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2화
요수들 사이에서 동백에 대한 소문은 흉흉하기만 하지, 그가 술법을 잘하지 못한다는 사실까지 알려지진 않았다.
당연하다.
치명적인 약점이 될 수 있는 일을 떠들고 다닐 일도 없거니와 그 사실을 알고 있는 놈들도 동백이 전부 모가지를 쳐버렸으니까.
그런데 갑자기 등장한 선동꾼이 동백이 술법에 서툴다는 사실을 언급했다니. 그 자체는 이 사건에 선경이 관련되어 있다는 증거가 되어 그의 목을 옥죄었다.
“그 외에 그 선동꾼에 대해 알고 있는 건 없습니까?”
“더, 더요?”
자오의 요구에 어둑서니가 버벅대며 필사적으로 머리를 굴렸다. 조금이라도 살 확률을 높이기 위해 여기서 뻗대고 목숨을 두고 거래를 하는 게 맞는지, 아니면 기분을 거스르지 않기 위해 빠릿빠릿하게 대답을 해야 하는지. 두 가지 대안을 두고 맹렬히 고민하던 어둑서니는 곧 결정을 내렸다.
“있습니다! 있고말고요!”
두 사람의 기분을 거스르지 않기로.
“가까이서 보니 느낌이 특이했습니다. 당최 요수인지 요괴인지 아니면 신선인지 구별할 수가 없었어요. 그냥 인간처럼 보이기도 했고요.”
그들의 본질은 결국 품고 있는 기운에 의해 갈리는 법이었다.
요수와 요괴는 사기를, 신선과 영물은 선기를 그리고 사람은 사기도 선기도 그 무엇도 품을 수 있었다.
그런데 요괴가 그걸 구별할 수 없다?
말도 안 되는 일이었다. 게다가 사람이 혈화라는 동백의 별명을 알고 있는 것 또한 말도 안 되는 일이었고 말이다.
동백이 조용히 검파에 손을 올렸다. 그 작은 행동에 어둑서니의 어깨가 크게 튀었다. 감정이 느껴지지 않는 시선이 겁에 질린 어둑서니를 쓱 훑었다.
“거, 거짓말 아닙니다!”
“그럼 그놈은 어디로 갔어?”
“그…그것까진 잘….”
본심을 가늠하듯 어둑서니를 살피던 동백은 검을 놓았다. 아무래도 반응을 보아하니 거짓말은 아닌 듯 보였다.
“알아낼 건 다 알아낸 것 같은데…. 어찌할까요? 죽일까요?”
자오가 냉큼 투갑을 불러들였다. 담묵빛의 날카로운 발톱이 금방이라도 어둑서니에게 달려들 듯 바짝 날을 세웠다.
평소라면 바로 죽여버렸을 텐데.
동백은 고민했다.
그 선동꾼은 대체 무엇을 위해서 이 어린 어둑서니를 사지로 몰아넣은 걸까. 게다가 놈이 선경과 어떠한 관계가 있다는 건 확실해졌다. 동백이 술법을 잘하지 못한다는 걸 아는 건 지금 시점에서는 선경에 있는 이들과 자오 정도였다.
아, 하나 더 추가되어 이 이름도 없는 어린 어둑서니도 있겠네.
그는 검파를 만지작거렸다. 그때마다 어둑서니는 금방이라도 숨이 넘어갈 것처럼 히끅거리며 눈물을 뚝뚝 떨궜다.
일단 어둑서니를 잡은 이상 죽이는 건 쉬웠다.
하지만 그건 너무 쉽지.
선동꾼 놈이 무슨 꿍꿍이인지도 모르겠고.
그는 입술 끝을 비스듬하게 끌어올렸다.
마땅히 자신과 싸우고 싶다면 그리해주는 게 도리이리라.
그러려면 우선 예상외의 행동으로 보답해 주면 충분할 것이다.
“흐음…. 살려줄까?”
동백의 입에서 떨어진 희망적인 말에 어둑서니가 두 눈을 부릅뜨며 넙죽 엎드렸다.
“사, 살려주세요! 그래만 주신다면 다시는 이 근처에 얼씬도 하지 않겠습니다!”
