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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전생보고서-65화 (65/1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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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장, 위협

사냥터는 은밀하고 외진 곳이 많았다. 곳곳에서 기사와 병사들이 보초를 선다지만 사각지대가 분명 있을 터였다. 호위를 위한 기사와 시종을 끌고 나오긴 하지만 그 수는 그리 많지 않다. 롭 이벨로크와 제르센이 전부 아니던가. 아스탄을 따르는 귀족들도 있겠지만… 몇몇을 제외하곤 피아를 쉬이 구분할 순 없는 일이었다.

“이럇!”

윤은 재빨리 말을 달렸다. 울창하게 우거진 숲 속이지만 박차를 가하는데 거침이 없었다. 그와 동시에 기감을 퍼트려 아스탄의 흔적을 찾았다. 다행히 이곳에서 멀리 떨어지지 않은 곳에 있었다.

오분 쯤 말을 달렸을까. 병장기 부딪히는 소리가 들렸다. 윤은 속도를 높였다. 사람들의 모습이 눈에 들어왔다.

“크르릉!”

습격자는 사람이 아니었다. 사람처럼 생겼으나, 팔다리가 기괴하게 비틀어진 외양을 지닌 마물은 그르릉 거리는 소리를 내었다. 굽은 등뼈가 도드라졌고, 척추뼈는 길게 솟아나 뾰족한 가시처럼 보였다. 눈이 있어야할 곳에 입이 있었고, 코가 있어야할 곳에 눈이 있다. 입에서는 침이 질질 흘렀다. 보는 것만으로도 혐오스러운 생김새에 얼굴이 찌푸려진다.

바로 악신의 피에서 태어난 저주받은 마물로 살아있는 모든 것에 증오심을 가지고 있었다. 무차별적으로 사람을 습격하기 때문에 호랑이나 사자 같은 맹수보다 훨씬 위험했다. 무척 빠르고 그 손톱에는 독이 있었기 때문에 어지간한 병사들론 상대하기 힘들었다. 저급은 몰라도, 상급 마물이라면 한 마리에 소드 비기너 두셋쯤은 붙어야 처리 가능했다. 정기적으로 토벌을 하기 때문에 이렇게 사람들의 발걸음이 닿는 곳에는 쉬이 발견하기 힘든 것이 마물인데… 윤은 미간을 좁혔다. 게다가 그 수는 한 두 마리가 아니었다.

마물의 습격에 아스탄을 비롯한 사람들은 수세에 몰려있었다. 설마하니 황가의 사냥터에 마물이 나타날거라 생각지 못했던 이들은 우왕좌왕했다. 그나마 아스탄과 롭 이벨로크 등 소드 익스퍼트급 기사들이 분전하였으나 수적으로 열세였다.

“아스! 위험해!”

괴물의 팔을 베어낸 아스탄을 향해 또다른 마물이 달려들었다. 팟! 검기를 터뜨린 후 단숨에 찔러들었다.

-콰득!

순식간에 코어를 찔린 마물은 녹색 피를 토하며 바닥을 뒹굴었다. 소드 비기너 두셋은 붙어야 간신히 하나를 상대 가능한 상위 마물은 단칼에 절명하고 말았다. 검을 회수한 윤이 바닥을 향해 크게 휘둘러 칼날에 묻은 피를 털어내었다.

생각지도 못한 구원병에 롭 이벨로크가 탄성을 지르듯 그 이름을 외쳤다.

“하이어드 경!”

“늦어서 미안. 그런데 주인공은 매일 마지막에 등장하는 거래.”

윤이 눈을 둥글게 휘며 웃었다.

아스탄은 저를 구한 사람의 정체를 이미 짐작했다는 듯 살짝 웃어보였다. 적자색의 아름다운 눈동자는 윤에 대한 신뢰가 서려있었다. 노스트라드에 머물 당시, 다짜고짜 자신의 사람이 되라며 제안했던 걸 생각한다면 괄목할만한 변화였다. 불순물 하나 섞이지 않은 믿음의 시선에 어쩐지 마음이 간질거렸다.

긴 손톱을 휘둘러오는 괴물의 팔을 발로 차서 멀리 퉁겨낸 윤은 아스탄과 등을 맞대고 섰다. 아스탄 역시 신중한 얼굴로 마물의 동태를 살폈다. 차라리 이 자리에 두 사람밖에 없었다면 마물을 상대하는 것이 더욱 쉬웠을 터였다. 그러나 거치적거리는 방해물에 지나지 않는 귀족들까지 지켜가며 싸워야한다.

해가 서산으로 넘어가기 시작하며 뉘엿뉘엿 붉게 물들어가는 하늘에선 싸락눈이 나리기 시작하였다. 윤은 품에서 폭죽을 꺼내 하늘 위로 쏘아 올렸다. 펑! 하는 소리와 함께 자색 불꽃이 하늘을 물들였다. 혹 불의의 사고로 조난을 당했을 때 터뜨리는 구조 신호였다.

“한 번 내기해볼까?”

