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돌고 돌아 너-82화 (82/96)

#82

강세현

탁.

“잘 다녀오셨습니까.”

차에 올라타자마자 상대가 그렇게 물었으나 대답할 기분이 아니었다.

“한 비서님.”

“네.”

상대는 내가 자신의 인사를 무시했는데도 깍듯이 대답했다. 그리고 백미러를 통해 나를 힐끔 쳐다봤다.

“저 망할 건물을 어떻게 하면 날려 버릴 수 있을까요.”

하루에도 몇 번씩 같은 생각을 한다. 어떻게 해야 저 낡은 건물이 이 세상에서 영원히 사라져 버릴까.

이런 내 진지한 고민이 무색하게 상대는 너무 쉽게 답을 내놓았다.

“이사님께서 원하시면 언제라도 가능한걸요.”

“…….”

“아시잖습니까. 말씀만 하시면 되는 거.”

그랬지.

이미 3년 전부터 저 건물의 주인은 나였다. 원한다면 언제든지 철거할 수 있었고, 지시만 내리면 복잡한 문제들을 알아서 다 해결해 줄 사람도 있었다. 하지만 도저히 그럴 수가 없었다.

권성하가 너무 기뻐했으니까.

멀리서 지켜보기만 하는 게, 지켜볼 수 없을 때보다 더 괴로울 때가 있었다.

권성하가 쓰러져 가는 빌라 원룸을 구했을 때 그랬다. 내가 지켜본다는 걸 알리면 안 되는 상황인데도 당장 가서 끌고 나오고 싶어 정신이 어떻게 되는 줄로만 알았다.

하지만 결국 참을 수 있었던 건 그런 상황에서도 권성하가 기뻐했기 때문이었다. 다시 한번 혼자 살게 되었다는 단지 그 이유만으로 좁고, 낡고, 허름하기만 한 저곳을 권성하는 좋아했다.

그래서 일부러 쓰러져 가는 빌딩을 사 놓고 그냥 뒀다. 조만간 없애 버려야지, 꼭 그래야지, 그렇게 계속 미루기만 한 게 3년이었다.

이제 와서 그렇게 무른 마음에 게으름을 피웠던 자신을 후회했다. 무슨 수를 써서라도 더 나은 곳으로 옮겨 줬어야 했는데. 어떤 핑계를 대서라도.

실제로 권성하가 저 안에서 사는 꼴을 보고 나니 정말 미칠 지경이었다.

“원래 집주인이 내부 수리했다고 하지 않았습니까?”

“그렇긴 해도 저렇게 오래된 건물은 그것만으로 안 되는 게 많습니다. 벽지랑 바닥처럼 보이는 곳은 바꿔도 건물 시설 자체를 바꾸진 못하니까요. 그러려면 거의 다 뜯어내야 할 겁니다. 그래도 전 주인이 신경 많이 쓴 걸로 아는데, 그렇게 심각합니까?”

“하아……. 일단 추워요.”

추운 거 싫어하는데.

지금이라도 다른 곳으로 데려가고 싶은데 그럴 수 없어서 매일 밤 애가 닳았다. 요즘 나의 최대 고민이었다.

차창 밖을 멍하니 바라보는 동안 내 신호를 기다리던 상대는 내가 그곳에서 눈을 떼자 출발했다. 차는 곧바로 좁은 도로를 매끄럽게 빠져나갔다.

저녁 9시. 매번 같은 시간, 같은 길을 지나는데도 다시 회사로 돌아가는 길은 적응할 수 없었다. 대체 이 헤어짐은 언제쯤 되어야 익숙해질까.

권성하를 지켜보러 가는 길은 항상 설렘, 그리고 다시 멀어질 때는 항상 아쉬움이었다.

“저……. 그런데 이사님.”

“네.”

“궁금한 게 있는데 여쭈어봐도 괜찮을까요.”

“말씀하세요.”

“왜 항상 멀리 떨어져서 내리십니까.”

매번 없는 시간을 쪼개 권성하를 찾아간 지도 벌써 일주일이 넘었다. 대신, 혼자는 아니었다. 언제나 비서를 데리고 다녔다.

‘너 차 가져왔을 거 아냐.’

‘어.’

거짓말을 한 이유는 딱 한 가지였다.

“부담스럽다고 했거든요.”

그것도 많이.

여전히 7년 전 그날 권성하가 내게 했던 말은 토씨 하나 틀리지 않고 기억한다.

