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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전생보고서-8화 (8/1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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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장, 다시 만난 세계.

“어린 아이를 죽이려 들다니, 무척 나쁜 사람들이잖아?”

목소리의 주인공은 수풀 사이에서 그 모습을 드러내었다. 산책을 나오듯 가벼운 발걸음 청년은 흰 셔츠에 바지를 입고 있었는데, 그 행색이 북쪽의 추운 날씨와 전혀 어울리지 않았다. 신발 또한 신지 않은 맨발이었는데, 바닥에 굴러다니는 돌멩이와 나뭇가지는 그의 몸에 상처를 남기지 못했다.

“기왕에 편을 들 거라면 난 나쁜 사람보단 착한 사람 편을 들고 싶어. 보통 어린이를 핍박하는 사람이 나쁜 사람들이지. 게다가 그 복면, 나 수상해요 하고 온몸으로 외치고 있거든.”

청년이 손에 든 나무 몽둥이를 빙글빙글 돌리며 말했다.

“그러니까 너희가 나쁜 놈 당첨이야.”

이방인 청년은 웃으며 손에 쥔 몽둥이로 복면인들을 겨누었다.

“넌 누구냐!”

“이 동네는 몇 십 년이 지나도 바뀌질 않아요. 내가 누군지가 그렇게 중요한가? 결론은 난 너희들의 적이고, 우린 싸워야 한다는 거잖아?”

청년의 이국적인 얼굴에 떠오른 웃음은 거짓말처럼 사라지고 싸늘한 살기가 떠올랐다. 나무 몽둥이의 주변으로 검푸른 아지랑이가 피어오른다.

“지금 내가 기분이 좋질 못해서. 힘 조절을 못해도 이해해 주길 바라!”

자리를 박찬 청년이 복면인들의 사이로 뛰어들었다. 청년이 가장 먼저 공격한 이는 이레인을 죽이려든 척 베스파뇰이었다. 윤이 나무 몽둥이를 내려친 순간 척은 반사적으로 검을 들어 그것을 막아냈다. 복면인들은 윤의 어리석은 행동을 비웃었다. 나무와 쇠가 만나면 부서지는 것은 나무였다. 그러나 상황은 그들의 예상을 빗나갔다.

-챙!

거친 충돌음이 공터를 울렸다.

“크읏!”

척이 신음성을 터뜨리며 자신의 오른쪽 어깨를 왼손으로 움켜쥐었다. 어마어마한 충격이 그의 팔로 전달된 탓에 반사적으로 검을 놓칠 정도였다. 그에 비해 윤은 너무도 멀쩡한 얼굴로 이레인을 보호하듯 앞을 가로막고 서 있다.

“너는 누구냐!”

척은 경악한 눈으로 청년을 보았다. 청년은 태평한 얼굴로 어깨를 으쓱했다.

“자꾸 그렇게 물어봐도 대답 안 해준다니까.”

“아스타시온 황태자가 보낸 것이냐?”

“그 사람은 또 누구야? 그나저나 기사가 되어선 어린아이를 죽여도 돼?”

정곡을 찔린 척이 대꾸하지 못하고 이를 악물었다. 어린 아이를 죽이는 일은 기사의 명예에 어긋난 일, 그러나 주공의 명령을 거스르는 것은 더욱 큰 불명예로 황제에게서 이레인을 죽이라는 명령을 받았을 때 내키지 않았으나 거부하지 않았다.

평소에 이레인을 귀여워했다는 건 중요하지 않은 일이었다. 게다가 황제의 명을 따르지 않으면 자신의 목숨 또한 바람 앞의 촛불이라는 것을 잘 알고 있었다. 어린 아이를 살해하는 찜찜한 뒤끝을 제외하곤 그다지 어렵지 않은 일이라 생각했다. 이레인은 시녀 태생의 힘도 없는 황자였다. 실제 그와 동행한 기사는 단 넷에 불과했다. 그것도 에단 아이그너를 제외하면 허접하기 그지없는 실력의 기사들이다. 그러나 상황은 정체를 알 수 없는 청년이 난입하며 엉망으로 변했다.

“시간이 없으니까 빨리 끝내자.”

