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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부 (+소장본 및 이북 관련 공지)
대지모신의 등허리 뼈에서 생겨났다는 우버 산맥은 대륙의 절반을 가로지를 만큼 거대한 산맥이었다. 덕분에 닦인 가도를 건너는 데만 꼬박 하루가 소요될 정도였다. 그러나 그 길을 찾는 이들은 셀 수 없을 정도였다. 산세가 거칠고 험하기로 유명했지만, 그란디아 제국과 보카로 왕국을 최단 거리에 가로지를 수 있는 유일한 통로인 탓이다.
예여경은 이마에 흐르는 땀을 손수건으로 닦아냈다. 닦인 가도를 걷는 데만 어마어마한 체력이 소모되었다. 다리는 이미 풀린 지 오래고, 정신력으로 버티고 있었다. 비 오듯 땀을 흘린 탓에 손수건이 척척하게 젖어서 짜면 물이 흐를 것만 같았다. 하지만 약한 소리를 낼 순 없었다. 다른 다섯 명의 남자들은 모두 무거운 등짐을 지고 산길을 걷고 있었으니까.
그녀는 보카로 왕국을 거점으로 삼은 예화 상단주의 외동딸로 대여섯의 조그만 일행을 데리고 산맥을 가로지를만한 신분은 아니었다. 하지만 사활이 걸린 일에 체면을 차릴 순 없었다.
예씨 가문은 본디 차 대륙에서 유명한 상단을 꾸리고 있었으나 그것도 옛말이다. 새로운 왕의 등극과 여러 가지 사건에 휘말려 정치적인 이유로 쫓겨나고 말았다. 그리고 아벨라르 대륙으로 그 터전을 옮겼다. 목숨을 보전한 것만 해도 다행이라서 차 대륙을 호령하던 예화 상단은 보카로 왕국의 조그만 상단으로 주저앉았다. 게다가 이방인이라 배척받은 탓에 그 상단도 엄청난 빚에 휘청거리고 있었다.
여경이 우버 산맥을 직접 찬은 건 바로 요정족과 거래를 하기 위해서였다. 그들이 만들어내는 종이는 상급 종이는 상급 마법 스크롤을 만들기 위한 필수적인 재료다. 꾸준하게 구할 수만 있다면 상단의 위기는 단숨에 넘길 수 있을 것이다.
“예 단주의 딸이 제법 미색이 곱다고 들었는데 제법이군.”
예화 상단의 뒤를 밀어주던 캐세이 백작이 짓던 음흉한 미소를 떠올린 여경은 풀려가는 다리에 힘을 주었다. 빚을 핑계로 자신을 후처로 들이려는 백작의 흉계에 이대로 당할 순 없었다.
여경을 비롯한 예화 상단의 사람들이 낯선 모험가 일행을 발견한 건 산 중턱에 도달했을 때였다. 후드를 깊게 눌러쓴 세 남자였다. 보통 저렇게 모습을 감추는 이들은 질이 좋지 않았다. 숙부의 양자 아혼이 그녀를 등 뒤로 숨겼다. 그는 여경의 호위를 담당하고 있었다.
“아가씨, 조심하십시오.”
“여경 누이이라고 부르래도.”
아혼은 여경의 말에 대꾸하지 않았다. 거리에서 떠돌던 고아인 아혼이었기에 언제나 여경에게 깍뜻한 태도를 취했다. 여경은 그것이 마음에 들지 않았다.
예화 상단의 사람들은 오십 메타브 가량 떨어진 채 거리를 유지했다. 한쪽의 일방적인 긴장감이 흘렀다. 상단의 규모는 무척 작았고 활로를 찾기 위해 상단주의 외동딸이 직접 나설 정도였지만 그녀가 잘못되면 상단의 대도 끊어지는 거다.
가장 중간에 선 여경이 조심스러운 시선으로 세 일행을 살폈다. 후드를 입고 있었지만 실루엣은 분명하게 부였다. 키가 훌쩍 큰 남자 둘과 그들의 어깨쯤에 오는 작은 남자였다.
기이한 모습의 일행이었다. 한명이 가볍게 등짐을 챙긴 걸 제외하면 아무런 여장을 꾸리지 않고 있었다. 이곳에서 죽을 속셈인걸까. 우버 산맥은 무척 험해서 맨몸으로 들어온다는 건 자살행위나 다름없었다.
모험가 일행에 흥미가 생긴 여경은 계속해서 관찰했다. 키가 작은 사람은 어쩌면 남자가 아니라 여자일지도 모른다고 생각했다. 짐을 든 남자가 마치 부서질 듯 소중한 유리 공예품처럼 그를 다뤘던 탓이다. 두 사람 사이에 대화는 없었지만 분명한 배려가 존재했다. 목이 마르면 물을 내밀고, 길이 험할 땐 팔을 붙잡아서 부축했다. 물론 여자는 부담스러운지 계속해서 거절했지만 말이다.
시선을 느낀 건지 남자가 힐끔 돌아본다. 차갑게 얼은 눈을 마주한 여경이 빳빳하게 굳었다.
