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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전생보고서-15화 (15/1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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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장, 공작과 친구가 되는 방법.

“너의 그 검술, 누구에게서 배운 것이냐.”

아스탄은 웃음기를 지워버린 채 진지한 얼굴로 하문했다. 대련이 이어지면서, 두 사람의 검술은 무척 흡사하다는 것을 눈치챘다.

무가로 유명한 가문들은 모두 자신들만의 가전검법(家傳劍法)을 가지고 있다. 황가 역시 마찬가지다. 황가의 마지막 초월자였던 현제 레나디온이 정립한 검술로 대대로 황가의 직속 후계에게만 대대로 이어져왔다. 그것이 새어나갔으리라 생각되진 않는다. 그렇다면 선조의 이야기다. 레나디온은 두 사람의 스승을 두었다. 부친인 시황제 월스턴과 대부인 검공 윤이다. 저자는 검공과 관련이 있음이 분명했다.

“당연히 스승님들에게 배웠지.”

“그들은 지금 어디에 있나?”

“한 사람은 죽었고, 한 사람은 살아있어. 아주 잘.”

평범한 검도소년이었던 자신을 한 사람의 검사로 일깨워준 월스턴은 죽었고, 현실에 있는 김 사범은 검도관을 운영하며 토끼 같은 마누라와 여우 같은 자식들의 등쌀에 매일같이 울상을 지으며 살아가고 있다. 그들을 떠올리며 윤은 피식 웃었다.

‘알려지지 않은 검공의 전인이 있었나?’

아스탄은 생각에 잠겼다. 눈앞의 청년은 촘촘한 베일에 싸인 상태다. 한 꺼풀 벗겨낼수록 새로운 비밀이 나타났다. 처음엔 수상한 간자인가 생각했는데, 이젠 검공의 검술을 사용한다. 차곡차곡 쌓인 비밀은 어디까지 닿을 것인가. 아스탄은 흥미로운 미소를 지었다.

“흐암. 이제 좀 졸리네.”

윤이 입이 찢어져라 하품을 했다. 역시 몸을 움직인 게 도움이 되었는지, 졸음이 사정없이 몰려왔다. 돌아가서 따뜻한 물에 씻고 푹신한 침구에 몸을 파묻으면 기절하듯 잠에 들 수 있을 것 같았다. 비록 오밤중에 호출당한 시중인은 자신을 마구 욕하겠지만 말이다.

“지금 몇 시야?”

“막 자정이 지났다.”

아스탄이 품에서 시계를 꺼내 시간을 확인한 후 대답했다. 쉬는 시간을 포함하여 네시간을 대련한 셈이다. 엄청나게 체력소모를 했으니 졸릴만했다. 윤이 반쯤 감긴 눈으로 고개를 끄덕인 뒤 바닥에 손을 짚은 후 몸을 일으켜 세웠다.

“이제 돌아가려는 건가.”

“응. 이제 자야지. 공작님도 그만 취침 시간 아니야?”

“그런 본데없는 호칭은 그만두어라.”

“그럼 뭐라고 불러?”

“……아스탄.”

아스탄이 잠시 생각하더니 말했다. 이제 수신호위들의 턱은 벌어지다 못해 땅에 닿을 것만 같다. 그들의 경악을 아는지 모르는지 윤이 흔쾌히 고개를 끄덕였다.

“좋아. 아스탄. 나도 윤이라고 불러줘.”

“훨씬 낫군.”

“그래, 아스탄. 잘 부탁해.”

윤이 불쑥 오른손을 내밀었다. 아스탄의 붉은 눈이 말끄러미 윤의 손을 응시할 뿐 맞잡아오거나 하진 않았다.

“아! 실수였어.”

윤이 머쓱하게 웃으며 손을 거두려하자, 공작이 자신의 오른손으로 윤의 손을 맞잡았다. 공작의 손은 크고 따뜻했다. 윤의 손도 작은 편이 아닌데 폭 감싸일 정도였다. 맞잡은 손을 가볍게 흔든 공작의 손이 떨어져나간다. 공작이 뚫어져라 윤을 주시했다.

“악수라 하던가. 손에 무기가 없음을 증명하기 위해 손을 맞잡은 데서 유래한 인사의 방법이라 하지.”

