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075 / 0111 ----------------------------------------------
11장, 역천
어둑한 기운이 창밖에 깔렸다. 붉은 석양이 불길하게 느껴지는 시각이었다. 아스탄이 황제를 알현하러 간 지 세 시간이 지났지만 돌아올 줄 몰랐다. 그의 행적은 마치 실의 중간을 끊어버린 것처럼 증발해버렸다.
‘그때 따라갔어야 했나.’
윤은 깃털펜의 끝을 잘근잘근 깨물며 불길한 생각을 떨치기 위해 업무에 집중했다.
“딘넬 백작. 날 좀 도와주지 않겠나? 이 부분은 어떻게 유권해석을 하는 거지?”
보좌관 아론에게 스파르타식 교육을 받았지만 백 년 동안 달라진 게 많았다. 윤은 모르는 부분을 짚었다.
“잠시만 기다려주십시오. 이 부분에 대해서는―….”
딘넬 백작은 자연스럽게 윤에게 공대했다. 설명에 따라 양피지에 사각거리며 중요한 점을 메모하고, 이해되지 않는 부분은 다시금 질문하며 클레먼스에 대해 파악해 나갔다. 원치 않는 자리더라도 맡게 된 이상 최선을 다해야했다.
만찬 시간을 알리는, 종이 열여덟 번 울렸음에도 아스탄은 돌아오지 않았다. 윤이 제르센에게 지시했다.
“제르센, 아스탄이 어떻게 되었는지 알아와.”
“…황제 폐하와 알현을 끝낸 후 방을 나가셨고, 그게 네 시간 전이라 합니다.”
제르센이 굳은 얼굴로 말했다.
“제르센.”
“예, 각하.”제르센은 깍듯하게 고개를 숙였다.
“내가 클레먼스 변경백으로서 군사를 운용해 제도로 들어올 수 있는가?”
윤의 질문에 제르센은 벼락을 맞은 것처럼 몸을 굳혔다. 황제와 전면전을 생각하고 있는 것인가? 의중을 살피기 위해 조심스레 고개를 들어 윤의 안색을 살폈다. 까만 눈은 심연처럼 깊었다. 이제껏 보여주던, 장난스럽고 어린 청년의 모습은 찾아볼 수 없었다. 잘 갈린 검처럼 날카로운 예기로 번뜩였다.
‘윤이 그저 평범한 검사로 보이나? 그렇다면 네가 잘못 판단한 것이다. 제르센.’
문득 제 주군의 말이 떠올랐다. 제르센은 입안이 바짝바짝 마르는 것 같았다. 마치 아스탄에게 대하듯, 조심스럽고 정중한 자세로 고개를 조아린 뒤 고했다.
“원칙적으로는 불가합니다. 허나 변경백은 육군 장군을 겸임합니다. …자의적 판단에 따라 움직일 수 있습니다. 그로인해 처벌을 받는다 하더라도 황제가 사면해주면 그만입니다.”
“변경백에게 장성(將星)의 지위를 수여한 건 누구의 생각이었지?”
“…무제이십니다.”
“미쳤군.”
아벨라르 대륙은 철저한 신분제로 구성되었다. 다만 중세 봉건제와 다른 부분은 왕의 권위가 절대적이라는 것이다.
지배 왕조는 모두 전설을 하나씩 가지고 있었다. 황룡의 피를 이었고, 청룡이 나라를 세웠다거나, 흑룡의 신탁을 받았다는 등. 그란디아 역시 황룡 가리온의 후예라는 건국 신화가 있다. 물론 신화시대로부터 수백, 수천 년이 지났기에 신과 연결점이 끊어졌으나, 그란디아만은 예외다. 월스턴이 황룡을 만나며 신화는 진실이 되었다.
신의 피를 이었기에 모든 사람의 위에 왕이 있다. 황가의 신성이 주는 권력은 절대적이다. 그 권력을 군대가 뒷받침했다. 그런 군권을 지방 제후들에게 나눠주고 자의적으로 거병할 수 있는 권한을 주다니, 위험한 짓이었다. 물론 땅덩이가 커지며 어쩔 수 없이 시행된 부분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지금 상황에서는 그 미친짓이 도움이 되겠어.”
