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디어 마이 세큐리티-35화 (35/61)

35화

신이혁은 지난번 방문보다 조금 늦은 시간에 찾아왔다. 이번엔 미리 채비를 마친 주하얀이 바로 따라나섰다. 그는 일전과 같은 빵집의 샌드위치를 건네고, 천천히 먹으라며 과일주스의 뚜껑을 손수 열어주기까지 했다.

차 안은 내내 고요했으며 간간이 포장지가 부스럭거리는 소리나 싱싱한 양상추를 베어 무는 소리만 들렸다. 만약 자신의 신경 줄이 조금만 더 예민했다면 분명 체했을 것이다.

한번 의식한 정적은 자꾸만 마음에 거슬렸다. 음악이라도 틀어주지. 차 안의 꽉 막힌 공기에 불편함을 느끼는 건 저 혼자인지 옆자리의 남자는 무표정할지언정 내내 여유로워 보였다.

“다 먹었어?”

“아, 아니요.”

옆을 힐끔대느라 느리게 입을 우물대다 불쑥 들어온 질문에 어깨를 들썩였다. 얼른 대답한다는 게 볼 안쪽이 꽉 차 소리가 뭉그러져 나왔다. 입을 손으로 가리고 서둘러 음식을 씹어 삼켰다.

“잘 먹네, 하얀이.”

“……. 맛있어요.”

“그래. 저번에도 잘 먹더라.”

민망해. 절로 머쓱해진 주하얀은 마지막 샌드위치 조각을 입에 넣고 부스러기만 남은 포장지를 손안에 구겼다. 마땅히 버릴 곳이 없어 일단 품에 안은 빵집의 종이봉투 안에 넣었다.

그리곤 봉투 안에 든 다른 빵을 뒤적거렸다. 샌드위치를 먹어 배는 불렀으나 가만히 어색한 공기를 견디느니 뭐라도 먹고 있자 싶었다.

돔형 뚜껑이 덮인 종이박스를 열자 안엔 작고 동그란 빵이 들어있다. 아기자기한 모양새에 하나를 입에 넣은 주하얀은 역시나 만족스러운 맛에 고개를 끄덕였다.

“좀만 더 가면 휴게소가 있는데, 들를까.”

“아니요, 저는 괜찮아요.”

“그래. 앞으로 한 시간 정도만 더 가면 돼.”

신이혁의 말에 무심코 운전석으로 시선을 두었던 주하얀은 문득 손에 든 빵을 그에게 내밀었다. 샌드위치야 커서 운전을 하며 먹기엔 부적절해도 이 빵은 한입에 넣을 수 있어 괜찮아 보여서였다. 사실은 운전을 한다고 고생하는 사람을 옆에 두고 혼자만 무언갈 먹기 조금 미안하기도 했다.

“음?”

불쑥 제 앞에 내밀어진 손을 힐끔 내려본 신이혁은 순순히 입을 벌렸다. 저작운동을 하느라 볼록하게 올라오는 얼굴 근육을 유심히 살피다 눈가에 맺힌 옅은 웃음을 보곤 안도의 숨을 쉬었다. 그에게도 맛이 나쁘지 않나 보다.

“고마워.”

담백한 인사에 주하얀은 조금 민망했다. 빵을 고른 것도, 사 온 것도 모두 그이고, 자신은 겨우 입에 넣어준 게 다였다. 애먼 것에 칭찬을 받은 느낌에 대답 대신 빵을 하나 더 내밀었다. 그리고 다 먹을 때까지 기다렸다가 그 몫의 테이크아웃 커피를 앞에 대주었다. 빨대를 쭉 빨아올리던 신이혁은 결국 웃음을 터트렸다.

의도한 건 아니었겠으나 모양새가 꼭 시중 드는 집사 같다.

“고마운데 나는 괜찮으니까 하얀이 먹어.”

손에 들린 커피를 가져가 한 모금을 더 마시더니 거치대에 내려두곤 조수석 쪽으로 손을 뻗었다. 왼손으로 핸들을 쥐고, 오른손을 내밀어 빵을 하나 집은 후 그것을 들어 올렸다. 대충 눈치로 고개를 앞으로 빼 빵을 받아먹자 큰 손이 이마부터 머리카락을 쓸어 넘기곤 멀어진다.

그가 손수 건네준 빵을 씹던 주하얀은 좌석에 파묻듯 앉았던 상체를 앞으로 숙였다. 어쩐지 아까보단 부드러워진 분위기에 말을 해도 될 성싶었다.

“음악 틀어도 돼요?”