“그걸 어떻게…….”

“…라고 시황제의 기록에 언급되어 있었다. 검공 역시 악수를 즐겨했다고 하더군. 지금은 사장된 예법을 그대는 어찌 아는가?”

“채, 책에서 봤지. 하하하. 좀 졸리네. 이만 가서 자야겠다.”

붙잡힐까 재빠르게 말을 이은 윤이 뛰어가듯 걸음을 빨리 한다. 연무장의 입구에서 돌연 걸음을 멈추고 아스탄을 향해 몸을 돌렸다. 평범한 목소리로 말해도 충분히 들을 수 있을 텐데, 두 손을 나팔처럼 모아 크게 외쳤다.

“공작님… 아니 아스탄! 잘 자!”

아스탄은 피식 웃고 말했다.

사실로 돌아온 아스탄은 의자에 몸을 길게 기대었다. 잠들지 못하는 밤은 익숙하다. 아스탄의 불면증은 뿌리가 깊었다. 지독한 악몽이 무서워 잠이 들지 못했던 게 시작이었고, 지금은 잠들지 않는 밤에 익숙해져서 불면증에 괴로워한다. 어쩐지 오늘은 잠이 들 수 있을 것 같은 기분이 든다. 무거운 눈꺼풀을 느리게 감았다 떴다.

“참으로 무엄한 자로다.”

아스탄은 윤을 떠올리며 피식 웃었다. 자신에게 그리 스스럼없이 대하는 자가 있었던가. 기억을 더듬지 않아도 아니라는 결론이 나온다. 심지어 친형이었던 알렉시온조차 냉랭한 성품의 아우를 어려워했다.

“제르센.”

“예.”

“그자에 대한 것은 얼마나 조사되었지?”

“……죄송합니다. 아벨라르로 건너온 차대륙 인의 신상을 모두 조사하였으나 그자와 일치하는 이는 없었습니다.”

제르센은 고개를 숙인 후 입술을 짓씹었다. 공작의 오른팔인 제르센 아이그너는 대대로 황가의 시종장을 맡아왔던 아이그너 가의 장남이자 후계자였다.

아이그너는 비록 자작 가문에 불과했으나, 그들이 지닌 정보력은 대단했다. 모 후작이 무슨 색의 속옷을 입었는지, 정숙하기로 유명한 모 백작부인의 애인이 누구인지도 그들은 알고 있었다.

허나 윤에 대한 정보를 찾는 일은 쉽지 않았다.

“마치 하늘에서 떨어진 듯합니다.”

“네가 그리 말할 정도인가. 재미있는 표현이군. 하늘에서 떨어졌다.”

“송구합니다.”

“…잠깐!”

아스탄이 벌떡 몸을 일으켰다. 황급히 서가로 다가가서 제목을 빠르게 훑으며 시황제 월스턴의 회고록을 찾았다. 자주 읽었던 탓에 손때가 탄 책은 가장 중간에 꽂혀있었다. 그것을 뽑아든 아스탄은 빠르게 페이지를 넘겨 원하는 부분을 읽기 시작했다.

「……소년은 참으로 기이한 복식에 생김새를 하고 있었다. 말로만 듣던 차대륙 인이 이런 모습인가 생각했다. 그는 고개를 꾸벅 숙인 뒤 불쑥 오른손을 내밀었다. 의아하게 쳐다보자 내 오른손을 끌어와 맞잡으며 흔들며 말갛게 웃어보였다.

이후 윤이 말하길 “이것은 악수이며 내가 살던 곳에서 보편적으로 쓰이는 인사의 한 방법이다. 손에 무기가 없으니 당신을 해칠 의사가 없다. 고 하는 무언의 표현이기도 하다.” 고 했다. 제법 나쁘지 않은 인사법으로 생각되었다.

- 중략 -

윤이 고백했다. 자신은 이곳의 사람이 아니라, 다른 세계의 사람이라고. 믿기 힘든 고백에 당황한 것도 잠시, 나는 인정할 수밖에 없었다.」

다른 세계의 사람.

아스탄의 붉은 눈이 번뜩거렸다.

