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3화 (3/11)

2.

사람은 대단히 많았다. 선거를 앞두고 있어 더욱 그런지도 모르겠다. 인자한 웃음을 지으며 안쪽의 상석에 앉아 있는 아버지의 얼굴에는 불그레하게 취기가 올라오고 있었다.

건너편 테이블에 같은 항렬인 사촌, 육촌들과 앉아 있던 권기영은 세 잔까지만 더 드시면 그만 모시고 일어나야겠다고 생각했다. 정작 오늘 이 자리의 주인공인 조부는 피곤하다고 먼저 돌아간 지 오래였지만, 조부의 미수米壽를 축하하러 와 준 손님들은 거의 대부분이 남아 이야기를 나누며 얼굴들을 익히고 있었다. 그러나 불콰하게 취한 기색인 사람들이 하나씩 나오면서, 이제는 슬슬 파장할 기미가 보이고 있었다.

“요즘 정신없이 바쁘겠다? 선거 준비는 잘 돼 가고 있어?”

낯익은 얼굴들에게로 돌아다니며 인사를 나누는 사람들 속에서, 권기영의 옆자리가 비자 다른 테이블에 앉아 있던 사촌이 금세 다가와 앉았다. 중고교 동창이기도 한 동갑의 사촌은 친척들 가운데서도 권기영과 제법 가까운 편이었다.

“그럭저럭. 예상치 못한 사고만 안 터진다면 문제없을걸.”

“사고 칠 만한 놈은 먼 나라에 있으니까 걱정 없겠네. 기철이도 잘 지내고 있다지? 선거 끝날 때까지 들어오지 말라 그래.”

낄낄 웃으며 맥주잔을 당기던 사촌은, 말없이 그를 바라보는 권기영의 냉담한 시선을 받고는 뜨끔했는지 입을 다물었다. 그제야 권기영은 아무렇지 않게 “안 그래도 누나 결혼할 때에나 들어올 예정이야.”라고 대꾸했다.

아무리 머리 빈 멍청이라도 자신의 동생이다. 자신의 면전에서 가족을 비웃는 걸 두고 볼 생각은―농담이라는 허울 안에서라도 누구에게 우습게 보일 생각은―추호도 없었다. 눈치 빠른 사촌은 적당히 권기영의 눈치를 살피며 얼버무린다.

“어, 그래, 그러고 보니 연말에 기윤 누나 결혼한다고 그랬지. 그때 오랜만에 기철이도 얼굴 보겠네. 한참 못 봤는데 보고 싶다.”

“그러고 보니 너도 얼마 전에 상견례 했다면서. 누구야?”

“글쎄, 기억하려나? 고등학교 때 우리 반 부반장 했던 애.”

“그렇게 말하면 어떻게 알아.”

권기영이 혀를 차자 사촌은 그럴 줄 알았다는 듯 웃었다. 흥미를 두지 않은 사람에게는 철저히 무관심한 권기영의 성격을 그는 알고 있었다. 오죽하면 권기영과 함께 삼 년 동안 학급 일을 도맡아 하며―그들의 출신교는 삼 년 내도록 반이 바뀌지 않았다―몇 달쯤은 권기영과 꽤 깊이 사귀기도 했던 부반장도 마찬가지로, 예전에 동창회에 나갔다가 그 부반장을 마주친 사촌이 나중에 권기영에게 ‘그러고 보니 걔가 네 안부 묻더라.’라고 했더니 권기영은 ‘몰라, 누군지.’라고 대꾸했을 정도다. ‘왜 있잖아, 너랑 같이 학급위원 하면서 너랑 사귀기도 했던.’이라고 설명해 줘도 ‘관심 없어.’라는 냉랭한 대답이 돌아왔었다.

본인의 기준에서 기억할 만한 사람이 아니면 아예 머릿속에 담아 놓지를 않는 권기영에게, 사촌은 혀를 찼다.

“너도, 아무리 너랑 다시 볼 일 없는 사람이라 해도 적당히 주위에 관심은 좀 두고 살아라. 눈에 불을 켜고 너를 주시하는 인간들은 한둘이 아닌데. 네 뒷조사하는 놈들은 여전히 간간이 있나 보더라.”

“알 게 뭐야. 새삼스럽지도 않은데. 그래서, 넌 누구랑 결혼하는데.”

어차피 권기영이 권기영으로 태어난 이상 그에게 꼬투리라도 하나 없을까 캐 보는 인간들은 태산처럼 많았다. 일일이 신경 쓸 수도 없었고 그럴 필요도 없었다. 누가 무슨 꼬투리를 캐든 그들이 그것을 ‘치명적으로 써먹을’ 수는 없을 터였다. 사촌이 저런 이야기를 하는 걸 보니 또 누군가 권기영의 뒷조사라도 하는 모양이었지만 한두 번 있는 일도 아니고, 상관없었다.

“삼원물산 정용필 이사님 둘째 딸. 이러면 알겠지?”

사촌이 말하자 권기영은 그제야 아아, 하고 고개를 끄덕였다. 어떤 사람인지는 아는 바가 없었지만 그걸로 소개는 충분했다.

“결혼 날짜는 잡았어?”

“원래는 해 넘기기 전에 하려고 했는데 연말에 기윤 누나가 결혼하잖아. 그래서 내년 1월쯤으로 생각하고 있어. 설 지나기 전에.”

권기영은 그래, 하고 고개를 끄덕였다. 사촌은 맥주를 마시며 연회장 안쪽으로 시선을 돌렸다. 권기영의 아버지가 앉아 있는 테이블, 정확히는 거기에 머무르고 있는 남자에게로 시선을 준다.

권기영과 같은 테이블에 앉아 있던 김건준은 조금 전에 아버지에게 불려가, 친척 어른들에게 인사를 드리고 있었다. 그 옆에서는 누이도 곱게 웃으며 연신 고개를 숙이고 있었다. 나무랄 데 없는 예비부부의 정다운 모습이었다.

권기영은 냉담하게 그들을 보았다. 아까부터 그랬다. 김건준과 같은 테이블에 앉아 사람들과 더불어 이야기를 나누는 동안 의례적인 웃음을 지어 주긴 했지만 계속해서 뭔가가 걸리는 느낌이었다. 걸쩍지근하게 개운치 않은 기분.

뭘까. 뭔가 계속 걸리고 있었다. 그 기분은 얼마 전 짧은 여행을 갔다 온 뒤로 계속되고 있었다.

“저 남자가 기윤 누나 신랑감이라고? 어르신들 좋아하게 생겼다, 아주 허우대 멀끔한 게.”

사촌의 말에 권기영은 건성으로 응, 하고 대꾸하며 시선을 돌렸다. 턱을 문지르며 빤히 그를 바라보던 사촌은 미심쩍게 고개를 기웃거렸다.

“그런데 어째 좀 낯이 익다……?”

“경제지 같은 데서 한두 번쯤은 봤을걸. 기사가 제법 났다니까.”

“아니 그런 게 아니라, …….”

사촌은 석연찮게 중얼거렸다. 그러나 마땅한 기억이 떠오르지 않았는지 ‘그런가? 주간경제에서 봤었나?’ 하고 혼잣말처럼 중얼거리던 그는, 갑자기 “아,” 하고 탄성을 내뱉었다.

“기억났다. 타오다.”

손가락을 딱 부딪친 사촌은 신기하다는 눈으로 뚫어져라 김건준을 보았다. 흥미 없이 물잔을 들던 권기영은 난데없이 튀어나온 말에 눈살을 찌푸렸다.

“타오? ……이태원에 있는 거?”

“어, 거기. 그래, 거기서 봤었어.”

사촌은 혼잣말처럼 중얼거리며 김건준을 살폈다. 권기영도 그 시선을 쫓으며 입을 다문다.

타오라면 꽤 난잡하게 노는 클럽이다. 물 좋은 걸로도 유명하고 술 비싼 걸로도 유명한 그곳은, 또한 게이나 바이도 많이들 찾는 걸로 유명했다. 오히려 아예 이성애자보다는 바이가 더 많을 거라는 말도 돌 정도다.

그런 곳에 김건준이.

눈썰미만큼은 나무랄 데가 없는 사촌의 말이니, 틀리지는 않았을 터였다. 권기영도 몇 번 간 적 있고, 그런 곳에 드나드는 게 그리 흠잡을 일이 아니긴 했지만 뜻밖이다. 뜻밖을 넘어서, 저 반듯하고 다감해 보이는 남자가 그곳을 드나드는 그림이 선뜻 그려지지 않았다.

“정말이야?”

“음――, 인상이 많이 다르긴 하지만 맞는 것 같은데. 뭐 어두운 데서 봤으니까 틀렸을 수도 있긴 하지만. ……뭐 그런 데서 좀 놀아 봤다고 큰 흉은 아니잖아?”

먼저 권기영을 대신해 그의 매형감을 감싸 주는 사촌의 말을 흘려들으며, 권기영은 클럽 같은 곳은 가자고 해도 웃으면서 사양할 것만 같은 김건준을 바라보았다.

타오라고. 그곳에 드나드는 사람 중에 여자와, 동시에 남자와 자 보지 않은 사람은 청소부 아줌마밖에 없을 거라고 농담처럼 말하는 그곳에.

“…―.”

가슴속에 얼음물이 딱 한 방울, ――똑, 아주 높은 곳에서 떨어진 것 같았다.

“타오라……. 기윤 누나 결혼하기 전에 건강진단서는 확인하라고 해. 거기서 좀 논 거야 상관없지만 그래도 혹시 또 모르니까.”

사촌은 가볍게 말했다. 권기영도 남녀 가리지 않는 성벽이라는 걸 아는 탓에, 농담처럼 말하면서도 말투는 조심스럽다. 평소라면 농담도 적당히 가려서 하라고 싸늘하게 말해 주었을 테지만, 권기영은 건성으로 “시끄러워.”라고만 대꾸하고 생각에 잠겼다.

타오에 갔다고 해서 꼭 그 사람이 바이라는 법은 없다. 그 유명세 때문에 호기심에 찾아오는 일반인도 얼마든지 있다. 김건준이 그중 하나가 아니라고는 할 수 없었다.

그러나 어째서일까, 그 순간 권기영은 확신이 들었다. 김건준은 필경 남자와도 잘 수 있는 유의 인간이다.

앞에서는 저렇게 단정하고 반듯하게 굴면서 뒤에서는 그곳이라니. 하, 권기영은 헛웃음을 웃었다. 부뚜막 위에 찍힌 고양이 발자국을 찾아낸 기분이다. 그것은 비틀린 유쾌감이었다.

그때 김건준이 화장실이라도 가는지 그들에게 목례를 하고 자리에서 일어서더니 이쪽으로 다가오는 게 보였다. 걸어오는 동안에도 마주치는 사람들과 종종 인사를 하는 걸 보면 그새 얼굴들을 많이 익힌 모양이었다. 시간과 장소를 낭비하는 법이 없는 남자다.

문득 그의 시선이 권기영에게 멎었다. 옆에서 뭔가를 떠들어 대고 있는 사촌에게 건성으로 대꾸하며 그를 보고 있던 권기영과 눈이 마주친 그는 이내 빙긋이 눈초리를 접는다. 권기영이 혀를 차기에 앞서 그의 걸음이 테이블 앞에서 멎었다. 하필이면 바로 건너편에 자리도 하나 비어 있었다.

“재미있는 이야기라도 나누시던 중인가 보군요.”

김건준은 자연스럽게 자리에 앉으며 사촌을 보았다. 사촌은 천연덕스럽게 웃으며 처음 뵙겠습니다, 하고 인사를 건네었다.

“기윤 누나와 결혼하시면 제겐 종매형이 되시겠네요. 누나도 그렇지만 큰아버지도 상당히 눈이 높으신 분인데, 대단하세요. 두 관문을 다, 그렇게 단번에 통과하는 사람은 절대로 없을 거라고 생각했는데.”

장난스럽게 웃는 사촌에게 김건준은 웃으며 편하게 응대했다.

“저도 제게 나름대로 자부심은 있는 편이었지만 이렇게 대단한 분들을 많이 뵙다 보니까 자신감이 없어지고 있던 참인데, 말씀 감사합니다. 적잖이 위안이 되네요.”

“에이, 이제 형제처럼 지낼 사이인데 무슨 겸손을 그렇게……. 하긴 오늘 좀 딱딱한 어르신들이 많이 오긴 하셨죠? 그렇게 긴장하실 건 없고요.”

사촌은 새삼 주위를 둘러본다. 매스컴에 걸핏하면 나오는 인물도, 그런 인물들쯤은 손가락 하나로 부리는 인물도 여럿이다. 이런 자리가 그들에게는 일상적인 풍경이었지만 그렇지 않은 사람들도 헤아릴 수 없이 많다는 사실쯤은 알고 있다. 그런 기반 위에 올라서서 매우 너그럽게 이해의 웃음을 띠는 사촌의 옆에서 권기영은 코웃음 쳤다. 긴장. 이 남자가? 웃기는 말이다.

그런 내심의 코웃음을 알아차리기라도 한 것처럼 김건준의 시선이 권기영에게로 돌아왔다.

“사촌 간에 사이가 아주 좋으신 모양입니다. 기영 씨는 특히나 기찬 씨와는 멀리서 봐도 유난히 사이가 좋아 보이던데요. 즐겁게 이야기를 나누시는 모습이.”

이렇게 턱짓을 하며 허물없이 이름을 부르는 남자가 긴장이라고? 권기영은 웃었다. 긴장이나 당황이라는 말은 도무지 상상이 가지 않는 이 남자가 부뚜막 위에 남겨 놓은 발자국을 생각했다.

“예, 기찬이랑은 동갑인 데다 동창이기도 해서요. 예전에는 놀러도 곧잘 같이 다녔습니다. 아, 그렇지. 저도 타오에 종종 갔었어요. 요즘은 거의 못 갔는데, 거긴 여전한가요?”

대번에 정가운데를 파고드는 직구다. 외려 당혹스런 빛을 띠는 사촌 옆에서, 권기영은 웃는 얼굴 그대로 잠시 말없이, 웃음 띤 김건준을 마주 보았다.

……아하. 과연.

김건준의 입가에 서린 웃음이 어렴풋이 더 짙어지는 듯했다.

“네댓 달 전에 갔을 때까지는 여전했습니다. 그 이후로는 모르겠지만요. ―기찬 씨는 타오에 가끔 가시나 보죠?”

“아……, 그냥 닮은 분인가 싶었는데 맞았나 보네요. 긴가민가했었는데. 하하, 다음에 같이 가요. 아, 결혼하시기 전에요.”

짐짓 눈을 찡긋하며 농을 거는 사촌의 옆에서 권기영은 느긋하게 말을 거들었다.

“기찬이가 눈썰미가 워낙 좋아요. 그때와 인상이 많이 달라서 금방 못 알아봤다고는 하지만 말입니다.”

부뚜막 위에서는 지금과 퍽 다르게 구는 모양이다, 라고, 권기영은 그렇게 웃었다. 김건준은 그러나 낭패했다는 빛도, 이렇게 된 김에 그냥 터놓겠다는 기색도 없었다. 권기영이 보아 온 모습과 전혀 다르지 않은 얼굴로 웃을 뿐이었다.

“아아……. 아시겠지만 거기는 분위기가 좀 거치니까요. 기본적으로는 조용하고 부드러운 관계를 좋아하지만, 그렇게는 안 되는 상대라면 본의는 아니지만 상대에게 맞춰야죠.”

김건준은 그를 지그시 바라보는 권기영을 마주 보며 눈매를 휘었다. 뭘 이런 걸로 설마 당황이라도 할 줄 안 거냐고, 그렇게 말하기라도 하는 듯.

이것 봐라. ‘뻔뻔한 얼굴’조차 보이지 않으신다……?

권기영은 접시에서 과일 조각을 집어 들어 입에 넣으며 김건준에게 여상하게 말을 던졌다.

“남자랑도 잡니까?”

조금 전보다 긴 침묵이 테이블 위를 덮었다.

괜히 잔을 집어 들며 권기영에 이어 김건준을 살피는 사촌의 시선을 덮으며 김건준은, 이번에는 뜻밖의 물음이라는 듯 빤히 권기영을 보았다. 그린 듯한 웃음조차 잠시 지우고 권기영에게 똑바로 시선을 주는 그를 보며, 권기영은 얼마간 느꼈던 유쾌감이 씻은 듯 가시고 말았다.

‘짐짓’ 놀라 하는 그 얼굴 속에서, 김건준의 눈동자는 웃음을 띠고 있었다. 그것이야말로 이 남자의 진정한 웃음이다. 속을 알 수 없는, ――선뜩한.

“알아보고 싶으십니까?”

농담에는 농담으로 대꾸한다는 투로 김건준은 가볍게 웃었다. 눈가에 다시 돌아오는 부드러운 웃음을 눈으로 더듬으며, 권기영은 입안의 과일을 씹었다. 불쾌한 맛이 입안에서 욱하고 터진다.

이것은 명확하다.

몹시 부드럽고 정중한, ――이것은 도발이다.

“건준 씨.”

권기영이 막 입을 열었을 때였다. 한발 먼저 김건준의 이름을 부르는 소리가 앞질렀다. 저편에서 누이가 다가오고 있었다. 아버지가 부르신다며 다가오는 누이를 보면서, 권기영은 약간 열리는가 싶던 입술을 다시 다물었다.

“그럼 잠시 다녀오겠습니다.”

김건준은 선뜻 자리에서 일어섰다.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 걸음을 돌리는 그의 뒷모습이 멀어지는 걸 바라보며, 그제야 말없이 그들을 번갈아 보고만 있던 사촌이 가볍게 어깨를 으쓱하며 웃었다.

“은근히 만만찮은 남잔데. 농담도 농담으로 잘 받아치고. 큰아버지가 마음에 들어 하실 만해.”

권기영은 대꾸 없이 물로 입을 축였다. 쓴맛이 가시지 않았다.

농담이라. 그럴 리 없지. 이제야 알겠다.

놈은 자신을 도발하고 있었다. 무엇 때문에? 그건 알 수 없었다. 그러나 저 남자는, 분명 권기영의 뭔가를 끌어 올리려고 저 밑바닥에서부터 조금씩 뭔가를 갉작거리고 있었고, 거기에는 명확히 의도가 담겨 있었다.

왜.

기선 제압일지도 몰랐다. 저 남자도 남의 아래에 머리를 조아릴 수컷은 아니다. 권기영이 누구의 앞에서도 머리를 숙이지 않듯이.

그렇다면 앞으로 피치 못하게 얼굴을 마주쳐야만 하게 된 이상 권기영의 아랫사람으로 있을 생각은 없다고, 그는 자신의 자리를 우위에―최소한 대등한 위치에―놓으려 하는 건지도 몰랐다.

혹은, 다른 이유가 있다면.

“…….”

알 수 없다.

그러나 하나, 권기영이 분명하게 알고 있는 사실이 있다.

그는 한 번도 걸려 온 싸움을 피한 적이 없다는 사실이었다.

*

보고서에는 딱히 눈여겨볼 만한 게 없었다.

출신지, 출생과정, 가족사항, 교우관계, 사업내역 등. 한 사람의 신상을 낱낱이 훑어 낸 서류를 두어 번 거듭 훑어본 권기영은 그대로 테이블 위에 내던지고 말았다.

아버지도 누이에게 남자를 소개시켜 준 바에야 이런 조사쯤이야 했을 테니 예상은 했었다. 굳이 흠을 잡는다고 찾아보자면 고교 때 아버지를 여의어 현재 편모라는 점이나 사업상 폭력 조직과 긴밀한 친분을 맺고 있다는 정도인데, 이런 건 이 자체로만은 흠이라고 할 수도 없었다.

“왜 그렇게 험한 얼굴을 하고 있어? 이건 뭐야? 보고서? 김건준?”

화장실에서 돌아와 옆자리에 앉은 한신주가 권기영의 얼굴과 테이블 위의 종이를 번갈아 보더니 흥미롭게 종이를 집어 들었다. 그때 문이 열리며 음식들이 나오기 시작했고, 권기영은 종업원이 반주로 따라 주고 나간 술로 입술부터 축였다.

“흐응, 건준 씨, 성 회장님 쪽이랑 친했어? 거기 조직 중에서도 되게 살벌한 데라던데 그렇게 상냥한 얼굴로 무서운 데랑 손잡고 있네. ……그거 말곤 뭐, 별거 없잖아. 조사해서 돈만 버렸네.”

금세 흥미가 사라진 듯 보고서를 툭 던진 한신주는 젓가락을 집었다. 그리고 금요일 밤, 이미 밤 열 시가 넘어가는 뒤늦은 저녁 식사를 시작한다.

“그런데 건준 씨, 기영 씨랑 같은 고등학교 나온 거야? 보니까 기영 씨네 집 바로 근처에 있는 고등학교를 다녔다는 것 같던데. 어디……, 아, 잠깐만 다니다가 금방 지방으로 전학 갔구나.”

“우리 집 근처이긴 하지만 같은 고등학교는 아냐.”

