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디어 마이 세큐리티-30화 (30/61)

30화

“지금…. 뽀뽀….”

이번에도 한발 늦게 이를 알아챈 주하얀이 입술을 가렸지만 이미 멀어진 후였다. 지금 무슨 일이 일어난 거지? 뽀뽀를 한 것 같은데. 뽀뽀를, 이 남자와…. 이미 회전이 느려진 머릿속은 감정을 불러들이는 능력마저 삐그덕대는 모양이다. 당혹과 놀라움마저 희미하게만 느껴진다.

“이것도 귀엽긴 한데…. 하얀이 이제 정신 좀 차려보자. 과일 더 먹을래?”

“……. …네.”

“그래.”

재우려는 건지 깨우려는 건지 엉덩이를 두드리며 과일 조각을 하나씩 입에 넣어주었다. 곧 배부른 주하얀이 고개를 젓자 과일접시를 옆으로 밀어 둔 신이혁이 등과 뺨을 고루 도닥였다. 물론 술에 취한 주하얀에겐 모두 울렁한 감각으로밖에 닿지 않았다. 결국 표면에 물기가 흥건한 온 더 락 잔을 볼에 대주자 미세하게나마 눈에 초점이 돌아온다.

겨우 실눈을 뜬 것만치 무겁게 뜨인 눈꺼풀을 살피다 참지 못하고 다시 고개를 숙였다. 젖은 입술을 서로 뭉개고 떨어진다. 쪽쪽. 입술이 눌릴 때마다 주하얀은 고개를 까딱이며 끙, 소리를 냈다.

색색거리는 입술에 마구잡이로 입술을 부딪힌다. 말랑한 살덩이 사이 틈이 잘못 물려 입술 안쪽과 앞니에 닿을 듯했다.

“적당히 먹였어야 했는데, 쯧.”

“…….”

“하얀아 나 봐봐. 눈 못 뜨겠으면 내가 도와줄까?”

그리곤 고개를 저을 틈도 없이 주하얀의 뒷목을 잡아 다가간다. 입을 벌려 눈가를 다 덮은 후, 입술로 누르듯 지분거린다. 꾹 감은 눈 위를 입술로 문지르고, 곧 축축한 것이 살 위에 닿는다. 눈의 끝과 끝을 고루 어루만지며 입술을 미끌리는데 내내 흐느적거리던 주하얀이 반항하듯 버둥거렸다.

어깨를 밀며 고개를 공격적으로 털어낸 주하얀은 소매로 눈을 거칠게 닦더니 무거운 눈두덩이를 겨우 들어 올려 그를 노려보았다. 물론 밀려오는 졸음을 억지로 참아내는 사람과 진배없는 모양새였기에 위협은 되지 못했다.

하지만 주하얀은 진지했다. 뒤늦게 상황의 이상을 느낀 이성이 경보를 울린 것이다. 순간적으로 흐트러진 정신을 집중한 주하얀은 술기운을 몰아내기 위해 축축한 술잔을 빼앗아 들곤 뜨겁게 열 오른 볼에 문댔다.

“술 다 깼으니까, 이제 그만.”

물론 말투는 아직 뭉그러져 더듬거렸으며, 무거운 눈꺼풀이 간혹 파르르 떨리긴 했지만, 확실히 눈은 제대로 떴다. 얼음이 거의 다 녹은 잔을 볼에 대고 둘둘 굴리며 차가워진 손으로 습한 눈가를 닦는다. 으으. 술 때문에 뒤늦게 속이 부대끼는지 앓는 소리가 절로 난다.

“하얀아. 이거 몇 개지?”

본인이 술이 깼다는데. 얼굴 코앞에서 흔들리는 검지를 보고 눈살을 찌푸린 주하얀이 손가락을 콱 잡아 내렸다. 그러면서도 한 개라고 순순히 대답하자 신이혁은 웃으며 잡힌 손을 비틀어 주하얀의 손목을 가볍게 감싼다.

“잘 잤어? 이제 피곤한 건 좀 괜찮고?”

지금 묻기엔 너무 늦지 않았나. 잠이 깬 건 삼십 분도 더 족히 전이고, 나았던 피로도 그 삼십 분 사이 다시 쌓였을 성싶다. 주하얀은 다소 어이없는 눈치로 고개를 끄덕였다. 신이혁은 주하얀을 따라 고개를 주억이곤 잡은 손목을 얕게 흔들었다.