윤이 몽둥이를 고쳐 쥐었다. 빠직빠직. 나무 몽둥이가 고통에 찬 비명을 질렀다. 튼튼한 녀석으로 골랐으나 소드 오러를 버텨내지 못하고 깨져나가고 있었다. 검게 탄 나무 부스러기가 바람에 섞여들자 이레인이 작게 기침을 했다.

“어서 덤비라니까?”

청년이 몽둥이를 휘둘렀다. 나무가 피부를 스치는데, 마치 날카로운 것에 베인 것처럼 척의 양쪽 허벅지에서 피가 튀었다.

“끄아악!”

척이 비명을 지르며 앞으로 쓰러졌다. 단숨에 황제의 호위 기사를 무력화시킨 청년은 망가진 나뭇가지를 아무렇게나 뒤로 던진 후 바닥에 떨어져 있던 척의 검을 주워들었다.

“제법 좋은 검이네.”

윤은 검을 한번 휘두르곤 감탄했다. 예전에 쓰던 애병인 트리기토스만큼은 아니지만, 제법 괜찮은 검이라 할 수 있었다. 오러를 밀어 넣으니 부드럽게 흡수한 후 검날을 타고 검기를 토해낸다. 윤이 쥔 검에서부터 뻗어 나온 검푸른 오러는 검을 감싸며 타오르듯 주변의 공기를 살라먹고 있었다.

“소드 익스퍼트….”

이레인의 호위단장 에단이 신음했다.

듀란 기네즈의 「검술 총서」에 따르면 마나를 사용하기 시작한 검사를 총 세단계로 구분했다.

세상에 흐르는 마나를 느끼고 그것을 운용하기 시작한 초심자 단계를 소드 비기너.

자신의 마나를 운용해 소드 오러로 바꾸어 그것을 검에 실을 수 있는 자를 소드 익스퍼트.

마나의 이치를 깨달아 자신의 마나로 검의 형상을 만들어낼 수 있는 초월자를 소드 마스터.

확연한 검의 형태를 띄우지는 못했으나 청년의 검에서 솟아오른 것은 필경 검기였다. 게다가 불꽃처럼 강렬한 오러로 보아 청년은 최소한 상급 소드 익스퍼트의 경지에 다다른 검사가 틀림없었다.

제국 내에도 익스퍼트의 검사는 백여 명 정도에 불과했고, 마스터는 그 수가 더더욱 적어 대륙에 겨우 셋이었다. 황제의 수신 호위들의 최소 조건이 소드 비기너일 만큼 마나를 사용할 수 있는 검사들은 무척 귀했다. 에단 또한 어린 나이에 황자의 호위 기사 단장이 되었지만 상급 비기너에 불과했다.

검의 천재라 불리는 아스타시온 황태자도 열여덟 살의 나이에 익스퍼트의 경지에 올랐다. 그것만으로도 제국에서는 다시없을 검술의 천재라며 흥복이라 하였다. 고작해야 십대 후반으로 보이는 젊은이가 소드 익스퍼트라니! 에단은 급박한 상황마저 잊고 감탄성을 흘렸다.

“패기는 좋다만, 네가 우리들의 공격을 이겨낼 수 있을 거라 생각하나?”

몸을 추스른 척이 표정을 악귀처럼 일그러트렸다. 겁먹은 이레인이 라야의 품에 안겼다.

제 아무리 소드 익스퍼트라 할지라도 비슷한 경지의 검사 일곱을 상대하는 건 쉽지 않은 일이다. 저 놈은 반드시 고통스럽게 죽이고 말것이다! 척이 이를 갈았다.

“공격해!”

두 명의 복면인은 기사로서의 명예도 던져 버린 채 동시에 검을 짓쳐 들어왔다.

“제 아무리 다수가 공격해온다고 할지라도 면적은 정해져있지.”

윤이 검을 빙글 돌렸다. 곧장 오른쪽에 서 있던 복면인의 어깨를 쏜살같이 찔러들었다.

“……이렇게 말이야!”

“큿!”

단번에 한 명을 무력화 시킨 후 남은 자를 향해 검을 휘둘렀다. 그는 엉겁결에 검을 들어 윤을 막아냈다. 그러나 강한 검기가 실린 검과 부딪히자 복면인의 검은 단숨에 부러져나갔다.

“크아악!”