권기영은 보고서를 뒤적이는 한신주에게 무심하게 대꾸했다. 그 부분은 권기영도 봤다. 중고교 시절에는 이웃한 동네에 살았었던 모양이다. 그렇다면 오며 가며 스쳐 지났을 수도 있겠다. 알 수 없이 낯익은 이유는 그래서인가, 그런 짐작도 해 보았다.

“많이 신경 쓰였나 봐, 이런 조사도 다 하고.”

“너에 대한 보고서 내용도 알려 줄까?”

눈웃음을 치며 눈짓을 하던 한신주가 웃음을 멈추었다. 고리눈으로 권기영을 노려보다가 “차라리 그 돈을 나한테 주고 물어보지 그랬어, 나보다 잘 아는 사람은 없는데.”라고 쌀쌀맞게 대꾸한다. “본인이 본인을 모르는 경우도 흔하거든.”이라는 대답을 듣고는 샐쭉하게 입을 다물고 만다.

권기영은 별달리 볼 것도 없었던 보고서를 가방에 집어넣었다.

저놈처럼 섹스 중독이니 하는 말로 점철된 것도 아닌 이런 내용의 보고서라면 김건준 본인의 입으로 들어도 되었을 뻔했다. 심지어는 폭력 조직과 긴밀하게 지낸다는 것도 스스로의 입으로 이미 말하지 않았던가. 바로 얼마 전에.

휴일 오후, 누이와 외출을 하기로 했다며 그가 누이를 데리러 왔었다. 아직 준비가 덜 된 누이가 방에서 부산을 떠는 동안 김건준은 뜰의 벤치에 앉아 그녀를 기다리다가 개를 산책시키고 돌아오던 권기영과 마주쳤다. 그때 마침 그 위험한 누군가와 통화를 하고 있던 중이었는지, 옆에서 얼핏 듣기에도 통화 내용이 수상쩍었다. 엿들을 생각은 없었지만 그가 이야기를 마칠 즈음에 그 앞을 지나치던 권기영에게, 전화를 끊은 김건준은 웃음 지었다.

‘법 외적인 문제에서 가끔 도움을 받곤 합니다. 그럴 일은 없는 편이 좋겠지만 혹시라도 기영 씨도 뭔가 곤란한 일이 생기시면 말씀해 주세요. 제가 도와드릴 수 있는 일이라면 뭐든 도와드리겠습니다.’

‘예……, 그럴 일은 없는 편이 좋겠지만요. 특히나 요즘 같은 시기에는 말입니다.’

그의 말을 그대로 따라서 대꾸하자 김건준은 웃었다. 없는 편이 좋죠, 하고 그도 고개를 주억거린다. 남의 귀에 들어가서 좋지는 않을 이야기를 들려줬음에도 김건준은 개의치 않는 눈치였고, 권기영도 상관하지 않았다. 폭력 조직과 우호적인 관계를 맺고 있다는 걸 흠으로 여길 만큼 순진했던 적은 없었다. 조직 가운데서도 규모가 크고 손 씀씀이가 독하기로 유명한 성 회장 쪽이 그 상대라는 것 정도나 의외라면 좀 의외일까.

그러나 언뜻 들은 전화 내용은 수상쩍기는 하나 그렇게까지 위험한 류는 아니었고, 또한 이 남자도 예비 장인이 선거를 앞두고 있는 이런 시기에 어리석을 짓을 할 만한 인간은 아닐 터였다.

‘잘생긴 녀석이군요.’

그렇게 말하며 벤치에 앉은 김건준은 권기영이 끌고 있던 도베르만의 머리를 툭툭 두드리듯 쓰다듬었다. 권기영은 잠시 사이를 두고 그 옆에 나란히 앉았다.

‘대단히 머리가 좋은 놈이기도 하지요. 지금도 보십시오. 가족이 아닌 사람은 따르지 않는 놈이, 건준 씨가 누나와 결혼할 거라는 이야기를 어디서 들은 모양이잖습니까.’

새끼 때부터 키운 지 이미 십여 년도 훨씬 지난 노견임에도 여전히 사납기 그지없는 놈이 김건준의 손아래 꿈쩍도 않고 앉아 있는 모습을 의외롭게 쳐다보며 권기영이 냉담한 투로 농담을 하자 김건준은 낮은 웃음을 터뜨렸다.

‘벌써 여러 번 봤으니까요.’

귀엽다는 듯 머리를 두어 번 툭툭 두드리곤 손을 거둔다. 하긴 권기영이 집 근처에서 누이와 함께 있던 그를 마주친 것만도 몇 번은 되니까, 권기영이 없는 사이에 몇 번 더 와서 낯을 익혔다 해도 이상할 건 없다. 이 사나운 놈이 이상할 만큼 얌전하게 있긴 하지만.

도베르만은 손길이 완전히 물러갔다는 걸 알았는지 선뜻 돌아섰다. 그리고 뜰 안쪽의 양지가에 엎드려 자고 있던 다른 개에게로 갔다. 몇 달 전부터 기르기 시작한 리트리버의 목덜미를 물며 등 뒤에 올라탄 놈은 낮게 목을 울리며 허리 짓을 하기 시작했다. 리트리버는 물린 목이 아픈지 몇 걸음 엉거주춤 걸어가면서도 놈을 떨쳐내지 못한다.

‘개는 서열 구분이 확실하군요.’

마운팅을 하는 개를 보며 김건준이 중얼거린 말에 권기영은 ‘짐승들이야 힘 말고는 견줄 게 없으니까, 더 약한 놈이 깔릴 수밖에 없죠.’라고 심상하게 대꾸했다.

짐승뿐 아니라 사람도 마찬가지다. 단순히 육체적인 힘만이 기준이 아닐 뿐 결국 약자는 강자에게 눌린다. 약자와 강자를 나누는 기준은, 저놈들도 그렇지만, 덩치만은 아니다.

이를테면, 그렇다, 다소 하드한 성향의 게이 클럽에라도 가면 금세 눈에 들어왔다. 우락부락하고 커다란 덩치가 자신의 반밖에 되지 않을 법한 몸집의 남자에게 어쩔 줄 몰라 하며 끌려다니는 모습도 어렵잖게 볼 수 있었다. 그럴 때마다 권기영은 허우대는 번드르르한 주제에 엉덩이나 내주고 있는 그런 놈들을 비웃곤 했다.

탑과 바텀을 나누는 것은 개인의 성향이겠지만 자신의 뜻과 상관없이 자신의 성향과는 다른 포지션을 취할 수밖에 없는 놈들도 있었다. 보다 강한 놈 앞에서 보다 약한 놈이 그랬다. 권기영에게 깔린 놈들 중에도 원래는 탑입네 하며 오만한 낯짝을 하고 다녔던 놈들이 몇이나 있었던 것이다.

‘약한 놈이라……, 그렇군요.’

김건준이 혼잣말처럼 중얼거렸다. 늘 그렇듯 담담한 웃음을 띠고 있는 그를 권기영은 흘끗 쳐다보았다.

이 남자는 어떨까. 온화하고 상냥해 보이는 이 남자는.

필경 그것만은 아닐 이 만만찮은 자는 속셈을 알 수 없었다. 적의도 아니다. 그런 음습한 위해가 아닌, 하지만 호의나 친밀감과도 거리가 먼 이 끈끈한 감각을 뭐라고 해야 할까.

그러나 생각을 달리해 보면, 이 남자가 어떠한 속셈이든 신경을 곤두세울 필요가 뭐가 있을까.

여태 권기영을 못마땅해 하거나 짓밟아 버리고 싶어 안달을 했던 놈들은 산더미보다도 많았다. 그중에는 제법 ‘수컷 같은 수컷’도 여럿이었다. 누구나 입 모아 ‘저 사람 대단하지’, ‘저 사람이야말로 진짜야’라고 말할 만한 자들, 그러나 그 누구도 권기영을 밟고 서지 못했다. 결국은 도리어 권기영의 발밑에 깔려 굴욕의 숨을 토해 낼 뿐이었다. 그리고 그것은 권기영에게 최고의 희열을 주었다.

그래, 이번에도 마찬가지다. 이 남자가 만만찮으면 만만찮을수록, 권기영을 짓누르려고 애쓰면 애쓸수록, 나중에 그가 맛볼 패배감은 더욱 클 테고 권기영이 맛볼 유쾌감도 그만큼 커질 터였다.

문득 가슴이 뛰었다.

권기영은 시선을 돌려 개들을 보면서도 머릿속으로는 이 남자가 얼마나 뛰어난 수컷인지 값을 매기며 그를 낱낱이 살폈다. 이미 머리에 새겨져 있는 그의 벗은 어깨며 팔, 가슴 따위를 천천히 훑어 내린다. 이 머릿속을 누이가 알면 새파랗게 질려 어쩔 줄을 모르겠지, 또 다른 종류의 비틀린 통쾌함이 스쳐 갔다.

그래. ……그래. ……그래.

이건 꽤, 제법, 괜찮지 않은가.

권기영은 새삼스럽게도 김건준의 머리끝부터 발끝까지를 짚어 보았다.

자신보다 몸집이 큰 남자는 취향이 아니었다. 가끔 잘난 척하는 면상을 뭉개 주려는 생각에 깔아 본 적이 있긴 하지만 즐기진 않았다.

하지만, 이 남자는 어떨까. 이 남자라면 과연 어떤 섹스를 할까. 여자가 아닌 남자를 상대로 한다면.

저렇듯 건장한 몸에 시선이 간 건 처음이라 자신의 머릿속에 떠오른 생각이 뜻밖이긴 했지만 스스로를 부정한 적이라곤 없었던 권기영은 선뜻 인정했다. 저런 남자를 깔아 보는 건 어쩌면 몹시 유쾌한 일일지도 모르겠다고 그는 생각하고 있었다.

“그런데 그런 것까지 조사하면서, 뭐 잊은 거 없어?”

생각에 잠겨 있던 권기영은 눈앞에서 약속을 재촉하는 한신주를 물끄러미 내려다보았다. 역시나 가볍게 깔고 즐기기 좋겠다 싶은 몸은 이렇게 적당한 체구의 늘씬한 몸이지만…….

한신주가 테이블 아래로 손을 뻗었다. 권기영의 사타구니를 손가락으로 미묘하게 터치하는 그를 냉정하게 내려다보며 권기영은 코웃음 쳤다.

“배고프다고 성화를 부리더니, 고픈 게 그쪽 배였나?”

“아까는 분명히 음식 배가 고팠지. 점심때부터 바빠서 아무것도 못 먹었거든.”

한신주는 얄밉다는 듯 손등으로 사타구니를 꾹 눌렀다. 반쯤 접시를 비워 적당히 배가 차기 무섭게 식사도 뒷전으로 돌리고 욕구를 앞세우는 그가 테이블 아래로 고개를 숙이며 퍼스너를 내렸다.

“그래서, 언제 데려가 줄 거야? 원래는 내 생일 때 가기로 했었잖아. 벌써 한참 지났는데. 잊어버린 건 아니지?”

한신주가 잊은 거 없냐고 재촉하며 치근거릴 때부터 그 이야기일 줄 알았다. 권기영은 요전에 했었던 약속을 떠올렸다. 뒤로 은밀히 수소문해 알아보고 손을 쓰지 않으면 들어갈 수 없는 클럽. 일을 뒤로 미루지 않는 성격 탓에 이미 알아 두어 언제든 가려면 갈 수 있었지만, 하드코어한 성향의 게이 클럽은 권기영의 취향이 아니라 딱히 흥미가 생기지 않아 그새 잊어버리고 있었다.

“안 잊어버렸어. 알아 뒀어.”

“정말? 그럼 언제 갈까, 응? 언제쯤?”

속옷 밖으로 끌어낸 권기영의 성기를 삼키는 기척에 목소리가 띄엄띄엄 가로막혔지만, 그 목소리에는 대번에 화색이 감돌았다.

권기영의 구둣발에 자신의 사타구니를 문지르며 제풀에 흥분해 끙끙거리기 시작하는 한신주를, 권기영은 경멸 섞인 눈으로 내려다보면서 그렇지……, 하고 생각했다.

그래. 오랜만에 색다른 곳에 가서 색다른 성향으로 한번 즐겨 보는 것도 나쁘진 않겠다. 건장하고 늠름한 놈이 엉덩이를 흔들며 좋다고 교성을 질러 대는 꼴도 의외로 봐 줄 만할지 또 누가 알겠는가.

그런 생각을 하는 사이에 아랫도리가 묵직해졌다. 귄기영은 젓가락을 내려놓았다. 테이블 아래로 손을 뻗어 한신주의 머리를 움켜쥐고서 거칠게 끌어당기자, 불시에 목구멍을 찔린 한신주가 숨을 삼키는 기척이 들려왔다. 이 세우지 마, 낮게 중얼거린 권기영은 한신주의 머리를 깊숙이 당기며 흔들었다.

괴로운 듯한 외마디 소리를 내며 헐떡이던 한신주가 꿀꺽, 목울대를 울린 것은 그리 오래 지나지 않아서였다.

“실컷 마셨으면 밥이나 마저 먹어.”

꿀꺽, 꿀꺽, 목울대를 울리는 사이사이 몇 번이나 콜록거리는 한신주의 입에서 적당히 가라앉은 자신의 성기를 끌어내며, 권기영은 자신의 구둣발에 문질러 대던 한신주의 성기를 지그시 밟았다. 자신의 욕구는 해소하지 못한 한신주가 불만스러운 신음을 흘렸지만, 그 신음은 권기영의 이어진 말에 멈추었다.

“밥 먹고 나서 데려가 줄 테니까. 너 같은 갈보가 거기서 실컷 즐기려면 배부터 채워 두는 게 좋지 않겠어?”

“진짜? 오늘 간다고?”

한신주는 당장 테이블 아래에서 고개를 내밀며 권기영을 올려다보았다. 소풍을 앞둔 어린애처럼 환해진 얼굴은 벌써부터 기대로 들떠 달아오르고 있었다.

권기영은 한신주에게서 시선을 거두어 다시 젓가락을 들었다.

예정에 없던 일이긴 하지만, 오늘밤은 어차피 이대로 한신주와 호텔에라도 갈 생각이었다. 그 예정이 다소 바뀐다 한들 별다를 것도 없다.

권기영은 원하는 때에 언제든 자신의 이름을 대고 가도 좋지만 가기 전에 미리 전화는 해 둬야 한다고 했던 친구의 말을 떠올리고 전화를 꺼내었다.

색다르게 놀아 보기에 좋은 밤이었다.

*

클럽의 전실前室에서 단정한 제복을 차려입은 남자가 건네주는 물건을 보고 권기영은 실소를 흘렸다. 신축성이 좋은 재질로 된 까만 후드. 머리 전체에 덮어쓰는 그 후드에서 개방되어 있는 곳은 입술과 귀 부분뿐이었다. 망사로 처리되어 있는 눈 쪽도 바깥에서는 형태를 알아볼 수 없었다.

“강도질을 하는 놈들이 복면 대신 쓰면 딱이겠군.”

권기영이 비웃자 제복을 입은 남자는 가면을 쓴 것처럼 표정 하나 바꾸지 않고 웃었다.

“강도질을 하는 것보다 이쪽 성향이 있다는 걸 더욱 꺼려하는 분들도 많이 계시니까요.”

“그래서 누가 누군지 못 알아보도록 이걸 뒤집어쓰고 다니라? 흥……, 제 애비랑 붙어먹어도 모르겠군. 아니지, 목소리를 들으면 친한 사람은 알겠어.”

“원하신다면 일정한 시간 동안 음성이 바뀌는 약제도 제공해 드립니다. 장기적으로 성대에 손상을 줄 수도 있는 성분이기 때문에 권해 드리지는 않습니다만, 그래도 굳이 원하신다면요.”

천연덕스럽게 대꾸하는 남자를 어이없이 바라보며 권기영은 손을 저었다. 누가 알아봐도 별로 상관없었지만 후드 착용이 규칙이라고 남자가 딱 잘라 말했다. 그 외에 걸칠 수 있는 것은 속옷, 혹은 일체 주머니류가 달리지 않은 얇고 몸에 붙는 옷뿐. 위험한 물건의 반입을 금지하기 위해서라고 하며, 옷의 재질은 가죽이든 망사든 누드든 자유라고 덧붙이는 말에 권기영은 다시 한번 실소를 흘리고 말았다.

그나마 최소한의 신분 표시로 후드 측면에 임의로 이름을 표기하도록 되어 있어, 권기영은 무성의하게 KK라고 적어 넣었다. 그 옆에서 한신주가 상기된 얼굴로 HanS라고 적더니 금세 후드를 뒤집어쓴다.

“생각보다 편한데? 별로 답답하지도 않고. 그럼 들어가 봐도 돼요?”

뒷말은 제복의 남자에게 한 말이었다. 남자는 웃는 얼굴 그대로 고개를 끄덕이며 권기영마저 후드를 쓰기를 기다려 전실 안쪽을 시커멓게 가로막고 있던 문을 열어 주었다. “탈의실은 문 바로 오른쪽 옆입니다. 즐거운 시간 보내시길.”, 남자의 정중한 목소리와 함께 안으로 들어선 두 사람의 등 뒤로 문이 도로 닫혔다.

문 안에서, 권기영은 세 번째로 실소를 흘리고 말았다. 어둑한 데다 제법 넓어서 한눈에 알아볼 수는 없었지만 구조 자체는 여느 클럽과 비슷해 보이는 실내에는, 당연하게도, 온통 후드를 쓴 사람들만 돌아다니고 있었다. 얼굴도 드러내지 못할 짓을 즐기겠다고 몰래들 와 있는 꼴들이 우스워 코웃음을 치고 만다.

“기영 씨……, 나……, 응?”

탈의실에서 미리 마련되어 있던 무릎길이의 트렁크스만 알몸 위에 걸치고 나온 한신주는―따로 원하는 복장이 있으면 가져와도 된다고 했다―, 어둑한 실내를 돌아보곤 군침을 삼키며 권기영의 허벅지에 이미 잔뜩 발기해 있는 자신의 사타구니를 문질렀다. 권기영은 그런 한신주를 냉랭하게 밀어내었다.

“여기서 나한테 엉겨 붙지 말라고 말했었지. 알아서 놀다 와.”

단호하게 말하는 권기영을 아쉽게 쳐다보던 한신주는, 더 끈질기게 졸라 보기엔 당장 아랫도리에 들어찬 욕구가 급급한지 이내 어디론가 사라졌다. 저 상태라면 누구든 처음 수작을 거는 놈에게 당장 다리를 벌리겠군, 아니 수작을 걸지 않아도 처음 마주치는 놈 아무에게나 엉덩이를 들이대겠어, 권기영은 경멸스럽게 한신주를 쳐다보다 코웃음을 치며 고개를 돌렸다.

그러나 과연, 한신주가 저렇게 달아오를 만도 했다.

후드를 쓰지 않는다 해도 얼굴을 자세히 알아보기는 힘들 만큼 어둑어둑한 실내 곳곳에서는 난잡하고 변태적인 성교가 거리낌 없이 벌어지고 있었다. 이곳을 알려 준 친구에게 미리 들은 바가 있어서 크게 놀라진 않았지만, 이 정도면 어지간히 놀아났다 하는 사람이라도 질려 버릴 성싶었다. 심지어는 더욱 하드하게 마음껏 즐기고 싶으면 안쪽에 늘어서 있는 방을 이용하라고 전실에 있던 남자가 말했었으니, 이 홀에서 벌어지고 있는 관계는 그나마 온건한 편일 터였다.

권기영은 그들을 둘러보다가 냉소하고 만다.

머리를 덮어쓴 후드로 그들이 가린 것은 얼굴이 아니다. 인격이었다. 자신의 내부에 존재하고 있지만 바깥에서는―때로는 자신의 배우자에게도―결코 드러낼 수 없는 짐승 같은 행위에 대한 원망願望이 이곳에서 거침없이 표출되고 있었고, 그러한 행위들에 대해 아무도 뭐라고 하지 않았다. 여기에서는 어떠한 짓도 터부가 아니었다.

지나치게 하드한 행위는 권기영의 취향이 아니었고 별로 즐기지도 않았지만, 그 공간을 감싸고 있는 야릇한 열기에 이끌려 몸은 가볍게 흥분한 상태였다. 누구든 적당한 상대를 찾아 박아 넣어 볼까, 그런 생각을 하며 그는 천천히 주위를 둘러보며 걸음을 옮겼다.

얼마간 돌아다녀 보아도 딱히 이렇다 싶게 마음에 차는 몸이 눈에 들어오지 않아 걸음을 늦추었을 때, 문득 익숙한 목소리가 들렸다. 한신주다. 그새 누군가를 찾아 그 속에 섞인 모양이었다. 그럴 줄은 알고 있었지만 빠르기도 하다.

권기영이 시선을 돌리자 한신주가 홀 한쪽 구석에 놓인 널따란 소파에 누워 울부짖고 있었다. 그러나 그 울부짖는 소리는 그의 머리를 짓누르고 있는 낯선 남자의 성기에 틀어 막혀 중간중간 끊어졌다. 입만이 아니라 사타구니에도 다른 남자가 자리 잡고서 우악스럽게 허리를 들이밀고 있다가 이제 막 절정을 맞은 듯 움직임을 멈추는 참이었다.

