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화
겨울의 교실은 환하고 조금은 답답하며, 노곤하다.
“야 니 멍 많이 빠졌다.”
대뜸 얼굴에 삿대질을 하는 이종훈에 주하얀은 앞머리 끝을 매만졌다. 당장 거울이라도 확인하고 싶은데 거실 뒤까지 가기엔 귀찮고, 손거울은 있을 리가 없다.
“그래?”
“엉. 노래진 게 며칠 안에 없어지겠네.”
듣던 중 반가운 소리다. 주하얀이 새로 깨달은 바로, 얼굴에 큼직한 멍을 달고 다니는 건 생각보다 주목받는 일이었다.
단 한 번의 일격으로 생긴 멍은 당혹스럽게도 넓은 범위로 퍼져있었다. 관자놀이부터 눈 옆까지 파랗게 인 멍은 만져도 아프진 않았으나 보기에 좋은 꼴이 못되었다. 등교할 때부터 얼굴로 꽂히는 시선에 괜히 기능도 몇 없는 핸드폰을 만지작대던 주하얀은 교실에서 마주친 이종훈까지 피하지는 못했다. 하필 자리도 왼쪽 옆자리라 왼 얼굴에 든 멍을 못 볼 수가 없는 자리였다.
‘야 이거 뭐냐? 멍 개심하게 들었네.’
코앞까지 얼굴을 들이민 이종훈이 물었다.
‘그냥 넘어졌어. 별거 아니야.’
‘어떻게 넘어졌길래 대가리에 멍이 들어. 만지면 아프냐? 여기는 보라색이야.’
‘아프냐고 물어보면서 만지는 건 뭐냐? 손 안 치워?’
걱정해주는 건지 신이 난 건지 모르도록 호들갑을 떨어대는 이종훈에 주하얀은 질색하는 표정을 지었다. 물론 당사자는 그런 것 따위 신경 쓰지 않는지 여전히 초롱한 눈빛으로 멍을 들여다보았다. 이 새끼……. 이종훈은 김재식과 쌍벽을 이룰 만큼 시끄러운 성격이다.
결국 주하얀은 집에서 물건에 걸려 넘어져 장롱에 머리를 박았다고 둘러댔다. 그 말을 들은 이종훈은 얼굴을 다 일그러트리고 아팠겠다며 몸서리를 쳤고 주하얀은 다시금 떠오른 통증에 멍을 만지작거렸다. 진짜 아프긴 했지.
그 후로도 주하얀은 며칠 동안 멍에 대한 관심에 시달려야 했다. 반 친구들이나 선생님, 알바를 구하러 간 면접에서까지 수상한 눈빛을 받았다. 나중엔 그냥 ‘넘어졌어요.’라는 말로 퉁 쳤으나 번거롭기는 매한가지였다.
“다행이다.”
주하얀은 멍이 든 자리를 조심조심 매만졌다. 다른 것보다도 귀찮은 질문에서 해방이라는 사실이 제일 반갑다.
드르륵-
“자. 다들 자리에 앉아.”
교실 앞문을 열고 들어오는 담임선생님에 책상에 기댔던 몸을 바로 세웠다. 이종훈은 졸다 깨다를 반복하느라 뻐근한 목을 주물럭거렸다. 주하얀은 오전 내내 틀어준 영화에 집중하느라 한 자세로 굳어 찌뿌둥한 몸을 좁게 스트레칭했다.
삼삼오오 모여 떠들던 아이들이 자신의 자리를 찾아간다. 하루 종일 시끄럽게 떠들거나, 자빠져 자기 바쁜 고삼 학급에서 겨우 교실다워지는 몇 안 되는 순간이다.
“오늘은 딱히 전달 사항은 없고. 하교 후에 학교 근처에서 알짱거리지 말고 바로 집에 가도록. 알겠나.”
“네.”
“다른 학년들은 다 수업 중이니까 방해하지 말고. 떠들지 말고 조용히 집에 가. 이상.”
담임선생님이 말을 마치자 반장이 자리에서 일어났다. 차렷. 경례. 구호에 맞춰 인사를 한 주하얀은 자리에서 일어났다. 청소 당번은 청소 다 끝내고 교무실로 와라! 교실을 나서기 전 담임선생님의 외침에 등에 기대어 앉아있던 의자를 책상 위에 올렸다. 그리고 든 거 없이 가벼운 가방까지 뒤집은 의자 위에 올려두었다.
종례를 마친 교실은 다시 의자 끄는 소리와 말소리로 가득하다. 주하얀을 따라 책상에 의자를 올리던 이종훈이 돌아본다.
