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43화
녹스 라이네리오는 자신의 실수를 인정했다. 까맣게 열려 있는 지하 감옥의 입구를 보면서 심장이 쿵, 하고 떨어지는 것을 느꼈으니까.
잠시 입가로 손을 가렸다. 토기가 올라오는 것도 같았다. 녹스의 변화를 눈치챈 기사 하나가 물었다.
“문제 있으십니까.”
녹스는 이를 악물었다. 지하, 자신에게 지하 방이란 절망의 구렁텅이였다. 제게 있어 어둠은 자신을 집어삼킨 어둠이자, 어머니를 찾아 빌고 빌었던 무덤이기도 했다.
녹스 라이네리오는 생각했다. 누군가 이것을 노리고 행한 거라면 이번엔 자신이 진 것이라고. 행여 미처 살피지 못한 자신의 실수일 뿐이라면 정말 재수가 없는 거라고.
뭐, 언제부터 자신이 재수가 있었느냐마는, 녹스는 이를 악문 채로 숨을 참고 지하 감옥으로 내려갔다.
뚜벅뚜벅.
녹스와 그를 지하 감옥으로 인도하는 기사 두 명의 발소리가 돌벽에 부딪혀 울렸다. 녹스는 점점 가빠지는 숨을 느꼈다. 정확히는 몸이 지하의 공기를 거부하는 걸 느꼈다.
폐에 숨이 전부 들어가지 않았다. 누가 목을 조른 것처럼 제대로 호흡하지 못했다.
물에 잠긴 것처럼, 어둠에 잠겼을 때처럼. 녹스 라이네리오는 자신의 약점을 내보여선 안 된다고 생각했다. 특히나 이곳은 적진의 한가운데다.
제 약점을 내비쳐 봤자 물어뜯기기나 할 뿐 나서서 손을 내밀 놈은 아무도 없다. 펠티온도 할리드도 결코 믿을 수 없는 자들이니까.
끼익-. 철컹.
녹스는 잠시 벽을 보고 서 있었다. 자연히, 할리드의 저택 지하 방에 갇혔을 때가 떠올랐다. 녹스는 그것을 떠올리지 않기 위해 노력했지만, 마음속 깊이 자리 잡은 두려움이란 마음대로 되지 않는 법이었다.
그는 숨을 한 번 크게 들이켰다. 어차피 이곳에 오래 있지도 않을 것이다. 누군가 저를 이곳에 일부러 처넣었다고 해도 말 그대로 자존심 누르기일 뿐이다.
녹스는 그렇게 생각하려 애썼다. 이성을 잃지 않으려 계속해 노력했다. 하지만 누군가 자신을 틀어쥔 것처럼 숨은 점점 더 가빠졌다. 결국 허리를 숙이고 입가를 가렸다.
그를 지켜보던 기사들이 뭔가 문제를 알아차린 듯 작게 웅성거렸다. 무언가를 묻는 것 같은데 문제는 그게 녹스에게 잘 들리지 않는다는 것에 있었다.
“공작 전하, 무슨 일이십니까.”
허억, 헉. 그의 갈급한 숨소리만이 들렸다. 함부로 감옥 문을 열 수 없는 그들은 시선을 교환했다.
숨은 점점 더 가빠져 갔고.
대답은 들리지 않았다.
그의 그림자가 옹송그리는 것만이 보였다.
한 명은 이 상황을 보고하러 지상으로 올라갔고 한 명은 상황을 지켜보기 위해 그대로 남았다.
녹스가 비틀거리다 벽을 짚었다. 눈을 감아도 떠도 어둠뿐이었다. 녹스는 자신이 모르고 있던 두려움에 발목을 잡히고 말았다. 자신을 조금이라도 돌보았다면 알았을 상처가 헤집어졌다.
“허….”
녹스는 돌벽에 손톱을 세웠다. 까드득, 언젠가 나무 벽을 긁을 때처럼 손끝이 상하도록 손톱을 세웠다. 녹스는 갑자기 자신이 과거에 뚝 버려진 것처럼 느껴졌다.
그래, 그 지하 방에서 아무것도 하지 못했던, 그때의 자신으로 돌아간 것만 같은 기분. 녹스는 결국 숨도 헐떡거리지 못하고 호흡을 멈췄다.
