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디어 마이 세큐리티-1화 (1/61)

1화

낮 12시. 막 숫자 12를 넘어간 초침을 확인한 진행위원이 문을 열면 건물 앞에 밀집한 인파가 더 바짝 붙어온다.

“안으로 들어오시면 안 돼요.”

사무적인 진행위원의 말에 차마 문턱을 넘지 못하고 두 손을 맞잡은 사람들이 안을 보기 위해 기웃거린다. 섣불리 전화도 하지 못하고 핸드폰은 손에 꼭 쥐기만 했다. 그러길 몇 분 후, 건물 안이 소란스러워지며 계단을 내려오는 발소리가 통로에서 울린다. 막 건물을 빠져나가는 면면은 대체로 지쳐 보였다. 2시간이 넘는 시간 동안 꼬박 책상에 붙박여 머리를 굴려야 했으니 일종의 탈력감마저 엿볼 수 있었다.

쏟아지는 사람 사이에서 자식을 발견한 학부모는 얼른 손을 들거나 크게 이름을 불렀고, 부모님을 알아챈 수험생은 쓰러지듯 가족 곁으로 다가갔다.

[20XX학년도 한국대학교 입시 논술 전형]

고생했다고 등을 두드리는 소리, 너무 힘들었다며 한탄하는 소리, 기뻐하거나 우는 소리. 사람이 빠져나갈 틈도 없이 몰리기만 하는 입구는 한동안 정체될 것으로 보였다. 그 사이에서 사람들의 등을 벽으로 두고 선 주하얀은 고개를 빼꼼 들었다. 서로 부둥켜안은 가족을 이웃나라 이야기처럼 감상하다 고개를 돌렸다. 시계를 확인하려 시선을 옮기다 진행위원과 눈이 마주쳐 어정쩡하게 고개를 숙여 인사했다.

지이잉-

[주하얀! 건물 나왔어?]

문자메시지를 확인한 주하얀은 핸드폰을 꺼낸 패딩 주머니에 손을 찔러 넣었다. 조그만 폴더폰은 한 손으로도 충분히 조작이 가능하다. 오래된 자판은 버튼을 누를 때마다 딸깍거리는 소리가 났다.

[ㄴㄴ 안에 갇혀있어. 넌 밖이야?]

[방금 나옴 나 건물 들어가기 전 골목에 있어 ㅃㄹㅇ]

[ㅇㅇ 기달]

재촉의 메시지에 짧게 답한 주하얀은 들여다보고 있던 핸드폰을 도로 주머니에 넣었다. 행렬이 조금씩 움직일 기미를 보였다. 감동적인 가족상봉인 건 알겠는데 부디 밖에 나가서 해줬으면 좋겠다.

겨우 건물을 빠져나가고도 복잡한 사람 틈을 헤집은 끝에야 골목에 도착할 수 있었다. 코너에 있는 가로등에 비스듬히 기대어 서 있던 김재식이 주하얀을 알아보곤 손을 흔들었다.

“야 사람 왜 이렇게 많냐.”

“그러게. 이번 연도 경쟁률 빡세겠네.”

“시험 잘 봤냐?”

“그냥 그럭저럭. 너는.”

“나야 존나 잘 봤지.”

어깨를 으쓱하며 거들먹거리는 김재식을 보고 주하얀은 구라 친다며 웃음을 흘렸고 김재식은 발끈하는 척 주하얀의 등을 후려쳤다. 아프진 않다. 김재식은 다만 특유의 장난스러운 성격을 주체 못 해 시끄러운 아이였다.

“머리 굴렸더니 배고파.”

“나도.”

“집 가서 밥 존나 처먹어야지.”

손을 말아 숟가락을 쥐는 시늉을 하더니 전투적으로 손을 휘둘러 공기를 퍼먹는 김재식이 창피해 거리를 벌렸다가 딱 걸려 도로 옆으로 붙어 걸었다. 쉼 없이 어깨를 스치는 사람 중엔 주하얀과 반대 방향으로 향하는 이도, 같은 방향으로 가는 이도 있었다. 처음 온 곳인데, 사람들만 따라가면 길을 잃을 일은 없겠다.

운동장으로 가는 내내 김재식은 학교가 쓸데없이 넓다며 푸념했고 주하얀도 고개를 끄덕였다. 평지이기라도 하든가 절로 숨이 달린다.

“어서 와. 시험 잘 봤어?”

멀리 운동장이 보일쯤 김재식이 어딘가로 전화를 하자 곧 계단 위로 아주머니가 올라왔다. 따뜻한 눈으로 아들을 맞이해주곤 주하얀에게도 수고했다며 등을 두드려준다. 주하얀은 꾸벅 고개를 숙여 인사했다.

