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디어 마이 세큐리티-19화 (19/61)

19화

“네에….”

-일단 오늘은 시간이 너무 늦어서 도리가 없고 내가 내일 볼게요.

“네 감사합니다.”

-어어. 내일 연락드릴게.

“네 알겠습니다. 들어가세요.”

-어어.

결국 별 소득 없이 끊긴 전화를 내려놓은 주하얀은 곧 몸을 일으켰다. 옷장에 개켜둔 이불을 죄 꺼내 바닥에 깔았다. 무거운 솜이불 위에 얇은 여름 이불과 담요까지 모두 끄집어내자 그래도 제법 따듯해 보였다. 현관에 벗어둔 패딩을 다시 입고 과 양말도 벗지 않은 그대로 이불 속으로 기어 들어갔다.

“으으…. 추워.”

냉기에 노출되어있던 이불이 차갑게 몸에 달라붙는다. 그래도 지금 기댈 거라곤 이 솜 뭉텅이밖에 없으니 최대한 몸을 말았다.

일단 오늘은 급한 대로 이렇게 자고. 내일은 주인아저씨가 봐준다고 했으니까 괜찮아지겠지.

아무리 몸을 두껍게 감싸도 도리없이 스미는 냉골의 찬기에 괜히 이불을 더 여몄다.

오늘만 버티면 된다. 오늘만. 곰팡이 내음이 섞인 반지하의 공기를 크게 들이쉬며 겨우 눈을 감았다.

“하아….”

그리고 주하얀은 방금 도착한 문자메시지를 확인하곤 자신이 너무 순진했음에 탄식했다.

오늘만, 이라는 얘기는 순전히 자신의 바람이 되었다.

[학생. 생각해보니 우리는 어제 기사님 불러 다 확인했는데 또 돈을 들이는 건 부담스럽네. 수도는 따로 해결하는 걸로 하고, 대신 보일러는 봐줄게.]

한창 카페 마감 청소 중이던 주하얀은 알림음과 함께 도착한 문자를 몇 번이나 읽었다. 해결사 역할을 해주리라 믿었던 주인아저씨는 어제와 달리 모르쇠로 일관하고 있었다.

잠시 다른 점원에게 양해를 구하고 창고로 들어온 주하얀은 바로 전화를 걸었다.

-여보세요.

“여보세요. 지하 101호인데요. 방금 문자 주셔서요.”

-어어. 아니 생각해보니까 우리가 어제 기사님 불러서 다 확인을 했잖아.

“그런데 왜 저희 집 물이 안 나와요.”

-그거야 나는 모르지. 아무튼 다른 집은 다 확인했고, 기사님을 또 부르자니 돈 두 번 들이는 건데.

“그래도 일단 집에 문제가 있을 때는 집주인이 봐주셔야죠.”

-아이, 그건 내 잘못일 때지! 학생이 겨울철엔 외출할 때 항시 물 흘려야 하는데, 그거 했어? 그거 한 방울씩만 떨어지게 해놨어도 얼진 않았잖아.

“아니 그래도…. 이렇게 알아서 하라고 하면 제가 뭘 어떻게 해요.”

-그래서 내가 보일러는 봐준다고 했잖아.

“그럼 수도도 같이 봐주셔야지 그건 왜…. 제 잘못 인정합니다. 하지만 말씀대로 전 아직 학생인데 혼자 하기엔 힘들어요. 아저씨가 좀 도와주세요.”

-크흠. 도와줄 수는 있는데 기사는 못 불러줘. 아무튼 난 보일러 봐줄 테니까. 수도 언 거는 학생이 알아서 해.

“아니, 그게…. 여보세요. 여보세요? 아저씨!”

떳떳하지 못한 말을 해서 그런지 집주인은 제 할 말만 하고 전화를 뚝 끊어버렸다. 채 뭐라 항변하지도 못한 때였다. 주하얀은 통화 종료 화면만 번쩍이는 전화를 들고 망연자실했다.

다시 전화를 걸었지만 끊어버리는 건지 연결음이 채 한 번을 가지 못한다. 결국 창고에 있는 자재 박스 위에 털썩 주저앉았다.

“아……. 어쩌지.”