조심스러운 요청에 상대는 어떠한 대꾸 대신 선뜻 버튼을 눌러주었다. 저걸 누르면 되는구나. 다음엔 스스로 해봐야지. 똘똘하게도 작동법을 익히려 위치를 기억해두었다. 금방 차 안으로 이름 모를 피아노곡이 깔렸다.

“후우.”

여태까진 애써 외면했는데 막상 병원 앞에 오니 무엇이라 형용할 수 없는 긴장이 밀려왔다.

지하에 주차를 하고 같은 층에 있는 편의점에서 과일음료 세트를 하나 샀다. 물론 주하얀이 아니라 신이혁이. 좋게 말해 채권자, 속된 말로 빚쟁이의 선물이라니 그의 사려 깊음에서 도리어 편찮음을 느꼈다. 게다가 무거운 음료는 더 이상 머무르지도 않을 병실에 짐만 될 게 뻔했다.

물론 자신이 미소든 조소든 흘릴 계제는 아니었기에 가만히 그의 뒤를 따랐다. 아닌게 아니라 지금은 어색하게 입꼬리를 끌어올리는 게 자신이 할 수 있는 고작이었다.

몇 개월 만에 마주하는 깨어있는 아빠라는 점도 절로 어깨를 뻣뻣하게 했지만, 그보단 지난번 그 험악한 사내들과 대면하게 될까 하는 우려에서 오는 불안이 더 컸다.

설마 오늘도 찾아왔을까. 어쩌면 내내 옆에 붙어 괴롭히고 있을지도 모른다. 병원이니만큼 궂은 방법을 쓰진 않겠지만 집요히 구는 거야 가능하니까. 신이혁도 그들이 질 나쁜 일당이라고 하지 않았던가.

한 칸씩 올라가는 숫자 계기판을 뚫어져라 보는데 거리를 두고 떨어져 있던 신이혁이 옆구리로 바투 붙여온다. 등 뒤로 팔이 감기고, 도닥이는 손이 어깨를 짚었다 떨어진다.

“괜찮아. 걱정할 거 없어.”

그는 무엇을 위로하고, 무엇을 자신하는 걸까. 어쩌면 허울뿐일지도 모르는 말이었으나 긴장으로 바짝 선 몸을 조금 늘어뜨렸다. 일정한 속도로 닿는 손에 따라 숨을 쉬었다.

“잠시만요. 내리겠습니다.”

6층에 도착한 엘리베이터의 문이 열리고, 드문드문 서 있는 사람을 헤치고 내리느라 그의 팔이 주하얀을 제 쪽으로 당겼다. 몸이 가깝게 붙어 엘리베이터에서 내리자마자 복도에 나온 사람들을 훑었다. 다행히 전형적이던 짧은 머리나 사나운 인상의 사람은 보이지 않았다.

드문드문 사람이 거니는 복도를 지나며 몇 번이고 고개를 돌려 주위를 살폈다. 병실에 다다를수록 목이 굳는다. 닫힌 병실 문을 열고 신이혁이 먼저 안으로 들었다. 그의 옆 틈새로 창가 침상 주위가 비어있음을 확인한 주하얀은 비로소 저도 모르게 꽉 쥐고 있던 손을 풀었다.

“…….“

아빠는 반쯤 상체를 세워 앉아있었다. 다가오는 인기척에 TV에 가있던 시선이 아래로 떨어진다.

앞선 남자를 보고 의아한 표정을 짓던 아빠는 뒤따르는 주하얀을 발견하곤 다소 놀라고, 어느 정도는 멋쩍은 표정을 지었다.

“왔냐.”

굼지럭거리며 뱉은 말을 들은 주하얀은 다소간 떨어진 자리에 못 박혀 서서 입을 다물었다. 당장이라도 하고 싶은, 아니 일방적으로 쏟아내고 싶은 말이 많다. 정제되지 않은 비난들에 머리가 다 어지러울 정도였다.

죽어버렸으면 좋겠다. 차라리 죽어 없어져 버리는 게 마음 편할 것 같다. 살아봐야 인생을 이 따위로밖에 살지 못하는데. 자식을 버리고 도망간 개새끼 따위가 아니라, 자식 걱정에 눈도 편히 못 감는 불쌍한 아버지로서의 마지막이 낫다. 매일 잃기만 하는 도박도 못 끊을 정도로 의지 없는 남자가 자식 버릴 용기는 나던가. 그렇게, 한 줄 설명도 없이 버리고 갈 정도로 자신이, 겨우 그런 정도의 존재가….

“처음 뵙겠습니다. 주길우 씨.”