“감사합니다.”

“별말을. 얼른 가자. 차 막혀서 올 때보다 더 걸릴 거야.”

이미 이 학교에 올 때부터 신세를 졌었기에 주하얀은 인사를 거듭하며 뒷자리에 올라탔다. 조수석에 앉은 김재식은 안전벨트를 매자마자 시트에 푹 퍼지듯 늘어졌다. 시험을 치르느라 너무 힘들었다며 죽는소리를 내는 아들을 보고 엄마는 정신 사납다고 타박을 하셨고, 주하얀은 뒷좌석에서 웃음을 흘렸다.

“문제가 많이 어려웠어?”

“무슨 이율 문제 이런 거 나와가지고. 아, 두 시간 내내 깜지 썼더니 손 저려.”

“이랬는데 너만 어려웠던 거 아니야?”

“아, 아니라고.”

오른손바닥의 살언덕을 만지작거리며 자신이 얼마나 고생했는지를 내세우는 게 꼭 막냇동생이 떼를 쓰는 것 같다. 아주머니도 그에 맞춰 부러 놀리듯 구셨으니 차엔 김재식의 억울한 목소리가 쩡 울렸다. 그냥 보고만 있어도 흥미로운 광경이었지만 대화에 끼어들라고 하신 말 같아 주하얀은 기대고 있던 시트에서 상체를 일으켜 조수석 의자를 붙잡았다.

“시험 진짜 어려웠어요. 시간 모자란 애들도 많았을 것 같던데요.”

“거봐!”

“그래? 엄살쟁이 말은 믿을 수가 있어야지.”

“엄마. 아들을 좀 믿어봐.”

“그래도 하얀이는 잘 봤지?”

“주하얀이야 그렇지. 공부 졸라 잘하잖아.”

아주머니의 말에 김재식은 저가 먼저 나서 엄지를 치켜세웠다. 갑자기 화제가 자신에게 쏠릴 줄은 몰랐다. 거드는 김재식의 말에 주하얀은 어색하게 웃으며 아니라고 손사래를 쳤다.

“아니에요. 저도 시간 내에 겨우 썼어요.”

얼른 반박했지만 둘은 그 말을 흔한 겸손이라고 여기는 것 같았다.

“주하얀 맨날 반에서 5등 안에 들어. 아마 1, 2학년 때도 그랬을걸?”

“그래?”

“응. 수능성적도 잘 나왔다고 들었던 것 같은데. 맞지?”

“뭐어….”

사실이었기에 머쓱하게 고개만 끄덕였다.

“봐봐. 얘 완전 천재야.”

“그럼 아드님은 뭔가?”

“으어?”

“친구가 천재면 좀 보고 배운 게 있어야 할 거 아니야.”

“아니, 갑자기 화살이 나한테 온다고?”

“수능 끝났다고 맨날 밤새 게임이나 하고. 이번 논술 떨어지기만 해 봐 아주.”

“섭한 소리 하시네. 그거랑 이거는 경우가 다르지.”

대화가 마치 롤러코스터 같다. 김재식의 성격은 가족 내력이었구나. 어쨌든 낯부끄러운 칭찬에서 벗어난 주하얀은 다시 시트에 몸을 기댔다. 아주머니는 내내 ‘친구가 열심히 공부할 동안 같이 안 하고 뭐 했냐’를 가지고 잔소리를 하셨지만, 사실 김재식과 주하얀은 딱 반 친구, 그 정도의 거리였다. 입시를 앞둔 고3은 겁이 많아지기 마련이라 같은 학교를 지망하는 학생끼리 무언의 친밀감을 느끼게 될 뿐, 요 근래를 제하곤 1년 내내 대화를 한 것도 몇 번 되지 않았다.

때문에 주하얀은 이 자리가 불편한 티를 내지 않기 위해 부단히 노력 중이었다. 누구와 얘기를 하든 어색한 웃음만 흘리느라 바쁘다. 필요에 따라 친화력을 발휘하기도 하지만 주하얀은 기본적으로 낯을 가렸다.

“부모님껜 연락했니?”

“네?”

하릴없이 핸드폰을 만지작거리던 주하얀은 퍼뜩 고개를 들었다. 이미 천 번은 한 것 같은 폭탄 연결 게임을 얼른 껐다.

“시험 끝났다고 연락드렸어?”

“네? 어…. 네.”

“뭐라고 하셔. 이제 다 컸다 하시지?”

