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1
9. 고백
권성하
강세현은 좀처럼 내게서 눈을 떼지 못했다. 본인은 자각 못 했겠지만 화난 거로 착각할 만큼 나를 보는 눈빛이 뜨거웠다. 얼핏 보면 화난 것도 같고, 그게 아니면 울음을 터트릴 것처럼 충혈되어 보였다.
“내가 드디어 미친놈이 된 것 같은데.”
……올 게 왔구나. 분명 이다음 말은 어떤 식으로 듣게 되어도 절대 쉽게 넘어갈 수 있는 말은 아니겠지.
대답하기까지 고작 1, 2초. 그 짧은 순간에 오만가지 생각이 다 떠올랐다. 하지만 그런 생각들이 뇌를 거쳐 가는 동안 너무 당연하다는 듯 입이 먼저 움직였다.
“아닐걸. 넌 원래 그랬어.”
지금 상황에서 이게 최선이었나 자신에게 물었다. 하지만 그건 다음 말을 듣기 전까지는 알 수 없었다. 다만, 내 말을 들은 강세현이 생각했던 다음 말을 잊어주길 바랄 뿐이었다.
“……그래.”
강세현은 허탈한 듯 말했다. 그 말에 아, 성공했구나. 다행이다. 진심으로 안심했다. 하지만 그건 아주 잠깐의 착각이었다.
“그렇다면 뭘 해도 상관없겠네.”
예고도 없이 팔을 붙잡혔다. 잡아당기는 힘에 들고 있던 담배가 툭, 바닥으로 떨어졌다. 뜨거운 볼에 서늘한 체온이 닿았다. 그제야 무슨 상황인지 깨닫고 머릿속이 하얘졌다.
단순히 우정을 빙자한 포옹이 아니다. 술에 취해서 그런 것도 아니었다.
놀라다 못해 심장이 멈춘 것 같았다. 맞닿은 상대의 심장은 터질 듯이 빠르게 뛰고 있었다. 쿵. 쿵. 텅 빈 머리로 그 박동만 세고 있었다.
조금 후 상대는 붙잡았던 팔을 풀고 내 어깨를 밀어냈다. 아주 긴 시간 같았지만, 강세현이 나를 껴안은 건 불과 10초 남짓이었다.
손을 뗀 강세현은 아주 태연한 표정으로 웃었다. 마치 오랫동안 미뤄놨던 일을 한 것처럼 개운한 표정이었다.
그 뒷말은 ‘난 어차피 미친놈이니까.’였다.
나는 아주 잠시 멍하니 있다 정신을 차렸다. 피우다 만 담배가 바닥을 뒹굴고 있었다.
“……담배, 저게 마지막이었는데.”
겨우 찾은 대답이 그 말이었다. 그 상황에서 그게 중요하지 않다는 걸 알고 있었으나 도저히 다른 말을 찾을 수가 없었다. 왜 이러냐고 이유를 묻고 나면 다음에 들려올 말이 두려워서 그냥 아무것도 할 수 없었다.
“미안.”
하지만 막상 사과를 받으니 마음이 찜찜했다.
“사과는 안 해도 되는데 담배는 하나 줘.”
강세현은 곧바로 주머니에서 담배를 꺼내 건넸다. 불을 붙이자 입 안에서 박하향이 났다. 그러고 보니 취향 다른 거 하나 있었네. 내가 피우지 않는 담배는 영 맛이 없었다.
“왜냐고 안 물어?”
“물어주길 바라냐?”
그렇게 말하자 강세현은 피식 웃음을 터트렸다.
“역시 모르는 척은 안 하는데 알면서 더 묻진 않네.”
너 같으면 묻겠냐.
일단 지금은 아무것도 묻지 않기로 혼자서 결정을 내렸다. 강세현의 갑작스러운 행동에 당황해서 말도 안 되는 소리를 하고 싶진 않았기 때문이었다. 강세현은 내게 알면서 더 묻지 않는다고 했지만, 사실은 확실하지 않아서 묻지 않는 거였다.
