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디어 마이 세큐리티-50화 (50/61)

50화

처음 불퉁한 반응을 보였던 것관 달리 그는 아침부터 학교에 데려다주겠다고 나섰다. 주하얀이 부득불 혼자 가겠다고 우겨 물러나긴 했지만. 이럴 때 보면 무슨 극성 학부모 같다. 그러다가도 현관에서 붙잡혀 당했던 키스를 생각하면 어림없는 얘기이긴 했다.

[사장님이야말로 술 많이 마시지 마세요]

[일찍 주무시고요]

토독. 액정을 두드려 답장을 보내고 그가 보낸 사진을 다시 켰다. 조금 비춰 보이는 주변을 보니 거실인가 보다. 괜히 사진을 확대해 잔을 잡은 손 따위를 보는데 앞쪽에서 무언가가 튀어 오른다. 시끄러운 와중에 섞여 들리는 자신의 이름에 주하얀은 고개를 들었다.

“주하얀! 애인이랑 연락하냐?”

술이 약한지 아까부터 얼굴이 벌겋게 달아올랐던 강신우는 이제 목까지 붉은 기가 내려왔다. 그나마 뜨인 눈도 반은 감겨 제 앞에 놓인 과자를 들어 주하얀의 앞으로 던진다. 힘없이 날아와 앞에 쌓인 과자를 주워 먹었다.

“뭐래. 너 얼마나 마셨냐? 얼굴 터지기 직전이야.”

“별로 안 마셨어. 한… 한 병?”

“원래 술이 약하구나.”

“아니거든! 피곤해서 그래!”

취한 와중에도 술 약하다는 소리는 싫은가 보다. 이맘때 청춘들은 술이 센 걸 자랑으로 알곤 한다. 다 헛소리. 괜히 객기 부리다 호되게 당해봐야 정신을 차리지. 일찍이 겪어본 일련의 사건으로 그 여파를 누구보다 잘 아는 주하얀은 음료수와 술을 번갈아 먹으며 나름 조절을 했다. 그 결과로 얼굴이 누구처럼 빨갛지도, 눈이 죄 풀려 감기기 직전도 아니었다. 다만 볼이 뜨끈하고, 몸이 좀 나른할 뿐. 아무렇지도 않았다.

“야. 졸리면 가서 자 그냥.”

“싫어! 넌 왜 자꾸 날 보내려고 그러냐.”

“내가 언제 널 보냈다고….”

“진짜 너무 한다. 애인이 그렇게 좋냐?”

짐짓 불쌍한 척 몸을 구기는 강신우를 보며 어이없이 웃는데 옆에서 삼삼오오 모여 이야기 중이던 무리 중 하나가 불쑥 대화 같지 않은 대화에 끼어든다. 연애 얘기라면 귀가 쫑긋한 나이다웠다.

“주하얀 연애 해?”

“아니. 쟤 취해서 그래.”

하지만 애석하게도 주하얀은 기대에 부응할 만한 능력이 안 되었다.

“거짓말하네. 하루 종일 핸드폰만 해놓고.”

“그럼 뭐야. 아직 썸?”

“아니라니까.”

“야, 딱 봐라. 애인이 없게 생겼나.”

어느새 너도나도 대화에 끼어들어 한 입씩 거든다. 아니라며 손사래를 치다가 부정해봐야 들어먹지 않는 귀에 그냥 앞에 두었던 술잔을 들었다. 미지근해져 코를 찌르는 매운 냄새에 얼른 과자를 주워 먹는데 손이 진동한다.

[걱정해주니까 좋네.]

[더 해봐.]

일부러 핸드폰 조명을 낮춰 메시지를 확인했는데 의심스럽다며 말을 거들던 놈 중 하나가 옆으로 고개를 들이민다. 서둘러 손을 틀어 핸드폰을 감추자 그 다급한 꼴이 흥미로웠는지 눈썹을 비죽인다.

“왜 남의 핸드폰을 훔쳐봐.”

“애인이야?”

“애인 없다니까.”

“그럼 누군데.”

당장에 받아칠 듯 입을 연 주하얀은 하지만 정작 말을 꺼내지 못했다. 누구라고 한단 말인가. 그냥 아는 사람이라고 한다면 분명 거짓말하지 말라며 말꼬리를 잡을 테고, 알바 때 그랬듯 아빠의 친구라 한다면…. 차라리 애인이라고 하는 편이 나을 것이다. 사채업자, 아는 사장님, 동거인. 어느 것도 당당히 내놓기 부적절하다.

주하얀이 애매하기만 한 호칭의 늪에서 헤엄치는 동안 짓궂은 녀석은 정곡을 찔려 말을 잇지 못한다고 생각했는지 음흉하게 웃는다. 뒤늦게 아차 싶어 그냥 친구라고 해보았지만 이미 늦은 때였다.

“부럽다, 주하얀.”

“뭐가.”

