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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장, 위협
아스탄은 그때만 생각하면 화가 치미는 지, 잔뜩 낮아져 위협하는 것처럼 으르렁거리는 목소리로 속삭였다. 윤이 목덜미를 짚자마자 기절하듯 잠에 빠졌던 건 주술도, 마법도 아니었다. 그저 윤이 짚었던 머리와 목이 이어지는 부위, 그곳을 누른 채 마나를 흘려보내자 반인반마의 존재인 수신호위들도 비실거릴 정도였다. 평범한 사람은 항거하지도 못한 채 줄이 끊긴 인형처럼 쓰러졌다. 이제는 그 방법을 알았으니 도망치려 해도 소용없다.
“단, 네가 할 일을 모두 끝낸다면.”
“이미 만날 사람은 모두 만났고, 이야기를 나눌 사람은 모두 그리하였다.”
“이 근처는 싫어.”
“그건 나도 마찬가지다.”
아스탄이 윤의 입술에 다시 입을 맞추었다. 이번엔 버드키스처럼 가벼운 입맞춤이 아닌, 성교를 하는 것처럼 깊게 혀를 빨아들이고 얽었다. 명백한 성욕을 담아서 유혹했다.
“그래도…… 지금 나가면 사람들이 알 텐데.”
“다들 연회장을 벗어난지 오래야.”
이미 성질 급한 사람들은 손을 잡고 게스트룸으로 향한 지 오래다. 일전엔 연회장이 열리는 가장 큰 방을 중심으로 테라스와 수많은 게스트룸을 비치하였는지 알지 못했다. 의아해하는 윤에게 폭소를 하며 그 비밀을 알려준 건 율리히였다. 그때 순진한 애 물들이지 말라며 안즈마네에게 엄청 두드려 맞았었는데 윤이 비식비식 웃었다.
황제 역시 자리를 비운 지 오래였다. 샤리크 백작 부인인지, 새로운 애인인지 몰라도 그 역시 즐기러 떠난 것이리라. 게스트룸 앞에서 아들과 아버지가 연인을 곁에 낀 채 만나는 상황은 상상만으로도 질색이었다.
아스탄이 쐐기를 박듯 부연설명을 덧붙였다.
“네겐 의미 없는 사람들이지 않나.”
“그렇긴 하지만.”
윤이 흔들리는 목소리로 웅얼거렸다. 입술을 핥은 아스탄은 미묘한 맛에 미간을 찌푸렸다. 술맛에 가려졌으나 필경…. 확신을 위해 윤이 들고 있던 잔을 뺏어 술을 마셨다. 독은 아니었다. 미약이다.
“그런데― 이 술, 네가 가져온 건가?”
“응? 아니… 이거 공녀가 가져다준 거일걸.”
“……너는.”
아스탄이 미간을 좁혔다. 일전 제 대자의 독배에도 당해놓고서 경계심이 부족했다. 이건 습관의 문제다. 곁에 있는 사람조차 경계하고, 의심하고, 끊임없이 시험할 생각을 않는 거다. 윤은 그런 부분에서 특히나 경계심이 부족했다. 초월자의 강함에서 나오는 여유라 생각하기엔 나고 자란 환경이 큰 영향을 끼쳤음이 분명하다.
윤은 조금 술이 깬 목소리로 물었다.
“왜? …독이라도 들은 거야?”
“아니, 마녀의 물약이다. 미약의 한 종류인 것 같군.”
아스탄은 잠시 생각한 후 대답했다. 어릴 때부터 독살을 방지하기 위해 독약의 맛을 감별하는 교육을 받아왔고, 노스트라드로 건너간 후에는 흐지부지되었지만 얼추 알아차릴 정도는 되었다.
“목이 말라서 무심결에… 원래는 안 마시려고 했어. 입대는 척만 했었다고.”
“결론은 마신 게 아닌가.”
단호한 지적에 윤은 뒷목을 긁적였다.
“공개된 장소에서 미약을 먹을 거라 누가 상상했겠어?”
“이곳은 네 상식이 통용되는 장소가 아니야. 내 아버지가 내 형을 죽인 장소도 연회장이었다.”
“……미안.”
윤이 입술을 꾹 다문 채 눈썹을 내렸다. 머뭇머뭇하는 모습이 역린을 건드린 건가싶어 걱정되었다.
“나 이대로 혈맥이 터져서 죽는 건가?”
“혈맥? 그게 뭐지?”
아 이쪽은 판타지 세계지. 윤인 또다시 알 수 없는 말을 덧붙였다. 윤이 자꾸만 자신의 세계 이야기를 할 때마다 불안했다. 바라는 바를 이루고 나면 미련 없이 떠나버릴 것 같았다. 그를 잡을 수 있는 것이 무얼까. 고민하고 또 고민했지만 답은 쉬이 나오지 않았다.
“그런 게 있어. 이거 해독약 먹어야하는 거 아닌가.”
“소드 마스터가 되어선 무슨 소릴 하는 거냐. 네겐 영향도 없을 거다. 주술을 걸어 증폭시키는 종류였으니.”
