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디어 마이 세큐리티-4화 (4/61)

4화

“여기가 맞구나.”

키가 큰 남자였다. 정장 차림에 코트까지 갖춰 입은 남자는 무심코 문틀을 짚었다 금세 떼어내곤 찝찝한지 손을 털었다.

반지하는 원래 빛이 잘 들지 않는다. 해를 등진 빌라의 구조 탓에 낮에도 빛 한 줌이 겨우 들어온다. 집 밖의 사정도 다르지 않아, 낮에도 계단을 내려올 때 조심해야 할 정도다. 그럼에도 문 앞에 선 남자를 보고 주하얀은 순간, 남자가 끼쳐오는 모든 빛을 막고 선 게 아닌가 생각했다. 구두를 타일에 딱딱 부딪히며 좁은 현관의 벽을 양손으로 짚은 남자의 곁엔 빛이 새어들 틈 따위 없어 보였다.

“좁네.”

어질러진 집을 빙 둘러본 남자는 짧게 평했다. 남자는 집 안으로 들어섰다. 현관에 구두를 가지런히 벗어둔 채였다.

“죄송합니다. 얘기하다 보니 시간이 조금 지체됐습니다. 차에 계시면 바로 올라가겠습니다.”

방금까지도 거들먹거리던 흉터가 허리를 굽히며 손을 문 쪽으로 내밀었다. 흉터보다도 직급이 낮아 보였던 다른 남자들은 양손을 앞으로 모아 공손히 잡고 있었다. 이 상황이 조금 얼떨떨해진 주하얀만 고개를 빼꼼히 돌려 남자를 살폈다.

꽤 높은 직책의 사람인가 보다. 머리를 말끔히 넘긴 남자는 가끔 가는 미용실의 잡지에서나 보던 완벽한 정장 차림이었다. 한겨울에 달랑 재킷 차림으로 넥타이도 풀어헤친 흉터 진 남자와는 정반대의 모습이다. 끝까지 잠근 셔츠 단추라거나, 꽉 맨 넥타이와 잔머리 하나 없는 머리. 그 모든 것이 남자에게서 풍기는 위압적인 분위기를 더했다. 거기에 저 열없는 눈도.

헙. 주하얀은 저도 모르게 작게 숨을 들이켰다. 작게 고개를 끄덕이며 고개를 돌리던 남자와 불시에 눈이 마주친 것이다. “안녕?” 남자가 선선히 물었지만 주하얀은 손이 닿은 미모사처럼 어깨를 확 굽히며 고개를 숙였다.

“바닥이 더럽습니다. 신발을 신고 들어오시죠. 사장님.”

잠시 숙인 머리 위로 닿아있던 시선은 흉터의 말에 떨어져 나갔다. 남의 집에 신발을 신고 들어오라는 말을 저렇게 자연스럽게…. 주하얀은 하도 깨물었더니 자국이 파여 볼록하게 튀어나온 입안 살을 깨물었다.

“그쪽 사장 아니라니까. 그냥 편하게 불러요.”

가볍게 책망한 남자는 바닥에 아무렇게나 떨어진 물건 사이를 거닐었다. 검은 양말을 신은 발은 물건을 밟지 않기 위해 천천히 걸음을 내딛는다. 누가 보면 도둑 든 줄 알겠네. 관망하듯 말한 남자는 발에 차이는 것을 툭 발로 밀어냈다. 심이 다 달은 펜이 주하얀의 무릎 앞으로 굴러와 부딪힌다.

움찔하고 고개를 들자 대번에 시선이 마주친다.

“고객님?”

남자는 주하얀을 마주 보고 물었으나 대답은 다른 방향에서 돌아왔다. 아들입니다. 흉터의 말에 목을 옆으로 기우뚱한 남자는 그대로 고개를 끄덕였다. 마치, 그것으로 모든 설명이 다 되었다는 듯이.

답을 들었음에도 시선은 걷힐 줄을 몰랐다. 덕분에 주하얀은 남자의 눈과 얼굴과 어깨 따위로 부산히 눈동자를 굴렸다. 시선에 꿰이는 것 같다.

한참 동안 주하얀의 구석구석을 뜯어보던 남자가 이윽고 입을 열었다.

“맞았어요?”

검지를 세워 제 관자놀이를 톡톡 두드린다.

“아.”

주하얀은 얼른 옆머리를 손으로 덮어 가렸다. 아까 전, 두터운 손바닥이 머리를 가격할 때 얼굴에도 닿았었다. 그새 빨개졌나 보다.

