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7
“성하야!”
오랜만에 만난 엄마는 그사이 머리가 짧아져 있었다. 불과 몇 개월 전만 해도 가슴까지 내려왔던 머리가 지금은 겨우 어깨에 닿을락 말락 했다. 파마약 냄새가 싫다고 늘 생머리를 유지하는 엄마는 짤막한 단발머리도 마흔을 넘긴 나이답지 않게 잘 어울렸다. 그런 겉모습만큼이나 속마음 또한 여전히 소녀 같았다.
“머리 잘랐네.”
“응. 우리 아들 온다 그래서 스타일 좀 바꿔봤지.”
“잘 어울려.”
“정말?”
이럴 땐 꼭 아는 척을 해 줘야 한다. 그리고 칭찬까지 더해야 엄마가 서운해하지 않는다는 걸 잘 알고 있었다.
“어서 와. 오는 데 힘들었지?”
“힘들 게 뭐 있어.”
가슴팍에 겨우 오는 작은 몸이 나의 큰 몸을 꽉 껴안았다. 엄마는 잘 느껴지지도 않을 만큼 약한 힘으로 매번 이렇게 포옹을 했다. 그렇지 않아도 가는 팔이 더 가늘어진 느낌이었다.
“우리 아들, 못 먹었어? 왜 마른 것 같지.”
“그러는 엄만.”
“엄마는 비싼 돈 주고 일부러 빼는 거고. 너는 왜 이렇게 살이 빠졌어? 뭐 힘든 일 있었니?”
“힘든 일은 무슨. 시카고로 이사하고 이래저래 정신 없었어서 그래. 최근에 시험 때문에 또 바빴고.”
“그래도 제대로 좀 챙겨 먹지. 안 되겠다. 한국 있을 때만이라도 보약 지어 먹여야겠다.”
“그런 거 안 먹어도 돼, 엄마.”
“아유, 참. 기다려 보라니까. 여사님!”
엄마가 가정부 아주머니와 이야기를 나누는 동안 캐리어를 들고 안으로 들어갔다. 오랜만에 온 집이었지만, 정겹거나 그리운 마음이 전혀 들지 않았다. 언제와도 그저 불편하기만 한 곳이었다.
“성하야.”
2층으로 올라가기 전, 나를 부르는 소리에 한 번 더 뒤를 돌았다.
“배고프지? 옷만 갈아입고 내려와. 바로 저녁 먹자. 아빠도 곧 오신댔어. 요즘 연말이라 바쁘다고 맨날 10시 넘어야 오는데 오늘 너 온다니까 일찍 온다는 거 있지?”
아빠라는 말만 들어도 벌써부터 소화가 되지 않는 느낌이었다. 한국에 나올 때마다 딱 한 번씩 마련되는 저녁 식사 자리. 딱 한 번만 참으면 되는데 그것이 쉽지 않았다. 대리석으로 된 딱딱한 식탁에서 아무리 호화로운 음식이 나와도 먹은 후에는 꼭 탈이 났다.
“금방 올게.”
달칵.
2층 맨 오른쪽 문을 열자 완벽하게 정리된 방이 한눈에 들어왔다. 벌써 이 집으로 이사 온 지도 5년이 넘었는데 여전히 새집 냄새가 나는 듯했다. 생활감이 유독 더 느껴지지 않는 이유는 그만큼 내 물건이 없기 때문이었다.
“또 바꿨나 보네.”
창가에 못 보던 커튼이 달려있었다. 내가 없는 동안에도 가끔 이 방에 들어오는 엄마는 항상 주인 없는 방을 조금씩 꾸미거나 바꿔놓곤 했다. 그래서 매번 올 때마다 새로운 물건이 생겨 있었다.
‘뭘 자꾸 사 놔. 주인도 없는 방에.’
‘우리 아들 생각나서. 그리고 주인이 없긴 왜 없어. 여기가 네 방이고 네 집인데. ’
여전히 나밖에 없는 우리 엄마.
그래서 더 알리고 싶지 않았다. 엄마가 사랑하는 그 사람이 얼마나 냉정한 사람인지. 지금이 가장 행복하다는 엄마의 삶을 깨트리고 싶지 않기 때문이었다. 자상한 남편과 모자람 없이 평온한 하루하루를 보내는, 그런 행복한 삶을 살길 바랐다.
