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49화
에스테리온은 녹스를 일단 침실로 옮긴 뒤 치료사를 불렀다. 슬쩍 들춰 본 셔츠 안쪽은 피딱지가 앉은 잇자국과 멍으로 가득했다.
‘할리드 비아가 한 짓이 아니야….’
그렇다면 이런 짓을 하려고 하거나, 할 수 있는 사람은 단 한 명뿐이었다.
‘황제.’
에스테리온이 입술을 꽉 깨물었다. 치료사가 곧 도착했다. 론더는 치료사에게 옷을 벗겨 상처를 살피지 말고 일단 치유 마법만 걸어 달라 말을 했다.
분위기가 심상치 않음을 알았는지 치료사는 선선히 고개를 끄덕이곤 요청대로 치유 마법만을 건 채 돌아갔다.
겨우 한숨을 돌린 에스테리온이 하인에게 물었다.
“할리드 비아 공작님은?”
“아, 일단 손님방으로 모셨습니다. 그러고 보니 그분께도 상처가 있다는 말이 들리더군요.”
“상처?”
“예, 양팔에서 피가 난다고….”
에스테리온은 미간을 찡그렸다. 대체 황궁에서 무슨 일이 있었던 건지 알 수가 없었다.
에스테리온도 그리고 황궁을 주시하던 귀족들도 녹스가 금방 궁 밖으로 나올 거라 생각했다. 하지만 어째서인지 하루, 딱 하루 동안 아무런 소식도 들려오지 않았다.
라이네리오 공작에 대한 것도, 비아 공작에 대한 것도 심지어 황제의 소식마저 그날 밤 동안 완벽하게 끊겼다.
하지만 해가 밝자 언제 그랬냐는 듯 비아 가문과 라이네리오 가문의 마차가 각각 황궁 문을 나섰다. 에스테리온은 생각했다.
‘일단 좋지 않은 일을 당하신 건 확실해. 그런데 왜 순순히 놓아줬지?’
면제권. 아마 면제권 때문일 거다.
면제권을 사용한 귀족을 제대로 돌려보내지 않는다는 건 있을 수 없는 일이니까. 황제가 하사한 강력한 면제권을 황제 자신이 부정하면 자신의 권력을 자신이 부정하는 것과 같다.
‘또다시 귀족 살해가 일어난다면 무슨 짓을 해서든 라이네리오 공작님을 범인으로 몰겠군.’
그렇게 면제권을 전부 소진하게 만든 뒤….
에스테리온이 미간을 찡그렸다. 그리고 그때, 작은 신음이 들렸다. 에스테리온이 침대를 돌아보았다.
녹스가 천천히 눈을 떴다.
“공작님…!”
그의 눈동자는 상당히 검었다. 그러나 그 위로 아무것도 비치지 않았다. 불이 완전히 꺼져 버린 방처럼.
에스테리온은 심장이 덜컥 내려앉는 것을 느꼈다. 그래서 다급히 그를 불렀다.
“공작님, 접니다. 에스테리온.”
녹스는 한참을 천장만 바라보았다. 뜬 눈엔 초점이 없었고 달싹이는 입술은 죄 말라 있었다.
녹스 라이네리오는 목소리를 내어 보려다 이내 소리가 잘 나오지 않는다는 것을 깨닫곤 천천히 상체를 일으켜 앉았다. 그리고 그 무엇도 바라보지 않은 채로 중얼거렸다.
“검.”
“……공작님?”
“검을 가지고 와.”
그 음성은 마치 심해에 가라앉은 사람의 것 같았다. 제대로 된 말도 아닌 것 같았다. 언어가 아닌 소리로만 이루어진 것. 그것은 온통 감정에 흠뻑 젖은 소리가 입 밖으로 기어 나온 것에 가까웠다. 커다랗게 뜬 검은 빛의 눈엔 갖가지 감정이 일렁였다.
에스테리온은 순간 저택의 모든 검을 치워야 한다는 충동이 들었다. 지금 그에게 그 어떤 날붙이도 쥐여 주어서는 안 된다는 감각이 강하게 들었다. 에스테리온은 고개를 저었다.
“조금, 조금만 있다가. 있다가 가져오겠습니다.”
“당장…. 바로.”
