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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장, 다시 만난 세계.
마차는 잘 닦인 가도를 달렸다. 북쪽으로 올라갈수록 수목들의 형태는 활엽수림에서 침엽수림으로 바뀌었다. 노스트라드도 코앞이라는 사실에 감격도 잠시, 에단은 오래 앉아 찌뿌듯한 허리를 통통 두드렸다. 덜덜거리는 마차의 진동은 그대로 온몸에 전해져서 감각이 마비된 지 오래였다.
“이제 노스트라드군요.”
로릭이 손을 들어 망원경을 만들 듯 눈가에 가져다댄 채 고개를 쭉 뺐다. 기사로서 채신머리없는 모습이 한소리 하려던 에단은 가볍게 눈만 흘길 뿐 아무런 말도 하지 않았다. 그저 피로한 표정으로 고삐를 쥔 손에 힘을 주었다.
도룬에서 노스트라드까지, 며칠 동안 마차는 쉴 새 없이 달렸다. 마부는 줄곧 에단이 맡았다. 로릭은 어깨를 다쳐 고삐를 제대로 쥘 수 없었고, 윤은 뻔뻔한 얼굴로 ‘난 마차운전면허증은 없어. 다 같이 황천길로 여행을 떠나고 싶다면.’하고 알 수 없는 말을 했다. 그게 어딘가에 마차를 갖다 박아 버린다는 뜻으로 들렸기 때문에 에단은 군말 없이 고삐를 쥐었다.
비록 원치 않게 마부를 맡게 되었으나 에단은 성실하게 마차를 몰았다. 다만 로릭이 마차 안에서 쉬지 못하고 자신의 옆에서 수발을 들게 하도록 작은 심술을 부릴 뿐이다.
“또 습격을 해오면 어쩌나 했는데, 다행이에요. 이대로 무사히 라덴성까지 도착할 수 있겠죠?”
“재수 없는 소리 하지 마.”
“그래도 우리에겐 윤님이 있으니까요.”
로릭이 바보처럼 히죽 웃었다. 윤이 장담한대로 그날 밤, 습격은 없었다. 이후도 마찬가지였다. 덕분에 일행은 불안해하면서도 무사히 노스트라드로 진입할 수 있었다.
커튼을 걷어 밖을 내다보던 이레인은 라덴의 문양을 발견하고 들뜬 표정을 지었다.
“라야, 이제 라덴 성이야!”
“네, 저하. 반시간 정도만 더 가면 도착할 듯싶습니다.”
라야가 웃으며 고개를 끄덕인다.
마차 안에서도 비슷한 화제로 대화를 나누고 있었다.
라야는 우울한 목소리로 무정한 황태자를 탓했다.
“결국 아스타시온 전하께선 원병(援兵)을 보내지 않으셨군요.”
“형님도 어쩔 수 없으셨겠지.”
이레인이 어른스럽게 대꾸하려했지만 목소리엔 힘이 없었다.
책을 읽고 있던 윤이 고개를 들어 이쪽을 보았다. 이레인의 시선이 흘깃 책에 닿았다. 알록달록한 표지의 책 제목은 「한 눈에 읽는 그란디아의 역사」다. 어린 소년들이 읽을 만한 책을 마치 논문을 읽는 것처럼 한자 한자 정독하는 모습에 이레인은 키득키득 웃었다.
“왜 웃는 거야?”
“……그냥요.”
“실없는 녀석.”
가벼운 타박에도 이레인은 그저 배시시 웃었다.
“윤 님. 책은 어떤가요?”
“응, 생각보다 쉬워서 좋네.”
윤이 책을 흔들어 보였다. 노스트라드의 입구에 있는 작은 마을, 그곳의 잡화점에 있던 유일한 책이라 어쩔 수 없이 산 것인데 지루하다는 치명적인 단점만 빼면 생각보다 나쁘지 않았다.