“무슨 내기를 말하는 거냐.”

윤의 뜬금없는 말을 아스탄이 받았다.

“우리가 이 마물들을 처리하기 전에 근위대가 올지 오지 않을지 내기하는 게 어때?”

“오지 않는다, 에 걸지.”

“그렇게 하면 내기가 성립되지 않잖아?”

“지는 도박을 하는 취미는 없어서.”

승부욕 강한 그다운 대꾸에 윤은 나지막하게 웃었다. 시답지 않은 농담을 나누며 윤은 아스탄이 숨을 고를 수 있도록 도왔다.

눈앞의 마물은 십여 마리. 그러나 바닥에 쓰러진 하인 둘을 제외하면 인명 피해는 없었다. 역시 아스탄은 평범한 검사가 아니었다.

“대장은?”

“저쪽의 자그맣고 재빠른 놈. 제법이야. 사람들의 주의가 흐트러진 틈을 타서 후미를 치더군.”

마물은 단순한 몬스터와 차원이 다르다. 지능지수가 낮다하나 사람처럼 이지를 지니고 있었다. 홀로 다니지 않고 무리를 이루어 다녔고, 그들 사이엔 대장이 있었다. 대장을 치는 게 중요했다.

윤이 나타나기 전엔 마치 장난감을 앞에 둔 것처럼 가지고 노는 모습을 보였으나 지금은 쉽사리 접근하지 않으며 경계의 끈을 놓지 않는다.

마물에게 포위되었으나 윤은 겁먹지 않았다. 오히려 가벼운 흥분이 몸을 달구었다. 초월자가 된 후 이렇게 누군가의 체온을, 조력을 느끼며 싸워본 적이 있던가. 아니 근래엔 없었다. 아득한 옛날이었다.

“크륵, 끄르륵!”

이해할 수 없는 상황에 마물이 고개를 흔들었다. 분명 자신들의 승리라 생각하였는데, 눈앞의 자그마한 인간이 등장하며 상황은 일변하였다. 마물의 대장은 어린 인간이 범상치 않은 존재임을 눈치채었다. 그리하여 공격 명령을 내리지 않은 채 상황을 살폈다.

“갈까?”

“좋다.”

아스탄의 대답을 신호탄으로 윤이 마물들의 사이에 뛰어들었다. 검푸른 검기로 타오르는 검날이 크게 허공을 갈랐다. 콰앙! 검기가 폭발하며 마물의 몸을 불태웠다. 제 능력을 숨기고 적당히 상대하는 게 더 어려웠다. 롭을 곁눈질해가며, 소드 익스퍼트 이상의 능력을 보이지 않기 위해 조심했다.

그간 사람들을 지키느라 방어에 급급하던 아스탄 역시 손발이 자유로워지자 아낌없이 자신의 능력을 드러내었다. 일반인의 눈으로 좇아갈 수 없는 무위가 펼쳐졌다. 금빛 검기가 번쩍일 때마다 마물의 녹색 피가 바닥에 흩뿌려졌다.

그란디아 제국에서 가장 강한 이를 꼽으라면 단연 남부 지대의 변경백, 소드마스터 울란도르 델 시더다. 그러나 제 영지에서 해적들을 상대하는 것 외엔 세인들에게 그 모습을 드러내지 않은 채 칩거하고 있는 변경백을 만나기란 쉽지 않은 일이다. 그리고 마법으로서 인간의 능력을 초월한 매직마스터 웨스트올로 공작이 있으나 그 역시 괴팍한 성품으로 십년 넘게 가주의 직을 내려놓은 채 대륙을 방황하고 있는 마법사였다.

제도에 한하여 강한 이를 꼽자면 상급 소드 익스퍼트의 검사인 근위대장 리도넬 백작이라 할 수 있었다. 그러나 평소 황제를 수호하느라 제 실력을 드러낼 일이 없었기에, 소드 익스퍼트의 무위를 실제로 견식할 일이라곤 없다 할 수 있었다.

검공의 후예는 그야말로 대단하다 할 수 있었다. 검이 크게 휘둘러질 때마다 마물의 죽음이 피어났다. 그간 평화의 시대를 살아오며 압도적인 무력을 견식한 적 없었던 이들은 그 모습에서 눈을 떼지 못했다.

“위험!”

윤의 무위에 정신이 팔린 사람들을 향해 마물이 접근했다. 롭이 재빨리 그들을 틀어막았으나 그 수가 많았다. 윤은 재빨리 땅의 돌멩이를 걷어찼다. 평범한 돌은 쏜살처럼 날아가 마물의 머리에 틀어박혔다. 마치 대포에 맞은 것처럼 머리뼈가 부서지는 걸 본 사람들이 기겁했다.

“크아아!”

그간 뒤쪽에서 경계만 하던 대장은 윤이 사람들에게 정신이 팔린 빈틈을 노려서 달려들었다.

“하이어드 경! 위험합니다!”

