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화
그러려면 일단….
“농땡이 부리지 말고 얼른 이무기나 찾아!”
요수와 이 정도로 말을 섞은 것도 기적이었다. 평소라면 ‘요수가 감히 말을 걸어?’라는 생각이 들지도 않게 바로 죽여버렸을 테니까.
다시금 선기를 넓게 퍼트리는 동백의 뒤를 따라 걸으며 자오는 팔을 들어 머리 위를 맴돌던 까마귀 한 마리를 불러들였다. 그의 입술이 살짝 열렸으나 목소리는 공기를 울리지 않고 제가 부리는 까마귀에게 흘러들었다.
「이무기는 계속 지켜보도록 해라. 다른 곳으로 가면 귀찮아지니.」
그의 명령을 들은 까마귀는 다시금 하늘로 날아올라 긴 울음을 남기고 날갯짓하며 사라졌다. 그것에 뒤를 돌아본 동백이 삐딱하게 고개를 기울인 채 물었다.
“찾았데?”
“아뇨. 하수도에라도 들어가 있는 모양이네요.”
“온갖 폼은 다 잡기에 찾은 줄 알았네.”
한순간 희망에 부풀었던 동백이 다시금 실망으로 픽 꺼졌다. 온 도시를 제 사기로 덮은 놈이니 분명 이무기가 있는 곳을 알 거라 생각했는데, 막상 들춰보니 도움은 안 되고 자신의 인내심만 시험하고 있는 꼴이었다.
“좀 더 부지런히 찾도록 하죠.”
자오가 눈짓으로 주변의 까마귀 몇 마리를 더 날려 보냈다.
그래도 자신 혼자 이 도시를 들쑤시고 다니는 것보단 빠를 듯했다. 차라리 뭔가 사건이 일어났다면 더 쉬웠을….
…….
드디어 미쳤구나.
동백은 폭주하던 생각에 급브레이크를 걸며 제 뺨을 강하게 내리쳤다. 어디 신선이라는 자가 조금 쉽게 가겠다고 남의 불행을 바란단 말인가.
“왜 혼자 뺨을 치십니까?”
“몰라도 돼.”
얼마나 새게 내리쳤는지 한쪽 뺨이 금방 붉게 부어올랐다. 그 뺨을 하고도 동백은 지루하리만큼 성실하게 제 할 일을 했다. 보통 사람이라면 진즉에 탈진하고도 남았을 거리를 걷고도 동백은 쌩쌩했다. 해 질 녘이 되어 근처 공원으로 들어와 자리를 잡고 앉은 동백에게 자오는 차가운 캔 음료를 건네며 넌지시 말을 걸었다.
“체력이 좋으시네요.”
약간의 감탄이 섞인 말에 동백이 음료를 받으며 눈가를 삐죽하게 추어올렸다. 온종일 입 다물고 뒤를 졸졸 따라다니기에 말을 안 걸 줄 알았더니, 그게 아니라 자연스럽게 말을 걸 타이밍을 재고 있던 모양이었다.
그러나 동백은 자오 못지않게 오래 살아온 만큼 호락호락한 상대는 아니었다. 그는 대답 대신 캔을 따며 자오를 지긋이 노려봤다.
“저와는 한마디도 안 하시려고요?”
“…….”
“정말로?”
“이무기 얘기 아니면 말 걸지 마.”
동백은 미간을 접으며 시원한 이온 음료를 벌컥 들이켰다.
이 대화라는 것은 참 오묘해서 서로를 파악하게 해주는 첫 교두보였다. 말에는 생각이 담기기 마련이라 원치 않아도 상대에게 정보를 넘기는 경우가 많았다.
사소한 취향부터 깊은 생각까지도.
동백은 자오와 그런 교류를 할 생각은 눈곱만큼도 없었다.
“단물만 뽑아먹고 버리겠다니 매정하시네요. 뭐, 하긴. 그러니 잔혹한 요수 사냥꾼으로 불리시는 거겠지요?”
“그래, 지금도 네놈 목을 어찌 칠지 고민 중이야.”
“제 목을 노리는 이들은 많지만 그중에 가장 짜릿한 기분이 들게 해주시네요.”
변태 새낀가.
동백은 자오에 대한 평가를 수정하며 다 먹은 음료 캔을 우그러트려 저 멀리 있는 쓰레기통에 단번에 골인시켰다.
