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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전생보고서-45화 (45/1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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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장, 습격

빈손이 된 윤을 노리는 이들이 있었다. 뒤편에서 검을 찔러 들어오던 암살자를 보며 솔라가 “윤 님!”하고 고함을 질렀다. 윤이 뒤돌아보았다.

“으악! 내 팔!”

윤을 향해 짓쳐들어오던 용병의 팔이 잘려나갔다. 그와 동시에 윤의 발차기가 남자의 복부에 꽂혔다. 용병은 피를 뿌리며 튕겨나갔다.

“내가 하사한 검을 함부로 다루지 말도록.”

아스탄이었다. 어느새 마차 밖으로 나온 그가 윤의 곁으로 왔다.

“무기가 그것만 있는 건 아니라서.”

윤이 으쓱이며 품속에서 단검을 꺼냈다. 한 바퀴 돌려 역수로 쥔 후 검기를 불어넣자 장검 못지않은 크기가 되었다.

“밖으로 나오면 위험해.”

“안에 있어도 위험하다.”

“……그건 인정.”

아스탄과 윤은 등을 맞댄 채 습격자들을 처리해나가기 시작했다. 이전에도 느꼈던 거지만, 아주 예전부터 함께 검을 휘둘렀던 것처럼 손발이 척척 맞았다. 윤에게 날아오는 화살은 아스탄이 처리했으며, 아스탄을 향해 휘두르는 검은 윤이 막아냈다.

윤을 향해 휘둘러 오는 칼이 있었다. 남부의 해적들이 휘두르는 커다란 곡도를 막아낸 윤이 씩 웃었다. 오랜만에 맞이하는 강자였다. 큰 대태도는 제대로 다룰 수 있는 사람이 몇 없었다. 그만큼 힘이 세고 검술도 뛰어나단 뜻이다.

“제법인데?”

헌터는 자신의 실력에 자신이 있었다. 센트리움의 암흑가에서 헌터의 곡도는 유명했다. 그를 두려워하지 않는 이들은 없었다.

태어났을 때부터 부모에게 버림받아 암흑가를 전전했다. 암흑가에서 어린이는 거추장스러운 식충이에 불과했다. 그렇기에 실력으로 살아남았다. 운 좋게 붉은매 단의 단장에게 눈에 띄어 양자가 되었고 암흑가의 정점에 올랐지만 꾸준히 몸을 단련해왔다.

“……너구나, 여기 대장이.”

윤이 헌터를 향해 검을 빠르게 휘둘렀다. 전광석화와도 같은 검로에 손발이 어지러워졌다.

‘미친 거 아냐!’

헌터는 욕설을 중얼거렸다. 분명 손에 쥐고 있는 건 단도인데 검기를 불어넣으니 대태도 못지않다. 윤이 위에서부터 아래로 크게 내려쳤다. 그것을 대태도로 막아내었으나, 검기는 쉽게 쇠를 잘라냈다. 헌터가 눈을 부릅떴다.

-퍼억!

마지막으로 헌터의 기억에 남은 것은 얼굴을 향해 날아오는 주먹이었다.

가장 강한 헌터가 사로잡힌 이상 그들에게 승산은 없었다. 습격자들은 사방팔방으로 흩어졌다. 그를 구명해줄 의리 따윈 없었다. 암흑가에서 굴러먹던 몸이라 제 목숨이 소중한 이들이었다.

롭 이벨로크는 가슴을 크게 헐떡거렸다. 공터엔 피비린내로 가득하다. 아마 윤이 나서지 않았더라면 바닥을 구르는 것은 자신들이었을 것이다.

사람들이 윤을 보는 시선은 마치 귀신을 보는 듯하다. 아니 그는 귀신이 맞았다. 죽음을 노래하는 사신이다. 손속에 가감이 없는 탓에 피를 흠뻑 뒤집어썼다. 흰 얼굴에 튄 핏방울이 기괴했다.

“후우.”

윤은 손을 들어 제 얼굴을 닦아냈다. 하얀 뺨 위로 붉은 피가 번졌다. 소년처럼 어리고 해사한 얼굴에 번진 핏자국을 본 순간, 전율과도 같은 소름이 돋는다.

“제대로 닦지도 못하는 건가.”

모두들 겁에 질려 시퍼렇게 질린 얼굴로 윤을 쳐다보고 있는데, 아스탄은 아무렇지 않은 평연한 태도였다. 품에서 비단으로 만든 손수건을 꺼내 윤의 얼굴을 닦아주었다. 자못 상냥한 손길이었다. 롭 이벨로크는 공작의 배포가 대단하다 생각하였다. 그에게 목숨을 구명 받은 자신조차 무섭고 거리낌이 있는데. 아무렇지도 않을 수 있는 건지.

“저, 정말 대단합니다.”