끅, 무릎이 꺾였다. 자존심 싸움이라고, 어떻게든 버티겠다 다짐했던 것은 이미 머릿속에서 사라진 지 오래. 녹스는 두 손으로 입을 틀어막았다.
그때 느꼈던 것들이 순식간에 몰려들어 왔다. 살려 줘, 나를 여기서 꺼내 줘, 차가워. 여긴 너무 어두워.
언젠가 느꼈던 것들이 송곳처럼 녹스의 뇌를 찔렀다. 녹스는 생각했다, 아니 본능적으로 무언가를 찾아 더듬었다.
그때, 그때 누가 날 꺼내 줬더라.
녹스의 눈이 어두운 지하 감옥에서 까맣게 먹혀들었다. 다급하게 들리는 발소리들이 머릿속을 웅웅거리며 울려 댔다. 머리가 아프다.
“녹스!”
“문을 열어라!”
할리드와 펠티온의 목소리가 들렸다. 황제의 명령에 기사가 뒤늦게 열쇠 꾸러미를 들었다. 열쇠를 찾느라 뒤적거리는 시간마저도 그들에겐 긴 시간이었다. 녹스는 지하 감옥 바닥에 앉아 눈을 크게 뜬 채 꺽꺽거렸다.
그 장면이 할리드에겐 칼날처럼 꽂혔다.
자신이 새긴 두려움이 결국 그의 발목을 잡았다. 그렇기에 감히 앞으로 나서지 못했다.
철컹, 끼익.
문이 열리자마자 펠티온이 먼저 뛰어 들어갔다. 할리드는 그 자리에 덩그러니 서 있었다. 자신이 지져 만든 흉터가 너무도 선명했다. 한없이 깜깜한 곳인데도 그 모습 하나만큼은 지독하게 선명히 보였다.
바닥을 짚고 주저앉은 녹스의 머리카락은 그사이에 식은땀에 젖어 있었다. 펠티온은 그에게 다급히 다가간 뒤 손을 뻗었다. 일단 그를 여기서 나가게 해야 한다는 생각만이 가득했다. 하지만.
탁-!
펠티온의 손이 닿자 녹스가 번쩍 고개를 쳐들고 그 손을 날카롭게 쳐 냈다. 그리고 벽으로 파고들 듯 몸을 벽에 바짝 붙이고 그 까만 눈으로 펠티온을 올려다보았다. 그 눈에서 읽히는 거부감이란, 자신도 모르게 내쉬는 숨조차 막을 수 있을 정도로 짙었다. 녹스가 어둠에 잡아먹힌 눈을 깜빡이지도 못한 채 무언가를 속삭였다.
숨을 제대로 쉬지 못해 소리가 멀쩡히 나오지는 않았지만 분명 무언가를 발음했다. 펠티온은 거기 서서 녹스와 똑같이 숨을 멈춘 채로 그 입술 모양을 읽기 위해 노력했다.
그의 입에서 천천히 발음되는 그것은….
펠티온의 눈이 커졌다.
치밀어 오르는 억울함에 입술을 까득 물었다.
왜 하필, 여기서. 내 손을 그렇게 매정하게 쳐 냈으면서 어찌 그것을 발음하나.
“하, 할리드….”
쥐어짜 낸 숨으로 겨우 뱉어 낸 소리는 그를 부르는 소리였다. 할리드 비아. 할리드는 고개를 쳐들었다. 그의 눈동자가 잘게 흔들렸다.
녹스는 기억했다. 최초로 자신의 목을 졸랐던 어둠을 누가 선사했는지. 그리고 마지막에 또 누가 자신을 꺼내 줬는지. 참 모순적이게도 그건 할리드 비아였다. 저를 지옥으로 밀어 넣은 사람도, 거기서 꺼내준 사람도.
녹스 라이네리오는 그때 그 절망감을 느끼며 비명처럼 그의 이름을 내질렀다.
“할리드 비아-!”
귀를 틀어막고 고개를 바닥으로 처박았다. 그 비명에 반응하듯 할리드가 감옥 안으로 뛰쳐 들어왔다. 할리드는 그를 바닥에서 끄집어 올렸다. 그의 몸을 받쳐 안고 들리지 않는 그의 숨소리를 느끼며 빛이 있는 곳을 찾았다.
