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디어 마이 세큐리티-10화 (10/61)

10화

“왜 안 먹어. 입에 안 맞아?”

“아니요. 그건 아니고….”

“그럼. 어디 아픈가.”

어느새 젓가락까지 놓은 주하얀은 절반도 비우지 못한 도시락통을 멀거니 내려보았다. 저작운동을 멈춘 입 안엔 아직 음식물이 있었지만 씹을 힘이 차마 들어가질 않았다.

그럴 수밖에 없다. 아빠의 얘기 앞에서 주하얀은 언제나 약자이다.

“아. 별 뜻이 있는 건 아니니까. 신경 쓸 것 없어.”

상대는 가볍게 말했으나 이미 주하얀의 귀엔 들리지 않았다.

신이혁은 빚을 이유로 주하얀을 찾아왔지만, 정작 아빠의 얘기는 잘하지 않았다. 어쩌다 행방을 물을 대도 대답에 큰 관심을 두지 않는 듯 보였다.

그렇게 생각했는데, 어쩌면 자신의 착각이었을지도 모르겠다. 생각해보면 무신경한 태도를 보이는 게 더 이상한 일이긴 했다.

“…….”

의식적으로 아빠와 관련된 생각은 묻어두었다. 떠올려 좋은 기억도 없다. 자신이 선택할 수 없는 관계이며, 자신의 의지와는 무관한 결과를 빚어낸다. 버거운 일상에 굳이 마음의 짐까지 더하고 싶지 않았다.

사실 주하얀이라고 힘들지 않을 리 없다. 아직 가족의 그늘이 필요한 나이다. 친절히 군다고 해도 매주 빚쟁이와 대면하는 게 쉬울 리 없다.

“흠….”

“…….”

“하얀아.”

침잠하는 마음에 수그린 고개를 들 줄 모르던 주하얀은 코앞에서 들리는 한숨 소리에 움칠 몸을 떨었다. 언제 다가왔는지 신이혁은 주하얀이 앉은 상 근처까지 다가와 있었다. 뒤늦게야 그가 자신을 한참이나 살피고 있었음을 알아챘다.

“죄송해요. 생각을 좀 하느라…. 다시 말씀해주세요.”

“시간이 늦어서 나는 먼저 일어나 보겠다고.”

“아.”

신이혁의 말에 주하얀은 몸을 허둥거렸다. 금방이라도 자리에서 일어나려고 바닥을 짚고 들썩이자, 어깨 위로 손이 올라와 몸을 지그시 눌러온다. 신이혁은 입이 쓴 표정을 하고 있었다. 곤란한 듯 찡그린 눈이 주하얀의 얼굴 근처를 맴돌다 떨어진다.

“아무리 나라도 이러면 좀 미안한데.”

“……?”

영문 모를 말이다. 의아한 눈으로 바라보자 신이혁은 손을 뻗어 주하얀의 머리를 헝클더니 다시 빗듯이 쓰다듬고 떨어졌다.

“이만 가볼 테니까 편하게 밥 먹어.”

“…….”

“그리고 밖이 추우니까 집에 오면 바로 들어오고.”

말을 마친 신이혁은 미련 없이 자리를 털고 일어났다. 눈을 동그랗게 뜬 주하얀이 무어라 변명할 틈도 없었다. 다급히 입에 담은 음식을 씹어 넘겼을 때 그는 벌써 문턱을 반쯤 넘어있었다.

“일어나지 말고 먹어. 체하겠다.”

그리고 집엔 주하얀 홀로 남았다. 사람도 없이 번쩍이는 현관 등을 돌아본 주하얀은 주황색 등이 꺼지고서야 몸을 바로 했다.

턱.

상체를 뒤로 늘어뜨려 싱크대에 기대면 경첩이 느슨한 문짝이 덜그럭거렸다.

* * *

이종훈이 주하얀의 이상을 눈치챈 건 막 2교시 수업종이 친 후였다. 수업시간에 영화를 보거나 자습을 할 때 엎어져 자는 일이라면 흔했으니, 주하얀이 조례를 마치자마자 엎드려 일어날 줄 모를 때도 단순히 밤새 딴짓을 해 잠이 모자란 것이리라 치부했다.

하지만 역시 한 시간이 지나도록 미동 없이 책상에 머리를 박고 있는 건 좀 이상했다.

결국 주하얀의 어깨를 잡아 흔든 이종훈은 숙인 고개 밑으로 새어 나오는 신음소리에 어디 아프냐며 호들갑을 떨어댔다. 어찌나 시끄러운지 앞자리 사람까지 돌아볼 정도라 주하얀은 파리한 얼굴을 겨우 들자마자 이종훈의 입부터 틀어막아야 했다.

“몇 학년 몇 반?”

