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디어 마이 세큐리티-27화 (27/61)

27화

신이혁은 토요일 아침 불쑥 찾아왔다. 휴일이라고 늦잠을 자던 주하얀은 덜컹하고 열리는 문소리에 비척대며 일어났다. 까치집이 선 머리로 비몽사몽인 주하얀을 보고 웃은 그는 복슬한 머리칼을 정리하듯 매만졌다.

“하얀이 잘 잤어?”

“네…. 무슨 일이세요?”

잠결에 놀라지도 못했지만 다소 뜬금없는 등장이다. 주하얀의 멍멍한 물음에 신이혁은 대답 대신 구부정한 등을 툭툭 두드렸다.

“일어나서 얼른 씻어. 시간이 일러서 대충 빵으로 사 왔어. 먹을 수 있지?”

“네.”

“그래. 이제 잠 깨고.”

볼을 문지르는 손을 고개를 털어 떼어낸 주하얀이 자리에서 일어나 먼저 이불을 갰다. 어차피 밤이면 다시 펴야 하기에 대충 반으로 접어 구석으로 밀어 넣는 게 다였지만. 베개 정리를 하는 척 이부자리 옆에 뒹굴려 둔 종이도 이불 사이로 숨겼다.

며칠 전 은행에서 뽑아온 이래 어떻게 해야 하나 고민하느라 내내 옆에 붙들고 있던 것이다. 그냥 얼굴이나 보려는 거면 경찰서에 실종신고를 할까 고민하는 사이 이미 금요일 밤이었다.

으슬한 냉기가 가득한 화장실에서 오들거리며 씻고 나오는 동안 신이혁은 앉은뱅이 식탁에 빵을 늘어놓았다. 포장지의 로고가 못 보던 것임을 봐선 그의 집 근처 빵집인가 보다.

젖은 머리를 털며 옷장으로 다가가 넉넉한 후트 티와 청바지를 꺼냈다. 잠옷으로 입는 짧은 반팔 위에 후드티를 뒤집어쓴 주하얀은 바지를 들곤 잠시 고민하다 곧 잠옷 바지를 벗고 옷을 갈아입었다. 뒤를 돌자 역시나 신이혁의 시선이 달라붙는다. 딱히 숨길 생각도 없는지 바로 마주친 눈에 그는 눈을 휘어 웃었다.

“다 했으면 와서 먹어.”

“감사합니다.”

진짜 변태인가. 찝찝하게 신이혁의 앞에 앉은 주하얀은 페이스트리 샌드위치를 집어 들었다. 크게 한입을 베어 물자 토마토의 새콤한 맛이 훅 풍긴다. 생각보다 맛이 좋아 금방 한 조각을 먹어 치우고 다음 조각을 집어 드는데 앞으로 딸기우유가 밀어진다. 일반적으로 편의점에서 보던 것관 다르게 생겼다. 주하얀은 고개를 꾸벅였다.

“이거 먹고 같이 어디 좀 갈 거야.”

“어디요?”

음식을 씹느라 조금 늦게 되물었지만 대답은 돌아오지 않았다. 대신 체하겠다며 천천히 먹으라는 말과 함께, 친히 딸기우유의 뚜껑을 따주고, 엄지로 입가를 닦아주었을 뿐이다.

순간 자신이 너무 게걸스럽게 먹었나 싶었다. 괜히 머쓱해져 입술을 문질렀지만 묻어나는 건 없었다.

보기보다 식사가 되는지 주하얀은 샌드위치 세트 하나를 먹곤 손을 놔버렸다. 신이혁은 더 먹으라는 재촉 없이 늘어놓았던 빵을 정리했다.

“준비 다 했어?”

분주히 움직이는 주하얀을 시선으로 따라가던 신이혁이 먼저 현관으로 가 섰다. 곧 주하얀도 그의 앞으로 다가왔다. 교복처럼 입는 겨울 패딩을 걸쳤다. 신이혁은 목 끝까지 올린 두툼한 패딩 지퍼를 다시 몽땅 내려버렸다.

“어차피 차 타고 갈 거라 꽁꽁 안 싸매도 돼. 오히려 벗어두는 편이 더 편하겠다. 좀 오래 갈 거라.”

반지하 계단을 오르자 언제나와 같이 바로 앞에 차가 주차되어 있다. 검은색 세단은 먼지 하나 없이 매번 매끈한 차체를 자랑한다. 오래된 빌라촌 골목과는 역시 안 어울리는 차였다.