강세현과 나는 한동안 말없이 담배를 피웠다.
다 핀 담배를 끄고 안으로 들어가려는데, 강세현의 향수 냄새가 바람에 실려 왔다. 조금 전 아주 가까이에서 맡았던 향이었다. 이번에도 그런 생각이 들었다.
대체 얼마짜리 향수를 쓰면 이렇게 좋은 향이 날까, 하고.
***
강세현은 그날부터 제대로 미친 것 같다.
왜냐하면, 그렇지 않고서야 이렇게 기이한 행동만 골라서 할 수 없기 때문이다.
“성하야.”
뜬금없이 낯간지러운 목소리로 이름을 부른다든지.
“왜.”
“그냥.”
이유 없이 사람을 불러놓고 빤히 바라본다든지.
이런 행동들을 스스럼없이 했다. 마치 늘 이렇게 지내왔던 것처럼.
“실없긴.”
강세현은 내가 어이없다는 표정으로 볼 때마다 눈웃음을 쳤다. 가끔 한 번씩 미치는 줄로만 알았는데 지금 보니 그냥 미친놈이 맞았다.
하지만 진짜 문제는, 강세현의 이런 뻔뻔한 행동을 내가 거절할 수 없다는 것이었다.
“기현 형이 수요일은 도서관에서 같이 하자던데.”
“요번엔 일찍 시작하네. 다음 주에 시작할 줄 알았더니. 매번 일주일 전에 벼락치기 하지 않았나.”
“이번 학기가 마지막이잖아. 기말 망치면 졸업도 날아간다고 이번엔 벼락치기 안 한대.”
“2주 전에 해도 벼락치기라는 걸 모르나 봐. 모르기도 참 힘든데.”
그저 웃었다. 이런 대화를 할 때는 어디까지나 평범한 친구 사이 같았다.
“너 스케줄 조정은 다음 주뿐이랬지?”
“어.”
시험이 있을 때는 미리 매니저님께 이야기해 스케줄 조정을 하지만, 12월은 워낙 바빠서 기말 때는 중간고사 때처럼 길게 조정하기가 힘들었다. 그래도 다행히 시험 전 주와 시험 기간에는 주중에 일을 뺄 수 있었다.
“내일은 어쩔 거야. 일 가는 날이잖아. 끝나고 올 거야?”
순간 그러겠다고 대답하려다 입을 다물었다. 요즘엔 공부를 핑계 삼지 않고도 강세현의 집에 너무 자주 오는 바람에 조만간 정말로 집세를 부담해야 할 것 같았다.
“오늘 여기서 자고 가니까 내일은 집에서 자야지.”
일요일부터 화요일까지 이틀 연속 자고 갈 때는 언제고 말도 안 되는 이유를 댔다.
역시 좋은 변명이 되지 않은 모양인지 강세현은 삐딱하게 턱을 괴고 앉아 나를 물끄러미 쳐다봤다. 그리고는 아니나 다를까 예상했던 말을 꺼냈다.
“그러면 내일은 내가 갈게.”
“……우리 집에?”
“어.”
“너나 나나 학교가 다운타운에 있는데, 좀 이상하지 않냐?”
“전혀.”
아니야. 이상해, 인마.
내가 학교와 가까운 강세현의 집에서 하룻밤을 보내는 건 말이 되지만, 강세현은 아니었다. 주말이면 모를까, 주중에는 나와 마찬가지로 1시간이나 일찍 일어나 지옥 출근길을 뚫고 학교에 가야 하는데. 도대체 왜 이래.
***
다음 날, 집으로 돌아오자 강세현이 나를 반겼다.
“왔어?”
그 모습이 주인도 없는 집을 혼자서 지키고 있는 개 같았다. 덩치 커다랗고 잘생긴 개.