황제가 떠넘긴 권력이 쓸모없고 귀찮다 여겼는데, 지금은 꽤 유용하게 쓸 계책을 생각해내었다. 윤이 중얼거리며 양피지 위에 아벨라르 대륙의 전도를 그렸다. 사다리꼴의 영토 가장 북단에 노스트라드가 있고, 남단에 센트리움이 있다. 두 지역간의 거리는 무려 1600카타르(킬로미터)에 달한다. 현실로 따지면 서울과 부산을 두 번 왕복하는 거리였다.
“만약 무슨 일이 생겨서 노스트라드에 연락하면 이미 늦어. 딘넬 백작, 통신용 마법 구슬이 닿을 수 있는 위치는 어디지?”
“한 번에 200카타르입니다.”
딘넬의 대답에 윤은 턱을 문지르며 생각에 잠겼다.
“클레먼스와 센트리움의 거리와 같군. 그렇다면 누구에게도 알리지 않고 장군의 지위를 이용해 군사를 하루면 끌고 올 수 있지만… 그렇게 한다면 보병은 지쳐서 전투를 치르지 못하게 될 것이야.”
“…무슨 생각을 하시는 건지 여쭤 봐도 됩니까?”
딘넬 백작, 미하엘이 조심스럽게 끼어들었다. 물론 자신의 귀로 듣고 있지만, 제대로 이해한 것인지 혼란스러웠다. 지금 검공의 후인이자, 클레먼스 변경백은 황제와의 전쟁이라도 염두에 둔 것 같았다.
“최악의 경우를 고려하고 있지.”
“고려하신다 함은…?”
“황제와의 전면전.”
윤이 단호하게 대답했다. 딘넬 백작의 눈이 크게 떠지며 손에 들고 있던 서류를 떨어트렸다. 그 바람에 책상에 잉크가 엎질러졌다.
“죄! 죄송합니다!”
책상을 더럽힌 잉크를 황급히 닦아내며 딘넬 백작은 사죄의 말을 중얼거렸다. 그의 머릿속이 화염탄을 던진 것처럼 쑥대밭이 되었다. 황태자의 명령 없이, 신의 피를 이은 황제에게 검을 들이댄다는 것은 감히 상상해보지 못한 일이었다.
딘넬 백작의 혼란 따위는 신경쓰지 않는다는 듯 윤이 자리에서 일어나며 제르센에게 명령했다.
“제르센. 통신구를 가지고 있지?”
“예.”
“명령하겠다. 제르센은 황성에 머물지 않고, 자신의 타운 하우스에 있는 황태자파의 주요 귀족들에게 전해. 한 사람의 집에 모여 있을 수 있도록 하는 거다. 만약 센트리움을 탈출하게 되는 최악의 일이 발생할 경우 누구도 빠지지 않게 한다. 딘넬 백작은 지금 황성에 있는 이들은 모두 이방으로 모아! 움직여! 지금 당장!”
“예!”
윤의 명령에 사람들은 재빠르게 움직였다. 다행히 황성에 머물고 있는 사람들의 수는 많지 않았다. 롭과 스완, 플로레스 백작부처, 딘넬 백작, 아이그너 형제, 총 일곱 명이었다. 그리고 심각한 상황을 알지 못한다는 듯 분홍색 혓바닥을 날름거리며 털을 정리하는 아기 여우, 목도리가 있었다.
“노스트라드에서 회색 늑대 기 사단장의 위치는 공작의 대리. 앞으로 나는 공작 대리로써 그대들에게 지시하겠다.”
윤의 하대에도 누구도 불쾌하다는 생각을 하지 못했다. 오히려 누군가의 위에 서서 명령을 하고, 지휘하는 그 모습이 자연스럽게 느껴졌다.
“황태자 아스타시온은 황제와 알현 이후 실종되었다.”
“허어….”
플로레스 백작이 신음했다.
“황제에게 시종을 보냈지만 돌아갔다는 말을 할 뿐이야.”
“거짓말이오!”