“근데 어차피 그분은 이사님 배경 다 아신다고 하셨잖아요.”

“그래서 그럽니다.”

가능하면 그대로이고 싶어서.

전보다 더 부담스러워진 걸 알면 또 멀리 도망갈까 봐.

‘그러면 사람이 그새 엄청 변할 줄 알았어? 너도 여전하면서, 뭘.’

권성하는 내게 여전하다고 했지만, 절대 아니었다.

이제는 너무나 자연스레 남이 운전해 주는 차를 타고 다녔고, 전보다 더 능숙하게 거짓말도 할 줄 알았다.

너에 대해 말할 수 있는 믿을 만한 상대가 있다는 것도 알게 되면 놀라겠지.

7년이란 시간은 너무나 짧으면서도 길었다. 사랑하는 연인을 안고 갈 준비를 하기엔 턱없이 부족한 시간이었음에도 매일 그리워하느라 하루가 무척 길었으니까.

당시 유학을 하는 대신 아버지와 약속했던 건 졸업까지 기업에 해가 가거나 남에게 책잡힐 일을 만들지 않는 거였다. 그야말로 쥐 죽은 듯이 조용히 있다가 졸업장만 들고 한국으로 돌아올 것. 그것이 조건이었다.

당연히 그 안에는 연애에 관한 조건도 포함되어 있었다. 집안에서 인정해 준 이가 아니고선 절대 아무나 만나지 않기로 되어 있었으니까.

나에 관한 기사가 떴을 때, 혹시나 권성하에 관한 내용도 언급됐을까 봐 나보다 그가 먼저 걱정됐다. 우리 관계에 대해 아는 사람은 이 세상에 우리 둘밖에 없다는 걸 알면서도 심장이 덜컥 내려앉았다. 내가 아는 아버지라면 나에 관한 문제는 어떻게든 해결해 줄 테지만, 절대 상대까지 보호해 주지 않을 거라는 걸 누구보다 잘 알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그런 사실을 미리 알고 있었는데도 내 욕심 때문에 시작하고, 끝까지 매달렸던 연애였다.

‘그럼, 우리 헤어지자.’

무슨 일이 있어도 헤어질 생각이 없었던 나에 반해, 권성하는 감당할 수 없는 상황에서 나를 쉽게 포기했다. 그의 입에서 먼저 이별의 말이 나왔다.

그때의 나는 권성하가 무슨 심정으로 그 말을 꺼낸 건지 자세히 알지 못했다. 단지 헤어지자는 말을 쉽게 입에 담을 만한 성격이 아닌 만큼 누구보다 진지하다는 것만 알았다.

그래서 더 받아들일 수가 없었다. 우리가 어떻게 헤어져.

‘부탁이니까 그냥 좀 헤어져 주면 안 되냐. 내가 도저히 감당 못 할 것 같아서 그래.’

하지만 마지막까지 내 욕심만으로 권성하를 붙잡을 수 없었다. 부담스럽다는 말도, 감당 못 하겠다는 말도 다 괜찮은데 부탁이라는 말 때문이었다. 권성하가 그 말을 쓰면 도저히 거절할 수 없었다.

당장 내가 널 위해 해 줄 수 있는 게 없는데 무슨 핑계로 널 잡아 둘 수 있을까.

‘잘 지내.’

아주 잠깐의 헤어짐이라고 생각했다. 그저 시간이 조금 지나 사람들의 머릿속에서 잊힐 때쯤이면 또다시 만날 수 있을 거라고 믿었다.

뭔가 잘못되었다는 걸 알게 된 건 한국에서 돌아와 몇 주가 지났을 때였다.

‘야. 대체 어떻게 된 거야, 성하.’

‘뭐가.’

‘학교 후배가 그러는데 이번 학기에 본 사람이 아무도 없대.’

권성하가 사라졌다. 그것도 말도 없이 완전히 흔적을 지우고.

‘연락되는 사람도 아무도 없어. 이게 말이 되냐? 전화도 끊어졌고, 아파트도 싹 다 정리했더라.’

아파트가 비어있었다. 전화 역시 연결되지 않았다. 주위에 나보다 더 권성하와 가까운 사람이라곤 소라밖에 없었으나 예상대로 내 연락은 전부 무시했고, 다른 번호로 걸어도 마찬가지였다. 마지막으로 생각할 수 있는 건 일하는 곳밖에 없었다.

