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6
“성하야.”
“안녕하세요.”
기현 형은 오늘도 모자를 쓰고 있었다. 옷은 항상 헐렁한 티셔츠에 청바지. 캠퍼스에 있는 학생 대부분이 티셔츠에 청바지 차림이었지만, 그중에서도 유독 형의 옷차림은 성의 없어 보였다.
같은 차림이라도 뭐랄까 집에서 굴러다니는 옷을 아무거나 주워입고 나온 느낌? 그나마 여름에 가장 많이 신경을 쓰는 게 이 정도라는데 다른 때는 얼마나 더 최악일지 궁금했다.
“아. 진짜 졸리다.”
형은 졸린 눈을 껌뻑거리며 하품을 했다.
절대 그럴 것 같지 않은 사람이 코앞에 있는 기숙사 생활을 하면서 왜 매번 30분이나 일찍 오는 건지 궁금했는데, 잠이 너무 많아서 알람 시계로는 도저히 일어날 수 없어 룸메이트가 매일 아침 깨워준다고 했다. 지각을 하지 않으려면 30분을 덜 자더라도 어쩔 수 없이 그때 일어나야 한다고.
“넌 안 졸리냐?”
“아침에 눈 뜨면 좀 힘든데 막상 오면 괜찮아요.”
“대단하다. 어떻게 그렇게 멀리 살면서 매일 수업 들으러 오냐. 난 다시 태어나도 못 해.”
그래도 요즘은 조금 적응했다고 마음에 여유가 생겨 그리 나쁘지 않았다. 확실히 도심으로 넘어오는 구간이 많이 막혔지만 서 있는 동안 라디오를 듣거나 음악을 들으며 시간을 보냈다.
“아, 맞다. 오늘 끝나고 기숙사 올래? 금요일이 좋은데, 너 금요일은 안 된다며.”
그렇다고 수요일이 좋다는 의미는 아니었는데.
“몇 시예요?”
“끝나고 아무 때나 괜찮지. 어차피 네가 나보다 더 늦게 끝나잖아.”
“5시 넘을 텐데 괜찮아요?”
일부러 일하는 날을 피해 많은 과목을 월요일과 수요일로 몰았더니 아침 일찍 시작해도 오후 늦은 시간이 다 되어야 끝이 났다. 처음 내 스케줄 표를 본 기현 형은 자기 본 일정 중 최악이라는 소리를 몇 번이나 했다.
“어. 상관없어. ”
“그럼 끝나고 연락드릴게요.”
“그래.”
학교 기숙사는 내가 생각했던 것만큼 가깝지 않았다. 근처라고 들어서 그냥 걸어가면 될 거라고 생각했는데 중앙 건물 앞쪽에서 따로 버스를 타야 했다.
학교 학생임을 보여주고 버스에 타자 기사가 별말 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고 5분쯤 지났을까, 버스가 같은 간격으로 정류장에 섰고 나는 형이 알려준 세 번째에서 내렸다.
“요-”
기현 형은 학교에서 봤을 때와 별반 다르지 않은 차림으로 손을 흔들었다. 대신 평소 신던 운동화 대신 흔한 브랜드의 슬리퍼를 신고 있었다.
“생각보다 멀지?”
“네. 놀랐어요.”
“나는 네가 걸어온다고 그래서 더 놀랐다. 바로 옆에 있는 줄 알았냐?”
“네.”
“그럴 줄 알았어. 다들 처음에는 그럴 거라고 생각하더라고.”
형은 바로 눈앞에 있는 건물을 두고 코너를 돌았다.
“요 뒤쪽에 핫도그 진짜 맛있는 데 있어. 사서 가자.”
한 블록 떨어진 곳에 푸드 트럭이 서 있었다. 소시지 위에 캐러멜라이즈 된 양파를 잔뜩 올려주는 독특한 핫도그였는데, 포장지 겉면에 같이 주는 고추가 정말 맵다는 경고문이 붙어있었다.
형은 룸메이트 몫까지 총 8개나 되는 핫도그를 포장했다. 왜 그렇게 많이 사냐고 묻자 두고 보면 안다고, 그렇게 말하며 웃었다.