롭이 고함을 지르듯 말했다.
“속하가 노스트라드 공작 각하를 모신지 5년, 그러나 습격을 받은 횟수는 내 다섯 손가락을 열 번이나 접었다가 펴도 모자랄 정도요! 그분 홀로 보내는 게 아니었소!”
“그때는 상황이 어쩔 수 없었어. 지금부터 우리는 최악의 사태, 전면전을 각오한다. 아마 죽은 건 아닐 거다. 기운이 미약하게나마 느껴져. 하지만 안전한 상태라는 것도 아니지. 반드시 아스탄을 구해내야해.”
모두 굳은 얼굴로 고개를 끄덕였다.
“하지만 나 혼자 간다.”
“경! 위험하오.”
“아니, 위험한 건 내 쪽이 아니야.”
윤은 트리기토스를 뽑았다. 팟! 검기가 타올랐다. 실체화된 기운은 점차 단단한 모양을 갖추기 시작했다. 극도로 정제된 검기가 만들어내는 검의 존재에 사람들이 경악했다.
“소드 마스터!”
스완이 신음했다.
“지금부터 갈 길엔 그대들이 오히려 방해야.”
윤의 단호한 말에 스완은 침울한 얼굴로 고개를 끄덕이는 수밖에 없었다. 롭 이벨로크라면 몰라도 자신들은 방해가 맞았다.
“우선 아스탄의 기운을 향해 내가 잠입한다. 통신구를 가지고 갈 테니, 대기하도록.”
“하지만 누군가의 눈에 띄게 될 것입니다.”
플로레스 백작은 저도 모르게 존댓말로 고했다. 그 부분은 예상하고 있었다는 듯 윤이 답했다.
“다행히 비밀 통로를 조금 알고 있거든. 만약 자정이 지나더라도 내가 돌아오지 않으면 그대들은 황성을 어떻게 해서든 탈출해. 롭이 안가를 알고 있으니 그곳에서 만나도록 하지. 클레먼스 변경백으로서 군대를 소환하는 편지를 써서 제르센에게 맡겨두었다. 곧장 그곳으로 가도록.”
결의를 다진 얼굴로 사람들이 고개를 끄덕였다.
문을 두드리는 소리가 났다. 윤의 허락을 받아 밖을 내다본 제르센이 표정을 굳혔다. 황제의 시종장이 서 있었고, 그의 뒤엔 수를 셀 수 없을 만큼 많은 기사들이 복도에 도열해 있었다.
“들어오라 해.”
황제의 시종장이 들어와서 무례한 태도로 고개를 까딱였다. 다른 사람들은 안중에 없는 것처럼 윤을 똑바로 쏘아보며 말했다.
“클레먼스 변경백. 황제 폐하께서 그대를 뵙길 바라오.”
“……초대를 이런 식으로 하나?”
시종장의 뒤에는 어마어마한 숫자의 군사들이 보였다. 그 중엔 척 베스파뇰을 비롯한 황제의 호위 기사들도 있었다. 그들은 모두 잘 갈려 날카로운 검을 뽑아들었다. 복도의 촛불에 검이 번쩍번쩍 빛났다. 롭 이벨로크가 이를 악물었다.
“경이 초대에 호락호락 따르지 않는다면 약간의 실력 행사를 하기 위함이지요.”
“내가 순순히 간다면?”
“경은 특별히 살려드리겠다는 폐하의 명이 있었습니다.”
“참으로 자비로운 분이시군.”
윤이 코웃음 쳤다. 비웃음에 척 베스파뇰이 얼굴을 일그러트렸다. 오늘에서야 비로소 악연의 끈을 놓을 때가 되었다고 생각했다. 저자로 인해 황제에게 무시당하고, 도룬 남작 같은 작자에게 모욕을 당한 원한을 그는 잊지 않고 있었다. 아니 절치부심하듯 원한을 되씹고 곱씹어 그 크기를 부풀렸다.
황제의 직속 기사단은 대부분 소드 비기너와 익스퍼트로 이루어져있다. 제 아무리 실력자라 할지라도, 인해전술을 어찌 감당할 것인가. 게다가 좁은 방에서 사람들을 보호하며 싸워야한다. 타인의 목숨을 등한시 하더라도 결코 살아남기 힘들 터.
