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디어 마이 세큐리티-6화 (6/61)

6화

“어딜 그렇게 바쁘게 가요?”

바로 뒤에서 들리는 목소리에 그대로 몸이 굳었다. 다정한 척 말을 거는 목소리는 생소하기도, 익숙하기도 했다.

굳이 고개를 들어 상대를 확인하지 않아도 알겠다. 방금의 말은 자신을 향한 것이다. 주하얀은 눈을 질끈 감았다. 비스듬하게 일으킨 채 멈춘 시야의 초침은 같은 자리를 빙빙 돌았다.

“응? 어디 가냐니까.”

주하얀은 가방끈을 꽉 쥐었다. 도망칠 수 있을까? 가능성은 미미하다. 하지만, 그렇다고 여기까지 와 고분고분하게 굴 수 없는 노릇이다. 집에서 결심한 바가 있다.

죽어라 달리기라도 해 볼 마음으로 웅크렸던 몸을 앞으로 기울여 의자를 박차려고 하는 찰나, 애석하게도 몸을 앞으로 빼는 주하얀보다 그를 낚아채는 손이 더 빨랐다.

“악…!”

“생각보다 예의가 없네. 어른이 물어보는데 대답도 안 하고.”

억세게 잡아당기는 팔에 크게 휘청한 몸이 단박에 의자에 처박혔다. 고꾸라지며 팔걸이에 부딪힌 골반이 아파 절로 등이 굽었다. 남자는 졸지에 품에 파고들 듯 몸을 가까이 기울인 주하얀의 턱을 잡아 올렸다.

“쉬이. 사람들이 본다.”

아픔에 일그러져 연신 신음이 배어나오는 얼굴을 무감하게 내려보던 신이혁은 주하얀의 눈 끝에 아롱 하게 맺힌 눈물을 검지로 쓱 쓸어주었다. 차가운 태도와 달리 손의 온도가 따듯하다. 움찔할 틈도 없이 물러난 신이혁은 미련 없이 자리를 털고 일어났다.

“가출은 미수에 그쳤고. 어린이는 집에 가야지. 일어나요.”

꾹꾹 골반께를 누르며 올려다보는 눈엔 숫제 원망이 가득했으나 신이혁은 그런 간지러운 감정 따위 못 본 척 굴었다. 나중엔 아예 고개까지 돌려버리는 새침한 꼴이 우스워 종전처럼 팔뚝을 잡아끌었다. 두꺼운 옷을 타고 내려온 큰 손이 주하얀의 손을 쥐어온다. 잠시 버텨보려 했으나 선천적 힘의 차이가 극명하다.

곧 주하얀은 신이혁의 뒤로 졸졸 끌려갔다. 우악스러운 힘에 주하얀의 손끝이 하얗게 질린다.

“타요.”

낡은 시외버스터미널 앞엔 척 봐도 비싸 보이는 검은색 세단이 세워져 있었다. 마치 그 차 주위만 도려낸 듯 이질적이다. 주하얀은 번쩍이는 차체에 신발이라도 쾅 박아주고 싶은 마음을 주체할 수 없었으나 그전에 등을 미는 힘에 눌려 차 안에 구겨져 밀어 넣어졌다.

“윽….”

시야가 뒤집힌다. 벌러덩 눕듯이 밀린 몸을 바로 세우자 남자는 어느새 주하얀의 옆에 올라타 있었다.

엉거주춤한 자세 탓에 몸이 바투 붙었지만 상대는 신경 쓰지 않는 듯 보였다. 지레 겁먹은 주하얀만 덴 듯이 옆자리에 제대로 자리를 잡았다.

이제 어떻게 되는 거지. 절로 마르는 입술을 물었다. 저도 모르게 상상이 극단적으로 흐른다. 보통 이런 경우엔 끌려가 죽도록 맞거나, 기절해 장기가 꺼내지던데. 주하얀은 몇 달 전 봤던 영화를 떠올렸다. 낡은 티브이에 나오는 몇 안 되는 채널에서 해주었던 것이다.

아니. 그건 영화잖아. 주하얀은 억지로 끔찍한 생각을 밀어냈다.

“아드님. 똑똑한 줄 알았는데 아닌가 봐요.”

등을 시트에 비비며 편히 자세를 잡은 신이혁이 툭 던지듯 말했다.

“당부한 사항만 잘 지켜달라니까 말도 안 듣고.”

“…….”

“대답 안 하는 거 보니 싸가지도 없고.”

“…….”

주하얀은 꾹 다문 입술을 감쳐물며 고개를 숙였다. 말을 아낀다기보단 입이 얼었다는 게 맞는 표현일 것이다. 옛말은 틀렸다. 막상 궁지에 몰린 쥐가 되어보니 발을 물 엄두 따위는 나지도 않았다.

