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9화
잘 짜인 퍼즐처럼 버스 터미널에 도착하자 기다렸다는 듯 취소 표가 생겨 바로 출발하는 버스에 몸을 실었고 도로도 막힘 없이 뻥뻥 뚫려 있었다.
그리고 마침내 동백이 장산에 내렸을 때.
동백은 바람 속에 섞인 소금의 짠 내를 느꼈다. 바다에서부터 불어오는 바람은 습하고 차가웠다. 게다가 매섭기도 매서워 단정하던 동백의 머리카락을 단숨에 흩트려놓기까지 했다.
장산.
자주 와본 도시는 아니었다.
저번에 왔을 때와는 많이 달라졌는걸.
그때는 길에 소달구지가 지나갔는데.
도시가 발전하고 시대가 달라졌다는 걸 인지하고 있어도 동백의 기억 속의 장산은 여전히 과거에 머물렀다. 그 모든 것을 천천히 바꿔가며 동백은 한 장소를 떠올렸다.
한 남자가 서 있던 높은 산의 초입.
장산이란 도시 면적 대부분을 차지하는 높은 산.
그 자체가 도시의 이름이 되어버린 ‘장산’
동백의 목표는 바로 그곳이었다.
◆
하얀 털가죽을 가진 ‘그것’은 그륵거리는 숨소리를 내뱉었다.
네발로 땅을 짚고 범을 닮기도 하고 인간을 닮기도 한 그것의 눈동자가 어둠 속에서 번들거렸다.
“크…륵, 으으, 아아, 사, 사아려….”
벌려진 주둥이에선 짐승의 울음소리 같기도 하고 인간의 비참한 울음 같기도 한 소리가 흘러나왔다.
‘그것’은 고통스러운 듯 온몸을 뒤틀었다. 몸 위로 길게 자라난 흰 털이 출렁이며 흔들렸다. 한참을 온몸을 비틀며 입을 달싹거리던 ‘그것’이 겨우 힘겹게 한 단어를 내뱉었다.
“아…아…저……씨.”
나무가 만들어 낸 그늘 아래, 더 짙은 그림자가 일렁였다.
◆
창백할 정도로 흰 얼굴 위로 어스름한 노을이 내려앉았다. 개와 늑대를 구별할 수 없는 모호한 빛 속에서 남자는 자신의 검을 강하게 쥐었다.
이미 나무가 드리우는 그림자에 파묻혀 희미한 빛을 몰아낸 산은 그 산에 숨어든 달갑지 않은 불청객처럼 내달리는 바람의 방정맞은 발걸음에 맞춰 바다의 목소리를 흉내 냈다.
동백은 숨을 깊게 들이쉬었다가 천천히 내쉬었다.
붉은 노을에 젖은 눈동자가 반들거리며 빛났다.
그의 호흡은 지나는 바람을 타고 산을 휘돌았고, 앞으로 강하게 내디딘 걸음의 진동은 산을 딛고 선 모든 것들을 샅샅이 훑었다. 그 모든 것에 선기를 담아 한 번에 산을 훑은 동백이 비뚜름하게 입술 끝을 끌어올렸다.
찾았다.
도시에 숨어든 이무기를 찾을 때와는 달랐다. 이무기는 자신의 기척을 숨기고 인간들 사이로 숨어들었지만, 이놈은 제 악의를 숨기지 않았다.
노골적으로 느껴지는 악의는 절망과 비탄 그리고 원망이 뒤섞여 아우성치고 있었다. 모든 살아있는 것들에 대한 증오가 새카맣게 타올랐다.
놈과의 거리를 가늠하던 동백은 짧게 목을 울렸다.
“왜 지금까지 저런 놈이 알려지지 않았지?”
혼잣말로 되물어도 딱히 답이 떠오르지 않았다.
그저 동백의 마음대로 추측하자면 힘을 잃고 땅 위를 떠돌던 창귀를 우연히 누군가가 목격하고 ‘장산범’이라는 이름을 붙였다.
그 뒤부터 창귀는 ‘장산범’이 되었을 터다.
이름은 대수로운 것이 아니다.