“아니에요….”

개미 소리만큼 작게 웅얼거리며 주하얀이 부정했다. 왠지 구타당한 게 맞다고 하기 껄끄러워서였다. 주하얀은 지금 상황에서의 긍정이 흉터 진 남자가 말했던 허튼 ‘생각’에 포함될까 생각했다.

“그래서 운 건가. 아파서?”

상대방이 곧이곧대로 믿어줄 거라 생각하진 않았다. 주하얀은 축축한 눈가를 손등으로 거칠게 닦았다. 마찰로 발갛게 오른 눈이 따가워 몇 번을 더 깜빡였다. 괜찮은 척을 하려 할수록 더 엉망이었으나, 주하얀은 꿋꿋이 볼에 퍼석하게 마른 눈물길도 닦아냈다.

“잘하면 멍들겠다.”

…잘하면? 잘못하면이 아니라? 주하얀이 혼돈에 잠시 멈춘 사이 손이 다가왔다. 얼굴을 소매로 벅벅 문지르는 중에도 고집스레 맞은 자리를 가리고 있던 손을 잡아떼어낸다. 남자의 손아귀 안에 손이 갇힌 주하얀이 손가락을 움찔거렸으나 남자는 고개를 기울여 얼굴을 꼼꼼히 둘러보았다.

“그래도 예쁘겠네.”

숨이 섞인 말은 주하얀에게만 들릴 정도로 작았다. 소리 죽인 말을 듣고 눈을 들었을 땐 이미 남자의 시선이 떠난 후였다.

숙였던 상체를 일으키며 잡았던 손을 놓아주었다. 바지 주머니에 손을 집어넣고 삐딱하게 뒤를 돌아보는 꼴이 꽤나 불량했으나, 그 태도가 되려 남자의 권력을 보여주었다.

“설명은 다 드렸어요?”

“네. 설명하고 서류까지 넘겼습니다.”

흉터의 말을 듣고 고개를 틀어 주하얀의 옆에 고이 놓인 종이까지 확인한 남자는 몸을 바로 세우고 말했다. 지칭어가 없었지만 주하얀은 그 말이 자신을 향했음을 알 수 있었다.

“얘기한 것만 잘 지켜주세요. 피차 얼굴 붉히는 일 없게.”

“…….”

“아드님도 억울하신 점이 있겠지만, 돈 빌려준 우리도 마찬가지니까. 서로 도우면 좋잖아요. 많은 거 바라는 것도 아니고.”

주하얀은 흉터가 건네준 서류를 내려보았다. 그쪽 사람들은 설득하는 척 협박하는 게 특징인가. 무언가 듣고 있다는 반응은 해야 할 것 같아 고개를 숙였다. 끄덕였다기엔 부족하고 무시했다기엔 모호한 몸짓이었다. 다행히 이를 가지고 남자는 꼬투리를 잡지 않았다. 혹여 언짢은 표정이라도 하고 있을까 겁이 나 얼굴을 살피지도 못했다.

“되도록 얼굴 보지 않는 걸로 합시다. 특히 나랑은. 나는 좋은데 아드님은 싫을 것 같아서.”

그건 주하얀도 동의하는 바이다. 아마 남자들이 들이닥치고 처음으로 수긍하는 말일 것이다. 이번만은 주하얀도 “네.”하고 대답했다. 뒤늦게 너무 즉답이었나 싶어 어깨를 움츠렸으나 이미 말은 뱉어졌다.

“그래. 그럼 협조하는 걸로 알고 가겠습니다.”

순순한 주하얀의 태도에 남자는 적당히 말을 맺었다. 애초에 중요사항은 이미 전달했다 하니 굳이 덧붙일 말이 많지도 않았다. 그만 자리를 뜨려 현관 쪽으로 발을 옮기던 남자는 미처 세 걸음을 가지 못하고 불현듯 몸을 돌렸다. 마치 까먹고 있던 것을 갑작스레 떠올린 듯한 행동이었다.

“잊을 뻔했네.”

그 길로 주하얀에게 돌아온 남자는 정장 안주머니에서 작은 지갑을 꺼냈다. 거기에서 무언가를 꺼내 얼굴 앞으로 내민다. 명함이었다.

“혹시 치료비 필요하면 이쪽으로 연락해요.”

하면서 제 머리를 손으로 가리킨다. 남자가 지적했던 맞은 자리를 말하나 보다. 이젠 통증도 미약해져 조금 새삼스러웠다. 주하얀이 잠시 명함을 바라만 보고 있자 손을 흔들어 재촉한 남자는 조심히 다가온 손이 검지와 중지 사이에 낀 명함을 가져가자 손을 거두었다.

