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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백-9화 (10/61)

9화

二. 그림자 속의 어둠

낡은 건물이 즐비하게 늘어진 좁은 골목. 그러나 각자의 꿈을 지니고 그 꿈을 향해 나아가는 잠룡들이 있는 작은 연못. 자신이 지금 사는 거처에 대한 동백의 담담한 평가였다.

몸을 겨우 누일 정도의 작은 공간은 보통은 쥐 죽은 듯 조용하지만 가끔은 소란스러워지기도 했다. 지금같이 말이다.

“형! 하수구에 빠졌어?”

동백이 허름한 고시원으로 돌아오자마자 그를 반긴 이호영은 그가 그나마 이 고시원에서 친하게 지내는 이들 중 한 명이었다. 이곳에서 지내는 이들은 제 삶을 워낙 치열하게 사는 사람들이다 보니 남들에게 큰 관심이 없는 경우가 많았다. 그러나 이호영은 유독 넉살이 좋고 발이 넓어서 모든 사람과 두루두루 친하게 지내는 편이었다.

녹봉을 받기 위해 고시를 준비하는 이들은 그 성질이 유독 예민하고 사나운데 이호영 앞에서는 성질을 죽일 정도이니 그의 친화력이 얼마나 뛰어난지 보여주는 방증이었다. 그 뛰어난 친화력은 어김없이 동백에게도 발휘되어서 이호영은 유독 동백에게 격 없이 친근히 굴었다.

“으아 장난 아니다.”

코를 틀어막은 호영이 유난을 떠는 것에 동백은 팔을 들어 킁킁 냄새를 맡았다. 코를 찌르는 악취는 물이 마르자 묘한 물비린내와 합쳐져 더 기괴한 냄새를 내뿜었다.

“며칠 외박하는 것 같더니 대체 뭘 하고 다니는 거야?”

“도를 전파하고 왔는데?”

동백은 도를 닦아 선경에 오른 신선이고, 그가 걷는 길이나 행하는 행위가 바로 도(道)이니 태상이 들었다면 기발한 농담이라고 무릎을 탁, 쳤을 만한 농담이었다. 그러나 이호영은 그 농담에 얼굴이 새하얗게 질렸다.

“…형.”

검집을 풀어 공용 공간에 놓인 식탁에 올려두던 동백이 호영의 반응에 피식 웃었다.

그래. 바로 이게 지금 시대에 맞는 정상적인 반응이지.

“혹시 낯선 사람들이 다가와서 인상 좋다고 하지 않았어? 막 이상한 곳으로 끌고 가서 제사상 차려놓고 절하라고 하진 않았고?”

“낯선 놈이 다가와서 이상하게 치근덕대긴 했어.”

동백은 목을 조이는 넥타이를 풀며 자오를 떠올렸다. 여전히 자오가 자신에게 다가와 제 이야기를 구구절절 늘어둔 이유는 모르겠지만, 한 가지 확실한 건 앞으로 꽤 귀찮아질 것 같다는 거였다.

“쫓아냈어?”

“응.”

“잘했어! 사기꾼 새끼들은 쳐다도 보지 마. 길거리에서 누가 인상이 좋다던가, 영혼이 맑다던가 이상한 소리 하면 말도 걸지 말고 도망쳐. 아주 악질적인 놈들이야. 남의 돈을 어떻게든 기생충처럼 가져가려는 놈들이고.”

아주 고질적인 사기 집단이라며 피해자들을 대변하듯 열정적으로 욕하는 호영의 모습에 동백은 마치 같이 욕을 먹고 있는 듯 묘한 느낌을 받았다.

“그런 놈들이 다가오면 일단 나한테 전화를…. 아! 형 핸드폰 없지 참. 이참에 핸드폰 하나 마련해. 불편하잖아. 요즘 핸드폰 없는 사람이 어디 있다고.”

“…글쎄.”

애초에 핸드폰이라는 게 발명되기 전에도 살아왔던 동백은 새로운 연락 수단의 부재에도 큰 불편함을 느끼진 못했다. 다만, 동백과 연을 맺은 평범한 이들이 불편함을 호소할 때마다 약간 미안해질 따름이었다.

자신은 외부에서 온 외국인도 아니고 이 나라의 국민도 아니다.

그는 아무것도 존재하지 않았고 어디에도 소속되지 못했다. 핸드폰을 가지려면 남의 명의를 가져와 써야 하는데 그런 불법은 동백이 선호하는 방법이 아니었다.

“형은 가끔 보면 옛날 사람 같다니까.”

“난 옛날 사람 맞아.”

자신도 모르게 예리하게 내뱉은 이호영의 말에 동의하며 동백은 벗은 정장 재킷과 검을 챙겼다. 방에 들러 갈아입을 옷을 챙겨 근처 목욕탕에 갈 생각이었다.