“네. 그냥 뭐…, 고생했다고. 잘했다. 하셨어요.”

당장 떠오르는 수험생에게 할 수 있는 제일 보편적이고 의례적인 말들이었다. 주하얀은 들고 있던 핸드폰을 얼른 주머니에 넣었다. 벌써 구매한 지 4년 남짓이 된 고물 핸드폰은 시험이 끝나 전원을 켠 이후 한 번도 울리지 않았다. 아, 김재식이 있구나.

“그래. 진짜 고생했지. 수능 보면 끝날 줄 알았는데 시험이 또 있으니.”

아주머니는 짐짓 안타까운 목소리를 냈다.

“요즘엔 진짜 혼자 벌어는 못살아. 나도 주말이니까 왔지, 평일이면 회사에 있어서 못 왔어.”

주하얀이 오늘 홀로 시험장을 찾은 명목적인 사유는 ‘부모님의 맞벌이’이다. 아마 아주머니도 전해 들으셨을 테다. 그러니 선뜻 시험장까지 주하얀을 함께 태워주시겠다고 나서셨겠지. 김재식의 부모님도 맞벌이라셨으니 일견 공감이 되고, 마음이 안 좋았으리라.

잘 모르는 주하얀의 귀에도 따듯하게 들릴 만큼 아주머니의 말투는 다정했다. 역시 김재식의 성격은 가족 내력인 모양이다. 주하얀은 둘에게서 줄곧 끼쳐오는 안온한 기운에 “그렇죠. 뭐.” 맥없이 대답하며 괜히 무릎만 손바닥으로 쓸어댔다.

* * *

“잘 가!”

“고생 많았어. 태워주셔서 감사합니다!”

“그래, 조심히 들어가렴.”

차 문을 열기 전부터 인사를 하던 주하얀은 뒷좌석에서 내려 차가 출발하기 전까지 몇 번이고 허리를 숙여 인사했다.

동네에 도착한 것은 예상대로 오전보다 40분 남짓이 더 소요된 후였다. 신세를 진 게 죄송해 학교 앞에 내려달라는 걸 만류하고 아주머니는 집 앞에 내려주시겠다며 차를 돌리셨고, 주하얀은 멀리 아파트 정문이 보이자마자 여기서 세워달라고 조수석 의자를 팡팡 쳐댔다.

“후우우―.”

분명히 동네로 편히 돌아왔는데 왜 이리 피곤한 기분인지 모르겠다.

뻐근한 목덜미를 만지며 오른쪽 팔을 축 삼아 빙글 돈 주하얀은 익숙히 아파트 안으로 들어섰다. 우상동. 주하얀이 나고 자란 동네. 이곳에서 주하얀이 모르는 곳이란 없다. 특히 인생의 절반이 조금 안 되도록 살았던 아파트라면 더욱.

주하얀은 정문 앞부터 줄지어 있는 아파트 라인 입구를 보지도 않고 지나쳤다. 그리곤 처음 오는 사람은 길을 헤맬 정도로 복잡한 건물을 가로질러 쪽문을 찾아 척척 걸어갔다. 아파트 단지를 빠져나오는 내내 우왕좌왕하거나 의심하는 일 따위 없는 발걸음이었다.

코너를 돌아 버스정류장까지 5분. 마을버스를 타고 20분 후 정차하여 다시 7분을 걸어갔다. 주위의 풍경은 주택가에서 낡은 건물이 늘어선 시가지, 다시 주택가로 바뀌었다. 주하얀은 드디어 어느 빌라에 들어갔다. 낮이고 밤이고 어둑한 계단을 내려가 쇠 냄새나는 열쇠를 꺼내 문을 열었다.

“다녀왔습니다.”

습관처럼 한 인사였지만 당연히 돌아오는 답은 없다. 기대도 하지 않았기에 주하얀은 실망 없이 신발을 벗었다. 굳이 둘러볼 필요도 없을 만큼 작은 원룸이라 아무도 없음은 현관문을 열 때부터 알았다.

신발을 벗고 방 안으로 들어가자 두꺼운 양말 아래로 냉기가 스민다. 분명 아침에 보일러를 틀고 나갔는데, 오래된 빌라는 난방기구도 깜빡깜빡한다.

먼저 꺼진 보일러부터 틀고 아직 개지 않은 이불속으로 들어갔다. 논술 대비책이 무겁게 들어있는 가방은 옆에 던져둔 채였다. 햇빛이 잘 들지 않는 반지하는 보일러가 없으면 버티기 힘들 정도로 춥다.

(다음 편에서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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디어 마이 세큐리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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잔희 장편 소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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