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화
“아들내미.”
“네, 네?”
“집중 안 하냐.”
흉터가 손가락을 튕겨 딱 소리를 냈다. 퍼뜩 고개를 들어 올려보면 떨떠름한 얼굴로 팔짱을 낀다. 바닥을 짚은 다리를 바꾸며 발치에 있던 핸드폰이 차여 저 옆으로 날아갔다. 저도 모르게 시선을 따라가다 막 서랍장의 서랍을 뽑아 물건을 쏟아내는 다른 남자를 보고 서둘러 눈을 아래로 내렸다. 머리 위에서 쯧, 혀 차는 소리가 들린다.
“하. 이거 정신 못 차리네.”
흉터가 뚜벅뚜벅 걸어왔다. 구둣발이었으나 이불을 밟았으므로 소리는 나지 않았을 텐데, 주하얀에겐 마치 그 소리가 귀에 들리는 듯했다. 숙였던 상체를 세워 뒤로 물러나는 주하얀에게 다가온 남자는 팔을 들었다. 손가락을 쫙 펴 손바닥이 보인다. 그리고.
빡!
“악!”
휘청. 앉은 몸이 옆으로 크게 기울었다. 주하얀은 순간 중심을 잡지 못해 바닥을 짚었다. 아까 전 쓸린 손이었으나 머리의 통증이 너무 심해 다른 건 느껴지지 않았다. 뇌가 울리고 옆통수가 얼얼하다.
“말로 할 때 좋게 좋게 알아들으면 좋잖아. 굳이 아프게. 어?”
큰 손을 한번 쥐었다 펴곤 허공에 털어낸 남자가 자리에 쭈그려 앉았다. 시야가 엇비슷해지고 얼굴이 코앞이다.
“정신 차려.”
“흐으….”
“다음엔 뺨이야.”
흉터는 검지로 주하얀의 볼을 콕 찌르며 말했다. 가격 당한 옆통수와 관자놀이를 손으로 감싼 주하얀은 고개를 끄덕이며 다리를 밟힌 벌레처럼 몸을 움츠렸다. 생리적인 눈물은 아무리 입술을 꾹 깨물어도 차오른다.
맞은 자리가 따가워 마치 살이 떨어져 나가는 것 같다. 맞는 순간 귀가 먹먹해 바로 앉아있을 수가 없었다. 하지만 주하얀은 알았다. 온 힘으로 때린 게 아니다. 주먹이 아닌 손바닥이었으며, 팔을 드는 각도도 크지 않았다. 흉터의 기준에선 정말 딱, 정신을 차릴 정도의 매질이었다. 만약 진심으로 때릴 마음을 먹었다면. 절로 어깨가 경직된다. 긴장으로 목이 굳어 침도 잘 삼켜지지 않았다.
“너 올해 몇 살이야.”
“이제 여, 여 열아홉이요.”
“그럼 아주 어린 것도 아니구먼.”
몸이 사시나무 떨듯 떨린다. 목소리가 알아듣기 힘들 정도로 울렁거려 잠시 입을 다물었으나 소용없었다. 뒤로 집기들이 던져지고 떨어지며 큰 소리가 날 때마다 어깨가 튄다. 눈물이 그렁거리다 못해 아래 속눈썹까지 푹 젖은 꼴을 살피던 흉터는 다시 쯧, 혀를 차더니 정장 재킷 안주머니에 손을 넣어 무언가를 꺼냈다. 조금 구겨진 그것은 반으로 두 번 접은 종이 몇 장이었다.
흉터는 잘 보라며 종이를 펴 주하얀의 눈앞에 들이밀었다. 흐려진 시야로 글씨가 도통 보이지 않아 주하얀은 빠르게 눈을 깜빡였다. 후드득. 비처럼 아래로 떨어진 눈물이 걷히고 그제야 앞이 제대로 보였다. 글자가 빼곡히 적힌 종이 상단엔 짧은 제목이 있다.
‘사채 보증 계약서’
“보이지. 이거 이름.”
온통 어려운 말투성이다. 주하얀이 알아볼 수 있는 것은 겨우 하단에 적힌 아빠의 이름, 주소, 주민등록번호. 그런 인적사항 따위였다.
“주길우가 6개월 전에 우리한테 돈을 빌려 갔다. 그래도 몇 달 이자 잘 갚길래 아주 몹쓸 놈은 아니구나, 했는데. 갑자기 3주 전부터 연락이 안 되네.”
“…….”
“받을 돈이 있는데 이자 날은 지나고, 연락은 안 받고.”
“…….”
“우리도 여기 오고 싶어서 온 게 아니야. 이해하지?”
종이를 꺼냈듯 정장 주머니를 더듬어 담배를 꺼내 문 흉터가 조금은 뭉개지는 발음으로 말했다. 칙. 부싯돌을 돌려 불이 인 라이터에 담배를 대자 끝이 빨갛게 오른다. 매운 냄새가 코로 끼쳐온다.