“일단 몸의 대화를 먼저하고 난 후 황제 폐하를 뵙도록 하지.”
윤은 검을 바르게 쥔 채 황제의 기사들을 향해 겨누었다.
“그때까지 살아 계시다면.”
시종장이 뒤로 물러나자 황제의 기사들이 짓쳐들었다. 무력한 이들을 등 뒤로 보호한 채 롭 이벨로크와 윤, 스완은 그들에게 맞서 싸웠다. 마법사인 딘넬 백작 또한 중얼중얼하며 마법을 영창하기 시작했다. 그러나 좁은 방이라 아군도 해칠 수 있었기에 마법의 효용은 그다지 크지 않았다.
오랜 평화에 길들여진 황제의 기사들은 합격술은 뛰어났으나 실전 경험이 부족하고 나태했다. 사방에서 찔러 들어오는 검은 제법 위협적이었지만, 툭툭 치며 그 검로를 엉클어트리자 서로 손발이 꼬여 어찌할 바를 몰랐다.
“칫!”
척 베스파뇰이 횡단으로 크게 베어들었다. 윤은 허리를 숙여 검을 피한 후, 근처에 있는 다른 기사를 베었다. 단단한 중갑을 단번에 양단했다. 상체와 하체가 분리된 기사의 몸이 바닥에 무너졌다. 무슨 일이 생겼는지 모르겠다는 듯 눈을 껌뻑거리는 기사의 눈에선 이미 생기가 빠져나가고 있었다.
“으아악!”
“이쪽을 먼저 공격하라!”
좁은 방안은 그야말로 아비규환이었다. 플로레스 백작부인은 숨이 넘어갈 것처럼 할딱거렸다. 피비린내와 사람이 죽어가는 소리에 정신을 차릴 수 없었다. 남편인 백작이 허리를 잡아주지 않았더라면 그대로 쓰러졌으리라.
“스완! 왼쪽이다!”
“예!”
윤은 가장 선두에서 기사들을 상대했다. 좁은 문을 통과할 수 있는 인원은 한정되어 있었기에, 가장 강한 이들을 꼬챙이로 꿰듯 해치우고 나면 남은 이들을 롭과 스완이 해치우며 손발을 맞추었다. 마치 전투의 신처럼, 방을 종횡무진하며 기사들을 해치우는 윤의 모습에 겁먹은 적들이 주춤주춤 뒤로 물러났다.
“물러나라!”
척 베스파뇰은 입술을 짓씹으며 기사들을 물렸다. 그리고 뒤편에 서 있던 마법사를 향해 눈짓했다. 마법사가 중얼중얼하며 화염덩어리를 불러올 준비를 하고 있었다. 제 아무리 뛰어난 검사라도 마법에는 별 수 없었다.
“이제 내 상대는 누구야?”
윤은 검날에 묻은 피를 털어내었다. 수십의 사람을 베었음에도 날이 손상되지 않은 마검은 사람들의 피가 부족하다는 듯 죽음을 노래했다.
“나요. 내 이름은 척 베스파뇰. 오랜 숙원을 갚고자 하오.”
“그대와 숙적이 될 만큼 오랜 시간을 알고 지낸 것 같진 않은데.”
윤은 빈정거리는 걸 잊지 않았다. 스완이 그 와중에 풉, 하고 웃음을 터뜨렸다. 수치심을 느낀 척의 외안이 희번뜩했다.
“베스파뇰 경이라 했나? 경은 항상 말이 많아. 어서 덤비기나 해.”
“음. 내가 말이 많다고 했나? 지금 이때를 위해서지.”
척이 비릿하게 웃었다. 그리고 옆으로 비켜서서 제 몸으로 가리고 있던 마법사를 보여주었다.
“빌어먹을!”
윤은 욕설을 짓씹었다. 저자를 죽임으로서 마법을 막기엔 이미 불덩어리들이 모두 소환되어 있었다. 이대로 마법의 영창이 끝난다면 자신은 살아남을 수 있지만, 아스탄의 사람들은 죽는다.