이레인의 눈에 이채가 스쳤다. 아벨라르 대륙의 문맹률은 높아서 제 이름자 쓸 줄 모르는 사람들이 부지기수로 학교가 세워지며 글을 아는 이들이 늘어나긴 했지만 아직까지는 문자는 상류층의 전유물이었다. 책을 막힘없이 읽는 모습에 이레인은 다시금 윤이 평범한 사람이 아니라고 여겨졌다.
“당신의 무례한 말버릇은 정녕 고칠 생각 없으신 겁니까?”
라야가 언짢음을 숨기지 않은 목소리로 물었다. 윤이 능청스럽게 웃으며 손가락을 흔들었다.
“내가 살던 곳에는 이런 말이 있어. 장유유서라고. 어른과 아이 사이엔 순서와 질서가 있는데, 연령적 질서도 무척 중요하다는 거지. 난 일단은 스물 둘. 황자님은 나보다 당연히 어리지. 그럼 뭐다?”
“그럼 왜 저에겐 존대하지 않으십니까?”
“왜 존댓말 해줘?”
“됐습니다! 황자께서도 하대를 들으시는데, 제가 어찌 감히 당신께 존대를 듣는단 말입니까?”
단호하게 거절한 라야는 윤을 향해 눈을 흘겼다. 차라리 신분과 태도를 확실히 해주었으면 좋겠다고 여겼다. 청년은 자신의 내력에 대해 물어보면 거침없이 답하였으나, 곰곰이 생각해보면 제대로 대답해주는 것이 없었다. 그것이 가장 답답했다.
라야는 며칠 전, 이레인과 나누었던 대화를 떠올리며 참을성이라는 단어를 마음속으로 새겼다.
노스트라드로 진입 전, 늘 그렇듯 청년이 불침번을 서고 라야와 이레인은 마차 안에서 잠을 청했다. 그러곤 잠들기 전까지 속닥거리며 대화를 나누었다. 윤의 발달한 기감에 그것이 들리는 줄도 모르고 말이다.
“라야. 윤 님의 태도를 지적하는 건 그만 두어.”
이레인이 속삭였다.
“허나 저하, 저자는 너무도 무례하옵니다. 게다가 황자 저하께서 어찌 저런 자를 높여 부르십니까.”
“내 생각에 윤 님은 보통 사람이 아닌 것 같아. 부탁이야. 태도를 지적하는 건 그만 두어, 알겠지?”
“부디 저 같은 시녀에게 부탁한다는 말을 쓰지 마시옵소서. …저하의 명을 따르겠나이다.”
청년의 내력이 범상치 않다는 점에 대해서는 라야도 동감했다. 차 대륙에서 높은 신분의 사람이었을지도 모른다. 그들의 앞에 나타날 당시 입고 있던 옷감은 낯설었지만 고급품이라는 건 확실하였다. 손발 역시 노동의 흔적을 찾을 수 없었다.
결정적으로 라야가 청년을 경계하는 이유는 청년의 눈빛 때문이다. 세월에 풍화되고 마모된 눈빛으로 자신을 응시할 때마다 오싹 소름이 돋았다. 삶의 반을 황궁에서 보낸 라야다. 자연스레 많은 사람을 겪었는데, 노인의 눈빛에 청년의 외양을 가진 이는 처음이었다.
윤의 검은 눈동자와 마주치자, 다시금 오싹한 불안함을 느낀 라야는 입술을 깨물며 눈을 내리깔았다. 키들키들 웃던 이레인의 표정이 가라앉자, 윤이 눈을 동그랗게 떴다.
“우리 황자님은 가면 갈수록 심란해 보이네.”
“아무것도 아닙니다..”
“들어줄게. 얘기해봐.”
윤은 소리 나도록 책을 덮은 후 경청하는 자세를 취했다.
“조금 걱정이 됩니다.”
“무엇이?”
이레인은 쉽게 대답하지 못했다. 라야의 눈에 눈물이 괴기 시작했고, 윤은 재촉하지 않고 참을성 있게 이레인을 기다렸다. 마차 안엔 우울한 침묵이 내려앉았다.