“이렇게 할 예정은 없었지만…. 마침 해야 할 얘기가 있어.”

“얘기요?”

“응.”

“뭔데요?”

몽롱한 중에도 궁금하긴 한지 갸웃하며 되묻는 주하얀을 보고 그는 낮게 웃었다. 아니 술이 솔직함을 불러온 건가. 감기는 눈을 부릅뜨느라 주름진 이마를 엄지로 살살 문지른다.

“중요한 얘기라서 제정신일 때 하고 싶은데. 지금은 무리일 것 같다. 다음에 하얀이 멀쩡할 때…, ”

“아니요. 저 정말 멀쩡해요.”

과장되게 눈을 깜빡이며 입술을 앙, 무는 모습은 누가 봐도 멀쩡해 보이진 않았다. 술이 올라 묘하게 불콰해져 끝이 올라간 입꼬리를 살핀 신이혁은 톡. 바람이 스치듯 가볍게 손가락으로 입술선을 두드리고 멀어졌다.

“좋은 소식과 나쁜 소식이 있어. 뭐부터 듣고 싶어.”

“나쁜 소식이요.”

적극적인 태도에 못 이긴 모양이다. 순순히 이야기를 해줄 기세에 주하얀이 상체를 바로 세웠다.

뭐든 끝이 좋아야 한다. 주하얀이 즉각 대답하자 시선을 위로 들었다 다시 주하얀을 바라본다.

“낮에 했던 얘기지만….”

어떤 식으로 서두를 꺼내야 할지 고민스러운지 주하얀의 등에 손을 얹은 채 검지를 까딱인다. 손가락이 일정 간격으로 살을 두드린다.

“주길우 씨가 다른 데서 또 사채를 썼다고 했지.”

“…….”

갑작스러운 주제다. 방금까지도 궁금증과 기대에 차 있던 표정이 허물어진다. 신이혁은 짐짓 안타까운 얼굴을 했지만 말을 멈추진 않았다.

“내가 그쪽의 존재를 알았으니 그쪽도 이쪽 존재를 알 거야. 더불어 하얀이도. 뭐, 예견된 일이었겠지만 굳이 짚자면 그래.”

“…….”

“벗겨 먹을 것도 없는 중독자 새끼 데려다 뭐 하려고 했는지는 모르겠지만, 주길우는 죽을 둥 살 둥 자빠져 있고, 갑자기 아빠 찾아 삼만 리 한 아들의 등장에.”

“…….”

“다 같은 사채꾼 사이에 이런 말도 웃기지만, 나처럼 신사적인 사람은 드물어.”

“…….”

“좆같은 세상이 하얀이한테 도움을 안 주네.”

말이 살랑이는 것 같다. 지나가는 가십 다루듯 전하는 목소리와 턱 아래를 간질이는 손길 모두 무게가 없는데 주하얀만 짓눌려있다. 아까 전 술잔을 들고 있던 손도 아래로 떨어트리고 고개를 숙였다.

사실 모든 말이 현실감이 없었다. 자신은 이제 겨우 고등학교를 졸업한 20살이고, 돈이라곤 전단지 아르바이트나 편의점 아르바이트를 해 벌어본 몇십만 원이 상상할 수 있는 최대치이다. 200만 원 남짓이 든 통장도 혹시나 잃어버릴까 무서워 몇 번이고 주머니를 잠갔나 확인했다. 그 이상 단위의 돈이라는 게, 사채니 도박이니 자극적인 단어들이 온전히 이해될 리 만무하다.

“…….”

하지만 동시에 그것이 모두 심각하게 인지되기도 했다. 아닌 겨울날 커다란 덩치의 남자들이 집을 쳐들어왔었다. 방도 따로 없는 집안을 뒤지고 집기를 뒤엎었다. 방은 구둣발에 엉망이 되었고, 두툼한 손에 잡혀 이리저리 흔들렸다.

두려워 도망가려는 주하얀을 잡아다 감시를 명목으로 들여다보며, 존재만으로도 몸이 움츠려 들게 했다. 자신을 신사적이라 지칭하며, 주하얀도 일정 부분 그런 면에 기대는 이 남자도 처음 여느 채무자를 대할 땐 그러했다.

그런 신이혁보다도 악랄하다 한다. 애초 일반 사채와 도박판에서의 사채는 다르다며, 부모 잃은 가엾은 동물을 보듯 몸을 어루만진다.

