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55화
피가 뚝뚝 떨어졌다. 그의 피부는 본디 색을 알아볼 수 없을 정도로 붉게 저며져 있었다. 손톱과 발톱은 모조리 뜯겨 피딱지가 앉아 있었고 그의 잘난 얼굴엔 칼로 베어 낸 자국이 가득했다.
팔뚝의 피부를 한 겹 한 겹 벗기고 있던 고문 기술자는 그가 기절할라치면 물을 끼얹었다. 피부가 벗겨지고 찢겨 속살이 드러난 곳에 물이 스며들자 말로는 설명할 수 없는 고통이 치밀었다.
그가 낮게 신음하면 고문 기술자는 눈매를 휘며 다시금 피부를 얇게 뜨고자 짧은 칼을 들었다. 할리드의 옷은 온통 피에 절어 있었다. 발목은 뼈가 드러날 정도로 너덜너덜했으며 손가락들은 전부 방향이 뒤틀린 채 꺾여 있었다.
허억, 헉. 그의 빠듯한 숨이 연달아 차가운 돌바닥에 떨어졌다. 얼굴은 눈조차 뜰 수 없을 정도로 피 칠갑이 되어 있었다. 할리드의 갈라진 목소리는 얇은 칼이 살갗을 헤집을 때마다 짐승처럼 내질러졌다.
하지만 그럼에도 그는 결코 녹스 라이네리오의 이름을 부르지 않았다. 이 지하 감옥에서 다시는 그의 모습을 보지 못한 채 이렇게 괴롭게 죽어 가는 것이 자신에게 어울리는 마지막이라는 생각마저 들었다.
그래, 이렇게 널 상처입힌 사람 따위는 저 지하 깊숙한 곳에 영원히 묻어 버리고, 너란 존재는 어딘가 있을지도 모르는 안온한 곳으로 향했으면 좋겠다는 그런 안일한 생각이 들었다.
“흐음, 입이 생각보다 무거우시군요.”
그를 핏덩이로 만든 고문 기술자는 이제, 뜯겨 나온 피부와 살덩어리들이 덕지덕지 붙은 집게와 칼을 내버리고 다른 방법을 찾기로 했다.
“인두를 준비해야겠다.”
“아, 알겠습니다.”
이 모든 고문 장면을 지켜보고 있던 경비병이 목소리를 떨며 답했다. 그는 기술자가 말한 인두를 준비하기 위해 자리를 떴다. 인두를 찾아 저 멀리 걸어가는 뒷모습 아래로 우욱, 하고 헛구역질하는 소리가 들렸다.
의자에 묶인 할리드 비아는 말 그대로 핏덩이, 그 자체였다. 하지만 고문 기술자는 이제 시작이라는 듯 콧노래를 흥얼거리며 자신이 사용한 도구들을 얼룩덜룩한 천으로 닦아 냈다.
“사실 전 당신이 말을 하든 말든 크게 상관이 없습니다.”
“…….”
색색거리는 작은 숨소리만이 그가 살아 있다는 것을 알려 주는 증거가 되었다. 고문 기술자는 감옥 안으로 들어오는 뜨거운 쇠 그릇을 바라보며 두 손을 맞잡고 기도하듯 하늘을 보았다.
“어차피 당신은 여기서 끝이거든요.”
그는 누군가라면 절망에 빠질 만한 말을 아무렇지 않게 내뱉었다.
“당신은 말을 하든 말든 여기서 죽는 겁니다.”
“…….”
그때 할리드가 피투성이가 된 입술을 달싹였다. 고문 기술자는 귀를 가까이 가져가 그가 숨소리처럼 뱉어 내는 말을 들었다. 그리고 곧 그 말에 깔깔거리며 웃었다.
“그래요. 그래야지요.”
그래야 일이 재미있게 돌아가지 않겠습니까. 그는 곧 불에 달구어진 쇠막대를 쥐었다.
“저 또한 권력에 이리저리 휩쓸려 다니는 사람이지 않겠습니까. 그래도 이왕이면.”
쇠막대의 넓적한 부분이 칼로 저며진 할리드의 등에 닿았다. 치이익, 소리와 함께 순간 비명이 터졌다. 그 비명 사이로 그가 중얼거렸다.
“당신이 멋진 사람이었으면 좋겠습니다.”