기숙사 건물은 총 세 곳으로 나누어져 있었다. 들어갈 수 있는 자격 요건이 다르거나 랜덤 배정인가 했는데 단지 시설에 따라 가격이 다를 뿐이었다.
기현 형이 사는 곳은 한 유닛이 3인실로 된 가장 큰 건물이었다. 건물의 크기만큼 수용인원 또한 가장 많다고 했다.
[여어-]
[기현, 오랜만이네.]
한 번도 기숙사 생활을 하지 않은 내게 학생들이 복도에 삼삼오오 모여 있는 광경은 생소하기도 하고 익숙하기도 했다. 아파트에서는 좀처럼 볼 수 없는 모습이지만, 고등학교에 다닌 이라면 학교 복도에서 흔히 볼 수 있는 모습이었기 때문이었다.
“어? 기현아.”
“오- 형. 언제 왔어요?”
“좀 전에.”
“형진이 형 방에 가요? 술 마시려고요?”
“형진이 보러 온 건 맞는데 오늘은 다른 볼일 때문에 왔어. 이따 잠깐 들러라.”
“네. 그럼 좀 이따 밤에 갈게요. 이따 봐요, 형.”
“그래.”
기현 형이 지나갈 때마다 한국인 외국인 할 것 없이 누구나 형에게 손을 내밀었다. 멀리서 이름이 불리기도 했는데, 그때마다 인사하는 형의 모습이 낯설었다.
늘 똑같은 수업에서밖에 보지 못했고, 같은 테두리 안에서 보는 형은 항상 혼자 있었다. 어찌 보면 조금 아웃사이더에 가까웠는데 그런 사람의 예상치 못한 모습을 발견한 느낌이었다.
‘나 원래 이런 왕따 아닌데.’
‘…….’
‘아, 진짜야!’
‘네.’
‘진짜라니까, 아놔.’
반쯤 믿지 않았던 그 말에 조금의 신뢰가 쌓였다.
시끌벅적한 복도를 지나 4층 끝 쪽에 있는 방에 도착했다. 현관문을 일부러 열어놓은 상태였다. 안으로 들어서자 실내에는 에어컨이 돌아가고 있었다. 너무 돌아간 나머지 살짝 추울 정도였다.
“다 나와 봐. 데리고 왔어.”
“이미 나와 있잖아. 뭔 소리야.”
거실 소파에 앉아 티브이 리모컨을 돌리는 이는 기현 형을 향해 삐딱한 웃음을 날렸다. 기현 형은 그 모습이 익숙한 듯 보였다.
“오- 왔네.”
다른 한쪽에서 슬리퍼를 끄는 마찰음이 들렸다. 아래위로 운동복 차림을 한 사람이 방에서 느릿하게 걸어 나왔다.
누굴 향해 어떻게 인사를 해야 할지 망설이는 동안 기현 형은 식탁 위에 핫도그를 내려놓았다.
“인사해. 내가 말한-”
“기현이랑 같이 수업 듣는다며. 고생이 많다.”
상대는 기현 형의 말을 싹둑 잘라먹고 안타까운 얼굴을 하며 내 등을 토닥였다.
“일단 와서 앉아. 넌 왜 애를 그렇게 세워놓냐.”
기현 형이 나를 어떻게 소개했는지 몰라도 처음 보는 사람들의 반응을 보아서는 내 이미지가 상당히 괜찮은 것 같았다. 이번에도 혹시 내 인상 탓인가, 의아함이 피어오를 때쯤 예상했던 말이 들렸다. 인상이 좋다, 착해 보인다, 뭐 그런 이야기였다.
“뉴욕에서 왔다고?”
“네.”
“야, 진화가 뉴욕대 가지 않았냐?”
“새끼, 그게 무슨 상관인데. 얘 작년까지 하이스쿨에 있었는데.”
“시발, 혹시 알 수도 있지.”
“고만 좀 해라. 시끄러워.”
“네가 제일 시끄러워.”
룸메이트라서 그런지 확실히 세 사람은 친해 보였다. 하는 이야기를 들어보니 대학에 오기 전부터 친구였던 것 같은데, 이런 질문을 하려고 해도 이야기의 주제가 자꾸 다른 쪽으로 흘러갔다.