청년은 물 만난 물고기처럼 암살자들을 상대했고, 그가 검을 휘두를 때마다 복면인들은 쓰러져나갔다. 마치 춤을 추는 것처럼 가볍고 재빠른 몸놀림에 에단은 감탄했다. 그러나 청년이 검을 휘두를 때마다 죽음이 피어올랐다.

“뭐해! 정줄 놓고! 네 주인을 보호하란 말이야!”

청년이 날카롭게 외쳤다. 에단은 저도 모르게 청년의 명령에 반응해 몸을 움직였다. 황자가 인질이 되면 상황은 종료된다. 실책을 깨달은 그들이 재빨리 움직였다. 이레인을 중심으로 에단은 왼쪽에, 로릭은 오른쪽에 서서 검을 겨누며 주변을 경계했다. 피를 많이 흘려 시야가 흔들렸으나 황자를 보호하는 일은 어렵지 않았다. 청년의 기세가 워낙 대단하여 감히 이쪽으로 다가올 수 있는 자는 존재치 않았다.

십여 분도 지나지 않아 상황이 정리되었다. 공터에 서 있는 사람은 이레인 황자 일행과 의문의 청년 밖에 없었다.

“자, 계속해볼 사람?”

청년이 검에 묻은 피를 털어내며 말했다.

그 사이 청년을 공격하려던 척은 왼팔을 크게 베였다. 피가 흐르는 상처를 손으로 눌러 지혈하며 그가 외쳤다.

“크읏. 넌 누구냐? 어찌 감히 황제의 행사를 방해하는 것이냐!”

“내 정체가 궁금해?”

청년이 어깨를 으쓱하며 질문을 질문으로 되돌렸다. 청년의 정체가 궁금한 건 비단 척 뿐만이 아니다. 에단 또한 마찬가지였다. 하늘에서 솟아오른 듯 갑자기 나타난 이방인 검사. 그 실력은 대단해서 정예 중의 정예인 황제의 기사들을 단숨에 무력화시켰다.

“…나도 몰라. 그러니까 내 정체를 너희들이 좀 가르쳐주지 않을래?”

“제기랄! 장난하는 건가?”

울컥한 척은 흰자를 희번덕거리며 윤을 노려보았다.

“다음번에 널 만나면 결코 가만두지 않을 것이다.”

“내 경험에 다음에 보잔 사람 치고 정말 무서운 사람은 없었는데.”

청년은 왼손으로 자신의 흐트러진 머리를 쓸어 올리며 얄밉게 대꾸했다. 거친 움직임에도 이마에 살짝 맺힌 땀방울을 제외하면 지친 기색을 찾아볼 수 없었다.

“너희들을 죽이지 않은 건, 저 꼬마의 적들에게 경고하기 위한거야.”

정체를 알 수 없는 청년은 습격자의 팔과 다리만 공격하여 전투 불능의 상태를 만들었을 뿐 단 한명도 죽이지 않았다. 이런 다대일의 전투에서 사람을 죽이지 않는 것은 훨씬 어려운 일로 무시무시한 실력에 소름이 오싹 돋았다.

“열을 센다. 그때까지 사라지지 않으면, 다 함께 저 세상으로 소풍갈 수 있게 해주지.”

바닥을 기던 기사들이 있는 힘을 짜내 몸을 일으켰다. 기사들은 부상당한 동료들을 이끌고 사라졌다. 이제 공터에 남아 바닥을 뒹구는 건 총 여섯. 복면인 넷과 이레인의 기사 둘의 시신이다. 청년은 복면인들이 모두 사라진 후에야 길게 한숨을 내쉬며 이레인을 향해 몸을 돌렸다.

“꼬마야, 괜찮아?”

청년이 걱정스러운 표정으로 물었다.

“황자 저하!”

“꼬마야!”

구사일생으로 살아났다. 긴장이 풀린 이레인은 눈앞이 캄캄해지는 것을 느꼈다. 그대로 기절하고 말았다.

**

“센트리움을 빠져나온 7황자에게 암살자들이 붙었다 합니다.”

수하의 보고에도 아스탄은 보고 있던 서류에서 시선을 떼지 않았다. 그 시선은 일견 무심하기까지 하다.

친동기간은 아니라하나 어린 동생이 살해당하고, 형제들 중 마지막으로 살아남은 동생이 아비의 마수에 피해 도망치다가 붙잡혔다는 소식에도 황태자에게선 분노한 기색을 찾을 수 없었다. 기사들을 보내 동생을 구원할 수 있음에도 그리하지 않았다. 딘넬 백작, 미하엘은 황태자의 냉정함에 속으로 혀를 내둘렀다.