“뭐긴. 애인이 있으면 있는 거지 뭘 또 숨겨.”

“….”

거듭 아니라고 하려던 주하얀은 어차피 부정해봐야 듣는 이 없이 제 입만 아프지 싶어 말을 멈췄다.

“그럼 고등학교 때부터 사귄 건가?”

“그렇겠지. 너도 여친 있다고 하지 않았냐?”

“응. 난 고등학교 때 같은 반.”

“와 미친. 너도 애인 있었어?”

궁금해 죽겠단 눈으로 주하얀을 떠보던 놈 옆에 있던 애다. 홀로 내내 조용하더니 이유가 있었구나. 몰랐던 사람이 더러 있었던지 주하얀에게 쏟아지던 질문 폭격은 방향을 바꿨다. 덕분에 숨을 돌린 주하얀이 치즈과자를 한 움큼 집어 한 알씩 쏙쏙 입에 넣었다.

고등학교 2학년 때 같은 반으로 나란히 반장 부반장이었던 일. 남자가 먼저 고백했던 것. 여자가 재수를 해 밤에 자기 전에야 조금 연락을 한다는 사실. 알려고 하지 않아도 모두 숨죽여 얘기에 집중했기에 귀에 와 박힌다.

“못 보면 막 보고 싶고 그러냐?”

“오래 만나서 그런지 뭐 딱히. 보고 싶다거나….”

“오― 여자가 들으면 서운하겠는데.”

“걔도 똑같을걸.”

바람을 잡는 말에도 어깨를 으쓱거리며 말하는 모습이 태연하다. 당사자는 아무렇지 않아 보였으나 어쩐지 더 호들갑을 떨기 어려운 분위기에 사람들의 주의가 돌아간다. 간신히 관심에서 멀어졌던 주하얀에게로.

“너는 여자 친구 자주 만나?”

“응?”

졸지에 음료수를 마시다 질문을 받은 주하얀이 목을 울어 대답했다. 볼이 빵빵하도록 음료를 머금고 부러 천천히 마셨는데도 시선이 거두어지지 않는다. “뭐어….” 하는 수 없이 주하얀도 대답을 뭉뚱그리자 대충 긍정으로 알아들었는지 바로 다음 질문이 넘어온다.

“주로 언제 만나냐? 아니, 마지막으로 본 게 언젠데?”

주하얀에게 애인이란 없는 존재라지만 만일 있다 치더라도 개인적인 얘기 아닌가. 하지만 그런 점을 짚어줘 봐야 취기와 치기로 절은 놈들에겐 안 들리겠지. 주하얀은 손을 허벅지 아래로 집어넣었다. 쥐고 있던 핸드폰이 다리 아래로 숨는다.

“뭐… 오늘 아침?”

“와 미친! 오늘?”

답하고 나서야 굳이 솔직했을 필요가 있을까 싶다. 그냥 대충 둘러댈걸. 방금 전 커플과 다른 답변을 기대하며 반짝이는 눈을 보자 괜히 숨기고 싶지 않았다. 홀로 이성적인 척해도 주하얀의 귓불 역시 진즉 붉어진 후였다. 불쑥 치미는 치기가 없었다면 거짓말이다.

“잠깐만. 여자 친구가 우리 학교야?”

“아니.”

“근데 오늘 만났다고? 이 정도면 뭐 거의 같이 사는 거 아니냐?”

감탄과 황당함을 반씩 섞어서 하는 말에 주하얀은 그냥 웃어버렸다. 소가 뒷걸음질 치다 개구리 잡는다고. 의도치 않게도 정답이다.

“같은 고등학교 나왔으면 집도 가깝겠네.”

한참 먼 착각에도 굳이 사실을 정정하진 않았다.

“너 마중 나온 거야? 며칠 못 본다고?”

“왜. 잘 다녀오라고 꼬옥 안아주기라도 했어?”

생각보다 순순히 대답하는 주하얀에 신이 났는지 남자아이들의 상체가 앞으로 기운다. 밋밋한 답에 저들끼리 멋대로 살을 붙이더니 신이 나 떠들더니 주하얀이 입이라도 들썩일라치면 집중해오는 게 웃기다. 자신에게 쥐어진 대화의 주도권이 조금 재밌는 것도 같다.

“글쎄.”

아쉬움의 포옹 따위를 나눈 기억은 없다. 함께 있을 때면 수시로 몸을 닿아오는 신이혁이라도 그렇게 낯간지럽게 굴진 않으니까. 하지만 걸리는 건 있었다.

지난밤에 챙겨둘걸 미적거린다고 미룬 바람에 주하얀은 아침부터 집을 분주히 돌아다녔다. 옷장을 몇 번이나 열었다 닫고, 욕실을 오가는 동안 그는 주 하얀의 방 침대에 앉아 엉덩이에 불이 난 다람쥐 같은 모습을 바라만 봤다. 이른 아침에 씻은 지 얼마 되지 않아 젖은 머리가 착 내려앉은 채였다.