“아가씨, 괜찮으십니까?”
아혼이 여경을 불렀다.
“으, 응. 괜찮아.”
“많이 힘드시지요. 이 앞에 공터가 있으니 그곳에서 쉬어가겠습니다.”
아혼의 위로에 여경은 남은 힘을 쥐어짰다. 삼십 분을 더 걸었을까, 쉬어갈 수 있는 자그만 공터가 나왔다. 그들은 극과 극 멀찍이 자리를 잡았다.
“잠시 쉬어가겠습니다.”
“응!”
여경이 자리에 털썩 엉덩이를 대고 앉았다. 예법 선생이 보았다면 눈을 매섭게 치켜떴을 테지만, 체면을 가릴 때가 아니었다. 물을 마시면서 그녀는 계속해서 세 일행에게서 시선을 떼지 않았다.
그들 역시 바닥에 앉아서 쉬고 있었는데, 반듯한 자세가 어딘가 귀한 집 자제를 떠올리게 했다. 덥지도 않은지 후드는 벗지 않았다.
‘정체를 가리려고 하는 것일까.’
여경은 그럴지도 모른다고 생각했다.
한쪽의 일방적인 균형이 깨진 건 수풀 흩어지는 소리가 나면서였다. 수염이 턱까지 지저분하게 난 남자가 말에 타고 있었다. 거칠게 그은 얼굴이나 표정이 질이 좋지 않아 보였다. 그와 여경의 눈이 마주쳤다.
“조심!”
아혼이 반사적으로 몸을 일으켰다.
“꺅!”
말에 탄 남자가 올가미를 크게 흔들더니 정확히 여경을 향해 밧줄을 던졌다. 순식간에 목줄이 죈 여경이 비명을 질렀다. 남자는 밧줄을 잡아 당겼다. 여경은 바닥에 질질 끌려 남자들에게 끌려가서 말에 강제로 태워졌다. 눈 하나 깜빡할 만큼 짧은 시간 동안 이루어진 일이었다.
“아혼! 살려줘!”
“여경 아가씨!”
처음부터 소녀만이 목표였던 것처럼 그들은 재빨리 말을 몰고 사라졌다. 여자의 긴 비명소리가 숲을 뒤흔들었다.
“……뭐야?”
공터엔 벙 찐 얼굴의 남자들만이 남았다. 윤마저도 당황스러운 표정으로 여경이 끌려간 자리를 보았다. 도와주려 해도 상황이 나빴다. 산 속에서 말을 탄 마적에겐 당할 도리가 없었다. 처음부터 곁에 있었으면 모르되 멀찍이 떨어져있던 소녀를 무슨 수로 구한단 말인가.
“산적인가?”
율리히가 중얼거렸다. 보카로 왕국 역시 왕권 다툼으로 혼란스러운 상태였다. 귀족들의 횡포는 극에 달했고, 그를 피한 유민들이 우버 산맥으로 숨어들었다. 그리고 산적이 되어서 상단과 모험가들을 괴롭혔다. 율리히 역시 최근 뒤숭숭한 우버 산맥의 공기를 읽은 탓에 어린 요정들에게 외출을 삼가란 지시를 내린 적 있었다.
“아, 아가씨!”
아혼이 털썩 무릎을 꿇으며 황망한 목소리로 중얼거렸다. 나이 든 사내 하나는 울 것 같은 얼굴로 제 머리를 움켜쥐었다. 그 크기가 거대한 나라와도 같은 우버 산맥이다. 여경을 되찾을 길이란 요원했다. 그리고 산적에게 납치당한 여자의 신세는 불 보듯 뻔했다.
“납치사건인가.”
아스탄이 감흥 없는 목소리로 말했다. 그가 윤의 어깨를 감쌌다. 윤의 시선은 줄곧 차 대륙인들에게 고정되어 있었다.
“우린 가지.”
“……아니 돕자.”
“안 돼. 갈 길이 멀어.”
“우버 산맥 또한 그란디아의 영토잖아. 대낮에 인신매매 사건이라고? 지배자로서 넘기면 안 되는 일이야.”
윤의 주장에 아스탄은 이마를 가늘게 좁혔다.
“네 몸을 생각해. 불허한다.”
“설마 한 달이 걸리겠어.”
윤이 어깨를 으쓱였다. 납치당한 소녀가 불쌍하기도 했지만, 최대한 황룡에게 가는 시간을 늦추고 싶은 마음도 있었다.
“요정의 장로여 그대가 말리도록 해.”
“왜? 재밌겠는데?”
율리히는 눈을 번쩍거렸다. 아스탄은 이마를 짚은 채 한숨을 내쉬었다. 율리히의 성격이 저 모양이라는 걸 잊은 자신의 패착이었다.
“내게 방법이 있어.”
율리히가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리고 크게 헛기침하며 시선을 모았다.
“어이 이봐. 인간들.”
“예, 예? 저희를 부르신 겁니까?”
망연자실하게 허공을 바라보던 아혼이 반사적으로 소리가 나는 쪽을 향해 고개를 들었다. 후드를 뒤집어 쓴 남자가 삐딱하게 서서 손가락을 까딱거리고 있었다.