“핸드폰 줘봐요.”

신이혁은 손을 아래로 덜렁 떨어트리듯 성의 없이 내밀었다. 어딘가 뭉개진 발음이다. 힐끔 살피자 입에 담배가 물려있다. 곧 라이터 켜는 소리가 나고 훅하니 매캐한 연기가 끼친다. 오늘만 코앞에서 담배연기를 맞은 게 두 번째다. 작게 창문 여는 소리가 났지만 이미 연기로 가득해진 공기를 정화하기엔 역부족이었다.

“…왜요?”

“왜요?”

용기를 다 쥐어짜 낸 물음에 신이혁은 황당하다는 말투를 했다. 헛웃음이 배어있는 목소리는 추궁 열 마디보다 힘이 셌다. 원래 영화에서도 내내 웃고 다니는 사람이 진짜 사이코이지 않던가. 주하얀은 다시금 떠오른 잔인한 장면을 애써 외면했다.

주하얀이 미적거리며 품을 뒤적일 동안 끈질기게 손을 뻗고 있던 신이혁은 정작 핸드폰이 손 위에 올라오자마자 앞자리의 사람에게로 휙 던져버렸다. 대강의 방향만 설정한 것이기에 당연하게도 둔탁한 소리를 내며 차 어딘가에 부딪혀 떨어졌다.

할부 끝난 지는 한참 지났지만 새 휴대폰을 살 길은 요원하다. 주하얀이 놀라 앞으로 몸을 기울이려 하자 신이혁이 팔을 뻗어 저지했다. 반사적으로 고개가 돌아가고, 눈이 마주친다.

“아드님 이름이 뭐라고 했죠?”

“…주하얀이요.”

“그래 주하얀.”

“…….”

“이제 초면 아니니까 말 편하게 할게요. 불편하면 지금 말해도 괜찮아.”

수용적인 태도로 말한 신이혁은 볼이 파이도록 담배를 빨았다. 옅은 웃음이 서린 눈을 마주하던 주하얀은 고개를 숙였다. 낮은 웃음소리가 귀에 닿을 듯 말 듯 하다. 고개를 돌려 창문 밖으로 연기를 뱉은 남자가 이름을 불렀다. 하얀아. 주하얀은 이번에도 입을 열지 않았다.

“주길우 씨가 얼마 빌려 갔다고 했지? 아까 얘기해줬잖아.”

“오… 오, 오천만 원이요.”

“그래, 오천.”

신이혁은 유쾌한 얘기를 하듯이 자신의 무릎을 탁 쳤다.

“오억도 아니고 고작 오천. 도박 빚치고는 귀엽지. 자식새끼까지 버리고 도망치기에는 우습고.”

“…….”

“억이었으면 내가 기특해서라도 아드님 데려다 뭐라도 했겠지만 꼴랑 천 단위…. 내 얼굴이 다 화끈거리네.”

“…….”

사방이 고요한 차 안에서 그 홀로 웃었다. 무에 그리 우스운지 비실거리며 새는 웃음이 숨에 섞인다.

“…….”

그리고 그 옆에서 주하얀은 홀로 울었다. 몸이 파르르 떨리는 걸 억누르느라 어깨는 한껏 올라가 코볼 옆으로 떨어져 맺히는 눈물을 갈무리할 생각도 못 하고. 자신의 꼴이 우스웠다.

“그러니까 아드님은 얌전히 아빠 기다리다가 나중에 돌아오면 ‘살려주세요. 무서워요.’ 한마디만 해주면 돼.”

“…….”

“어어, 왜 울어. 무서운 얘기 아닌데.”

“…흡, 끅.”

“울지 말고. 사탕 먹을래?”

“아, 윽…. 니요….”

그렇게 말하며 신이혁은 진짜 아이를 달래듯 안주머니에서 사탕 하나를 꺼내 건넸다. 주하얀은 고개를 저었지만, 손은 물러가는 법이 없다. 되려 자꾸 다가와 턱 아래서 흔들리는 사탕을 어쩔 수 없이 받아 들었다.

손에 힘을 줄 때마다 바스락 소리가 난다. 고개를 숙여 편 손바닥을 내려보았다. 음식점 출구에 쌓여있는 싸구려 박하사탕이다. 사탕을 손안에 구기듯 쥐며 옆자리의 신이혁을 올려보았다. 내내 주하얀을 내려보는 눈은 어떤 말을 기대하는 것 같아 보였다.

“…감사합니다.”

“눈 빨개졌네. 아프겠다.”