사장님은 권성하가 바로 한국에 가 봐야 한다며 갑자기 그만두었다고 말했다. 사정을 물어보려 해도 그냥 어쩌다 보니 그렇게 되었다는 식으로밖에 이야기하지 않았다고.

거기서부터는 더 알아 해보려 해도 할 수 없었다. 기사가 난 후로는 관리인에게 일거수일투족을 감시당해 그의 눈을 피해 조사를 할 방법이 없었다.

대체 왜.

헤어지자고 한 사람은 본인이면서 왜 사라진 걸까.

단순한 변덕으로 학교를 휴학할 사람이 아니었다. 나와 헤어졌다고 제 할 일을 내팽개치거나 미룰 사람은 더더욱 아니었다. 그런 사람이 한 학기를 남겨두고 휴학이라니.

무수히 많은 상상을 했다. 혹시 어딘가 아픈 건 아닌지, 혹 내게 헤어지자고 말한 다른 이유가 있는 건지.

미칠 것 같았다.

헤어져도 그저 내가 닿는 곳에만 있으면 된다고 생각했는데, 눈앞에 보이지 않으니 매 순간 초조하게 느껴졌다. 보고 싶었다. 이렇게 보고 싶을 거면서 어떻게 더 붙잡지 않았을까. 생각하면 할수록 후회만 늘었고, 매일 매일 불안함은 더 커졌다.

그렇게 4개월이 지났다. 권성하와 떨어져 있는 그 짧은 시간이 내 인생에서 가장 길었던 기간이었다. 그리고 더 불행한 건, 그 기간이 단지 몇 개월로 끝나지 않았다는 사실이었다.

한국으로 돌아와선 아버지의 뜻대로 곧바로 군대에 가게 되었다. 강제였다.

‘왜 지금이에요?’

‘지금이 적당하니까. 사람들 관심 멀어졌을 때 다녀와라.’

‘하지만-’

‘네 졸업 기다린 기자들이 한두 명인 줄 알아? 좋은 일이든 나쁜 일이든 괜히 사람들 입방아에 오를 생각 말고 바로 다녀와라. 그리고 제대하면 세정이 지금 하는 일 도와. 너도 하루라도 빨리 자리 잡아야지.’

기사는 핑계에 불과했고, 실은 하루라도 빨리 회사에 다니게 하려고 내게 틈을 주지 않을 생각이었다.

그때의 나는 내 의지를 내세울 처지가 아니었기에 어쩔 수 없었고, 권성하에 대해 제대로 알아보지 못한 채 다음으로 기회를 미뤄야 했다. 그때의 선택을 내가 얼마나 후회했는지 아마 아무도 상상하지 못할 것이다.

제대 후, 감시가 뜸해졌을 때쯤 권성하에 대해 수소문했다. 권성하는 군대에 가 있었다. 뒤늦게 모든 걸 알게 되었지만, 그때는 이미 그 옆에 누군가 절실히 필요했던 시기는 지나 있었다.

만약 그 당시 사정을 알았더라도 절대 옆에 있어 주지 못했겠지. 우리의 타이밍은 신이 원망스럽게 느껴질 정도로 빗나갔다.

‘이제 그만 알아볼까요?’

‘아니요. 계속 지켜봐 주세요.’

그래도 포기할 생각은 들지 않았다.

지금껏 단 한순간도, 아주 잠시라도 그런 생각은 해 본 적 없었다.

내가 널 어떻게 찾았는데.

시간이 흘러, 권성하에게 다가갈 날이 가까워질수록 악몽을 자주 꿨다. 돌아갔을 때 막상 내가 설 곳이 없을까 봐. 변해 버린 내가 싫다고 할까 봐.

그런데도 역시 그만둘 생각은 들지 않았다.

아무리 생각하고 생각해도 내 옆에 있을 사람은 권성하밖에 없었고, 권성하의 옆자릴 채워 줄 사람도 나밖에 없었다. 서로를 위해 태어난 것처럼 꼭 맞는 우리가 만날 수 없다는 게 말이나 될까.

결국, 수십 번 수백 번 고민해도 마지막엔 똑같은 결론이 나왔다. 역시 권성하는 나를 좋아하게 될 거라는 결론.

혹시나 이제 싫어졌다면 어떻게든 다시 좋아하게 만들어야지.

오랜 시간 많은 일을 겪으면서 다른 건 전부 변해도, 한 사람을 향한 마음만큼은 조금도 변하지 않았다.

내 머릿속엔 여전히 온통 권성하뿐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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