소리 내어 위험을 알린 청년 귀족은 제 입을 틀어막았다. 저도 모르게 존댓말을 썼다는 걸 눈치채지 못하였다. 윤은 재빨리 몸을 틀어 공격을 피했다. 대장의 손톱이 바닥을 찍었다. 마물의 독에 풀이 시커멓게 타들어간다.

-쾅!

대장의 손톱과 활활 타오르는 검이 충돌했다. 윤이 그간 응축시켰던 검기를 터뜨렸다. 폭발음과 함께 마물의 팔이 날아갔다. 어마어마한 능력에 사람들이 탄성을 지른다. 고작 십대 후반에서 이십대 초반의 나이로 보이는 청년은 그야말로 무쌍이라 할 수 있었다.

시황제와 검공이 보여주었다는 무위가 이러할까. 아스타시온 황자 역시 천재라 불릴 만큼 대단한 검사였다. 다시금 등을 맞대는 모습에서 전설의 재림을 보는 듯하였다. 사람들의 표정이 향수에 젖었다.

황제의 명을 받고 습격의 현장에 뒤늦게 도착한 근위대는 침중한 표정으로 얼굴을 굳혔다. 사람들의 시신이나 수습하겠거니 하고 생각한 그들의 예상과 전혀 다른 모습이었다. 마물의 팔다리가 여기저기 흩어져있었고, 독에 타들어간 숲은 그 미려한 명성을 잃어버리고 말았다. 그러나 사람들은 거의라고 할 만큼 피해를 입지 않았다.

“조금 늦었네.”

검공의 후예라 불리는 어린 청년은 상처하나 없이 멀쩡한 모습이었다. 길게 숨을 내쉰 그가 근위 대장인 리도넬 백작을 향해 무언가를 집어 던졌다. 흠칫 놀라는 그의 앞으로 동그란 물체가 굴러들었다. 대장 마물의 머리였다. 단숨에 목을 베어낸 것처럼 절단면은 깨끗했다.

검을 위에서 아래로 크게 흔들어 마물의 피를 털어낸 윤은 검집에 검을 집어넣은 후 허리에 매었다. 그런 윤을 향해 아스탄이 말했다.

“내기는 나의 승리로군.”

“어째서? 나도 늦게 온다, 에 걸려 했으니 내기가 성립된 게 아니라고.”

“하지만 내기를 하자고 제의한 건 너이니, 나에게 선택권이 우선되는 셈이지.”

대꾸하는 목소리엔 희미한 웃음기가 서려 있었다. 궁지에 몰린 상황을 역으로 이용해 자신들의 힘을 각인시킨 것이 무척 만족스러운 모양이었다. 윤이 어깨를 으쓱했다.

“뭐, 네가 이긴 셈 쳐줄게.”

“…그 마지못한 대답은 마음에 들지 않는다만.”

윤은 휘파람으로 자신의 말을 불러내었다.

“뒷정리 부탁해. 난 갈 곳이 있어서.”

“어딜 가는 거냐.”

윤은 장난스러운 얼굴로 씩 웃어보였다.

“비밀.”

그리고 재빨리 말을 달려 공터를 벗어났다. 제멋대로의 행동이지만 아스탄은 제지하지 않고 어깨를 으쓱한 후 사람들을 돌아보았다. 윤을 대할 때와 달리 차갑고 오만한 황태자로 돌아가 있었다. 특히나 리도넬 백작을 응시하는 시선이 서늘하였다. 백작은 자신에게 쏟아내는 살기에 마른침을 삼켰다. 같은 소드 익스퍼트의 검사이니 기세 싸움에서 질 리 없는데 어쩐지 다리가 후들후들 떨리고, 주먹을 쥔 손에 힘이 들어갔다.

“모두 놀랐을 거라 생각되오. 허나 무사히 이 위기를 넘기게 된 것은 벨라드의 뜻이 아니겠소. 중단되었던 사냥을 다시 시작하지. 뒷정리는 아바마마의 기사이신 근위대원들께서 해줄터이니.”

아스탄은 말을 끝맺은 뒤 빙긋 웃었다. 황제는 자신을 죽음으로 몰고 가기 위해 덫을 놓았다. 그러나 이번에도 자신의 승리였다.

사냥 대회가 끝난 후 털색이 황홀하도록 아름다운 은여우와 백색 털을 지닌 호랑이가 황태자에게 진상되었다는 소문으로 황궁이 떠들썩해졌다. 진상을 한 사람은 바로 검공의 후예로 마물을 상대로 펼친 무위에 대한 소문이 자자한 이였다. 은여우만 잡으려던 그는 내친김에 호랑이까지 사냥해 진상했다고 하였다.

검공의 후예는 참으로 그 배포가 대단하였다.

============================ 작품 후기 ============================

후원쿠폰을 주신 평량님과 쪼그마이님께 감사드립니다.

제가 장편을 처음 쓰는거다 보니 앞부분을 계속 수정하면서 조아라 연재분을 못고치는 탓에 설정 충돌이 있네요 ㅠ0ㅠ. 언젠가 날잡아서 한번 쭈욱 수정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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