배려라고는 엿볼 수 없는 거친 몸짓으로 한신주의 입에 성기를 밀어 넣고 있던 남자도 금방 사정을 했는지 얼굴 위에서 비켰다. 한신주는 흐느끼며 몇 번이나 목울대를 넘겼다.

“맛있게 잘도 마시네. 아주 좋아 죽잖아. 왜, 아직 부족해? 뭐? 안 들려. 그렇게 고개만 저어 봤자 무슨 말을 하는지 모르겠다고. 야, 이놈 부족한가 보다. 그거나 넣고 흔들어 줘.”

두 남자는 서로 아는 사이인 듯했다. 위쪽에 있던 남자가 킬킬거리며 아래쪽 남자에게 고갯짓을 한다. 아래쪽 남자도 비슷하게 웃더니, 옆의 테이블에서 뭔가를 집어 들었다. 보는 것만으로도 소름이 끼칠 만큼 그로테스크하게 생긴 거대한 딜도였다. 한신주의 눈앞에 대고 장난치듯이 흔들어 주자 한신주는 눈을 홉뜨며 뻣뻣하게 굳어 버렸다.

거의 울음을 터뜨리다시피 흐느끼며 버둥거렸지만 소용없었다. 아래 남자는 막 방금까지 자신이 들어가 있던 한신주의 다리 사이로 그 물건을 사정없이 밀어 넣었다. 워낙 커서 한 번에 들어가지 않는 듯 두 번, 세 번에 걸쳐 쑤셔 박자 비명에 가까운 울음이 터져 나왔다. 남자들이 킬킬거리는 소리가 섞인다.

도와줘야 할까, 그들에게서 약간 떨어진 곳에서 팔짱을 끼고 바라보고 있던 권기영은, 그러나 이내 그만두기로 했다. 정신없이 울부짖는 한신주의 목소리에 쾌락이 스미기 시작한 걸 알아차린 탓이다. 처음에는 정말로 고통스러워서 울었는지 몰라도, 적어도 지금은 아니다. 심지어 꼿꼿이 발기해 하얀 방울을 뚝뚝 떨어뜨리는 성기 아래로, 한신주는 엉덩이를 움찔거리며 허리를 흔들기 시작하고 있었다. 하기야 원래 그런 놈이었다.

권기영은 혀를 차며 걸음을 돌렸다. 이런 것도 들은 대로다. 합의가 된 관계만큼이나 강제적인 관계도 흔히 일어난다고, 외부의 그 어떤 권위도 섞여들 수 없이 오로지 육체적인 힘의 원리만이―그것이 실제적인 완력이든 혹은 섹스어필의 매력이든―존재하는 곳이라고 했다.

권기영이 한신주에게서 고개를 돌릴 때였다. 한 남자가 그 앞에서 느릿하게 웃으며 권기영을 보고 있었다.

“처음 온 놈이 상대도 안 가리고 막 덤비면 저 꼴이 된다니까. 당신도 처음 온 것 같은데……?”

권기영을 머리에서 발끝까지 노골적으로 훑는 남자에게, 권기영은 짧은 시선을 주었다. 그대로 “비켜.”라고 냉담하게 중얼거리며 남자의 옆을 스쳐 지난다. 그러나 몇 걸음 떼기도 전에 뒤에서 남자가 권기영의 어깨를 움켜쥐었다.

“이봐, 어떤 놈을 찾아? 말해 봐. 내가 도와줄 수 있을지도 모르잖아? 그런데 너, 박히는 건 좋아해?”

“관심 없어.”

권기영은 귓가에 얼굴을 대며 중얼거리는 남자를 뿌리쳤다. 그러나 남자는 순순히 물러나지 않았다. 도리어 더 바싹 붙으며 입술로 귓불을 잘근거린다.

“튕기는 것도 맛깔스러운데. 아직 한 번도 안 박혀 봤어? 그럼 오늘 내가 정신 못 차리게 박아 줄게, 이 건방진 새끼야.”

거친 웃음과 동시에 남자가 권기영의 옆구리로 주먹을 휘둘렀다. 그러나 그 주먹이 옆구리를 파고들기 직전 권기영은 놈의 손목을 후려갈겨 떨쳐내었다. 동시에 남자의 얼굴에 주먹을 질러 넣었다. 남자가 비명을 지르며 바닥에 무릎을 꿇고 쓰러진다.

“그 낯짝에 정신 못 차리게 주먹을 박아 줄까?”

느릿하게 비웃은 권기영은 얼굴을 감싸 쥐고 있는 남자의 머리칼을 움켜쥐고 확 잡아당겨, 후드 아래로 피가 흘러나오는 얼굴에 한 번 더 주먹질을 했다. 완전히 기력을 상실한 남자가 웅크리고 소리만 지른다.

천천히 손목을 털어내려 비딱하게 남자를 내려다보던 권기영은 근처에 뒹굴고 있던 딜도를 발견하고 그것을 집어 들었다.

“그렇게 박고 싶으면 네 구멍에나 박아, 병신아.”

움츠리고 있던 남자의 배를 걷어찬 뒤, 비명을 지르며 웅크린 그의 항문에 딜도를 대고 주먹으로 망치질하듯 박아 넣는다. 남자가 고통에 찬 고함을 질렀다.

권기영은 비웃음이 어린 눈으로 남자를 내려다보곤 걸음을 돌렸다. 그러면서 생각한다. 과연, 이렇게나 노골적이면 차라리 알기 편하다. 약한 놈에게는 선택의 여지도 없다는 거지.

차라리 그러면 권기영으로서는 편했다. 눈에 들어오는 놈이 있으면, 놈이 원하든 말든 내 마음대로 하면 그만이다. 얼굴과 함께 인격을 덮어 버리는 곳이란 그런 거였다.

강간은 내 취향이 아니긴 하지만, 하고 고개를 돌리던 때였다. 몇 미터 떨어지지 않은 자리에 앉아 있던 남자가 눈에 들어왔다.

언제부터 거기 있었을까. 한 손에는 맥주캔을 들고, 마치 구경이라도 하는 것처럼 권기영을 쳐다보면서 그 남자는 웃고 있었다. 후드 아래로 드러난 모양 좋은 입술이 부드럽게 휘어져 있다.

“…―.”

권기영은 걸음을 멈추었다.

눈이 마주쳤다. 보이지 않아도 알 수 있었다.

그 자리에 멈춰 서서 똑바로 그를 바라보는 권기영의 시선을 고스란히 맞받으며 맥주캔을 딴 남자는, 부글거리며 흘러나오는 거품으로 빙글거리는 입술을 축였다.

“안녕.”

인사는 지나치게 정석적이라 오히려 뜻밖이라는 기분이 들었다. 권기영은 눈썹을 치켜올렸지만 순순히 “안녕.” 하고 대꾸해 준다. 남자가 웃으며 일어서 권기영을 향해 천천히 걸어왔다. 그리고 권기영은 위는 나신에 아래는 가죽바지를 걸친 그 남자를 훑어보았다.

널찍하게 벌어진 어깨. 절로 시선을 빼앗길 만큼 단단하게 근육이 잡힌 가슴과 배. 굵으나 날렵한 팔. 그리고 틀림없이 그 아래로는 아무것도 입지 않았을 가죽바지 너머로 선명하게 불거져 드러난, 아주 약간 오른쪽으로 굵직하게 휘어 있는 성기. 마지막으로 어지간한 초식짐승 따위는 한달음에 따라잡을 듯한 억센 다리까지.

이 남자다. 권기영은 생각했다.

이것이, 자신의 평소 취향에서는 동떨어져 있음에도 막연하게 맛보고 싶다고 생각했던, 바로 그 몸이었다. 달리 둘러볼 것도 없었다. 남자를 주욱 훑어 내린 시선을 다시 끌어올리기도 전에 이미 심장이 뜨끈하게 고동을 높이며 이 남자라고 외치고 있었으니까.

마찬가지의 시선으로 권기영을 훑어보았을 남자는, 그 탐색 끝에 무엇을 보았는지 흠?, 하고 재미있다는 듯 입술을 당겼다.

“KK라. 유쾌한 우연이군. 당신 이름이야?”

쇳소리가 섞일 정도로 낮게 쉰 목소리였다. 권기영은 반사적으로 그의 후드로 눈길을 주었다. 그의 후드에 적혀 있는 글자도 KK였다.

“아하……, 그래, 재미있는 우연인데.”

권기영도 웃었다. 그리고 그 순간 정확하게 직감했다. 이 남자는 ‘넘어온다’.

서서히 흥분이 일었다. 남자 역시 비슷한 생각인지 빙글거리는 얼굴로 권기영을 빤히 쳐다보며 맥주를 홀짝인다. 그러다가 드디어, 권기영에게 손을 내밀었다.

“마실래?”

권기영은 그가 내민 맥주캔을 보았다. 마실래, 말래. ――잘 거야, 말 거야. 권기영은 맥주캔을 내려다보다가 피식 웃었다. 하필 그 맥주조차도 권기영이 즐기는 기네스였다.

권기영은 맥주를 주욱 들이켜곤 나머지를 남자에게 도로 건넸다. 남자도 웃으며 그 나머지를 단숨에 마시더니, 빈 캔을 우그러뜨려 아무렇게나 팽개쳤다. 그리고 미묘하게 입술을 비튼다.

“시간 끄는 거 좋아해?”

“아니. 시간 낭비는 좋아하지 않아. 그쪽이야말로 질질 시간 끄는 걸 좋아하는 모양이지.”

“천만에. 나도 시간 낭비는 질색이야. 하지만, 그렇지, 공들이는 건 좋아해. 시간이 좀 걸리더라도 공을 들이면 그만큼 내 손에 떨어졌을 때의 맛이 더 각별하거든.”

“그러다 닭 쫓던 개 지붕 쳐다보게 되면?”

권기영이 비웃듯 말하자 남자는 웃었다. 천만에, 고개를 젓는다.

“내 손에 떨어질 게 아니면 공도 들이지 않지. 하지만 일단 공을 들이기 시작하면 내 손에 넣어.”

이미 당연하게 결정되어 있는 일을 두고 말하는 듯 단호했지만, 그럼에도 대수롭잖은 양 가볍게 빙글거리는 말.

권기영은 언뜻 눈썹을 치켜올렸다가 픽 입술을 틀어 올렸다. 유쾌해졌다. 가슴이 술렁거리며 고양된다. 일상 속에 당연하게 차 있는 이 자신감이라니.

이런 놈이 좋았다. 자신만만한 놈이 좋았다. 그래봐야 결국 꼬리를 내리고 말 잘난 수컷은 늘 권기영에게 일그러진 유쾌함을 안겨 주었다.

“그래……, 그래서? 탑 무너질 때까지 공만 들일 셈인가?”

권기영은 소파등받이에 엉덩이를 걸치며 느리게 말꼬리를 올렸다. 남자의 입술이 대답 대신 매력적으로 휘어 올라갔다.

벌집처럼 줄지어 늘어선 방들은 방음이 형편없었다. 비어 있는 방으로 들어가 문을 닫았음에도 어느 건너에선지 죽을 것같이 헐떡거리며 짐승 같은 신음을 질러 대는 소리가 여럿 겹쳐 넘어왔다. 벽 바로 너머에서는 질퍽거리는 소리까지 고스란히 들린다.

“여기선 보통들 이렇게 노나?”

권기영은 방에 들어오자마자 무늬 없이 흰 천을 씌워 놓은 침대, 칸마다 딜도나 가죽끈, 애널피스 따위가 놓여 있는 선반을 무심하게 둘러보며 말했다.

여기로 오는 동안 보란 듯이 문을 열어 놓은 방들을 스쳐 오면서 본 그 안의 광경들은 대부분이 소위 ‘정상적’인 범위를 넘어서고 있었다. 지금은 질퍽거리는 소리만 들리는 옆방에서는 막 방금 전, 침대에 입 막혀 묶인 채 아랫배를 팽팽하게 부풀린 남자의 항문에서 관장용 주사기를 뽑아낸 다른 남자가 그 대신 거기에 커다란 딜도를 막 꽂아 넣고 있던 참이었다.

질퍽거리는 소리에 키득거리는 웃음소리, 비명 같은 신음 따위가 섞여 들려오는 벽을 흘끔 못마땅하게 쳐다보는 권기영을 보고, 남자는 웃었다.

“이렇게 놀러 오는 놈이 반이고, 이렇게 놀러 오는 놈을 구경하러 오는 놈이 반쯤.”

“너는?”

나?, 하고 남자가 미묘하게 웃었다. 뼈라도 바스러뜨릴 듯 단단해 보이는 이가 드러난다.

“후자였지. 여태까지는.”

여기에서 말을 건 건 당신이 처음이야, 남자가 나른하게 속삭이며 권기영에게 입을 맞추었다. 코웃음을 친 권기영은 너그럽게 입을 벌려 준다. 벌리자마자, 남자의 혀가 물컹하게 밀려 들어왔다. 그 순간 ‘허?’ 하고 권기영은 눈썹을 치켜올렸다. 제법 잘하는데, 순식간에 가슴속을 달구는 감각에 권기영은 감탄과 놀람을 반쯤 섞어 생각했다.

과연, 그래, 처음으로 말을 건 게 당신이니 영광이라고 생각하라는 뉘앙스로 말할 만한 솜씨는 있다는 거지, 권기영은 찡그린 웃음을 웃었다. 그러나 그 웃음도 이내 사라지고 만다.

어깨와 허리를 거센 손길로 느리게 쓰다듬는 남자와 마찬가지로, 권기영도 남자를 부둥켜안았다. 마음에 들었다. 마음에 들었다는 생각조차 의식 위로 떠오르지 않을 정도로 금방 몸에 불이 붙었다. 입맞춤도, 은근하게 살갗 위를 쓰다듬는 애무도, 어느새 사타구니를 맞대고 비비는 가죽바지 너머로 생생하게 느껴지는 욕망도, 단숨에 권기영의 욕망을 자극했다.

연체동물처럼 끈끈하고 물컹하게 권기영의 혀를 비비며 얽는 남자의 혀가 이윽고 떨어져 나갔다. 입술을 길게 핥으며 떨어지는 혀에서 길고 가늘게 타액이 늘어지다 끊겼다. 남자가 웃으며 느리게 자신의 입술을 한번 핥았다.

“잘하는데.”

탁해진 목소리로 속삭인 권기영은 남자의 사타구니를 자신의 사타구니로 가볍게 툭 두드렸다. 단단하게 부풀기 시작한 두 성기가 서로의 발기를 느끼고 떨어졌다.

“그쪽이야말로. 밥 먹고 그 짓만 한 것 같아. 혀 놀리는 게 말이야…….”

남자 역시 낮아진 목소리로 속삭이며 권기영의 입술을 쓰다듬었다. 느릿하게 입술 위를 긋는 그의 손가락을 툭툭 혀로 두드려 주자 남자는 낮게 웃었다. 흥분이 스민 웃음과 함께, 남자도 사타구니를 권기영에게 비볐다.

탐색은 이만하면 됐다. 권기영은 남자와 마주친 시선에서 그 뜻을 읽었다. 남자도 마찬가지로 권기영의 시선을 읽었으리라는 생각이 머리를 스친 순간, 유쾌해졌다. 몸 놀리는 솜씨도 좋아 보이고, 눈치도 빠르고, 심지어 몸까지 몹시 회가 동하고 있었다. 이렇게 완벽할 수는 없었다.

“너 말이야, 하드캔디바 좋아해?”

권기영이 촌스러운 말장난을 막 꺼내며 남자의 불룩한 사타구니를 움켜쥐었을 때였다. 권기영의 입술을 빨며 머리카락을 그러쥔 남자가 한 발 먼저 입을 열었다.

“빠는 솜씨도 아주 그만이겠어. ――빨아 봐.”

권기영은 얼굴에서 웃음을 지웠다. 머리카락을 그러쥐고 부드럽게 문지르면서도 놓지는 않는 남자의 커다란 손은, 그대로 권기영의 머리를 움켜쥐고 살며시 아래로 당기고 있었다.

권기영은 대번에 언짢은 기색을 드러내며 남자의 손을 움켜쥐고 걷어 내었다.

“웃기지 마. 나는 한 번도 다른 놈 물건을 빨아 준 적이 없어.”

사내놈 물건을 입에 물라고? 웃기지도 않는 소리다.

“네가 빨아. 그거라면 허락해 주지.”

권기영은 침대 위에 다리를 벌리고 편하게 앉으며 고갯짓했다. 묵묵히 자신을 내려다보는 남자의 표정이 보이지 않아, 이건 좀 불편하다고 생각했다. 하는 짓이나 느낌으로 봐서는 바텀 쪽을 즐길 것 같지는 않은 남자다. 만일 놈이 어떻게든 권기영을 깔겠다고 덤빈다면――권기영이 깔 따름이다.

원래라면 서로 뜻이 안 맞으면 그냥 깔끔하게 바이바이 했을 테지만, 이놈은 마음에 들었다. 선뜻 보내기는 아쉬울 정도로 욕심이 생겨 아랫도리도 묵직하게 힘을 받고 있었다.

권기영을 내려다보던 남자가 나직이 웃는 기척이 났다.

“허락해 줘서 고맙군.”

남자는 뜻밖에 순순히 무릎을 꿇었다. 권기영의 다리 사이에 자리 잡고 앉아 퍼스너를 내린 그는 서슴없이 사타구니에 고개를 묻었다.

“…―.”

권기영은 낮은 숨을 흘리며 남자를 내려다보았다. 손이 저절로 남자의 뒤통수를 움켜쥐었다. 성기를 통째로 집어삼킬 듯 세게 빨아들이며 우물거리는 솜씨가 보통이 아니었다.

축축하게 젖은 소리를 여과 없이 들려주는 입술이 번들거렸다. 권기영은 자신의 앞에 무릎 꿇고 앉아 성기를 집어삼키고 있는 건장한 남자를 내려다보며, 점점 거칠어지는 숨을 내쉬었다.

좋다. 나쁘지 않아. 이런 것도 꽤 기분이 괜찮았다.

능숙하게 성기와 주변을 핥고 빠는 남자의 봉사를 받는 몸과, 강한 수컷을 발아래 무릎 꿇리고 있다는 기분이 동시에 고양되어 갔다. 권기영은 다리를 뻗어 남자의 사타구니에 발을 올렸다. 바지 아래로 단단하게 일어선 놈의 성기가 느껴졌다. 발끝으로 퍼스너를 내리자, 그 안에서 굵게 솟은 성기가 툭 불거져 나왔다.

“제법……, 훌륭한데, 응?”

남자의 저 건장한 체격과 비례하는 수준을 훌쩍 넘어서는 거근을 보고, 권기영은 눈썹을 치켜올렸다. 남성성으로는 타인에게 뒤진다는 생각을 해 본 적이 없는 권기영보다도 눈에 띄게 큰 물건을 보고 일순 본능적으로 기분이 상했지만, 그러나 곧 ‘그래 봤자 박힐 놈’ 하고 생각하며 코웃음 쳤다.

“엉덩이도 이 정도는 되겠지?”

엄지발가락으로 남자의 성기를 쓸어내려 바지까지 허벅지 아래로 내려 버리곤, 성기 아래를 발톱으로 슬슬 긁었다. 권기영에게 그랬더라면 단번에 상대의 면상을 후려갈겼을 테지만, 남자는 권기영의 성기를 우물거리며 피식 웃을 뿐이었다. 오히려 더 해 보라는 듯 다리를 더 벌리는 남자를 내려다보며, 권기영은 ‘뜻밖에 이놈 바텀 쪽이었나’ 하고 의외라고 생각했다. 느낌으로는 아니라고 생각했는데.

권기영이 발끝으로 남자의 성기며 고환, 그 주위를 툭툭 건드리는 동안, 남자의 구음도 점점 격해졌다. 남자의 손이 뿌리 부분을 쥐고 훑어 올릴 때마다 탁, 탁, 탁, 탁, 살이 빠르게 부딪친다.

이윽고, 권기영이 사정했다. 남자의 머리를 자신의 사타구니에 짓누른 채 권기영은 짧은 탄성을 내뱉었고, 남자는 순순히 그 손에 머리를 맡겼다. 남자가 목울대를 울리며 입안에 터져 나온 점액을 삼키는 소리가 들렸다.

“……맛있었나?”

권기영이 거친 숨을 쉬며 비틀린 웃음을 웃자 그제야 권기영의 성기를 입에서 빼낸 남자는 입술을 핥으며 웃었다.

“그래, 아주.”

“그거 다행이군. 벌려, 아래에도 박아 줄 테니.”

쓸데없이 시간 끄는 건 피차 좋아하지 않잖아?, 권기영은 아직 미처 시들지 않은 자신의 성기를 손으로 가볍게 훑으며 남자의 허벅지를 바깥쪽으로 밀듯이 밟았다.

“잘 봤어?”

그러나 여전히 권기영의 다리 사이에 무릎 꿇고 앉은 남자는 손끝에 묻은 정액을 핥으며 중얼거렸고, 권기영은 눈썹을 치켜올렸다.

“뭘.”