기어이 사탕을 손에 쥐여주곤 만족스러운 웃음을 짓는다. 입에서 나오는 말은 걱정 비슷했지만, 표정은 아니었다. 남자의 손끝이 눈물길이 난 광대 위를 스치고 갔다. 텁텁한 담배 향이 코 아래로 스민다.

사장님이라 불리는 남자는 특이하다. 시종 사납기만 하던 다른 사람들과 달리 살가운 말투로 다정한 행동을 한다. 하지만 그는 친절할 뿐 선하지 않다. 하는 말만 봐도 알 수 있다. 주하얀은 그 간극이 불편했다. 살에 간지럽게 닿는 손을 밀어내지도 못하고 어지럽게 눈을 굴렸다.

시선을 남자의 목과 어깨 따위에 주던 주하얀은 뒤늦게 신이혁의 뒤에 있는 창을 확인했다. 정신이 없는 와중에 차가 어디로 향하는지도 살피지 못했다. 차창 밖으로 익숙한 골목이 보였다. 크고 긴 차가 지나기엔 다소 좁은 길을 천천히 가로지른다.

“앞으로 일주일에 한 번씩 나랑 얼굴 볼 거야. 담보 확인 차원.”

“……네.”

“피차 귀찮게 머리 굴리지 말고. 내가 아드님 하고까지 비즈니스 하자는 거 아니잖아?”

“……네.”

“그래. 우느라 힘들겠다.”

바퀴가 구를 때마다 덜덜 소리가 나던 아빠의 승합차와 달리 고급세단은 진동 하나 없이 부드럽게 정차했다. 주하얀이 사는 낡은 빌라 앞이다.

팔을 앞좌석으로 뻗은 신이혁은 아마도 부하일 운전수에게 핸드폰을 건네받아 주하얀에게 돌려주었다. 무엇을 한 거지. 남자의 말에 사로잡혀 빼앗긴 핸드폰을 잠시 잊고 있었다. 두 손으로 받아 들자마자 폴더를 열어 액정부터 확인하는데 손가락이 쿡 볼을 찌르고 간다.

“내려.”

“…네. 감사합니다.”

자신을 쉽게 놓아준다는 말에 잠시 망설이던 주하얀은 앞으로 풀어놓았던 가방을 등에 두르며 고개를 꾸벅 숙였다. 혹시나 마음이 바뀔까 서둘러 하차하며 돌아본 뒤에서 신이혁은 주하얀을 보며 손을 흔들고 있었다.

큰소리가 나지 않게 차 문을 닫고 바로 앞에 있는 낡은 빌라 문을 열었다. 계단을 밟고 내려올 적엔 등 뒤에서 미약한 차 엔진 소리가 들렸다. 고개를 위로 빼 계단 위를 올려보자 차 한 대로 꽉 찼던 골목이 비어있다.

그들이 떠났음을 확인하자마자 주하얀은 계단에 주저앉아버렸다. 무사히 돌아왔다. 몸 성히, 심지어 어디 한 군데 맞지도 않고.

“하아…….”

주하얀은 쭈그린 무릎을 당겨 고개를 묻으며 묵은 한숨을 쉬었다. 엉덩이로 더러운 계단의 찬기가 스몄지만 다리가 풀려 벌떡 일어날 힘이 들어가지 않았다.

다행일까 불행일까.

당장 도망간다는 선택지가 바스러진 걸 보면 불행이다. 사채꾼들이 당장 자신을 해칠 일은 없으니 다행이다. 너무 많은 일이 있은 하루였다. 분명 이 상황에 대해 제대로 생각을 정리할 필요가 있겠으나, 더 이상 생각의 흐름을 거부한 뇌는 뿌옇기만 하다.

쓰윽, 쓱.

힘이 죄 빠진 다리가 바닥에 끌린다.

자꾸만 주저앉으려는 몸을 겨우 일으켜 집에 들어갔다. 열쇠를 쥔 손이 떨려 몇 번이고 헛손질을 해야 했다. 엉망인 방 안의 모습을 잠시 멍하니 보고 있다 구석의 옷장 앞으로 밀려 말려있는 이불더미 위로 무너졌다. 일단 오늘은 더 이상 생각하고 싶지 않다. 깊은 한숨에 체력이 함께 빠지는 기분이다. 주하얀은 언제 잠이 들었는지도 모르게 기절하듯 눈을 감았다.

(다음 편에서 계속)

※ 본 저작물의 권리는 저작권자에게 있습니다. 저작물을 복사, 복제, 수정, 배포할 경우 형사상 처벌 및 민사상 책임을 질 수 있습니다.

(6)============================================================

디어 마이 세큐리티

(Dear my security)

잔희 장편 소설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