“어디까지 왔지?”

“노스트라드의 근교인 도룬 영지입니다.”

아스탄은 밀어두었던 편지를 떠올렸다. 아우가 형님의 얼굴을 뵙지 못한지 오래 되었으니, 외유를 청한다는 내용이었다. 도망칠 장소로 자신을 선택하다니 제법 똑똑해졌다고 생각했다. 아스탄은 머릿속으로 냉정하게 동생의 가치를 재평가했다. 그러나 굳이 도와줄 만큼 중히 여기진 않았다.

“이레인 크라이슬러는 지켜보도록 해. 우리는 손을 쓰지 않는다.”

“예.”

이레인은 시녀의 몸에서 난 자식으로 폰에 불과했다. 그러나 폰은 마지막까지 도달하면 킹으로 승격을 할 수 있다. 만약의 일이긴 하나 적법한 후계인 자신이 사망하면, 황태자가 될 수도 있었다. 그전에 죽겠지만 말이다.

“살아남는 다면 그것도 녀석의 운이겠지.”

이레인마저 죽는다면, 일곱의 황자 중 여섯이 죽은 셈이다. 제 아무리 신성한 황제라 할지라도 피에 미쳤단 명분으로 그를 끌어내리는 명분에 도움이 되리라. 살아남는다면 이곳에 방패막이로 놔둔 채 시선을 끌고, 자신은 노스트라드를 빠져나가 황룡을 만나도 괜찮을 것이다.

어찌되었든 이레인의 존재는 생사를 불문하고 아스탄에겐 유용한 패가 된다. 수십 가지 계책이 머릿속에서 떠올랐다가 사라지길 반복했다. 물기 없이 뻑뻑한 눈을 감았다 뜬 아스탄은 상념을 떨치듯 자리에서 일어났다. 이틀 내내 십분도 잠들지 못한 머리가 지끈거렸다.

“말을 준비하라.”

아스탄은 말을 달려 밖으로 향했다. 준마는 빠르게 성곽을 통과해 산속을 내달렸다. 싸늘한 겨울바람이 그를 스쳐지나갔다. 그의 마술은 훌륭해서 어두운 밤이며, 산속임에도 불구하고 거침없이 내달렸다. 다른 사람들은 삼십 분을 달려야 도착할 북쪽 숲에 십오 분 만에 주파했다. 역동적으로 달리는 말의 몸에서 더운 훈기가 피어오른다. 말의 숨이 거칠어져도 아스탄의 호흡엔 흐트러짐이 없었다.

절벽으로 다가간 그가 말에서 내려섰다. 흑색 준마는 푸르렁거리며 아직 부족하다는 듯 바닥을 박찬다. 아스탄은 좀 더 달리고 오라는 듯 말의 고삐를 풀어주었다. 아스탄의 행동을 알아들은 것처럼 흑마는 숲속으로 사라졌다.

그란디아 제국을 북에서부터 왼쪽으로 감는 우버 산맥의 줄기는 노스트라드에도 뻗어있다. 천장단애의 절벽에 올라서면 노스트라드가 한눈에 보인다. 아스탄은 그 끝머리에 서서 도시를 내려다 보았다. 호통치듯 차가운 겨울바람이 매섭게 내려쳤다.

이전에도 느꼈던 그의 신경을 자극하는 감각이 이번에는 확실히 느껴졌다. 어마어마한 감정의 격류가 그를 휘몰아쳤다. 꿈속에서 보았던 남자가 죽었을 때와 비슷한 감각이었다.

'도대체 이것은 무엇이지? 내게도 광증이 도진 것인가.'

황가의 병증은 아스탄에게도 이어졌다. 그는 언제나 불면증에 시달리고 있었다. 다름 아닌 꿈 때문이다. 꿈속에서 아스탄은 어떤 남자를 계속해서 살해했다. 입에서 피를 쏟으며 아연한 표정을 짓는 남자를 쳐다보는 자신은 어떤 얼굴이었을까. 웃고 있었나?

“지지 않는다.”

아스탄은 허공을 노려보았다.

============================ 작품 후기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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