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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전생보고서-93화 (93/1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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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부

**노블에 올라간 4화의 앞부분이 일부 겹칩니다. 뒷내용은 없는 부분이애오!

두 사람은 충분히 사람들의 이목을 끌 수 있을 만큼 오랜 시간을 밖에서 보낸 후에야 여관으로 돌아왔다. 율리히의 계획대로 윤과 아스탄은 같이 방을 썼고, 호위무사를 가장한 아혼은 그 곁에 딸린 방을 썼다. 예화 상단 사람들과 함께 들어왔으나 그건 우연일 뿐 다른 일행이라는 걸 증명하는 것처럼 철저히 모른척했다.

그들은 일행을 제외한 모든 이를 의심했다. 목표물이 쉬는 틈을 타서 낚아채는 능숙함이 하루 이틀 도적질을 해선 나올 수 없는 솜씨로 미리 망을 보는 자, 도적질하는 자 등 체계적으로 조를 꾸리는 게 분명했다. 그렇다면 동조자의 존재도 무시할 수 없다. 여관 직원, 용병, 혹은 주인. 그 누구라도 산적과 한패라 의심해야 했다.

방은 허름한 외관이라 기대하지 않았는데, 딱 예상대로였다. 무척 비좁아서 덩그러니 놓여 있는 침대와 작은 탁자, 옷장을 제외하면 발 디딜 틈도 여의치 않았다. 미리 준비해두었던 욕조가 어디 있는지 찾았더니 쪽문으로 난 곁방에 놓여 있었다.

“여자들은 정말 대단해. 매일 어떻게 꾸미고 다니는 거지?”

윤은 옷도 벗지 않고 벌러덩 누운 채 팔을 들어 눈가를 가렸다. 갑갑한 옷도 벗고 싶었고, 불편한 화장도 씻어내고 싶었지만 피로와 귀찮음이 더 컸다. 차라리 하루 종일 운동을 해도 이보다는 덜 피곤할 터였다. 침대로 올라온 새끼 여우가 윤의 턱과 입술을 밟은 채 꼬리를 신나게 흔들었다.

“요 녀석, 얼굴을 발로 밟으면 어떻게 하냐.”

윤은 목도리를 붙잡아서 들어올렸다. 몸이 공중에 떠오르자 깜짝 놀라서 사지를 허우적거리다가 이내 적응한 듯 신나게 발을 흔들었다. 많이 자랐다고 해도 여전히 인형처럼 귀여웠다. 깔깔 웃으며 새끼 여우의 보드라운 배에 코를 비볐다.

“적어도 얼굴에 바른 건 지우고 쉬도록 해. 그 불편한 옷도 벗고.”

아스탄은 새끼 여우와 장난치는 데 여념이 없는 윤을 보며 미간을 찌푸렸다.

“그렇게 별로야? 율리히는 잘 어울린다던데… 산적들이 속지 않으면 어떻게 하지?”

윤이 새끼 여우를 옆에 내려놓은 채 몸을 반쯤 일으켰다. 여장이 잘 어울리는 걸 수긍할 생각은 없었지만 아스탄은 유독 탐탁지 않은 반응을 보였다. 율리히와 예화 상단의 사람들은 모두 괜찮다고 칭찬해주었는데. 산적들이 속지 않으면 계획이 물거품으로 돌아가고 만다.

“그런 건 아니야. ……나쁘진 않다.”

생각보다 너무 잘 어울려서 문제였다. 해사한 얼굴에 옅은 화장을 얹고, 머리카락을 길게 자라나게 만들고, 여자의 옷을 입힌 것만으로도 아름답게 보였다. 그가 기분 나쁜 건 타인의 시선이었다. 침을 질질 흘리며 개처럼 달려들 듯 보였다. 물론 무자비하게 때려눕힐 윤이라는 걸 알지만 생각만으로도 기분 나쁜 법이다.

“그럼 뭐가 문제야?”

“가는 길이 방해받아서 기분 나쁠 뿐이니 개의치 말도록.”

예쁘다고 말한다면 분명 기분 나빠할 청년을 알기에 그저 핑계대는 말로 얼버무리고 말았다.