“이무기 얘기 아니면 말 걸지 말랬지.”
“대화 주제가 너무 극단적이에요.”
자오가 상심한 듯 소매로 눈가를 찍었다. 까마귀가 아니라 여우 새끼라고 해도 믿을 다분히 의도적인 몸짓이었다.
“하지만 제가 아쉬운 처지이니 어쩔 수 없죠. 그럼 한 번 선인님이 호기심을 가질 주제를 말해볼까요?”
자오는 옷자락을 뒤로 젖히며 아무렇게나 바닥에 주저앉았다. 긴 머리카락이 바닥에 끌리는 모습에 동백은 반사적으로 튀어나오려던 잔소리를 겨우 참았다.
생기기는 옷에 티끌 한 점 묻히지 않게 생긴 놈이 털털하게 구는 모습이 퍽 생경했다. 게다가 무릎에 바짝 붙어 앉은 탓에 마치 자오가 동백의 다리 사이에 앉아있는 것처럼 보이기도 했다.
그의 두 눈이 켜진 가로등 불빛을 받아 마치 까만 하늘에 뜬 별처럼 반짝였다. 요사스럽고 또한 유혹적으로 웃으며 자오는 동백이 무조건 걸려들 미끼를 드리웠다.
“이를테면…이무기가 하늘에서 떨어진 이유라던가.”
“―!”
움찔.
자오가 무슨 말을 해도 반응하지 않으려던 동백이 반사적으로 몸을 떨었다.
“궁금하지 않으세요?”
궁금했다. 이무기가 날아오를 때를 정확하게 맞추어 이무기를 향해 뱀이라 부를 수 있었던 게 과연 우연에, 우연이 겹쳐 일어난 일이었을까.
동백은 그렇지 않다고 여겼다. 이 세상에 우연이라는 것은 거의 없다. 우연을 가장한 인연의 얽힘만이 존재할 뿐이지.
“원하신다면 알려드릴게요.”
그런 동백을 향해 자오는 기꺼이 제 이야기보따리의 입구를 열었다. 뭔가를 얻으려면 기꺼이 대가를 지불해야 하는 법이니.
“…….”
긴 침묵이 이어지다 마침내 동백이 결정을 내렸다.
“좋아.”
그 대답을 기다렸던 자오는 희미한 웃음이 섞인 숨결을 내뱉으며 두 눈을 길게 휘었다.
◆
대지를 태우는 붉은빛이 하늘을 집어삼키며 넘실거렸다. 칠흑같이 어두운 밤이나, 사방은 눈이 부실 정도로 밝았다. 코끝을 찌르는 혈향은 너무도 지독하여 차마 코를 막지 않고는 못 버틸 정도로 자욱했다.
지옥이 있다면 이런 풍경일까. 온 사방에 인간과 요수의 시체가 마치 산처럼 쌓여 있었다. 그 시체를 태우는 불길이 후끈한 열기를 내며 붉게 물든 눈과 어우러져 일렁였다.
그 사이에서 작은 까마귀는 비로소 눈을 떴다.
아이는 까마귀가 아닌 소년의 모습을 하고 있었으나 자신의 본질이 까마귀라는 것을 누군가 알려주지 않아도 자연스럽게 깨달았다. 그러나 이름만큼은 아무리 애를 써도 전혀 떠오르질 않았다.
그저 본질만을 아는 상태로 그는 그렇게 세상에 태어났다.
까마귀는 그대로 자리에 주저앉아 태어나고 처음으로 맞이하는 일출을 지켜보았다.
어쩐지 무언가 허전한 구석이 있었다.
배고픔인가?
그는 대수롭지 않게 생각하며 맹렬한 불길도 다 태우지 못한 마을을 돌았다. 녹은 눈과 피가 뒤섞여 고인 진창을 맨발로 밟자 족적이 깊게 남았다. 그는 아무도 남지 않은 마을을 돌아다니며 새카만 시체 사이를 손으로 파헤쳤다. 이미 폐허가 된 마을엔 먹을 것이 많지 않았다.
겨우 케케묵은 곡식이 든 작은 단지 하나와 반쯤 썩은 무 하나를 건진 소년은 무의 썩은 부분을 도려내고 멀쩡한 부분을 씹으며 마치 유랑 나온 도련님처럼 다시 한번 마을을 돌아보았다.