눈앞의 남자가 웃을수록 주하얀은 더 움츠러들었다. 술기운 때문인지 귓가에서 쿵쿵거리는 심장박동이 정신을 산란시킨다.

“울지 말고. 고개 들어봐.”

소파에 편히 기대 주하얀을 관찰하듯 보던 신이혁이 손을 뻗는다. 부드럽게 턱을 받쳐 들어 올린 신이혁은 주하얀의 눈 아래 살을 엄지로 쓸었다.

울지 않는다. 그런데 그의 말을 들으니 어쩐지 눈가로 열이 몰릴 것도 같았다. 표정은 당장이라도 눈물을 짜낼 듯 일그러진다.

허탈하다. 억울하다. 화가 나고 답답하다. 사실 오래전부터 그랬다. 잔고가 바닥난 통장 내역을 볼 때부터 내내.

히이. 결국 울음기 찬 숨을 내뱉으며 막 어깨가 가쁘게 들썩이려 할 때였다. 씨근거리는 작은 몸을 달래기라도 하듯 신이혁이 볼 옆을 감쌌다.

“하얀아. 아직 좋은 소식을 안 들었잖아.”

“…흐으.”

“나쁜 소식 다 들었으니 이제 좋은 소식 들어야지.”

주하얀은 울망한 얼굴로 그의 얼굴을 바라보았다. 상한 속이 시끄러워 들은 말을 되짚고서야 의미를 알아차렸다.

그래. 처음에 그가 그랬다. 좋은 소식과 나쁜 소식이 있다고. 그 ‘나쁜’ 소식이라는 게 자신의 온정신을 흩트려놓는 것이라 새까맣게 잊어버렸지만.

주하얀은 크게 오르내리는 가슴을 진정시키려 숨을 길게 쉬었다. 뜨거워만지던 눈가의 열이 한숨 가라앉는다. 눈에 무겁도록 매달린 눈물이 뚝 떨어지고, 감추지 못한 기대를 담은 눈이 신이혁을 향한다. 그 축축하게 반짝이는 시선을 잠시 응시하던 신이혁이 입을 열었다.

“주길우 씨가 도망가서 헛짓하느라 달고 온 빚은 내가 안아줄 수 있어.”

“네?”

“그 출처 모를 놈들한테 진 빚 내가 가져오겠다고.”

이해가 잘 되지 않는다. 주하얀은 멍한 눈을 빠르게 깜빡였다. 그렁하던 눈물이 눈꺼풀에 밀려 후드득 떨어지고, 비로소 눈앞이 깨끗해진다. 빚을…. 어떻게 가져간다는 거지.

“물론 대신 갚아주는 건 아니야.”

“…….”

“채무 양도와 비슷하게 생각하면 돼. 정확히 그 방법을 쓰진 않을 테지만 결과는 유사하게 나올 거야. 빚은 그대로 존재하되, 빚쟁이가 바뀌는 거지.”

“…….”

“그쪽보단 이쪽이 더 낫지 않겠어?”

신이혁은 자신의 턱 아래에 손을 받쳐 들며 말했다. 무슨 말인지 이제야 조금 이해가 갔다.

아빠는 개 버릇 남 주지 못해 다시 사채에 손을 빌렸다. 그 상태로 몸져누웠으니 상환을 기대할 창구는 유일한 가족인 아들뿐이다. 게다가 타이밍 좋게도 올해 성인이 되었다니 돈벌이도 가능할 시기 아닌가. 주하얀을 괴롭힐 존재가 더 늘어났다. 빚쟁이치고 이상하리만치 다감한 그와는 다른 존재들이다. 주하얀이 얻게 될 시름은 가히 가늠할 수 없다.

이 상황에서 그의 제안은 확실히 좋은 소식이다. 아예 채무를 없애는 건 사실상 실현 불가한 소망이다. 감히 바라지도 않았다. 하지만 그의 도움을 받는다면. 주하얀으로서는 손해 볼 것이 없었다.

“대신 조건이 있어.”

당장이라도 제발 그렇게 해달라고 옷을 잡아끌려던 주하얀은 신이혁의 말에 손을 멈췄다. 조바심을 담아 맞춰오는 눈을 신이혁은 오랫동안 살폈다.

(다음 편에서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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디어 마이 세큐리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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잔희 장편 소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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