아스탄은 시중인의 도움도 없이 간편한 옷으로 갈아입었다. 옅은 미색이 도는 슈미즈에 검은색 바지는 건장한 실루엣을 그대로 드러냈다. 여관에서 가장 고급스러운 방이었지만, 그간 머물렀던 황궁에 비교하면 화장실보다 작은 쪽방이다. 팔을 뻗으면 서로가 닿을 좁은 공간에 함께 있는 기분은 묘했다.

“혼자 옷 입는 모습이 꽤 익숙하다?”

“전장에서 시종을 일일이 끌고 다닐 순 없는 노릇이니까.”

“그럼 나 좀 도와줘. 나는 혼자서 벗기 힘들다.”

윤이 치마를 벗기 위해서 손을 꿈지럭거리다가 결국 등을 돌리고 앉았다. 차 대륙 전통 의상은 몸에 딱 맞는 데다 수십 개의 단추 때문에 홀로 입고 벗는 게 불가능했다.

아스탄이 침대에 올라와 앉은 듯 한쪽이 기울었다. 톡, 톡, 톡. 손가락이 움직일 때마다 단추가 하나하나 풀어졌다. 우버 산맥 특유의 선뜻한 한기가 맨 등으로 파고들자 드러난 날개 뼈가 움츠러든 것도 잠시, 다른 의미로 몸이 웅크려졌다. 민감한 목덜미를 긴 손가락이 쓰다듬었다.

“부부이니 이런 짓을 해도 괜찮겠지?”

윤의 어깨를 잡아서 제 쪽으로 돌린 아스탄의 얼굴이 가까워졌다. 붉은 눈동자가 짓궂은 미소를 지은 채 반짝였다. 숨결이 닿을 듯 간질거리는 동시에 입술이 맞닿았고 두툼한 혀가 입안으로 밀려들었다. 점막을 쓸기도 하고 서로 엉키기도 했다. 타액마저 달게 느껴졌다. 조금씩 흥분이 고조되었다.

“하아, 방음이, 안될… 텐데.”

“어지간한 소음은 모두 가려주더군. 네가 크게 목소리를 내지만 않으면.”

얼굴이 확 붉어졌다. 장난스럽게 놀리는 그를 때려주려고 주먹을 들었지만, 이내 손목이 붙잡히며 막혔다. 커다란 손으로 두 손목을 한 번에 쥔 채 옷을 벗겨 나갔다. 소매를 빼내고 밑으로 아무렇게나 벗어 던졌다. 순식간에 상반신이 모두 드러났다. 앞으로 있을 일을 생각하자 눈가가 떨리는 것 같았다. 기대인지, 두려움인지 알 수 없었다.

“이 녀석은 괜히 눈에 띌 뿐이니까, 율리히에게 보내도록 하겠다.”

아스탄은 제 무릎을 박박 굵고 있는 새끼 여우의 목덜미를 잡아 올렸다. 눈에 띈다는 건 괜한 핑계다. 가장 중요한 순간에 난입해서 분위기를 깨는 방해자를 처리하기 위함이다.

목도리는 캬웅캬웅 울며 거부를 표현했지만 금발 머리 인간은 아랑곳하지 않았다. 세게 할퀴기 위해서 팔다리를 바동거렸지만 수십 배는 커다란 인간에게 당해낼 수 없었다. 이 자리에서 서열이 가장 높은 검은 머리 인간을 쳐다보았다. 그는 눈물을 방울방울 흘리는 애달픈 눈동자를 외면했다. 고용된 윤! 너마저! 배신감에 눈을 부릅뜬 새끼 여우는 창문을 통해서 옆방으로 쫓겨났다.

***

깊은 밤이었다. 침상에서 일어난 아스탄은 바지만 입은 채 의자에 걸터앉았다. 우버 산맥을 오르는 강행군이었지만, 숙면을 취한 덕분에 피로는 전혀 느껴지지 않는다. 윤이 곁에 있을 땐 악몽도 꾸지 않고 깊게 잠잘 수 있으나 애초 수면 시간이 짧아서 늘 새벽녘이 되기 전의 깊은 밤에 눈을 떴다.

아스탄은 턱에 손을 괸 채 윤을 응시했다. 윤은 온기를 찾아 더듬더듬 팔을 뻗다가 이내 베개를 끌어안았다. 길게 자란 머리카락은 아무렇게나 흐트러져 있다. 밝은 달빛이 그의 얼굴에 창백한 역광을 만들었다. 느리게 눈을 감았다 뜨자 언제나 침착하던 눈빛이 괴롭게 일그러져 있었다.

