제는 무거운 마음으로 황궁으로 돌아갔다. 수도 곳곳에서 열린 장례식은 며칠 뒤 차례차례 정리되기 시작했다. 사람들은 여전히 수군거렸고 조사엔 진전이 없었다. 하지만 황제는 녹스일지도 모른다는 의심이 머릿속에서 떠나지 않았다.
“산데스에서 늑대를 사간 자의 인상착의를 확인했습니다.”
“어땠지?”
“평균 정도의 키에 후드를 푹 눌러쓰고 있었다더군요. 암암리에 동물을 거래하는 곳이라 거래자가 누구인지 정확히 알아 두진 않은 듯합니다.”
“……그런가.”
늑대를 사들인 흔적은 있으나 성문 안으로 들어온 흔적은 없다. 황제는 고민했다. 죽은 엘러딘 바이스를 제외하면 제국엔 총 두 명의 공작과 세 명의 후작이 있었다.
“…녹스 라이네리오가 최근 들여온 물건들을 조사해 봐.”
“라이네리오 공작 전하 말씀이십니까?”
“…그래.”
“알겠습니다.”
순간 밀려오는 두통에 펠티온은 이마를 감쌌다. 만약 정말 너라면 내가 어떻게 해야 하지?
펠티온은 입술을 꾹 깨물고는 천천히 머리를 굴렸다. 만약 이번 일이 너라는 증거가 나오면 그때 너는.
너는 다시 내 손에 들어올까?
* * *
녹스는 치료가 다 된 손으로 책장을 넘기고 있었다. 그러나 에스테리온은 굉장히 신경 쓰인다는 듯 다친 손을 흘긋거렸다.
“마법을 믿지 못하나?”
“믿지 못하는 건 아닙니다만….”
“손은 이제 괜찮으니까. 신경 쓰지 마.”
“알겠습니다.”
녹스는 건성으로 넘기던 책 페이지를 몇 번 더 훑다 이내 탁, 책을 덮었다. 그리고 집무 책상에 그 책을 내려놓으며 말했다.
“잘 굴러갈 거야. 모든 일이.”
녹스가 부드럽게 웃었다. 그가 이번 일로 이룰 수 있는 일은 두 가지가 있었다.
하나는 엘러딘 바이스가 죽었다는 것이고. 다른 하나는.
“펠티온, 머리가 있다면 나라는 사람을 의심해야지.”
펠티온이 이번 사건으로 녹스 라이네리오를 경계하게 되는 것.