소라는 이런 내게 너무 빨리 철이 들었다고 했다. 그래서 안타깝다고. 하지만 나는 다행이라고 생각했다. 눈치를 보고, 기분을 살피고, 누구보다 남의 비위를 잘 맞출 수 있어 참 다행이라고. 그렇지 않았다면 어린 마음에 괜히 삐뚤어져 엄마의 행복을 깨뜨렸을지도 모른다.
“이건 또 뭐야.”
캐리어를 내려놓는 자리에 익숙한 로고가 박힌 쇼핑백 하나가 놓여있었다. 그 안에는 도톰한 겨울 니트 두 벌이 들어있었다. 내가 자주 입는 브랜드였다.
매번 한국에 나올 때마다 감정이 복잡했다. 이렇게 날 기다리는 엄마가 있는데도 이 집에, 이곳에 돌아오고 싶지 않다는 생각이 들 때마다 죄책감이 피어났다.
아. 벌써 돌아가고 싶다.
* * *
여덟 시가 막 넘은 시각, 그 사람이 왔다.
일 년에 딱 두 번밖에 못 보는 얼굴은 볼 때마다 그대로였고, 주름 하나 없는 옷차림도 여전히 완벽했다. 그 사람은 처음 봤을 때도, 지금도, 그저 커 보이기만 했다.
“오셨어요?”
먼저 인사를 건네자 새아버지는 현관 앞에서 머리부터 발끝까지 나를 한 번 훑어본 뒤 한 박자 늦게 입을 열었다.
“왔니.”
목소리를 듣는 순간 숨이 막히는 느낌이었다.
“아! 당신 왔어요? 그렇지 않아도 성하랑 목 빠지게 기다리던 중이었어요. 얼른 옷 갈아입고 와요. 성하 넌 앉아 있어. 상 다 차려놨으니까.”
엄마 손에 이끌려 먼저 식탁에 앉았다. 먹음직스러워 보이는 여러 가지 반찬들이 전혀 눈에 들어오지 않았다. 단지, 중앙에 빈 의자를 보며 잊었던 사실이 떠올랐다.
잊고 있었다. 이런 느낌이었지.
내가 그 사람에게 느끼는 감정은 단순히 미움이나 증오 같은 것이 아니었다. 한 번도 그런 감정을 가져본 적이 없었다. 오히려 어릴 적에는 무관심한 그 사람에게 잘 보이려고 했었다. 어떻게든 사랑받으려고.
하지만 언젠가부터 무관심을 넘어 그 사람의 눈빛에서 미움과 증오가 보였다. 나를 내려다보는 싸늘한 눈빛과 차가운 표정이 머리에 박혀 계속 지워지지 않았다. 그때부터 나는 그 사람이 두려웠다. 이번에는 나를 어떻게 바라볼지, 내게 뭐라고 말할지, 그게 두려워서 얼굴을 보는 것만으로, 목소리를 듣는 것만으로 심장이 덜컹거렸다.
이상한 일이었다. 지금껏 어떤 일에도 당황하지 않고, 어떤 것에도 두려워하지 않았는데 이 자리에만 앉으면 초조해졌다.
참 못났다, 권성하.
“식사합시다.”
언제나 그랬듯 식사 자리는 최악도, 최고도 아니었다. 대화 대부분을 엄마가 이끌었고, 엄마가 무슨 말이나 질문을 하면 중간중간 어색하지 않게 맞장구치거나 대답했다.
그 사람이 내게 건넨 말은 대학은 어떠냐는 한 마디뿐이었다. 절대 궁금하거나 걱정해서가 아닌, 형식적인 질문이었다.
“괜찮아요.”
“그래.”
열심히 하라거나 힘내라는 말은 당연히 돌아오지 않았다.
“아, 맞다. 기준이도 오랜만에 들어왔다고 하지 않았어요?”
“맞아. 지난주에 들어왔지.”
돌연 사례가 걸릴 뻔했다. 안 그래도 불편한 속이 달갑지 않은 이름이 나오자 정말 체할 것 같았다.
강기준.
나의 하나뿐인 의붓형. 그 사람과 비슷한 외모를 하고서 약아 빠진 행동만 하는 사람.
대체 무슨 소리를 어떻게 한 건지 어느 순간 엄마는 나와 의붓형이 굉장히 가까운 사이라고 생각했다. 심지어는 아버지 돈에 의존해 나쁜 짓만 골라 하는 그 사람이 정말 친형처럼 나를 챙겨 준다고 믿었다.