그리곤 곧장 뒤를 돌아 집을 나선다. 순전히 명함을 건네기 위해 돌아왔던 듯 미련 없는 모습이었다.

계단으로 사라지는 뒷모습을 멍하니 보던 주하얀이 고개를 떨구었다. 밝은 색의 명함은 중앙에 영어 한 줄밖에 쓰여있지 않았다. 뒤집어보자 그제야 명함이랄만 한 정보들이 보였다.

㈜디케이파이낸셜대부 / 사장 신이혁

자신이 예상했던 것보다 직급이 높다. 내심 당황한 채 아래 적힌 개인번호를 읽는데 시야로 팔이 불쑥 들어왔다. 인지할 틈도 없이 후드의 목덜미가 잡혔다.

“사장님이 그렇게 말씀하셨다고 진짜 연락할 생각은 마라.”

구겨진 옷이 당겨져 상체가 조금 앞으로 기운 주하얀이 놀란 눈을 들었다. 흉터 진 남자는 멱살을 틀어쥔 채 열린 문과 주하얀을 번갈아 쳐다보았다. 밖에 있을 사장이 혹여 돌아올까 눈치를 보는 듯했다.

“네, 네.”

애초에 연락할 생각도 없었다. 재회한다 해도 자신에게 득이 될 게 없는 사람이다. 남자의 말대로 가능하다면 다시는 보고 싶지 않다.

얼른 고개를 끄덕이며 대답하자 흉터는 잠시 그 얼굴을 내려다보다 쥐고 있던 옷을 놓아주었다. 시선이 잠시 명함에 머무르는 게, 마치 당장 뺏어버리고 싶은데 상사가 직접 전한 물건이라 손대지 못하는 게 끝내 못마땅한 눈빛이다. 하지만 이내 생각을 털어냈는지 흉터는 자리에서 일어났다. 사장님이 먼저 올라가 기다리고 계실 텐데 시간을 더 지체할 수는 없다.

흉터가 발을 돌리자 그 뒤를 다른 남자 둘이 따랐다. 멀어지는 남자에게로 몸을 돌린 주하얀은 이윽고 텅 비어 닫히는 현관문을 바라보았다.

“하아…….”

그대로 한참을 앉아있었다. 긴장으로 굳었던 몸이 풀려 일어날 힘조차 남지 않았다는 게 맞겠다.

뒤늦게 찌릿하게 전기가 오르는 다리를 반쯤 폈다. 오래 꿇어앉은 탓에 다리가 굳어 종아리를 손으로 잡아 펴야 했다. 쭉 뻗은 다리 밑으로 물건들이 깔린다. 주하얀은 주위를 둘러보았다. 앉았던 자리를 중심으로 겨우 엉덩이를 붙일 만큼의 공간을 제외하곤 멀쩡한 곳이 없었다. 어디를 짚어도 지뢰밭이다.

흉터 진 남자가 건넸던 종이를 다시 들여다보았다. 다음장도 넘겨보았다. 역시나 이해할 수 있는 말은 없다. 고개를 들어 두리번거린 주하얀은 떨어진 물건 사이에서 납작하고 작게 접은 종이를 주워왔다. 원래 들어있던 봉투에서 꺼내 서랍장에 넣어뒀는데, 서랍을 뒤엎으며 떨어진 것이다. 꾸깃꾸깃 접힌 쪽지를 펴 서류 옆에 대보았다.

미안하다.

[성명 : 주길우 (인)]

휘갈겨 쓴 글씨체가 같다. 정말 아빠가 쓴 서류가 맞았다. 주하얀은 들고 있던 쪽지를 툭 옆으로 떨어트렸다. 서류엔 인적사항 몇 가지가 더 자필로 적혀있는데, 상단에 적힌 대출금액이 그랬다.

‘일금 오천만 원정(₩50,000,000원)’

평생 우유부단하고 결단력 없이, 의지할 어른으로서의 모습 한번 보인 적 없으면서 꼭 이렇게 제 무덤 파는 데만 앞장선다. 사실 그 정도야 괜찮았다. 제 무덤 제가 판다는데 무어라 만류하겠는가. 문제는 그 무덤에 주하얀도 같이 눕게 생겼다는 거다. 21세기의 순장은 경제적 매장으로 이루어진다.

(다음 편에서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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디어 마이 세큐리티

(Dear my security)

잔희 장편 소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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