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디어 마이 세큐리티-12화 (12/61)

12화

주하얀은 굳게 닫힌 문에 열쇠를 꽂고도 잠시 고민했다. 창문으로 확인한 집 안은 밝았다. 괜히 가방 안에 넣어둔 텀블러가 쓰러지진 않았을까 더듬거리며 문을 열었다. 현관에 발을 들이자마자 머리 위로 떨어지는 조명을 맞으며 거실이라기도 민망한 방 한편을 살폈다.

신이혁은 누운 듯 앉은 듯 몸을 늘어뜨리고 있었다. 무언가를 보고 있었는지 땅을 향하던 눈이 앞을 힐끗 스친다. 주하얀은 신발을 벗는 척 고개를 숙였다. 들어선 집의 방바닥은 역시나 따듯했다.

“안녕, 하얀이.”

“안녕하세요.”

인사를 하며 다가간 주하얀은 신이혁이 보고 있는 것을 확인했다. 처음엔 뜬금없어 잠시 갸웃했지만, 다시 봐도 그가 손에 든 것은 사진이었다. 사진첩 하나 없어 비닐에 뭉텅이로 넣어뒀었는데 어디서 찾았는지 모르겠다.

“심심해서 좀 보고 있었어. 괜찮지?”

“…네.”

따지고 들자면 사실 상당히 실례되는 일이다. 주인 없는 집에 들어앉아 있는 것도 모자라 서랍을 뒤졌다는 거니까. 하지만 그에게 상식적인 기준을 대는 것도 모호했기에 주하얀은 그냥 고개를 끄덕였다. 집안 사정이 어려워지면서 사진을 찍은 적이 없어 어차피 죄 어렸을 때 기록뿐이었다.

주하얀이 잠옷을 갈아입는 동안 신이혁은 사진을 하나씩 넘겨보았다. 거기엔 어린 주하얀이, 젊은 아빠가, 엄마가 있었다.

“이분이 어머니신가.”

“네.”

“어머니는 본 적이 없는 것 같은데.”

“저 어렸을 때 이혼하셨어요. 지금은 연락도 안 하고요.”

주하얀은 덤덤히 말했고 신이혁도 대수롭지 않게 넘겼다. 직업 때문에 이런 경우를 많이 봐서 그런 건지 단순히 관심이 없는 건지. 대신 어렸을 때부터 귀여웠다는 말로 주하얀을 민망하게 했다.

주하얀은 차라리 부엌으로 향했다. 작은 냉장고 위에 있는 봉투로 보아 오늘 신이혁이 사 온 음식 같았다. 포장을 풀어 안을 살피자 샌드위치가 들어 있다. 다른 박스엔 고기가 올라간 샐러드가 있었다.

싱크대 틈에 끼워 넣은 상을 꺼내 펴 그 위에 음식을 늘어놓았다. 맛있겠다. 절로 입맛이 다셔진다.

“이젠 꽤 자연스럽네.”

“네?”

“물어보지도 않고 음식을 막 풀어보고 말이야.”

웃음기 섞인 신이혁의 목소리를 들고 주하얀은 잠시 당황했다. 혹시나 그 웃음이 어이없다는 표현이었을까. 그러고 보니 이런 상황에 익숙해져 제 것인지 확인도 해보지 않았다. 자신이 실수한 것일까 봐 입을 벙긋거리자 신이혁은 손을 휘휘 저었다.

“아드님 거 맞아. 제 몫 챙겨 먹으려는 게 기특해서.”

“…아.”

다행이다. 문제가 있는 건 아니구나. 제풀에 놀란 주하얀이 아직 찝찝함이 남은 손길로 소포장된 박스를 열었다. 처음 신이 나 음식을 꺼내던 것관 확연히 다른 속도였다. 딱히 반항의 의도는 없었는데, 머쓱함이 행동으로 묻어났다.

“하얀이 삐쳤니.”

“아니요.”

“표정은 아닌데.”

짐짓 짓궂은 표정을 지은 신이혁이 담배를 꺼내 입에 물었다. 잇새에 문 담배를 까딱이며 라이터의 부싯돌을 천천히 돌린다. 집안에서는 피면 안 되는데. 다행히 진짜 피울 마음은 없는지 이따금씩 일렁이는 라이터의 불을 담배 끝에 대는 일은 없었다. 그 모습을 멍하니 보던 주하얀은 무언가 생각나기라도 한 듯 몸을 일으켰다. 장롱 앞에 내려둔 가방을 가져와 그 안에서 텀블러를 꺼내고, 싱크대 상부장을 열어 집에 있는 컵 중 제일 깔끔한 것을 골라 내려놓았다.