아스탄은 어이없는 동시에 그 모습마저도 사랑스럽다고 느끼는 자신을 발견했다. 다행이다. 하고 배시시 웃는 윤의 이마를 손가락으로 튕겼다.
“아냐, 효과 있어.”
“…….”
“머리도 어지럽고 …너와 하고 싶어졌으니까.”
아스탄의 눈빛이 사납게 변했다. 사냥감을 노리는 육식 동물의 그것처럼 위험한 빛으로 반짝거렸다. 명백하게 드러내는 성욕에 윤이 마른 침을 삼켰다. 지금 이렇게 흔들리며 욕구를 느끼는 건, 다 자신이 마신 알 수 없는 약 때문이다. 그리 핑계를 대었다.
“애비가일을 용서하지 못할 이유가 늘었다고 생각했는데, 처음으로 녀석이 고마워졌군.”
아스탄이 윤의 허리를 끌어안으며 속삭였다. 윤은 뺨을 마주 댄 채 키들키들 웃었다.
두 사람은 테라스를 빠져나오자, 연회에 참석한 이들의 시선이 노골적으로 이쪽에 쏠렸다. 무슨 일이 있었는지 짐작케 만드는 흐트러진 옷매무새와 부어오른 입술을 곁눈질했다. 부채 사이로 은밀한 음담패설이 오고갔다. 불쾌하진 윤이 살기를 퍼트리며 눈을 치켜뜨자 새하얗게 질린 얼굴로 고개를 돌린다.
테라스 바깥에서 대기 중이던 아이그너 형제가 다가왔다. 아스탄이 제르센을 향해 명령했다.
“제르센, 그대도 이제 연회를 즐기도록 해.”
“괜찮습니다.”
“그대 역시 센트리움에 방문한 건 오랜만의 일이지 않나. 너를 붙잡고 놓아주지 않는다고 유모의 눈빛이 대단해.”
“속하의 일은 전하를 보좌하는 것. 계속 곁에 있겠나이다. 이후 집에 방문하면 되는 일입니다.”
고지식하기 그지없는 제르센의 대답에 솔라가 한심함을 숨기지 않는 눈초리로 제 형을 쳐다보았다. 보좌관에는 맞지 않지만 능글능글한 성격답게 이런 부분에 있어선 눈치가 빨랐다. 애초 애비가일을 들이댄 것도 호감의 냄새를 맡았기 때문이다. 솔라의 눈빛에 제르센이 울컥했다.
“윤 님, 저는 어떻게 할까요?”
“모처럼 연회인데 신나게 놀아.”
“명을 받들겠나이다.”
예상한 대답에 솔라는 싱글싱글 웃었다.
“전하, 이만 물러가도 될는지요.”
“허한다.”
“갑니다. 형님. 부디 청룡이 질투할 만큼 기쁜 밤이 보내시길 바라겠나이다.”
솔라는 제 형을 질질 끌고 멀어져갔다. 제르센이 옆구리를 주먹으로 퍽퍽 쳤지만, 솔라는 팔에 힘을 풀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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눈을 떴을 때는 이른 아침이었다. 온몸이 부서지는 듯 격렬한 통증이 윤을 반겼다. 특히나 말로 표현하기 힘든 곳에서 올라오는 둔통은 눈물이 찔끔 날 정도였다. 이런 아픔은 정말 오랜만이었다. 소드 마스터였던 숙적, 윈저의 그란델과 싸워서 쇄골이 나가는 등 온몸에 타박상을 입었을 때도 이만치 아프지 않았던 것 같다.
얼굴 위로 마구 침질해대는 혀가 거슬렸다. 제발, 이제 그만! 윤은 아스탄을 밀어내려다가 손가락에 감기는 보드라운 털에 눈을 반짝 떴다. 어느새 침실로 들어온 새끼 여우, 목도리가 눈물이 그렁그렁한 눈으로 자신의 얼굴을 마구 핥았고 있었다. 목덜미를 잡아서 멀리 떼어놓자 다시 다가와 얼굴을 부비며 낑낑 울었다.
“너, 갑자기 왜 이래. 목도리 되기 싫어서 그런 거야?”
새끼 여우는 억울하다는 듯 윤의 얼굴을 솜방망이 같은 발로 마구 때렸다. 가만 보면 말귀를 알아듣는 것 같기도 하고. 윤이 피식피식 웃자, 여우는 구슬픈 눈으로 한번 쳐다보더니 구석에 가서 몸을 말고 누웠다. 삐졌음이 역력한 몸짓에 나지막하게 웃으며 자그마한 머리를 쓰다듬었다. 손안의 온기가 사랑스러웠다.
“나중에 육포 줄 테니까.”
아스탄의 팔이 제 허리를 끌어안고 있었다. 기분 좋게 잠든 얼굴을 보자 어쩐지 심통이 났다. 코를 아프게 흔들어줄까 하다가 그만두었다.