그러니 당신이 했던 말을 끝까지 지키고 죽자고요. 고문 기술자는 히죽거리며 웃었다. 그는 할리드가 속삭인 한 마디를 곱씹으며 상처 사이로 새빨갛게 달구어진 꼬챙이를 욱여넣었다.
‘죽는 건 나 하나야.’
시간은 계속 흘러 할리드 비아는 7일이라는 시간을 지하 감옥에서 보냈다. 그가 시간을 보내는 동안, 지하 감옥에서 비명이 끊기는 날은 없었다.
녹스 라이네리오가 정신을 놓아 버렸던 그 날짜만큼.
* * *
녹스 라이네리오는 이제 정리된 황제의 집무실 안에 당당히 앉아 있었다. 펠티온의 장례식은 아직 준비 중이었다. 황제가 죽었다고는 하나 나라의 일이 전부 멈추는 것은 아니다.
만약 그에게 후계자가 있었다면 그가 이어서 하게 되었겠지만 글쎄, 지금 후계로서 이 자리에 앉아 있는 것은 그 누구도 아닌 녹스 라이네리오였다.
황제의 손에 진창에 처박혔던 그가 이제는 되레 그의 자리를 차지하고 앉은 것이다. 귀족들은 녹스를 두려워했다. 이 모든 것이 과연 우연의 일치인지 아니면 모두 그의 손안에서 벌어진 일인지.
하지만 머리와 눈이 있다면 알 수밖에 없었다. 어찌 이 모든 일이 단순히 우연만으로 일어난 것이라 할 수 있을까. 녹스는 살폈던 서류를 옆으로 밀어 놓고 지금 막 올라온 보고를 듣고 있었다.
“죄인이 입을 열지 않습니다.”
그 말에 녹스가 테이블을 두드렸다.
“입을 열지 않는다라….”
이제 하나 남은 펠티온의 측근인 시종장이 마른침을 꿀꺽 삼키며 고개를 끄덕였다.
“고문이 모자랐던 것은 아니고?”
“……그럴 가능성은.”
“그래, 없겠지.”
녹스는 자신이 부른 고문 기술자에 대해 잘 알고 있었다. 말 그대로 미치광이였다. 적당한 미치광이라면 모를까, 완전히 돌아 버린 자가 손속에 자비를 두었을 리는 없었다. 녹스 라이네리오는 궁금하면서도 한편으로는 심기가 불편했다.
만약 할리드의 입에서 녹스의 이름이 나왔다면 고문 기술자는 실수를 가장하여 그를 죽였으리라. 하지만 아직까지 살아 있다는 것은.
‘그가 내 이름을 말하지 않았다.’
녹스는 심드렁한 얼굴로 시선을 모로 돌렸다. 모든 게 나를 위해서라고? 녹스는 그를 믿지 않았다. 모든 것은 제 자신의 마음이 편안해지기 위해서. 모든 것을 훌훌 털고 죽음이란 곳으로 도망가기 위한 준비일 뿐이리라.
네가 날 사랑했다면 그럴 수 있을 리가 없어.
녹스는 자리에서 일어섰다. 그리고 집무 책상을 지나치면서 시종장에게 명령했다.
“죄인을 보러 가지.”
“죄인을, 직접 보시겠다고요?”
그러자 녹스 라이네리오가 헛웃음 쳤다.
“말대꾸를 다 하네.”
녹스의 시선은 완벽히 그를 업신여기고 있었다. 신기한 일을 다 겪어 본다는 듯 말하는 그의 말씨엔 만져질 것 같은 오만함이 가득 차 있었다. 시종장은 자신의 실수를 인지하고 고개를 푹 숙였다.
“제, 제 실수입니다.”
“뭐, 그래.”
녹스는 무어라 한 것 치곤 가볍게 넘겼다. 시종장은 등에서 식은땀이 흐르는 것을 느꼈다. 그가 자신을 이렇게 유하게 넘어가 줄 리 없었다. 어차피 언젠가 이 궁에서 사라질 자이기에 보이는 자비에 가깝다고나 할까.
녹스는 자신을 따라 궁에서 기거하고 있는 에스테리온을 불러들였다. 그는 어쩐지 묘하게 피곤해 보이는 얼굴로 녹스를 찾아왔다.
“왜 이렇게 눈 밑이 검어.”
“황궁의 침대는 너무 푹신합니다.”
“내가 공작저에서 질 낮은 방을 준 것도 아닌데.”