“야 오늘도 알바 가냐?”
“응.”
“몇 신데. 피시방 들렀다 못 가냐? 애들이랑 같이 가기로 했는데.”
“게임도 못하는데 가서 뭐 해. 시간 없어. 청소도 해야 하는데 귀찮아 죽겠다.”
주하얀은 자신의 뒤를 졸졸 쫓아오는 이종훈을 달고 청소도구함으로 향했다. 입시도 다 끝난 마당에 청소 때문에 교실에 붙잡혀 있어야 하는 게 영 별로다. 그나마 당번도 오늘로 마지막이라는 게 유일한 위안이었다.
“그니까 지금 알바를 왜 하냐고. 존나 아깝지 않냐? 살면서 남 눈치 안 보고 놀 수 있는 유일한 시기인데!”
“하나도 안 아까워. 지금 너랑 쓸데없는 소리 하고 있는 게 제일 아까워.”
“말 개심하게 하네. 개새끼가.”
지는. 거머리 새끼. 주하얀은 옆에서 내내 구시렁거리는 이종훈의 발 쪽으로 빗자루질을 했다. 당장에 두어 걸음 물러난 이종훈은 너무한다고 바락바락 욕을 했다. 그러면서도 더 이상 물러나지 않는 게 지겹다 싶어 주하얀은 아예 고개를 숙여 못 들은 척을 했다. 물론 소용은 없었지만.
“용돈이 모자란 거면 그냥 부모님한테 달라고 해.”
종훈이는 참 대가리가 꽃밭이기도 하지. 슬슬 진심으로 귀찮아진 주하얀이 뭐라 받아치기 위해 고개를 드는 순간, 타이밍 좋게도 교실 뒤쪽에서 이종훈을 부르는 소리가 났다. 굳이 확인하지 않아도 같이 피시방에 가기로 했던 놈들일 게 뻔하다.
“너 부른다.”
“…싸가지 없는 놈.”
“내일 놀자. 딱히 일정 없지?”
“바빠, 이 새끼야!”
주하얀은 삐친 듯 소리를 빽 지르고 멀어지는 이종훈의 등을 향해 손을 흔들어주었다. 말은 저렇게 해도 오늘 밤이고 내일이고, 연락하면 금세 기분이 풀릴 걸 안다. 단순한 놈. 예쁜 새끼.
드디어 고요해진 주위에 주하얀은 한숨을 푹 쉬며 다시 비질에 집중했다. 애초에 교실 바닥을 쓸고 닦을 뿐인 청소는 오래 걸리지 않았다. 그마저도 학년 말이라고 대충 해 이십 분 안짝이면 의자 내리기까지 끝낼 수 있다.
“나 먼저 들어간다.”
“어. 잘 가라! 다음 주에 봐.”
담임선생님께 청소 검사를 받은 후 짐을 챙기는 아이들을 뒤로하고 주하얀은 첫 번째로 교실을 나섰다. 당번 활동 자체가 오래 걸리는 건 아니지만 시간을 낭비했으니 조금 서두를 필요가 있었다.
126번 버스가 잠시 후 도착합니다.
학교를 나서자마자 있는 정류장에서 버스를 타 삼십 분을 달렸다. 아파트뿐이던 학교 주위와 달리 사무실 건물들이 줄지은 거리에 내린 주하얀은 익숙한 듯 발을 움직였다. 목적지는 어제와 같이 아르바이트를 하는 곳 근처의 편의점이다.
“이천 원입니다.”
“여기요.”
“네.”
카운터에서 작은 컵라면과 삼각김밥을 계산한 주하얀은 편의점 안쪽 테이블에 가 자리를 잡았다. 이 짓도 며칠 했다고 익숙해져 더 이상 민망하지도 않았다. 수능 끝난 고삼이라고 수업을 일찍 끝내주는 건 좋았으나 대신 점심 급식에서 제외되었다. 알바 시간을 얻고 밥을 잃은 셈이다.
뜨끈한 컵라면 뚜껑 위에 손을 올리고 있던 주하얀은 정확히 3분이 되자마자 젓가락으로 면을 휘저었다. 전자레인지에 조금 돌린 삼각김밥은 벌써 반을 먹어치운 뒤였다. 둘 다 가격이 싸고 맛이 다양했지만, 이것도 슬슬 질렸다. 다음 주엔 햄버거를 먹어볼까. 주하얀은 푹푹 김이 나는 라면 국물을 호로록 들이켰다.
“배부르다….”
식사를 마치고 자리를 정리한 주하얀은 편의점을 나왔다. 한낮에 교복을 입고 사무실 단지를 누비기란 생각보다 민망해 걸음을 빨리했다.