**

방은 어두컴컴했다. 환한 햇살을 두꺼운 커튼으로 가로 막아서 조그마한 빛줄기도 침범치 못했다. 로릭은 지금이 만족스러웠다. 눈을 감으나, 뜨나 똑같은 어둠만이 그를 기다리고 있다. 마치 그의 현 상황과 같지 않은가.

청운의 꿈을 품고 황가의 기사가 되었다. 그러나 미천한 신분 탓에 황제나 황태자의 기사가 될 수 없었다. 고작해야 사생아 황자의 호위가 되는 게 전부였다.

‘…이제는 그 자리도 잃게 생겼지. 인생 한 번 끝내주는 군.’

에단과 이레인이 알던, 어수룩하고 순진한 기사는 더 이상 없었다. 술에 머리까지 절어버린 한심한 패배자만이 남았다. 다친 왼쪽 어깨는 더 이상 검을 잡을 수 없게 되었다.

“하하하.”

로릭은 부들부들 떨리는 왼손으로 술을 따르려다가 계속해서 엎지르고 있는 자신을 발견했다. 이내 주석 잔을 던져버린 뒤 병 채로 들고 마시기 시작했다.

“지긋지긋해.”

조심스럽게 문을 열고 들어온 시종은 호롱불을 켰다. 열린 문틈 사이로 들어오는 찬란한 정오의 햇빛과 주홍빛 어두운 불빛이 방안을 밝혔다. 오래도록 사람을 들이지 않은 방은 엉망진창이었다.

시종이 방안에 진동하는 술 냄새와 굴러다니는 술병, 쓰레기에 미간을 찌푸렸다. 이내 무표정한 얼굴을 회복한 그는 로릭의 앞에 술을 내려놓기 시작했다.

“불을 꺼! 불을 끄라고!”

로릭이 악다구니를 썼다.

“그렇게 하지요.”

시종이 경멸을 숨긴 말투로 대꾸했다. 술병을 대강 정리한 그가 트레이를 끌고 나갔다. 문이 닫혔다.

로릭은 다시 어둠 속으로 잠겨들었다.

**

「바다를 닮은 푸른 머리칼의 요정이 살짝 고개를 숙였다. 그의 긴 머리카락이 물결치듯 흘러내렸다.

“내 이름은 율리히. 푸른 숲 일족의 두 번째 가지. 불의를 참지 않는 그대의 고귀함에 나는 경의를 표합니다. 당신의 여정에 내 걸음이 함께하길 바랍니다.”

고귀한 요정은 가슴에 손을 얹고 우아한 목소리로 노래하듯 말했다.

아름다운 요정 일족의 후계자가 여정에 함께한 순간이었다.

-한 눈에 읽는 그란디아의 역사-」

“이건 너무 심한데.”

윤이 황당함을 숨기지 못한 목소리로 중얼거렸다. 이 책은 사기 그 자체였다. 세상에 이렇게 지겹고 황당한 책은 처음이라 생각했는데, 거짓말도 수준급이다. 자신과 월스턴에 대한 이야기도 불의를 참지 못해 도적들을 소탕하다가 의기가 일치하여 의형제를 맺었다고 했다. 현실은 월스턴이 맹하니 굴다가 잡혀가고, 윤이 그를 구하러 간 것이 진실이다.

율리히와 윤이 만난 진실은 또한 책과 달랐다. 윤과 가출한 월스턴, 집에서 쫓겨난 안즈마네는 우버 산맥으로 향했다. 용의 계곡으로 가기 위해서였다. 클레먼스를 지나던 중 우연히 인신매매 상을 만나 그들을 소탕하게 되었고, 붙잡혔던 요정 율리히를 구해주게 되었다.

여행의 목적을 알게 된 율리히가 동행을 요청하였고, 이후 네 사람은 전설의 사총사로서 이름을 떨치게 되었다. 그러나 큰 줄기만 일치할 뿐 세세한 부분은 거짓말 그 자체였다. 그로도 부족해 미사여구로 떡칠한 찬양에 진실을 아는 그는 손발이 오그라듦을 느꼈다. 윤은 더 이상 견디지 못하고 책을 덮고 말았다.

“역시 역사는 진실을 말하지 않는 거였어.”

누가 시작했는지 모를 사총사에 대한 거짓말은 위력이 대단해서 자신의 일대기를 펴낸 동화책의 개수는 셀수 없고, 센트리움엔 그들의 모습을 본뜬 동상까지 있다고 했다.