“지금 제게 내어 주신 방을 생각하십시오. 황족이나 잘 수 있는 방이잖습니까.”
“견뎌.”
“…예에.”
녹스는 에스테리온과 함께 지하 감옥으로 향했다. 아직까지 정식으로 황제의 자리를 이어받은 것은 아니기에 줄줄이 따르는 궁인들은 없었다. 두 사람은 아래로 내려가며 가벼운 대화를 나누었다.
“내가 생각해 본 건데.”
“예.”
“라이네리오 공작가는 자네 동생이 잇는 게 어때.”
“예?”
녹스에게만 가벼운 대화였다.
“아니, 그게, 무슨.”
“내가 황위에 오르면 그 뒤는 당연히 제메일이 이을 거야. 제메일이 공작위를 가지고 있다가 자식에게 물려줘도 상관은 없겠지만.”
녹스가 1층으로 내려와 에스테리온을 올려다보았다.
“네 동생을 책임져 주겠다고 했잖아.”
“…….”
에스테리온은 너무나 과분한 말에 대체 무슨 말을 이어야 할지 모르겠다는 얼굴로 입술을 달싹거렸다. 하지만 녹스는 여상한 얼굴로 뒷말을 이을 뿐이었다.
“물론 자네 여동생은 아직 어리니 자네가 먼저 작위를 이어받아야겠지.”
“아니, 공작님. 아니 전하. 아니, 폐하.”
“아직은 전하.”
“예. 예. 전하. 그런 소리는 함부로 하시는 게 아닙니다.”
“내가 아무 생각 없이 이러는 걸로 보이나?”
“그, 그건 아니지만.”
“생각해 봐. 시간은 길게 못 줘.”
두 사람은 그렇게 대화를 나누며 지하 감옥 앞에 다다랐다. 녹스 라이네리오는 잠시 멈춰 서서, 바짝 허리를 세우고 긴장한 경비병들을 앞에 두고 서 있다 그에게 말했다.
“혼자 내려갔다 오지.”
“괜찮으시겠습니까?”
“…괜찮아.”
지금 이곳에 갇힐 건 내가 아니니까. 녹스는 언젠가 자신을 삼키는 지옥의 아가리 같았던 지하 감옥 입구를 바라보았다. 두려움은 여전히 있었으나 그 아래 자신의 악몽이 갇혀 있다는 생각을 하니 숨 쉴 틈이 생겼다.
“기다리겠습니다.”
에스테리온의 말에 녹스는 답 없이 천천히 지하로 내려가는 계단을 밟았다. 하나, 둘, 셋. 어둠에 제 모습이 먹혀들어 갈수록 녹스는 온몸에 바짝 힘이 들어가는 것을 느꼈다. 아직은 전부 극복하지 못한 공포가 그의 발목을 잡아 왔다.
아래로 내려가 횃불의 빛이 비치는 곳에 닿을 때쯤, 녹스는 목을 조이는 크라바트를 풀어냈다. 횃불 옆엔 녹스가 아는 남자가 서 있었다. 흰 머리의 고문 기술자는 온몸을 피로 물들인 채 공손한 자세로 그를 맞이했다.
“내려오신다는 소식에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결과는.”
그러자 고문 기술자는 어쩐지 즐거운 얼굴로 말했다.
“알아낸 것이 없습니다.”
“…….”
녹스 라이네리오는 그의 얼굴이 영 께름칙했다. 하지만 겉으로는 표하지 않으며 철창 가까이로 다가갔다. 횃불의 빛이 비치지 않는 감옥 안쪽에서 피 냄새가 훅하니 풍겨 왔다. 녹스는 점점 어둠에 익숙해져 가는 눈으로 그 안을 바라보았다.
사람이라 할 수 없는 형상이었다. 의자에 묶여 팔다리를 구분할 수는 있으나 회금색의 머리카락은 검게 보일 정도로 피에 절어 있었으며 피부는 죄 속살을 드러내 근육의 섬유질마저 하나하나 보일 지경이었다.
녹스는 헛웃음을 쳤다. 그래, 이 지경이 될 때까지도 말을 안 했다 이거지. 녹스 라이네리오는 할리드 비아를 내려다보며 말했다.
“고집이 생각보다 세.”
그 목소리에 바닥을 향해 축 처져 있던 고개가 움찔 떨렸다. 그리고 천천히 고개를 들어 올렸다. 그와 동시에 녹스는 엉망인 그의 꼴을 보게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