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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부
마지막으로 남은 건 주먹 크기의 황금색 보석이었다. 다이아몬드처럼 찬란한 빛깔로 반짝였다. 물욕이 없는 윤조차 시선을 사로잡혀서 쉽게 눈을 뗄 수 없을 만큼 아름다웠다. 벨라드가 윤에게 보석을 내밀었다.
“이게 용의 심장이란다. 네게 주마.”
“……필요 없어요.”
“하지만 네 연인은 쓸 데가 많을 거란다.”
윤은 망설이다가 결국 고개를 끄덕여 가리온의 심장을 받아들였다.
이제 가리온이 죽었으니 축복을 받지 못한다. 새로 태어나는 황룡이 자신들의 편이라 생각할 수도 없었고, 아주 오랜 시간이 걸릴 터였다. 축복을 받지 못한 아스탄은 수세에 몰릴 게 분명했다. 그러나 황룡의 심장이 있다면 이야기는 달라진다. 훨씬 유리한 쪽으로 끌고 갈 수 있다.
“참 착한 아이구나.”
“저보고 착하다고 하는 사람은 당신과 당신의 핏줄밖에 없네요.”
윤은 잠시 침묵했다가 쓰게 웃으며 대꾸했다.
벨라드는 다정한 손길로 윤의 어깨를 짚었다. 그리고 율리히와 아스탄을 돌아보았다.
“내가 다른 세상에서 온 아이와 이야기를 할 수 있도록 잠시 자리를 비켜주지 않겠느냐.”
아스탄은 잠시 윤을 바라보았다. 설마 주신이 해치기야 하겠어. 윤은 태평하게 생각하며 고개를 끄덕였다.
“네게 미안한 일이 참 많구나.”
벨라드와 윤은 산책을 하듯 숲속을 느릿하게 걸어 들어갔다.
“사과하지 마세요. 그쪽이 잘못한 건 맞지만, 더 잘못한 놈도 내버려뒀는데요. 뭐.”
“역시 착한 아이구나.”
“하지만 그쪽도 용서했다고는 말 안했습니다.”
돌아오는 뾰족한 대꾸에 벨라드가 눈을 동그랗게 떴다.
윤이 매서운 표정으로 주먹을 들었다. 그리고 정확하게 벨라드의 뺨을 갈겼다. 평범한 사람은 바닥을 데굴데굴 굴렀을 강력한 일격에도 벨라드는 꿈쩍도 하지 않았다. 오히려 석상을 갈긴 양 제 주먹이 아팠다.
“……이것으로 참죠.”
윤은 욱신거리는 손목을 주무르며 말했다. 현실이나 이세상에서나 종교를 믿지 않았다. 가끔 이세계에서 신들이 벌이는 이적을 확인할 때마다 ‘신은 정말 있구나.’ 하고 생각하는 정도였다. 가끔 온갖 신을 찾긴 했지만, 이 땅의 사람들처럼 절대적인 신성으로 생각하지 않았다. 덕분에 주먹도 날렸지만, 곧바로 눈치를 보았다. 혹시나 자신의 사람들에게 보복이 있을까봐 걱정되어서였다.
그러나 율리히를 생각하며 불안을 가라앉혔다. 그는 도마뱀을 통구이로도 만들고 아직 잘살아있지 않은가. 갑자기 마음이 편해졌다. 벨라드에 대한 앙금도 한결 가라앉았다. 윤의 속마음을 읽은 것처럼 벨라드가 미소지었다.
“겨우 이정도로 끝내준다니 고맙구나.”
“……그러니까 내가 이 땅에 남을 방법을 알려주세요.”
벨라드가 걸음을 멈추었다. 그가 허공을 보았다.
“네 몸 그대로 남는 건 나도 힘들단다. 이미 네 육신은 망가지기 시작했고, 설령 내가 도와준다한들 이 세상의 인과에 맞지 않는 존재지. 끝은 파멸뿐이란다. 또다시 늙지도, 죽지도 않는 삶을 반복하고 싶은 거니?”
“……당신이 이 땅의 주신이라면서요. 꼭 그런 방법 밖에 없는 건가요?”
윤은 억지라는 걸 알면서도 투정을 부렸다.
“본디 내 어머니들이 죽고 난 후, 내가 가장 큰 신격을 가졌기에 주신이지. 만능은 아니란다.”
“…….”
“하지만 한 가지 방법이 있지.”
윤이 고개를 번쩍 들었다. 벨라드를 기대의 눈으로 쳐다보았다. 벨라드는 안타까운 눈빛으로 윤을 응시했다.
“네가 죽은 후 이 땅에 환생하여 질서에 편입되는 거란다.”
“그건 안 돼요. 시간이 너무 오래 걸리잖아요.”