간이 배 밖으로 나온 인간이 하나 더 있었군. 롭은 스완을 쳐다보며 쓴 웃음을 지었다. 스완의 눈은 경탄으로 반짝거리고 있었다. 낙마를 한 스완 역시 멀쩡한 모습은 아니었다. 격식을 갖춰 입은 사슬 갑옷이 아니었다면 저승을 흐르는 테로스 강을 구경하였을 것이다.

“고마워, 아스.”

아스탄은 근본 없는 호칭에 트집을 잡고 싶은 것처럼 미간을 찌푸렸으나 아무말도 하지 않았다. 그저 물을 마시며 거칠어진 숨을 가다듬을 뿐이다.

공작의 일행들이 여기저기 상처를 입은 데 비해 황제의 기사들은 대체로 멀쩡한 모습이었다. 당연했다. 황제의 목표는 자신들이 아니었으니까. 척 베스파뇰은 검에 묻은 피를 털어낸 후 검집에 집어넣었다. 심장 박동이 빠르게 잦아들었다.

온몸에 돋은 공포로 인한 전율은 쉬이 가라앉지 않았다. 수십에 달하는 목숨을 단번에 앗아갔음에도 살육의 흥분조차 느껴지지 않는다. 마치 해야할 일을 하는 것처럼 단호한 손속이었다. 그 모습이 더욱 두려웠다.

“……전장의 흑색 악마.”

황제의 수신호위 중 누군가 중얼거렸다. 습격자들과 벌인 전투를 지켜보던 기사들의 머릿속을 지배한 단어였다. 척 역시 그의 말에 동감했다.

윤은 헌터의 멱살을 잡은 뒤 질질 끌어와 척의 앞으로 집어던졌다.

“일단 이 녀석은 잘 묶어둬. 아무래도 우두머리 같으니까.”

“왜 이걸 제게 넘기는 겁니까.”

“몰라서 물어?”

윤이 척을 쏘아보았다. 살기 섞인 시선에 흠칫했다. 내심 깔보는 마음도 없지 않아 있었다. 소드 익스퍼트라 하기엔 너무나 무게감 없는 행동들 때문이었다. 이레인을 습격하던 당시, 형편이 당했던 건 너무 무시한 탓이라며 자기 합리화를 해왔다. 그러나 지금, 오판임을 깨달았다. 그때 살아남은 건 천운이었다.

사람들을 돌아보며 윤이 외쳤다.

“일단 이동을 하지. 뭐해!”

“예, 옛!”

“얼른 공터를 찾아서 자리 잡자고. 야숙은 피해갈 수 없을 테니까.”

씩 웃은 윤은 평소와 같은 어린 청년으로 돌아왔다. 허나 사람들이 윤을 보는 시선은 완전히 달라져 있었다.

부상자들을 대강 수습한 사람들은 빠르게 숙영지를 향해 말을 달렸다. 습격으로 말을 잃어버린 스완은 공작의 마차에 타게 되었다. 그는 자신의 불운을 원망하며 이리저리 눈을 굴렸다. 시선을 어디로 둬야할지 알 수 없었다.

윤은 창밖을 보며 생각에 잠긴 상태였고, 아스탄은 눈을 감은 채 팔짱을 끼고 의자에 등을 편하게 기댄 자세였다. 두 사람 모두 지난 전투의 흔적이 치열하게 남아있었다. 그들의 앞에서 늘어질 수도 없는 노릇이었다. 스완은 정좌한 채 무릎에 두 손을 얹었다

.

“스완, 왜 그렇게 불편하게 있어?”

“……이 자세가 편합니다.”

“정말?”

윤이 짓궂게 웃었다. 전투의 현장에서 보이던 무시무시한 사신은 온데간데없었다. 화사하니 나이보다 어려 뵈는 얼굴과 호리호리한 몸매는 귀한 집 자제로만 보였다. 검은 다뤄본 적도 다룰 줄도 모르는 것처럼 팔다리도 가늘었다.

“……저 하이어드 경.”

“윤.”

“네?”

“편하게 불러도 돼. 스완. 성보단 나도 이름쪽이 편하고.”

“네, 네! 유, 윤…… 아뇨, 하이어드 경이 더 편합니다.”

호칭을 고치려던 스완은 금세 말을 바꾸었다. 한쪽 눈만 뜬 채 자신을 매섭게 노려보고 있는 공작 덕분이었다. 윤이라고 불렀다간 오체를 분시 해버릴 듯 사나웠다.

“하이어드 경, 저 한 가지만 여쭤 봐도 됩니까?”

“뭔데?”

스완의 얼굴에 화색이 돌았다.

“경은 몇 살부터 검을 잡으신 거죠?”

“일곱 살.”