답이 없다. 수도를 자신이 어떻게 고친단 말인가. 집주인이 오리발을 내미는 걸 보니 기사님을 부른다면 돈이 꽤 들게 뻔했다. 그렇다고 자신이 해결하려니 뭐 아는 게 있어야지. 아니 그건 미루더라도 당장 오늘은 어쩐단 말인가.

어젯밤 어렵게 잠이 든 후, 주하얀은 새벽녘 이를 덜덜 떨며 잠에서 깨어났다. 그리고 아침까지 조각 잠만 내내 자고 일어난 후엔 씻는 게 문제였다. 다행히 가스불은 들어와 냉장고에 있던 생수를 끓여 양치와 세수만 겨우 했지만 지금도 몸이 찝찝했다.

오늘은 해결이 될 줄 알았는데.

결국 아무 진전 없이 밤은 다가오고 있고, 주하얀은 당장 남의 주방 청소나 해야 했다.

“어휴….”

마감 청소를 하면서도 자꾸만 비집고 나오는 한숨을 푹 쉬었다. 결국 보다 못한 직원이 무슨 일이냐고 물어왔지만 주하얀은 아무 일 아니라며 웃음으로 얼버무렸다. 흠집으로 엉망인 핸드폰을 들어 몇 없는 주소록을 뒤진 끝에 이종훈의 번호를 찾아냈다. 하루만 재워달라고 할까. 잠시 멈춰 고민하던 주하얀은 곧 고개를 저으며 폴더를 닫았다.

도움을 받으려면 이유를 얘기해야 할 텐데 뭐라 한단 말인가. 사실 네가 알고 있던 우리 집은 이미 진즉 빚에 넘어가서 반지하에 살고 있다. 근데 그 반지하 수도가 동파되어 오갈 곳이 없다. 그 와중에 아버지는 도망가 혈혈단신이다.

구구절절한 사연은 요약해놓아도 갑갑하다. 근데 진짜 수도는 어떻게 고치지.

뫼비우스의 띠처럼 생각이 돌고 돈다. 홀 테이블을 닦으며 문제의 굴레를 배회하던 주하얀은 딸랑, 울리는 문소리에 고개를 들었다.

“어서 오세요.”

“네.”

무의식적으로 쳐다본 시야를 조금 더 올려서야 신이혁의 얼굴이 보였다. 워낙 다른 문제에 골몰해서인지 주하얀은 신이혁의 방문이 조금 생경하게 느껴졌다. 이젠 제법 익숙해진 일인데도.

그린 듯한 미소를 지은 신이혁은 남색 정장을 입고 있었다. 풀어헤친 재킷 안으로 평소엔 없던 꽉 조인 조끼가 보인다.

어쩌면 이 낯섦은 유달리 갖춘 옷차림 때문인지도 모르겠다.

“오랜만이야.”

신이혁은 심상하게 말했다. 지난 만남에서 상처를 치료해준다는 명목으로 이상히 굴던 것이 떠오른다. 덕분에 애초 깊지 않았던 상처는 잘 아물어 딱지가 앉았던 흔적만 작게 남았다.

하지만 그때의 미묘하던 상황도 그저 호의로 알고 넘겨야 할까….

“타.”

여느 때처럼 카페 문을 잠근 주하얀은 직원과 헤어져 신이혁의 뒤를 따랐다. 제 허벅지를 쓰다듬어 올리던 손길을 떠올린 주하얀이 선뜻 옆좌석에 오르길 망설이자, 기색을 읽었는지 신이혁이 차에 오르려던 걸 멈추고 턱을 까딱인다.

태연한 상대방의 태도에 자신이 예민히 구는 걸로 비칠까, 군말 없이 차에 오른 주하얀에게 신이혁의 시선이 스친다.

“저…. 오늘은 집 말고 다른 곳에 내려주실 수 있으세요?”

이젠 목적지를 찍지 않고도 차는 순조롭게 집으로 향한다. 누구에게 부탁해야 할지 애매해 몸을 앞으로 조금 빼고 말했다. 예상한 대로 답은 옆자리에서 나왔다.

“어딜?”

“아 저 그냥 가까운 찜질방이요.”

“찜질방?”