애초 수업이라 할 만한 활동도 하지 않고 있었기에 보건실로 향하는 허락을 받는 건 어렵지 않았다. 주하얀에게 입을 붙들린 채 손을 번쩍 든 이종훈이 보건실에 다녀온다고 했을 때 선생님은 손만 휘휘 저었다.

“3학년 2반 주하얀이요.”

등받이 없는 회전의자에 앉은 주하얀이 말했다. 쿡쿡 쑤시는 명치께를 누르며 체한 것 같다고 말하자 보건 선생님은 액상 소화제와 알약을 건네주었다.

약 먹고 다시 책상에 엎드려 자야지. 꾸벅 고개를 숙이고 일어나려는 주하얀을 잡아 앉힌 건 이종훈이었다. 혹시 침대에 누워있다 가도 되겠냐고 물었을 때, 3학년임을 아는 보건선생님은 알 만하다는 얼굴로 명단을 적는 파일철을 내밀었다.

“너 체했어? 유통기한 지난 거 주워 먹었냐?”

“그런 거 아니야.”

“아니면 갑자기 왜 체해. 너 원래 건강체질이잖아. 3년 동안 너 보건실 오는 거 처음 보는데.”

“그냥 좀 급하게 먹었더니 중간에 막혔나 봐. 별거 아니야.”

바로 누우면 가슴이 당겨와 옆으로 몸을 둥글게 만 주하얀이 침대 옆 의자에 앉아 내내 종알거리는 이종훈을 떨떠름하게 바라보았다. 귀찮으니까 가라 제발.

“요즘 좀 잘 먹고 다니나 했더니. 왜 또 끙끙거려.”

내 말이 그 말이다. 주하얀은 절로 찡그려지는 얼굴을 펴지 못했다.

어젯밤 심술이 났는지 뾰족한 신이혁 때문에 뚝 떨어진 식욕은 결국 돌아오지 않았다. 그가 먼저 자리를 떠나고 혼자 집에 남아 남은 음식을 깨작거리다 결국 싱크대에 도시락통을 그대로 부어버렸다. 평소의 자신이었으면 아까워서라도 꾸역꾸역 입에 밀어 넣었을 것이다.

그랬는데도 돌아온 결과가 급체라니. 주하얀으로서는 억울한 일이었다.

“별것도 아닌 거 가지고 삐쳐서는.”

입을 삐죽이며 부루퉁하게 혼잣말했다. 당사자 앞에서는 절대 못 할 말이었으나, 사실 따지고 보면 틀린 말도 아니다. 빚쟁이랑 같이 있어 좋아할 사람이 누가 있겠는가. 게다가 결국 집에 들어갔으니 다 된 것을.

“뭐?”

“어?”

“너 방금 뭐라고 했잖아.”

“응? 아무 말도 안 했어.”

“아닌데. 분명히 들었는데.”

하여간 쓸데없이 귀만 밝아가지고. 주하얀은 시치미를 떼고 여즉 침대 옆에 앉아 고개를 갸웃하는 이종훈을 의아한 눈으로 쳐다봤다.

“너 안 가냐?”

“나? 내가 어딜 가.”

“어디긴 교실이지. 난 아프니까 누워있다 갈 테니까 넌 이만 가. 아프지도 않은 놈이.”

“어차피 교실 가봐야 하는 것도 없어. 영화도 지겹다, 야. 그보다 옆으로 좀 가봐봐.”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며 말한 이종훈은 종래엔 자리에서 일어나 주하얀을 침대 한 귀퉁이로 밀어냈다. 애초에 이러려고 침대 얘기를 했구나. 무엇을 하려는지 뻔해 버티려 해도 체대 입시생인 이종훈을 이기긴 무리였다.

“아 진짜! 좁아. 내려가!”

“아니야. 야 충분해. 이거 봐. 오히려 남잖아. 나란히 옆으로 누우면 돼.”

주하얀은 자신을 밀어내고 기어코 침대에 올라오더니 큰소리를 치는 이종훈을 어이없이 바라보았다. 싱글 침대에 겨우 떨어지지 않을 정도로만 걸쳐 누워 놓고 좋다고 웃는 놈을 보니 사기가 떨어져 더 뭐라 하고 싶은 마음도 안 들었다.

“좋냐? 아픈 친구 자리 뺏어서 좋아?”

“내가 무슨 자리를 뺏어. 너 자리 있잖아.”

“떨어지기 일보 직전이잖아!”

“야 쉿. 조용히 해. 시끄럽게 하면 둘 다 쫓겨나.”

처음부터 이럴 작정이었지. 개새끼. 어쩐지 보건실에 같이 가자고 할 때부터 이상했다.

“그러게 누가 이상한 거 주워 먹으래.”

“이상한 거 아니라고.”