“남자 물건 빨아 준 적 없다며. 그래서 직접 보여 줬잖아. 이제 어떻게 빠는 건지, 제법 머리도 좋은 모양이니 잘 기억해 뒀겠지?”

남자가 일어섰다. 한 걸음 거리도 떨어지지 않은 곳에서 그가 일어서자 굵직하게 일어선 성기가 권기영의 코앞에서 꺼덕거렸다. 남자가 권기영의 머리카락을 그러쥐었다.

“이제 네 차례야.”

“헛소리.”

“입이 싫으면 아랫구멍으로 먼저 빨든가.”

남자가 비스듬히 웃었다. 짐승처럼 하얀 이가 드러나면서, 권기영의 머리를 움켜쥔 손에 힘이 들어갔다. 남자의 성기가 코끝에 닿을락 말락하게 가까워졌다.

그래, 결국 너도 호락호락하지는 않은 수컷이란 거지. 권기영은 코웃음 쳤다. 여기선 센 놈이 법이다. 그렇다면 힘으로 보여 주면 그만이다.

권기영은 놈의 옆구리에 거침없이 주먹을 질러 넣었고, 뼈쯤은 틀림없이 부러뜨릴 수 있는 주먹은 정확히 늑골과 골반 사이를 파고들었다. 병원 신세까지는 질 필요 없지만 건방지게 짖어 대는 하룻강아지를 눌러버리는 데에는 충분한 손맛을 느끼며, 권기영은 거의 동시에 남자의 목을 움켜쥐었다.

“쓸데없이 시간 낭비하지 말자고. 난 원래 강간은 딱히 좋아하지 않지만 오늘은 여차하면 평소와 다르게 놀 각오도 하고 왔단 말이야. 맞으면서 섹스하는 취미가 있는 게 아니라면 얌전히 벌려. 바텀의 즐거움을 만끽하게 해 줄 테니.”

그대로 꺾어 버릴 듯 남자의 목을 틀어쥐던 권기영은, 그러나 다음 순간 얼굴에서 웃음을 지웠다. 불길한 예감이 머릿속을 스친 건, 분명히 주먹이 정확하게 들어간 느낌이 들었음에도 남자는 언뜻 눈살만 찌푸렸을 뿐 신음 하나 내지 않았다는 사실이 뒤늦게 떠오르면서였다. 남자는 숨통을 억눌린 채, 웃고 있었다.

“시간 절약, 좋지.”

짐승처럼 희고 비죽한 이가 드러났다.

이럴 리 없다.

이런 일이 현실에서 벌어질 리가 없었다.

권기영은 혼란스러웠다. 경악에서 번져 나온 그 당혹감 역시, 권기영이 처음 맛보는 감정이었다.

꺾일 듯 뒤틀린 팔뚝도, 탈골될 듯 젖혀져 있는 어깻죽지도 의식 속에 없었다. 엄청난 힘으로 위장을 직격당해 속을 게워 낸 것도, 시트에 머리를 짓눌러 숨이 막히는 것도 의식하지 못했다.

이렇게 괴물 같은 힘이라니.

남자는 괴물이었다. 권기영을 뒤에서 짓누르고 팔뚝을 움켜쥔 손은, 태산 같은 무게로 꿈쩍도 하지 않았다.

“남자 물건은 빨아 준 적이 없단 말이지, 입도 구멍도 이렇게 예쁜데? 그래, 고이 아껴 둘 만큼 예쁜 구멍이긴 해, 응?”

남자의 숨이 벗은 등에 닿았다. 소름끼쳤다. 등에 타인의 숨결을 느낀 것도 처음이다. 그러나 그보다도 생경한 건 권기영의 사타구니를 한 손 가득 그러쥐고 주물거리며 회음 뒤, 주름진 입구를 쓰다듬는 손길이었다.

속이 울컥 치밀었다. 실제로도 구역질이 치밀었고, 눈앞까지 시뻘겋게 물들었다. 분노와 혼란이 머릿속을 뒤흔든다.

――시간 절약 좋지, 그럼 바로 본론으로 들어가 볼까.

그 말과 동시에 남자가 권기영의 명치를 후려갈긴 순간 깨달았다. 놈은 어떠한 격투기든―혹은 온갖 종류의 격투기를―일정한 경지에 이르도록 배운 놈이었다. 그리고 필경 지금도 일상적으로 사람을 후려잡는 일을 하고 있는 놈이다.

놈은 권기영이 반격할 아주 잠시의 틈도 주지 않았다. 그런 유의 사내가 흔히 갖고 있는 호승심―상대가 반격을 하더라도 충분히 이길 수 있다는 자신감―따위는 내비치지도 않았다. 오로지 한 치 어긋남도 없이 목적을 이루기 위해 단숨에 거침없이, 명치를 정확하게 가격당한 권기영이 미처 정신을 차리기도 전에 연거푸 급소를 내리찍었다.

말도 안 된다. 이 정도로 싸울 수 있는 놈이라면, 권기영이 아는 전문적인 꾼들을 통틀어 보더라도 한둘이나 될까 말까.

심지어는, 이 믿을 수 없는 괴력이라니. 남자는 비록 불리한 자세로 짓눌려 있다고는 하나 권기영이 아무리 애를 써도 미동조차 하지 않았다. 그것도 온 힘을 다해 억누른다는 기색도 없이, 남자는 권기영의 귓가에서 태연하게 웃고 있었다.

“너, 이것저것 제법 익혔지? 이 정도면 어디 가서 진 적은 없겠어? 싸움질도 꽤 제대로 하겠고, 완력도 좋겠고. 하긴 무턱대고 시건방을 떨려면 그쯤은 돼야지, 응? 귀엽게스리.”

남자가 킬킬거리더니 장난스럽게 권기영의 귓가에 쪽, 하고 소리 내어 입 맞춘다.

“그런데 말이야……순진한 처녀처럼 왜 그렇게 무방비해? 아무거나 주는 대로 답싹 받아먹어서야 되겠어?”

남자가 권기영의 귓불을 잘근거리며 나직이 중얼거린 것과 동시였다. 권기영의 주름 위로 느리게 원을 그리며 쓰다듬던 손가락이 안쪽으로 푹 밀려들었다. 권기영의 허리가 움칫 굳었다. 낯선 이물감과 함께 번개처럼 머리를 치는 깨달음.

――약이구나.

권기영은 저릿한 감각이 조금씩 번지기 시작하는 손가락을 꿈틀거렸다. 놈에게 붙들려 있어서 손목에 피가 안 통하는 탓이라고 생각했는데 그게 아니었다. 지금까지도 자신은 온 힘을 다하고 있다고 생각했지만, 사실은 몸에 힘이 제대로 안 들어갔을 따름이었던 것이다.

언제. 아까 그 맥주?! 그러나 그 맥주는 분명히 권기영의 보는 앞에서 땄었다. 아니, 그렇게 쉽게 눈속임할 수 있는 일을 떠나, 권기영의 미각은 대단히 예민한 편이었다. 특히나 그런 종류의 약이라면 더더욱. 그런데도, 어느 사이에.

의혹을 제대로 떠올리기 전에, 권기영의 몸속으로 파고든 남자의 손가락이 거침없이 꿈틀거리기 시작했다. 그 소름 끼치는 감각과 함께 불같은 분노가 치밀어 눈앞이 시뻘게졌다.

“죽기 싫으면 손 떼라.”

권기영이 이를 갈며 내뱉었다. 목소리마저 서슬 퍼렇게 날이 서 있다. 놈을 그냥 둘 생각은 없었다. 이런 놈은 고깃덩이처럼 다져 버려야 했다.

남자는 꿈쩍도 않고 키들거렸다.

“어이쿠, 무서워라. 맛 좀 보려면 목숨까지 걸어야 되는 구멍이야? 그래, 그럼 걸어 보자고. 하지만 내거는 게 크면 받는 것도 그만큼은 커야지. 이거야, 손가락으로 장난칠 때가 아니겠어.”

엉덩이 속으로 깊숙이 파고들었던 손가락이 한 번 거칠게 꿈틀거리며 흔들린 뒤 빠져나갔다. 그러나 그 이물감이 미처 사라지기도 전에,

“…―――!!”

남자의 성기가 예고도 없이 권기영의 몸을 채우며 단숨에 비집고 들어왔다.

배 속을 두들기며 파고드는 충격. 늘 닫혀만 있었던 살이, 근육과 뼈가 벌어지며 그 사이로 타인의 성기가 비좁게 박혀 드는 감각.

권기영은 눈을 부릅떴다. 끔찍한 고통 속에 말이 나오지 않았다. 몸보다도 더욱 무시무시하게 밀려드는 것은, 정신의 공백.

말도 안 된다. 지금 무슨 일이 벌어지고 있는 건가.

설마 내가, 이 권기영이, 남자한테 박히고 있다고……?

있을 수 없는 일이다. 그럴 리 없었다.

권기영의 머릿속을 가득 채운 단 하나의 생각은, 그러나 남자가 나직한 신음을 기분 좋게 토해 내었을 때 산산이 깨어지고 말았다.

“하아……, 끝내주게 조이잖아. 이거야 원, 박기도 힘들고 빼기도 힘들어, 어……?!”

남자의 귀두가 권기영의 몸속으로 완전히 자취를 감추었을 즈음 놈이 킥킥거리며 중얼거렸다. 허리를 한번 들쑤시듯 움직인 순간 권기영은 그 소름끼치는 이물감에 짧은 숨을 터뜨리고 말았다. 놈이 더 깊이, 깊이, 깊이 허리를 억지로 들이밀었다. 그 생생한 고통이라니. 몸이 둘로 갈라지는 것 같았다.

그만해. 그만. 이 빌어먹, 그마, …….

“이야……, 제대로 풀지 않아서 처음이면 틀림없이 좀 찢어지겠다 싶었는데, 흠 하나 없이 아주 잘 먹어 치우잖아. 내 물건을 집어넣으면 어지간히 익숙한 바텀도 가끔은 피 좀 보는데 말이야. ……흐, 끝내주게 조이는데. 남자가 그렇게 그리웠어? 이렇게 찰지게 오물거릴 정도로?”

이윽고 놈이 다 밀어 넣은 모양이었다.

거대하고 굵은 구렁이가 구물거리는 것처럼 끝없이 밀고 들어와 배 속을 빼곡하게 채우고 또 채우던 놈이 움직임을 멈추었다. 엎드려서 짓눌린 채 고통으로 숨도 제대로 못 쉬고 있던 권기영은 엉덩이에 놈의 아랫배가 바싹 맞붙어 있음을 알 수 있었다. 놈의 킬킬거리는 웃음소리가 귀청을 긁었다.

닥쳐. 죽여 버릴 줄 알아. 갈가리 찢어 놓을 테다. 절대로 그냥 두지 않아.

권기영은 짓씹은 입술에서 터져 나온 핏물과 함께 욕설을 삼켰다.

이 분수를 모르고 주제넘은 놈을, 반드시 죽여 버리고 말 터였다.

어떻게 나에게. 어떻게 내가. 이런 저열하고 천박한 놈에게. 어떻게 이럴 수가.

“저리 비켜! 이 비열한 새끼, 이 추잡한――.”

몸이 제대로 움직이지 않았다. 아니, 제대로가 아니다. 꿈쩍도 하지 않았다. 빌어먹을 약이 이미 혈관을 타고 온몸을 돌아다니고 있었다.

악몽을 꾸는 것 같았다. 권기영이 아무리 날뛰어도, 온 힘을 다해 미친 듯이 날뛰고 있는데도 남자는 꿈쩍도 하지 않았다. 도리어 그럴 때마다 힘이 들어간 몸에, 그 안에 담긴 남자의 성기가 더욱 분명하게 느껴지기만 할 뿐이었다.

“엉덩이짓 한번 잘하는데. 엉덩이를 흔들어 대면서 제풀에 쫄깃하게 조여 대는 게, 영 맹탕은 아닌가 봐? 비키라고 말하는 주제에, 실은 너도 좋은 거지?”

놈이 권기영의 엉덩이를 철썩 후려쳤다. 그 굴욕으로 권기영이 입술을 짓씹기 전에, 한번 허리를 뒤로 빼는가 싶던 놈이 반쯤 빠져나온 성기를 도로 단숨에 푹 박아 넣었다. 권기영의 입에서 신음이 터져 나왔다.

고통으로 숨이 막혔다. 그 고통만큼이나 숨통을 막는 것은 아랫도리를 꽉꽉 눌러 채우고 있는 지독한 이물감과 압박감. 몸이 둘로 갈라질 것 같다. 시야가 까맣게 흐려졌다가 돌아오기를 반복하고 있었다.

말도 안 된다. 이 내가. 고작해야 이따위 놈에게.

“어이구, 다 시들었네, 불쌍하게. 최음제라도 좀 발라 주면 좋겠지만――모처럼 첫 경험인데, 그러긴 아깝지? 고스란히 생으로 다 느끼는 게 나을 거야, 너도?”

“빼……! 이 씹새끼야, 당장 이 구역질 나는 짓 집어치우고 빼!”

“어이쿠 무서워라. 그럼 좀 빼 줄까? 힘 좀 빼 봐, 그렇게 욕심 사납게 오물거리지 말고. 빼라면서, 말이랑 행동이 영 딴판이잖아.”

남자는 킬킬거리며 권기영의 엉덩이를 움켜쥐고 벌리더니 다시 허리를 죽 뽑아내었다. 발기한 성기가 몸 내부를 빠듯하게 비비며 끌려나가는 섬뜩한 감각에 권기영이 헛숨을 내쉬었다. 동시에 조금 전 단숨에 박아 넣던 그 망치질 같은 감각이 떠올라 머리털이 주뼛 곤두섰다. 반사적으로 근육이 수축한다.

“빼라면서. 기껏 빼 줬더니 나가지 말라고 붙드는 건 또 뭐야. 거참 까다로운 구멍일세…….”

놈이 이죽거리며 비웃었다. 그 비웃음과 함께, 몸속에서 길게 빠져나가 귀두 끝만 걸려 있던 성기가 다시 퍼억, 안쪽으로 짓치고 들어왔다. 권기영이 비명처럼 고함을 질렀다.

“이 개새끼야! 당장 그만둬! 내가 누군지 알고 너 따위 새끼가, ――크, 으, ……아, 흐, …―!!”

고함은 끝까지 이어지지 않았다. 놈은 본격적으로 허리를 흔들기 시작했고, 주름 하나 남기지 않고 빡빡하게 벌어진 입구는 마찰로 뜨겁게 달아올랐다. 찰싹거리며 살갗이 부딪치던 마른 소리에, 언제부터인지 철벅거리는 젖은 소리가 섞이기 시작했다.

“누구긴 누구야, 오늘 밤새도록 그 개새끼 좆을 아랫도리로 빨아 줄 귀염둥이지. 그렇게 성깔 부리지 말라고, 너도 한 방울도 안 남을 때까지 싸게 만들어 줄 테니까. ……흐, 이렇게 야무지게 조이는 구멍으로 여태 처녀였다고? 애초에 완전히 길을 잘못 들었는데. 너는, 이쁜아, 이런 구멍이면 태생부터가 깔려야 할 팔자야. 지금이라도 제 길 찾아와서 다행이지.”

“개, 소리, 집어치, ――.”

“아, 미안. 좀 더 불었지? 네가 워낙 맛깔나게 조여 대서 말이야. 어디……, 찢어지진 않았으니까 안심하고.”

아직 밤은 기니까 천천히 가 보자고, 놈이 권기영의 목덜미를 느리게 핥아 올리며 웃었다.

배 속을 사정없이 비집어 들며 채우는 낯선 이물감 속에서 구역질마저 느끼며, 권기영은 눈앞에서 하얗게 불꽃이 번쩍거리는 걸 보았다. 지금 자신이 남자의 성기를 받아들이며 남자에게 꿰뚫리고 있다는 사실이 이 순간 현실이 되어 선명하게 닥쳐왔다. ……이 권기영이.

놈이 쉴 새 없이 박아 댔다. 왕성한 개처럼 하아하아 숨을 몰아쉬면서도 힘든 기색이라곤 없이 권기영을 들쑤신다. 그러는 동안 어느 결에 사정을 했는지, 아랫도리에서는 어느새 질퍽거리는 소리가 섞이고 있었다. 허벅지에 질펀하고 끈적한 감촉이 문질러 바른 것처럼 번져 간다.

숨이 막혔다. 권기영의 아랫도리를 벌려 대면서 그 안으로 파고드는 놈이 킬킬거리며 웃고 있었다.

――한두 번만 싸고 말기엔 아까운 구멍이야. 너도 그렇게 생각하지? 왜, 벌써 말이 안 나오나? 그런 것치고는 계속 오물거리는 게 너도 아쉬운 모양이니까, 구멍이 퍼질 때까지 박아 보자고.

몇 번째인가의 토정을 권기영의 배 속에 들이부은 놈이 나직이 속삭이는 소리가 귓가에 들린 듯했다.

이미 대답할 정신도 없이, 쉴 새 없던 마찰 때문에 화끈거리며 발갛게 부어오른 입구를 연신 비벼 대는 둔중한 고통 가운데, 권기영은 주먹을 움켜쥐었다. 손톱이 손바닥을 파고들어도 아픈 줄도 몰랐다.

모든 감각이 남자의 몸이 맞닿은 곳으로 몰리는 그 끔찍한 느낌 속에서, 새카맣게 들끓은 분노로 의식마저 드문드문 끊겨 버리는 게 최소한의 구원이었다.

눈을 떴을 때 권기영은 혼자 있었다.

“시간이 다 되었습니다. 오늘은 이만 돌아가실 준비를 해 주십시오.”

방문을 열고 고개를 들이민 종업원 차림의 남자가 그 말을 남기고 나간 뒤에야 권기영은 벽에 기대어 널브러져 있던 몸만큼이나 넋이 나가 있던 정신을 차리고 고개를 들었다.

밤새도록 눈 뜬 채로 끊겼다 이어졌다 한 의식은, 잠들지도 않았는데 잠들었던 것처럼 몽롱하게 남아 있었다.

천천히 일어나던 권기영은 땅을 딛고 서는 다리에 힘을 주기 무섭게 온몸의 근육이 비명을 질러 식은땀을 흘렸다. 그럼에도 그는 이를 악물고 방에서 나가, 이미 대부분의 사람들이 돌아간 듯 인적이 거의 끊이다시피 한 복도를 걸어 탈의실 쪽으로 느릿느릿 걸었다. 걸을 때마다 엉덩이 사이로 끝도 없이 비어져 나오는 정액이 허벅지를 타고 흘러내렸다.

빌어먹을. ……빌어먹을.

아무도 없는 탈의실에 다다르자 벽면에 붙은 거울이 제일 먼저 보였다. 시체 같은 낯빛을 한 만신창이의 권기영이 거기 있었다. 목이며 쇄골, 가슴, 온 상반신에 온통 울긋불긋한 잇자욱이 악성 피부병 환자처럼 새겨져 있었고, 사타구니는 아직껏 질금질금 흘러내리고 있는 정액이 희뿌옇게 말라붙기 시작하고 있었다.

“…―!!”

권기영은 저도 모르게 철제 캐비닛을 후려갈겼다. 쾅!!, 커다란 소리가 귀청을 때려도 분노는 가라앉지 않았다. 오히려 더욱더 부풀어오른 분노를 어쩌지 못해 “으아아아아!!”, 고함을 내지르고 말았다.

없애 버릴 테다. 반드시 죽여 버리고 말 테다. 손톱 발톱을 뽑아 버리고 손발끝에서부터 잘근잘근 살점을 뜯어내 버려도 분이 풀리지 않을 것 같았다.

――오늘은 이쯤 해 둘까. 아주 많이 봐주는 거니까 고맙게 여겨. 그럼 또 보자고, 이쁜이.

권기영의 턱을 움켜쥔 채로 목구멍 깊숙이 성기를 밀어 넣고 사정한 것을 마지막으로, 놈은 권기영이 꿀꺽하고 목울대를 울리며 정액을 다 삼킬 때까지 코를 움켜쥐고 있다가 입안이 빈 걸 확인한 다음에야 자신의 성기를 옷 속에 갈무리해 넣곤 그 말을 남긴 뒤 방을 나섰다.

낮은 웃음소리가 귀에 달라붙어 떨어지지 않았다. 권기영은 분노로 부들거리는 입을 꾹 다물고 자신의 캐비닛으로 걸음을 옮겼다. 이런 데서 어물거리고 있을 시간은 없었다. 어서 집으로 돌아가 샤워를 하고 냉정을 되찾은 뒤 놈을 어떻게 죽여 버려야 성이 풀릴지 생각해 봐야 했다.

캐비닛을 열던 권기영은 자신의 옷가지를 끄집어내다가 멈칫했다. 종잇조각 한 장이 팔락거리며 바닥에 떨어졌다. 쪽지를 집어 들자 거기에는 딱 한 줄,

010-××××-×××× ―KK

“…―.”

권기영은 쪽지를 주먹으로 구겨 버렸다. 나직한 웃음소리가 들려오는 것 같았다. 다시 속에서 열불이 치민다.