정말 살려만 준다면 평생 동백이 있는 방향은 쳐다도 보지 않을 것이라고 다짐하고 또 다짐했던 어둑서니는 돌아온 대답에 어리벙벙하게 눈을 끔벅였다.
“아니, 계속 세운동에 있어.”
“…네?”
“내 영역에 터를 잡으라고.”
“……네?”
여전히 동백의 말을 이해하지 못한 어둑서니가 커다란 두 눈을 깜빡였다.
“그럼 살려줬으니까 내가 네 생명의 은인이네?”
“그, 그게 그렇게 되나요?”
“그렇지. 내가 네 생명의 은인이지. 저놈을 봐라. 저 흉흉한 발톱에 네 몸이 버티겠니.”
몸을 숙여 어둑서니의 어깨에 팔을 걸친 동백이 자오를 가리키며 숙덕거렸다. 자오는 그 숙덕거림에 눈치 빠르게 동조해 보란 듯 제 투갑을 절그럭거리며 움직였다. 꽤 위협적인 모습에 겁을 집어먹은 어둑서니의 어깨가 크게 움츠러들었다.
“은인에겐 은혜를 갚아야 도리지. 안 그러냐? 까마귀야.”
“그렇죠. 당신도 그리 생각하지 않습니까?”
“그렇습니다. 두 분의 말이 다 맞고 말고요!”
여기서 ‘아니요’라고 답한다면 동백의 검에 목이 떨어지거나 자오의 손아귀에 갈기갈기 찢겨나갈 판이었다. 어둑서니는 반쯤 울며 겨자 먹기로 맹렬히 고개를 끄덕인 채 답했다.
동백은 그런 어둑서니의 대답이 마음에 든 듯 가벼운 웃음을 흘리며 어깨를 툭툭 두드렸다.
“좋아. 앞으로 내가 부르면 재깍재깍 달려오는 거 알지?”
“……네, 네?”
“세운동에 터를 잡았어도 함부로 경거망동해선 안 된다는 것도 알 테고.”
“……”
“내가 자리를 비우면 이제부터 세운동은 네 영역이니 잘 지켜야 한다. 알겠지?”
“…….”
“어째 대답 소리가 잘 안 들리네?”
“…크흑, 네….”
만족스러운 대답을 모두 끌어낸 동백은 손가락 끝을 가볍게 물어 피를 내었다.
고작 말만 믿고 이 요괴를 밖에 자유롭게 풀어 둘 생각은 없었다. 작은 제약 정도는 있어야 말 잘 듣는 경비견으로 쓸만하리라.
손가락에서 흐른 피는 허공을 쓱쓱 가로지르는 동백의 손길에 따라 술법의 진을 이루며 아롱거렸다. 그 진을 확인한 어둑서니의 안색이 핼쑥해졌다.
“이게 뭔지 아나 봐?”
마지막 진에 점을 찍은 동백이 어둑서니의 표정을 확인하고 싱긋 웃었다.
“알면 잘하자?”
동백의 손짓에 아롱거리던 술법의 진이 어둑서니에게 깃들었다. 동시에 어둑서니의 목엔 선명한 붉은 줄이 떠올랐다. 목 전체를 동그랗게 감싼 붉은 줄은 동백이 술법을 풀 때까지 유지될 증표 중 하나였다.
목줄도 채웠으니 이제 다시 풀어놔 볼까.
선동꾼이 뭘 원하든 그놈이 원하는 대로 끌려다니진 않을 생각이었다. 동백이 두는 첫 번째 수는 이 어린 어둑서니를 죽이지 않고 풀어둔 다음, 세운동에 남겨두는 것이다. 술법으로 묶어 자리를 비울 때 경비견으로도 쓰고, 선동꾼의 반응도 보고. 이것이야말로 일거양득이었다.
“그럼 이제 가 봐.”
동백이 휘휘 손을 저으며 자신을 내쫓자 잠시 망설이던 어둑서니는 쏜살같이 그림자로 숨어들었다.
그래봤자 부르면 다시 와야 할 텐데.