무엇도 할 수 없는 자괴감을 처음 맛보았다. 마치 사지가 잘려나간 듯 고통스러웠다. 긴 시간을 살아온 건 아니다, 어찌 보면 윤에겐 비교도 할 수 없을 만큼 짧은 생을 살아왔다. 그렇다고 해서 감정의 무게가 다른 건 아니었다.

“네가 남는다는 대답은 바라지 않았다. 아니 어찌 바랄 수 있겠는가. 나를 위해 그리 말한다는 걸 아는데.”

윤은 자고 있었지만 아스탄은 마치 깨어있는 사람을 대하듯 말했다.

“……너는 지독히도 바보 같은 인간이지.”

대자가 자신을 배신했어도 욕 한 번 제대로 하지 못한 어리석은 인간이다. 거대한 대륙의 지배자로 호의호식하던 그 후예들을 돕기까지 했다.

죽음이 가까워질수록 연인을 죽게 만든 죄책감에 무너질 자신을 잘 알아 부러 냉정하게 구는 것도 안다. 끔찍한 절망에 몸부림치다가 스스로 윤의 뒤를 따라가고 말 것이다. 그건 확신이었다.

“나는 그가 아니야.”

레나디온은 윤이 떠나는 공포를 견디지 못해 죽였을지도 모르나 자신은 달랐다. 그리 졸렬하게 굴지 않을 것이다.

아스탄은 레나디온과 자신을 별개의 사람이라 인식했다. 우연히 혼을 공유한 사이일 뿐이다. 허나 한 가지 공통점이 있다면 생을 반복해서도 가지게 되는 지독한 소유욕이다.

“그러나 나는 타고난 욕심쟁이라, 너를 놓아주지 못하겠다.”

윤을 놓아줄 수는 없었지만 죽음을 지켜보는 건 더욱 견딜 수 없다.

아스탄은 주머니에 넣어놓았던 목걸이를 꺼냈다. 백금보다 고급스러운 광택을 자랑하는 미스릴로 줄을 만들고, 빽빽하게 마법 문자를 새긴 푸른 보석이 아름다운 목걸이다. 윤이 가진 것을 제외하면, 유일하게 남은 황가의 보물. 문스톤으로 만든 공간 이동의 목걸이.

“……그렇다면 이 세상보다 더 큰 새장이 되겠다.”

태어나서 처음으로 느낀 감정은 신분도, 지위도, 재산도 모두 아무렇지 않게 불태우는 불꽃이 되었다.

아스탄이 목걸이를 꽉 움켜쥐었다. 건장한 나신 위로 셔츠를 걸쳤다. 움직일 때마다 우아하게 물결치던 근육이 단추를 여밀 때마다 사라져간다.

공터 밖으로 나온 아스탄은 길게 휘파람을 불렀다. 보통 사람은 듣지 못할 서글픈 곡조에 창문이 열린다. 눈을 비비며 고개를 내민 율리히가 아스탄을 발견했다. 그는 날쌘 몸놀림으로 3층에서 뛰어내렸다.

“뭐야, 니가 차기 황태자라고 사람을 이렇게 깨워도 돼? 난 니 백부라고.”

“시답지 않은 소리는 그만둬. 누누이 말했지만 나는 레나디온이 아니다.”

“그럼 요정족 장로의 도움을 어떻게 구하려고? 난 비싼 몸인데?”

마주치는 시선에서 치열한 불꽃이 튀었다. 율리히는 그 살벌한 눈빛에 혀를 쯧쯧 찼다. 예나 지금이나 제 대부밖에 모르는 녀석이었다. 물론 이 녀석은 좀 다른 것 같지만, 율리히에겐 이 인간이이 그 인간이었다. 이제 율리히에게 의미를 가진 인간은 윤, 불쌍한 그의 친우 단 하나 밖에 없었다.

“나를 도와다오. 그대의 도움이 필요하다.”

아스탄은 손바닥에 자국이 세게 남을 만큼 쥐고 있던 펜던트를 율리히에게 내밀었다.

“……이건.”

율리히는 잠이 달아난 눈빛으로 펜던트를 응시했다.

============================ 작품 후기 ============================

류웰님, 튜란토트님께 감사드립니다.

추석 연휴가 끝났군요...ㅠㅠ. 우리 모두 힘을 냅시다 슈퍼파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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