금세라도 찢어발길 듯 쪽지를 손안에서 짓이기던 권기영은, 그러나 입을 꾹 다물고 그것을 옷 주머니에 넣었다. 그래, 어디 한번 보자. 얼마나 잘난 놈인지. 네가 어디 멀쩡할 수 있을지 한번 두고 보자꾸나.

권기영은 이를 갈며 탈의실에서 나왔다. 이미 새벽으로 넘어가는 시각이라 사람들이 많이 빠졌는지 전실로 갈 때까지 아무도 마주치지 않았다.

“즐거운 시간 보내셨습니까?”

전실에서, 권기영이 들어설 때와 마찬가지로 가면 같은 웃음을 띤 남자가 후드를 받아들었다. 권기영은 그를 노려보았다. 이 남자를 족치면 놈에 대한 게 그리 대단치는 않은 정보나마 얼마간 튀어나올 것이다.

“…….”

그러나 권기영은 남자를 쏘아보곤 말없이 고개를 돌렸다. 지금은 때가 아니다. 저 철가면 같은 낯짝으로 그리 쉽게 술술 불 것 같지는 않았고, 지척에서 기도를 서고 있을 놈들 몇몇까지 상대해 때려눕히기에는 지금은 몸 상태로든 정신적으로든 여유가 없었다.

숨을 돌린 다음에. 제대로 정신을 차리고 몸을 살핀 뒤에.

그런 뒤에, 이 엿 같은 가게도 그 육시랄 놈도 판판이 부숴 버릴 터였다.

* * *

천년 묵은 이무기 두 마리가 마주 보고 앉아 있는 것 같다.

권기영은 아버지의 옆자리에서 조용히 빈 잔에 술을 채우며 생각했다. 조심스럽게 기척을 죽인 발소리가 술상을 들여 놓고 닫힌 방문 너머로 멀어지자 뜰에서 고요하게 흐르고 있던 물소리가 다시 돌아왔다. 도심에서 이런 정적을 즐길 수 있는 곳이 또 있을까. 권기영은 들어오는 길에 어슴푸레한 저녁노을 아래 보았던 멋들어진 뜰과 연못을 떠올리며 물소리에 귀를 기울였다.

“아드님은 이곳이 마음에 드시나 보군요.”

아버지의 맞은편에 앉아 있던 성철우가 불쑥 권기영에게 말을 걸었다. 조용히 술잔만 내려다보고 있었는데 사람 속을 짚는 데에는 귀신같은 늙은이다. 권기영은 고개를 들어 그를 보며 담담히 웃었다.

“예, 아주 고풍스럽고 멋진 곳이군요. 이곳에 대해서는 몇 차례 들었던 적이 있습니다만, 성 회장님의 가게인 줄은 몰랐습니다.”

“하하, 권 의원님 모시고 종종 오십시오.”

넉넉하게 웃으며 잔을 드는 성철우는 이미 예순과 일흔 사이에서 백발이 성성했다. 눈가에 잔주름을 숱하게 잡고서 웃고 있는 그는 여느 풍족하고 마음 좋은 노인 같아, 잔인하고 끔찍한 소문들을 수없이 달고 다니는 인간의 탈을 쓴 악마처럼은 도무지 보이지 않았다. 하긴, 크고 작은 걸 모두 헤아려 기백은 되는 폭력 조직들 가운데 단연 선두에 서 아무도 함부로 건드릴 생각을 못하는 노인네라고 해서 생긴 것까지 기괴하고 흉측하리란 법은 없다. 인간이 어디 외양과 내면이 그리 같은 생물이던가, 하고 권기영은 속으로 차게 웃었다.

“그러고 보니 우리 김 사장이 귀댁 따님과 좋은 인연을 맺는다고 들었습니다. 하하……, 축하드립니다. 이 노인네가 다른 건 몰라도 사람 보는 눈 하나는 있다고 자부하는데, 의원님 아주 잘 하시는 겁니다.”

노인이 옆에 단정하게 앉아 있던 김건준을 흘끔 바라보며 말을 꺼내었다. 김건준은 애매하게 고개를 저으며 겸양의 웃음을 띤다.

“그러고 보니 성 회장님이 많이 살펴 주셨다면서요.”

“저야 그저 될성부른 싹을 운 좋게 일찍 발견해서 물이나 좀 줬을 따름이지요. 하는 일이 치밀하고 빈틈이 없어 필경 나중에는 내가 이놈 도움을 받을 일이 있을 수도 있겠구나, 하고요.”

산전수전 다 겪어 도통 속을 들여다볼 수가 없고 까다롭기 이를 데 없다 하는 저 노인이 저렇게 말할 정도면 저 남자가 어지간히 될성부른 싹이긴 한 모양이다. 권기영은 김건준을 보았다. 시선을 느꼈는지 눈이 마주친 그는 사람 좋은 웃음을 웃었다.

성 회장과 김건준은 서류에 적혀 있던 것보다는 더 가까워 보였다. 오늘도 성 회장은 김건준을 사이에 두고 권기영의 부친을 만나고 있었다. 하는 말로는 예전부터 익히 이름을 들으며 한번 뵙고 술잔을 기울일 기회가 있었으면 좋겠다고 생각해 왔다고 하지만, 실질적인 목적은 누가 봐도 뻔했다. 노인이 재작년쯤 손에 넣은 대규모 부지와 관련된 개발 허가다.

그쯤 되는 일은 노인 정도 되는 인물이라면 별것도 아닐 텐데 어쩐 일인가 했더니, 알고 봤더니 규모가 보통이 아니었다. 미리 서류를 살펴본 권기영이 헛웃음을 웃었을 정도다.

참 욕심도 많은 노인네다. 죽을 때까지 돈을 퍼다 내버려도 다 못 버릴 텐데 거기서 얼마를 더 긁어모을 셈인지.

당장 어떻게 할 일은 아니다. 뭘 하든 선거가 끝난 뒤에 다시 제대로 이야기를 나누어야 할 터였다. 지금은 저 능구렁이 같은 노인이 아들처럼 가깝게 여기는 청년과 누이의 결혼을 축하한다는 의미로 건네줄 ‘축하금’에 앞서 서로 낯을 익힐 따름이다.

“김 사장, 보좌관님이 이곳이 마음에 드신 모양인데, 안내 좀 해 드리지요.”

왔다.

어차피 동석하고 이야기를 나누어도 될 테지만, 이 노인은 아주 사소한 것이라도 불안의 여지를 남기지 않을 모양이었다. 하기는, 그것이 단순히 ‘축하금’이라 하더라도 듣는 귀는 적은 편이 좋을 터였다. 눈 가리고 아웅도 필요할 때가 종종 있는 법이다.

권기영은 아버지가 고개를 끄덕이는 걸 확인하곤 순순히 자리에서 일어났다.

“예, 그럼 부탁드리겠습니다.”

그러자 그때까지 노인의 옆에서 단정하게 앉아 있던 김건준도 뒤를 따랐다. 다녀 보고 오겠습니다, 하는 말을 남기고 장지문을 나섰다.

어두운 밤이 깔려 있는 뜰에는 운치 있는 등이 내걸려 있었다. 낮에 보아도 그렇겠지만 밤에 보아도 고적하고 정취가 어렸다.

“둘러보려면 제법 시간이 걸릴 겁니다. 산자락을 깎아 내고 지었기 때문에 보기보다 넓거든요. ……둘러보시겠습니까?”

별채에서 내려서 잘 손질된 뜰을 거닐다가 나무 벤치가 나왔을 때 김건준이 권기영을 돌아보았다. 권기영은 선뜻 자리에 앉았다.

“물소리만 즐겨도 충분할 만큼 운치가 있는 곳인데요.”

어차피 정말로 둘러보고 싶어서 나온 것도 아니다. 김건준 역시 웃음 지으며 그 옆에 앉았다.

“좋은 밤이군요. 조용하고, 호젓하고.”

“예. 옆에 앉은 사람이 누나가 아니라서 아쉬우실 것만 빼면 말이죠.”

권기영이 심상하게 말하자 김건준이 낮게 소리 내어 웃었다.

“하하, 그런 생각은 하지 않았습니다.”

“편하게 터놓고 말씀하셔도 상관없습니다. 저는 이런 분위기에서 옆에 있는 게 제 애인이 아니라서 아쉬운데요.”

운치 있고, 인적은 드물고, 딱 좋지 않습니까?, 하고 권기영이 중얼거리자 김건준은 “그도 그렇군요.” 하고 웃었다.

“하지만 저는 정말로 기영 씨와 있어서 좋은데요. 이렇게 이야기를 나눌 자리는 거의 없으니까요.”

“이야기를 나눌 일이 딱히 있던가요?”

권기영은 대꾸를 하고 나서야 속으로 혀를 찼다. 이렇게 비딱한 대답이라니, 권기영답지 않은 반응이었다. 빌어먹을, 쓸데없이 예민해져 있었다.

그렇다. 권기영 스스로도 알고 있었다. 그는 몸 상태도 정신 상태도 몹시 날카로웠다. 조금만 긴장을 늦추면 머릿속에서 바싹 날이 선 칼날이 번들거렸다. 몸과 정신, 둘 중 하나라도 멀쩡하면 그나마 나을 텐데 지금은 둘 다 최악이다.

그날 새벽녘에 돌아온 이후 거의 제대로 쉬지를 못했다. 그러잖아도 정신없이 바쁜 와중이다. 별다른 이유도 없이 쉴 수 있을 리 없었고, 또한 그런 이유로 앓아눕고 싶은 마음도 전혀 없었다. 남자에게 당해서 드러눕는다고? 이 권기영이? 웃기지도 않는 말이다.

억지로 몸을 채근해 움직이는 권기영을 한층 더 불쾌하게 만든 것은, 아는 사람에게 던져 준 전화번호에 대한 조사 결과였다. 클럽의 남자가 남겨두고 간 그 번호에 대해 ‘기영 씨, 이 번호 좀 이상해요.’라고 그 사람이 자신 없는 투로 연락해 왔을 때부터 낌새가 안 좋았다.

‘뭐가.’

‘번호가 분명히 개통은 돼 있는 걸로 나오는데, 명의가 안 떠요. 통화 기록도 전혀 없고.’

‘뭐? ……명의가 안 뜬다는 게 말이 돼? 요금을 지불하는 사람은 있을 것 아냐?’

‘아니, 그런데 정말이에요. 이 번호만 누락된 것처럼 공란으로 비어 있어요. 요금은 회사 명의로 나가는 것 같은데…….’

이런 건 또 처음 본다며 그가 연신 고개를 갸웃거리며 알려준 회사명은, 안 좋았던 낌새대로 그 이상 뒤를 밟을 도리가 없는 유령회사였다.

그제야 권기영은 그 번호로 전화를 해 보았지만, 신호가 끊어지도록 아무도 받지 않았다. 어이없는 기분을 넘어서 속이 욱하고 치밀어 올라 전화를 내던지면서, 권기영은 이를 갈았다.

이럴 거면 연락조차 안 되는 번호를 남겨 놓을 이유가 없었다. 그저 엿 먹으라고? 이런 이상한 번호로?

전화로 연락이 안 된다 한들 그 클럽으로 찾아가 뒤집어엎으면――아니, 그리 쉽지는 않겠지. 어쨌거나 그토록 은밀하게 운영된다는 곳이다. 생각만큼 쉬울 리는 없었다.

설마 이대로 영영 놓쳐 버리는 건 아니겠지, 그 생각이 든 순간 권기영은 심장이 바싹 타들어 가도록 초조해졌다. 그럴 수는 없었다. 어떻게든 놈의 꼬리를 잡아내야만 했다.

“괜찮으십니까?”

조용한 목소리가 권기영의 생각을 잘랐다. 동백나무에 걸린 등롱을 노려보고 있던 권기영은 시선을 돌려 김건준을 보았다.

“아까부터 안색이 별로 안 좋으셨던 것 같은데, 마실 거라도 갖다 드릴까요?”

“아니요, 괜찮습니다.”

“몸도 좀 불편하신 것 같은데……, 다치셨습니까?”

“아닙니다.”

마치 약점이라도 짚어 낸 것처럼 짜증이 치밀었다. 아주 조금쯤 움직임이 느려졌을 수도 있고 아주 조금쯤 걸음걸이가 불편했을 수도 있지만, 누군가 눈치챌 만큼은 아니어야 했다. 권기영은 말을 돌렸다.

“성 회장님과는 가깝게 지내시는 것 같더군요.”

“예, 돌아가신 아버지와 건너 건너 아시던 분이라서요. 여러 모로 살펴 주셨습니다. 살아가는 데에 매우 쓸모 있는 요령들도 많이 알려 주셨고요.”

“살아가는 데에 쓸모 있는 요령이라. 이를테면요?”

“글쎄요, 예를 들면……그렇지, 거짓은 99퍼센트의 진실 속에 딱 1퍼센트만 섞어라, 라든가.”

“확실히 유용한 팁이로군요.”

권기영은 농담처럼 말하며 빙긋이 웃는 김건준에게 심상하게 대꾸했다. 별로 독특하다고 할 만한 건 아닌 것 같지만, 하고 속으로만 덧붙인다.

“은근히 활용할 여지가 많거든요. 과거사를 묻어 버릴 때라든가 말이죠.”

“묻어 버리고 싶은 과거사가 있으십니까?”

“하하……, 글쎄요. 기영 씨도 청춘의 과오 한둘쯤은 있지 않습니까?”

청춘의 과오, 그 풋내 나는 어감에 걸맞을 만한 일을 자신이 언제 했던가, 권기영은 기억을 더듬어 보았다. 걸리는 게 없었다.

“글쎄요. 워낙 제가 원하는 대로 살아와서 남의 원한을 산 일이 있을지도 모르지만, 딱히 기억은 안 나는군요.”

“돌이켜 보면 후회스럽다거나, 그러지 말았더라면 좋았을 거라거나, 그런 일도 없으시고요?”

“후회할 일은 애초에 하지 않고, 일단 하고 나면 그 뒤에는 후회하지 않는 성격이라서요. 그런 일은 없습니다.”

그렇군요, 하고 김건준은 웃었다. 한동안 그렇게 말없이 웃고 있는 김건준을 권기영이 마땅찮게 쳐다보자 김건준은 가볍게 고개를 저었다.

“아니, 역시 기영 씨는 강하다는 생각이 들어서요. 정신적인 부분 중 어느 한 부분은 대단히 확고하셔서. ……그렇군요, 후회하지 않는다…….”

김건준은 다시 얼마간 말없이 웃었다. 그 기색이 몹시 유쾌해 보여, 권기영은 까닭 없이 언짢아졌다. 뭔가 신경을 갉작거리는 건 지금 자신이 유난히 날카롭게 곤두선 탓일 것이다.

“건준 씨는 대단히 큰 과오라도 있으신가 봅니다. 사람이라도 죽였습니까?”

말하고 나서 다시 권기영은 속으로 혀를 찼다. 오늘, 정신 상태가 유난히 안 좋다고는 하지만 계속 이래서야 곤란하다. 곤두선 기분을 남에게 고스란히 드러낼 만큼 속을 내보여선 안 되는 노릇 아닌가. 정신 차려, 권기영.

그러나 김건준은 권기영의 비아냥을 대수롭잖게 받아들인 눈치로, 아무렇지 않게 웃기만 했다.

“글쎄요……. 노 코멘트 하겠습니다.”

짤막한 침묵 뒤에 돌아온 대답이 모호했다. 이건 마치, 그랬던 적이 있기라도 하다는 듯한 말투다. 권기영은 눈썹을 치켜올리며 그 역시 침묵했다.

사람을 죽였다――그것이 사실이든 아니든, 거기에 동요할 만큼 순진하게 살아오지는 않았다. 그런 자가 자신의 누이와 결혼해도 괜찮은가, 그런 것을 아랑곳할 권기영도 아니었고, 무엇보다도 권기영 자신도 직접 손을 쓴 적이 없다 뿐 사람의 죽음을 방관한 적이라면 없다고 할 수 없었다.

“그렇군요. 하긴 성 회장님과 오래도록 가까이 지내시려면 그런 일 한두 번쯤은……뭐 그렇죠?”

권기영이 가볍게 운을 떼자 김건준은 속을 알 수 없는 웃음 그대로 애매하게 고개를 끄덕였다. 문득 권기영은 이 남자를 찔러 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심술인지, 혹은 예민한 정신이 만들어 낸 변덕인지, 둘 중 하나일 것이다.

“직접 손을 쓰는 일도 있습니까?”

이 남자가 사람을 죽인다면. 저 다정해 보이는 웃음은 여전히 띠고 있을까. 혹은 상상하기도 어려운 귀신같은 형상을 하고 있을까. 아니면 여느 얼간이 같은 얼굴일까.

말없이 웃으며 권기영을 물끄러미 바라보는 얼굴에서는 짐작을 할 수 없었다. 침묵하던 김건준은 이윽고 “글쎄요.” 하고 입을 뗐다.

“어디서 뭐라고 떠들어 댈지 모를 입을 하나라도 줄이고 싶으면 줄이고 싶을수록, 남에게 맡기기는 힘들어지는 법이니까요.”

웃음 짓는 얼굴만큼이나 아무렇지 않은 담담한 말이었다. 그리고 그 순간 권기영은 입술을 비틀어 올렸다.

죽였다. 혹은, 설령 아직은 죽이지 않았다 해도 그래야 할 상황에서는 눈 하나 까딱하지 않고 태연하게 사람의 목을 비틀어 버릴 수 있을 남자였다. 저렇듯 아무렇지 않게 웃으면서.

“열심히 살아오셨군요.”

이 비아냥은, 아마 권기영이 평소처럼 넉넉한 기분이었다 하더라도 중얼거렸을 터였다. 비아냥이 7할에 감탄이 3할쯤. 그러나 김건준은 가볍게 어깨를 추어올리며 웃을 뿐이었다.

“가진 것에 비해 원하는 게 너무 커서 말이지요.”

“얼마나 대단한 걸 원하시는지 궁금해지는데요.”

원하는 것이라. 이 남자를 움직이는 동기가 될 만큼의 욕심이라면 어설픈 푼돈이나 알량한 지위 따위는 아닐 거다. 이 나라라도 손에 넣고 주무르고 싶은 걸까.

“사람입니다.”

그러나, 홀로 생각하며 실소를 흘리던 권기영의 예상과는 전혀 다른 방향의 답이 돌아왔다. 사람, 언뜻 그 답을 이해할 수 없어 권기영이 고개를 기울였지만, 김건준은 그 대답을 끝으로 더 이상은 이 화제를 지속할 마음이 없는 듯했다. “그러고 보니,” 하고 권기영에게 시선을 준다.

“누구를 찾으신다고 하던데요. 무슨 일이라도 있으셨습니까?”

“……. 소식이 빠르시군요. 그냥 개인적인 볼일입니다.”

전화번호를 알아보라고 던져 준 게 바로 어제 일이다. 어차피 그쪽 동네가 다 엮여 있다는 건 알고 있는 사실이었지만, 그런 사소한 일까지 이 남자가 귀에 넣고 있을 줄은 몰랐다.

“오늘 별로 기분이 좋지 않아 보이는 것과 상관이 있는 일입니까?”

그 사람을 찾는 이유가 무엇인가. 김건준이 물은 순간 권기영의 얼굴에서 웃음이 사라졌다. 왜냐고. 당연히 놈을 죽여 버리기 위해서다. 차라리 죽는 게 낫다고 울부짖게 만들어 주기 위해서.

어째서? 그것은 그놈이 자신을――.

“개인적인 일입니다.”

권기영 스스로도 의식하지 못한 사이에 표정이 무섭게 얼어붙었던 모양이다. 싸늘하게 대꾸하자, 그제야 “그렇군요.” 하고 고개를 끄덕인 김건준은 의아한 듯 권기영을 지그시 보면서도 더는 물어 보지 않을 눈치였다.

권기영은 혀를 차며 얼굴을 문질렀다. 욱하고 짜증이 치밀었다. 하나하나 유난히 거슬리는 남자다. 반쯤은 화풀이처럼 그런 생각을 떠올릴 때였다.

“가끔, 번호가 안 잡히는 전화가 있습니다. 이동전화 사업체에 불법적으로 접속해야 하기 때문에 만들기도 까다롭고 오래 유지되지도 않아서 거의 없는 경우이긴 합니다만.”

그렇게까지 비용을 들여 만들 만큼의 효용이 없거든요, 하고 김건준이 세상사 이야기라도 하듯 말을 꺼내었다. 권기영이 알아보라고 한 내용에 대해, 그리고 그 결과에 대해서도 이미 다 알고 있는 눈치인 그는, 차가운 시선을 주면서도 말없이 듣고 있는 권기영에게 여상하게 말을 이었다.

“그렇게까지 할 사람이라면 그 번호로 잡아내기는 어려울 테고 다른 방도를 알아보든가 혹은 직접 연락하는 수밖에 없는데……, 그런 치들은 대체로 문자 연락만 주고받기 때문에요. 문자를 보내고 그쪽에서 답이 오기를 기다리는 수밖에는, 그 번호를 가지고 어떻게 할 방법은 없을 겁니다. 그러니까 그 번호의 주인을 찾아보시려면 다른 방도를 찾아보시는 게 나을 겁니다.”