“문제는 그 뿐이 아니란다. 게다가 너 자신이라는 보장이 없단다. 이전의 생이 어떠한들, 새로 태어난 너는 또 다른 사람일 뿐이야. 결코 너 자신이 될 수 없어.”
벨라드의 말에 윤이 고개를 떨어트렸다. 환생을 하게 된다면 정해윤도, 월스턴의 친우도, 레나드의 대부도, ……아스탄의 연인도 아니란 뜻이었다. 내가 나 자신이 아닌 상황을 상상할 수 없었다. 벨라드는 이곳에 자신이 남을 수 없다고 못 박은 거나 마찬가지다..
“그러니 돌아가거라. 네가 있어야할 곳으로. 그곳에 돌아가면 네 몸도 멀쩡해질 거란다.”
벨라드의 이어진 말에 윤의 눈에서 불똥이 튀었다.
“진짜, 나한테 왜 그래요? 왜 나한테 이런 고통만 주시는 건데요? 왜!”
이성을 잃은 윤이 벨라드의 멱살을 잡았다. 얼굴로 열이 몰렸다. 눈가가 뜨거웠다. 꼴사납게 눈물이라도 흐를 것 같아서 꾹 참았다.
윤은 언제나 신에게 물어보고 싶은 것이 많았다. 왜 하필 나에게 이런 시련만 주냐고. 사람들이 마냥 행복한 건 아니지만, 나한테 왜 이런 저주와도 고통을 주는 거냐고. 늘 잠이 오지 않는 밤이면 그렇게 힘들어했다. 정말 신의 멱살을 잡고 물어보게 되었지만, 분은 풀리지 않았다. 오히려 듣지 않는 게 나았을 최악의 답만 들을 수 있었다. 차라리 희망이라도 품고 있을 수 있었을 텐데, 이젠 그 자그마한 풀꽃조차 짓밟혔다.
“네게 남을 수 있는 시간을 조금 늘려주마. 그러니 이후엔 돌아가거라. 내가 도와줄 수 있는 건 그것밖에 없구나.”
분명 목이 죄어 숨이 막힐 텐데도 벨라드는 미소를 잃지 않았다. 제 멱살을 쥔 윤의 손을 부드럽게 도닥였다. 아이러니하게도 나비처럼 가볍고, 다정한 손짓에 마음이 풀어졌다.
잠시 말을 고르던 그가 윤을 달래듯 입을 열었다.
“지금 이별한다하여, 정말 그 인연이 끝나는 건 아니란다. 네 친우 월스턴, 안즈마네…… 그 아이들도 모두 네 곁에 있단다.”
“……월스턴이요?”
윤이 눈을 크게 떴다.
“잘 생각해보렴, 언제나 네 곁에 있어주던 친우를. 네가 살던 세상에 분명 그가 존재한단다.”
반사적으로 현일의 얼굴이 떠올랐다. 현일이 월스턴이었다고? 윤은 반사적으로 납득하는 자신을 발견했다. 언제나 믿음직스럽게 그의 곁을 지켜주던 친구. 때론 장난스럽고, 때론 형 같은, 가족과도 같은 친구, 김현일. 그가 월스턴이었다니. 윤이 눈을 크게 떴다.
“그, 그럼 안즈마네는요? 레나드는요? 우, 우리 부모님도 제 곁에 계시는 건가요?”
“그들 모두 네 곁에 있단다. 왜 운명을 수레바퀴라 표현하는지 아느냐? 영겁회귀(永劫回歸). 시간은 돌고 돌아 같은 삶을 반복하지. 형태는 달라질지언정 그 연이 끊기는 건…….”
벨라드의 말은 끝까지 이어지지 못했다. 포근한 신위가 사라지고, 그의 몸이 축 늘어졌다. 그에게 허락된 시간이 끝난 거다. 이제 벨라드는 아혼의 의식 깊숙한 곳으로 잠겼다. 아마 다시 만날 일은 없을 거다.
윤은 아혼을 바닥에 눕혔다. 아혼이 깨어나길 기다리며 생각을 정리했다. 머리가 뒤죽박죽 복잡했다.
-우우웅.
갑자기 문스톤 펜던트가 공명했다. 황제와 일전을 치를 때 모두 사용했다고 생각한 문스톤이 완전히 충전되어 있었다. 마치 자신이 가야할 길을 알리는 것처럼.
윤은 눈물을 흘릴 것 같은 얼굴로 펜던트를 붙잡았다.
3부 結
============================ 작품 후기 ============================
연참!
좀 짧습니다 ㅠ.ㅠ.....
이로서 3부가 끝나고 종장, 나의 전생 보고서가 시작될 예정입니다.
해피엔딩 걱정하시는 독자님들이 많아서 후딱 달려왔어요! 정말 해피엔딩 맞아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