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0화
저게 진짜 미쳐버렸나? 이제 진짜 막 나가기로 마음먹은 건가?
처음엔 그래도 좀 점잖게 굴더니 이젠 아주 생떼를 부리며 어깃장을 놓고 있었다.
쿵쿵!
“선인님!”
연신 문을 두드리는 소리에 동백이 신경질적으로 소리쳤다.
“야! 네 방으로 꺼져! 옆방이잖아!”
“선인님이 문고리 부쉈잖아요!”
“이 게으른 놈! 그걸 아직도 안 고쳤어?!”
그게 벌써 일주하고도 사흘 전이건만 왜 아직도 부서져 있단 말인가. 고쳐도 벌써 고쳤어야지! 방에 아무리 가져갈 게 없다 해도 문단속도 전혀 안 하고 다녔다고?
요수라는 게 나보다 더 사람을 믿고 자빠졌네!
“몰라요! 저 혼자 있다가 귀신이라도 나오면 어떡해요!”
자오의 말에 동백이 헛웃음을 지었다.
모습이 어려졌다고 아주 꼴값을 떤다. 내용물은 그대로인 게 포장지 좀 바꿨다고 지가 아주 어린애인 것처럼 구니 어처구니가 없었다.
“야 인마. 너도 양심이 있으면 생각을 좀 해봐라. 얌전히 제 갈 길 가던 귀신이 널 만나는 게 더 불쌍한 거 아니냐?”
원한이 깊어 저승에도 가지 못하고 가엽게 지상을 맴도는 귀신이 가여우면 가여웠지, 저놈은 전혀 가엽지 않았다.
“제가 무서워할 수도 있는 거잖아요?”
“퍽이나 그렇겠네. 오히려 널 보고 귀신이 혼비백산하여 도망치겠다.”
동백은 문밖이 잠잠해졌어도 쉬이 의심의 끈을 놓지 못했다. 저 찰거머리 같은 놈이 이대로 포기할 리 없었다. 제 목표를 위해서는 수단과 방법도 가리지 않을 악독한 놈이니 이대로 물러서는 건 자오의 성미와 어울리지 않았다.
그러니까.
쿵!
“선인님.”
이렇게 숨겼던 발톱을 꺼내고 제 성질머리를 드러낼 때가 됐다는 거다.
“제게 이러시면 곤란하죠.”
“내가 지금껏 살면서 곤란의 뜻을 잘못 알고 있었냐.”
주먹질 한 방에 부서질 얇은 나무문 한 짝을 사이에 두고 신선이 거침없이 빈정댔다. 손짓 한 번에 부술 수 있는 문에 가로막혀 들어오지도 못하는 놈이 협박하는 꼴이란.
신선답지 않은 비열한 미소를 흠뻑 머금었던 동백은 곧 이어진 자오의 말에 형편없이 얼굴을 일그러트렸다.
“호영 군에게 이를 겁니다.”
“이게 까마귀가 아니라 간을 배밖에 두고 다니는 토끼 새낀가?”
자꾸만 자신의 영역을 넘어오려는 자오를 향해 동백이 한껏 이를 드러내고 으르렁거렸다. 자신이 호영에게 유별나게 관대하고 너그럽다는 걸 안다. 그게 어쩔 수 없다는 것도 알고.
그런데 그걸 이용하려 들다니.
동백은 자꾸만 호영을 통해 이득을 취하려는 놈이 달갑지 않았다.
“그래, 뭘 가지고 이를 건지 한 번 들어나 보자.”
놈이 못마땅하긴 해도 그저 허황된 협박은 아닐지라 동백은 반사적으로 검을 움켜쥐었다. 그의 적갈색 눈동자가 창문이 존재하지 않는 좁은 방의 어둠 속에서 붉게 반들거렸다.
“일단…. 방에 좀 들어가도 될까요? 다리가 좀 아프네요. 특히 허벅지가 뜨끔거리는 것이 머리도 좀 어지러운 것 같고.”
“생채기 가지고 유난 떨지 마라.”
“조금 더 깊이 베였다면 다리가 잘렸을….”
“안 잘렸으니 생채기지.”
자오의 말을 냉큼 잘라먹은 동백은 그가 말을 비비 꼬아 내뱉기 전에 먼저 선수 쳤다.
“그래서, 그거 가지고 호영이한테 이른다고?”
“저 같은 약한 아이를 이리 방치해 다치게 했다 하면 착한 호영 군은 선인님께 분명 실망하겠죠. 그럼 제 마음도 심히 좋지 않을 겁니다.”
말 한마디 한마디가 아주 주옥같구나.
어디서부터 지적해야 할지 모르겠지만 일단 자오는 ‘약한 아이’가 아니었고 동백이 곤란해진다고 해서 저놈의 마음이 ‘심히 좋지 않아질’ 리 없었다.