“그럼 이쪽에 내 일행이 아닌 인간들이 너희 말고 더 있어? 잔말 말고 이쪽으로 와.”
율리히가 아혼에게 손짓했다. 예화 상단의 사람들은 멈칫할 뿐 움직이지 않았다. 당연한 일이었다. 상단주의 외동딸이 납치당했다. 그런 상황에서 수상하고 낯선 이를 어찌 믿는단 말인가.
“도와준다고 해도.”
율리히는 혀를 쯧쯧 차며 후드를 벗었다. 바다색 머리카락이 출렁거리며 쏟아진다. 시커먼 옷자락과 어울리지 않는, 청량한 빛깔에 아혼이 눈을 크게 떴다.
“자, 이 몸이 도와준다고 할 때 빨리 온다. 실시.”
우버 산맥의 중턱에 위치한 허름한 여관에 십여 명의 사내들이 들이닥쳤다. 울고 있는 중년 사내와 세상을 잃은 표정의 청년, 그 외에도 표정이 침울한 무리가 일행이었고, 그 뒤를 우중충한 차림의 세 남자가 들어섰다. 어지간한 모험가들에게 익숙해진 여관 직원들에게도 특이한 조합이었다.
가장 큰 방을 빌려서 안으로 들어온 그들은 율리히를 중심으로 둘러앉았다. 율리히는 물 만난 물고기처럼 신이 난 목소리를 숨기지 못했다.
“저들은 분명 여자만 노려서 노리개로 삼거나, 인신매매를 하는 게 틀림없어. 제법 큰 조직일 거야. 저들은 이종족도 노렸거든. 조인족 계집애를 납치하려고 했다가 된통 두들 겨맞은 인간들이 있다고 들었어.”
“그, 그럼 아가씨는 어떻게 되는 겁니까!”
“그러니까 구해주겠다는 거야.”
아혼은 미심쩍은 표정으로 율리히를 쳐다보았다.
“왜 저희를 도와주시는 겁니까?”
“너라면 네 집 앞에 설치는 쓰레기를 두고 보겠어?”
율리히가 치렁치렁한 머리카락을 걷어 귀를 보였다. 이미 성스럽게 까지 보이는 율리히의 외모에 홀라당 넘어갔지만, 이종족 특히나 요정임을 확인하자 사람들의 태도가 달라졌다. 본디 요정은 진실만을 추구하며 말하는 종족이다. 신뢰할 수 있었다.
“가, 감사합니다.”
중년 사내가 울먹이는 목소리로 말했다.
“넌 그만 짜고, 꼴사납게 우는 모습 보이면 확 가버린다.”
“……예? 예.”
사내는 구석으로 가서 젖은 얼굴을 닦아냈다.
“우버 산맥은 나조차 완전히 그 지리를 파악하지 못했을 정도로 넓다. 뒤져서 찾아내는 건 불가능해. 그리고 저들은 분명 여자만 조직적으로 노리는 게 틀림없다. 너희 주인을 납치한 것도 아주 오랫동안 틈을 봐왔을거야. 그러니까 우리 역시 미끼를 준비하지.”
“미끼?”
율리히의 설명에 윤이 의아한 목소리로 대꾸했다. 여자만 노리는데, 이곳에 여자가 어디 있단 말인가.
“그래, 대신 잡혀가서 산적 소굴의 위치를 알려줄 여자가 필요해. 진짜 여자는 아무래도 위험하니, 우리 중 하나가 여장을 하는 거야.”
“누, 누가?”
불길한 예감에 윤이 말을 더듬었다.
“누구긴 누구야. 바로 너지.”
율리히가 씩 웃었다.
============================ 작품 후기 ============================
류웰님, 서문시님, 튜란토트님께 감사드립니다!
안녕하세요. 소장본 수요조사로 찾아오게 된 희래입니다. 독자님들께 이북은 내지 않느냐는 질문을 종종 받아서 답변해드리려고 합니다.
나전보는 이북으로도 찾아뵐 수 있을 듯 합니다. 사실 며칠전까지 나전보는 계약상태가 아니었습니다 8ㅅ8. 정확하게 말하면 저번주까지네요 (ㅋㅋ)
왜냐면 제가 아직 미숙해서 책을 낼 수 있을까? 고민을 계속 하던 상태였거든요. 물론 소장본은... 저 단 한 사람만을 위해서 찍어낼 수도 있는 거라서 조금 마음이 가벼웠던 것도 없지않아 있었고요. 그러니 소장본을 꼭 사야한다! 이런 부담감은 갖지말아주셨으면 좋겠어요~!!
소장본은 일단 계획된 건 디자인 표지(일러스트 표지가 아닙니다.) 현재 나전보 표지는 엽서로 제공될 예정입니다. 그리고 엽서 한장이 더 있는데. 이건 매우 무흣*(-_-)* 해요~! 가격 같은 경우엔 소장본 수요 조사로 수량 파악을 한 후 최대한 낮춰볼 예정입니다 8ㅅ8!!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