다른 이가 보았다면 참혹하기 그지없는 광경이라며 치를 떨었겠지만, 소년의 본질은 짐승이라 그러한 감상 대신 먹을 것이나 더 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작은 마을은 끝에서 반대편 끝까지 도달하는 데 걸어서 채 한 식경이 걸리지 않을 정도로 작아서 까마귀는 자신이 걸어왔던 길을 다시금 돌아보았다.
자신은 왜 이런 곳에서 태어난 걸까.
여전히 풀리지 않는 의문이 이곳저곳에 산재해 있었다.
와삭―
마지막 남은 무 조각을 씹으며 마을에서 야트막한 산으로 이어지는 길을 따라 걷던 소년은 작은 봉분을 발견했다. 이제 막 만들어진 듯 아직 흙엔 촉촉한 물기가 남아있었다.
이런 곳에서 갓 만들어진 무덤이라.
그 특이성이 소년의 흥미를 끌었다. 이 마을 안에 자신 말고도 살아남은 자가 있었다는 게 신기했다.
소년은 옆구리에 끼고 있던 곡식 단지를 내려두고 봉긋하게 솟은 흙더미를 손으로 파헤쳤다. 아직 단단하게 여물지 않은 흙은 아이의 보잘것없는 힘에도 제 속을 쑥쑥 내보였다. 그러나 무덤은 한참을 파도 시체가 보이질 않았다.
뒤늦게 소년은 애초에 이곳에 시체 따위가 묻혀 있지 않았음을 알아차렸다. 이 무덤은 그저 누군가를 기리기 위해 만든 무덤이었다.
이름도, 시체도, 물건도 그 무엇도 남기지 못한 누군가를 위해서 저 환란에서 살아남은 이가 정성을 다해 만든 위안이었음을.
순식간에 흥미가 식었다. 자신이 참혹하게 파헤친 무덤을 바라보던 그는 잠시 내려두었던 단지를 들고 다시 마을로 돌아와 멀쩡한 옷을 구해 입었다.
그는 짐승이라 옷을 입지 않아도 수치를 느끼지 않았지만, 인간의 형상을 하였으니 인간의 법도에 맞춰 움직여주기로 마음먹었다. 비록 자신이 누구이고, 이름은 무엇이고, 어디에서 왔는지. 그 무엇도 알 수 없었으나 그는 제법 자신이 아는 것이 많다고 생각했다.
까마귀는 그렇게 자신이 태어난 폐허를 떠나 꼬박 나흘을 쉬지 않고 걸어 처음으로 인간들의 도읍을 마주했다.
꼬질꼬질하고 피투성이인 까마귀에게 관심을 가지는 이들은 적었다. 오히려 조금이라도 닿을까 봐 저 멀리 피해 다니기 바빴다. 소년은 자신의 행색이 특이할까 걱정했건만 그건 기우였다.
커다란 도읍엔 그와 같은 행색을 가진 아이들이 많았다. 하나같이 굶주려 양 뺨이 홀쭉하고 배는 기이하게 불룩 튀어나온 모양새를 한 아이들은 건물의 그늘 사이에 힘없이 늘어져 있거나, 애처로운 모양새로 구걸하고 있었다.
그들의 앞에 떨어진 몇 푼의 동전을 소중하게 쥐고 혹여 빼앗길까 두 눈을 번들거리며 경계하는 꼴이 까마귀인 본인보다 더욱 짐승 같아 보이기도 했다.
소년은 곡식 단지를 들고 묵은쌀을 씹으며 도시를 돌았다. 끝에서 끝까지 겨우 한 식경이 걸렸던 폐허와 달리 큰 도시는 어린 소년이 몇 날 며칠 발품을 팔아도 다 둘러보기가 힘들 정도로 컸다.
그러나 소년은 그 헛되어 보이는 일정 속에서 도시의 전경을 눈에 담았다. 화려한 건물 사이 드리운 그늘은 도시를 밝힌 빛보다도 짙었다.
부유한 자들은 쥔 것을 빼앗기지 않으려 발버둥 쳤고, 가난한 이들은 죽지 않기 위해 발버둥 쳤다. 궤가 다른 발버둥이지만 한 가지 같은 건 모두 필사적이라는 점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