거짓말투성이인 문장 중 오직 진실한 건 호영이 실망한다는 점 하나뿐이었고 사실은 그게 제일 중요했다.
“꼭 그렇게까지 해서 들어오려는 이유가 뭐야?”
동백은 자신의 방을 가볍게 둘러보았다. 창문이 없어 빛도 들지 않는 좁은 방은 낮에도 불을 켜지 않으면 캄캄했다. 환기가 제대로 되지 않아 벽지 구석엔 곰팡이가 피었고 텁텁한 공기가 가득 차 있었다.
사용할 일이 없는 작은 책상 하나와 스프링이 망가진 낡은 침대 하나. 약간의 옷가지와 별 쓸모를 가지지 못하는 작은 나무 조각 하나가 동백이 가진 전부였다.
“그렇게 기를 쓰고 들어와봤자 네가 흥미로워할 만한 건 전혀 없어.”
자오는 낮은 웃음을 흘렸다.
“그건 직접 보지 않으면 모를 일이죠.”
“후우…….”
웬만하면 개인 공간에는 절대 들이고 싶지 않았건만.
깊은 한숨을 내쉬며 동백이 문을 열자 자오는 방 안으로 냉큼 들어왔다. 작은 머리가 바쁘게 움직이며 방안을 훑었다.
“이제 됐냐? 볼 거 없는 방 다 봤어?”
“저랑 비슷하네요.”
“똑같은 방이니까 당연하지.”
동백의 핀잔에 자오는 짧게 고개를 가로저었다.
“방의 구조를 이야기하는 게 아니라…. 짐이 거의 없으시군요.”
조사상으론 동백이 여기에 머문 것은 적어도 2년 이상이었다. 2년 전 호영과 이곳에서 만나기 전부터 여기 지냈으니 따지고 보면 거의 3년을 이곳에서 지냈단 소리였다.
자오는 방의 중앙까지 들어왔다. 낮아진 시야로 책상 위에 놓인 손때가 묻어 반질반질한 작은 조각상이 걸렸다.
“저건….”
방금 전 동백의 기억에서 보았던 그 조각과 흡사했다. 자오가 보았던 조각은 정말로 조악했는데 그나마 저것은 그럭저럭 봐줄 만한 형태를 띠고 있었다.
“취미가 조각이신 겁니까?”
“조각? 아…아아.”
자오의 질문에 그의 시선을 따라 고개를 돌렸던 동백은 책상 위 작은 조각을 집어 들었다.
“아니, 그건 아닌데….”
흠, 동백이 작게 목을 울렸다.
“혹시 이게 뭐 같냐?”
그는 조각을 자오의 눈앞까지 가져가 보여주며 사뭇 진지하게 물었다. 제작자의 의도는 토끼였으나 동백은 아무리 봐도 곰으로밖에 안 보였다. 지금껏 한 번도 남에게 물은 적이 없었는데 기왕 자오를 방 안으로 들였으니 확인차 한 번 물어도 나쁘진 않을 터.
자오는 조각을 상세히 들여다보았다.
귀도 짧고 웅크리고 앉은 모양새가 마치….
“…곰?”
그는 자신이 정답을 말한 건지 슬그머니 동백의 눈치를 봤다.
‘정답인가 보군.’
“그렇지? 곰 같지? 어딜 봐서 이게 토끼야.”
“이걸 토끼로 보는 사람도 있습니까?”
자오의 물음에 동백은 조각을 본래 자리로 돌려두며 덤덤히 답했다.
“있었지.”
동백은 둥글둥글한 조각상의 귀 끝을 손가락으로 매만졌다. 이걸 가지고 있는 건 자신의 아집과 고집일지도 몰랐다. 그 애를 다시 만나면 이걸 들고 물어볼 생각이었다.
이게 토끼로 보여?
그렇다면 그 애는 무어라 답할까.
다시 토끼라 답한다면 여전하다고 생각할 것이다. 곰이라 답한다면 너 또한 새로운 삶을 살아가고 있구나, 라고 받아들이겠지.
그러나 동백은 누구에게도 묻지 못했었다.
긴 시간을 헤맸으나 그는 명확하게 ‘동백’이라 부를 존재를 만나지 못하였다.
딱 한 번만이라도 좋으니 다시 태어나 근심 걱정 없이 행복하게 지내는 모습을 보고 싶건만. 야속하게도 아직도 자신을 원망하는 것인지….
아니면, 어느 순간 곰이라 대답할 존재가 되어버린 것인지.
흘긋 동백의 시선이 자오에게 닿았다.
“과거형이군요.”
“흘려보낸 시간이 많을수록 이리되는 법이지. 너 또한 그럴 텐데?”
“그건 맞습니다만 자꾸 그러면 꼰대 소리 듣습니다.”