한가한 주말 아침부터 부산을 떨어 향할 목적지는 차에 올라타서야 겨우 알 수 있었다. 주하얀이 안전벨트를 채우는 동안 내비게이션을 작동시킨 신이혁은 어떤 주소를 검색한 후 곧장 차를 출발했다.

앞에 있던 풍경이 눈 깜빡하는 사이 창문 뒤로 사라지는 것을 감상하던 주하얀이 뒤늦게 물었다.

“저희 어디 가요?”

먼저 물어놓고 답할 시간도 주지 않고 상체를 숙여 내비게이션 화면을 들여다본다. 대략적 경로와 예상 도착시간 아래 뜬 목적지를 확인한 주하얀은 의아한 표정을 지었다.

“…하신대병원?”

“졸리면 의자 젖히고 좀 자.”

“저희 지금 병원 가요?”

허리를 앞으로 꺾은 상태 그대로 고개를 휙 돌린 주하얀이 신이혁을 돌아보았다. 해명을 요구하는 눈빛이 얼굴을 간질일 법도 하건만 그는 다른 소리를 한다. 눈썹을 구긴 주하얀이 다시 화면을 확인하곤 의자에 등을 푹 파묻었다. 여전히 밖으론 가지만 남은 나무가 멀미가 날 정도로 빠르게 스쳐 지나간다.

목적지를 알았지만 이해가 되는 건 없었다. 이른 시간부터 타지역 병원을, 그것도 자신을 데리고 방문한다는 건 좀 맥락이 없다.

“저희 어디 가요?”

당연히 말 그대로의 질문은 아니다. 이 여정의 원인과 결과 모두가 물음표다. 차는 그사이 주택가와 고가도로를 지나 막 고속도로에 진입했다. 이 정도면 오래 참았다 싶어 주하얀이 고개를 틀자 신이혁의 시선이 힐끔 제 쪽에 닿았다 떨어진다.

“하얀이 많이 궁금한가 보네.”

“네.”

신이혁은 검지를 세워 핸들 위로 까딱거렸다.

“우리 지금 아빠 보러 가는 거야.”

“…네?”

주하얀은 잠시 그의 말을 이해하지 못했다. 전혀 예상치 못한 타이밍에 들은 말이라서 그런가. 그의 입에서 나온 ‘아빠’란 단어가 생소하게 머릿속을 빙 돈다.

“…저희 아빠요?”

“응. 미리 말했으면 예쁜 옷이라도 입었을 텐데. 그래도 하얀이가 예쁘니까 괜찮아.”

신이혁은 마치 타지에 사는 부모님께 오랜만에 방문하는 자식이나 직업 차 오랜 출장 후 귀가하는 아버지를 반기는 자식이라도 된 듯 말했다. 그 가벼움이 자꾸 주하얀의 생각을 가로막았다. 이 상황은 그리 간편하지 않다.

“아빠가 지금 병원에 있는 거예요?”

“응. 그러네.”

“왜요?”

즉각적으로 이어진 주하얀의 물음에 잠시 신이혁은 입을 닫았다. 답을 모르는 것이 아니라, 답을 고르는 것이다. 잠시 목을 울려 골몰한 소리를 내던 신이혁은 짧게 답했다.

“그냥 낙상. 발을 헛디뎌서.”

“하.”

그 순간 안도감이 든 것은 꽤 기묘했다. 짐작할 수 있는 다른 원인보다 지극히 일반적이다. 집도 절도 없이 술에 절어 돌아다니다 시비로 흠씬 두들겨 맞았다거나, 놀음판에서 싸움이 일어 칼부림이라도 난 광경을 상상하던 것치고 꽤 정상적이다.

주하얀이 자세한 사정을 물었지만 신이혁은 도착하면 얘기해준단 말로 의문을 일축했다. 대신 심각한 상태인지를 물었을 땐 죽을 정도는 아니라는 경쾌한 답을 돌려주었다. 다시 한번 숨을 고른 주하얀도 더 이상의 질문은 하지 않았다.

“아직 한참 가야 해. 좀 자.”

“…네.”

여기저기서 치고 나온 가정들이 어지럽다. 벌써 아빠가 다친 연유에 대한 수백 가지 시나리오가 세워진다. 잠이 올 리 없다. 하지만 주하얀은 고개를 창밖으로 돌려 목받이에 머리를 기댔다. 정신이 더없이 또렷하다. 눈을 감아도 잠이 올 것 같지 않았다.