“형님께서…… 저를 반겨주시지 않을 것 같아서요. 그렇게 되면, 저는 어떻게 되는 걸까요.”
한참을 망설이던 이레인이 입술을 떨며 말했다. 맞잡은 손은 얼마나 힘을 주고 있는지 하얗게 질렸다. 아비에게 목숨의 위협을 받는 아이는 실낱같은 희망을 품고 제 형에게 가고 있다.
황태자가 내친다면 어리고 약한 꼬마는 어떻게 되는 걸까.
윤은 검지로 자신의 무릎을 톡톡 두드렸다. 무슨 말을 해주어야할지 알 수 없었다. 머뭇거리는 윤에게 이레인이 웃어 보인다.
“들어주셔서 감사해요. 조금 후련해진 것 같아요. 저는 신경 쓰지 않아도 괜찮아요. 더 이상 윤 님께 폐를 끼칠 순 없어요.”
커다란 푸른 눈에 방울방울 눈물을 매단 아이는 예쁘게 미소 지으려 애썼다. 이레인의 모습을 한 레나드가 말한다.
[대부, 가셔도 괜찮아요. 저는 혼자서 잘 할 수 있어요.]
윤의 손가락이 움직임을 멈추었다. 부모님을 사고로 잃고 떨리는 눈으로 자신을 쳐다보던 레나드와 닮았다. 윤은 저도 모르게 입을 열었다.
“…도와줄게.”
“네?”
이레인이 눈을 동그랗게 떴다. 충동적으로 말을 내뱉은 윤은 조금 후회했다.
‘일 년이 지나면 돌아갈 생각이었으면서.’
윤은 자신을 질타하는 동시에 어차피 문스톤의 마력이 충전되려면 오랜 시간이 걸리니 이레인이 자리를 잡을 때까지 좀 더 머물러도 되지 않을까, 하고 스스로를 설득했다.
“도망을 치던, 뭘 하던, 내가 할 수 있는 범위 내에선 널 도울게. 그러니까 걱정하지 마.”
“……감사합니다.”
결국 이레인은 방울방울 눈물을 흘리고 말았다. 윤은 손을 뻗어 아이의 보드라운 머리카락을 쓰다듬어주었다. 금실 같은 머리카락이 손가락에 감긴다.
“라덴에 도착했습니다!”
마차 밖에서 화색이 도는 목소리로 에단이 외쳤다.
제국의 최북단, 노스트라드의 거점 도시인 라덴은 군사적 요충지인 동시에 북부 무역의 중심지이기도 했다. 대륙을 가로지르는 자안 강을 옆에 끼고 있었고, 강나루를 만들어서 선박을 이용해 물건을 실어 날랐다. 동시에 천혜의 자원을 지닌 우버 산맥까지 끼고 있었기에 제국 내에서도 가장 부유한 영지에 속했다.
라덴 성의 구조는 내곽과 외곽, 총 2곽의 형태로 구성되어 특이한 구조를 자랑했다. 야만족 로아크의 침략을 최전선에서 방어해야하기 때문에 외곽은 두껍고 튼튼하고 높게 쌓았다. 외곽 안쪽과 바깥쪽으로 농민을 비롯한 평민들의 거처가 존재했고, 내곽에는 귀족의 타운 하우스를 비롯한 중인들의 집과 노스트라드 공작성이 있었다. 라덴성 외곽의 남문은 남쪽에서 나는 밀을 싣고 온 마차, 사냥한 가죽을 무두질해서 내다팔기 위해 라덴을 방문한 사냥꾼들로 문전성시를 이루고 있었다.
이곳이 한때 윤이 다스리던 도시, 노스트라드였다. 그는 창밖을 보며 감회에 잠겼다.
외곽의 문을 지키는 문지기는 눈가에 졸음을 잔뜩 매단 채 에단에게 손을 내밀었다. 무례한 태도에 에단이 미간을 찌푸렸다.
“신분패를 주시오.”