주하얀의 일터는 10층짜리 고층빌딩의 1층에 있다. 근무시간이 점심을 조금 빗겨나 있어 다행이지, 퇴근 시간엔 줄을 서 주문할 만큼 붐볐다. 오늘은 금요일이니 기계 청소도 해야 했다.
절로 기운이 빠졌으나, 훅― 하고 부는 숨 한 번으로 모든 것을 털어내고 웃는 얼굴을 했다. 웃자. 웃자. 아직 어리고 경험이 없는 주하얀 나름의 무기이다. 건물 계단을 올라 매장 문을 열며 주하얀은 방긋 웃으며 인사했다.
“안녕하세요.”
***
“하얀 씨, 나 먼저 들어가 볼게요.”
“고생하셨습니다.”
“응 미안해요. 다음엔 내가 먼저 보내줄게!”
허둥지둥 문을 어깨로 밀면서 바쁘게 말을 쏟아내는 사람을 보고 주하얀은 고개를 꾸벅 숙였다. 함께 마감 조로 근무하는 직원이 집안 사정으로 한 시간 먼저 퇴근하자, 작은 카페에 주하얀 홀로 남았다. 금요일 늦은 시간이라 그런지 홀 손님도 없이 고요한 실내를 둘러보던 주하얀은 젖은 손을 앞치마에 문질러 닦았다.
“으쌰.”
커피 머신 마감을 일찍 한 덕에 남은 일은 설거지나 홀 정리와 같은 잡일이다. 세제 먹은 머그컵을 물에 씻어내 커피 머신 위에 뒤집어엎어 두었다. 물 젖은 트레이도 빗기게 쌓아 올렸다. 조금만 미끄러져도 와르르 무너질 수 있어 입까지 벌리고 집중했다.
정신없이 흘러간 주말 이후 주하얀은 바로 아르바이트 자리를 알아보았다. 다행히 학교와 거리가 있으면서도 집과 멀지 않은 곳에 회사 밀집 지역이 있어 자리가 궁하진 않았다. 당장에 전화해 방문 의사를 밝히고 서랍에 굴러다니는 이력서 용지를 찾았다. 서툴게 쓴 이력서를 보고 점장님은 곧 대학교에 갈 것을 걱정했지만 열심히 하겠다며 달려드는 주하얀을 이기지 못하셨다. 알바 합격 문자를 받고 주하얀은 신나 배를 깔고 누운 그대로 이불 위를 주먹으로 쿵쿵 때렸다.
돈을 벌 수 있다. 일일 알바로 근근이 벌던 것과는 금액부터 다르다. 게다가 카페 일이라면 특출나게 험한 일도 아니다. 발라당 몸을 뒤집은 주하얀은 얼른 감사하다고 답장을 보냈다.
더 이상 타인에게 온전한 보호를 바랄 수 없다. 막연한 희망에 기대는 건 사치다. 주하얀은 지금이 자신의 힘으로 일어나야 할 때임을 알았다. 그를 위해서라면 애석하게도 돈이 가장 급선무였다.
“으음―….”
카페 안을 흐르는 잔잔한 재즈를 콧노래로 따라 부르며 매장을 둘러봤다. 테이블 6개와 그의 4배 수로 놓인 의자 사이를 몇 번 왕복하며 홀을 점검했다. 비질 후 물청소까지 한 바닥은 깨끗했다. 더 치울 것이 없음을 확인한 주하얀은 입구 근처로 다가가 매장의 불을 껐다.
백열등이 바닥에 비쳐 반짝이던 홀이 빛을 잃으면 유리 밖 어둠이 성큼 다가온다. 사방이 어두운 가운데 핀 조명을 밝힌 듯 환한 주방 불까지 내리면 사위가 온통 검은색이다. 출근 때처럼 교복에 가방 차림인 주하얀이 달빛에 의지해 조심조심 발을 옮겼다. 겨울의 밤은 춥다. 매장 문을 열자 포근한 온기가 밀려나고 겨울의 아린 냉기가 끼쳐온다. 서둘러 문을 잠그고 그새 차가워진 손을 주머니에 넣었다.
후우. 저도 모르게 나는 한숨을 내쉬면 길게 숨길이 보인다.
(다음 편에서 계속)
※ 본 저작물의 권리는 저작권자에게 있습니다. 저작물을 복사, 복제, 수정, 배포할 경우 형사상 처벌 및 민사상 책임을 질 수 있습니다.
(7)============================================================
디어 마이 세큐리티
(Dear my security)
잔희 장편 소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