식탁을 책상 삼아 공부를 하고 있었던 모양인지 둥그런 식탁 위에는 책과 필기구가 놓여있었다. 그렇게 좋은 공부방을 두고 여기서 뭘 하는 거지. 내가 이런 생각을 하거나 말거나 강세현은 날 보며 미소를 지었다.
뭐가 좋아서 저렇게 웃냐.
슬쩍 눈길을 한 번 주고 곧바로 욕실로 들어갔다. 뜨거운 물줄기에 몸을 맡겨봐도 도저히 찜찜한 기분이 사라지질 않았다. 아무리 생각해도 평범한 친구 사이라고 하기엔 이 관계는 어딘가 이상했다.
얼마 전까지만 해도 단순히 좀 자주 보고 많이 만난다, 정도였는데 이제는 똑같은 행동에도 의미가 실렸다. 이게 다 그날 이후부터였다.
바보가 아니고선 모를 수가 없다. 강세현이 왜 저러는지. 최근에 보였던 행동을 곰곰이 생각해 보면 해답이 있었다.
소라뿐 아니라 다른 사람들까지 지나치게 경계한다는 점.
내게 여자친구가 생기는 것을 엄청나게 싫어하고 과거 연애사를 궁금해하는 점.
시도 때도 없이 찾아온다거나 과하다고 느낄 만큼 잘해 준다는 점.
강세현은 마치 나를…… 좋아하는 사람처럼 대했다.
차라리 그냥 대놓고 정신 차리라고 말해 줄까.
몇 주 전까지만 해도 완전히 정상이었다. 여자친구도 있었던 놈이 왜 갑자기 나를 이상하게 보게 된 건지, 대체 무엇 때문인지 감이 오지 않았다. 아무리 생각해도 오랫동안 만났던 여자친구와 헤어지고 그 충격으로 머리가 어떻게 된 것 같다고밖에 볼 수 없었다.
“하아…….”
대체 얼마나 충격을 받아야 멀쩡한 사람이 하루아침에 게이가 되는 거지?
그런 생각이 들자마자 망치로 머리를 맞은 것 같았다. 강세현과 게이라니. 이 얼마나 안 어울리는 단어인가. 역시 그저 잠깐 착각하는 거라고밖에 생각되지 않았다.
샤워를 하고 나가자 앉아서 책을 보던 강세현이 벌떡 일어섰다. 조금 전엔 몰랐는데 이미 식탁 위에는 내가 공부할 자리까지 마련되어 있었다. 어디선가 향긋한 커피 향이 났다.
푹신한 방석이 깔린 자리에 앉았다. 그러자 강세현은 머그컵 두 잔을 들고 왔다. 커피 향의 출처는 바로 여기였나보다. 그런 생각을 하고 있는데 이번엔 접시를 내밀었다.
“자.”
크루아상이었다. 막 전자레인지에 돌려 살짝 말랑해져 있었다.
접시를 내민 손을 따라 고개를 들었다. 이번에도 강세현은 빤히 나를 내려다보고 있었다.
“더 있으니까 먹고 말해. 커피도.”
김이 올라오는 뜨거운 커피를 조심스레 한 모금 마셨다. 어쩐지 익숙한 향이라고 생각했는데, 강세현의 집에서 마시던 커피와 맛이 똑같았다.
“커피, 사 온 거 아니야?”
“내가 내린 거야.”
“……뭘로?”
“뭐긴.”
설마 해서 들여다본 부엌에는 못 보던 커피 머신이 놓여있었다. 아무것도 없는 부엌 선반 위에서 홀로 자신의 존재감을 뽐내고 있었다.
“원두도 가져왔어. 너 좋아하잖아.”
일부러 이러는 걸까.
지난번부터 자꾸 이런 식으로 나를 낚으려고 하는 것 같은데, 만약 그렇다면 성공인 것 같았다.
……미친. 이번에도 잠깐 설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