“아. 세현이 여자친구도 뉴욕에 있다고 했는데.”
“이름도 모르면서, 미친. 세현이 여자친구라고 하면 아냐?”
“뭐 뉴욕 살면 거기 사는 한국 사람들 다 알아야 하냐? 너는 시카고에 사는 한국 사람 다 알아?”
“와씨, 그냥 생각나서 말한 걸 가지고 존나 지랄이야.”
어색함이라고 느낄 새도 없이 적응했다. 그냥 기현 형이 세 명 있다고 생각하면 딱 맞았다. 세 사람이 투덕대는 동안 테이블 위 핫도그는 차갑게 식어갔다.
쾅-!
“뭐가 이렇게 시끄럽냐.”
오랜 기다림 끝에 이제야 핫도그를 입에 넣는가 했는데 그때 다른 한 사람이 들어왔다. 키가 작고 마른 상대는 우리를 보자마자 재빨리 다가왔다.
“오. 맛있겠다.”
우리가 아니라 핫도그였구나.
“근데 이 사람은 누구셔?”
작은 입 가득 핫도그를 쑤셔 넣은 그는 고추를 들고 있는 한 손으로 나를 가리켰다. 처음 보는 내게 존댓말을 써 주려 한 것 같지만 어딘지 모르게 한국어가 이상했다.
“나랑 같이 수업 듣는 동생. 그 있잖아. 미친 교수.”
“아! 오케이, 오케이.”
“그나저나 넌 왜 이제 오냐?”
“3층 갔다 왔어.”
“형진이 형 방? 아까 보니까 영재 형도 왔던데.”
“어. 그 형 오고 바로 술 마시려고 하길래 도망쳐왔어.”
“오늘 딴 것 때문에 왔다던데? 또 술 마신대?”
“몰라, 그럴 건가 봐. 근데 넌 이름이 뭐예요? 난 제이슨. 한국 이름은 김상준.”
돌연 내게 말을 건 상대는 동그란 눈을 접으며 웃었다. 부르고 싶은 대로 불러도 된다는 뒷말은 아주 유창한 영어로 딸려왔다.
“성하요. 권성하.”
얼마 전 식당에서 소개했던 날이 생각났다. 그때도 이렇게 몇몇 사람에게 둘러싸여 있었는데. 바로 몇 주 전까지 그다지 내 이름을 말할 일이 없었다가 한꺼번에 이렇게 자주 생기자 느낌이 이상했다.
“아, 그리고 얘가 내 룸메이트.”
뭐?
순간 잠깐 생각이 멈춰 섰다. 조금 전까지 옆에 앉아 있던 두 사람이 룸메이트인 줄 알았는데 기현 형은 지금 막 들어온 이를 룸메이트라고 소개했다. 분명 3인실이라고 했는데. 그럼 내 집처럼 소파를 차지했던 이와 폐인처럼 방에서 기어 나온 사람은?
“그러면 형들은요?”
그렇게 묻자 조금 전 뒤늦게 방에서 나왔던 형이 먼저 입을 열었다.
“어……, 나는 여기 아니야. 옆방.”
“근데 아까 저쪽 방에서 나오셨잖아요.”
“어. 기현이 방에서 잠깐 게임 했어.”
놀라움은 그게 끝이 아니었다.
“나도 옆방인데?”
“…….”
“여긴 원래 이래.”
소파에 누워있던 이 역시 방 주인이 아니었다.
그 후로도 아무 연락 없이 누군가 불쑥 들어왔다. 그때마다 방문객은 아무렇지 않게 핫도그를 먹으며 인사를 했고, 잠시 머물다가 가거나 자리를 잡고 앉아 이야기를 나누기도 했다.
기숙사 유닛은 생각보다 괜찮았다. 방은 좀 작아도 함께 쓰는 공동공간이 넓고 꽤 큰 소파가 놓여있어 대여섯 명쯤 모여도 전혀 비좁지 않았다.
혹시 얼굴을 보지 못한 룸메이트 한 명일까 싶어 물어볼 때마다 아니어서 나중에는 포기하고 묻지 않았는데, 한 시간쯤 지났을 때 꽤 키가 크고 잘생긴 사람이 들어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