그냥 평소처럼 집에 내린 후 찜질방을 찾아갈까 했지만, 아무리 기억을 더듬어봐도 동네에 찜질방 시설이 딸린 목욕탕이 없었다. 게다가 밤거리를 헤매 찜질방을 찾아가기에 한파가 아직 한창이다.

어차피 차로 움직이는 거라면 이 정도 부탁은 해도 되지 않을까.

“네. 그냥 아무 데나 상관없어요. 가시다가 보이는 곳에 내려주시면 될 것 같은데….”

“거긴 왜. 멀쩡한 집 두고.”

“아 그게.”

그 집이 멀쩡하지 않으니까요. 아니, 한파로 인한 각종 고장이 아니었더라도 애초 멀쩡한 구석이라곤 찾아볼 수 없는 집이었다.

눈을 굴리며 말을 끄는 주하얀을 신이혁은 빤히 바라보았다. 이유를 꺼낼 때까지 인내심을 발휘할 기세이기에 더듬더듬 입을 열었다.

“한파 때문에 수도가 얼었어요. 보일러도 안 나오고. 그래서.”

제 불우한 처지를 고백하려니 민망함이 몰려왔다. 그나마 다행인 것은 그가 제 처지를 뻔히 알고 있다는 정도였다.

“음.”

정작 신이혁은 주하얀의 사연을 듣는 둥 마는 둥 했다. 고개를 끄덕이긴 했지만, 저 혼자 생각에 잠긴 듯 차 창틀에 괸 팔로 턱 아래를 쓸었을 뿐이다.

“수도가 얼면 물이 안 나오나?”

“네? 네. 물도 안 나오고. 어, 화장실도 쓰기 힘들고. 보, 보일러도 말썽이라 바닥도 너무 차고요.”

역시 그도 이런 열악한 환경을 이해하기엔 어려운가. 마치 변명처럼 자신이 처한 상황을 나열하는 주하얀의 볼이 부끄러움에 발그레해졌다.

“물이랑 난방.”

“네, 네.”

“그것 때문에 찜질방으로 간다고.”

왜 자꾸 같은 자리를 빙빙 돌지. 어쩐지 도돌이표를 찍는 대화에 눈을 굴리다 고개를 끄덕이자 신이혁도 같이 얕게 끄덕인다. 그것만 해결되면. 나직하게 속삭인 신이혁이 상체를 세우는 듯하더니 운전석을 향해 말했다.

“집으로 갑시다.”

“집. 말씀이십니까.”

“네.”

지시가 내려졌지만 김 팀장은 단번에 핸들을 돌리지 않고 그저 침음을 흘렸다. 흔쾌하지 않은 반응을 알아챘음에도 더 나서지 않은 신이혁이 옆으로 고개를 돌렸다.

“집으로요…?”

주하얀은 그 사이에서 홀로 갈피를 못 잡아 당황했다. 직전까지 신이혁에게 집에 갈 수 없는 이유를 피력했는데 대뜸 집으로 가자니. 혹시 자신이 이상하게 말했나 하여 뭐라고 덧붙일 말을 고르는데 문득 신이혁의 손이 앞으로 다가온다.

악수하듯 내민 왼쪽 손이 얼굴 앞에 멈춘다. 더 다가올 기색이 없는 손을 바라보던 주하얀이 머뭇머뭇 제 고개를 앞으로 뺐다. 부드럽게 물을 퍼내듯 안으로 만 손바닥 위에 제 뺨을 대자 마치 계산한 듯 손이 볼에 감긴다.

눈이 휘도록 웃은 신이혁은 손을 더 깊숙이 넣어 볼을 감싸고 엄지로 광대 위를 쓸었다.

“내 담보는 내가 모셔야지.”

“…….”

“하얀아. 집으로 가자.”

마치 꿀을 바른 듯한 말투에 주하얀은 영문도 모르는 채로 고개를 끄덕였다. 다만 표정만은 의아함과 당황을 숨기지 못한다. 네. 숨처럼 나온 대답을 덧붙이자 신이혁의 웃음이 짙어진다. 운전석에서 룸미러를 흘끗거리던 김 팀장은 이내 한숨을 쉬며 핸들을 돌렸다.

(다음 편에서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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디어 마이 세큐리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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잔희 장편 소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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