녹스가 자신의 목을 콱 쥐었다. 그리고 숨을 못 쉬는 사람처럼 헐떡이다 고개를 숙였다. 시트 위로 그의 가쁜 호흡이 쏟아졌다.
에스테리온은 갑작스러운 녹스의 행동에 그의 어깨를 잡고 제 품에 기대게 한 뒤 턱을 젖히게 했다.
“공작, 공작님!”
꺽꺽대며 숨을 쉬지 못하는 녹스가 무언가를 자꾸만 찾았다. 에스테리온은 이를 악물고 그것을 모르는 척하며 하인을 불렀다. 당장은 녹스의 상태를 진정시켜야만 했다.
“하, 아, 아하하…!”
숨을 제대로 내쉬지 못하는 채로 에스테리온의 품 안에 있던 녹스가 갑작스럽게 웃음을 터뜨렸다.
녹스 라이네리오는 다시 한번 펠티온에게 내리눌렸던 그 감각에 두 손톱을 세워 제 어깨를 마구잡이로 긁어 댔다.
억지로 올라왔던 그 감각. 늘어지던 몸. 제게 파고들었던 그 모든 감촉이 지나치게 선명했다. 흰 셔츠가 피로 물들기 시작했다. 에스테리온이 다급하게 그의 두 팔을 잡았다.
“공작님, 진, 진정하십…!”
에스테리온의 머릿속엔 지금 녹스가 스스로를 해치는 행동을 막아야겠단 생각밖에 없었다. 공작, 녹스의 발작에 하인들이 분주하게 움직이기 시작했다. 그 소란은 1층까지 전해졌다.
“아, 함부로 오시면 안 됩…!”
“지금은 공작님께서…!”
“비아 공작님!”
소란을 듣고 손님방에서 뛰쳐나온 할리드는 다급하게 녹스의 방문을 열었다.
에스테리온의 품 안에서 검게 타 버린 눈을 한 녹스를 발견한 순간, 그의 손이 덜덜 떨려 왔다. 그는 뛰듯 걸어와 침대 아래에 무릎을 꿇었다. 그리고 애처로운 눈으로 녹스 라이네리오를 올려다보았다.
할리드의 두 손이 바닥에 붙었다. 할리드의 회색빛 금발은 엉망으로 흐트러져 있었다. 그리고 그는 마치 노예처럼 빌었다.
“도련님, 도련님. 전부 제 탓입니다. 제가, 제가 잘못을 해서. 제가 방심을 해서….”
할리드는 어떻게든 제 탓을 하려 애썼다. 녹스 라이네리오가 이것을 자신의 탓이라고 여기는 순간, 그의 숨이 끊길 수도 있었다.
황제는 어찌 그렇게 쉽게…, 그가 죽지 않는다 단언한 것일까. 어찌 그럴 수 있나.
지금 할리드는 무서워서 죽을 것만 같은데.
“너 때문이라고?”
녹스가 공허한 눈을 한 채 물었다. 에스테리온은 어떻게든 녹스를 진정시키기 위해 천천히 그가 숨을 쉴 수 있도록 달랬다.
“…예, 예 제가, 저의 죄입니다.”
할리드는 애절하다 못해 급박한 사람처럼 자신을 탓했다. 녹스의 검은 눈이 그를 내려다봤다. 수많은 감정이 소용돌이치는 그 검은 눈으로. 할리드의 턱이 꽉 다물렸다. 그의 눈 안에서 발견한 것은 다름 아닌.
“그게 누구의 죄든, 그 일이 있었다는 것이 달라지나?”
새카맣게 물든 증오였다.
“제발, 도련님. 제가. 제가 무엇이든 하겠습니다.”
할리드가 두 손을 내밀어 감히 그의 손을 잡아냈다. 그의 손은 식은땀으로 축축했고 팔의 상처로부터 흘러나온 핏물로 젖어 있었다.
그리고 녹스는 그 말에 답했다.
“무엇이든 하겠다고?”
녹스 라이네리오가 비웃었다.
“넌 아무것도 못 했어.”
날 지키지도, 너를 지키지도 못했지. 녹스가 이를 악물고 답했다. 할리드는 할 수 있는 말이 없었다. 녹스는 시트를 찢을 듯 잡아 쥐었다.
“난 더 이상 노예도 아니고.”
그의 시선이 어딘가로 향했다. 그러나 그가 어디를 바라보는지 그 누구도 알 수 없었다.