“내 이름은 에단 아이그너. 제도에서 왔다”
에단은 자신의 신분패를 내밀며 말했다. 아이그너 자작 가문의 삼남이었기 때문에 은패에 가문의 문장과 관인이 양각되어 있다. 그러나 이정도론 문지기의 태도는 달라지지 않는다. 그렇기에 에단은 부러 거만한 목소리를 내어 문지기에게 명령했다.
“그리고 나는 7황자이신 이레인 저하를 모시는 호위기사이니, 노스트라드의 주인이신 아스타시온 전하께 고하라. 그분의 동생이 방문하셨다고 ”
“…예, 옛!”
문지기에게 주렁주렁 붙어있던 잠이 순식간에 달아났다. 평범한 마차라 으레 돈 많은 상인이거나 가난한 귀족이라 생각했는데, 황자가 타고 있었다니! 하마터면 자신의 머리가 목과 작별인사를 할 뻔 했다. 무례하게 굴지 않지 않았고, 뒷돈을 요구하지도 않은 자신을 칭찬하며 문지기는 황급히 남문 대장을 향해 종종 걸음으로 뛰어갔다.
쇼파에 드러누워 졸고 있던 남문 대장은 문지기의 말에 쇼파에서 굴러떨어졌다. 허겁지겁 까치집을 머리를 한 남문 대장을 만난 후에는 일이 일사천리로 진행되었다.
이레인을 비롯한 일행은 곧장 공작성으로 안내되었다. 무표정한 얼굴의 일등 시종이 허리를 숙여 인사했다. 회색 머리칼에 외알 안경을 착용한 사내가 이상하게 눈에 익어 윤이 고개를 갸우뚱했다.
“전하께선 현재 알현인들을 만나고 계십니다. 알현실로 뫼시겠습니다.”
“……그리하게.”
이레인이 무거운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먼 길을 헤쳐 왔건만 제대로 쉴 시간도, 몸을 단장할 시간도 주지 않는다. 이레인은 원망하는 마음을 간신히 억눌렀다. 힘을 내라는 듯 윤의 손이 이레인의 어깨를 가볍게 두드리고 떨어져 나간다.
알현실로 향하는 길, 창밖으로 난 아치형의 흰 창문은 정원을 비추었다. 창 밖 정원엔 코가 얼어붙을 것 같은 추운 날씨에도 붉은 장미들이 정원에 한가득 피어있다. 피처럼 붉은 색깔은 사람의 시선을 사로잡는 동시에 어딘가 선뜩함을 느끼게 한다.
공작의 알현실은 거대한 홀의 형태를 취하고 있었다. 가장 상석에 공작이 앉아 있었고, 중간은 비어있다. 나머지 삼면의 벽으로 알현인들이 순서를 기다리며 서 있다.
‘나도 한때 저런 곳에 앉아있었지.’
잔뜩 긴장한 일행들과 달리 윤은 태평하게 팔짱을 낀 채 구석에 서서 공작의 단상을 바라보았다. 너무 높아서 목을 꺾어도 공작의 모습은 잘 보이지 않았다. 물론 두 번에 한 번은 도망치는 탓에 보좌관의 뒷목을 잡게 한 적이 많았지만 말이다.
질 좋은 모피로 조끼를 입어 만든 중년의 사내가 가운데로 와서 섰다. 그는 떨리는 손으로 바지춤을 한 번 닦은 후, 무릎을 꿇어앉으며 예를 표했다.
“전하! 저는 라덴에 위치한 사냥꾼 길드장 크롬입니다. 저는 세금에 대해 청하기 위하여 알현을 요청하였사옵니다. 현재 노스트라드에서 가죽에 부과되는 세금이 너무도 중합니다!”
화려한 문양이 양각된 의자에 앉은 공작은 몸을 비스듬하게 기대어 팔걸이에 팔을 걸친 채, 다리는 꼬고 앉은 다소 불성실한 자세로 알현인의 말을 듣고 있었다.