내가 늙는다. 늙어.

왜 절친이라곤 하나 있는 놈까지 마음고생에 보탬이 되려는 건지. 침대에서 편히 한 시간만 자고 가려고 했는데 다 망했다.

속으로 한탄하며 몸을 돌려 누웠다. 이종훈의 얼굴을 보고 눕느니 아슬한 전경을 보는 게 낫다 싶어서였다.

하지만 그것도 채 5분을 가지 못하고 누웠던 몸을 휙 뒤집었다. 그 와중에도 이종훈을 피해 차라리 침대에 일어나 앉는 판단력을 발휘했다.

“야. 너 안 잘 거지.”

“어? 아니. 잘 건데.”

“자지 말고 내 말 좀 들어봐.”

그럴 거면 대체 왜 물어본 건데. 주하얀은 팔에 머리를 괸 채 얼떨떨하게 자신을 올려보는 이종훈을 쏘아보았다.

“만약에 네가 싫어하는 사람이 있어. 근데 뭘 자꾸 챙겨줘. 그럼 어떻게 할 거야.”

“개이득. 얼른 받아야지.”

“아니 근데 그게 불편할 정도로 싫은 사람이면.”

“누가 너 좋대?”

“뭐래. 아니거든.”

이종훈은 당장 정색하고 드는 얼굴을 보고도 여상한 표정을 했다. 나름 논리적으로 나온답시고 허공에 손을 짚는다.

“아니 근데 맞잖아. 쓸데없이 너를 왜 챙겨줘. 뭔가 썸씽이 있으니까 그런 거 아니야.”

그건 어디까지나 일반적인 경우지. 신이혁의 경우는 그보단 뭐랄까, 불우이웃 돕기에 가까울 성싶었다. 그런데 둘의, 아니 아빠까지 셋의 관계를 생각해보면 또 온전한 친절도 아닌 것 같고…. 상황의 특수성을 다 얘기하지 못하는 게 답답하다.

“아무튼 그런 거 아니니까 이유를 가정하지 말고 대처법을 좀 생각해봐.”

“뭘 대처해. 그냥 공짜로 주면 감사합니다, 하고 받으면 되지.”

“그게 안 되니까 이러고 있는 거 아니야.”

“아니 시발! 뭐 다 아니라면서 왜 물어봐. 니 알아서 해. 이 새끼야!”

결국 이종훈은 빽 소리를 지르고 돌아누워 버렸고, 뒤늦게 아차 한 주하얀이 다급히 그의 어깨를 잡아 흔들었다. 속으로는 덩치에 안 맞게 속 좁은 놈하고 혀를 찼지만.

성심성의껏 미안하다 말하며 팔뚝을 두드리자 고집은 오래가지 못했다. 아직 삐쳤다는 티를 내면서도 그 큰 몸을 구겨 자신의 쪽으로 돌아눕는 걸 보며 주하얀은 웃음을 꾹 참아야 했다.

“그렇게 싫으면 네가 딱 거절을 해.”

“그럴 수 없으니까 문제지.”

“아니 대체 무슨 관계길래.”

답답하긴 상대방도 매한가지라 볼멘소리를 하던 이종훈은 더 캔다고 말해주지 않을 기세의 주하얀을 보며 베개에 머리를 푹 기댔다. 제대로 알려주지도 않으면서, 나쁜 새끼.

“정 받는 게 껄끄러우면 차라리 너도 뭔갈 사줘.”

“내가?”

“그래. 뭐라도 주면서 ‘봐라. 나는 알아서 잘 사 입고, 잘 사 먹고 한다. 당신의 관심 노땡큐다’ 이러라고.”

“그러면 좀 싸가지가….”

“아니 그니까 진짜 말을 하라는 게 아니라. 뉘앙스를 풍기라는 거잖아. 애가 공부 헛했어.”

싫든 좋든 여태 받아먹은 게 있는데 맨입에 쌩까기는 좀 그렇잖아. 오히려 선물 딱. 주면서 단호하게 딱.

주하얀은 이종훈의 말에 가만히 눈을 굴렸다. 듣고 보니 괜찮은 방법인 것 같기도 하고. 어쨌든 신이혁과의 관계가 부정적이면 손해 보는 건 주하얀이다. 그러면서 마음까지 편할 수 있다면? 더할 나위 없다.

잠시 말이 없던 주하얀은 발치에 깔린 이불을 집어 이종훈의 어깨에 걸쳤다.

자라. 편히 자. 자릿값 했다.

말 대신 어깨를 토닥였다. 물론 이런 마음을 모르는 이종훈은 갑자기 친절해진 주하얀의 행동에 소름이 돋은 팔을 쓸어내렸다.

(다음 편에서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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디어 마이 세큐리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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잔희 장편 소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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