꼰대라니, 자신만큼 개방적인 신선이 어디 있다고.
선경의 그 누구와 비교한들 자신이 가장 낫다고 생각하는 동백이 흥, 코웃음을 쳤다. 심지어 자신은 핸드폰마저 제법 능숙하게 사용하고 있었다.
꼰대라니 말도 안 되는 소리를.
“살면서 그런 소리 들은 적 한 번도 없거든?”
“…물론 그렇겠지요.”
즉각 대답이 나오지 않은 게 조금 찜찜하긴 하나 동백은 득의양양하여 콧대를 높게 세웠다.
그런 동백을 지켜보던 자오는 호영의 핸드폰에 동백이 ‘꼰백’으로 저장되어 있다는 걸 말해줄까 고민하다 그만두었다. 동백이 호영에게 화를 내는 대신 저에게 화풀이할 가능성이 99.99% 이상이었다.
죄목은 아마 알고 싶지 않은데 굳이 알려준 죄 정도가 될까.
자오는 적당히 심술궂은 제 본성을 제어하며 능청맞게 굴기로 마음먹었다.
“선인님.”
“왜?”
“다리가, 특히 허벅지가 매우 아픈데 침대에 좀 앉아도 됩니까?”
“될 거라고 보냐.”
냉담한 동백의 대답에도 자오는 굴하지 않았다.
“보죠.”
창과 방패의 대결이 아니라 창과 창의 대결이었다. 조금의 빈틈이라도 보이면 서로 급소를 찌르며 승리를 거머쥘 대결이었으나 동백이 명백하게 불리했다. 망할 까마귀는 자신이 조금이라도 불리하면 이호영이라는 절대 방패를 들고 와 거세게 밀어붙였다.
“호영 군 전화번호가 몇 번이더라….”
11개의 숫자 정도야 모두 머릿속에 박아넣고 있는 그이지만 일부러 보여주듯 품에서 핸드폰을 꺼내 연락처를 뒤적거렸다. 작은 손이 꼼지락꼼지락 느리게 화면을 훑었다.
동백은 그런 자오를 향해 자신감 넘치는 비웃음을 내보였다.
“안 속아 이 자식아.”
“흠?”
“넌 지금 공식적으로 출장 중인데 뭐 어쩌려고? 네 번호는 호영이가 저장했잖아.”
“아, 그거요.”
비로소 수많은 연락처 사이에서 담백하게 ‘이호영’이라 저장된 번호를 찾아낸 자오가 다소 느리게 메시지를 적어나가며 말했다.
“혹시, 선인님께서 듀얼넘버라고 아시는지 모르겠네요.”
“지금 바로 듀얼이다!”
“아뇨, 그 듀얼 말……. 대체 핸드폰으로 뭘 보고 계시는 겁니까?”
“그냥 아임튜브에서 보여주는 대로 본다. 왜?”
“나중에 호영 군에게 말해서 키즈락을 거는 게 좋겠군요.”
자오는 진지했다. 이 신선께서는 문화콘텐츠에 대해 아무것도 모르는 아이와 다를 바가 없었다. 보여주면 보여주는 대로 쏙쏙 받아들이고 써먹는 솜씨가 뛰어났다.
적당히 제어를 좀 해드려야 괴팍한 성격에 추가로 이상함까지 더해지지 않을 것 같았다.
‘이른 시일 내에 막아놔야겠군.’
해야 할 일을 머릿속에 추가하며 자오는 작성한 메시지를 동백에게 보여주었다.
그 화면엔 동백이 자신을 방치한다, 다리를 다쳤는데 너무 아프다는 내용이 적혀 있었다.
“이렇게 보낼 겁니다.”
“그러니까 네 번호는 호영이가 저장해 뒀다니까? 출장에 핸드폰 없이 갔다고 할 거야?”
“아뇨, 번호가 다른 번호입니다. 전 2개의 번호를 쓰고 있거든요.”
“…그런 기능이 있어?”
“있으니까 쓰죠. 그럼 이대로 보낼까요?”
금방이라도 전송 버튼을 누를 듯 자오의 엄지가 화면에 올려졌다. 버튼 하나만 누르면 저 메시지는 동백이 막을 새도 없이 호영에게 전달될 테고 호영은 연습마저 뒤로하고 득달같이 달려올지 몰랐다.
예전이라면 전령을 잡아 죽이면 될 텐데, 과학의 발전이란 이런 음흉한 놈들에게 너무도 좋은 협박 수단이 됐다. 동백은 입술을 삐죽 내밀며 마지못해 대답했다.
“앉아라. 앉아!”
저놈이 앉는다고 이미 다 달아빠진 매트리스가 주저앉는 것도 아니고.
결국, 마지못해 동백이 허락하자 자오는 냉큼 침대 끝에 궁둥이를 붙이고 앉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