“그동안 우리 성하 챙겨 줘서 고마웠는데, 이번엔 내가 정신없어서 따로 인사도 제대로 못 했어요. 맛있는 거라도 사 줘야 하는데.”
“당신은 그런 것까지 신경 안 써도 돼. 녀석도 제 동생이라 생각해서 한 거지, 뭘 바라고 한 것도 아닌데.”
“그래도요. 지난번에 내가 용돈이라도 주려고 했더니 끝까지 괜찮다고 거절해서 못 줬잖아요. 기억나죠?”
“녀석, 그 고집은 누굴 닮은 건지.”
“당신 닮았겠죠. 강씨 고집이 어딜 가요?”
강 씨가 고집이 센가? 하긴, 강세현도 고집 세지.
그러고 보니 세상에서 유일하게 무서운 존재, 그리고 세상에서 유일하게 싫어하는 존재 두 사람 모두 강 씨 성을 가지고 있었다.
“성하가 시카고로 가서 앞으로 같이 볼 기회도 잘 없을 텐데 넷이 저녁이라도 먹게 당신이 자리 한번 만들어줘요.”
“음, 한번 물어볼게.”
넘어가지 않는 밥알 때문에 입 안이 깔끄러웠다. 조심스레 젓가락을 내려놓고 옆에 놓인 물잔을 들었다.
“벌써 다 먹었어?”
“어, 배불러서.”
“얘가 얼마나 먹었다고 벌써 배가 불러?”
“비행기에서 내린 지 얼마 안 돼서 그래. 오래 타면 소화 잘 안 되잖아.”
“그래도 그렇지……. 혹시 입에 안 맞았던 건 아니지? 밖에서 먹을 걸 그랬나…….”
“아니라니까.”
“그러면 과일이라도 먹어. 사과가 소화에 좋대. 지금 깎아 줄 테니까 먹고 올라가.”
엄마의 기분을 망치지 않기 위해 디저트로 나온 과일을 겨우 입에 욱여넣었다. 고작 한 시간도 되지 않은 저녁 식사가 여느 때보다 길게 느껴졌다. 피곤을 핑계로 일찍 방으로 돌아왔을 때, 시계는 아홉 시를 가리키고 있었다.
곧바로 욕실로 향했다. 오랜 비행으로 찌뿌둥했던 몸이 뜨거운 물에 녹녹하게 풀리자 잊고 있던 피로가 밀려왔다. 그래도 누구 덕에 일등석에서 편히 쉬며 왔기 때문에 다른 때보다 훨씬 괜찮았다.
샤워를 마친 뒤 침대 한쪽에 걸터앉아 멍하니 있었다. 분명 피곤한 것 같은데 시차 때문인지 잠은 오지 않았다.
이렇게 시간이 안 가나.
1초, 2초, 오늘따라 시간이 너무 느렸다. 한참 동안 있었던 것 같은데 고작 1분이 지나있었다.
결국, 한쪽에 던져 놓은 핸드폰을 열어 연락처 목록을 뒤적거렸다. 한국에 나왔다는 걸 알리면 만나자고 할 사람이 꽤 있는데도 연락해 볼까, 망설이기만 하다 그냥 말았다.
드르륵-.
한 30분쯤 지났을까. 흥미 없는 인터넷 기사를 읽으며 지루한 시간을 보내고 있는데 메시지가 왔다. 평소라면 그저 그렇구나, 하고 말았을 메시지가 반가웠다.
강세현: [잘 갔어?]
참 다정하기도 하지.
언제 봐도 정말 어울리지 않는 친절함이었다. 그리고 나는 그 친절함에 익숙해지려 하고 있었다.
나: [당연하지. 너는?]
강세현: [나도]
나: [뭐 하는데]
강세현: [담배]
아. 나도 피우고 싶다.
담배를 싫어하는 엄마를 위해 집에서만큼은 담배를 피우지 않았다. 옷이나 몸에서 나는 냄새로 어렴풋이 알고 있을 테지만 그래도 대놓고 걱정할만한 일을 만들고 싶지 않아 피우지 않았는데, 간혹 잠이 오지 않는 밤엔 좀 곤란했다.
강세현: [너는]
나: [그냥 있어]
답장을 보내자마자 이번엔 전화가 걸려왔다.
- 왜 그냥 있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