‘나’라는 존재를 정의하는 가장 짧은 단어이며 정체성이다.
다른 누군가와 이름이 같더라도 그건 같은 이름에 다른 정체성을 가진 누군가로 구분된다.
그런 중요한 것이거늘, 사람들은 너무도 쉽게 이름을 붙이고 불렀다.
짐승도, 물건도 그리고 삿된 것들에게도.
도시 괴담으로 만들어진 ‘장산범’ 또한 그렇게 만들어졌을 가능성이 컸다.
쯧.
짧게 혀를 찬 동백은 가볍게 땅을 박찼다. 한 번의 걸음에 빽빽하게 심어진 나무를 물처럼 흘리며 나아가던 그는 산 중턱의 작은 공터에서 하얀 털 덩어리를 발견했다.
“그륵?”
장산범은….
무의식중 ‘저것’을 장산범으로 생각하던 동백이 생각을 몰아냈다.
장산범은 무슨.
되먹지 못한 덩어리 주제에.
‘그것’은 갑자기 하늘에서 뚝 떨어지듯 내려선 동백을 발견하고 고개를 쳐들었다. 인간의 얼굴을 그대로 박아넣은 듯 흰 얼굴이 어둠 속에서도 선연했다.
동백은 ‘그것’을 유심히 살폈다.
핏기 하나 없이 창백한 얼굴은 인간을 닮았으나 입가가 쭉 찢어져 흉물스러웠다. 커다란 눈은 흰자가 거의 없이 새카맣고 얼굴 아래는 긴 흰 털로 뒤덮여 사람이라기보단 짐승에 가까웠다.
“그, 그륵?”
짐승처럼 목을 울리던 ‘그것’도 동백을 뚫어질 듯 바라보았다. 이리저리 고개를 기울이며 고요한 대치를 이어가던 그들의 침묵을 깬 것은 흰 털의 요괴였다.
쭈욱 찢긴 입술 사이로 여린 아이의 목소리가 느릿하게 흘러나왔다.
“아, 아저씨…. 아저씨. 아저씨.”
“…….”
우연인가.
아니면….
생각하기 싫은 가설이 맞아떨어진 것인가.
자박-
동백이 한 걸음 앞으로 나아갔다.
누군가 그를 멀리서 보았다면 흰 털의 요괴에게 홀려 다가가는 것처럼 보일 그런 모양새였다.
자박-
고르지 못한 흙을 짓밟으며.
코끝이 붉어지도록 시린 겨울, 짐승의 털가죽에 의지해 추위를 이겨내던 모든 것을 버린 청년은.
눈 속에서 고고하게 피어났던 ‘동백’을 기다렸다.
“동백아.”
이제는 자신의 이름이 되어버린 이름을 입술 사이로 읊조린 도화는 검파를 단단히 붙잡았다.
“얘야.”
천천히 다가오는 동백을 향해 ‘그것’이 한 걸음을 내디뎠을 때.
이제는 노을의 여린 빛마저 사라진 어둠 속에서 거대한 그림자가 두 사람 사이를 갈라놓듯 들이닥쳤다.
검은 발톱이 희미한 빛에 예리하게 빛났다.
◆
해가 수평선 아래로 뉘엿뉘엿 몸을 누인지도 한참이건만, 빛 한 점 깔리지 않은 어둠 속에서 한 남자가 쾌활하게 소리쳤다.
“안녕하세요. 형님, 누님들 고스트슈터 김 촨~식임돠!”
셀카봉에 고정한 핸드폰으로 자신을 비춘 그는 일부러 오싹한 분위기를 조성하려는 짓궂은 소년같이 씨익 웃었다. 화면 가득 들어찬 남자의 얼굴에 한둘씩 그의 방송에 들어온 이들이 반갑게 인사를 건넸다.
―고하!
그의 닉네임 고스트슈터를 줄인 인사를 받던 김찬식의 입꼬리가 씰룩였다.
그는 공포 소재를 주로 다루는 아임튜버로 요즘 화젯거리인 괴담이나 설화 같은 것을 이야기 구성으로 들려주는 콘텐츠를 주로 진행했다. 그러다 보니 소재의 차별성이 점점 떨어지고 있었다.