공간이동의 목걸이를 쥔 윤이 망설이지 않고 외쳤다.
“오픈 게이트! 헌터!”
느린 속도로 문이 생겨나기 시작했다.
딘넬 백작이 눈을 크게 떴다. 이야기로만 전해지던 문게이트의 존재에 호기심을 느꼈지만 상황은 너무도 급박했다.
“이건?”
“안가로 통하는 문이다. 얼른 통과해!”
아직 완전한 밤이 되지 않았고, 문스톤의 힘도 부족했기에 지금 이 자리에 있는 사람들 모두가 통과할 순 없었다. 윤은 홀로 남기를 각오했다.
스완과 롭의 보조를 받아 플로레스 백작부처, 딘넬 백작, 제르센이 통과했다. 문을 넘어서기 전 플로레스 백작부인이 뒤를 돌아보았다. 도망치는 것을 막기 위해 기사들이 달려들었지만 모두 윤이 처리하는 모습이 보였다. 자신의 할머니가 말한, 망토를 휘날리며 나아가는 청년 검사의 모습이 겹쳐져서, 그녀는 몽롱한 눈빛으로 중얼거렸다.
“……검공.”
하지만 시간이 없었다. 플로레스 백작부인은 뛰어들 듯 문 게이트를 통과했다. 그 다음엔 스완이 넘어갔다.
이제 롭과 솔라, 윤만이 남았다. 정확히 솔라의 손 안에서 털을 바짝 세우고 경계를 하고 있는 새끼 여우까지. 총 넷이었다.
“클레먼스 경! 어서 오시오!”
롭이 큰 소리로 외쳤다.
“롭! 게이트를 통과하면 그곳엔 헌터라는 자가 있어. 그와 함께 사람들을 모아 클레먼스로 이동해! 그리고 군사를 끌고 와!”
“헌터? 그자는 습격자가 아니오?”
“사정이 있어! 헌터는 금을 쫓는 용병, 내가 한 자루의 금을 준다고 하면 말을 따를 거다. 그 역시 실력자니 건투를 빈다.”
롭은 굳은 얼굴로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고 문을 통과했다. 게이트는 흐물흐물해져서 힘을 잃어가고 있었다. 이제 한 사람을 겨우 통과시킬 수 있을 것이다.
“솔라! 가!”
“경은 어떻게 하실 겁니까?”
솔라는 게이트를 붙잡아서 넘어가려다가 머뭇머뭇 물었다. 문게이트는 전설 속에서나 들어온 것이지만, 본능적으로 깨달은 사실이 하나 있었다. 자신이 통과하고 나면 이 문은 사라질 것이다. 그렇게 된다면 윤은 어떻게 될 것인가.
“얼른!”
“제, 제가 남겠습니다!”
“미쳤어? 얼른 넘어가.”
윤은 그 와중에 마법사를 해치우기 위해 황제의 기사들을 사정없이 베어나가고 있었다. 그러나 그 수가 너무 많았다. 이제 화염 마법은 거의 완성되었다. 자그마한 덩어리들이 모여 커다란 불의 공이 되었다.
“제가 하고 싶은 걸 찾을 때까지 곁에 머물게 해준다고 하셨지요? 저는 경이 살길 원합니다. 이곳에 남는 건, 저입니다.”
솔라는 게이트에서 손을 떼었다.
아마 이 자리에 남게 된다면 필경 남은 것은 죽음이다. 그것도 몸이 활활 타서 아주 고통스러운 죽음을 맞이하게 되리라.
아이그너 가문의 둘째로 태어나 늘 소외되어 살았다. 자신이 하고 싶은 것을 알지 못했다. 그러나 지금은 결정할 수 있었다. 윤이 살아남는다면 그것으로 만족할 수 있었다.
태어나서 처음으로 자신의 삶을, 자신이 갈 길을 스스로 결정한 청년의 얼굴은 맑았다.
============================ 작품 후기 ============================
평량님, 쪼끄마이님, 카베르틴님, 고양이판다님, dggh님, 이은현님께 감사드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