꼬리에 꼬리를 물고 튀어나오는 부정한 생각이 불쑥 끼어든 목소리에 줄이 끊어지듯 삽시에 누그러졌다. 멍해졌던 시야를 다잡기 위해 눈을 깜빡이며 침대와 눈 앞의 등을 번갈아 보았다.

“아, 아 네.”

“신이혁이라고 합니다. 빠른 쾌차 빌겠습니다.”

“어유 네. 감사합니다.”

건네는 음료 세트를 받으면서도 아빠는 그가 누군지 몰라 어안이 벙벙한 표정이다. 그렇겠지. 애초에 아빠에게 돈을 빌려준 사채업자는 다른 이였고, 그가 우상동에 내려올 즈음에 이미 아빠는 다른 지역으로 도망을 간 후였다.

그는 인사와 함께 명함을 건넸으나 그 밖의 설명을 해주진 않았다. 정중하나 불친절한 태도에 캐묻지도 못한 아빠가 그 옆으로 시선을 돌렸지만, 이쪽이라고 대답해줄 마음이 있을 리 만무하다.

멀찍이 서 있던 주하얀이 침대 가까이 다가갔다. 발소리를 듣고 뒤를 돌아본다. 그의 옆을 지나칠 때는 큰 손이 허리 뒤를 짚었다 떨어졌다.

“그럼 얘기 나누십시오. 전 데스크에 좀.”

“네, 네. 알겠습니다.”

그의 말에 고개까지 움칠 숙이며 맞장구치는 아빠를 보고 주하얀은 코웃음을 쳤다. 지독한 중독자가 정상인 흉내를 내는 것 같아 우습기도 했다.

신이혁이 병실에서 사라지자 아빠의 고개가 다시 원래의 자리로 돌아왔다. 얼굴엔 노골적인 관심이 서렸다.

“저 사람은 누구야. 같이 온 거야?”

“시끄러워. 말 걸지 마.”

“너 지금 아빠한테. 그래도 봐. 명함에 사장이라고….”

“자식 버리고 도망갔으면서 누가 아빠야. 무슨 염치로 아빠야!”

결국 참지 못하고 소리치자 주길우의 눈이 커다랗게 뜨인다. 그 비루먹은 모습마저 신경질이 났다. 주하얀은 그깟 종이 쪼가리가 뭐라고 여태 손에 꼭 쥐고 있는 명함을 뺏어 들었다.

“누구든 당신 구제해줄 사람은 아니니까 신경 꺼.”

“주하얀! 어디서 아빠한테 버르장머리 없이,”

“내 아빠는 지난주에 이미 머리 깨져 죽었어.”

“이 새끼가 지금.”

“실례하겠습니다.”

격앙돼 붕 뜬 목소리 사이로 차분한 말투가 끼어든다. 어느 틈에 돌아왔는지 병실 문을 지나 금세 주하얀의 뒤에 선 신이혁이 중재하듯 나섰다. 주길우는 언제 큰 소리를 냈냐는 듯 당장 고개를 굽신거렸다.

어느 모로 보나 자신보다 월등한 사람의 등장에 금세 입을 합 다물어버리는 꼴이 지긋지긋하다.

“잠시만요.”

그의 뒤를 이어 곧바로 간호사가 병실에 들었다. 자연스럽게 날 선 대화는 소강상태를 맞았다. 옆을 파고들어 기계적으로 링거줄을 점검하는 것을 보고 걸음을 물렸다.

“오늘 퇴원하시고 병원 옮기신다고 들었어요. 일단 의사 선생님께 콜 넣었으니까 삼십 분 내로 내려와서 봐주실 거예요. 선생님 뵙고 괜찮다 하시면 아래 내려가셔서 수납하시고, 절차 안내 받으시면 되세요.”

피로함을 감추려 꾸며낸 친절한 말투에 대강 주억거려 대꾸했다. 그러는 동안 신이혁은 주하얀에게 한 발짝 다가와 섰다. 이젠 몸이 닿는 게 습관이라도 됐는지 제 자리 찾듯 등 뒤를 받쳐오는 손길에 주하얀은 손을 옆으로 뻗었다.

가슴팍에 제법 세게 부딪힌 손엔 아까 전 건넸던 명함이 들려있었다. 그 와중에도 사나운 눈은 여전히 아빠에게 박힌 채였다. 다른 수 없이 명함은 도로 그의 지갑에 꽂혔다. 아쉬워하는 주길우의 시선이 달라붙었지만 신이혁에겐 관심 밖의 일이었다.

(다음 편에서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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디어 마이 세큐리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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잔희 장편 소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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