“율리히가 들으면 웃다가 기절하겠군.”

“윤, 왜 그래요?”

이레인 역시 책을 읽다가 윤이 중얼거리는 소리에 고개를 들었다. 인형처럼 귀여운 아이가 고개를 갸웃하는 모습에 윤이 머리카락을 마구 흩트렸다. 라야의 눈이 세모꼴로 변했지만 윤은 개의치 않았다. 아이들을 별로 좋아하지 않는다고 생각했는데 이레인은 너무 귀여웠다.

이제 열두 살이 되는 이레인은 또래 아이들보다 키도 체구도 작았다. 덕분에 손발도 작았는데, 조막만한 손에 쥐어진 책은 「신분패의 도입이 조세 수입에 미친 영향에 관한 연구」라는 보기만 해도 현기증이 이는 제목이었다.

“지금 읽고 있는 부분이 요정 율리히가 나오는 부분이거든.”

“율리히 공이 부리는 마법은 하늘에 닿아있었다고 하죠. 저도 한 번 보고 싶어요.”

개국공신이나 다름없는 요정 율리히는 인세에 묶인 존재가 아니라 작위를 받진 않았으나, 모두들 경외의 뜻을 담에 공(公)이라 높여 불렀다.

“녀석이 마법을 잘 쓰긴 했지.”

마법보다 더 잘 쓰는 건 체술이었지만. 맨손으로 때릴 때 손맛이 좋다던가. 윤이 떨떠름한 표정으로 중얼거렸다.

“인세에 무심한 요정이 사람들의 모험에 합류했다는 것부터 대단한 것 같아요. 정말 시황제와 검공의 이야기는 아직도 두근거려요! 저도 그런 여행을 떠날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요. 즐거울 것 같아요.”

“……꼭 즐거운 것만은 아니야.”

윤은 씁쓸한 목소리로 중얼거렸다. 율리히를 만난 날은 처음 사람을 죽인 때와 같은 날이다. 이 세계에 와서 반년쯤 되던 날이었을 것이다.

아벨라르 대륙에서 이종족을 거래하거나 납치하는 것은 불법이다. 그러나 요정들은 무척이나 아름다운 외양을 가지고 있었고, 그런 아름다움을 갖고 싶어 하는 못된 자들은 종종 있었고, 그들의 마수는 이종족에서 끝나지 않았다. 월스턴에게 인신매매범이 있으니 조심하라는 소리를 들었을 때만 해도 남의 이야기라고 생각했는데 윤 역시 이국적 외모 탓에 납치당했다.

윤도 가만히 있진 않았다. 평범한 소년이라 생각해서인지 대강 묶어놓은 밧줄을 풀어버리고 탈출을 시도했다. 그 와중에 마법 구속구에 묶인 사람이 있어 구했더니 그가 바로 율리히다.

율리히는 요정들 사이에서도 독보적으로 아름다운 외양을 가지고 있었다. 푸른 머리카락은 물빛처럼 각도에 따라 화사하게 반짝거렸고, 희고 갸름한 얼굴은 처연하기까지 한 미를 품었지만, 내용물은 육식을 좋아해서 몰래 고기를 먹다가 요정의 숲에서 쫓겨난 별종이다. 게다가 일반적으로 알려진 요정들의 습성과 달리 사납고 못된 입을 가지고 있었다.

율리히가 붙잡힌 것도 고기 때문이었다. 정육점 앞에서 침을 흘리고 있던 율리히를 본 인신매매단이 고기를 사주겠다며 꾀어냈고, 그대로 인적이 드문 곳으로 이끌어선 반마력 구속구를 채워버린 것이다.

“망할 새끼들 고기 사준다고 했잖아! 감히 날 속여?”

엉겁결에 인신매매상 하나를 살인한 윤이 그 충격에 멍하니 서있자, 율리히가 씩씩거리며 반격에 나섰다.

“씨발! 고기 내놔! 고기!”