아스탄에게 시달려 밤새도록 흐느꼈던 것 같다. 물론 슬퍼서 운 건 아니다. 한 번도 겪어보지 못한 종류의 쾌감에 헐떡거리며 울부짖었다. 말 그대로 짐승 같은 성욕이었다. 체력으론 뒤지지 않는다고 생각했는데, 다섯 번이 넘어갈 때쯤엔 지쳐서 그만하자고 등을 퍽퍽 때릴 정도였다.
‘겉모습은 별로 차이나지 않는데 말이지.’
늙지 않는다고 생각했는데 어쩌면 속으로는 삭아가고 있었을지도. 윤은 찡한 통증을 호소하는 허리를 툭툭 쳤다.
마지막 양심이 있었는지 몸을 닦아준 듯 끈적끈적한 곳은 찾을 수 없었다. 다만 말할 수 없는 곳이 우리하게 아파올 뿐이다. 시종을 방에 들이지 않았던 건지 체액으로 얼룩진 시트를 갈지 않고 망토를 깔고 누웠다. 시트와 비교도 되지 않을 만큼 비싼 망토에 조금 뜨악했지만, 남의 시중을 받기만 했던 황태자님이 이만큼 해준 게 어딘가. 그저 더러워진 옷을 보며 좌절할 제르센이 안타까울 뿐이다.
자리에서 일어난 윤이 단추가 모두 날아간 슈미즈를 걸쳤다. 노골적인 정사의 냄새가 방을 떠돌아서 창문을 열었다. 잠결에 옆을 더듬거리던 아스탄이 눈을 번쩍 뜨더니 재빠르게 몸을 일으켰다. 창가에 선 윤을 보고나서야 굳었던 표정이 풀린다.
“왜 그래, 아스.”
“…네가 느껴지지 않아서.”
“걱정도 많다. 내가 도망갈 까봐?”
아스탄은 대답하지 않았다. 그저 몸을 일으킨 후 성큼성큼 다가왔다. 건장한 나신에 지난밤의 흔적이 짙게 남아있었다. 사정없이 깨물어놓은 목덜미와 등에서 허리로 이어지는 손톱자국. 삽입의 고통을 견디느라 사정없이 움켜쥐었던 팔에 손자국까지. 윤이 끙 소리를 내며 손을 들어 제 얼굴을 가렸다.
“옷을 좀 입어, 옷.”
“……나는 별로 개의치 않는다만.”
“내가 안 괜찮거든.”
윤의 잔소리에 아스탄이 옷을 입었다. 얇은 슈미즈와 바지는 잘 단련된 라인을 그대로 드러내었다. 어쩐지 뺨이 홧홧해서 자신의 볼을 찰싹찰싹 두드렸다. 벗는 것보다 입는 게 더 야하다던 친구들의 말을 이해할 수 있을 것 같았다.
“그렇다면 어제 밤은 괜찮았나?”
“……음.”
윤은 눈동자를 이리저리 굴렸다.
“싫진 않았지.”
“그렇게 울어놓고서 겨우 그리 대답할건가? 너보다 쉰 살은 어린 청년을 잡아먹고서?”
이거 완전 난봉꾼 아니야? 하는 눈으로 아스탄이 쳐다보았다. 윤이 울컥했다.
“내, 내가 언제?”
“그렇다면 날 받아들이는 건가?”
“그, 그런 셈인가.”
말려들었다는 걸 깨달았지만 이미 한 말을 무를 수는 없었다. 아스탄이 씩 웃으며 윤의 입술을 삼켰다. 잡았다. 아스탄은 노련한 사냥꾼이었다. 책임감 강한 청년은 제 입으로 말한 이상 결코 무르지 않을 것이다. 후일 거사가 성공한 후, 이레인이 제도로 돌아오게 되면 어떻게 할지 궁리하였다. 차기 노스트라드 공작으로 삼아 북쪽으로 보내는 것도 나쁘지 않을지도 모르지. 아스탄은 낮게 웃으며 윤의 매끄러운 등으로 손가락을 쓸어내렸다. 지난밤, 쾌감의 잔여물이 남아있던 등이 파드득 튀었다.
“윤.”
아스탄은 허리를 숙여서 윤의 쇄골에 입술을 가져다대었다.
“아침인데….”
“아직 이른 시간이지.”
정오가 다되어가는 시각이었지만 밤새도록 연회를 즐기고 늘어져라 늦잠을 자는 귀족들에겐 이른 시간이다. 연약한 살을 혀로 쓸어 올리자 움찔 하며 붙잡았던 팔뚝에 손톱을 박아 넣는다.
침대에서 뛰어내려 숨겨두었던 육포를 잘근잘근 씹던 새끼 여우는 검은 머리의 인간이 우는 소리에 귀를 쫑긋했다. 산주(山主)였던 백호도 잡을 만큼 엄청나게 센 인간이 금발 인간에게 깔려서 우는 모습은 무척 충격적이다. 역시 금발의 인간이 가장 강한 걸까. 여우는 고개를 흔들며 앞발 속에 얼굴을 파묻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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튜란토트님께 감사드립니다 8ㅅ8
삭제된 부분은 노블레스에 올려두었습니다. 별로 기대는 하지 말아주셔요....ㅠ0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