할리드 비아는 참으로 어리석었다. 그래, 자신이 자격이 있는지 없는지 따위는 제가 판단하는 게 아니었다. 녹스 라이네리오에게 자신을 바쳤으면, 그랬으면 자신은 무슨 짓을 해서라도 그를 보호해야 했다. 할리드가 지상으로 올라가는 계단으로 발을 디디며 헐떡였다.
녹스 라이네리오가 할리드의 목에 팔을 감았다. 마치 그날 밤처럼. 다만 다른 점이 있다면.
그때의 할리드는 녹스를 구렁텅이 속으로 끌고 들어갈 마귀였고, 지금은 빛이 있는 곳으로 그를 건져 올리기 위해 움직이는 기사라는 점이었다. 할리드는 감옥 밖으로 뛰쳐나왔다, 빛이 닿자 잔뜩 확장되어 있던 녹스의 동공이 좁아들었다.
훅, 이제야 숨이 터져 나온다. 숨이 모자라 손발이 저릿했다. 덜덜 떨리는 팔로 할리드를 더 세게 끌어안은 녹스는 모자란 숨을 들이켜기에 여념이 없었다. 할리드는 잠시 그를 안아 든 채 허공을 바라보며 섰다.
“도련님….”
할리드의 목소리는 깊게 갈라져 있었다. 벌벌 떠는 녹스의 몸을 끌어안은 채 무작정 걷기 시작했다. 어디든 좋으니 녹스를 안정시킬 곳이 필요했다. 햇볕이 드는 곳. 빛이 있는 곳이면 어디든.
그리고….
지하 감옥 안에 남아 있는 건 펠티온, 그였다.
한없이 가라앉은 그의 눈이 지하 감옥 출구를 바라보고 있었다. 자신의 손을 쳐 내고 비명처럼 할리드를 부른, 녹스 라이네리오가 사라진 곳.
기어코, 자신이 아닌 그를 선택하겠다는 듯 그 품에 파고들던 모습이.
“…녹스 라이네리오.”
그의 눈 안에 불을 질렀다.
그의 음성이 낮게 들끓었다. 황제의 기색이 심상치 않자 황궁 기사들은 조용히 입을 다문 채 고개를 숙였다. 펠티온은 사나운 미소를 입에 올렸다.
“결국은 그렇다는 거지.”
할리드 비아가 네게 무슨 짓을 했어도. 결국엔 그 어릴 적에 나누었던 정 따위를 잊지 못해서 나를 거부하고 그 품에 안긴다는 거지.
펠티온은 단 한 번도 이런 감정을 느껴 본 적이 없었다. 질투? 하찮은 질투 같은 것이 아니었다. 그것은 일종의 증오였다. 할리드를 향한 그리고 또 녹스를 향한.
펠티온은 하, 숨을 내쉬고 한 손으로 잠시 눈가를 가렸다. 그리고 천천히 얼굴을 쓸어내린 뒤 시선을 들었다. 그의 눈동자는 어느덧 천장을 바라보고 있었다.
“…일단.”
펠티온은 자신이 지금부터 무엇을 해야 할지 알 것 같았다. 말 그대로 계시라도 받은 기분이었다.
“라이네리오 공작의 상태부터 살피지.”
“…알겠습니다.”
“비아 공작과 라이네리오 공작을 찾아와. 일단 치료사에게 먼저 보여야지.”
그는 기괴할 만큼 이성적으로 말했다. 기사들은 그의 심기를 어지럽히지 않기 위해 서둘러 지상으로 올랐다. 펠티온은 그 지하 감옥에서 홀로 한참을 서 있었다.
녹스 라이네리오가 웅크려 있던 그 자리를 보고 또 보고, 기어코 녹스 라이네리오가 이겨 낼 수 없는 상처를 남긴 할리드 비아에 대한 추악한 증오심을 씹어 삼키면서.
그는 천천히 걸었다. 지상으로. 펠티온이 지하 감옥에서 올라오자 뒤늦게 따라온 황제파 귀족들이 물었다.
“일이 어떻게 된 겁니까?”
“…별것 아니야. 그냥 문제가 좀 있었어.”
“할리드 비아 공작께서는 어딜 갔습니까.”
“잠시 라이네리오 공작을 진정시키고 있지.”
묘하게 차분한 그의 음성에 그들은 잠시 입을 다물었다. 황제의 음성은 다정했지만.
“이제 내가 뭘 해야 할지 알겠어.”
그의 둥그런 눈매 안에 들어가 있는 눈동자는 시퍼렇게 날이 서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