그런 괴담이나 민담은 누구나 떠들 수 있으니까 말이다.
점점 줄어드는 시청자 수에 김찬식은 새로운 활로를 떠올렸다.
그건 바로 직접 괴담이나 민담이 일어나거나 발생했던 장소에 방문하는 것이었다.
스튜디오에서 앉아서 떠드는 건 누구나 할 수 있지만, 현장감을 주는 건 어렵다. 그래서 그는 세운동 괴담도, 장산범도, 다른 괴담들도 최대한 그 지역에 방문해보고 얘기했다.
그리고 그는 오늘….
김찬식은 힐긋 곁눈질했다. 빛이라곤 한 줌도 보이지 않는 케케묵은 어둠이 깔린 높은 산이 등 뒤에 있었다. 그는 마치 대단한 것을 공개하듯 상체를 뒤로 젖히며 시청자들에게 말했다.
“오늘은 다시 장산에 나와 있습니다!”
그의 말에 수많은 채팅이 화면 구석에 우르르 올라왔다.
―뭐임, 소재 떨어짐?
―장산? 장산에 장산범 말고 또 뭐 있나?
하나같이 의아함을 표하는 말에 노련한 아임튜버 김찬식은 당황하지 않았다.
이런 말이 나올 줄은 이미 예상하던 바였다.
그러나 그가 누구던가.
공포 분야에서 150만 구독자를 보유한 최고의 아임튜버 김찬식이다.
소재가 떨어져서 이곳에 온 게 아니었다.
다시 소재가 생겼기 때문에 온 거지.
“후후…형님 누님들, 제가 소재 우려먹기를 할 그런 놈으로 보이십니까!”
―보이는데?
―어 지금도 우려먹기 ㅅㄱ
김찬식은 카메라에 얼굴을 바짝 들이댔다.
“이 김찬식! 하늘에 맹세코 단 한 번도 소재를 우려먹었다고―!”
―어어어?
―어? 저게 뭐야?
―뒤! 뒤에!
조금 분위기를 풀어볼까 했던 김찬식은 폭발적으로 올라오는 채팅에 ‘헹!’하고 코웃음을 쳤다. 분위기도 음산하겠다 자신을 낚으려는 시청자들의 술수를 몇 번이나 겪어봤다.
여기서 자신이 뒤를 돌아보면 속았다며 놀려댈 테니 그는 꿋꿋하게 카메라를 응시했다.
“안 속습니다~”
―아니 시바! 뒤를 좀 보라고!
―장산범이야?
―그냥 산에 사는 짐승 아냐?
―그러기엔 생긴 게 사람 같지 않아?
수많은 갈고리의 향연에 김찬식의 어깨가 움찔 움츠러들었다. 시청자들의 단합력이 뛰어나도 너무 뛰어났다.
‘사, 살짝만 볼까…?’
그냥 시선만 힐끗 던지듯 보는 거다. 아무렇지도 않다는 듯이 그렇게….
콰앙―!
“―히, 히이이이익!”
김찬식은 바로 옆에서 들린 굉음에 새된 비명을 내지르지도 못하고 새하얗게 질렸다.
뭔가 땅에 처박힌 듯 묵직한 진동이 발끝을 울렸다. 뭉게뭉게 피어오르는 흙먼지가 뿌옇게 시야를 가리며 공포감을 극대화했다. 주체할 수 없이 벌벌 떨리는 손 때문에 화면이 이리저리 흔들리자 채팅장에서는 욕설과 걱정이 뒤섞여 올라왔다.
‘방송을, 방송을 해야….’
그는 뒤로 물러서면서도 핸드폰을 다잡았다.
찍어야 한다.
이건 무조건 대박이라는 아임튜버의 감이 번뜩였다.
그러나 그가 팔을 들어 올렸을 때.
“이런.”
나지막한 목소리와 함께 그의 등 뒤로 다가온 남자에게선 김찬식이 살면서 단 한 번도 맡아본 적 없는 냄새가 났다.
아주 향기로우면서도 발목을 잡아채는 섬뜩한 비린내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