쪼르르―

텀블러 안에 든 음료를 컵에 쏟아붓자, 식었음에도 아직 김이 피어오른다. 하자품으로 직원들에게 나눠준 카페 상품이 생각보다 성능이 좋아 다행이었다.

카페에서 음료를 챙겨 오는 건 오늘로 꼬박 사흘째다. 첫날엔 몰래 음료를 담아왔으나 그 후엔 주하얀이 직접 계산을 하고 음료를 사 왔다. 커피 종류도 아이스에서 핫으로 바꿔 훨씬 품이 덜 들었다. 처음 계획과는 여러 가지가 달라졌으나 이 정도는 쉽게 감수할 수 있는 선이었다.

주하얀은 옮겨 담은 게 고작인 음료를 잠시 내려보았다. 한참을 고민해놓고 마지막까지 이런다. 주하얀은 이미 식은 커피가 더 차가워지기 전에 그것을 신이혁에게 내밀었다.

모퉁이 어디서든 무엇을 하는지 훤히 다 보이는 좁은 집 탓에 주하얀이 싱크대에서 바쁘게 움직일 적부터 그 꼴을 가만히 보고 있었던 신이혁은 불쑥 뒤를 돈 주하얀의 손에 들린 것을 보고 눈썹을 위로 까딱였다.

“드세요.”

“이게 뭔데.”

“아메리카노요. 혹시 커피 못 드세요?”

마주친 시선에 언뜻 황당함이 스친다. 자신도 민망한지 괜히 손등으로 제 볼을 비비는 아이를 올려다본 신이혁은 군말 없이 컵을 받아 들었다. 커피를 넘겨주자마자 델까 무서운 사람처럼 물러난 주하얀은 곽에 든 샌드위치를 꺼내는 척 주물럭거리며 부산을 떨었다. 어색함에 괜히 말을 늘어놓았다.

“어…. 제가 카페에서 일하니까 매일 한 잔씩은 그냥 먹게 해 주시거든요. 그래서 어… 그래서 가져온 거예요. 제가 산 건 아니고….”

꺼내고 보니 굳이 할 필요가 없는 말이었나 싶다. 게다가 사실이면서도 사실이 아닌 말이기도 했고. 변명을 주워섬긴 것치곤 자신 없는 목소리가 흐리터분하다. 생각에 잠긴 듯 그런 주하얀을 말없이 바라만 보던 신이혁이 가벼운 웃음을 흘렸다.

“하얀아. 주하얀.”

“…….”

“애가 똑 부러져 보이더니 알고 보니 맹탕인 건가. 빚쟁이를 챙겨주면 어떡해.”

어린아이 어르듯 조곤조곤한 목소리. 그 목소리는 탓하는 것도, 아닌 것도 같았다. 신이혁의 의도를 파악하지 못한 주하얀은 대꾸할 말을 찾지 못해 뻐끔거리던 입이 닫힌다.

“오실 때마다 밥… 사주시니까 감사해서요. 매번 받기만 하니까. 저도 무언갈 드리고 싶어서…. 그, 그리고 앞으로는 더 안 챙겨주셔도….”

금방이라도 스러질 듯 작은 목소리였다. 주하얀은 어쩐지 불쑥 치미는 당혹감을 감추기 위해 쥐고 있던 오톨도톨한 박스 위를 엄지로 문질렀다.

솔직히 고맙다는 인사를 바란 건 아니었다. 그럴만한 사이도 아니고. 여태 봤던 신이혁의 성격상 비웃음을 당할 수도 있다고 생각은 했지만, 막상 미적지근한 반응을 보니 어떻게 대처해야 할지 우왕좌왕했다. 그의 눈이 담은 말을 알 수가 없다.

“어릴 때 맛있는 거 사준다는 사람 따라가면 안 된다고 안 배웠나? 잘 알지도 못하는 사람이 사탕 준다고 너도 주려고 하면 어떡해. 그러다 내가 확 잡아가면 어떡하려고.”

“…….”

“하얀아. 나 너희 아빠한테 원한 있는 사람이야. 내가 아빠한테 어쩔 줄 알고 이렇게 예쁘게 굴어. 하얀이 사채 무섭다는 말 못 들어봤니?”