도움을 드리고 싶은데 이 경우는 이 상황만으로는 어떻게 도움을 드릴 수가 없네요, 죄송합니다, 하고 김건준은 예의 바르게 고개를 끄덕이며 말을 마쳤다.

권기영은 혀를 찼다. 눈치도 몹시 빠른 데다, 자신이 발을 들여도 될 영역을 정확하게 파악하고 선을 긋는 남자다.

혹여 권기영이 자세히 말을 늘어놓았더라면 그는 다른 방도를 써서 알아낼 수 있도록 도와주었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그 무언의 제안을 권기영은 싸늘한 대꾸로 잘라 냈고, 그렇기에 그가 조언을 주는 건 여기까지였다.

차라리 잘됐다. 이 눈치 빠른 남자가 혹여라도 권기영이 무엇 때문에 놈을 찾는지 낌새라도 챈다면. 최악이다.

권기영이 “참고하겠습니다. 고맙습니다.”라고 말을 맺자 김건준은 별것 아니라며 고개를 끄덕이곤 시계를 보았다. 권기영이 언짢아하는 이 화제도 여기에서 마치려는 듯.

“어르신들은 이야기가 길어지실 모양이군요. 피곤하신 것 같은데 잠시나마 눈 좀 붙이십시오. ……확실히 아쉽긴 하군요. 기영 씨의 애인 되시는 분과 함께 계셨더라면 이럴 때 무릎베개라도 베고 누울 수 있으셨을 텐데요.”

불편하시겠지만 제 무릎이라도 괜찮으시다면 얼마든지요, 하고 농담처럼 말하며 웃는 김건준에게, 권기영은 “말씀이라도 감사합니다. 그러면 잠시 좀 쉬겠습니다.”라는 대꾸를 남기곤 반듯하게 앉은 자세 그대로 눈을 감았다. 그의 말마따나 눈을 붙이고 싶기도 했지만, 지금은 더 이상 이 남자와 말을 섞고 싶지 않았다. 말을 섞으면 섞을수록 가슴속이 더욱 불안스럽게 술렁거렸다. 도무지 긴장을 늦출 수가 없는 남자라고, 본능이 경고를 울리는 것처럼.

그러나 뜻밖에도, 눈을 감자 마음이 가라앉았다.

그래, 뜻밖이었다. 날이 선 정신을 눈꺼풀 아래에 덮어 두기만 할 요량이었는데, 그 날이 천천히 누그러진다. 그것은 무척 기묘한 기분이었다.

인기척 없이 조용한 어둠 속에서 느껴지는 감각이라곤 멀찍이 들려오는 물소리와 남자의 낮은 숨소리, 밤공기 속에 드문드문 느껴지는 남자의 체취, 닿아 있지 않았음에도 바로 옆에서 느껴지는 체온.

그런 것들이 공기처럼 편안하게, 거기에 있는 게 당연한 것처럼 옆에 앉은 남자의 존재가 그 자리에 섞여 있었다. 존재감은 여전히 뚜렷하게 남아 있었음에도 적어도 난데없이 목줄기를 물어뜯을지도 모른다는 경계는, 불가사의하게도, 씻은 듯 사라진다.

오히려 이것은 어떠한 유의 안심감과도―적어도 지금 이 순간만큼은 마음 놓고 숨을 돌릴 수 있다는―닮아 있었다.

전혀 생각지도 못한 이 기묘한 느낌이 왠지 익숙했다. 권기영은 문득 그 낯설고도 낯익은 감각 속에서 불쑥 생각했다.

아아, 그래. 이 남자가 이유 없이 마음에 안 들었던 게 왜인지 알 것 같다. 이 남자는 누군가를 닮았다.

누구였더라. 아주 오래 전 기억 속에 묻어 버린 감각이다. 오래 전 언젠가, 쉬운 듯하면서도 은근히 호락호락하지 않은 놈이 하나 있었다. 그것은――.

생각하지 마. 떠올리지 마.

저 깊숙한 곳에서 불쑥, 낮은 목소리가 튀어나왔다.

내 말을 듣지 않으면 너는 분명히 후회할 거야. 그러니까 내 말을 들어. 더 이상 생각하지 마. 기억하지 마. 없었던 일로 지워 버려.

그것은 권기영 자신의 목소리였다.

무의식의 수면 아래에서 그 목소리는 조용하고 끈질기게 경고하고 있었다. 권기영은 이내 생각을 지웠다. 아아, 그래, 맞아.

지금은 이미 충분히 피곤했다. 다른 생각들을 한가롭게 떠올릴 만큼의 여유는 없었다. 생각해야 한다면 나중에. 좀 더 있다가.

권기영은 눈을 감고 있어도 알 수 있는, 옆에서 지그시 와 닿고 있는 시선을 관자놀이 언저리에서 느끼면서도 눈을 뜨지 않았다. 어쨌든 지금만큼은 자신은 어느 곳에 있는 것보다 안전할 게 분명했고, 그렇다면 조금쯤은 눈을 붙여도 좋을 것 같았다.

* * *

이놈은 슬슬 안 되겠다고, 권기영은 냉정한 눈으로 한신주를 보며 생각했다.

권기영의 허리 위에 올라앉아 몸을 흔들면서 한신주는 계속 더, 좀 더, 하고 보채고 있었다. 이미 몇 번이나 쏟아 낸 아랫도리는 시들 대로 시들어서 한동안은 어떤 자극을 줘도 발기할 수 있을 만한 상태도 아닌 주제에 놈은 여전히 부족하다는 기색이었다.

저건 몸이 아니라 정신이 주려 있는 거다. 더, 좀 더, 좀 더 강렬한 자극을 줘, 하고.

저 클럽에서다. 놈은 그곳에서 넘지 말아야 할 선을 넘었다. 하룻밤 꼬박 여러 놈들 사이에서 뒹구는 동안, 보통은 쾌락으로 여기지 못하는 일들까지 쾌락으로 인식해 버렸다. 그러잖아도 섹스에서는 질릴 만큼 탐욕스럽던 놈이 아예 새 장을 열어 버린 셈이다.

“기영 씨, 나 조금만 더……, 응?”

“안 서. 몇 번을 했는지 알아? 비켜.”

“그럼, 그냥 빨기만 할게. 누워 있어 봐. ……아, 좋아…….”

권기영의 성기를 두 손에 쥐고 조급한 숨을 내쉬며 혀를 내미는 한신주를, 권기영은 감흥 없이 내려다보았다. 이 정도면 슬슬, 권기영이 감당할 경계선 위다.

한신주의 욕구를 채워 주려면 채워 줄 수는 있을 테지만, 그것은 권기영의 취향에서는 조금씩 벗어나고 있었다. 권기영은 다소 거칠긴 해도 취향 자체는 정상적인 범위에 있었지만 한신주는 그 범위를 비껴 나가고 있었던 것이다. 게다가 인간 이하의 대우를 받으며 기뻐하는 천박한 놈과 몸을 섞는 것도 흥이 떨어졌다.

“…….”

잘라 내 버릴까…….

걸신들린 듯 권기영의 성기를 핥으며 자신의 물건을 안간힘을 써 주무르고 있는 한신주를 냉정하게 바라보던 권기영은, 협탁 위에서 깜박거리고 있는 전화를 집어 들었다. 문자가 와 있었다. 업무와 관련된 정보 발신이다. 권기영은 혀를 차며 전화를 도로 내던졌다.

놈에게서는 답이 없었다.

김건준이 해 줬던 말을 고스란히 의지한 건 아니지만, 놈이 남긴 전화번호로 「연락해」, 세 글자를 찍어 보냈다. 답은 돌아오지 않고 있었다.

빌어먹을. 그 엿 같은 번호 따위.

“기영 씨, 기영 씨, 아, 아, 하악, 아, 나, 나 박아 줘, 아아――.”

한신주는 끈질기게 주물러 아예 시들지도, 그렇다고 제대로 서지도 않는 성기를 한 손으로 마구 흔들며 다른 손으로는 엉덩이를 정신없이 헤집고 있었다. 질척거리는 소리 사이사이로 권기영의 성기를 빨며 넋 나간 듯 비명처럼 애걸하던 한신주는, 다음 순간 절정에 다다른 듯 몸을 부르르 떨며 아랫도리를 움찔거렸다. 서지도 않은 성기에서는 아무것도 나오지 않고, 그저 물방울만 느리게 한 방울, 두 방울 맺혀 떨어질 뿐이었다.

그것도 사정이라고, 잠시 굳어 있던 한신주는 권기영의 옆에 풀썩 쓰러졌다. 어깨를 들썩이며 숨을 몰아쉬는 그를 보며, 권기영은 약에 푹 절어 버린 중독자 같다고 생각했다. 아니, 차라리 그쪽이 더 갱생 가능성은 있을 것이다. 이 손쓸 수 없는 섹스 중독보다는.

권기영은 자신의 허벅지 위에 얹힌 그의 팔을 걷어 내고 욕실로 갔다. 다른 때라면 ‘왜 벌써 씻어’라며 토달거릴 한신주가 조용한 걸 보니 놈도 어지간히 진이 빠지긴 빠졌나 보다. 차라리 조용해서 다행이다. 놈이 한마디라도 했다간 ‘적당히 해, 이 갈보 새끼야.’라고 일갈할 것 같았다.

초침이 지나갈수록 기분이 언짢아지고 있었다. 이유는 하나다. 놈에게서 연락이 없는 탓이다.

이대로 연락이 오지 않는다면. 놈이 이대로 꼬리를 감추고 사라져 버린다면. 드문드문 그런 생각이 떠오를 때마다 견딜 수 없는 초조감이 조급하게 치밀어 올라 끈끈한 타르처럼 심장에 눌어붙었다.

“빌어먹을.”

권기영은 찬물로 머리를 식혀도 울화가 가라앉지 않아 욕설을 지껄이며 욕실에서 나왔다.

그럴 수는 없었다. 어떻게든 다시 한번 놈과 맞닥뜨려야 했다.

그때 잠시 잠깐 방심만 하지 않았더라면. 약만 아니었더라면.

제대로 붙는다면 놈 따위는 금세 때려눕힐 자신이 있었다. 다시 한번 만나기만 한다면. ――절대로 놓칠 수는 없었다.

“아……, 벌써 씻었어?”

그새 정신을 차린 한신주가 여전히 침대에 널브러진 채 권기영에게 중얼거렸다. “씻어, 곧 나갈 거니까.”, 라고 짧게 대꾸하는 권기영의 기분이 별로 좋지 않은 걸 금방 눈치챘는지 한신주는 별말 없이 미적미적 일어나 나른한 눈웃음을 지었다.

“오늘 정말 좋았어.”

“그래? 많이 부족해 보이던데.”

권기영이 코웃음을 치자 한신주는 아냐, 하고 고개를 젓는다. 그러면서도 언젠가의 기억을 떠올렸는지 잠시 넋 놓은 얼굴을 하다가 몸을 움츠리고는, 생각났다는 듯 물었다.

“그러고 보니 엊그제 말야, 기영 씨는 어땠어?”

클럽에 간 날, 클럽이 문을 닫고 난 뒤에도 자리를 옮겨서 그 짓을 계속하다가 정신을 차리고 보니 낯선 모텔 방에 있었다고 하는 한신주에게 권기영은 냉담하게 “그럭저럭.” 하고 대꾸했다.

“별로였어? 기영 씨 취향이겠다 싶은 사람도 좀 보이던데. ……있잖아, 다시 가 볼 생각 없어, 혹시?”

한신주는 권기영에게 다가앉으며 은근히 목소리를 낮추었다. 가릉거리는 고양이처럼 살금살금 눈치를 살피며 눈웃음을 짓는 그를 권기영은 말없이 내려다보았다.

“의외로 기영 씨한테 잘 맞는 곳 아니었어? 거기선 웬만한 건 센 사람이 마음대로 해도 되는 분위기던데. 마음에 들면 예를 들어 포지션이 좀 안 맞는다 해도 그냥 깔아도 되는 눈치였고. ……하긴 기영 씨는 강제로 하는 건 별로 즐기지 않는 데다, 기영 씨처럼 딱 잘라 포지션을 정해 두는 사람도 그다지 없긴 하지만.”

응, 기영 씨는 별로였어?, 하고 한신주는 보채듯이 권기영의 눈치를 살폈다. 그리고 권기영은, 놈을 떠올렸다.

놈은. 놈에게서도 다른 수컷에게는 무릎을 꿇지 않는 오만한 수컷의 냄새가 났다. 그런 놈도 어디선가는 깔리기도 했을까. 이렇게 교태만 몸에 붙은 놈이 아닌 그런 남자도 어디선가는 누군가에게 울부짖으며.

“――.”

심장이 울렸다.

그렇다면 그건 나다. 내가 놈을 짓밟아야 한다. 놈에게 최악의 수모와 굴욕감을 안겨 준 뒤에 놈을 산산이 부숴 버려야 했다.

그래. 정 놈에게 연락이 오지 않는다면, 그 가게를 엎어 버린다는 방법도 있었다. 성가시긴 하겠지만 그렇게라도――.

딩동.

그때 휴대전화가 울렸다. 문자가 왔다고 깜박이는 액정으로 권기영은 손을 뻗었다. 곧 화면에 떠오른 글자,

「구멍 잘 씻고 클럽으로 와, 이쁜이.」

놈이다.

맥박이 고동쳤다. 권기영은 잡아먹을 듯 액정을 들여다보았다. 이가 갈리도록 반가웠다.

고마워. 다시 못 만나면 어쩌나 정말로 걱정했거든.

귄기영은 한신주의 엉덩이를 움켜쥐었다. 우악스런 손길에 한신주가 작게 비명을 질렀지만 아랑곳 않고 그의 귓바퀴를 씹어 주면서, 권기영은 속삭였다.

“그래, 가자고. 오늘이야말로 제대로 놀아 보러.”

*

전실에서 그들을 맞는 제복 입은 남자의 재수 없는 상판은 여전했다. 권기영은 가면 같은 웃음을 지은 그 남자가 이번에도 건네주는 후드를 받아 들며 문득 생각이 나서 물어보았다.

“여기는 늘 같은 후드를 써야 하나?”

“아닙니다. 원하시는 이름으로 달리 쓰셔도 됩니다.”

후드 자체는 같으니까요, 라며 남자가 내민 펜을 받아 든 권기영은 그러나 예전과 똑같은 알파벳을 적어 넣었다. 한신주도 같은 이름을 적는다.

생각해 보니 권기영은 놈이 누군지 몰랐고 얼굴을 알 리도 없었다. 만일 놈이 다른 후드를 쓴다면 어떻게 알아볼까. 그러나 그런 생각을 하다가 냉소하고 말았다. 못 알아볼 리 없다. 그런 놈이 여럿 있을 리 없었다.

“그럼 좋은 시간 보내십시오.”

처음 왔을 때와 똑같은 주의사항을 기계적으로 읊은 남자가 마지막으로 건네는 인사말을 귓등으로 들으며 권기영은 문을 열고 안으로 들어섰다.

그곳은 여전히 어두웠고, 또 여전히 사람들이 많았다.

자, 그러면 놈은 어디에 있을까. 권기영은 누가 언제 달려들더라도 잠시의 당황조차 하지 않을 기색으로 여유롭게 주위를 둘러보며 걸었다.

간혹 가까이나 멀리서 몸집이 건장한 사람을 보면 시선을 주었지만 이내 관심을 돌렸다. 아니다. 저놈도 아니다. 체구가 비슷해 보이더라도 금방 알 수 있었다.

‘이봐, 누굴 찾아?’, ‘나랑 좀 놀아 보지 않을래?’ 하고 불러 세우는 놈들을 무시하고 지나치며 권기영은 내부를 구경하듯이 천천히 걸어 다녔다. 놈은 틀림없이 이 안 어딘가 있을 터였다.

하지만, 여전히 난잡한 곳이다. 권기영은 시선이 닿는 곳마다 난잡하게 얽혀 있는 그림자들을 차가운 눈으로 일별하며 생각했다. 역시 딱히 내 취향은 아니다, 라고.

그렇게 내부를 한 바퀴 돌았을 무렵, 권기영은 익숙한 그림자를 발견했다. 클럽에 발을 들이는 순간부터 상기된 숨결을 내쉬고 있다가 어느 결에 사라졌는가 싶던 한신주가 커다란 소파 위에서 두세 명과 뒤엉켜 있었다. 그 지척에서 사타구니를 쓰다듬으며 눈치를 살피고 있는 몇몇 놈들을 보니, 두세 명으로 끝나지도 않겠다.

권기영은 기둥 옆에 서서 팔짱을 꼈다. 당장은 놈이 보이지 않으니 천천히 구경이나 해 볼 심산이었다.

어둑한 조명 아래서 한신주의 하얀 몸이 갓 탈피한 뱀처럼 꿈틀거리고 있었다. 정신없이 울며, 흐느끼며, 한신주는 목구멍 깊숙한 곳까지 찔러 대는 성기를 빨고 있었다. 무자비한 삽입질에 섞여 간간이 목이 막힌 구역질 소리가 울음과 함께 나왔다. 아래도 다를 바 없이 아랫배까지 털이 무성하게 난 남자의 성기를 퍽퍽 소리가 나도록 받아들이고 있었고, 그 옆에서는 바싹 붙어선 구경꾼 한둘이 ‘적당히 하고 비켜, 나도 좀 먹어 보게.’, 하고 재촉하고 있었다.

그만, 제발, 하고 웅얼거리는 목소리로 흐느끼면서도 순순히 사내들이 하는 대로 다리를 벌리고 혀를 내미는 한신주를 보며 권기영은 찬 웃음을 띠었다. 그때, 넋을 잃은 채 흐늘거리던 한신주와 눈이 마주쳤다. 어둑한 곳에서도 한신주는 권기영을 알아보았을 것이다. 권기영에게 시선을 주던 한신주는 아이처럼 소리 내어 흐느끼며 손을 뻗었다.

“흐으……, 기, 여……, 하악!! 아, 아아아――.”

아래에 있던 남자가 한신주의 허리를 끌어당겼다. 반쯤 나와 있던 성기가 단숨에 한신주를 파고들었다.

“이년아, 좋냐? 밝히긴. 킥킥, 하나로 부족하지? 하나 더 박아 줄까, 어?”

남자가 낄낄거리며 딜도를 집어 들었다. 이미 들어가 있는 구멍에 딜도 끝이 닿자, 한신주가 어깨를 굳히며 버둥거렸다.

“아, 안――, 그만, 제발, 도, 도와……, 기, ――.”

아등바등 권기영을 향해 팔을 내젓는 한신주를, 권기영은 무심하게 바라보기만 했다. 지금 당장은 순간적인 공포에 절더라도 몇 분, 아니 몇 초 후면 놈이 틀림없이 울부짖으며 성기를 곧추세울 것임을 권기영은 알고 있었다. 한신주는 그런 인종이었다.

게다가 설령 그렇지 않다 한들 왜 자신이 그를 도와줘야 하겠는가. 자청해서 여기로 오자고 조른 갈보를. 권기영은 그럴 마음이 전혀 없었다.

미동도 않고 그대로 서 있기만 하는 권기영을 향해 한신주가 손을 내뻗던 것도 잠시였다. 이내 한신주는 권기영이 예상했던 대로 울음소리에 교성을 섞기 시작했다. 남자가 움켜쥐고 흔들던 허리는 어느새 그의 의지로 춤추고 있었고, 뻣뻣하게 일어선 그의 성기도 소복하게 젖었다.

“좋아, 좋아, 좀 더, 더 세게, 더 깊이, …―.”

한신주의 다리 사이로 파고들었던 남자가 바뀌고 그 남자마저 다시 바뀔 즈음 이미 한신주는 이성을 놓고 있었다. 오로지 섹스로만 살아 있는 생물처럼 정신없이 허리를 흔들 뿐이었다.

굉장한데, 진짜 환장했잖아, 갈보라고 하기엔 갈보한테 미안할 지경이야, 키득거리는 속삭임이 군데군데서 들려왔다. 한신주를 무심하게 바라보고 있던 권기영은 시계를 보았다. 놈을 찾아 다시 한 바퀴 돌아 볼까. 이미 그의 머릿속에 한신주는 없었다.

권기영이 막 걸음을 옮기려던 때였다. 그때, 갑작스런 충격이 옆에서 닥쳐와 권기영을 기둥에 짓눌렀다. 거의 후려치듯이 그를 기둥에 밀어붙인 자가 등 뒤에 바싹 붙어 귓가에 속삭인다.

“또 만났군. 반가워, 이쁜이.”

놈이었다.

낮게 킬킬거리는 목소리. 귀에 닿는 숨결. 허리 뒤에 뜨끈하게 닿는 두툼한 양감. 착각할 리 없는 직감이 새파랗게 되살아났다.

쿵하고 심장이 울리며 일그러진 흥분이 스멀거렸다.

“그래, 아주 반가워.”

권기영은 이를 갈며 입술을 비틀어 올렸다. 아무렴, 반갑고말고.