자유의 몸이 된 율리히는 사정없이 인신매매단에게 무자비한 폭행을 가했다. 주먹으로 때리고 발로 차고, 또 주먹으로 때리고 발로 찼다. 순식간에 아름다운 손과 발이 피범벅이 되었다. 그런 손으로 얼굴에 흐른 땀을 훔쳐내자 새하얀 얼굴에 핏자국이 번졌다. 율리히가 푸른 눈을 광기로 빛내며 인신매매범들을 노려보자 그들은 그만 실금하고 말았다.

“배고파. 제길 힘을 썼더니 더 배고파졌잖아! 너희들 때문이야!”

율리히는 다시 인신매매범 하나를 발로 찼다. 가죽 북이 터지는 소리가 지하실을 메웠다. 분이 풀릴 때까지 그들을 두들겨 팬 율리히는 짝다리를 짚고 서서 아직도 멍하니 있는 윤을 향해 눈을 부라렸다.

“뭘 봐. 요정 첨보냐?”

“……응.”

“그럼 열심히 구경하던가.”

“그, 그렇게 할게.”

거절했다간 인신매매범과 같은 꼴이 될 것 같아서, 윤은 열심히 고개를 흔들었다.

“아니다. 날 구해줘서 고마워. 고기 사줄게, 고기 먹으러가자.”

대답도 하지 않았건만 율리히는 윤을 강제로 끌고 주점으로 들어갔다. 월스턴과 안즈마네가 자신을 찾기 위해 추적 마법을 써서 찾아왔을 땐, 고기 양념을 잔뜩 묻힌 율리히가 ‘일행이냐?’하고 뻔뻔하게 손을 흔들어줄 정도였다. 욕쟁이 친우를 떠올린 윤은 피식 웃었다.

그때를 생각하면 참 즐거웠다. 물론 늘 행복한 일만 있었던 것은 아니어서 고통스러웠던 적도, 자신의 무력함에 분루를 삼킨 적도 많았지만, 그리운 시절이었다.

진심으로 웃고 슬퍼하고 제 감정을 내보이던 시절.

그때로 돌아갈 수는 없겠지만 평범한 사람처럼 살 수 있게 되길 윤은 기원했다.

“윤은 참 신기한 사람인 것 같아요.”

“내가?”

“네.”

이레인이 망설임 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어린 그의 눈에 형님인 황태자만큼이나 대단해 보이는 사람이었다. 그 존경이 선명하게 읽혀서 윤은 쓰게 웃고 말았다.

“이곳에서는 그럴지도 모르지, 나도 내가 살던 곳에선 평범한 사람이었어. ……그나저나 에단, 로릭은 어디 갔어?”

두 사람의 대화를 흥미 있는 표정으로 경청하던 에단에게 윤이 질문했다. 라덴 성으로 들어오고 난 후 로릭의 모습을 보지 못한 지 오래된 것 같았다.

“글쎄요. 어깨의 부상이 심해 정양해야한다는 말에 쉬라고 해두었습니다만. 이후 방에도 모습을 잘 드러내지 않아서요. 상심이 클 것으로 사료되어 부러 찾진 않았습니다.”

“상처가 얼마나 큰데? 마법으로도 안 된다던?”

“……예.”

에단의 상처는 상대적으로 경증이어서 곧장 호위에 합류했으나, 로릭은 그렇지 못했다. 황제의 습격을 염두에 둔 탓에 제대로 치료도 하지 못하고 무리한 강행군을 한 것이 악수가 된 모양이었다.

“힘줄이 손상되어 왼손을 이전처럼 쓸 수 없다고 하더군요. 아마 다시 기사로 복귀하긴 힘들 듯 합니다.”

“큰일이네.”

그리 말함에 있어서도 윤의 목소리는 덤덤했다. 이전까지는 안면이 없던 사이라곤 하나, 동고동락한 이인데도 큰 감흥이 없어 보였다.

“이곳에 있었나.”

공작은 제르센을 비롯한 수하들을 뒤편에 이끌고 나타났다. 밤에 보았던 간편한 차림새와 달리 오늘은 성장을 한 상태였다. 옅은 금발을 우아하게 빗어 넘기고, 눈동자에 어울리는 붉은 예장은 금사로 장식했다.

“공, 공작 전하를 뵙습니다!”

뒤에서부터 들려오는 공작의 목소리에 이레인이 화들짝 놀라 허리를 숙였다.

============================ 작품 후기 ============================

선작과추천 코멘트에 감사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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