여긴 다 좋은데 샤워 시설이 따로 없어서 불편했다. 그렇다고 옮기자니 이호영이 마음에 거스러미처럼 걸렸다.

동백은 방으로 돌아와 겨우 한 명이 누울 수 있는 작은 침대 옆 공간을 더듬거렸다. 비상금을 남겨둬서 다행이지, 아니었으면 이 꼴을 하고 금을 팔러 다녀와야 할 뻔했다.

옷을 챙기고 방을 나오자 여전히 공용 공간에 앉아 아임튜브(I’mTube)를 보던 호영이 동백의 목적지를 안다는 듯 자연스럽게 인사를 건넸다.

“목욕탕 가는 거지? 잘 다녀와.”

“같이 갈래?”

“아니, 형이랑 가면 자존심 상해서 안 돼.”

동백의 제안에 호영이 정색하며 시선을 핸드폰 화면으로 돌렸다. 단호한 거절 의사였다. 동백은 낡은 건물의 계단을 내려오며 호영과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목욕탕에 갔을 때를 떠올렸다. 호영이 같이 씻으며 자신의 몸을 보고 감탄하긴 했으나 그것뿐이었다.

…딱히 별문제 없었던 것 같은데.

아무리 생각을 더듬어 봐도 문제가 되는 점을 찾을 수가 없었다. 멍하니 걷는 사이 목욕탕에 도착한 동백은 값을 치르고 수건 두 장을 받았다. 요즘은 작은 목욕탕이라도 찜질방이 붙어 있는 경우가 많은데 여긴 말 그대로 목욕만 할 수 있는 곳이라 좀 아쉬웠다.

이러나저러나 거처를 옮기는 게 가장 나은 해결법이지만 말했다시피 이호영이 마음에 걸렸다.

잘그락.

번호가 쓰인 플라스틱이 달린 열쇠를 받아 든 동백은 제 번호를 찾아 헤맸다.

187번…. 187번이….

안내판을 따라 움직이던 동백은 금방 제 번호를 찾아 차곡차곡 옷을 벗었다. 퀴퀴한 냄새가 나는 옷을 로커 안에 넣던 동백은 들고 온 새 옷을 들고 고민했다.

이걸 이대로 같이 넣으면 새 옷에 냄새가 다 밸 테고 그럼 목욕탕까지 온 이유가 반절은 사라지는 셈이었다.

로커를 하나 더 쓸 수 있다면 좋을 텐데….

동백이 골똘히 고민에 빠진 사이 그의 뒤쪽으로 희미한 인기척이 파고들었다.

“제 로커에 넣어드릴까요?”

순간 뒤에서 벽도화 향기가 훅 밀려들었다.

“너―!”

“정확히 사흘 만에 다시 뵙네요. 도…선인님.”

천연덕스러운 자오의 인사에 동백이 검집을 움켜잡았다. 반쯤 드러난 검신이 서늘한 빛을 반짝였다.

“여기서 검을 휘두르시려고요? 배상금이 만만찮게 나올 텐데요.”

동백의 위협에도 자오는 긴 머리카락을 하나로 높게 묶고 호박색 허리띠를 풀고 있었다.

“……너 대체 나랑 뭘 하고 싶은 거야?”

“음…글쎄요? 지금은 그냥 대화 정도?”

어쩐지 지끈거리는 머리에 동백이 관자놀이를 손으로 꾹꾹 눌렀다. 이놈은 분명 그가 기척을 느끼지 못할 만큼 멀리서 지켜보고 있다가 목욕탕에 들어가는 걸 보고 나서야 뒤따라 들어왔을 터였다.

다른 사람들이 있어 함부로 날뛰기도 어렵고, 동백은 지금 당장 씻어야 하는 처지이니 자오를 피해 자리를 뜨기도 애매했다.

영악한 놈.

짜증이 날 정도로 영악한 한 수였다.

동백은 새 옷을 자오에게 넘기면서도 두 눈을 부리부리하게 치떴다. 조금이라도 허튼짓하면 주먹질이라도 불사하려 했는데 자오는 옷을 받아 로커에 넣곤 열쇠로 잠글 뿐 아무것도 하지 않았다.

긴 머리카락이 단단한 어깨를 지나 치골을 덮고 그 아래 허리엔 수건 한 장이 아슬아슬하게 걸려 있었다. 근육이 적절히 붙은 유려하고 아름다운 몸이었다. 자신보다 더한 괴력을 내려면 좀 더 우락부락한 근육을 가지고 있을 거라고 생각했는데, 동백의 예상과는 퍽 달랐다.

“그렇게 보시면 아무리 저라도 좀 부끄러운데요.”

“…흥, 그럭저럭 봐줄 만하네.”