“저놈 네가 데려온 놈이지? 어디서 저런 정키를 주웠어. 저 정도까지 맛이 가기도 쉽지 않은데.”

놈이 키들거리며 권기영의 귓바퀴를 핥았다. 물컹하고 뜨거운 살덩이에 소름이 끼쳤다. 허, 이 새끼 봐라, 권기영은 잇새로 헛웃음을 웃곤 바싹 마른 입을 적시려 마른침을 삼켰다.

“이쁜이 목마른가 보지. 얼른 내 새끼 빨아 먹어야겠어, 응? 아니면, 맥주라도 한잔 마시고 시작할까?”

“왜. 또 약이라도 써 보려고?”

권기영은 나직이 대꾸했다.

“네 목구멍에나 처부으시지.”

그리고, 사타구니를 더듬고 있던 놈의 손목을 움켜쥐고 꺾어 버리는 동시에 팔꿈치로 놈의 명치를 후려갈기며 돌아섰다. 잠시 멈칫하는가 싶던 놈은, 그러나 이를 드러내며 웃더니 대뜸 주먹을 휘둘렀다.

엄청난 소리들이 삽시에 그 주위를 휘감으며 순식간에 반경 몇 미터 정도가 난장판이 되었다. 욕설과 외마디 소리를 내뱉으며 물러선 사람들은 어이, 누가 좀 말려 봐, 라고 서로들 말하면서도 아무도 그들 사이에 끼어들지 않았다. 끼어들지 못했다고 하는 편이 옳다.

누구보다도 강한 두 마리의 맹수가 서로를 물어뜯고 있었다. 그리고 권기영은, 머리끝까지 치솟아오른 흥분에 온몸의 감각이 저릿해져 오는 걸 느끼며 하, 하고 웃었다. 놈은, 그렇게 호락호락할 거라곤 생각지 않았지만, 권기영과 거의 호각이었다. 여태 이런 놈은 없었다. 일반인들은 절대로 상대하지 않는 ‘꾼’이나 이쯤 될까, 여태 권기영과 호각으로 싸운 놈은 없었다.

제법인데. 이 정도면 어디에서나 여유를 부릴 낯짝을 할 만은 해. 하지만 이 나에게? 약 따위의 비겁한 수단을 통하지 않고서? ――어림없다.

호각으로 시작했다곤 하나 삼 분, 오 분 지나는 사이에 조금씩 우열이 기울어지고 있었다. 권기영은 빙글거리던 놈의 입가에서 묵묵히 표정이 사라지는 걸 보며 요 몇 년간 느낀 적이 없었던 희열을 느꼈다. 손끝이 저릿저릿했다.

이거다. 세면 셀수록, 강하면 강할수록, 상대를 무릎 꿇리는 쾌감은 더욱 커졌다. 그리고 지금 권기영은 신음 같은 외마디 소리를 내며 온몸을 땀으로 흠뻑 적실 정도로 온 힘을 다하게 되는 이 보기 드문 상대를――결국은 쓰러뜨렸다. 놈이 털썩, 바닥에 등을 부딪치는 소리가 마치 울창하고 거대한 나무가 쓰러지는 것 같았다.

권기영은 쓰러진 놈의 등 위에 올라타 팔을 꺾었다. 거침없이 어깨 관절을 꺾어 버리는 소리가 뚜둑, 하고 울렸다. 놈이 숨을 들이켜며 일순 호흡을 멈추었다. 권기영은 하, 하고 짧은 웃음을 터뜨렸다. 이겼다, 승리를 확정 짓는 웃음이었다.

“쓸 만한데. 아주 썩 훌륭하다고 칭찬해 줄 만해.”

놈의 어깻죽지를 당기며 내뱉는 권기영도 멀쩡하진 않았다. 거친 숨을 몰아쉬며 입속에 고인 침을 뱉자 핏물이 잔뜩 섞여 나왔다. 그러나 이쯤은 상관없었다. 팔을 당길 때마다 낮은 침음성을 흘리는 놈도 이만큼은 당했다. 몸속의 뼈들도, 장기들도 한바탕 뒤흔들렸을 터였다. 그러나 무엇보다도 지금 놈이 느끼고 있을 당혹감과 참담함, 그것이 가장 유쾌했다.

“어떤 낯짝을 하고 있나 안 보이는 게 아쉽군. 왜, 놀랐나? 누구한테 이렇게 당해 본 적은 없었을 테지?”

“――그래, 꽤 하는군.”

놈 역시 침을 뱉었다. 피로 범벅이 된 잇조각이 떨어진다. 권기영은 거침없이 놈의 옆구리를 주먹으로 후려갈겼다. 놈이 숨을 삼키더니 다시 한번 피 섞인 침을 뱉어 냈다.

“건방은. 제대로 맞서서 네놈 따위가 털끝 하나라도 건드릴 수 있을 줄 알았나? 주제를 알아야지.”

목에서 어깨, 등으로 이어지는 감탄스럽도록 모양 좋은 근육들을 눈으로 훑는 권기영의 머릿속으로 그날의 기억이 불쑥 떠올랐다. 이 넓은 어깨가, 이 우악스러운 팔이 권기영을 짓누르고 욕보였다.

놈은 권기영을 깔고, 권기영의 다리를 벌리고, 권기영의 사타구니에 자신의 성기를 찔러 넣어 흔들었다.

“…―.”

심장이 쿵, 하고 뛰었다. 몸속이 욱신거리며 목이 죄는 느낌이 드는 건 필경 분노 탓이다. 이 기괴한 흥분은, 틀림없이 자신의 밑에 깔려 꼼짝도 못하고 있는 남자를 내려다보고 있다는 통쾌감 때문이었다.

“어떻게 해 줄까. 일단 네 구멍부터 뚫어 주고 시작할까. 알아들어? 그걸로는 안 끝나. 너는 오늘 산지옥을 구경하게 될 거다.”

“――그만두는 게 좋을걸. 위에서 비켜.”

놈이 잇새로 내뱉었다. 나직이 깔린 목소리가 꼭 고통에 찬 짐승 같다는 생각을 하며, 권기영은 코웃음 쳤다.

“아직도 상황을 파악 못 했나? 이봐, 여기는 뭐든 센 놈이 마음대로 할 수 있는 곳이잖아. ――아아, 이런. 사람 하나쯤 토막 쳐도 되는지를 안 물어봤군.”

권기영은 놈의 뒷목을 후려갈겼다. 컥, 억눌린 숨소리를 터뜨린 놈은 한동안 아무 말도 못했다. 권기영은 놈의 팔을 더욱 세게 비틀어 무릎으로 짓누른 뒤 놈이 걸치고 있던 옷가지를 모조리 잡아 찢듯이 벗겨 냈다. 놈이 몸을 뒤틀어 벗어나려고 할 때마다 옆구리나 등 따위를 주먹으로 인정사정없이 갈겨 주는 것도 잊지 않았다.

“나는 전혀 자비로운 사람이 아니라서 말이야. 사지 멀쩡하게 돌아갈 수 있을 거라는 기대는 아예 버려. 팔다리 하나쯤은 병신이 돼서 평생 후회하게 만들어 줄 테니까. ――하하, 아주 예쁜 엉덩이군, 그래.”

이윽고 놈의 브리프를 마지막으로 끌어내리자 알몸이 드러났다. 권기영은 상체만큼이나 완벽해 흠잡을 데가 없는 놈의 하체를 보며 잠시 입을 다물었다. 엉덩이 아래로, 바닥에 깔린 놈의 성기 끄트머리가 보였다. 발기도 하지 않았는데 어지간한 놈이 완전히 발기한 것보다 묵직하게 드리운 성기를 노려보며, 권기영은 왠지 모르게 목이 바싹 마르는 것 같았다. 알 수 없는 고양감이 흥분과 닮았다는 건 금세 알아차렸다.

그렇다. 생각해 보면 자신은 이곳에, 평소와는 다르게 건장하고 수컷 냄새가 풍기는 놈을 맛보러 찾아오지 않았었던가. 그리고 이놈은 그러기에 아주 이상적인 상대였었다.

분노에 가려져 있던 욕정이 가학심과 함께 고개를 들었다.

그래. 오늘 놈에게 박아 넣는 거다. 놈이, 이 보기 드물게 뛰어난 수컷이 울부짖으며 엉덩이를 흔드는 꼴을 보는 거였다.

권기영은 “거기.” 하고, 몇 걸음 떨어진 곳에서 구경하고 있던 남자에게 눈짓으로 선반에 늘어서 있던 딜도를 가리켰다. 눈치 빠르게 여러 종류를 가져와 내미는 남자는 이 구경거리에 흥분한 듯 이미 사타구니가 불룩했다. 주위에 그런 놈이 그 남자만이 아니다. 권기영은 꽤 완력이 있어 보이는 그 남자를 훑어보곤 고갯짓했다.

“어깨 눌러. 제대로 꽉 잡아 눌러. ……그래, 그렇게 도우면 조금 있다 너도 이놈을 맛보게 해 줄 테니까.”

권기영은 아래에 짓눌려 엎드려 있던 놈이 그 말을 듣고 희미하게 어깨를 꿈틀하는 걸 지켜보곤 유쾌하게 웃었다.

“한 놈으로는 아쉽다면 두 놈, 세 놈, 여기에 있는 놈들 전원에게 돌려 주지. 네가 얼마나 엉덩이를 잘 놀리는지 지켜본 다음에 말이야. 자, 이 실리콘 덩어리가 네 첫 남자다. 힘 빼.”

권기영은 딜도 끝을 놈의 엉덩이 사이에 대었다. 그리고 엉덩이를 벌리며 그 틈새를 딜도로 거침없이 꿰뚫――.

놈이 웃는 것 같았다. 입가가 언뜻 올라가는가 싶던 때,

퍼억!!, ……커다랗게 부푼 가죽부대를 터뜨리는 듯한 소리. 이어, 놈의 어깨를 누르고 있던 남자가 일이 미터는 떨어져 있던 기둥에 부딪혔다. 으직하는 뼛소리가 섞였다.

권기영은 일순 그것이 자신의 뼛소리인 줄 알았다. 갈비뼈, 혹은 그 부근 어딘가에 거세게 닥쳐온 충격에 한순간 숨을 쉴 수 없었다. 머릿속에서는 자신의 뼈가 어그러지는 소리가 나는 것 같았다.

어……?

순간적으로 아무 생각도 떠오르지 않았다. 다른 남자에게 놈의 어깨를 누르라고 했던들, 권기영이 아예 손을 놓은 게 아니었다. 그 부자연스러운 자세로, 팔까지 뒤틀린 채, 놈이 권기영을 뿌리칠 수 있을 리 없었다.

“날 너무 몰아붙이지 말라고. 나는 원래 폭력을 그리 즐기지는 않는 사람이거든. 아주 다정~한 남자란 말이야.”

놈은 개소리를 하며 몸을 일으키고 있었다. 권기영을 후려갈긴 무릎을 가볍게 털어 내며, 짐짓 찌푸린 얼굴로 관절이 나간 어깨를 주무른다. 뚝, 뚜둑, 어깨 관절을 맞추는 소리가 소름끼치게 울렸다. 놈은 스으, 하고 아프다는 듯 잔뜩 찡그린 얼굴로 혀를 차면서 어깨를 천천히 돌린다.

“아파 죽는 줄 알았네.”

따분하게 중얼거린 그는 권기영을 보더니 빙긋이 웃는다.

“우리 이쁜이 참 친절도 해. 뼈 두어 대쯤은 부러뜨렸어야 그럭저럭 대등하게 핸디가 붙지. 아……, 아니면 어차피 오늘도 진탕 박힐 거, 발톱이나 한번 세워 본 건가?”

권기영은 놈을 뚫어져라 노려보다가 허, 하고 코웃음을 쳤다. 괴물 같은 놈이다. 뼈가 나가지는 않은 듯하지만 지독하게 욱신거리는 가슴을 쓰다듬으며, 권기영은 자세를 바로 했다.

“이제 보니 이거 아주 재미있는 놈이었네. 그리 호락호락하게는 안 넘어가 줄 모양이잖아. 뭐 좋아. 그러면 네 바람대로 이번에는 그 팔을 아예 부러뜨려 줄 테니.”

아무래도 이놈은 팔다리를 끊어 놔야 그제야 말을 알아먹을 모양이었다. 그렇다면 좋다. 그래, 그렇게 까다롭게 나온다면 이쪽도 더 보람차다. “기세등등하신데. 좀 봐달라고.”, 놈이 빙긋이 중얼거렸다. 온다!

권기영이 그렇게 생각한 순간, 놈은 이미 권기영의 코앞까지 닥쳐들고 있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권기영이 움직이지 못했던 것은, 비단 놈이 빨라서만은 아니었다. 허리를 낮춘 그 자세 어디에서도 빈틈을 찾을 수 없었다. 얼굴로 와락 다가오는 커다란 손바닥만 얼결에 후려친 찰나, 그 손바닥 대신 바로 코앞에서 놈의 얼굴이 비죽이 웃고 있었다.

“시간 낭비는 싫어한다고 했었지?”

그 나직한 속삭임을 들었을 때, 권기영은 이미 천장을 올려다보고 있었다. 그 순간 놈의 목을 후려찼다고 생각했는데, 동시에 권기영도 턱과 심장 위를 얻어맞고 쓰러지고 있었다.

울컥. 심장이 피를 토하는 것 같았다. 발뒤꿈치에 닿은 타격감은 확실했는데. 어떻게.

어서 일어서야 한다고 생각한 건 고작해야 눈을 깜박일 만큼의 순간이었는데, 그전에 놈은 권기영의 가슴 위에 올라앉아 거칠게 머리카락을 그러쥐었다.

놈을 떨쳐낼 수 없었다. 지난번처럼 약을 먹은 것도 아니고, 심지어 엎드린 것보다 백배는 더 유리한 자세다. 두 팔을 깔고서 누웠을 뿐. 이 정도라면 얼마든지 놈을 떨치고 일어날 수 있어야 했다. 그런데. 이 무식한 괴력이라니.

두 팔뚝을 무릎으로 짓누르고 권기영의 가슴 위에 앉은 남자는 별반 힘들이는 기색도 없이 미동도 하지 않았다. 집채만 한 바윗덩이에 짓눌린 듯한 기분. 불현듯 숨이 막히는 건 정신의 압박감 탓이다. 설마 어느새 또――.

“못 믿겠다는 눈치로군. 왜, 또 약이라도 들이켠 것 같아?”

남자가 웃고 있었다. 권기영의 머리카락을 움켜쥔 손을 천천히 흔들면서 이를 드러낸다.

“그런데 말이야. 그때 네가 약을 먹었다고 누가 그랬지? 난 내가 약을 먹였다는 소리는 한마디도 안 했는데.”

“뭐…….”

나직이 소리 내어 킬킬거리는 남자를 권기영은 망연히 쳐다보았다. 놈이 무슨 말을 하는지 언뜻 이해하지 못해 눈을 부릅뜨는 그를, 남자가 손바닥으로 가볍게 후려치듯 뺨을 쓰다듬었다. 허리를 숙인 남자가 키득키득, 권기영의 입술을 핥는다.

“우리 이쁜이. 약 때문에 깔린 게 아니라는 걸 알았더라면 이렇게 호락호락 제 발로 깔리러 맨손으로 무방비하게 찾아오지는 않았을 테지?”

싸늘한 바늘이 가슴속을 뚫고 지나가는 것 같았다.

그 낮은 속삭임의 의미를 깨닫고 표정이 굳어 버린 권기영을, 놈이 즐거운 듯이 할짝였다. 후드 아래로 드러난 입이며 턱, 목덜미를 끈적하게 핥아 올리는 혀가 소름끼쳤다.

“이……!”

권기영이 다리를 들어 무릎으로 놈의 등을 찍었지만, 놈은 그럴 줄 알았다는 듯 권기영의 옆구리를 후려갈겼다. 숨이 막힐 정도의 고통이 내장을 뒤흔들었다. 놈이 올라앉은 통에 거친 기침조차 숨 막히게 억눌려 터져 나왔다.

“내가 말이야, 험한 꼴 좀 많이 보고 살았어. 그러다 보니까 이래저래 익힌 게 좀 많아. 특히나 너처럼 두루두루 제대로 배운 놈을 깔아뭉개는 걸 첫째 목표로 삼았거든. 자, 자. 괜찮아. 너는 충분히 세니까 그렇게 아연해할 필요는 없어. 그저 상대를 잘못 만났을 뿐이지.”

건드릴 상대를 잘못 골랐고 말야, 남자가 아주 상냥하게 속삭였다. 그러나 그 속삭임 끝에 권기영의 귀를 콱 짓씹었다. 권기영이 고통에 찬 비명을 내뱉었다.

말도 안 된다. 약을 쓴 것도 아닌데 내가 이렇게까지 속수무책이라고. 이 무식하게 엄청난 힘의 차이가 그대로 고스란히 사실이라고? 심지어는, 이렇게 갖고 놀 만큼 놈은 자신을 상대로 여유가 있다는 건가.

……빌어먹을. 이건 미친놈이다. 완전히 미친놈이었다. 이런 놈이 존재할 리 없었다. 이런 놈은――절대로 상종해서는 안 되는 놈이었다.

권기영은 인정하고 싶지 않았고 절대 인정할 수도 없었지만, 그 순간 경악과 더불어 어렴풋이 그를 지배한 것은 공포, 패배감, 그런 것들이었다. 한 번도 맛본 적이 없는 감각인데도, 그 감각들의 이름이 그것이라는 걸 누가 가르쳐 주지 않아도 깨닫는다.

……이 내가.

“그런데 어쩐다……. 나는 이쁜이가 맘에 쏙 들어서 매일이라도 만나고 싶은데, 이제는 어쩌면 이쁜이가 줄행랑을 쳐 버릴지도 모른단 말이야. 그러면 안 되겠지? 그럼 어떻게 한다……?”

“너 뭐 하는 놈이야.”

권기영이 잇새로 그르렁거리자 놈은 빙글빙글 이죽거렸다.

“왜. 말해 주면 내 신상 알아내서 콘크리트에 묻어 바닷속에 처박아 주시게?”

“이 씹새끼야, 너 뭐 하는 놈이냐고!”

급기야 권기영은 벌컥 고함을 지르고 말았다. 놈이 더욱 유쾌해 하리란 걸 알면서도. 놈의 웃음소리를 들으며 권기영은 분노로 눈앞이 새하얘졌다.

“이런 곳에서 그런 질문은 반칙이지. 알면서 왜 이래. ……하지만 그래, 못 가르쳐 줄 것도 없지. 어때, 매일 하루에 하나씩 서로 교대로. 네가 나에게 말해 줄 수 있는 거라면 나도 네게 말해 주지. 이름, 나이, 연락처, 직업, 뭐든. 어때.”

“개소리 마. 그 구역질나는 면상을 누가 매일 본다고. ――이 빌어먹을 가게, 쓸어버리고 말 테다. 어디 그래도 네놈 먼지가 한 톨도 안 나오나 보자.”

놈은 웃었다. 뺨을 가만히 잘근거리던 입술이 귓가에 바싹 붙더니 바람소리처럼 나직이 속삭였다.

“넌 이 가게에 손도 못 댈 거고, 나랑도 매일 만나게 될 거야.”

“헛소리.”

“말했잖아. 매일 만나고 싶다고. 사랑스러운 우리 이쁜이.”

거기까지 말하고 후드 위로 권기영의 뺨에 소리 내어 입을 맞춘 놈은, 곧 고개를 들어 주위에 있던 누군가에게 “매니저한테 가서 KK가 맡겨 뒀던 것 달라고 한다고 해.”라고 말을 던졌다. 머뭇거리던 발소리가 이내 빠르게 전실 쪽으로 사라졌다.

맡겨 뒀던 것, 그 말을 곱씹을 틈도 없이 놈은 자, 그럼, 하고 상체를 일으켰다. 지익, 퍼스너를 내리며 놈이 날름 입술을 핥았다.

“그럼 저놈이 돌아올 때까지 우리는 떡이나 쳐 보자고.”

벌어진 퍼스너 사이로 불쑥 튀어나오는 놈의 성기를 보며, 권기영은 사납게 얼굴을 굳혔다.

“하지 마.”

“이제야 좀 귀여운 목소리를 내는걸.”

킬킬거리는 놈의 뒤에서 수많은 시선들이 쏟아지고 있었다. 비틀린 호기심과 음습한 욕망이 서린 시선들이, 권기영을 보고 있었다. 비참한 꼴을 한 권기영을.

“하지 마.”

권기영이 한 번 더 나직이 위협하듯 이를 갈며 속삭였을 때, 놈이 허리를 숙이더니 권기영의 목덜미에서부터 아래로 주욱 혀를 덧그려 내렸다. 그리고 그 끝에 있던 유두를 한번 장난스레 할짝 핥은 뒤 거침없이 깨물었다.

“아! ――!!”

유두를 잘근거리며 세게 빨아 당기는 통각에 반사적인 외마디 소리를 지르며 몸을 뒤틀던 권기영은, 그 다음 순간 등 뒤로 손목이 묶였다는 걸 깨달았다. 그 짧은 사이에 어렵잖게 권기영의 손목을 묶어 버린 놈은, 권기영의 양 유두를 혀끝으로, 손가락 끝으로 툭툭 건드리며 빙긋이 웃고 있었다.