“곡식에 부과되는 세금이 이 할입니다. 그런데 가죽은 삼 할로 너무 높습니다. 이런 식이라면 노스트라드가 아닌 다른 곳에 가죽을 납입할 수밖에 없습니다.”
“그대의 말에 따르면 불공평할 수도 있지. 곡식은 이 할, 가죽은 삼 할이니 말이야.”
사냥꾼 길드장의 말을 줄곧 경청하던 공작의 나른한 목소리가 떨어졌다. 그의 목소리엔 고상한 오만함이 배여 있었다. 고개를 길게 빼어 공작의 얼굴을 보았다. 샹들리에에 가려져 고집스럽게 다물린 입술과 턱이 보일 뿐이었다.
“허나 삼 할의 세금이 과한가? 수도에서 가죽에 매겨지는 세금은 사 할 오 푼이지. 노스트라드는 춥고 척박한 땅. 그리하여 본공이 노스트라드 공작이 된 이후 모든 세금을 일 할 씩 낮추었다. 더하여 식량에 대한 세금은 이 할을 낮추었지. 밀은 노스트라드에서 생산되는 것으로 부족하여, 계속하여 남쪽에서 가져오는 상품으로 세금을 더 높게 매긴다면 그대들의 삶이 척박해지기 때문이었다. 그것을 본래대로 돌려야하는 것인가?”
“저, 전하. 제가 드리고 싶었던 말은…….”
“호의가 계속 되는 것을 권리라 착각하는 건가? 본공의 호의를 남용하지 말라.”
공작이 싸늘하게 일축했다. 사냥꾼 길드장은 힘없이 물러나야했다.
다른 알현인들을 제치고 이레인의 순서가 되었다.
“신, 이레인 크라이슬러. 제국의 검, 노스트라드 공작이자 황가의 수호자이신 황태자 폐하를 뵙습니다.”
단상의 앞으로 나아간 이레인은 한쪽 무릎을 꿇고 고개를 숙였다. 비록 여행의 피로가 중첩되어 초췌한 모습을 숨기진 못했으나 이레인에겐 황자다운 기품이 있었다.
“고개를 들라.”
“황공하옵니다.”
“이쪽으로 다가오라.”
이레인이 천천히 단상의 위로 올라갔다. 그리고 공작의 발치까지 다가갔다.
“이레인 크라이슬러.”
“예, 전하.”
이레인은 목례하며 답했다. 공작에게 붙이는 경칭은 ‘각하’다. 그러나 노스트라드 공작만은 예외다. 황태자가 겸임하는 자리였기 때문에 작위는 공작이지만 황족의 예로써 경칭을 붙이기 때문이다.
“3년 만이구나. 이 우형(愚兄)이 부족함으로 노스트라드를 다스리느라 네게 관심을 쏟지 못하였다. 약한 몸으로 이곳까지 오느라 고생 많았다. 훗날의 일은 걱정하지 말고 푹 쉬라.”
“황공하옵니다.”
형제라 하기엔 삭막한 대화가 이어졌다. 자리에서 일어난 공작이 이레인의 손을 잡아 가볍게 두드려 주었다.
공작이 자리에서 일어나 이레인에게 다가간 덕분에 희미하게나마 얼굴이 드러났다. 20대 초반의 나이로 추측되는 그는 눈매와 콧날이 매끄럽고 날카로운, 준수한 인상의 미남자였다. 붉은 눈동자는 냉혹한 빛깔을 띠었고, 목덜미가 드러나도록 짧게 자른 금발머리는 이마위에 가지런하게 흩어져 있었다. 왼쪽 어깨에서부터 비스듬하게 늘어지는 붉은 망토와 남색 튜닉을 입은 그에게선 지배자 특유의 고귀한 기운이 풍겼다.
윤은 공작에게서 시선을 떼지 못했다.
“……레나드.”
공작은 마치 레나드의 환생인양 닮아 있었다. 힘없는 목소리가 허공에 흩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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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을 읽어주신 모든 분과 erin00님께 감사의 인사를 드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