“웬만하면 잠수탄 놈들은 동네에서 잡히기 마련이에요. 도박중독 새끼들이 갈 곳이야 뻔하지. 씨팔.”
“…….”
“근데 주길우는 도통 안 보인단 말이야. 하우스까지 뒤졌는데…. 쯧. 자식 버리고 내뺀 건 아닐 테고.”
덕분에 이쪽만 골치 아프게 됐다고 흉터가 혀를 찼다. 주하얀은 자신을 눈으로 훑으며 볼이 파이도록 담배를 빨아들이는 남자에도 고개를 숙이지 못했다. 후. 노골적으로 얼굴에 뱉어진 연기에 눈이 빨개졌으나 깜빡이지도 않았다. 그저, 흉터가 내민 종이에만 못 박힌 듯 시선을 두었다.
지금 주하얀의 머릿속엔 한 가지 생각만이 웅웅거렸다.
‘아빠가, 나를 버렸을지도 모른다.’
아마 남자는 가벼이 한 말일 것이다. 가능성을 아예 배제하는 건 아니어도 딱히 정답이라고 생각지도 않았겠지. 하지만 주하얀은 쉽게 아니라 고개를 저을 수 없었다. 그럴지도……, 모른다.
마지막으로 아빠가 집에 들렀던 날이다.
‘다녀왔습니다.’
답이 돌아오지도 않을 인사를 하며 현관문을 열었을 때 마주했던 아빠의 흔적을 기억한다. 오늘로부터 딱 일주일 전 토요일.
엉망이 된 집안에 주하얀은 잠시 현관에 서 있었다. 아빠가 다녀갔을 때마다 집이 깨끗한 적이 없었지만, 이번엔 그 정도가 심했다. 선반에 있는 잡동사니는 죄 쓰러져있었고 옷장은 아래 있는 옷을 끄집어낸 듯 개어둔 옷 몇 개가 밉게 툭 튀어나와 있었다. 열린 서랍. 어질러진 이부자리.
‘하아.’
진짜 모든 면에서 도움이 안 되는 인간.
차갑게 일갈한 주하얀은 한숨 한 번으로 당장 늘어질 것 같은 피로를 털어내곤 집으로 들어섰다. 툭. 논술 기출문제집으로 무거운 가방을 내려놓고 일단 집을 치웠다. 쓰러진 물건을 세워두고, 모양이 망가진 옷은 아예 꺼내 다시 갰다. 열린 서랍을 정리할 땐 숨겨둔 통장이 제 자리에 있는지 확인하고 서랍을 닫았다.
대강의 정리를 하는 데 장장 삼십 분을 들였다. 쉬지도 못한 탓에 목 안이 마른다. 물을 마시려 부엌이라기도 민망한 방 한편으로 향한 주하얀은 냉장고를 열어 2L 페트병 생수를 꺼냈다. 벌써 사 온 물을 거의 다 마셔 또 사야 했다. 숨만 쉬어도 돈이 나간다는 게 딱 맞는 말이다.
‘음?’
물을 마시고 페트병을 다시 냉장고에 넣어두려 허리를 숙였던 주하얀은 싱크대에 올려져 있는 흰 봉투를 발견했다. 봉투를 열어 뒤집자 무언가 툭 손바닥으로 떨어졌다. 쪽지였다.
‘미안하다.’
휘갈겨 쓴 짧은 문장. 혹시 내용이 더 있을까 싶어 뒤집어보았으나 그게 끝이었다. 쪽지를 내려놓고 주하얀은 다시 봉투를 털어보았다. 노란색 지폐 네 장이 아래로 떨어진다. 이십만 원. 이번엔 무슨 바람이 불어 돈을 다 놓고 갔나 싶다.
그래도 아빠라고 주길우가 돈을 주는 일도 간혹 있었다. 다만 그 빈도와 금액이 빈약해 생활비를 다 충당하기엔 모자랐을 뿐. 그나마 중학교에 들어오고 나선 전단지 알바라도 뛸 수 있어 견딜 만은 했다.
일주일 하고도 사흘만의 방문이다. 평소보다 텀이 길어 문득 의아했었는데 어디서 돈이라도 벌고 있었나 모르겠다. 주하얀은 꺼냈던 돈을 봉투에 집어넣었다. 쪽지는 다시 접어 한쪽으로 치워버렸다. 세월 속에 서로에게 충실하지 않았던 탓인지 이젠 짧은 편지를 봐도 별 감흥이 들지 않는다.
‘이십만원….’