“섰네.”

빨갛고 뾰족하게 부푼 유두를 손가락으로 톡톡 튀기듯이 놀면서 놈이 킬킬거린다.

“말했지. 너는 태생부터가 깔리도록 타고났다고.”

“손 떼, 이 미친 새끼야.”

“아아, 손보다는 입으로 빨아 주는 게 더 좋으시다?”

“씹새끼야, 헛소리 말고 치워! 비켜!!”

남자는 권기영의 유두를 지분거리던 손을 아래로 내렸다. 가슴을 빨아 대는 자극 때문에 처음에는 아랫도리에 서늘한 공기가 닿는 줄도 몰랐다. 권기영이 자신의 사타구니가 드러났음을 깨달은 것은 옷가지가 허벅지 아래로 내려가고 엉덩이를 남자가 움켜쥐었을 때였다.

왜. 어째서 이런. 말도 안 되는.

머릿속에는 믿어지지 않는다는 감정들만 어지럽게 교차했다. 악몽을 꾸고 있는 건가. 이렇게 생생하고도 끔찍한 악몽을. ……웃기지 마. 웃기지 마라. 내가. 이 권기영이.

KK, 놈의 후드에 새겨진 그 글자를 권기영은 부릅뜬 눈으로 노려보았다. 지금 자신의 손이 자유롭다면 저 머리통에 총구멍을 내 주고 말 터였다. 장담해도 좋았다.

“아, 그래. 그러고 보니 너,”

권기영의 목덜미를 살짝살짝 깨물며 엉덩이 틈새를 조금씩 쓰다듬고 있던 남자가 생각났다는 듯 입을 열었다.

“네가 데려온 정키도 그렇고, 아까 나더러도 그랬었지. 여기 있는 전원에게 돌려 준다고. 너 여럿이랑 하는 거 좋아하나 본데, 한번 네가 그렇게 박혀 보는 것도 색다르고 좋을 것 같지 않나? 어디 보자, 하나, 둘, 셋, 넷…….”

놈이 시선을 주위로 돌리며 숫자를 센다. 주위를 둘러싸고 구경하고 있던 놈들이 그 눈치를 알아채곤 눈을 번들거리기 시작했다. 권기영의 낯에서 핏기가 가셨다. 턱이 딱딱하게 굳어 버린다.

“그……, …―.”

저도 모르게 목소리가 낮게 쉬어 나왔다. 어쩌면 말꼬리가 어렴풋이 떨렸는지도 모른다. 남자의 입매가 잔인하게 올라갔다.

“그런데 안타깝게도 나는 별로 그런 취미는 없단 말이야. 난 내 것을 공유하는 건 안 좋아하거든. ……어차, 그렇게 아쉬운 얼굴 하지 마, 이쁜이. 너 하는 거 봐서 언제든 마음 바꿔 줄 수 있으니까.”

권기영은 딱딱하게 굳은 얼굴로, 웃고 있는 놈을 노려보았다.

이상하다. 후드 너머인데도 놈은 그 안에 담긴 권기영의 세세한 표정 하나하나, 반응 하나하나를 모조리 꿰뚫어 보고 있는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권기영에게 보이는 것은 잔혹한 웃음을 띠는 놈의 입매뿐인데도.

“다리 벌려.”

놈이 냉담하게 말한 순간 권기영은 깨달았다. 이것은 놈의 명령이다. 그렇지 않으면 저 잔인한 혀끝은 끔찍한 말을 내뱉을 터였다. 주위를 둘러싸고 기다리는 저 욕심 사나운 시선들을 흥분하게 할.

수십 년 같은 수십 초 뒤 이윽고 남자의 만족스러운 웃음소리가 들렸을 때, 권기영의 얼굴은 후드 안에서 굴욕으로 하얗게 질려 있었다.

“내가 본 가운데 제일 예쁜 구멍이야.”

권기영의 벌어진 다리 사이로 허리를 들이민 남자는 자신의 성기를 몇 번 흔들며 용두질했다. 그러는 동안 놈의 시선은 줄곧 권기영에게서 떨어지지 않았고, 그 짧은 시간視姦 뒤 놈은 충분히 발기해 곧추선 성기를 권기영의 회음 아래, 주름 위에 갖다 붙인다. 놈이 “자, 그럼,” 하고 비죽이 웃음 지었다.

“다리로 내 허리를 감아서 바싹 당겨. 내 물건이 뿌리 끝까지 네 구멍 깊숙이 들어박힐 때까지.”

부득, 권기영은 이를 갈았다. 굴욕으로 얼굴 근육마저 경련한다.

내가. 이 내가. 어디서 굴러먹는지도 모를 이런 놈에게.

미동조차 없이 무시무시하게 놈을 노려보는 권기영을 내려다보던 놈은, 빙긋이 웃더니 몸을 구부렸다. 권기영의 귓가에 입을 바싹 붙이고 아주 다정한 목소리로 속삭인다.

“똑똑하게 머리 써. 지금 여기에 몇 놈이 기다리고 있는지 알아?”

입술이 떨렸다. 권기영은 신음이 새어 나오려는 입을 간신히 닫았다. 이것은 끔찍한 지옥이다. 악몽이다. 놈이 권기영의 허벅지를 가볍게 두드리며 킬킬거리는 그 악몽 속에서, 부들거리는 다리가 천천히 움직였다.

놈을 사이에 끼운 채 오므리는 무릎 안쪽에 놈의 허리가 닿았다. 권기영은 악다문 턱만큼이나 부들거리는 다리로 놈의 허리를 휘감아 안았다. 다리에 힘이 들어가자 주름 위에 닿아 있던 놈의 성기가 입구를 지그시 벌리며 들어오려는 기척이 났다. 사타구니에 남자의 성기가 닿아 있다는 것만 해도 소름끼치도록 불쾌한데, 하물며 몸을 벌리고 들어오는 감각이라니.

차마 그 이상 놈의 허리를 감지 못하고 멈춰 버리는 다리를, 놈이 그럴 줄 알았다는 듯 툭툭 두드렸다.

“오래 실랑이할 생각 없어. 셋 센다. 하나. 둘.”

빠르지도 느리지도 않게 선뜻 숫자를 헤아리는 놈의 목소리가 ‘셋’을 고할 때까지, 권기영은 놈을 노려보기만 할 뿐 끝내 자신의 다리로 놈을 감아 안아 저 소름끼치는 성기를 받아들이지는 못했다. 놈은 셋을 세자마자 선선히 떨어졌다. 사타구니를 막 벌릴 듯이 맞붙어 있던 귀두가 떨어져 나간다.

“그래? 그러면, ――어이, 거기. 벌써 세우고 있는 너 말이야.”

놈이 주위를 둘러싸고 있던 사람 중 하나에게 턱짓을 했다. 동시에 권기영의 두 엉덩이를 움켜쥐고 바깥쪽으로 활짝 벌렸다. 주름진 입구가 고스란히 드러나며 서늘한 공기가 닿았다.

“박아, 여기. 다음은 거기 네가 박고. 그래, 그 다음은 너.”

놈의 냉랭한 말이 떨어진 순간 권기영은 심장에 찬물을 뒤집어쓴 것 같았다. 대번에 뒤룩뒤룩하게 살이 찐 사내가 사타구니에서 성기를 꺼내어 주무르며 다가오는 게 보였다. 나도, 나도, 나는 목구멍에 밀어 넣고 싶은데, 욕망으로 번들거리는 목소리들이 여기저기서 고막을 찔렀다.

그러는 동안, 살찐 사내가 권기영의 벌어진 입구에 성기 끝을 맞추었다. 벌써부터 선액을 흘리고 있어 축축한 귀두가 닿은 순간,

“그, 그만, ――하지 마! 네 말대로 해 주면 될 것 아냐, 이 개새끼야!! 당장 치워!!”

권기영이 비명 같은 고함을 질렀다. 동시에 놈이 히죽 웃었다. 막 권기영에게 밀어 넣으려던 사내의 멱살을 움켜쥐고 거칠게 떠밀어 버린다.

벽에 세게 부딪히며 나가떨어진 사내와 그 뒤에서 순번을 기다리던 남자들이 불만스러운 말을 토해 냈지만 차마 놈에게 달려들지는 못하고 사납게 눈만 번득였다. 그런 자들을 등지고, 놈이 이를 드러낸 채 권기영을 비스듬히 내려다보았다.

“같은 짓 두 번은 안 해. 이게 마지막 기회인 줄 알아. ……박아.”

권기영은 숨을 헐떡였다. 극도의 분노와 혼란으로 몸이 부들거렸다. 곧 놈의 성기가 다시 권기영의 주름을 쿡 두드렸고, 권기영은 벌벌 떨리는 다리로 놈의 허리를 휘감았다. 그리고 바스러질 듯 이를 갈아붙이며 놈을 조여 당겼다.

천천히 주름을 벌리며 놈의 성기가 밀려들었다. 그 무시무시한 압박감은 그야말로 압도적이었다. 좁은 길목을 억지로 꾸역꾸역 벌리는 우람한 성기는, 그러나 권기영이 다리에서 힘을 빼면 그 자리에서 진입을 멈추었다. 오로지 권기영 본인의 의지로 놈을 몸속으로 끌어당기는, 이 끔찍한 굴욕.

둘로 찢어질 듯한 고통이 닥쳐오는 건 몸보다는 마음이다.

“이제 겨우 귀두만 들어갔는데 언제까지 쉬고 있을 거야. 갈 길이 멀다고, 응? 아니면, 좀 벅찬 크기 하나보다는 적당한 크기 여남은 개를 박는 게 더 낫겠다면 지금이라도 저기서 기다리고 있는 놈들한테 벌려 주든가. ……계속 그러고 있으시겠다?”

권기영의 엉덩이를 찰싹찰싹 가볍게 두드리던 놈이 몸을 뒤로 물리려는 기척이 났다. 권기영은 놈이 이번에야말로 빈말을 하지 않으리란 건 알고 있었다. 아까부터 온몸을 찌르는 저 번들거리는 시선들 속에서, 황급히 놈의 허리를 감아 당긴다. 놈의 성기가 한층 더 깊이 파고들었다.

숨이 막혔다. 구역질이 났다. 아랫도리가 찢어진 것처럼 화끈거렸다.

내가. 내 속에. 이 내가.

얼마나 지났을까, 이를 악문 권기영이 조금씩 놈의 허리를 감아 당기기를 열 몇 차례, 드디어 권기영의 축 늘어진 성기에 놈의 아랫배가 닿았다. 놈을 송두리째 받아들인 입구는 끝까지 벌어져 주름이 하나도 남지 않았다.

놈이 비죽이 웃었다.

“잘했어. 그럼 이제부터 상을 주지. 철철 넘치도록 듬뿍.”

동시에, 몸속을 때려 박는 충격.

내장을 두들겨 벌리는 흉기.

빠듯하게 벌어지는 동안 고통 때문에 감각이 둔해졌다고 생각했는데, 놈이 추삽질을 개시한 순간 그 모든 감각들이 고스란히 살아났다. 놈이 몸속에 선액을 들이부으며 거침없이 들락거리고 있었다.

“아, ……아, 아, 아! …―아악! 아, 아!!!”

권기영은 짐승처럼 고함을 질렀다. 눈앞이 부옇게 흐려지며 눈가가 뜨겁게 젖었다.

자신이 누구던가. 권기영이다. 다른 누구도 아닌 권기영. 누구에게도 져 본 적이 없이, 모두가 외경과 질시로 올려다보는 남자다.

그런 그가 지금 누군지 모를, 그러나 끔찍하게 증오스러운 놈에게 강간을 당하고 있었다. 무참하게 처박히고 있는 건 자존심이다. 긍지다.

“흐, 이 예쁜 구멍은, 바깥은 아주 참하고 얌전하게 생긴 주제에, 속은 완전히 요물이야, 응? 오물거리면서 빨아 대는 게, 이렇게 욕심 사나운 구멍이라면 여남은 명을 상대해도 너끈하겠어. ――걱정 마, 내가 지겨울 만큼 별 보게 해 줄 테니까.”

아주 떡칠 맛 제대로 나는데, 놈이 유쾌하게 숨을 몰아쉬며 허리를 거침없이 추어올렸다. 철벅철벅철벅철벅, 어느새 사타구니가 흥건하게 젖어 놈의 아랫배가 권기영의 고환이며 성기에 사정없이 부딪칠 때마다 젖은 소리가 빠르게 울렸다.

권기영은 아까부터 계속해서 고함을 지르고 있었다. 그러느라 목이 쉴 지경이라는 것도 모르고 허덕거리며 소리를 내질렀다.

아랫도리가 타는 듯했다. 끈끈하고 축축한 감촉이 흥건한데도 불처럼 뜨겁다. 놈이 권기영의 성기를 쥐고 흔들고 있었다. 놈에게 아래를 파이면서 축 늘어졌던 성기가 그 끈질긴 자극으로 조금씩 힘을 받고 있었다.

하지 마, 권기영이 이를 갈았지만 그 소리는 비명에 묻혀 버린다.

아랫도리가 저릿저릿했다. 이제는 무슨 감각인지도 느끼지 못할 만큼 머릿속이 엉망진창이었지만 그 감각은 어마어마하게 밀어닥치고 있었다.

그렇게 몰아닥친 감각이 서서히, 그러나 분명한 절정에 막 닿으려는 때,

“자, 이쁜이, 너도 싸야지. ――잘 알아 둬, 너는 지금 내 자지에 꿰뚫린 채로 싸는 거라고. ――자.”

놈의 목소리가 얼음날처럼 심장을 베었다. 마구 뒤섞여 있던 이성이 일시에 새파랗게 돌아온다. 권기영의 아랫도리를 빠듯하게 채운 채 들썩이고 있는 성기. 그리고 그대로,

“――싫, ……아, 안――.”

권기영의 고환을 기둥째로 움켜쥐고 뒤흔드는 손. 뻐끔거리던 귀두 끝을 후벼 파듯이 긁는 손가락.

그 감각 속에서,

몸속이 거세게 수축하며, 그곳을 꽉꽉 메우고 있는 놈의 우람한 존재감을 선명하게 실감한다.

그 실감과 함께 몇 번이나, 몇 번이나,

권기영은 사정했다.

짐승처럼 울부짖는 소리가 길게 터져 나온 것 같았다.

청각도, 시각도, 모든 게 다 흐려지며 권기영은 부옇게 의식을 잃어갔다. 그러나 몸을 활처럼 휘며 고개를 젖힌 채 의식을 잃던 그는 마지막으로 보았다.

주위를 둘러싸고 그들을 바라보며 희번덕거리는 시선들 속에서, 넋이 나간 인형처럼 뚫어져라 그를 바라보며 반들거리는 눈――한신주.

한신주가 보고 있었다.

여태 벌레처럼 경멸하며 깔아왔던 그가, 커다랗게 벌어진 눈으로 넋 놓은 듯 권기영을 보고 있었다. 한번 깜빡이지도 않고 바라보는 그 눈동자와 마주친 순간 권기영은 오물투성이의 구정물을 삼킨 듯한 느낌이 충격처럼 덮쳤다.

“――.”

그 눈길을 생생하게 받으며, 권기영은 남자에게 꿰뚫린 채 기나긴 토정을 하면서 몸서리쳤다.

남자가 겨우 만족스러운 숨을 내쉬며 권기영의 몸에서 떨어졌을 때, 권기영은 손가락 하나조차 까닥할 수 없었다. 몸은 물론이거니와 정신까지 탈력해, 머릿속은 아무것도 없이 하얗게 비어 있었다.

이미 구경꾼들은 아까 전에 흩어졌다. 남자가 ‘이놈은 내 거야. 차례는 돌아가지 않을 테니까 포기해.’라고 처음에 말을 했음에도 미련이 남은 듯 기웃거리며 주위를 서성이던 놈들도, 남자가 여러 차례의 사정을 마치고도 여전히 권기영에게서 떨어지지 않고 몸 곳곳을 탐욕스럽게 물고 빠는 모습을 보고는 지독하다며 혀를 내두르고 돌아섰다. 그런 뒤로도 얼마나 더 지났을까. 한참은 더 몸속을 뒤흔들린 것 같았다.

남자는 새벽으로 넘어가려 하는 시계를 보고는 “오늘은 이 정도로 해 두고, 그럼 슬슬 준비해 볼까.” 하며 권기영의 몸에서 자신의 성기를 끌어냈다. 축 늘어져 있음에도 흉측한 부피감을 지닌 성기로 권기영의 뺨을 툭툭 두드린 남자는, 몽롱하게 천장을 보고 있던 권기영의 눈에 어렴풋이 살기가 어리는 걸 보고 즐겁게 웃었다.

“자, 그럼 자리를 옮기자고. 나야 상관없지만 우리 이쁜이 체면도 좀 생각해 줘야지.”

쥐 생각해 주는 고양이처럼 가르릉거리며 말한 남자는 권기영을 훌쩍 어깨에 메었다. 괴물 같은 체력이다, 권기영은 주먹을 쥐는 것조차 부들거리는 손을 움켜쥐며 이를 악물었다. 아까 심부름을 시켰던 놈이 갖다 준 구두 상자 같은 것을 다른 손에 든 남자는 복도 안쪽의 비어 있는 방으로 들어가 문을 닫는다.

권기영을 침대 위에 엎어 놓고 옆에서 뭔가를 부스럭거리며 남자가 흥얼거리는 콧노래가 귀에 거슬렸지만 권기영은 시체처럼 꿈쩍도 하지 않았다. 이미 반쯤은 넋이 나가기도 했거니와 놈에게는 더 이상 어떠한 반응이든 보이고 싶지 않았다.

놈이 권기영의 허리 아래로 끈 같은 것을 둘렀을 때에도 마찬가지였고, 권기영의 엉덩이 속으로 굵직한 이물감을 집어넣었을 때조차도 마찬가지였다. 그러나,

“이제부터 밤마다 만나는 거야, 이쁜이. ……좋아.”

좋아, 라는 말과 함께 권기영의 허리 뒤에서 달칵, 쇳소리가 난 순간, 권기영은 뭔가 잘못되었음을 깨달았다. 허리와 사타구니를 조이는 끈의 감촉, 그 끈에 붙어 있음이 분명한―지금은 자신의 몸속에 들어와 있는―딜도.

“큰 볼일은 매일 정해진 시간에 보는 편인가? 그렇다면 그 정해진 시간을 바꿔야 할 거야. 자정에서 두 시 사이. 그때 여기로 오면 그때마다 풀어 주도록 하지.”

앞으로는 몸 관리 잘해야겠어, 낮 동안 배탈이라도 나면 큰일이겠지?, 빙글거리는 놈의 말을 듣는 둥 마는 둥, 권기영은 황급히 몸을 일으켰다. 허리 아래로 엄청난 고통이 뻐근하게 밀려왔지만 그런 것 따위는 안중에도 없었다. 다리에 힘이 들어가지 않아 자칫하면 무너져 내릴 듯한 몸을 간신히 지탱하고 선다.

벽의 거울에 권기영의 모습이 비치고 있었다. 온통 울긋불긋한 멍자국을 단 알몸에, 가느다란 쇠사슬로 짠 끈으로 사타구니를 조이고 있는 남자가 망연하게 서 있다. 권기영은 그 끈을 더듬거리며 확인한다. 강제적인 방법으로는 결코 풀 수 없을 법한 사슬 끈은 사타구니를 통과하고 있었고, 그 끈의 중간쯤에 붙박여 있을 딜도는――권기영의 몸속으로 모습을 감추고 있었다.

“괜히 풀어 보려고 헛수고하지 마. 돈 많이 들여서 만든 거니까. ……뭐, 그야 전문가 몇 놈 불러다 놓고 보여 주고서 연구 좀 해 보면 아예 못 풀지야 않겠지.”

아득히 멀리서 놈의 킬킬거리는 목소리가 들리는 것 같았다.

권기영은 아연하게 거울 속, 자신의 사타구니를 바라보았다. 아주 조금씩 경련하듯이 몸이 떨릴 때마다 거울에는 비치지 않는 몸속에 이물감이 들어차 있노라고 아랫도리의 감각이 알려 주고 있었다.

“무슨……, 짓…….”

바싹 마른 목에서는 숨소리 같은 말마디만 새어 나왔다. 권기영은 경악으로 부릅뜬 눈으로 놈을 보았다. 핏기가 가셔 푸르스름하게 질린 입술을 즐겁게 바라보던 놈은, 장난기를 지운 낮은 목소리로 뚜렷이 말했다.

“매일 밤 자정에서 두 시 사이. 매니저에게는 내가 알아서 해 둘 테니까, 그 정키는 달고 오지 마. ――너무 그렇게 쳐다보지 말라고. 나중에 너는 반드시 나에게 고마워하게 될걸. 그 정키 따위는 대지도 못할 만큼 섹스에 환장하는 몸으로 만들어 줄 테니까.”

권기영의 눈앞에서 거대한 괴물이 유쾌하게 웃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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