‘그러게 미리 챙겨 두라니까 말도 안 듣고.’

‘칫솔, 치약, 샴푸, 바디워시… 아, 수건!’

‘하얀아.’

‘충전기랑 지갑은… 챙겼고.’

‘하얀아.’

‘잠시만요. 저 짐 좀 챙기고요. 아 양말!’

뽈뽈대며 돌아다니는 모습이 귀엽다며 바라만 보던 신이혁은 한참이나 알은체 없이 돌아다니기 바쁜 주하얀을 살살 불렀다. 하지만 정신이 다른 데 팔린 주하얀이 그의 떨어진 인내를 알아챌 리 없었다.

깜빡하고 안 챙긴 양말을 챙기려 침대 옆 테이블로 다가가다 불시에 팔이 잡혔다. 강한 힘에 속절없이 기우뚱한 몸이 끌려간다.

‘누가 보면 이사 가는 줄 알겠다.’

‘…그 정도는 아니에요.’

‘그리고 나랑도 얼굴 좀 봐야지. 오늘 가면 이틀간 못 보는 건데.’

반항할 새도 없이 끌려가 양볼이 잡혔다. 말랑하게 손바닥 아래 잡히는 볼을 눌렀다 풀었다 하자, 주하얀의 입술이 붕어처럼 튀어나왔다 들어가길 반복한다. 제 얼굴을 떡처럼 주무르는 게 불만이었는지 미간을 찡그리는 것마저 귀여워 신이혁은 주하얀의 입술 위로 입을 맞췄다.

쪽쪽. 툭 튀어나온 입술에 장난스럽게 뽀뽀하다 퉁퉁한 입술을 물었다. 창문으로 드는 아침볕만큼 부드러운 키스였다. 그의 손은 목 뒤로 넘어가 주하얀을 끌어당겼고, 주하얀은 남자의 다리 사이로 한 걸음 다가섰다.

‘저 이러다 늦겠어요.’

‘데려다줄게.’

숨을 핑계로 떨어진 입술 사이로 투정 부리듯 말했다. 그는 당연하게 달랬고, 곧 입술이 다시 맞물렸다. 바로 서 허리만 굽힌 불편한 자세에 주하얀은 곧 무릎을 굽혔다. 그의 허벅지 옆으로 무릎을 꿇어앉자 팔이 허리로 감겼다. 주하얀은 어깨에 팔을 걸쳐 등 뒤로 제 손을 맞잡았다.

“그랬던 것도 같고.”

… 모양새로 보면 포옹이나 진배없긴 하겠다.

“오오― 주하얀!”

“그래서. 포옹만 했냐? 어?”

“몰라. 이제 잘 거야.”

말을 듣자마자 바닥을 치며 호응하는 놈들을 떼어내며 주하얀은 자리에서 일어났다. 사실을 있는 대로 말해줄 필요도 없거니와, 이쪽의 용의도 없다. 게다가 그건 좀… 부끄러운 일이니까.

흥미가 돋은 중에 당사자가 갑자기 자리를 박차고 나서자 여기저기서 아쉬운 야유가 쏟아진다. 그래도 아직은 서로 간의 서먹함이 남아있어 억지로 잡아 앉히는 일은 없었다. 강신우만이 더 얘기해보라며 바짓가랑이를 잡고 늘어졌지만 주하얀은 간단히 다리를 털어버렸다.

드륵-

거실과 여닫이문으로 구분된 방에 들어가자 일찍 술에 절어 기절한 놈들이 발에 챈다. 사지가 모두 풀어져 자유분방하게 널브러진 사이를 헤쳐 자리에 누운 주하얀은 푸욱, 한숨을 내쉬었다.

왁자지껄한 속에 있을 땐 몰랐는데 조용한 공간에 유리되자 피로가 밀려온다. 바닥 열이 뜨끈해 겨우 가라앉나 싶던 술기운이 올라온다. 시간이 늦어서인지 눈도 감긴다.

[저 먼저 잘게요]

뒤늦게 신이혁에게 답장한 주하얀은 팔을 툭, 베개 옆으로 떨어뜨렸다. 이렇게 피곤할 줄 알았으면 아침에 얌전히 데려다 달라고 할걸. 고집을 부려 홀로 학교에 온 게 괜한 일 같다.

가물가물, 아득해지는 의식에 눈을 꼭 감고 있던 주하얀은 진동하는 핸드폰에 감았던 눈을 가늘게 떴다.

[잘 자.]

특별하지도 않은 밤 인사. 잠 기운에 마구잡이로 번져 보이는 메시지 창을 확인한 주하얀은 그제야 완전히 잠자리에 몸을 묻었다. 저녁나절 손에서 놓지 않은 핸드폰을 여전히 든 채였다.

(다음 편에서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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디어 마이 세큐리티

(Dear my security)

잔희 장편 소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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