아마 그라고 모르진 않겠지. 아마 지금 주하얀에겐 시간이 필요할 것이라 판단한 모양이다. 둘은 그저 차 안을 감도는 정적과 유일하게 울리는 음악을 받아들였다.

1층입니다. 문이 열립니다.

병원에 도착해 앞장서는 신이혁을 주하얀은 뒤따랐다. 양쪽 벽에 줄지은 엘리베이터 중 하나에 오른 신이혁은 6층을 눌렀다. 승강기 내 안내도로 봤을 때 6층은 입원 층이다.

“어제 일반 병실로 옮겼어. 호수는 미리 알아놨고.”

그의 말에 주하얀은 고개를 끄덕였다. 감사합니다. 작게 인사하자 숙인 머리로 신이혁의 손이 올라온다. 낯선 공간과 알 수 없는 긴장으로 자꾸만 어깨가 움츠러든다. 어쩌면 거북함인지도 모르겠다.

병원에 도착하고 병실을 찾아가는 내내 두근거림이나 불안 따위는 없었다. 그만한 애틋함도 없다. 주하얀이 병상에 누워있는 아버지를 보고 느낀 것은 일종의 어색함이었다.

그를 따라 병원 안으로 들 때도, 복도 안쪽 612호에 멈춰 환자 이름 사이 ‘주길우’를 확인했을 때도 묵묵히 따르기만 하던 주하얀은 커튼도 치지 않은 침대 가까이 자신의 등을 떠미는 신이혁에 발뒤축을 끌며 걸음을 내디뎠다.

“……아빠?”

눈을 감은 아빠는 일면 평화로워 보였다. 깨끗한 하얀색 환자복 때문인지, 빛이 잘 드는 창가 자리라 그런지. 매일 거무죽죽한 낡은 옷만 입고 다닐 때완 달랐다. 머리 전체를 감은 붕대나 얼굴의 반을 가린 거즈, 다리에 두껍게 감긴 깁스조차 큰 흠으로 느껴지지 않았다.

주하얀은 침대 앞으로 다가갔다. 둘 사이엔 한걸음의 거리도 채 남지 않았다. 아빠는 인기척 하나도 느끼지 못하는 듯 미동이 없었다. 단순히 잠들었다기엔 너무 곤하다. 주하얀은 답을 바라듯 신이혁을 돌아봤다.

“시간상 약을 먹고 잠들었을 거야. 걱정할 건 없어.”

생각보다 조용하고, 생각보다 심각한 주하얀의 반응에 그는 조용히 침상 주위로 커튼을 쳤다. 보호자용 의자도 끄집어내 주하얀을 앉혔다. 복잡한 표정의 주하얀은 말끔한 이불 언저리만 바라보았다.

“정확히 어떻게 된 거래요?”

“그냥 일반적인 실족 사고였어. 다행인 건, 밑에 건설자재들이 깔려있어 쿠션 역할을 했다는 거고. 그렇지 못한 건, 충격이 완화되었다 해도 추락 지점의 높이가 꽤 되었다는 거고.”

“사장님은 어떻게 알았어요?”

“너랑 나랑 만난 게 벌써 두 달 전이야. 야반도주한 사람 찾아내기엔 충분한 시간이지 않나.”

그의 말에 주하얀은 가만히 눈을 깜빡였다. 그러고 보니 어느새 해를 넘겼다. 바쁜 하루를 보낼 때는 몰랐는데 지나고 보니 꽤 긴 시간이다.

“왜 먼저 알려주지 않았어요?”

“뭘.”

“아빠요. 행방도 그렇고, 사고도 그렇고. 알았을 때 바로 얘기해줄 수도 있었으니까.”

그래야 담보 역할도 제대로 할 거고. 주하얀의 힘 빠진 말에 잠시 옆을 돌아본 신이혁은 침묵하다 입을 열었다.

“경과는 좋았어도 부상 자체가 가벼운 건 아니야. 회복하려면 시일이 걸릴 거고, 그만큼의 지원도 따라야겠지.”

“…….”

“충격을 반감했다고 해도 이 미터 아래 시멘트 바닥에 떨어졌어. 어느 정도의 치료비용은 감수해야 할 거야. 어쩌면 영구적 장애가 생길 수도 있어.”

“…….”

“그리고.”

문득 말을 끊은 신이혁은 꼬아 앉은 다리에 팔을 괴어 턱을 받쳤다. 바라보는 눈이 무언가를 가늠하듯 얇게 뜨인다.

(다음 편에서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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디어 마이 세큐리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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잔희 장편 소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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