동백은 수건을 챙겨 자오를 지나쳤다. 자욱한 수증기가 들어찬 욕탕 안은 평일 오전인지라 사람 하나 없이 한적했다. 텅텅 비었으니 자신이 원하는 자리 어디든 쓰면 될 텐데 자오는 동백의 뒤를 졸졸 따라다녔다.

바로 옆의 샤워부스, 같은 탕, 심지어는 옆자리에 앉아 동백이 씻는 꼴을 물끄러미 쳐다보고 있었다. 물에 쫄딱 젖어서는 비누칠도 안 하는 꼴을 보니 복장이 터졌다.

“…야.”

설마 물만 묻히고 나갈 생각이냐. 라고 물으려던 동백은 괜한 오지랖이라는 생각에 다시 입을 꾹 다물었다.

동백이 바지런히 씻는 동안 자오는 턱을 괴고 그런 동백을 그저 잠잠한 눈으로 바라보았다. 메마르나 끝없이 상대를 살피고 파헤치고 싶어 안달이 난 까만 눈이 단단한 몸 위에 새겨진 희끗희끗한 흉터들을 발견하고 사르르 휘었다.

“몸에 흉터가 많으시네요.”

신기하네.

뒤이어 중얼거린 목소리는 노골적인 호기심을 담고 있었다.

“보통은 등선하면 모두 사라지지 않나요?”

보통은 그렇겠지.

머리의 거품을 씻어내기 위해 샤워기로 물을 끼얹으며 동백은 말이 되지 못한 대답을 입안에서 굴렸다.

우화등선.

번데기가 나방이 되어 날아오르듯, 사람 또한 날개를 달고 신선이 되어 선경에 이르는 경지. 그러나 하늘에 닿기 위해서는 땅에 속박되어 있던 육체를 버려야만 했다.

육체를 벗어난다는 것은 곧 죽음이라. 그 과정에서 신선은 몸에 새겨진 모든 상흔과 흉터를 지워냈다. 영원을 살기 가장 완벽한 상태가 되어 하늘에 오르는 것이다.

그럼에도 동백의 몸은 수많은 흉터로 덮여 있었다. 제법 큰 상처부터 자잘하게 흰 흔적만 남은 상처까지 크기도 위치도 다양했다.

이 흉터들은 동백이 끝없는 생을 살아온 투쟁의 역사와도 같았다. 나무의 나이테처럼 그가 성장해 나간 발자취이며 때론 슬픈 사연을 담기도 하고, 때론 기쁨을 담은 기억의 흔적이었다.

자오의 시선이 수많은 흉터를 훑다 비로소 옆구리에 커다랗게 남은 흔적에 닿았다. 지금은 전부 다 나았지만, 다쳤을 당시엔 옆구리 전체가 거칠게 뜯겨 나갔을 그런 흉터였다. 새롭게 올라온 살은 우둘투둘 고르지 못했고 흰 눈밭 같은 본래의 살결에 비해 붉은빛이 돌았다.

“선인님.”

여전히 대답은 없었으나 동백의 시선이 힐끗 자오에게 닿았다.

“저번에는 제 이야기를 들려 드렸잖아요.”

비록 중간에 동백이 끊어버렸지만 자오는 자신이 태어났을 무렵 이야기는 그때를 제외하고 단 한 번도 입 밖으로 낸 적이 없었다. 지금까지 굳이 누군가에게 떠들 필요를 느끼지 못했다는 게 더 옳은 표현이리라.

“그러니 이번에는 선인님의 이야기를 들려주시는 건 어떠세요?”

자오의 목소리가 워낙 가벼운 탓에 그가 던진 제안도 가벼운 제안처럼 들렸다. 되면 좋고, 안되면 어쩔 수 없는 그러한 가벼움. 그래서 자오는 큰 기대는 하지 않았다. 동백은 자신에게 계속 적대적이었으니 무시로 일관할 수도 있다고 여겼다.

“한 가지만 묻자.”

그래서 갑자기 들린 목소리에 자오는 제가 환청을 들은 줄만 알았다. 그도 그럴 것이 깊게 가라앉아 감정을 절제한 목소리는 소년에 가까웠던 평소 목소리와 굉장히 판이했다.

“그때, 내게서 뭘 훔쳐본 거냐.”

처음 자오가 동백을 마주했을 때 파고들었던 틈은 수많은 기억이 산재한 곳이었다. 비록 그것이 파편뿐일지라도 동백은 조금도 밖으로 내어두지 않을 그런 기억들이었다.

자오는 동백의 물음에 자신이 보았던 광경을 떠올렸다.

끝없이 펼쳐진 겨울은 타인의 생명을 머금고 붉게 빛났다. 머리 위에서 내리쬐는 태양은 그 온기를 전혀 나누어주지 못한 채 그저 의미 없는 빛을 내어주었다.

그곳에서 자오는….

“붉은 겨울에도 지지 않는, 동백을 보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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