동백이 피식 웃으며 금세 사라진 기척의 끝을 쫓았다. 그런 동백을 지켜보던 자오는 투갑을 검은 연기로 흩어 버리며 짐짓 놀랍다는 목소리를 내었다.
“놈을 살려주실 줄은 몰랐습니다.”
“너 같은 것과도 손을 잡았는데, 그 어린놈 하나 더 살린다고 해서 뭐가 문제겠어.”
토사구팽이라는 말이 있지 않은가. 동백은 태연한 낯으로 자오를 마주하며 지금은 살아 돌아간 어둑서니를 향해 조용히 칼을 갈았다.
사냥이 끝나면 쓸모를 다한 사냥개는 뜨거운 솥으로 들어가야 하는 법.
눈앞의 자오도 마찬가지였다.
그럼 이놈은 토사오팽(兎死烏烹)인가.
동백이 솥에 들어가는 까마귀를 떠올리곤 피식 웃었다. 지금은 꽤 유용하니 제게 덤벼든 다른 토끼를 잡은 후에 삶아버리면 되었다. 동백의 속내를 아는지 모르는지 자오는 의미를 파악하기 힘든 모호한 웃음을 입가에 그림처럼 그린 채였다.
“선인님은 의외의 모습을 자주 보여주십니다. 소문으로는….”
“융통성이 없다고?”
자오는 대답 대신 웃음으로 긍정을 표했다.
혈화는 요수나 요괴에게 융통성 따위 전혀 없다는 소문이 파다했다. 그러나 실제로 자오가 만난 동백은 무척이나 유연하고 부드러운 사고를 지니고 있었다.
목표를 위해서는 요수인 저와 손을 잡을 수 있을 정도로.
“제게 먼저 같이 이무기를 잡자 하실 줄은 몰랐거든요.”
“내 사사로운 감정이 공적인 일보다 우선 되어선 안 돼.”
동백의 말에 자오는 자신에게 화를 내던 동백을 떠올렸다. 그때 당시엔 동백이 화를 내는 이유를 아주 단순하게 생각했었다.
단순히 이무기가 있는 곳을 말하지 않고 자신을 기만해서 화를 냈다고, 그리 여겼었는데….
이 신선님은 생각보다도 훨씬 더 복잡한 사고를 지닌 모양이었다.
작은 머리에 품은 생각도, 그와의 관계도.
그야말로 정직하고 곧은 신선의 표본이 아닌가.
자오의 두 눈이 호선을 그렸다.
여러모로 참으로 흥미로운 존재가 아닐 수 없었다.
어둑서니를 살려 보낸 것도 선동꾼을 잡기 위한 포석임을 짐작하며 자오는 모른 척 물었다.
“그럼 지금 어둑서니를 살려 보내신 것은요?”
“성동격서이지.”
또한, 이이제이이고.
동백은 어둑서니가 세운동에 있음으로써 얻는 이득을 생각하며 빙그레 웃었다.
“선인님의 계획에 제 자리가 있습니까?”
“군사(軍士) 자리라면 있지.”
“그럼 군사(軍師)가 좋겠군요.”
같은 발음이나 미묘한 차이가 느껴지는 자오의 말장난에 동백의 눈썹이 솟았다.
“가서 병법이나 더 읽고 와.”
“질리도록 읽었는걸요.”
“나보다 더 읽진 않았을걸? 한때 엄청나게 읽었었거든.”
제가 글을 읽으면 동생은 그걸 창밖에서 훔쳐 듣곤 했었다. 스스로 서책을 읽는 건 질색하고 잡아다 서안(書案) 앞에 앉혀두면 한 식경도 되지 않아 도망치던 녀석은 동백이 책을 읽는 소리를 좋아했다.
나긋하고 부드러워 듣기 좋다고 했던가.
그런 동생에게 조금이라도 서책의 내용을 들려주려 이미 읽었던 책을 종일 소리 내 읽기도 했었다. 그게 조금이라도 동생에게 도움이 됐으면 좋으련만, 지금 생각해 보면 그랬을 것 같진 않다.
미련한 놈은 아니었으니 어련히 알아서 잘 살았을 테지만 말이다.
동백은 자연스럽게 고시원에 있을 이호영을 떠올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