신이혁은 잊고 있던 사실을 하나하나 짚어주듯 말했다. 혹시나 기분이 상한 걸까 눈치를 살피던 것도 잠시, 이야기를 들을수록 도리어 제 속이 상했다. 마치 세상 물정 모르는 아이처럼 대하는 태도가 주하얀에겐 조롱으로까지 느껴졌다.

고개를 수그린 주하얀은 갑자기 튀어나온 아빠 얘기에 얼굴을 들었다. 아빠는 원래가 집안에 충실한 사람이 아니었다. 하긴, 그랬다면 이 꼴도 나지 않았겠지. 워낙 집을 비우는 일이 비일비재했을뿐더러 현재가 버거운 탓에 이따금 주하얀은 아빠가 자신을 버리고 도망갔다는 사실을 잊었다.

“아빠 찾았어요?”

“그래도 아빠라고 애틋한가 봐?”

글쎄. 어떠한가. 언제나 아빠를 떠올릴 때면 양가감정이 들었다. 나를 낳아준 사람, 나를 버린 사람. 아빠가 보고 싶다거나 그리운 마음이 아예 없다면 거짓말이지만, 생각해보면 그건 아빠보단 ‘가정’이라는 안식에 대한 갈망일 것이다. 오히려 자식을 버리고 도망간 만큼 고생깨나 했으면 싶은 마음이 들기도 했다.

“아직은. 열심히 알아보고 있으니 곧 찾아내겠지.”

“아….”

“내가 아빠 데려오면 아드님은 ‘살려주세요.’만 하면 돼. 그거 하라고 밥 사주는 거고. 애초에 마음 쓸만한 게 아닌데 말이지.”

“…….”

“그래도 고마우면 차라리 돈으로 줘. 대출금 상환으로.”

마지막 말은 장난이었는지 말끝이 가볍다. 그러나 그는 행동으로 분명히 하고 있었다. 자신이 주하얀에게 줄 수 있는 것과, 주하얀이 자신에게 줄 수 없는 것을. 그리고 어린 애의 얄팍한 의도를 알아챈 신이혁은 그것을 깨끗하게 거절했다.

어이없다는 숨이 담긴 말에 볼이 화끈거린다. 주하얀은 그제야 자신이 오버했다는 생각이 들었다. 자신도 모르는 사이 신이혁을 꽤 편하게 생각했는지도 모르겠다.

그들의 관계는 쌍방이 아니다. 신이혁의 일방이었다. 주하얀에겐 적선하듯 내민 친절을 밀어낼 명분 따위 없었다.

“그래도 생각해준 건 고마워.”

“네….”

“진심이야.”

목 안쪽부터 붉어지는 얼굴을 보면서도 신이혁은 굳이 콕 집지 않았다. 대신 눈을 맞추기 위해 얼굴을 가까이했고, 그럴수록 주하얀의 고개는 더욱 땅으로 파고들었다.

그 후로 얼마간 더 울긋불긋한 면 가까이 얼굴을 기울이던 신이혁은 상체를 바로 세웠다. 무엇을 찾는지 옷감이 부스럭거리는 서걱서걱 소리가 났다.

“잘 먹었어. 이건 답례.”

신이혁은 상 위에 초콜릿을 올려두었다. 그 모습이 꼭 차 안에서 사탕을 권하던 모습과 겹친다. 궁금증에 빼꼼 눈을 든 주하얀은 조금 기가 찼다.

“…감사합니다.”

마음과 달리 순순하게 굽신거리는 목소리를 들은 남자는 삼분의 일이 겨우 줄었을까 싶은 커피를 크게 한 모금 들이키더니 자리에서 일어섰다. 잔을 쥐느라 미지근한 열이 남은 손이 치하하듯 가라앉은 머리를 부스스하게 헤집고 떨어진다. 곧 신발 뒤축을 가볍게 차는 소리와 현관 잠금이 풀리고 잠기는 소리가 나고서야 주하얀은 숙였던 고개를 들었다.

“하아….”

방금까지도 사람이 들었던 곳이 조용해지고, 주하얀은 한숨을 푹 내쉬며 무릎을 끌어안아 그 위에 볼을 댔다. 상 위에 덩그러니 남은 초콜릿을 가져와 이리저리 둘러보다 툭, 던지듯 떨구었다. 오늘의 시도. 결과는 실패다.

(다음 편에서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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디어 마이 세큐리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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잔희 장편 소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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