그 중 오만 원만 빼고 나머지는 통장에 넣어둬야지. 생필품은 동시에 떨어진다고, 사야 할 것들이 많다. 물과 라면, 세숫비누가 다 떨어져 간다. 그러고 보니 세제통도 바닥이 보일락 말락 하던데. 당장 필요한 것들을 생각하며 주하얀은 이불을 덮고 누웠다. 수능이 끝나고도 논술을 준비하느라 요 근래 피로가 만만치 않다. 전형료가 부족해 원서를 두 군데밖에 쓰지 못했기에 더 그랬다. 내일도 공부를 하려면 일단 자야 했다. 다른 문제는 내일 생각하자. 주하얀을 둘러싼 모든 것들이, 지금의 자신에겐 너무 버거웠다.
“하.”
그 ‘미안하다’라는 말이 자식을 버리고 가 미안하다는 말이었다니. 주하얀은 절로 나는 헛웃음을 삼키려 턱이 우글해질 정도로 어금니를 꽉 물었다.
자아를 가진 이후 인생 대부분의 시간 동안 짐이자 족쇄였던 유일한 가족은 마지막까지 이딴 식으로 성의가 없다. 사연이 구구절절하게 쓰인 눈물 젖은 편지를 기대하진 않지만 그래도 달랑 네 글자라니. 길 가다 단순히 어깨가 부딪힌 사람에게도 그보단 길게 사과하겠다. 치미는 억울함이 울컥울컥 목을 두드린다.
“주길우 못 찾으면 이 빚 다 네가 갚아야 돼. 알지? 자식이잖아. 자식이 부모 빚 물려받고 이런 거 들어봤을 거 아니야.”
“…….”
“그러면 돈 떼인 우리만 좆된 게 아니라 너도 큰일인 거야.”
흉터는 주하얀의 어깨를 주먹으로 밀며 말했다. 남자는 시종일관 같은 태도였기에 달래는 건지, 협박하는 건지 모호한 말을 할 때도 목소리가 험악하다. 힘도 주지 않고 정말 툭 건드린 수준이었는데도 어깨가 제법 아프다.
하지만 비참한 의심에 매몰된 주하얀에게 다른 건 들리지 않았다.
비약일 수도 있다. 어린애의 몹쓸 상상력일 수도 있다. 도통 믿을만한 구석이 없는 아빠였던 탓에 극단적 의심이 드는 것도 당연했다. 하지만 주하얀은 알았다. 그냥 알 수 있었다. 이건 사실이다. 불안이나 두려움이 빚어낸 무서운 상상이 아니라 실재하는 불행이다.
“하. 이거 뭐 삐쩍 말라가지고 공사판에 던져놔도 걸리적거리기나 하지.”
어쩌면 주하얀도 이 답이 없는 가족의 최후를 어느 정도 예상했을지도 모르겠다. 아직 초등학생이던 때, 아빠를 찾아 동네에 있는 게임방을 돌아다닐 때부터 예견된 일이었을지도. 이 정도면 꽤 오래 버텼다 할 수도 있었다.
“딱히 나오는 건 없습니다.”
한참 집안을 뒤엎던 더벅머리의 말에 흉터 눈의 남자는 주위를 둘러보았다. 내용물이 죄 토해진 장롱이나 제대로 꽂힌 칸이 없는 서랍장의 모습을 살피더니 더 볼 것이 없겠다 판단했는지 몸을 일으켰다. 아이고. 오래 앉아있어서 그런지 앓는 소리를 내며 일어난 흉터는 바닥에 대고 있던 무릎을 털어냈다.
“자. 복사본이니까 넣어둬. 가지고 있다가 주길우 집에 오면 거기 적혀있는 번호로 바로 전화하고.”
흉터는 주하얀의 앞으로 반으로 두 번 접은 서류를 내밀었다. 아직 흐르는 눈물을 손등으로 비벼 닦으며 주하얀은 그 종이를 받았다. 다른 생각은 하지 말고. 쪼끄만 놈이 생각이 많아. 흉터는 마치 밥 잘 챙겨 먹으라거나, 운전 조심하라는 당부를 하듯 경고했다. 피우던 담배를 바닥에 던져 구둣발로 비벼 끈다. 하필 떨어진 곳이 이불이라 동그랗게 시커먼 그을음 자국이 생겼다.
이제 가려나 보다. 남자들이 쳐들어온 후 내내 속이 울렁거려 몇 번이고 침을 삼킨 주하얀은 얼른 이 무뢰배들이 집을 떠나 주길 바랐다. 해가 잘 들지 않아 곰팡내가 그득하고, 이젠 매캐한 담배냄새까지 스민 반지하에 홀로 남고 싶다.
하지만 언제나 인생이 그렇듯, 무엇 하나 주하얀의 뜻대로 되는 게 없다.
철컥, 끼익-
“계십니까.”
갑작스레 들린 문소리에 돌아본 현관엔 사람이 서 있었다.
(다음 편에서 계속)
※ 본 저작물의 권리는 저작권자에게 있습니다. 저작물을 복사, 복제, 수정, 배포할 경우 형사상 처벌 및 민사상 책임을 질 수 있습니다.
(3)============================================================
디어 마이 세큐리티
(Dear my security)
잔희 장편 소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