“그 누구의 것도 아닌데.”
또다시 숨을 헐떡이기 시작했다.
“내가 왜, 왜 여기까지 와서, 왜!”
녹스는 이해가 가지 않는다는 듯 말했다.
“왜 이런 비참한 꼴을 당해야 하지?”
녹스의 목소리가 거칠었다.
녹스의 눈은 증오와 분노를 담은 채 검은 파도처럼 일렁였다.
불길이 일다 못해 새까맣게 타 버린 재와 같아 보였다. 녹스 라이네리오는 밀려오는 분노를 숨기지 못하고 자신의 몸에 손톱을 세웠다.
에스테리온이 다급히 저지하는 동안, 할리드는 무릎을 꿇은 채 그 모습을 멍청히 보고 있었다.
펠티온, 그가 왜 그런 선택을 했는지는 알고 싶지 않았다. 그에겐 당장 눈앞에 있는 녹스만이 중요했다.
녹스 라이네리오가 입술을 피가 나도록 짓씹고 있다.
녹스, 그가 새까맣게 타 버린 눈을 하고 있다.
도련님, 나의 도련님이. 비참하다는 말을 목 졸린 듯 내뱉는다.
나의…?
순간, 할리드 비아라는 사내의 정신이 쩍, 하고 금이 가는 소리가 들리는 듯했다. 어쩌면 아슬아슬하게 맞물린 것이 겨우 유지된 상태에 가깝다고 해야 할지도….
“…죽여 버릴 거야.”
녹스가 중얼거렸다. 검은 눈이 먼 허공을 보며 미친 사람처럼 중얼거렸다. 죽여 버릴 거야. 감히, 나를. 이제 노예도 뭣도 아니거늘. 당장 검을 들고 그의 몸에 쑤셔 박고 싶은 충동을 억누르기가 힘들었다. 그를 죽이고 나도 죽어 버리자. 그래, 그럼 되는 거야. 날 막는 자를 전부 죽이고. 그리고….
뚝.
“내가 못 그럴 걸 알았어.”
펠티온, 그 새끼가. 내가 못 그럴 거라는 걸 알고 있었어. 내겐 책임질 게 있으니까. 보호해야 할 것이 있었다. 결국 내가 내 명예를 지키기 위해선 그 일을 없었던 것처럼 묻어 버리는 수밖에 없었다. 그래서 그따위 짓을 한 게 분명했다.
분명 노예라는 치욕에서 벗어났으나 함부로 분노조차 할 수 없는 처지. 녹스 라이네리오는 그 모든 것이 비참했다. 죽고 싶을 만큼, 그리고 죽여 버리고 싶을 만큼.
“허….”
그는 헛웃음을 켜다 이내 미친 사람처럼 웃었다. 그런 그를 두 남자가 불안한 눈으로 바라보고 있었다. 할리드는 녹스에게 자신이 무엇을 해 줄 수 있는지에 대해 생각하기 시작했다.
할리드 비아는, 그는, 녹스 라이네리오가 평온하기를 바랐다.
그리고 그가 더는 괴롭지 않기를 바랐다.
그가 더 이상 상처 입지 않기를 바랐다.
그를 상처입힌 것은 무엇인가.
생각이 뚝 끊겼다.
그와 동시에 할리드 비아가 외면해 오던 단 하나의 방법이 금이 간 유리 틈에 스며들었다.
녹스 라이네리오가 더 괴롭지 않을 방법. 더 이상 상처 입지 않을 방법. 할리드 비아가 아주 손쉽게 이루어 줄 수 있는 방법이 있었다.
할리드 비아는 그제야 깨달았다. 자신이 지금까지도 욕심을 버리지 못하고 있었다는 것을.
그는 머리를 한 대 후려 맞은 기분이었다. 그래, 내가 이 짓을 하고도 아직 욕심을 내고 있었구나. 그는 헛웃음 쳤다.
감히, 그래. 감히.
어쩌면 그와 한 세계 안에 존재하며 살아갈 수 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하고 있었다니.
녹스 라이네리오의 안온은 두 남자가 존재하는 이상 만들어질 수 없는 것에 가까웠다.
그리하여 그 생각이 돌고 돌아 그 끝에 다다르자 단 하나의 결론만이 남았다.
“…죽여 드리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