윤은 잠시 생각하다가 대답했다. 검도를 배운 건 그때부터였다. 우연히 본 TV 드라마 속 남자주인공이 검도를 하는 모습이 너무 멋있었다. 장비값도 만만치 않았고, 무기를 다루기에 위험한 검도보다는 태권도나 유도가 낫지 않겠냐는 어머니의 제안을 매정하게 뿌리치고, 검도! 검도! 하며 바닥을 구르며 졸라대었다. 좀 부끄러운 과거였다.

“올해 스물하나라 하셨죠! 정말 대단하십니다! 검을 배우기 시작한 게 겨우 십오 년인데 소드 익스퍼트의 경지에 오르셨다니요.”

“…그런 셈이지.”

윤은 뺨을 긁으며 반짝이는 시선 공격을 피했다. 여기서 오십 년을 더 해야 진실이지만, 솔직하게 말해도 아무도 믿어줄 사람이 없었다.

미적지근한 태도에 스완은 의아한 어조로 되묻었다.

“하이어드 경 정도 되는 분이라면 좀 더 자신의 실력을 자랑해도 좋을 텐데요.”

“……딱히 그러고 싶진 않아.”

“어째서죠? 황제의 기사들이 태도를 바꾼 걸 보니 제가 다 속이 시원하던걸요! 진작 드러내셨다면 이제껏 무시받지 않으셨을텐데요. 도룬 남작성에서도 남작부인이 얼마나 기분 나빴습니까?”

스완이 씨근덕거렸다. 이십대의 소드 익스퍼트라는 걸 믿기 힘든건지, 아니면 윤의 외양 때문인건지, 사람들이 윤을 무시하는 모습에 스완의 속이 상할 정도였다. 그러나 습격자들을 처리한 후, 줄곧 그를 무시하던 황제의 기사들이 손바닥 뒤집듯 그 대우가 달라지자 쾌감마저 느껴졌다. 아마 자신이었다면 매일 검기를 풀풀 뿌리고 다녔을 것이다.

“……그렇게 자랑스러운 건 아니잖아. 사람을 잘 죽이는 게.”

도통 윤의 말이 이해되지 않는다는 듯 스완이 고개를 갸웃했다. 제 실력을 드러내지 않는그가 이상하게 여겨졌다. 윤은 쓰게 웃었다.

근본적으로 아벨라르와 한국의 도덕관이 다르기 때문이다. 한국에선 무슨 일이 있어도 사람을 죽이거나 해쳐선 안된다고 배웠다. 그러나 아벨라르에선 강함이 정의의 척도다. 기실 기사도라는 엄격한 계율도 무기를 가진 자의 폭력성을 억누르기 위한 도구에 가깝다. 기사라는 명예를 지키게 만들어서 행패를 부리지 못하게 막는 것이다. 그러나 그란디아가 창제되기 전까지 수천년에 가까운 시간을 다툼으로 혼란스럽던 아벨라르 대륙이다. 무를 숭상하는 기풍은 어쩔 수 없었다.

유소년기를 한국에서 보낸 윤의 도덕관은 혼재되어 있었다. 가급적 사람을 해하지 않으려하였으나 어쩔 수 없는 상황에선 손속에 사정을 두지 않았다. 그조차도 스완에겐 이해하기 힘든 일이었다.

“내가 강한 걸 알고 있는데, 굳이 남들을 괴롭혀가며 자랑할 필요가 없는 거잖아? 그건 나쁜 놈들을 응징하는 것만으로도 충분해.”

“……어렵군요.”

“괜찮아. 이건 내 생각일 뿐이니까.”

“역시 진정한 강자는 자신을 함부로 드러내지 않는 거군요.”

스완이 주먹을 꽉 쥔 채 눈을 반짝였다. 어쩐지 민망한 기분에 윤은 뒷목을 긁적였다.

“숙영지에 도착했습니다!”

롭이 큰 목소리로 외쳤다.

“그럼 전 먼저 나가보겠습니다!”

“그렇게 하도록.”

“예, 전하! 은혜를 베풀어주셔서 감사합니다.”

허리를 꾸벅 숙인 스완이 재빨리 마차에서 내렸다. 거대한 덩치의 롭을 향해 종종 뛰어가는 스완을 보며, 턱에 손을 괸 윤이 피식 웃었다.

“귀여운 녀석.”

“체프왈드 스완의 나이는 너보다 많은 걸로 알고 있다만.”

“그야, 뭐….”

윤이 어물어물 대꾸했다. 내 나이쯤 되면, 너도 귀엽다는 말은 속으로 삼켰다.

“우리도 내리도록 하지.”

“그래, 찝찝하다. 얼른 씻고 싶어.”

============================ 작품 후기 ============================

오늘도 선추코를 주신 모든 독자님들과 부채의식님께 감사드립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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